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2화 (9/191)

12화

마멜라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왈칵 말을 내뱉었다.

“깨어 보니 창문은 열려 있고…… 방 안은 엉망인데다 네가 쓰러져, 있어서…… 흑,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네가 일어나질, 않으니까…… 흐윽.”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마멜라의 숨넘어갈 듯한 말을 들었다.

‘이거, 설마 꿈인가?’

내가 마멜라의 말을 알아듣고 싶다고 해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나는 앞발을 들어 마멜라의 뺨에 가져다 댔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흐느끼던 마멜라가 내 앞발을 손에 꼭 쥐었다.

그녀의 손에 실린 약한 힘. 따스한 온기. 기분 좋은 향기. 이 모든 게 증명해 주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벅찬 마음에 시야가 흐릿하게 젖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내가 마멜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그건 꼭 그리워 마지않던 고향을 몇 년 만에 간신히 찾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아릴, 다친 곳은 없는 거지?”

마멜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많이 놀란 건지 눈물에 콧물까지 쏟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멜라가 원래 이렇게 어렸던가?’

문득 드는 의문에 마멜라의 얼굴을 뜯어봤다.

변한 점은 없는데…… 설마 내가 머리를 너무 세게 부딪혀서 이상해진 걸까.

가만 보니 몸 상태도 왠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온몸에 이상한 기운이 차고 넘쳤다.

몸이 막 낫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희미하게 느껴지던 것과 같았다. 또, 마멜라가 가족에게 선물 받았던 그 꽃과 닿았을 때 밀려든 기운과도 같았고.

하나 다른 점은, 그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막대한 양이라는 것.

한참이나 눈물 콧물을 빼던 마멜라는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마음이 진정된 듯했다.

마멜라는 나를 끌어안고 꾸물꾸물 침대로 갔다.

“내가 꼭 잡고 있으면 아까처럼 날아가지 않을 거야……. 미안해. 분명 내가 창문을 닫았을 텐데…….”

마멜라의 잘못이 아니었다. 분명히 닫혀 있던 걸 내 눈으로도 똑똑히 봤지 않던가.

그런데 마법처럼 저절로 열린 것이고, 기다렸다는 듯 나를 덮쳤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나는 마멜라를 올려다봤다. 등만 닿으면 자는 아이 아니랄까 봐, 마멜라는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잠들었다.

마멜라의 포근한 이불 속에서 생각했다.

‘……마멜라의 가족은 괜찮을까?’

바람이 무척 거셌으니 나처럼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

다시 창가로 가서 그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마멜라가 나를 꼭 끌어안고 있어 그러질 못했다.

이대로 괜히 창가로 갔다가 또 그런 괴상한 일이 벌어지면 마멜라는 아마 펑펑 울겠지.

지금으로선 그냥 그가 무사하길 바라는 것만이 최선인 듯했다.

나는 그녀의 팔에 기대어 얌전히 눈을 감았다. 마멜라의 느린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점점 졸음이 밀려왔다.

‘내가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니, 아직 얼떨떨해.’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없었던 일이 될까 봐 무서웠다.

그럼에도 기대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젠 전처럼 마멜라에게 민폐를 끼칠 일이 줄어들게 될 거다. 마멜라가 내게 건네는 말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테고.

나는 이 기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내일 눈을 떴을 때도 이 모든 게 신기루가 아니길 신께 빌어야 했다.

* * *

이른 아침부터 요나가 찾아왔다. 그녀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말했다.

“아가씨, 가주님께서 지금 시간이 되느냐고 물으십니다.”

“왜?”

“그제 못 했던 외출이 목적이신 것 같아요.”

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했다.

이제는 요나와 마멜라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다. 그 점이 신기하게 와닿으면서도 새삼 낯설었다.

누구에게 말하긴 창피하지만,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있을 때면 꼭 내가 인간이 된 것 같다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내가 인간의 말만 할 줄 알면 완벽할 것 같은데 아쉽다니까.’

인간의 언어를 말할 줄 아는 고양이라니 멋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마멜라는 오늘따라 유난히 바쁘게 펜을 움직인다. 뭐가 그리 바쁜지 요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가며 말했다.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오늘은 진짜로 숙제가 너무 많아. 하필 어제 일찍 잔 바람에…….”

“그럼 그렇게 전해 드릴까요?”

“응, 부탁해.”

“네, 아가씨. 그럼 열심히 하세요. 이따가 집중에 도움이 되는 차를 내어 올게요.”

용무를 마친 요나는 방을 나갔다.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가 마멜라가 쌓아 둔 책 위에 자리를 잡았다.

마멜라는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종이를 넘기고, 펜으로 뭔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많이 바빠 보여. 방해하지 말아야지.’

나는 엎드려 낮잠을 청했다. 마멜라의 곁에서 자는 낮잠만큼 평화로운 게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뒤 요나는 또다시 같은 시간대에 찾아왔다. 그러곤 데자뷔를 느끼게 할 정도로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아가씨, 가주님께서 오늘은 시간이 되느냐고 물으십니다.”

나와 사냥 놀이를 하던 마멜라는 요나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대답했다.

“오늘은 돼. 지금 당장 오라버니께 가 보자.”

“아릴을 두고 가도 괜찮으시겠어요?”

“요새 아릴이가 눈에 띄게 얌전해져서 잠깐은 괜찮을 것 같아. 혹시 모르니 외출은 하지 않을 거야.”

마멜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공을 물려 줬다. 나는 문으로 향하는 마멜라를 바라보다가 혼자 털실 공을 데구루루 굴렸다.

‘오늘도 사고 치지 말자.’

최대한 몸을 사리는 선에서 공을 앞발로 굴리며 놀았다.

그렇게 혼자 놀기 마스터의 실력으로 나름대로 재밌게 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옆을 바라봤다. 요나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아가씨! 괜찮으세요?”

“아니…….”

조금 전 들린 그 엄청난 소리는 마멜라가 넘어지는 소리였다.

공을 내팽개친 나는 바닥에 엎어진 마멜라에게 허둥지둥 달려갔다.

“아옹……!”

나는 걱정스럽게 울며 마멜라의 머리를 핥았다. 다행히 늘 핥던 맛과 같았다.

피는 나지 않나 보다. 다행이야, 마멜라!

마멜라는 바닥에 엎어진 채 꼼짝도 안 하다가 말했다.

“……요나, 나 뭐 때문에 넘어진 거야?”

“장난감을 밟으신 것 같아요.”

그걸 밟고 미끄러졌다는 게 어이가 없는지 마멜라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발이 너무 아프더라.”

“아가씨,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발바닥이 엄청 아프긴 한데…….”

요나가 마멜라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런데 마멜라의 얼굴을 본 나는 충격에 빠졌다. 요나도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마멜라의 얼굴에서 붉은색의 무언가가 후드득 떨어졌다.

“아, 아가씨, 피!”

“피?”

“코피요!”

요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마멜라의 코를 틀어막았다. 연분홍색 손수건이 점점 빨갛게 변해 갔다. 나는 그 옆에서 충격을 받은 채 굳어 있었다.

‘어, 어떡해. 마멜라 이제 죽는 거야?’

나는 눈물을 핑 매달고서 마멜라에게 달라붙었다.

피가 나면 엄청 아프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도 그냥 아픈 게 아니라 죽을 듯이 아프다는 걸.

마멜라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먹이는 나를 달랬다.

“괜찮아. 나 안 아파. 그냥 넘어지면서 얼굴을 세게 부딪쳐서 그래.”

“아가씨, 일단 누우세요. 제가 의사를 불러올게요.”

침대에 누운 마멜라가 손을 내저었다.

“그냥 넘어진 것뿐인데 무슨. 넘어져서 코피가 난 건 조금 창피하단 말이야.”

나는 마멜라를 따라 침대 위로 올라갔다. 요나가 휴지를 돌돌 말아 마멜라의 코에 꽂는 게 보였다. 코 양쪽을 틀어막은 마멜라는 굉장히 가여워 보였다.

눈을 글썽이며 마멜라의 팔을 앞발로 눌렀다.

“아옹…….”

“아릴, 왜 그렇게 울상이야! 나 죽는 거 아니야.”

나는 마멜라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내 엉덩이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요나는 마멜라의 코에 꽂힌 휴지가 젖을 때마다 휴지를 갈아 줬다. 코피가 쉽게 멎지 않는 건지 빨갛게 젖은 휴지가 점점 쌓여 갔다.

줄곧 걱정스러운 표정이던 요나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아가씨, 코피가 멎질 않아요. 역시 의사를 부르는 게…….”

“아니야. 고작 코피 난 걸로 부르는 건 싫다니까. 가서 오라버니한테 나 좀 쉬어야겠다고만 전해 줘.”

“지금요? 아가씨 이렇게 피가 많이 나시는데 제가 옆에 있어야…….”

“휴지는 내가 갈아 끼울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알겠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요나는 걱정스레 마멜라를 보다가 방을 나갔다.

나는 마멜라의 품에서 고개를 빼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코를 얼마나 세게 박은 건지 코가 발갛게 부어 있었다.

속상해서 눈썹을 축 늘어트리자 마멜라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 코를 콕 눌렀다.

“코피는 원래 살다 보면 한 번씩 다 나게 되어 있어. 이거 별거 아니야.”

나는 코에 휴지를 꽂고서 웃는 마멜라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코에서 피가 나다니, 얼마나 아플까.

어서 나으라고 마멜라의 손을 핥았다. 그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짠맛이 평소보다 짠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그때, 반사적으로 두 귀가 쫑긋거리는 순간이 있었다.

‘뭐야,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막는 거지? 비켜라.”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가씨께서 지금…….”

멀리서부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두 명의 발걸음 소리. 보폭으로 보나 걸음걸이로 보나 한쪽은 분명 요나였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마멜라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 갔다.

마멜라는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나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채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 문 너머에서 요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가씨…… 가주님께서 오셨어요.”

마멜라는 나를 든 상태로 얼어붙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