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만한 곳을 찾았다.
마멜라라면 모습을 들켜도 상관없겠지만 상대가 다른 인간이라면 일단 몸을 숨기고 볼 필요가 있었다.
‘혹시 몰라. 내가 멋대로 나와서 마멜라가 곤란해질지!’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댔다.
그러다 조금 떨어진 곳에 도자기를 올려 둔 장식장을 발견했다.
‘저기에 숨자!’
잽싸게 달려간 나는 나무로 된 문고리를 앞발로 열고 들어갔다.
장식장의 문이 닫혔다. 삽시간에 시야가 캄캄하게 물들었다. 나는 어두운 장식장 안에서 숨을 죽였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인기척과 함께 낯선 목소리들이 들렸다.
“한 시간 후에 찾아와.”
“고작 한 시간요?”
피로에 젖은 얕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한가하게 낮잠이나 잘 수는 없지.”
“전하, 휴식은 중요합니다. 이러다 아가씨께서 걱정하십니다.”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무언의 발소리만 점점 가까워지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그러고 보니 세공사는 다녀갔나?”
“전하께서 주무시는 동안 다녀갈 예정입니다.”
“역시 자면 안 되겠어.”
“예……? 대체 뭐 때문입니까!”
한 남자가 소리치자 싸늘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시끄럽다. 단지 마멜라에게 줄 선물이니 내가 직접 보고 싶을 뿐이야.”
반사적으로 두 귀가 쫑긋거렸다.
분명 ‘마멜라’라는 이름이 들렸다. 같은 집에 있는 것도 그렇고, 저들은 마멜라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누굴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곤 빛이 비집고 들어오는 문틈 사이로 눈을 가져다 댔다. 흐릿하고 좁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제가 잘 세공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애초에 루다비토의 가넷 다이아는 대충 빚어도 값어치가 아주 뛰어난…….”
말이 뚝 멈추더니 힉 겁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시, 실언했습니다. 무서우니 그리 쳐다보지 말아 주십시오.”
“안셀, 잘리고 싶나?”
“제 말은, 저한테 모든 걸 맡기고 잠시 주무시라는 거죠. 한 시간도 짧습니다!”
언뜻 보이는 틈 너머로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들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문득 코를 스치는 향기에 나도 모르게 킁킁댔다. 저 두 인간 중 한 명에게 마멜라와 같은 냄새가 난다.
아니, 조금 다른가……? 마멜라와 묘한 차이를 지닌 부드럽고 시원한 향기가 코끝에 감돌았다.
“됐다. 필요 없어.”
“그러지 마시고 아가씨께서 걱정하실 걸 생각해서라도…… 전하?”
그들이 딱 장식장 앞을 지나갈 때였다.
낯선 구두가 틈새로 보이는 순간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뚝 멈췄다. 나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헉, 뭐지? 설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챈 건가?’
그들에게 내 모습을 들켜도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밖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틈 사이의 시야로 누군가의 손이 나타났다.
고운 손가락은 아주 잠깐 발치에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 모든 걸 지켜봤다.
이윽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털?”
“전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뒷걸음질 쳤다.
‘왜 안 가는 거야…… 만약 갑자기 이 문을 벌컥 열어 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쿵쿵 심장이 졸여지듯 혹사당하고 있을 때 다시금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바닥에 먼지가 좀 있길래.”
마침내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리며 인기척이 멀어져 갔다. 나는 그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굳어 있었다.
한참 후에 나는 장식장의 문을 살그머니 열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곤 장식장을 빠져나와 복도를 달렸다.
그러곤 진짜 마멜라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예상치 못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어머, 아릴? 얘가 어떻게 나온 거지?”
요나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 놀라 그녀를 바라봤지만 아까 전의 그 긴장감 때문인지 내심 안도감이 밀려왔다.
“여기 있으면 안 돼. 어서 아가씨의 방으로 돌아가자.”
요나에게 붙잡힌 나는 그대로 그녀의 품에 안겨 강제로 이동하게 되었다.
가는 내내 내 털을 쓰다듬어 준 요나는 나를 마멜라의 방에 내려 줬다. 그녀는 수줍게 내 앞발을 몇 번 만진 후에 문을 닫고 가 버렸다.
다시 마멜라의 방에 남게 된 나는 시무룩하게 물고기 인형을 바라봤다.
‘결국 마멜라가 뭘 하러 간 건지 알아내는 데 실패했어.’
방금 잡혀 왔는데 다시 나가기도 좀 그랬다. 아까 그 일도 있고…… 역시 얌전히 있어야겠지.
소파 위로 폭 쓰러진 나는 옆에 놓인 물고기를 끌어당겼다. 생각 없이 물고기를 괴롭히면서 무료하게 방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 조그만 탁자에 시선이 닿았다. 가끔 마멜라가 저 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 모습을 보기만 하고, 여태 올라가 보지는 않은 곳이었다.
마침 심심하기도 하고 지금 올라가 보면 딱 좋을 것 같은데?
호기심이 튀어 오른 나는 인형을 내팽개치곤 탁자로 달려갔다. 폴짝 뛰어올라 안정적으로 발을 디디자 탁자에 있던 낯선 무언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응?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걸 빤히 들여다봤다.
‘……누구지?’
처음 보는 새끼 짐승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그만 두 귀가 쫑긋거렸고 꼬리가 기분 좋게 살랑살랑 움직였다. 나는 그 새끼 짐승을 천천히 뜯어봤다.
새끼 특유의 보송한 솜뭉치 같은 털에, 검은 무늬가 옅게 존재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푸른 눈은 햇빛에 반사된 물결처럼 반짝거렸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쪼끄만 아기 고양이였다. 이 먼지 같은 건 뭐지?
‘나 말고 다른 동물이 이 방에 있었나?’
의아한 마음에 앞발을 가져다 대보려고 들었다. 그런데 맞은편의 고양이가 나를 따라 앞발을 드는 게 보였다.
‘……지금 날 따라 한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나는 고양이를 째려봤다. 그러자 저 조그만 녀석도 꼴에 짐승이라고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뭐야, 쟤!’
지금 해보자는 거야?
내가 들고 있던 앞발을 내리자 녀석도 따라 앞발을 내렸다. 내가 험상궂게 표정을 구기자 녀석도 따라 표정을 구겼다.
내가 참다못해 으르렁거리자 녀석도 따라 이빨을 드러내며…….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멈췄다. 맞은편의 고양이도 나와 똑같이 우뚝 멈춘 채 나를 쳐다봤다.
벼락같은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저거 나야?’
나는 경계심을 가진 채 다가가 고양이에게 재빠르게 발을 댔다가 뗐다. 그러자 차갑고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꼭 벽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 잘못 만진 건가?’
아리송해서 이번엔 용기를 내 더 과감하게 발을 댔다.
그러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벽이 만져졌다. 아무래도 이쪽을 비춰 주는 것 같았다.
아까는 미처 몰랐는데 뒤편에 보이는 마멜라의 방 풍경도 비슷했다. 나는 그 벽, 거울을 빤히 들여다봤다.
‘그럼 내가 이렇게 생겼다는 거야?’
각도를 돌려 가며 살펴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거울 속 내 얼굴 위로 실망감이 떠올랐다. 여태 생각했던 내 모습이랑 영 달랐다.
‘좀 더 크고 멋있을 줄 알았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포동포동한 떡에 김 가루를 묻혀 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무심코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을 보곤 뜨악했다.
‘윽, 완전 맹하게 생겼잖아.’
왜 이렇게 바보같이 생겼지? 설마 내가 바보라서 이렇게 생긴 건가?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마멜라가 돌아왔을 때도 반겨 주지 못하고 거울만 바라봤다.
“아릴, 나 왔는데…… 뭐 해?”
마멜라가 다가오자 거울 속에 그녀의 모습도 비쳤다. 그 탓에 저 이상한 벽 같은 게 모습을 비춰 준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말았다.
충격 그 자체였다.
울상을 지은 나는 마멜라의 품으로 폭 뛰어들었다. 얼떨결에 나를 안게 된 마멜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으응? 우리 아릴이 왜 이렇게 풀이 죽었어.”
마멜라가 나를 달래려는 듯 열심히 내 등을 쓰다듬었다. 울먹거린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받으며 생각했다.
‘아직 내가 어려서 그런 걸 거야. 분명 난 다 자라고 나면 엄청 거대하고 늠름해질 거야!’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지려는 걸 꾹 참았다. 어떻게든 나를 다독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서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포동포동해진 거지? 역시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걸까? 마멜라가 주는 대로만 먹었는데…….
마멜라의 품에 시무룩하게 고개를 묻은 때였다. 바깥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가씨, 저 요나예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응, 들어와.”
요나? 설마 내가 마멜라의 방을 탈출했던 걸 알리려고 온 걸까?
점잖은 모습으로 방에 들어온 요나가 어떤 말을 건네자 마멜라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번갈아 본 나는 모른 척 딴 곳을 바라봤다.
“아릴이가 방을 나갔었다고? 오라버니한테 들킨 건 아니지?”
“네. 다행히 가주님께서 아릴을 보지 못하셨나 봐요.”
“다행이다……. 그런데 얘가 어떻게 나간 걸까?”
“문을 안 닫고 가신 게 아닐까요?”
그 말에 마멜라의 표정이 충격스러워지더니 그녀가 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가 봐……. 큰일 날 뻔했네, 앞으론 조심해야겠어.”
마멜라는 요나가 방을 나가자 나를 안은 채 소파로 향했다.
그녀는 심각한 낯빛으로 나를 꼭 붙잡고서 말했다.
“아릴, 네가 혼자 오라버니를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분명 오라버니는 네가 길고양이라면서 저 멀리 내쫓았을 거란 말이야.”
나는 마멜라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흘려들으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좋은 향기를 맡자 아까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마멜라와 같은 냄새를 가진 그 인간은 누굴까?’
두루뭉술하게 의문을 피워 내긴 했지만 사실 그럴싸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마멜라의 가족.
다들 냄새가 제각각인데 그 인간만 마멜라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지 않았던가.
나는 마멜라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마멜라의 가족이 맞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
가족이라면 분명 마멜라와 닮았을 테니 역시 귀엽게 생겼겠지?
나는 마멜라처럼 밝은 햇살 같은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마멜라는 왜 내게 가족을 소개해 주지 않는 걸까?’
만나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말이다. 혹시 마멜라의 가족이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가?
나는 몽실몽실 상상의 나래를 피우다가 불현듯 조금 전 요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멜라의 팔을 꾹꾹 눌러 대던 걸 뚝 멈췄다.
‘그러고 보니 요나도 그렇고, 왜 다들 그런 반응을 보인 거지?’
나를 방에 데려다줄 때 불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요나의 눈빛이며 분명 내가 방을 나간 걸 말했을 뿐일 텐데 심각해진 분위기…….
모진 불안감에 기분은 한순간에 곤두박질쳤다. 나는 떨리는 시선으로 마멜라를 올려다봤다.
‘설마 나를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건가……?’
다시 보니 그녀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못한 게 눈에 들어왔다.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