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해의 연인-105화 (105/110)

제105화. 천상열차분야지도 (3)

흰색

경운궁을 출발한 가마가 어느 순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가마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비켜라! 지금 이분이 뉘신지 알고 길을 막는 것이냐?”

나는 무겁게 감긴 눈에 힘을 주어 억지로 눈을 떴다. 바로 소리 내어 밖에 있을 보향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소리를 내기에는 아직 다 낫지 않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썩 물럿거라!”

연이은 병사의 호령에 어떤 무거운 물건을 실은 듯 보이는 마차가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마차를 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 여러 사람이 낑낑대며 힘들어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난 이미 보향을 부르려던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대신 마차가 다시 움직이려는지 흔들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감으려 했다. 그런데 어떤 호기심이 이런 나의 행동을 붙들었다.

난 감으려던 눈을 떴다. 그리고 닫혀 있던 가마의 창문을 열었다.

가마의 창밖으로 마차에 실린 커다란 직육면체의 흑요석이 옆으로 눕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처럼 큰 돌을 구경하는 것은 한성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좁은 길에 많은 백성들이 몰려나와 구경하는 통에 길이 꽉 막혀 있었던 것이다.

돌을 실은 마차와 내가 탄 가마의 가는 방향은 같았다. 아무래도 이런 커다란 돌을 실은 마차가 길을 막고 있으니, 가마가 쉽게 지나갈 수 없어 병사가 성을 낸 듯싶었다.

가마를 실은 마차를 끌던 인부들이 서둘러 내가 탄 가마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내기 시작하면서, 가마의 창 옆으로 보이던 돌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돌을 멀뚱히 내다보던 나는, 어느 순간 그 돌에 무언가 조밀하게 새겨진 것을 발견하고는 놀란 눈을 크게 떴다.

[ ‘경민아,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알고 있니?’ ]

그 돌이 무엇을 새긴 돌인지는 아빠와의 기억이 대답해주었다. 그 돌은 다름 아닌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이었던 것이다!

[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각석 천문도로 보이겠지만, 우리 시간여행자들에게는 다르다. 고구려의 천문도를 담고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살아 있는 시간’의 제약을 넘어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의 문이자 열쇠이기 때문이지.’ ]

‘시간의 문이자 열쇠…….’

시간의 뒤틀림을 통해 만났던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천문도 각석. 오래전, 이 천문도의 문을 넘어 죽은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어 했던 아빠의 모습. 그 천문도가 지금 내 눈 앞에 있었다.

“보향아.”

힘들게 소리를 냈지만, 밖이 소란스러워서인지 보향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천문도를 실은 마차가 옆으로 물러서고, 내 가마가 혼잡한 거리를 빠져나오고 나서야 보향은 가마의 창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보향이 열려 있는 가마의 창 옆으로 고개를 숙이자, 난 어렵사리 소리를 냈다.

“저 돌이 어디로 옮겨지는지 알아 오거라.”

“저 마차에 실린 검은 돌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예, 마마.”

나의 명을 받은 보향이 재빨리 왔던 길을 돌아서 각석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제야 나는 두 눈을 감으며 가마의 벽에 몸을 기댔다.

‘피곤해…….’

유산을 한 뒤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일까? 떨어진 입맛에 식사를 제대로 먹지 못해서일까? 나는 이유 없이 아프다. 그리고 쉽게 지친다.

혼의 앞에서만큼은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마치 태어난 뒤 단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는 듯이 웃음이 나지 않는다. 웃음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도, 그 추억 속에서 웃던 나의 모습도 아주 오래전 일 같다.

아주 오래전,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마치 몇십 년 전 일처럼 기억된다. 희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그런 기억처럼.

“원빈마마.”

어느새 보향이 다시 가마로 돌아와 나를 불렀다. 하지만 잠깐 감았던 눈인데도 다시 눈을 뜨는 것이 어려웠다.

“원빈마마? 어디가 편찮으시옵니까?”

보향이 걱정스레 물었을 때에야 나는 억지로 눈을 떴다.

“아니다. 그래. 알아본 것은 어찌 되었느냐?”

“예. 저 돌은 원래 법궁(法宮, 경복궁)이 불탄 후에 그곳에 버려져 있던 것으로 오늘 창덕궁 흠천각(欽天閣)으로 옮겨진다 하옵니다.”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가마의 창을 닫았다.

보향은 여전히 가마의 창밖을 서성거리며 쉽사리 앞으로 걸어가지 못했다. 아마도 피곤해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고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서인지, 조금 전 떠오른 아빠와의 기억이 마치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 ‘우리가 시간여행을 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제약이 있지 않니? 천문도의 문은, 그 제약을 넘어서게 해 준단다.’ ]

‘제약? 이제 와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바꾼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어쩌면 내가 낸 욕심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겪는 아픔들은 모두 과거의 내가 선택했던 일들에 대한 결과였다.

그것을 되돌리거나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난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빠의 죽음?

명이의 죽음?

지나버린 고통스러운 시간을 다시 되돌려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귀찮게만 느껴진다. 아마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해야만 할 테니까.

[ ‘왜 지금 그 천문도에 대해 알려주시는 거예요?’ ]

[ ‘네가 그 천문도에 새겨진 시간의 문을 열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시간’과 싸우게 되고, 그 싸움에서 지게 되어 위험이 찾아온다면…….’ ]

‘아빠가 말한 그 위험은 이미 모두 끝났는지도 몰라.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을 감수하는 것만 나의 몫으로 남았겠지.’

“도착했사옵니다.”

보향이 닫힌 가마의 창 밖에서 말한다.

교화당은 후원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도 가마는 후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문으로 온 것이 분명했다.

후궁의 궐 밖 출입 역시 많은 이들의 눈에 띄면 뛸수록 조정에서 논란거리가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영창대군을 데리고 출궁할 때도 후원 쪽 궐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었다.

- 끼이이익

궐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난 곧 교화당에서 편히 몸을 뉘어 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셨다. 그때였다.

“전하!”

소스라치게 놀라는 보향의 목소리에 난 가마 안에서 귀를 세웠다. 아직 한낮이었다. 혼이 후원이나 교화당으로 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왕으로서의 하루 일정이 있었다. 그러나 보향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혼이 분명했다.

“원빈이 그 안에 있는 것이냐?”

이어 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는 지금 그의 감정 상태를 읽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했다. 난 분명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첫째는 허락 없이 경운궁에 다녀왔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영창대군일 것이다. 내가 책임진다고 하고 영창대군을 경운궁의 대비에게 데려다주고 왔으니 말이다.

“예. 주상전하.”

혼에게 대답하는 보향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난 혼의 표정이 좋지 않다고 여기고는 서둘러 가마의 문을 열라고 말하려 했다. 그때, 닫혀 있던 가마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린 가마의 문 앞에는 곤룡포를 입고 있는 혼이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는 최 내관을 시작해서 평상시 혼을 뒤따르는 대전 나인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혼의 표정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다. 그는 가마 안에서 힘없이 두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가마의 앞으로 걸어왔다.

“전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내가 혼을 불렀다.

그러자 혼이 내게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가 가마에서 내리려는 나를 부축하기 위해 잡아주려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적어도 조선에서는 왕의 그러한 행동도 여러 사람들에게 꼬투리가 잡힐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나는 내게로 손을 내미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보향에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손만 내밀었던 그가 다른 한 손도 내게로 내밀었다. 난 그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몰라 당황했다. 그 순간 그가 두 손으로 가마 안에 있던 나를 번쩍 안아 든 것이다.

“전하!”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벌건 대낮이어서 그런지 젊은 나인들의 입에서는 외마디비명이 터져 나왔고, 상궁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돌리느냐 바빴다.

그것은 내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혼의 태도는 처음 가마 문이 열리며 보았던 그대로였다.

“혼자 갈 수 있어요.”

난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러나 혼은 나를 보지 않으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 몸으로 말이냐?”

난 혼이 이미 경운궁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 때문에 혹시라도 정원군의 이야기가 나오게 될까봐 난 서둘러 대군의 일로 말을 돌렸다.

“대군의 일은 신첩이 독단적으로 한 거예요.”

“상관없다. 과인 역시 대비와 떨어져 매일 같이 운다는 대군의 소식에 마음이 편치 못하였으니 말이다.”

“혹시 화나셨어요?”

여전히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저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다. 난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전하. 아무래도 궁인들의 시선이 있사오니 원빈마마는 소인이 모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최 내관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혼이 최 내관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러나 혼은 짤막하지만 엄하게 답을 주었다.

“따라오지 말라.”

뒤따르던 최 내관의 걸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최 내관은 그런 자신을 지나쳐 혼과 나를 뒤따르려는 나인들을 막아섰다.

이제 나를 안고 걸어가는 혼의 뒤를 쫓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혼이 나를 데려간 곳은 교화당이 아니었다.

창덕궁 후원에 세워진 여러 정자 중 하나였다. 평상시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한 곳이었다.

그곳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혼이 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나는 그대로 정자 위에 앉았고, 혼은 그런 내 옆에 앉았다.

침묵만이 흘렀다. 혼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산을 응시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난 그런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발견했다.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제야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그의 얼굴과 마주하며 그의 땀을 옷깃으로 닦아주었다.

“많이 무겁지?”

그의 눈동자가 슬쩍 흔들렸지만,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풀리지 않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도 웃음을 거두고는 다시 말을 했다.

“많이 무겁사옵니까, 신첩이?”

그제야 혼의 입에서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난 그가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고는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

“소문날 거예요. 아주 흉한 소문이요.”

“소문이라니?”

“전하께서 총애하는 원빈을 친히 마중 나온 것도 모자라 번쩍 들어 안으시고는! 아니지, 원빈이 전하의 윤허도 없이 대군을 데리고 경운궁을 갔다 왔으니 분명 조정에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혼이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나의 말은 끊어졌다.

나는 그의 품 안에서 새근거리며 가만히 숨만 내셨다. 그리고 말도 없이 경운궁을 다녀온 나를 그가 얼마나 걱정했었는지를 생각했다.

“걱정했었구나?”

“지난번에 경운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잊었느냐? 그런 경운궁에 말도 없이 가다니.”

“미안해.”

사과하던 나는 문득 이처럼 환한 대낮에 밖에서 둘만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오랜만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래전 세자와 나인 시절에는 틈만 나면 이런 시간을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는 메밀꽃도 보러 압구정에도 가고, 첫눈이 내리던 날 행궁 후원에서 몰래 만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두에게 당당해질수록 궁인들이 지켜보는 곳에서만 서로 만나게 되었다. 어느 순간 그런 만남이 우리에겐 당연해졌다.

그럼 혼도 우리 단둘만 있었던 그때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더 멀리,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의 시간을 추억하고 그리워하진 않을까?

“혼아. 날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해?”

난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가 그런 나와 눈을 맞추더니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세자가 되었던 해. 함경도 회령에서 만나지 않았느냐? 그때의 넌 잃어버린 부친을 찾고 있었지.”

‘함경도 회령에서…….’

그건 그가 미래로 온 다음의 이야기다. 아빠가 임진년의 조선에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이후의 일말이다.

그는 지금 미래에 왔었던 일을 완전히 잊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 전에는? 그 전에 만났던 건 기억나지 않아?”

“그 전이라니?”

“잘 생각해봐. 그러니까……. 천계! 그 하늘나라라고 내가 말했던 그곳.”

그러나 혼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되묻는다.

“하늘나라라니. 무슨 말을 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갑자기 그때의 일은 어찌 묻는 것이냐?”

나는 미래에 왔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를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단 하루의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분명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다시 만난 그가 내게 말했었다. 별빛과 같았던 밤의 불빛들이었다. 그에게 미래는 그렇게 신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말하는 기억 속의 우리의 첫 만남이 함경도 회령이라니?

“그건……. 아니, 그럼 내가 네게 해 주었던 하트모양 계란은? 특이한 모양의 삶은 계란은 기억나지 않아? 그걸 보고 날 찾아왔었잖아? 그걸 보고 내가 궐 나인으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었잖아?”

그의 기억을 되돌리려 애쓰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특이한 모양의 계란이라……. 그래, 그걸 보고 누가 만들었는지 최 내관에게 알아오게 했다. 그래서 김경민이라는 이름의 나인이 수라간에서 일하다 양화당 퇴선간으로 옮겨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그래서 네가 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헌데 어찌 자꾸 그때의 일을 묻는 것이냐? 혹 오늘 대군과 함께 행궁에 다녀온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나는 어디서부터인가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의 기억 속에는 미래에서 만났던 나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그의 기억 속에서 미래의 내가 지워진 것일까?

그가 지금 기억하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내가 이 조선에 온 지 십 년이 되던 해에 그의 기억 속에서 미래의 나를 만났던 순간이 지워지게 된 것일까?

십 년이 된 그 해에 나는 노경민이 되었고, 미래의 나는 분명 사라졌을 테니까.

‘그럼 아빠는?’

시간의 뒤틀림으로 아빠를 만나던 해에는 내가 조선에 온 지 구 년이 되던 해였다.

만약 십 년이 되던 해 미래의 내가 사라졌다면, 마찬가지로 인목대비가 폐위되는 해에 만나길 기대했던 아빠는 그 시간대에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아빠에게는 ‘김경민’이라는 딸이 존재할 수가 없다.

현재 시점에서 내게 과거가 되는, 또 다른 나이기도 한 ‘김경민’은 내가 이 조선에 온 지 십 년이 되던 해에 완전히 사라졌을 테니까.

‘그럼 난 대체 누구인 걸까? 이젠 내게 과거이자 미래이기도 한 시간 속에서 1996년에 태어났던 나는?’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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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무겁지?" "응,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체력이 딸린다…….ㄷㄷㄷ(사실 네가 살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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