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슬픔과 아픔(6)
흰색
꽃의 향이 짙어질수록 봄은 깊어진다.
“도착했습니다요.”
가마꾼의 말이 끝나자, 닫혀 있던 가마의 문이 열린다. 가마에서 내리는 나를 붙잡아준 것은 유일하게 날 따라 궐 밖으로 나온 보향이다.
보향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따라와서인지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나 역시 이곳에 온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러나 단 한 번 왔음에도 절대 잊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기다리거라.”
“예? 저도요?”
보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본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녀에게서 돌아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의 꼭대기로 오르는 길에는 곳곳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지난 번 이곳에 왔을 때는 겨울이었다. 그때는 꽃을 보지 못했었다.
언덕의 꼭대기에 다가갈수록 내 두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언덕의 꼭대기에서 두 개의 봉분이 눈에 들어오자 왈칵 눈물부터 쏟았다.
당연히 내 걸음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언덕 꼭대기에 풀이 돋아난 무덤 하나가 위치하고, 바로 그 아래에 얼마 전 생긴 듯 풀 하나 돋아나지 않은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나의 아버지 김영찬과 명이의 무덤이었다.
봄이 왔음에도 풀조차 볼 수 없는 명이의 무덤은 그 아이의 죽음이 얼마 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가 만든다.
“명아…….”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산새의 울음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그 고요함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산의 맑은 공기도 내 숨을 편히 쉬게 만들지는 못한다.
난 봄의 따사로운 온기조차도 머금지 못한 차가운 명이의 봉분을 쓸며 울음을 토해냈다.
‘내가 아는 역사에서 명이의 이름은 없었어. 혼의 아들 중에 명이는 없었지.’
명이는 정원군의 아들로서 죽었다.
역사 속 정원군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의 아들 중에 명이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만약 역사 속에 정원군의 아들인 ‘이명’이 존재했든 하지 않았든, 명이가 이런 죽음을 맞게 된 것은 나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은 병에도 살아남기 힘든 조선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혼은 시기를 봐서 명이를 자신의 족보에 올릴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아는 역사대로 혼이 인조반정으로 인해 폐위를 당하게 된다면 말이다.
나는 명이의 무덤 바로 위에 위치한 아빠의 무덤으로 다가갔다.
오래전 혼이 세워준 아빠의 묘비가 무덤의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난 몇 년 전 아빠를 만났다. 아빠에게 곧 일어날 위험을 알려드리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아빠는 자신에게 일어날 위험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차리신 것은 분명하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임진왜란 함경도 회령에서 돌아가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 여전히 아빠의 무덤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내가 아는 역사에서 하나도 바뀐 게 없는 걸까?’
아빠의 무덤 앞에 선 나는 명이의 무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내 시선은 언덕 아래, 밭과 논이 펼쳐진 땅을 지나 멀리 이름 모를 산에 향해 있었다.
이곳이 조선시대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시골풍경에 가까웠다. 나는 숨을 크게 내쉬며 울음으로 인해 갑갑해진 몸 안으로 맑은 공기를 새로이 집어넣었다.
[ ‘네가 듣고 배우고 익혀서 알게 된 지식까지의 역사란다. 그 역사의 범위 내에서 역행하는 일만 벌이지 않는다면 네게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야. 이 조선에서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
아빠가 한 말대로 난 단 한 번도 역사를 바꾸겠다는 결심은커녕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이 조선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조차도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을 사랑하게 된 뒤로는 모든 일이 위기였다. 이런 내게 역사대로 혼이 즉위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기에 난 스스로 그를 떠나 제주로 유배를 가는 것을 택했다.
‘그랬던 나의 결심조차도 단지 역사의 일부분이었던 걸까? 당연히 일어나야 했었던?’
이미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는 ‘원빈’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남는 의문점은 원빈이라는 여인의 존재다.
내가 아는 역사에서 ‘원빈’은 없다. 혼의 폐위 이후에 중전 유 씨를 제외한 다른 여인들의 행적은 실록에 남지 못했다.
그러니 나 역시 실록에 남지 못한 다른 여인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마마님, 여기가 대체 어디이옵니까?”
언덕에서 내려오는 날 발견한 보향이 쏜살같이 다가와 재잘거린다. 그러나 나는 그런 보향에게 답을 주지 않은 채 가마로 다가갔다.
뒤늦게 보향이 가마의 문을 열었고, 난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치맛자락을 움켜잡았다.
“어머?”
그런데 보향이 멀지 않은 곳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가마에 타려던 나는 보향이 쳐다보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는 말의 줄을 붙잡고 언덕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종이가 있었다.
“능양군마마?”
종이를 제일 먼저 발견한 보향이 깍듯이 인사를 올린다.
“원빈마마?”
나를 발견한 종이가 말의 고삐를 놓은 채 재빨리 내게로 다가온다.
“능양군.”
나 역시 조금 당황한 얼굴로 종이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놀라고 말았다.
올해 19세. 종이의 키는 어느새 나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늠름하게 자란 종이를 올려다보며 나는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이는 보향을 흘끗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보며 슬프게 웃는다.
“저와 같은 이유로 이곳에 오신 듯하군요.”
나 역시 미소로 답해주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아주 작은 미소조차도 짓는 것이 어렵다.
“잠시 걸을까요?”
난 종이에게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청했다.
종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예. 원빈마마.”
오랜만에 만난 종이와 나는 언덕에서 멀지 않은 숲길을 걸었다. 그곳은 전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곳이었다.
예법을 지키려는 것인지 종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걷지 않았다. 때때로 전나무를 올려다보며, 나무 사이사이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새들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종이의 뒤를 바짝 쫓아가며 종이의 모습에서 오래전 처음 정원군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군부인을 닮은 두 눈동자만 제외한다면 종이는 그 누구보다도 정원군을 쏙 빼닮은 얼굴이었다.
“능양군. 숲이 무섭지 않습니까?”
종이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슬쩍 돌아보며 묻는다.
“숲이 무섭다니요?”
“능양군은 어린 시절 창덕궁에서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어찌 아셨습니까?”
조금은 놀란 얼굴로 종이가 되묻는다. 난 어린 시절 나를 ‘누나’라고 친근하게 부르던 종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답했다.
“아마도……. 정원군께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시군요. 예. 맞습니다. 어린 시절 보모상궁과 후원에서 범을 만난 적이 있지요. 아마 원빈마마께서 아버님께 들으셨을 겁니다. 어머님은 그날의 일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려하시기 때문이지요.”
종이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한다.
난 그 기억 속에 분명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장성한 종이는 그 보모상궁의 얼굴을 잊은 것 같다.
종이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을 이었다.
“오래전 어머님께 듣기론 그때, 보모상궁이 저를 구하다 크게 다쳐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죽었다고요?”
“예. 어릴 때라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어머님의 말씀이 옳겠지요.”
군부인은 종이에게 내가 죽었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며 입을 다문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종이가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고 난 그런 종이와 보폭을 맞췄다.
“명이에게 풍등을 선물하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건 어찌 아셨습니까?”
“언제부터인가 명이가 등을 그리곤 했는데, 풍등이 유독 많았습니다. 그걸 보고 물었더니, 글로 써서 답을 주기를 원빈마마께서 풍등을 보여주셨다 하였습니다.”
“그래요? 명이가…….”
난 명이와 함께 풍등을 날려 보내던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금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혼도 함께 했던 그 순간. 우리 가족이 함께 보냈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던 그날을.
종이의 입을 통해 듣는 내가 모르던 명이의 이야기는 나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종이의 말에 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헌데 그 자리에 전하께서도 계셨다지요.”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
정원군에게서는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군부인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늘 매몰찼던 군부인이지만, 그녀의 차가운 말 뒤에는 정원군을 향한 깊은 애정이 깔려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차가운 말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능양군?”
나는 내가 잘못 들었는가 싶어 조심스럽게 종이를 불렀다.
이제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종이는 걸음을 멈춘 채 나를 돌아보며 섰다. 방금 전까지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던 따사로운 봄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직 남은 건 봄의 온기를 모두 앗아간 전나무 숲의 서늘한 공기뿐이었다.
“어린 명이는 몰랐겠지요. 전하께선 종친이라며 가깝게 대해주시다가도,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 남보다 더 싸늘한 시선으로 대하시는 분이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순간 종이의 두 눈에 찬 원망을 읽었다. 그 원망은 오롯이 혼을 향한 것이었다.
명이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혼에게서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원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원망이 혼을 향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처음으로 목도하게 된 것이다. 내 앞에서, 내 두 눈으로 말이다.
“그건 오해예요. 전하께서는 명이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도 애통해 하고 계세요. 능양군도 알다시피 명이가 죽은 이유는 풍질 때문이었잖아요.”
“하오나 원빈마마! 애초에 전하께서 아버님께 역모의 죄를 묻겠다며 의금부에 하옥하지 않았다면, 명이는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종이의 마음 안에 감춰져 있던 명이를 잃은 슬픔과 이에 따른 분노가 밖으로 드러났다.
나는 종이가 품고 있던 슬픔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나 역시 느낀 적이 있던 슬픔이어서였다.
또한 종이와 명이가 그 누구보다도 가깝고 우애가 깊은 형제였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종이와 명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읽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능양군…….”
뒤늦게 종이는 자신의 감정이 너무 강하게 드러냈다는 것을 느꼈는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원빈마마께서 명이를 어여삐 여기셨다는 것을 저도 아옵니다. 명이 역시 원빈마마를 뵈었던 날이면 다른 날보다도 화색을 띠며 기뻐하였지요. 허나 전하께서 명이의 죽음을 애통해 하신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군요.”
종이의 말끝에 비웃음이 담긴다.
나는 그런 종이의 태도를 보며 마음이 점점 불안해져왔다. 무엇보다도 종이가 훗날의 인조이며, 혼을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전하께서 즉위하시기 전부터 아버님과의 우애가 매우 돈독하셨다는 말을 듣고 자라왔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전하께서 즉위하시자마자 아버님의 유배를 풀어주시고 관직까지 내려주셨지요. 그것을 보며 저 역시도 종친으로서 전하와 이 조선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학업에 매진하였습니다. 종친은 종친부 외의 관직에 나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헌데, 그 깊다던 우애가 고작 우참찬의 한마디로 무너질 줄은 미처 몰랐을 뿐이지요.”
종이의 시선이 땅을 향했다.
“우참찬은 중전마마의 오라비로, 중전마마의 권세를 등에 업고 매관매직을 일삼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아버님께 역모의 혐의를 물어야 한다고 주청하다니!”
나는 종이에게로 한 걸음을 다가서며 말했다.
“능양군. 능양군도 알다시피 전하께서는 하루 만에 정원군을 풀어주셨습니다.”
내 말에 종이가 고개를 든다.
“명이가 죽지 않았더라면, 과연 아버님께서 풀려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원빈마마는 궐에서만 지내서 잘 모르시옵니다. 전하께서는 아버님을 풀어주셨지만, 아버님은 모든 관직을 내려놓은 채 은거하다시피 사저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단 하루 동안 있었던 일로 인해, 명이의 죽음뿐만 아니라 아버님은 전하의 즉위와 함께 받으신 관직까지 잃으신 것이지요. 그래요. 관직을 잃은 것은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요. 허나, 한성의 백성들은 양반은 물론이고 백정까지도 아버님의 사저를 지날 때마다 손가락질을 합니다. 선대왕시절 아버님께서 유배를 떠나신 후 생겨난 거짓 소문들을 기정사실화하여 믿기 때문이지요. 그 거짓소문들이 사실이기에 전하께서도 아버님께 역모의 혐의를 씌워 관직에서 내쫓으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내가 조선으로 오기 전 알고 있던 정원군에 대한 역사는 짧다.
그가 훗날 인조가 되는 종이의 아버지라는 사실과, 종이가 왕이 되면서 추존되어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민가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그가 품행이 방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이가 남긴 정원군의 공식적인 기록에는 선조의 아들들 중에선 효성과 우애가 남달랐다고 적히게 된다.
종이가 명이가 묻힌 언덕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희미하지만 전나무 숲 사이로 명이의 무덤이 바로 올려다보였다. 종이는 한참을 말없이 명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종이의 두 눈에는 명이를 향한 그리움과 혼을 향한 원망이 자라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혼은 절대 훗날 종이가 일으키는 반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종이가 다시 내게 등을 보이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게서 점점 멀어지는 종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알고 있던 역사와 다른 역사를 상상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는, 혼이 반정으로 인해 폐위되지 않았을 때의 조선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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