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마지막 이야기 (1)
흰색
경민이 조선에서 사라진 후 10년 뒤, 광해 15년(1623년) 봄.
오늘 어수당에서 연회가 있었다. 어수당에 있는 임금의 곁에 있어야 할 대전 상궁 개시가 바삐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낮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궐의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사내가 있었다. 바로 공조정랑 김자점이었다.
“아이고! 이제 오는가?”
개시는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지를 재차 확인하며 김자점에게 다가갔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나으리.”
“무슨 일이라니? 내가 저번에 보낸 것이 잘 도착했나 궁금해서 불렀지. 잘 받았는가? 부족하지는 않고?”
“늘 오는 것인데 양의 적고 많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주시기에 받는 것이지요. 성의라 하시니.”
“그래. 성의네, 성의! 언제든 성의가 부족하다 싶으면 말하게. 내 힘써 대 줄 것이니.”
“하온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에, 그것이……. 오늘 또 상소가 올라간 모양이네.”
“상소요? 아시다시피 대전으로 올라오는 상소는 모두 빼돌려 드리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네. 그 공이 그 누구보다 자네에게 있음도! 허나 이번 상소는 어수당으로 간 모양이네.”
“어수당이라면……. 오늘 연회에 계신 주상전하께 올려졌단 말입니까?”
“아직 상소를 열어보시지는 않았다 하시네. 그러니 어서 가서 그 상소를 처리해주게.”
“흐흠.”
김자점의 다급한 모습에 개시의 콧대가 더욱 높아졌다.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던 것인지 김자점이 개시의 기분을 맞추듯 사정했다.
“김상궁. 이번 일에도 내 섭섭지 않게 대우해줄 것이네.”
“뭐, 그러시다면야. 헌데 정랑 나으리께서 그 많은 재물들을 어디서 구하시는 것이옵니까? 혹여 소문대로 능양군 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개시의 말을 듣던 김자점이 펄펄 뛰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능양군이라니? 오래전 신경희가 능창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옥사로 능창군과 함께 죽은 뒤로 귀신처럼 살고 있는 종친나부랭이가 아닌가? 더욱이 부친 정원군까지 죽은 뒤로는 종친이라는 이름 덕에 간신히 거지꼴 면하고 산다는데 그런 그에게 무슨 재물 복이 있다고!”
“하긴 그렇겠지요. 허나 요즘 같은 때에는 차라리 소문대로 반정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지요.”
김자점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정랑께서는 원빈에 대해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그럼 알지. 전하께서 즉위 초기에 그 누구보다도 총애하시던 후궁이 아니던가? 헌데 전하의 총애로 인해 중전마마의 미움을 사서 쥐도 새도 모르게 궐 밖으로 끌려간 뒤 행방이 묘연하다지, 아마?”
“그거야 원빈이 사라진 뒤로 전하께서 원빈에 대해 말하기를 함구하시니, 중전마마의 탓으로 소문이 나서 그렇지요. 궐내에서도 진실을 아는 자들은 아무도 없답니다. 어찌되었든 원빈이 그렇게 사라진 뒤로 전하께서 조정의 일에 무심하시니, 그 틈을 빌어 중궁전에 중전께서 저를 몇 번이나 해하려 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어찌 자네를 말인가?”
“오래전 중전께서 벌이신 해악한 일들을 알고 있는 저를 가만두려 하시지 않으시는 것이겠지요.”
“그랬군. 허나 자네가 걱정할 게 무언가? 전하와 중전마마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건 궐 밖 민가의 애들도 아는 사실이네. 대전 상궁인 자네를 해하려 한다면, 전하께서 가만있으시겠는가?”
그 말에 개시는 길게 한숨부터 내쉬며 말했다.
“정랑 나으리께서는 제가 드리는 말씀을 어디로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 조정의 일에만 무심하신 줄 아십니까? 요즘 들어 전하께서는 궐내의 일에도 무심하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도 모르실 겁니다.”
“에이, 설마 그러시겠는가? 중전께서 전하와 반목하신 뒤로 이 내명부는 자네의 손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는 것을.”
“원빈이 사라진 뒤로 내명부 주인이 누구이든 전하께서 관심이 없으시니 그리 될 수 있었던 게지요…….”
그러나 김자점은 이런 개시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는 재차 자신이 부탁하려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래서 내 자네에게 부탁하는 게 아닌가? 소위 말하는 대북이라는 자들이 나 같이 선한 이들에게 반정이니 모반이니 하며 억울한 모함을 하려드는 것을 막아 달란 말일세.”
개시는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달렸다는 듯 사정하는 김자점을 보며 기분 좋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리 알고 물러가지요.”
개시가 자리를 떠나자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김자점의 두 눈이 무섭게 번뜩였다.
“어리석은 계집 같으니. 재물에 눈이 멀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구나.”
***
어수당에서 열린 연회의 분위기는 좋았다.
임금은 연회 내내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으며, 흥에 겨워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는 신하들을 꾸짖지도 않았다.
사석으로 마련된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사석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이렇게 연회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가자, 술에 취한 신하들이 돌아가며 옛 시를 읊으며 더욱 임금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었다.
임금은 이런 신하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변함없는 엷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 술기운에 열이 오른 신하가 나인에게 부탁해 어수당의 창문을 열어 달라 청하였다. 나인이 그 명을 받들어 닫혀있던 창문 하나를 열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봄내음을 가득 실은 바람이 불어와 술잔을 들어 올리던 임금의 뺨을 두드렸다.
이에 임금이 고개를 들어 바람의 기척을 따라 시선을 보내니, 열린 창문 너머로 교화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임금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임금이 바라보는 교화당의 모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래도록 사람의 온기가 전혀 없는 듯 보이는 교화당이었다.
그런 교화당에도 봄이 왔는지, 닫혀있는 창문 앞 목련만 활짝 피어 임금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어느 순간 임금의 기억 속에 활짝 핀 목련 사이로 교화당의 창문이 열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목련나무의 가지 사이로 한 여인의 근심 어린 얼굴이 보였다.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 과거에 일어났던 일임에도 임금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전하. 전하께서도 시 한 수 읊어주심이 어떠시련지요?”
임금이 자신들에게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고 여긴 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
임금이 그 신하를 돌아보았다. 어수당에 모인 신하들의 시선이 임금에게 집중되던 순간이었다.
임금의 입이 열렸다.
“십년생사양망망 불사량 자난망. 종사상봉응불식 진만면 빈여상.”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茫
綜使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소동파의 사(詞, 음악가사). 강성자 기몽 江城子 記夢
임금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읊었다.
이를 듣던 신하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아마도 그들은 임금이 이를 읊는 순간 드러난 절절한 마음에 숙연해진 것이다.
이런 신하들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임금은 다시 교화당이 보이는 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자신이 읊은 내용을 풀이했다.
“십 년 동안 산 자와 죽은 자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잊기가 어렵구나. 설령 서로 다시 만난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하리니, 이미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귀밑머리는 하얗게 변해버렸음이라…….”
신하들은 다시 술잔을 들어 올렸고, 임금이 가져온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내기 위해 애써 다들 노력하는 듯 보였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교화당에 시선을 빼앗긴 임금이 작은 목소리로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누가 산 자이고 누가 죽은 자이냐. 네가 떠난 뒤로 과인이 죽은 자가 되었구나. 경민아…….”
***
한성 창의문을 나와 북쪽으로 가다보면 연산군 시절 세운 탕춘대라는 이름의 큰 누각이 있었다.
연산군은 탕춘대 앞으로 보이는 냇가를 따라 멀지 않은 곳에 수각(水閣, 물가나 물 위에 지은 정자)을 지어 종종 이곳에서 여흥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광해 15년(1623년) 4월 11일 밤. 깊은 밤을 틈타 이곳에 보여든 이들은 여흥을 위해 모여든 자들은 분명 아니었다.
김류, 이귀, 김자점 등 서인출신의 이들은 이 장소가 익숙한 듯 이 이름 없는 수각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대부분 문신임에도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었다.
조금 뒤, 누군가 정자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역시 이곳에 모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었다.
그가 올라오자 작은 정자 안에 모여 있던 이들이 서로 간격을 좁히며, 그가 올라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곧 정자 위로 올라온 사내가 그곳에 모인 이들의 얼굴을 일일이 쳐다보더니, 결의를 다지 듯 들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오늘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한 운명 안에 놓이게 된 사람들이오.”
비장하게 말을 잇는 사내. 그는 다름 아닌 올해 28살이 된 능양군 이종이었다.
그는 자신의 칼끝을 정자 밖 어딘가를 향해 겨누었다. 그 방향은 바로 창덕궁이 있는 곳이었다.
“또한 우리는!”
능양군이 자신이 올라왔던 정자의 계단 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혼군(昏君, 어리석은 임금) 광해를……. 보위에서 끌어낼 의인들이 될 것이오.”
말을 마친 능양군이 자신을 위해 준비된 말로 뛰어가 올라탔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정자 위에 있던 이들도 모두 나와 준비된 말 위에 올라탔다.
이제 능양군은 말 머리를 창의문 쪽을 향해 돌렸다. 창의문을 지나면 곧장 창덕궁으로 가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가 말 위에 올라타자,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천여 명의 병사들이 횃불을 켜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가자!”
말에 탄 능양군이 검을 들며 소리쳤다.
그가 탄 말이 쏜살같이 창의문을 향해 달려 나가고, 곧 이어 천여 명의 병사들이 그의 뒤를 따르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창덕궁이 공격을 당하다니?”
중궁전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던 중전 유 씨가 놀라며 박 상궁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하는 박 상궁도 벌벌 떨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를 보다 못한 중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나인이 건네는 장옷을 걸친 채, 아직 잠옷 바람으로 밖으로 나왔다.
중궁전 밖을 나온 그녀는 제일먼저 코를 자극하는 연기 냄새를 맡았다. 그 다음으로는 한밤 중 불길에 뒤덮인 궁궐들도 보았다.
이곳저곳에서 병사들의 거친 함성소리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내관과 나인들의 소리도 들려왔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전은 중궁전 기둥을 붙잡은 채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중전의 곁으로 박상궁이 다가와 말했다.
“어서 도망치셔야 하옵니다!”
“도망이라니……. 중전이 중궁전을 버리고 어딜 간단 말이냐.”
“중전마마…….”
“믿을 수가 없구나. 믿을 수가 없어……. 아니지, 세자는? 세자는 어찌 되었느냐?”
중전이 자신의 아들인 세자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 모르옵니다!”
“모르다니? 어서 동궁전으로 사람을 보내어 세자를 피신시키게! 세자가 피하는 것이 우선이네! 어서!”
“예! 중전마마.”
박상궁이 중궁전의 다른 상궁을 쳐다보자, 그녀는 재빨리 나인들과 중궁전을 벗어났다.
이를 본 중전도 박 상궁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한시라도 빨리 궐을 벗어나야 하는 그녀는 옷만 갈아입은 채 중전의 가채도 착용하지 못했다.
시간이 급했다. 이런 가운데 옷을 다 갈아입은 중전이 박상궁에게 물었다.
“전하께서는?”
“불이 나자마자 편전에 사람을 보내었으나, 돌아온 이의 말로는 전하께서 또 사라지셨다 하옵니다. 어찌 하올까요?”
되묻는 박상궁의 말에 중전이 아랫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물더니 답했다.
“일단 동궁전으로 가세. 세자의 안위부터 살펴야 할 것이니!”
하늘을 밝게 빛나게 할 정도로 창덕궁을 덮기 시작한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오로지 세자 걱정으로 동궁전으로 향하려던 중전의 눈에 무언가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연기 틈 사이로 마치 밤하늘의 별이 되려는 듯 높게 날아가고 있는 풍등 하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설마…….’
“중전마마?”
풍등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중전을 박 상궁이 걱정스레 불렀을 때였다. 중전이 박 상궁을 향해 말했다.
“자네는 어서 동궁전으로 가서 세자를 피신시키게. 목숨 걸고 세자를 궐 밖으로 피신시켜야 하네!”
“마마께서는요?”
“본궁은 후원으로 가야겠네.”
중전이 결심한 듯 말했다.
창덕궁을 덮기 시작한 불길은 아직 후원에는 닿지 못한 게 분명했다. 후원은 고요하리만치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후원에서도 밤이 깊은 시간에는 그 어떤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어수당과 교화당이 있는 큰 연못과 작은 연못이 있는 곳이었다.
어수당은 머무는 곳보다는 주로 연회를 위해 마련된 전각이기 때문에, 연회가 없을 때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는 것은 어려웠다.
중전 유 씨가 온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어수당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 외에 다른 한 사람의 그림자를 그곳에서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수당 옆 큰 연못에 서 있는 광해군 이혼을 본 것이다.
이혼은 분명 조용한 후원을 뚫고 자신에게 찾아온 중전의 걸음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전혀 모르는 척 하늘로 풍등을 띄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풍등도 몇 개 되지 않았던 것인지, 마지막 풍등을 하늘로 띄우기 위해 들어 올린 그는 그 풍등을 놓지 못한 채, 끝까지 자신의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 혼의 뒷모습을 보며 중전은 기가 막힌다는 듯 짧게 웃었다.
“허허…….”
중전의 웃음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혼은 여전히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결국 중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정군이 창덕궁의 담을 넘고 궐 곳곳에 불을 지르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이곳에서 한가하게 연등놀이나 즐기고 계시다니요.”
그러나 혼은 자신이 들고 있는 풍등만 바라볼 뿐, 이곳에 자신만 서 있는 듯 말이 없었다.
“아직도 원빈을 잊지 못하셨사옵니까?”
십 년간의 공백을 깨고 원빈의 이야기를 입에 담은 중전은 스스로 말을 잘못 꺼냈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말을 돌렸다.
“좋습니다. 어찌 되었든 다 좋습니다. 어서 피하시지요. 더 이상 이곳에 남아계시는 것은 위험하옵니다!”
그때 혼이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풍등을 하늘로 띄워 보냈다.
혼이 띄워 보낸 마지막 풍등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후원에 자그마한 빛을 주며 그렇게 천천히, 자유를 찾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혼은 그런 풍등을 고개를 들어 오랫동안 시선을 주어 좇았다.
결국 그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중전이 크게 성을 내며 외쳤다.
“그러기에! 전하께서 그러시기에 세상은 전하를 주왕이라 말하고, 원빈을! 원빈을 달기라 칭하는 것이옵니다!”
풍등이 하늘의 별과 뒤섞여 모습을 완전히 감춰버렸다.
혼은 그런 풍등을 바라보며 오래전 있었던 한 추억을 떠올리는지 입가에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의 추억 속에 함께 있던 이들은 이제 아무도 그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 혼자 남아서 추억을 되새기며, 그 되새김 속에서 작은 위로라도 받으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야 그는 하루하루를 버텨나갈 수 있다고 여기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반드시 재회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하늘 응시하던 그가 마지막 풍등을 시선에서 놓치자, 주인을 잃은 지 오래된 교화당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과인을 주왕으로, 원빈을 달기라 칭한단 말이오? 그렇군……. 그래. 헌데 중전 그것을 아시오? 과인이 주왕이 부럽소. 적어도 주왕은 자신의 최후를 달기와 함께 하지 않았소?”
이 크고 넓은 궐에서 그는 혼자였다.
그가 사랑하고 그가 함께 하기를 원했던 이들이 모두 떠난 뒤 그는 혼자였다. 그런 그에게 반정군의 위협도 그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그녀가 그를 떠난 순간 함께 가져가 버린 뒤였으니까. 그러니 지금 그에겐 더 이상 흔들릴 마음 따위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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