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마멜라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와 문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문밖에서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던 목소리가 들렸다.
“마멜라, 들어가도 될까?”
틀림없다. 이 목소리는 마멜라의 가족이다.
나는 어정쩡하게 나를 든 채 굳어 버린 마멜라를 바라봤다. 그녀의 안색이 파래졌다가 하얘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분명 나를 들키면 곤란한 걸 거야.’
나는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마멜라의 팔을 앞발로 찰싹찰싹 쳤지만, 그녀는 눈동자만 연신 굴렸다. 생각이 무척이나 많은 표정이었다.
‘틀렸어. 그냥 내가 침대 밑으로 숨어 버리자.’
마멜라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러나 마멜라는 도리어 나를 더욱 꼭 붙잡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를 쳐다보자, 마멜라가 긴장을 머금은 표정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마멜라?”
다시 한번 문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문 너머에 바로 있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창가에 앉아 나른함에 젖어 마멜라의 가족을 바라봤던 날만 며칠이던가.
하지만, 마멜라가 싫다면 나 역시 내 마음에 응할 수 없다.
나는 잠시간 마멜라와 눈빛을 주고받다가 나를 붙잡고 있는 마멜라의 손을 앞발로 세게 쳐 냈다.
내 돌발 행동에 마멜라의 팔에 힘이 빠졌다. 그녀가 당황한 숨소리를 흘렸다.
나는 그대로 그녀에게서 벗어나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연분홍색 이불이 시야를 뒤덮자 마멜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의 다리에 몸을 기댔다.
‘나 어디 안 갔어.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잠시 후, 위에서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저…… 지금은 몸이 안 좋아서 혼자 있고 싶어요.”
마멜라의 말은 한참이 지나 꺼내진 반면, 말이 되돌아오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것도 꽤 흐트러진 목소리로.
“많이 다친 거야? 의원이라도 부르마. 그전에…….”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어서요…….”
이불을 앞발로 살짝 들추자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멜라가 보였다.
나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째선지 그는 대답이 없다.
꽤 긴 침묵이 이어지자 마멜라는 손에 땀이 나는 듯 옷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그러다 벌어진 이불의 틈으로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멜라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아릴…… 혹시 오라버니가 들어오게 되면 절대 울음소리 내면 안 돼, 알았지?”
불안해하는 마멜라를 위해 이불에서 앞발을 쏙 내밀어 그녀의 손등을 토닥였다.
그때, 한숨 섞인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올 테니 푹 쉬어. 많이 아프거든 내게 꼭…… 말하고.”
걸음을 돌려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에 마멜라가 참았던 숨을 터트리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십년감수했어…….”
시야를 덮고 있던 연분홍색 이불이 홱 걷혔다. 여전히 안색이 흙빛인 마멜라가 보였다. 아닌가, 가만 보니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마멜라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녀가 나를 끌어당겨 와 꼭 안았다.
“다행이야……. 널 숨기고 있는 걸 갑작스레 들키고 싶진 않았어. 적어도 내가 직접 말하고 싶었단 말이야.”
나는 그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멜라가…… 나를 말해? 가족에게?
마멜라는 내가 창피해서 내보이기 싫었던 게 아닌가……?
의문을 파고들기도 전에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마멜라가 다시금 몸을 굳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마멜라를 다독였다.
요나 소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가씨, 저 요나입니다. 가주님은 가셨어요.”
“아……. 난 또, 오라버니인 줄 알고 놀랐잖아.”
“말씀을 전하러 왔어요. 들어가도 될까요?”
마멜라의 허락이 떨어지자 침실로 들어온 요나는 그의 말을 고했다.
“가주님께서 아가씨는 오늘부터 수업이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마멜라는 처음엔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곧 눈을 반짝이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더불어 나를 매만지던 손길이 격해졌다.
“오라버니가 나 아프다고 오늘 수업을 빼 주셨나 봐!”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부터 쭉, 아가씨 학교 입학하시기 전까지 수업이 아예 없으실 거예요.”
마멜라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미심쩍은 표정과 목소리로 요나에게 물었다.
“뭐? 갑자기 왜?”
“저도 거기까진 모르겠어요. 그냥 아르벵 백작님께서 이제 오지 않을 거라는 말만 하셔서…….”
“그게 정말이야?”
요나가 끄덕이자 마멜라는 콧바람을 흥 내뱉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명망 높은 학자라며 억지로 공부시킬 땐 언제고. 오라버니는 은근 변덕이 심해. 그렇지, 아릴?”
“아옹?”
투덜대던 마멜라는 그래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마멜라가 늘 기운 없이 가던 게 수업을 들으러 가는 거였어.’
마멜라가 종종 푸념하곤 했던 것을 떠올린 나는 그녀의 손등에 이마를 문질렀다.
잘됐다, 마멜라. 늘 힘들어했잖아.
내 애교에 반응한 마멜라가 나를 꽉 끌어안으며 내게 뺨을 비비적댔다.
으악, 숨이 막혀서 바둥거렸다.
그런데 마멜라는 내 행동을 대체 어떻게 이해한 건지, 저도 내가 너무 좋다는 말을 해 댔다.
나와 마멜라는 생각보다 잘 안 통하는 것 같다…….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요나가 입을 연 것은 잠시 뒤였다.
“아가씨.”
“응?”
마멜라가 내 털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제야 숨이 트였다.
요나는 심상찮은 말이라도 하려는 듯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 거 아시나요?”
“세 번째? 뭐가?”
“가주님 뵙기를 거절하신 거요……. 이전까지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으셨으니 가주님께서 많이 상심하셨을 거예요.”
“……오라버니가? 혹시 그렇게 말씀하셨어?”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왠지 가주님의 분위기가…….”
요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은 요나는 마멜라를 바라봤다.
마멜라는 나를 꽉 껴안은 팔에 힘을 스르륵 풀더니 웃으며 말했다.
“분명 잘 안 풀리는 업무가 있었을 거야.”
그녀가 조잘조잘 말을 덧붙였다.
“오라버니는 원래 스물네 시간 중 스무 시간을 집무실에만 계시는 분이잖아. 잠잘 시간도 부족할 텐데 고작 날 못 만났다고 그러진 않을걸.”
나는 마멜라의 말을 듣다가 경악했다.
스물네 시간이면 하루잖아. 그런데 그 하루 중 스무 시간을 일만 한다는 건가?
그럼 잠은……? 많이 잡아도 잘 시간은 네 시간밖에 남지 않는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온종일을 잠만 자고 일어나도 금세 또 꾸벅꾸벅 졸아 버리곤 하는데.
마멜라의 가족은 엄청 대단한 인간인 모양이었다.
감탄하는 사이, 요나는 어쩐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응? 뭐가?”
마멜라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요나는 그런 그녀를 조금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마멜라를 따라 가볍게 웃었다.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코피가 이제 멈췄나 봐요.”
“응? 아, 그렇네.”
“혹시 모르니 계속 꽂고 계세요. 저는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할게요.”
“응.”
요나가 방을 나가자 마멜라는 곧바로 코에 꽂힌 휴지들을 빼서 선반 위로 던져 버렸다.
그녀는 답답했는지 숨을 몇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마멜라는 그사이 제법 우울한 얼굴이 되어선 내 털을 만지작댔다.
나는 그녀가 왜 기운이 없어진 건지 알 수가 없어 얌전히 마멜라에게 털을 내어 주기만 했다.
마멜라가 불쑥 말했다.
“아릴, 그거 알아?”
“아옹?”
“오라버니는 나보다 일을 더 좋아하신다는 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내 생각이 곧 표정에 드러나기라도 한 건지 마멜라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녀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가 마멜라를 아낀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떠날 때면 그는 늘 마멜라의 방 창문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때마다 나는 창가에서 몸을 숨겨야 했지만, 그 모습에서 돈독한 사이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마멜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 것 같아. 마멜라의 가족은 한 번 나가면 한참 있다가 돌아오곤 했으니까.’
비록 이제는 마멜라가 나와 함께 놀곤 하지만, 그전에는 이 방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보냈을 거다.
마멜라가 수업에 가면 혼자 남겨지는 잠시조차도 조용하고 외로운데 내가 오기 전의 마멜라는 어땠을까?
마멜라가 여트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오라버니가 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나 진짜 웃기지.”
멍하니 침대의 캐노피를 바라보는 마멜라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목소리에는 묘한 일렁거림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녀의 팔에 붙어 앉으며 작게 울었다.
마멜라는 떨리는 숨을 짧게 내쉬곤 픽 웃으며 말했다.
“역시 말동무가 있으니 좋네. 아릴이가 곁에 있어 줘서 다행이야.”
왜 이렇게 슬프고 외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나는 마멜라의 손을 조그만 앞발로 꼭 잡았다. 마멜라가 느끼는 감정의 파문이 전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엎드리곤 고개를 묻었다. 그러자 마멜라가 웃음을 흘렸다.
“낮잠 자려고? 수업도 안 하는데 나도 아릴이랑 같이 낮잠이나 잘까?”
“아옹.”
잠시 후 살짝 고개를 들어 보니 벌써 눈을 감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숨소리도 이미 느리고 잔잔하게 변한 후였다.
‘진짜 빨리 잠드는구나…….’
눕기만 하면 자는 마멜라가 조금 황당했지만, 나는 앞발을 들어 그녀의 팔을 천천히 토닥이기 시작했다.
‘난 네가 좋은 꿈만 꾸었으면 좋겠어.’
잠들어 있을 때만이라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끔.
두세 번, 토닥이던 앞발을 멈추었다. 그녀의 팔에 완전히 맞닿은 앞발로부터 줄곧 내 몸을 선회하던 맑은 기운을 천천히 밀어 주었다.
시원하고 깨끗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으나 금세 다시 차오르는 감각 또한 생생했다.
이대로 마멜라의 부정적인 잡념들이 지워지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 차길 기다렸다.
“으음…….”
어느새 마멜라는 기분 좋은 꿈을 꾸는 듯 입꼬리를 배시시 올리고 있었다. 나는 꽤 흡족한 마음으로 앞발을 거두었다.
‘마멜라, 이제 좀 괜찮지?’
내가 어떻게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멜라의 팔에 발라당 기대어 눈을 감았다. 졸음이 솔솔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