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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0화 (7/191)

10화

부쩍 창가에서 지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나는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창가에 앉아 창 너머 웬 청년과 대화하는 햇살 같은 남자를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그에겐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계속 지켜보고 싶게 만들고 찾아 헤매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무언가가.

하지만 그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가 힘들었다.

한 번 대문을 나가면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오고, 그조차도 얼마 안 돼서 다시 나가 버리니…….

‘대체 어떻게 마멜라와 교류가 오가는 건지 궁금할 정도야.’

나는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모든 것에 눈길이 갔다.

바람이 불면 부드럽게 나풀거리는 그의 금색 머리칼과 이따금 찌푸려지는 반듯한 눈썹까지도.

다만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마멜라의 가족을 훔쳐본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그가 제대로 웃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멜라처럼 환한 인상이면서 어떻게 저리 웃음이 없을 수가 있을까.

분명 처음엔 호기심을 잠재우고자 몰래 지켜보기 시작한 것인데 그는 갈수록 내 호기심에 불을 지피기만 했다.

“아릴?”

바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방을 나갔던 마멜라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뭘 보고 있길래 내가 돌아온 줄도 몰랐어?”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은 마멜라가 방금까지 내가 보고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오라버니랑 안셀이네.”

“…….”

“아릴, 오라버니를 보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저기 화원을 보고 있었어?”

나는 멀뚱멀뚱 마멜라를 올려다봤다. 마멜라가 웃으며 내 턱을 살살 긁어 주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서 절로 눈이 감겨 온 나는 발라당 누워 배를 보였다. 턱을 간지럽히는 그녀의 손을 두 앞발로 꼭 붙잡은 채 가릉가릉거렸다.

어느새 마멜라의 입꼬리가 활짝 만개하고 있었다.

“아, 우리 아릴이가 이렇게 귀엽다는 걸 오라버니가 알아야 하는데……. 아릴이 너도 오라버니를 어서 만나고 싶은 거지?”

“아옹?”

“으으, 귀여워. 진짜 확 깨물어 버리고 싶다니까.”

착각인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멜라의 섬뜩한 눈빛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슬그머니 엉덩이를 뒤로 뺐다.

마멜라가 나를 당겨 오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가로막혔다.

“아가씨, 저 요나입니다.”

나는 마멜라의 관심이 분산된 틈을 타 서둘러 소파로 도망쳤다.

그사이 공손히 손을 모으고 들어온 요나가 마멜라의 곁으로 갔다.

“요나, 무슨 일이야?”

“아가씨, 가주님이 아가씨께 나들이하지 않겠냐고 물으셨어요.”

“나들이?”

“아가씨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더군요.”

“아…… 정말?”

마멜라가 미적지근하게 웃자 요나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다지 기뻐하지 않으시네요. 이전엔 가주님과의 외출이라면 무척 좋아하셨잖아요.”

“아니야, 좋기는 한데…….”

마멜라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등을 곧추세우고 몸을 부풀렸다.

아까 본 마멜라의 눈빛이 얼마나 위협적이던가. 하찮을 정도로 조그만 솜뭉치라 해도 짐승의 본능 정도는 있었다.

마멜라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릴이를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제가 아릴을 돌보고 있을까요?”

“음……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요나도 바쁘잖아.”

“그럼 아릴을 혼자 두시려고요?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걸요.”

요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마멜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아릴이를 혼자 둘 리가 없지.”

그녀는 멀찍이 있는 내게도 환히 보일 정도로 방긋 웃었다.

“요나, 오라버니께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해 줘.”

나는 내게서 시선을 돌린 두 사람을 힐끔대며 물고기 인형을 물었다.

요나는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같이 기다리셨던 시간이잖아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응. 외출은 다음에도 할 수 있잖아.”

“……그럼 아가씨의 뜻대로 전해 드릴게요. 다만, 외출하실 수 없는 구실은 필요할 거예요.”

“아……. 그래?”

마멜라의 얼굴을 본 나는 물고 있던 물고기를 놓쳤다.

그녀가 내가 본 얼굴 중 가장 음흉한 표정으로 씩 웃었기 때문이다.

“그럼 숙제가 너무 많아서 못 가겠다고 전해 줘. 그렇게 말해 두면 오라버니가 날 찾을 염려도 없고, 내 숙제량이 과하다는 것도 강조하고. 완벽해.”

“예……. 알겠어요. 그럼 전 이만 물러가 볼게요.”

“응.”

요나가 나가자, 마멜라도 내게 간식 하나를 주고는 책상으로 갔다.

서걱거리는 펜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인형을 깨물었다. 왼쪽 발로는 늘 하던 것처럼 소파를 긁었다.

‘아, 평화로워.’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소파를 긁던 발이 푹 들어가더니 보들보들한 게 느껴졌다.

‘부드럽네……. 뭐지?’

나는 그 부드러운 걸 나른하게 휘젓다가 인형에 파묻은 고개를 들었다. 인사라도 하듯 발톱에 매달려 흔들리는 흰색이 보였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

길게 찢어져 솜이 튀어나온 소파…….

내가 뭘 했는지 깨달은 순간, 나는 퍼뜩 고개를 들어 마멜라를 봤다.

여전히 펜을 움직이고 있는 그녀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 찢어진 소파를 내려다봤다.

‘어, 어떡해……!’

나는 안절부절못하다가 무작정 벌어진 소파의 양쪽을 앞발로 쥐곤 끌어모으려 안간힘 썼다.

그러나 조금만 구멍이 나도 펑 벌어질 만큼 솜이 꽉 들어찬 소파가 그런 게 될 리 없었다.

도리어 더 벌어지는 것 같기만 하자 별수 없이 소파를 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어딘가에 다른 해결책이…….

그때 장난감 통 근처에 있던 실크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라면 가릴 수 있겠어!’

두 눈을 반짝이며 달려가 담요를 물었다. 이걸로 가려 놓고 모르는 척하면 분명 감쪽같을 것이다! 마멜라도 소파가 낡아서 찢어졌거니 생각하겠지.

작은 발을 빠르게 굴려 담요를 질질 끌면서 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나무로 된 장난감 차가 발에 걸리는 것 아닌가.

‘길 막지 마!’

걸리적거리는 자동차를 발로 힘껏 차 버리곤 콧김을 흥 내뱉었다. 그러곤 한 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쨍그랑!’ 하고 등골이 저릿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

흠칫 놀란 나는 오싹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했다.

날아간 자동차가 문 옆에 있던 길쭉한 화분에 구멍을 냈다.

나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 나 그렇게 세게 안 찼는데?’

아니, 애초에 이 조그만 발로 찬 게 어떻게 저 큰 화분을 깬단 말인가. 지난번 금이 간 거울도 그렇고, 인간들은 물건을 부실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했다!

‘이걸 어쩌지……?’

내가 저지른 사고에 정신이 다 혼미해졌다. 고개를 억지로 돌려 마멜라를 바라봤다.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마멜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안색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아릴.”

무시무시한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눈을 깔았다.

의자가 뒤로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마멜라의 발걸음과 한숨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그려지는 미래가 캄캄했다.

나는 쭈뼛쭈뼛, 최대한 불쌍하게 몸을 쭈그렸다. 그런데 갑작스레 걸음 소리가 멈추었다.

‘아직 내 앞으로 오려면 몇 걸음 더 남았는데?’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다. 걸음을 멈춘 마멜라가 소파를 빤히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머리가 백지처럼 새하얘졌다.

소파를 잊고 있었다……!

마멜라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고뭉치…….”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방을 나가 버렸다.

나는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불안에 떨었다.

‘큰일 났다. 마멜라가 정말로 화났나 봐.’

절망감이 어린 눈으로 엉망이 된 방을 둘러봤다.

화분에 구멍이 나면서 쏟아진 흙과 깨진 화분의 파편들, 그리고 찢어진 소파와…… 화분을 깨고 튕겨 나가 뒤집힌 장남감까지.

내가 봐도 심각한 난장판이었다.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마멜라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멜라는 피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다시 방구석의 상태를 확인한 마멜라는 두통이 밀려오는지 이마를 짚으며 나를 불렀다.

“아릴.”

“아옹…….”

“어떻게 잊을 만하면 사고를 치니? 이건 좀 심하잖아.”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마멜라의 성난 목소리를 들었다. 그게, 나도 고의로 이런 건 아닌데…….

잘못은 알지만 할 말은 하고 싶은지라 소심하게 칭얼거렸다.

마멜라는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덥석 들어 올렸다. 갑자기 몸이 떠오르자 당황해 고개를 들었다.

“아옹?”

어딜 가는 거냐고 물었지만, 대답해 주지도 나를 토닥여 주지도 않은 마멜라가 나를 데리고 방 한구석으로 갔다. 그곳엔 장난감 통과 비슷하게 생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마멜라는 상자의 뚜껑을 열고 그 안으로 나를 집어넣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자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옹……!”

“이건 아무리 봐도 내가 치울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 잠시 여기에 있어. 아마 다른 시녀들이 올 거야.”

마멜라의 단호하고 빠른 말투가 평소 같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빼고 그녀를 올려다봤지만, 마멜라는 상자의 뚜껑을 닫아 버렸다. 매정한 태도에 나는 별수 없이 몸을 물려야 했다.

곧이어 마멜라의 기척이 밖으로 사라지더니 그 대신 낯선 인기척 여럿이 방으로 들어왔다. 부스럭대는 소리를 들으며 눈치껏 짐작했다.

‘방을 청소하러 왔나 봐.’

나는 상자 안에 엎드린 채 침울하게 꼬리를 내렸다.

그렇게까지 화난 마멜라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대로 내가 싫어져서 날 내쫓으면 어떡하지.

상상만으로도 눈가가 축축해져서 몸을 말고 고개를 파묻어 버렸다.

청소 시간은 꽤 길었다. 저 낯선 인간들은 언제쯤 나갈까.

바깥에서 대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요즘 들어 아가씨의 방에서 망가진 물건이 자주 나오는 것 같아.”

“아가씨께서 학업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

“그럴 리가. 학구열이 뛰어나시단 건 다들 알잖아.”

빗자루질 소리와 함께 누군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에이, 너 그거 못 들었니? 며칠 전에 아가씨께서 학습량이 너무 과하니 줄여 달라고 가주님을 찾아갔는데 단번에 쫓겨나셨다잖아.”

“맞아. 그때 차를 내러 간 헤미아가 가주님이 아가씨를 꾸짖으시는 걸 들었대.”

“뭐? 말도 안 돼. 그분이 아가씨를 얼마나 금처럼 대하시는데.”

나는 쫑알대는 인간들의 말을 엿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나 있으면 좋을 텐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를테면, 마멜라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가주님은 원래 교육적인 면에서 아가씨께 엄하셔.”

“왜?”

“그거야 모르지. 아마 가주님께서 워낙 저명하시니까 아가씨와 비교 대상이 될까 봐…….”

난데없이 등짝을 때리는 듯한 찰진 소리가 나더니 어떤 인간이 버럭 말했다.

“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황실에 흠 잡히지 않으려고 그러시는 거겠지. 카델라로트가 황실과 사이가 안 좋다는 걸 몰라?”

“하긴…….”

화분의 파편을 치우는 건지 요란한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시무룩하게 앞발을 가지고 놀며 화분의 파편이 서로 맞부딪힐 때마다 귀를 쫑긋거렸다.

잠시 후 어떤 인간이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그런데 어쩌다 사이가 안 좋아진 거야? 카델라로트는 황실의 유일한 혈족이잖아.”

“나도 잘 몰라. 5년 전에 가주님이 황실과 절연하겠다 선언하신 것 말고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졸음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다가도 다시 퍼뜩 깨어나 고개를 빳빳이 세우길 반복했다.

‘안 돼…… 자면 안 되는데…….’

의식의 끈이 외줄을 건너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결국 나도 모르게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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