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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5화 (12/191)

15화

“아, 안셀, 쉿!”

평소 쥐콩만 한 담력을 가지고 있던 그였다. 마멜라가 황급히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자 안셀은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뭐, 뭐지? 대체 뭐가 나온 거지?’

마음을 추스른 그는 떨리는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보인 것은, 검은 무늬가 옅게 퍼져 있는 하얗고 조그마한 아기 고양이였다.

녀석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확인한 안셀은 고작 고양이였다는 것에 안도했다.

“……!”

그리고 다시 놀라 눈을 부릅떴다.

안셀이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마멜라를 쳐다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멜라가 조용히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 * *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못내 불편했다.

눈앞에서 나를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인간의 얼굴을 앞발로 밀어 버리고 싶었다. 내 앞발이 저 인간에게 잡혀 있지만 않았어도!

얼굴을 들이민 인간이 헤벌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 귀여운 아이를 아가씨 혼자서만 보고 계셨단 말입니까? 우쭈쭈, 여기 보렴, 물고기 인형이란다!”

안셀이란 인간이 이미 질린 지 한참이나 된 물고기 인형을 들고 흔들었다.

‘하지 마!’

나는 물고기의 머리를 이마로 세게 박아 버렸다.

“하하하, 그렇게 좋으니?”

밀어낼 수 있는 발이 없어서 머리로 쳐 버린 것인데 이 멍청한 인간은 내가 애교를 부리는 건 줄 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마멜라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녀도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으리라.

마멜라가 안셀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안셀, 이건 비밀이야. 오라버니한테 절대 말하면 안 돼!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내가 말할 거니까…….”

“예, 아가씨. 저, 안셀. 목에 칼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이 비밀은 가문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까지 안고 갈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그,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나는 안셀의 허풍에 혀를 내둘렀다. 하나같이 과하지 않은 점이 없는 인간이었다. 내 구역을 떡하니 침범한 그를 째려봤다.

‘마멜라를 따라 나가는 게 아니었어…….’

아까 전, 내게 이것저것을 가르치던 마멜라는 내가 가르치는 족족 스펀지처럼 쫙쫙 빨아들이자 더는 가르칠 게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간식을 잔뜩 받아먹은 나는 신나게 공놀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심심하다며 늘어져 있던 마멜라가 갑자기 어디선가 바구니를 꺼내 온 거다.

치사하게도 마멜라는 바구니 안에 간식을 심어 뒀었다. 나는 그대로 바구니 안으로 폴짝 들어갔고, 그대로 붙잡혀 바구니를 타고 정원 산책을 하게 된 거였다.

‘물론 방 안에서만 보던 것들을 밖에서 보니 좋긴 좋았지만…….’

나는 안셀을 노려봤다.

이 인간을 만난 건 전혀 달갑지 않다. 다가오는 것에도 순서가 있지, 이 거리감도 모르는 인간 같으니.

안셀의 손에서 앞발을 휙 빼갔다. 대체 얼마나 조몰락댄 거야. 떡을 만들어라, 그냥!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붙잡히고 말았다. 안셀은 황홀한 표정으로 헤실거렸다. 아주 그냥 눈물도 줄줄 흘릴 기세다.

“아가씨, 이 아이의 이름이 아릴이라고 했지요?”

“응.”

“혹시 아가씨께서 좋아하시는 ‘아리리(Ariri)’라는 책에서 따온 이름이 아닙니까?”

“어, 맞아!”

마멜라가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뜻밖에 내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된 나는 책장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런 책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용맹하다는 의미라니. 정말 귀여운 이름이군요. 부디 그렇게 자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용맹이 붙었는데 왜 귀여운 이름인 건데? 멋있는 이름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내 생김새를 알고 있으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타인이 제가 지은 이름의 참뜻을 알아준 게 기뻤는지 마멜라는 방실방실 웃다가 말했다.

“안셀, 우리 아릴이 엄청 똑똑하다? 한번 볼래?”

“보여 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지요.”

안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몸을 파르르 떨며 마멜라를 바라봤다. 지금 보여 주겠다는 게, 설마.

“아릴, 손!”

뭐라고……!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따지듯이 아옹아옹 울었다.

‘마멜라, 잊은 거야? 그건 저 인간이 아니라, 네 가족에게 보여 주기 위해 연습한 거잖아!’

안셀이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멜라 또한 괜찮으니 어서 해 보라며 나를 보챘다. 두 사람의 반짝이는 시선이 내게 몰렸다.

나는 마지못해 마멜라의 손 위로 앞발을 폭 올렸다.

‘윽, 마멜라를 봐서 하는 거다……. 결코 저 인간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게 아니야!’

내 조그마한 앞발을 감싸 쥔 마멜라가 뿌듯하게 웃었다.

“어때? 대단하지?”

안셀은 놀란 얼굴로 물개 박수를 쳤다.

“아직 어린데 벌써 손을 할 줄 아는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나는 마멜라를 불만스럽게 쳐다봤다.

기껏 훈련한 걸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용도로 사용하다니. 물론 닳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다 저 인간 때문이야.’

나는 안셀을 찌릿 노려봤다.

내가 이 인간을 이토록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첫째로, 이 인간은 너무 부담스럽다.

마멜라에게도 마음을 열기까지 꼬박 며칠이 걸렸는데 안셀은 기다림 같은 것도 없이 다짜고짜 얼굴부터 들이밀기나 하고…… 쯧.

그리고 둘째.

안셀에게선 이딜로스의 냄새가 많이 난다.

“아릴, 손! 나한테도 해 주렴!”

나는 손을 내미는 안셀을 힐긋 바라보곤 아예 그를 등지고 앉아 버렸다. 흥,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자 늘 내가 내다보던 창문이 보였다.

안셀은 연갈색 머리의 말쑥한 청년이다. 창밖의 이딜로스를 바라볼 때면 종종 그와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일전에 내가 장식장에 숨었을 때, 그때 이딜로스와 함께 있던 것도 안셀이었을 테지.

나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다. 짜증이 난다.

마멜라에게 이딜로스의 냄새가 묻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다른 인간이 그의 냄새를 묻히고 오니 짜증이 날까.

‘내 가족이 될 인간인데 나와 친해지기도 전에 다른 인간과 친하게 지내서 그런 건가…….’

나는 내심 부러운 눈빛으로 안셀을 돌아봤다. 그러자 안셀이 뚱한 표정의 나를 귀엽다며 쓰다듬었다.

으르릉, 일종의 경고 섞인 울음소리를 냈지만 안셀은 그게 경고인지 애교인지 구분도 못 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인간. 마멜라가 보고 있는데 확 물어 버릴 수도 없고.

“그런데 아가씨. 아까부터 질문하고 싶었던 겁니다만, 소파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그게. 아릴이가 엉망으로 만들어서…….”

마멜라의 말에 소파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안셀이 의연하게 말했다.

“당장 에쥴라로트에서 만든 고급 소파를 넣어야겠군요. 이런 일은 제가 가장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데 왜 말씀하지 않으신 겁니까?”

“응? 그거야 당연히 안셀은 아릴이의 존재를 몰랐으니까.”

“설마 제가 전하의 측근이라 하여 저를 믿지 못하셨던 겁니까? 섭섭합니다, 아가씨. 이래 봬도 아가씨 어릴 적엔 제가 아가씨를 업고 다닌 적도……… 아얏.”

나는 구구절절 말이 많은 안셀의 손을 콱 물어 버렸다. 1절만 해라, 말 많은 인간.

내가 사납게 일갈하며 손을 물고 있는데도 안셀은 겁 없이 웃었다.

“하하, 이 녀석. 나랑 그렇게 놀고 싶었니?”

“…….”

나는 그런 안셀을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안셀. 지금 안 바빠?”

“네? 저야 늘…….”

서글서글 웃던 안셀은 말하다 말고 표정이 굳었다. 나는 안색이 하얗게 변한 그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얼굴색이 저렇게 한순간에 창백해질 수도 있구나.

안셀은 눈물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아무래도 전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바빴구나. 멋대로 끌고 와서 미안해.”

“아닙니다. 오랜만에 살아난 기분이었는 걸요.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몹시 한스럽습니다.”

안셀이 눈물 젖은 손으로 내 털을 쓰다듬었다. 나는 기겁해서 그의 손을 쳐 냈다.

어딜, 내가 공들여 정리해 놓은 털을!

“오라버니가 찾겠어. 어서 가 봐.”

“예. 소파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릴, 다음에 또 보자꾸나.”

나를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안셀은 공손하게 인사한 후에 마멜라의 방을 나갔다.

나는 안셀이 한껏 헤집어 놓아 폭탄 맞은 꼴이 된 털을 정리했다.

‘저런 못 미더운 인간에게 내 소중한 소파를 맡겨야 한다니.’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떡하니 생겨 있는 번듯한 소파의 자태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뭐야……?’

소파 옆에 서서 마멜라에게 설명 중이던 안셀이 보였다. 아주 당연한 걸 했다는 듯이 우쭐대는 기색도 없어 보였다.

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새 소파에 올라가 발톱으로 살짝 긁어 보았다.

소파를 찢을 생각은 당연히 없었고 멀쩡한 소파가 맞는지 확인해 보려는 거였다.

‘혹시 몰라. 소파인 척하는 지푸라기일지.’

그러한 내 모습을 본 건지 안셀이 말했다.

“이전의 소파와는 가죽 재질이 달라서 흠집이 잘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아릴을 놀게 하셔도 됩니다.”

“안셀, 역시 믿음직스러워!”

마멜라가 감탄했다.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소파를 조금 더 세게 긁어 봤는데 정말로 흠집이 잘 나지 않았다. 조금 의외였기에 놀랐다.

표정이나 행동이 과장된 데다가 경고와 애교도 구분 못 하기에 그저 멍청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능력 있었다.

안셀을 빤히 봤더니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모른 척 등을 보였다.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굽힌 그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릴, 미안하지만 오늘은 내가 바빠서 놀아 주지 못한단다. 나와 놀고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참아 주렴.”

나는 그 헛소리에 어이가 없어졌다. 누가 놀아 달래?

나는 안셀의 손을 앞발로 쳐 냈다. 나한테 맞아 놓고 뭐가 좋은지 허허 웃던 안셀이 말했다.

“그래그래. 다음에 와서 놀아 주마.”

“으르르!”

제발 빨리 가!

“아가씨,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릴과 놀아 주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군요.”

“시간 날 때 언제든지 와도 돼. 노는 건 사람이 많을수록 재밌으니까.”

“정말 그래도 됩니까?”

“응.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간에만 안 오면 언제든 환영할게.”

그 부드러운 대답에 안셀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그가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아, 역시 마멜라 아가씨……. 너그러운 마음씨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저 안셀, 모셔야 할 주인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바꿔야…….”

“헛소리 말고 어서 가.”

마멜라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안셀을 문밖으로 밀어냈다. 코를 훌쩍이던 안셀은 허리를 넙죽 숙이더니 금세 사라졌다.

나는 그가 나간 문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정말 귀찮고 특이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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