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왜지? 왜 날 보이기 싫어하는 거지……?’
설마 내가 너무 바보같이 생겨서 그런 걸까.
서럽지만 그런 이유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작은 바람 한 번에 날아가 버릴 정도로 조그맣고, 어디 가서 기도 못 살릴 정도로 맹하게 생겼으니까.
‘내가 좀 더 늠름하고 멋있었더라면 마멜라는 진즉에 날 가족에게 소개했을 거야…….’
마멜라의 부드러운 손길이 와 닿았지만, 나는 평소처럼 애교를 부리지 못했다.
풀이 죽어 침대 밑에 들어가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이성적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뭐가 되었든 마멜라는 다친 나를 정성껏 돌봐 주었다.
그러니 설령 마멜라가 나를 들키기 창피해하는 것이더라도 나는 군말 없이 따라야 해.
내게 은인이나 다름없는 마멜라에게 고작 이런 것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어선 안 되는 거야.
턱을 간지럽히는 마멜라의 손을 핥았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한결 풀어지더니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맑은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마음도 조금은 나아졌다.
* * *
“아릴, 갔다 올게.”
“아오옹……!”
나는 문으로 향하는 마멜라의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겼다.
‘가지 마, 마멜라. 나랑 놀자. 공놀이하자.’
그런 내 마음이 통하지 않은 건지, 마멜라는 내게서 옷을 빼내며 말했다.
“아릴, 나중에 놀아 줄게.”
그녀가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리자 나는 마멜라보다 빠르게 문을 쏙 빠져나가 버렸다.
마멜라가 당혹스러운 소리를 내더니 나를 덥석 안아 다시금 방 안에 내려 두었다.
“안 된다니까. 왜 자꾸 밖을 나가려고 해.”
“아옹…….”
내게 경고하듯 진지한 표정을 짓는 마멜라를 시무룩하게 바라봤다.
내가 마멜라의 눈앞에서 방문을 멋대로 넘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마멜라의 행동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 그녀를 지나쳐 방문을 넘을 때마다, 마멜라는 재빠르게 두리번대며 나를 방 안으로 돌려보냈다.
‘정말로 그런 거였어…….’
내가 그 자리에 주저앉자 마멜라는 나를 불안하게 쳐다보다가 방문을 닫았다.
섭섭해지지 않기로 했는데 확인 사살을 당할 때마다 침울해졌다.
‘……아니야, 난 안 서운해! 어서 할 만한 걸 찾아보자. 다른 걸 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나는 듬직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적어도 마멜라가 오기 전까지는 혼자 놀아야 했다.
다행히 마멜라의 방은 파도 파도 재밌는 게 많이 나와서 탐험 놀이 같은 걸 하기에 제격이었다.
거대한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내 눈에 든 것은 책상이었다.
‘마멜라는 늘 저기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했었지.’
호기심에 책상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꺾어 봐야 할 정도로 커다란 책상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폴짝, 가볍게 뛰어올라 의자를 한 번 밟고 책상 위로 올라갔다. 가뿐하게 도착한 뒤 책상 위를 빙 둘러봤다.
사방팔방에 인간들의 글자가 수두룩하게 적힌 종이들이 널려 있었다.
‘우와. 다 마멜라가 적은 건가 봐.’
은근한 기대감에 가장 가까이 있던 종이를 들여다봤다.
이윽고 눈에서 생기가 픽 식었다. 종이 속 잉크가 마른 글자들을 살피자 말문이 막혀 왔다.
‘이게 마멜라 글씨라고……?’
항상 마멜라가 이 자리에 앉아 펜을 쥐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종이를 앞뒤로 들춰 본 나는 그것을 툭 놓았다.
심하다. 정말 심한 악필이었다.
원래도 복잡하게 생긴 문자가 더 엉망이니 눈앞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애초에 이게 인간의 문자가 맞긴 한 건가? 외계어의 진화형 같았다.
종이에서 시선을 뗀 나는 이번엔 책상에 놓인 펜과 잉크병을 바라봤다. 다가가서 킁킁 냄새를 맡았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코가 썩는 것 같았다.
코를 앞발로 틀어막은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가끔 마멜라가 펜을 끄적일 때면 은은하게 풍기던 냄새가 바로 이 냄새 같았다.
나는 독한 냄새를 지우고자 코를 몇 번 문지른 뒤, 다시 탐색에 나섰다. 마멜라가 오기 전까지 놀 만한 게 필요했다.
나는 작은 몸집을 열심히 움직여 책상 위를 뛰어다니며 구석구석 구경했다.
그러다 달리기를 멈춘 곳은 책상 위에 널브러진 어떤 종이 앞이었다. 나는 이채를 품은 눈빛으로 종이를 살폈다.
‘이건 마멜라가 쓴 게 아닌 것 같아.’
우아하고 정갈한 필체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얼핏 마멜라의 책에서 본 인쇄된 글자보다 백배는 더 근사하게 느껴졌다.
‘이건 누가 쓴 걸까?’
규칙처럼 일정하게 각 맞춰서 적힌 글자가 신기해 그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 희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또 이러네…… 왜 이렇게 머릿속이 답답한 거야.’
인간의 문자를 보고 언어를 들을 때면 가끔 느껴지던 기분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이 기분의 정체를 알아내야겠다.
그리 마음먹은 순간, 저 멀리서 마멜라의 발소리가 들렸다.
한순간에 생각을 날려 먹은 나는 책상에서 뛰어내려 방문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유난히 시간이 빨리 갔다는 기쁨에 폴짝폴짝 뛰며 마멜라를 반겼다.
* * *
드디어 오늘, 나를 괴롭혀 대던 갑갑한 붕대를 모조리 풀었다.
헌 붕대를 한쪽에 쌓아 둔 채, 마멜라와 요나는 내 배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배를 드러낸 채 열심히 앞발을 핥았다.
마멜라가 미심쩍은 듯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상처가 그렇게 심했는데 흉터 하나 없이 말끔히 나았어. 이제 막 한 달이 된 것 같은데.”
“아직 새끼라서 회복력이 좋은 걸까요?”
“글쎄…….”
“……저까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수의 정말 돌팔이가 맞았나 봐요.”
“그렇다니까.”
털 정리가 끝나자 나는 멍하니 마멜라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다가 딴생각에 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몸에서 묘한 변화가 느껴졌지.’
아마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을 무렵부터인 것 같은데 온몸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꼭 새벽 공기처럼 맑고 시원해서 머릿속의 나쁜 잡념들이 싹 물러가 버릴 정도였다.
‘건강해져서 그런 걸까?’
한창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마멜라가 내 엉덩이를 토닥여 줬다.
“아릴, 이제 가서 놀아도 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나는 고민 없이 소파에서 뛰어내려 몸을 부르르 털곤 조심스레 움직여 봤다.
‘헉, 이거 완전 신세계잖아……!’
배와 등을 감싸던 붕대가 사라지니 갑갑함이 사라진 건 물론이고 온몸이 가벼워지기까지 했다.
나는 붕대를 풀었다는 흥분감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 안을 방방곡곡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옹!”
이렇게 시원할 수가!
신나서 보이는 것 없이 뛰어다니며 사냥 놀이를 했다. 몸이 너무 가벼워서 이대로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릴, 잠깐만!”
그런 나를 마멜라가 덥석 낚아챘다. 갑작스레 붙잡힌 나는 허공에서 발을 굴리다가 멈췄다.
흥분을 가라앉히자 한순간에 난장판이 된 침실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 이렇게 지저분해진 거지?’
늘 방을 치워 주는 요나를 힐끔 바라봤다. 해탈한 듯 그저 웃고 있었다.
항상 수고하긴 하는데 오늘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유감이었다.
“아 참, 아가씨.”
갑작스레 손뼉을 친 요나가 입을 열었다. 마멜라는 나를 고쳐 안고서 고개를 갸웃했다.
“응?”
“그러고 보니 안셀 님이 아가씨께 전해 드릴 게 있다고 하셨어요. 제가 한 번 다녀와 볼게요.”
“응, 알았어.”
요나는 한쪽 탁자에 쌓여 있던 헌 붕대를 들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마멜라와 함께 소파에 앉아 다른 놀이를 시작했다.
눈앞에 마멜라가 가져온 크림색 털실 공이 준비되었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앞발을 척 들어 올렸다. 마멜라가 긴장하며 나를 지켜봤다.
나는 기를 모으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지금!’
눈을 번뜩인 나는 재빠른 속도로 털실 공을 마구 헤집었다. 내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면 그건 아마 잔상이겠지!
이윽고 깔끔하게 풀어 헤쳐진 털실 공 안에서 작은 상자가 나왔다.
상자의 윗면을 재빠르게 쳐올리자 뚜껑이 휘리릭 회전하며 날아갔다. 상자 안에 든 고기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마멜라가 심어 둔 간식을 덥석 물었다.
지켜보고 있던 마멜라가 감탄하며 물개 박수를 쳤다.
“아릴, 너 정말 간식만 주면 뭐든 진심이 되는구나.”
아무래도 나를 칭찬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앞발로 코밑을 쓱 문질렀다.
이게 다 붕대를 푼 위력이다. 붕대를 꽁꽁 묶고 다녔던 나는 모래주머니를 온몸에 매달고 다닌 것과 같은 수련 효과를 얻었단 말이다.
‘이제 거울을 보면 난 엄청 멋있어져 있을 거야.’
나는 의기양양하게 소파에서 내려와 거울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럼 얼마나 커졌는지 한번 볼까?
기대감을 잔뜩 부풀린 채 거울 속 내 모습을 마주했다.
거울에 비친 해맑은 표정이 보였다. 거기서 한순간에 나라 잃은 표정으로 변하는 것까지도.
“아옹……?”
나는 망연히 거울을 쳐다봤다. 어떻게 된 게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몸집이 작고 맹하게 생긴 부스러기였다.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왜 이렇지?’
나는 입매를 파르르 떨며 몹쓸 거울을 노려봤다. 붕대를 푼 나는 분명 새롭게 태어났는데, 왜 아직도 똑같은 거야!
화가 나서 콧김을 세게 내뱉은 나는 앞발로 거울을 팍 차 버렸다. 그러자 파직 소리와 함께 거울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생겼다.
“……!”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 이, 이게 왜…….’
말이 ‘팍’ 쳤다는 거지 실은 ‘툭’에 가까웠다. 그런데 왜 금이 가? 이 앙증맞은 앞발이 세 봤자 얼마나 세다고…….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소파에 앉은 마멜라가 다른 곳에 한눈을 팔고 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들키진 않았다. 이대로 모르쇠 잡아떼면 아무도 내가 한 줄 모를 거다.
처음 인형의 꼬리를 찢었을 때와는 다른 짬밥으로 완전 범죄를 꾸민 나는 서둘러 등을 돌렸다.
그렇게 막 탁자에서 내려가려던 때였다.
갑작스레 바깥이 요란스러워지더니 열려 있던 창문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푸른색의 커튼이 펄럭거리며 책상 위에 있던 종이들이 허공으로 뿔뿔이 흩날렸다. 더불어 내 몸까지 크게 휘청했다.
헉, 숨을 삼킨 나는 허겁지겁 탁자의 모퉁이를 붙잡았다. 나는 작은 몸집이 날아가지 않게 낑낑대며 사수했다.
‘마멜라는 무사하겠지?’
그녀의 안위를 살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우연히 탁자 한쪽에 있던 손수건이 날아오르는 걸 발견했다.
나는 멍하니 손수건이 떠오르는 걸 바라봤다.
보라색의 꽃 자수가 놓인 손수건…… 마멜라가 늘 품에 지니고 다녔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붕 떠오른 손수건이 바람에 붙잡혀 끌려가듯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 입을 벌렸다.
‘아, 안 돼! 돌아와!’
나는 손수건을 쫓아 창가로 달려갔다. 저걸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로 거대했다.
뒤에서 마멜라가 뭐라고 소리쳤으나 제대로 전해지기엔 바람 소리가 너무 거셌다.
나풀거리던 손수건이 마침내 코앞으로 왔다.
나는 사정없이 몰아치는 거센 바람을 따라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곤 눈앞의 손수건을 입으로 덥석 물었다.
‘잡았다……!’
한순간 안도와 뿌듯함이 밀려와 뒤돌아봤다. 다급하게 일그러진 마멜라의 얼굴이 보였다.
미처 의문이 들기도 전에 몸이 갑작스레 아래로 훅 꺼졌다.
“아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중력을 따라 아찔한 기분이 솟구쳤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으나 그런 와중에도 무심코 코가 벌름거렸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지면에서 마멜라와 비슷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녀와 같은 옅은 금발이 아래에 얼핏 보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가차 없이 풀덤불에 처박힌 나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지러운 나머지 눈앞이 핑핑 돌아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시야에 별이 보이는 것 같은데…… 다섯 갠가? 일곱 개?
그때, 혼란스러운 내 정신을 뭔가가 단숨에 바로잡았다.
“마멜라?”
그건 바로 옆에서 들린 낮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