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외전 - 운지이야기 (6)
흰색
화려한 옷을 입고 이에 어울리는 화장을 한 운영이 추향의 뒤를 따라 손님들이 머무는 안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점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지고, 흥을 돋우는 기생들의 거문고질 소리도 가까워졌다.
운영은 이 모든 것이 어색했다. 매일 같이 듣던 소리였음에도, 이젠 익숙해질 만한 소리였음에도 말이다.
누군가는 죽었다고 하는데 하루하루는 매일 이어진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뒤의 세상처럼.
그래서였을까? 그때는 자신이 살아 있는 게 너무나도 어색했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뒤를 따라 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웅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머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운영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손님들이 들어찬 건물 앞마당을 쓸고 있던 종현이 자신을 발견하고 부른 것이다.
종현은 오랜만에 본 어머니가 반가운지 쓸던 비를 들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사웅의 죽음 소식을 모르는 종현은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운영을 바라본다.
“어머니. 예뻐요.”
오랜만에 자신을 본 아들이 건넨 첫 인사는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그녀의 곱게 단장한 모습이 예쁘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오셨어요?”
“뭐하는 거니? 서두르래도.”
추향이 뒤에서 소리쳤다.
운영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고는 몸을 굽혀 어린 종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으리는……. 진위에 계셔.”
“진위요? 그럼 우리는 언제 진위에 가나요?”
“애운아!”
추향이 또 한 번 다그치자 운영이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곧. 갈 수 있을 거야.”
“어머니…….”
말을 마친 운영이 종현에게서 돌아섰다.
참고 있던 눈물이 그대로 운영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문이 열리자 방 안 가득 여러 사내들이 저마다 기생을 하나씩 끼고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흥을 돋우려는지 두 명의 기생이 악공의 선율에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보통 삼정승이 오더라도 악공까지 대동한 춤판은 요즘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운영은 오늘 온 손님이 꽤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임해군마마.”
추향이 웃으며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사내 앞으로 운영을 데려가 인사시켰다.
“이 아이가 애운입니다.”
그러자 양옆에 기생을 끼고 있던 임해군이 운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애운? 이 아이가 바로 우상과 원사웅이 서로 가지려고 겨뤘다던 그 계집이란 말인가?”
그때 운영은 임해군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막 소년티를 벗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억지로 이곳에 온 티를 내는지 기생 하나 끼지 않고, 잔을 가득 채운 술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는 사내와 말이다.
그는 추향이 데려온 운영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예. 어때 보이십니까? 사내들이 저마다 탐낼 만해 보이십니까?”
“에잇! 삐쩍 마른 것이 볼품없구나. 네가 더 낫다, 매향아.”
임해군이 자신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매향의 허리를 팔로 바짝 끌어안으며 말하자, 매향이 간드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 마마께서두 참.”
“허나 두 사내가 서로 가지겠다고 달려들었다면 반드시 그 연유가 있을 터. 오늘 밤 만리장성이나 쌓으며, 그 연유나 알아볼까?”
임해군이 손을 뻗어 운영의 턱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운영이 그의 손길을 피하며 한쪽으로 턱을 돌렸다. 그러자 임해군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이런 무엄한 계집이 있나!”
그가 한 손으로 술상을 내리치자 동시에 악공의 연주가 멈추고 주변 사람들의 흥겨운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얼마 전 우상이 아바마마 앞에서 나를 험담하여 날 곤혹스럽게 만들더니, 이젠 우상의 계집조차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내게 이리 구는구나. 내 오늘 이 자리에서 이 계집의 옷을 모두 벗겨 망신이라도 주고 말 것이야!”
임해군의 손이 우악스럽게 운영의 옷고름을 잡아당기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그런 임해의 손을 막아섰다.
“임해 형님!”
그는 바로 정원군이었다. 임해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년티를 막 벗은 사내는 다름 아닌 정원군이었던 것이다.
“기방에서 소동이라도 일으켰다가 아바마마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형님께 득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우상 역시 바라는 바가 아니겠사옵니까?”
“비켜라!”
그러나 여전히 흥분한 상태의 임해군은 쉽사리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원군은 재빨리 악공에게 다시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하면서 그의 화를 누그러뜨리려 애를 썼다.
“오늘 이곳에 즐기러 온 것이지, 분풀이를 하러 온 것도 아니시지 않사옵니까? 넓은 아량으로 저 계집을 용서하시지요.”
정원군은 임해군을 계속 달래며 한편으로 추향에게 눈짓을 보내 운영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추향이 운영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정원군은 임해군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정녕 우상이 저 계집을 첩으로 들인다면, 이는 형님께서 우상의 죄를 아바마마께 고할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건……. 그렇겠구나.”
“예. 그렇지요. 그러니 오늘 저 계집을 놓아주신 일을 두고 사람들은 형님의 높은 기지를 칭송하게 될 것이옵니다.”
연거푸 칭찬이 이어지자 임해군도 마음이 풀린 듯 다시 매향을 끌어안으며 정원군이 따른 술잔을 말끔하게 비웠다. 임해군은 곧 운영의 일을 잊어버렸다.
“이젠 네가 우리 기방을 말아먹으려고 작정했구나!”
밖으로 나온 추향은 운영을 꾸짖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추향이 사라지자 운영은 긴 한숨을 내쉬며 조금 전 상황을 돌이켜 생각했다. 임해군을 말린 사람은 그를 형님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왕자인 것일까?
지금 임금님에게는 왕자가 여럿이라 알고 있었다. 아마 그중 한 명일 것이라고 생각한 운영은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어머니!”
그때 계단 아래에서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던 종현이 그녀에게로 달려와 안겼다. 운영은 종현을 안아주다가 아이의 몸이 매우 차가운 것을 알고는 놀라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느냐? 일을 다 끝냈으면 가서 쉬지 않고?”
“어머니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어린 게…….”
운영은 눈물을 훔치며 다시 한 번 어린 종현을 꼭 끌어 안아주며 말했다.
“어서 돌아가렴. 종민이가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헌데 어머니. 진위에는 언제 가나요?”
“뭐?”
“어머니가 진위에 곧 간다고 하셨잖아요. 아버지가 계시는 진위요. 진위에 언제 가나요?”
조금 전 안에 들기 전에 운영이 한 말을 어린 종현은 가슴이 품고 새긴 모양이었다. 당장이라도 진위로 가자면 따라나설 종현을 보며 운영은 또다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켰다.
“진위는…….”
진위는 갈 수 없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기방에서 기생으로 살아야 할 것이고, 그녀의 어린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의정의 첩이 된다면? 운영은 사웅의 죽음 소식을 전해 왔던 항복을 떠올렸다.
그는 사웅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자신에게 첩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첩으로 만들어 곁에 두고 평생을 지켜줄 것이라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국한된 말이었다. 관노인 두 아들은 관아에서 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의 첩이 된다면, 적어도 관노로 사는 아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뒷배가 되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만날 수는 없겠지…….’
“어머니?”
종현이 다시 운영을 불렀을 때였다. 운영이 결심한 듯 종현에게 말했다.
“지금 종민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오렴.”
“종민이를요?”
“그래. 지금 진위로 가자꾸나.”
“정말요? 정말로 아버지께 가는 거예요?”
“그래.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 한다. 알겠지?”
“예! 예, 어머니!”
종현이 신이 난 듯 종민이가 있는 처소로 뛰어갔다. 운영은 뛰어가는 종현의 뒷모습을 보며 결심했다. 반드시 오늘 밤,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벗어날 것이라고.
***
달이 나무 사이에 걸린 밤.
운영은 잠투정을 부리는 종민을 품에 안고, 한 손으로 종현의 손을 잡은 채 기방을 나와 무작정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길은 알고 있었다. 남쪽으로 가다 한강을 만나면 계속 강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걷다 날이 밝으면 용케 배를 빌려 타고 남쪽으로 내려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오로지 달빛에만 의지에서 밤길을 내다보니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경복궁으로 향하는 육조거리를 벗어나면 한성은 미로처럼 길이 작고 복잡하게 되어 있다. 이 이유는 침입해 들어오는 적을 분산시키고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서였다.
‘이러다 날이 밝겠어!’
아직 성벽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길을 헤매던 운영과 아이들을 발견한 것은 순찰을 돌던 순라군이었다.
“거기 누구냐?”
“멈춰라!”
이대로 순라군에게 붙잡힌다면 관기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운영은 순라군이 멈추라는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아이들과 뒤돌아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운영이 아이들과 달아나는 모습을 본 순라군들은 재빨리 그들을 쫓아왔다.
‘제발! 이대로 여기서 붙잡힐 순 없어요!’
운영이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원했다. 그 바람을 누군가 듣기라도 한 것일까? 담 모퉁이를 돌던 운영이 반대쪽에서 오던 한 사내와 부딪히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운영에게 안겨 잠들어 있던 종민도 바닥으로 떨어지며 깨어나 울음을 터트렸다. 운영은 제일먼저 종민부터 챙겼다. 종현도 넘어진 운영에게 안겨왔다.
“아니, 이것들이……! 이분이 뉘신지 알고!”
등을 들고 서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운영과 아이들에게 호통 쳤다. 그 호통에 종현도 울음을 터트렸다. 운영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부딪힌 사내가 높은 사람이란 걸 직감하고는 그의 발치에 엎드려 사정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나으리! 우리 모자를 살려주십시오!”
운영이 간청하며 고개를 들어 그 사내를 올려다보았을 때였다. 그 사내가 운영을 알아보며 말끝을 흐렸다.
“너는…….”
운영과 부딪힌 사내는 다름 아닌 정원군이었다. 그는 그날 밤 기방에서 머무는 임해군과 달리 내관과 함께 궐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정원군과 마찬가지로 운영도 그를 알아보았다. 오늘 저녁 자신을 희롱하려고 했던 임해군을 막았던 바로 그 사내라는 걸 기억해낸 것이다. 그때 그는 임해군을 향해 ‘형님’이라고 불렀었다.
“나으리! 제발 우리 모자를 살려주십시오!”
운영은 지금 순라군으로부터 자신과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내뿐이라 여기고는 더욱 간절하게 매달렸다.
“아는 계집이신지요?”
등을 들고 있던 내관이 정원군에게 물었다.
정원군은 자신에게 매달려 간청하는 운영을 내려다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운영과 아이들을 쫓아온 순라군이 도착했다.
“아니, 통행이 금지되었거늘 여기서 뭣들 하시오?”
순라군이 위협적으로 방망이를 흔들며 말하자, 내관이 앞으로 나서며 호통 쳤다.
“요놈들! 이분이 뉘신지 알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뉘시기에 그러오?”
“주상전하의 넷째 아드님이신 정원군마마시다!”
그제야 순라군들도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순라군들은 들고 있던 방망이를 바닥으로 내려놓으며, 몸을 굽혀 어설프게나마 인사를 올렸다. 그들로서도 왕족과 마주친 것은 처음 있는 일인 듯 보였다.
“아이구, 마마님. 몰라 뵈었습니다요!”
“일어나거라.”
정원군의 입이 열리자 그들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선 순라군들 중 한 명이 운영과 아이들을 쳐다보며 내관에게 물었다.
“헌데 이들은 누군지요?”
그러자 내관이 답했다.
“모르는 계집과 아이들이네. 통행이 금지된 시간에 돌아다녔으니, 잡아가 조사하게나.”
“예에!”
순라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운영과 아이들을 붙들던 바로 그때였다.
“놓게.”
“예?”
“놓으라 하지 않았는가.”
“정원군마마?”
내관이 당황하며 정원군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정원군은 아직 바닥에 엎드려 있는 운영과 아이들을 쳐다보며 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난중에 떠나보냈던 내 사가의 노비이네. 주인을 알아보고 찾아온 것이니, 더는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게.”
정원군이 이렇게 나오자 내관도 별수 없다는 듯 순라군을 향해 서둘러 사라지라고 손짓했다. 순라군들이 자리를 떠나자 정원군이 부드러운 눈길로 운영을 향해 말했다.
“원사웅이 교동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개는 늘 높이 사고 있었지. 아마 그 두 아이는 사웅의 서자들이겠군,”
운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선 운영을 바라보는 정원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내 형님의 짓궂은 행실로 인해 기방에서 도망치려 한 것이냐?”
운영이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소인이 기방을 떠나온 것은 원 나으리께서는 돌아가셨을지는 몰라도, 그분을 향한 절개만큼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기녀인 이상 그것은 어렵겠지요. 그렇기에 이 두 아이들에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기방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랬던 것이군. 알았다 그렇다면 그 절개를 지킬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마.”
운영은 두 아들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으며 정원군을 바라보았다.
***
일 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정원군은 그녀를 외거노비로서 따로 집을 얻어 아들들과 살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반년 전부터 무수리가 되어 궐내에도 출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수리로서 일을 하게 되자 개인적인 수입도 생겨나고 삶도 더욱 나아졌다. 그러던 지난 밤, 정원군이 그녀를 찾아와 청을 했다.
[ ‘네가 해줄 일이 있다.’ ]
그는 한 여인에 대해서 말을 했다.
보모상궁이었으나, 나인의 신분이 되어 수라간으로 가게 된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여인을 진심을 다해 곁에서 섬겨주기를 바랐다. 운영은 그의 청 안에 녹아 있는 사적인 마음을 엿보았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겼다.
처음 보았던 기방에서도 억지로 온 티를 내며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고 앉아 있던 사내가 바로 정원군이었다. 그런 사내가 이처럼 마음을 쓰는 여인이라면 어지간히 마음에 든 것이 아닌 것이라 여겼다.
운영은 그 여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모든 이들에게 자상하지만, 여인에게만큼은 차가운 그 사내의 마음을 빼앗은 여인이 말이다.
수라간 나인들이 머무는 처소에서도 가장 외딴 곳에 위치한 처소로 온 운영은 그곳을 깨끗하게 쓸고 닦으며 그 여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뒤 생각시의 재잘거림이 들려왔다.
운영은 마침내 기다리던 그 여인이 왔다고 생각하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생각시와 함께 나타난 여인은 나인의 옷차림이 아닌 상궁의 옷차림이었다.
운영은 아직까지 막 나인이 되었을 나이에 상궁이 된 여인을 궐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직감적으로 정원군이 말한 여인이 바로 이 여인일 것이라 확신했다.
“상궁마마님. 애기항아님. 이른 시간인데 무슨 일이세요? 지금 한창 수라간이 바쁠 때가 아닌가요?”
“강 상궁마마님께서 오늘 새로 오신 항아님을 처소에 모셔다드리랬어.”
생각시의 말에 운영은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며 물었다.
“새로 오신 항아님이요? 어디 계세요?”
그러자 상궁의 옷차림을 한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예요. 내가 새로운 항아예요.”
“상궁마마님이 아니신가요?”
“상궁이었는데, 오늘부터는 항아가 됐어요.”
“예? 아, 예에…….”
운영은 애써 놀란 척을 하며 서둘러 인사를 올렸다.
“소인은 이 처소 소속의 무수리입니다. 앞으로 항아님을 곁에서 모시게 되었어요.”
그러자 그 여인은 아주 반갑게 웃으며 운영에게 말했다.
“반가워요. 이름이 뭐예요?”
상궁에서 나인으로 신분이 떨어진 것치고는 너무나도 밝아보였다. 운영은 그녀가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여인일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정원군의 마음을 그녀가 어떻게 얻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여인은 사람을 대하는데 솔직하고 진심으로 대하는구나.’
운영은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입을 열어 대답했다.
“운지예요.”
그것이 경민과 운영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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