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슬픔과 아픔(5)
흰색
운지가 궐을 떠나는 날이 왔다. 이날 나는 명이가 죽은 후 처음으로 교화당 밖을 나섰다. 운지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장성한 운지의 두 아들은 궐 문 밖에서 운지가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지는 아들들을 향해 돌아섰다가, 바로 내게로 돌아서 큰절을 올렸다.
이미 교화당을 나서기 전에 운지로부터 절을 받았던 나였지만, 두 번째로 운지에게서 절을 받는 순간 다시는 운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만 같았다.
하지만 내 눈물이 혹시라도 그녀의 걸음을 무겁게 할까 싶어, 나는 끝까지 눈물을 참고 웃음을 보이려 애를 썼다.
내게 큰 절을 올리고 다시 아들들에게로 돌아서려던 운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그러더니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능풍도정께서 지난날 마마께서 제주에서 잃으신 아기씨지요?”
나는 목이 탁 메여오는 느낌에 잠시 숨을 가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알고 있었니?”
“그동안 짐작만 하였답니다. 하오나 다른 궁인들은 몰라도 이미 두 아이의 어미인 제 눈을 속이실 수야 없지요. 지난날 능양군마마의 보모상궁이셨으면서도 지금의 능양군마마를 대하시는 마마의 태도와 능풍도정께 쏟으시는 애정이 분명 다르신걸요. 그러니 제가 어찌 그것을 몰라 뵈었을까요.”
다른 이야기도 아닌 명이의 이야기에 결국 난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맞아. 명이가……. 내 아이야.”
내 입에서 나온 고백에 운지는 마치 나인 듯 눈물을 함께 쏟았다.
“그 슬픔을 어찌 홀로 참아내셨어요? 아프다 하시고 드러누우시면, 그 슬픔이 가시리라 여기셨어요?”
“난…….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어떻게 해도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잖아.”
운지가 울먹이는 나를 향해 물었다.
“전하께서도 아시는 것이지요? 아시기에 마마께서 이리 오랫동안 아프다 하시며 교화당 밖 출입을 안 하셔도 찾아오지 않으시는 게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지가 말을 이었다.
“그 누가 위로한다 하여도 아이를 잃은 슬픔은 오직 부모만의 것이랍니다. 그러니 언제까지고 전하를 피하시지 마세요. 전하의 슬픔도 마마의 슬픔도 동일할진데, 두 분이 각각 따로 슬픔을 이겨내려 하신다면, 그 슬픔은 배가 될 거예요. 하오나 함께 슬픔을 나누신다면 그 슬픔은 줄어들진 못하여도 견뎌낼 힘을 얻으실 거예요.”
“날 원망치 않으실까?”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말을 난 운지에게 묻고 있었다. 내 물음에 운지는 눈가의 눈물을 옷깃으로 훔쳐내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의 명줄은 하늘이 쥐고 있는 것인데, 어찌 마마께 그 책임을 물으시겠어요? 무엇보다 전하께서 그러시리라 여기세요?”
난 며칠 전 교화당 창문을 사이로 보았던 혼의 모습을 떠올렸다.
혼은 내가 병을 핑계로 그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뒤부터 종종 교화당 주변 후원을 산책해왔다. 나는 그 사실을 교화당 나인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명이의 죽음과 관련하여 나를 원망했다면, 그는 교화당 주변을 서성이는 일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난 이미 운지에게 물은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은 그를 만나는 ‘용기’였을 것이다. 슬픔이 가리고 누르고 있는 용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혼은 오래 전부터 그 용기를 내보이려 노력해 온 것이 분명하다.
운지를 배웅하고 홀로 교화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최 내관을 만났다. 오랜만에 날 보게 된 그는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나는 그 인사만 받고 그를 지나쳐 지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그가 갑자기 내 앞길을 막아서며 몸을 땅에 엎드렸다.
“원빈마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행동에 놀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짓이오?”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간청하옵건대, 소인의 말을 들어주시옵소서!”
간절한 최 내관의 청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였다.
최 내관은 아무도 지나다니는 이가 없는 궐의 한적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혹여 전하를 원망하시는 것이옵니까?”
“전하를 원망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정원군마마와 관련된 오해 때문에 말이옵니다.”
난 혼과 정원군의 독대를 문 밖에 서서 초조하게 지켜보던 최 내관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원군이 풀려나지 않았는가. 모두 끝난 일이네.”
“하오면 어찌 전하를 뵙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
이 물음에 나는 답을 줄 수 없었다.
망설이던 나의 눈치를 살피던 최 내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능풍도정의 일 때문이옵니까?”
나는 놀란 눈으로 최 내관을 보았다.
최 내관도 능풍도정이 혼과 나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싶어서였다. 운지의 경우는 늘 내 곁에서 능풍도정을 아끼는 것을 지켜본데다가, 내가 아이를 가진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 내관은 달랐다. 그가 만약 명이가 혼과 나의 아이를 사실을 알고 있다면 혼이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혼이 그 사실을 최 내관에게 말해주었을까?
“어찌 그리 생각하는가?”
“그것은 마마께옵서, 능풍도정이 세상을 떠난 후 전하를 뵙기를 거절하셨기 때문이옵니다.”
말은 능풍도정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한다고 하지만, 최 내관의 눈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궐에서 쉽사리 입에 담기에는 위험한 말이었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최 내관이라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절대 발설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몸이 좋지 않네.”
운지를 배웅하러 바깥에 나온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핑계였지만, 더는 명이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운지 앞에서 쏟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돌아서려고 했다. 하지만 최 내관의 말이 더 빨랐다.
“능풍도정께서 돌아가시던 날의 일이옵니다. 원빈마마께서 편전에서 갑자기 쓰러지셨지요. 전하의 명으로 급히 달려온 의관은 마마께서 큰 충격으로 정신을 잃으셨으나, 나아지실 것이라고 전하께 말씀을 올리더군요.”
가슴이 울컥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명이가 죽은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 힘들었던, 명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그 순간의 기억이.
“마마의 상태가 호전을 보이자, 갑자기 전하께서 교화당을 나서셨사옵니다. 소인이 그 뒤를 따랐지요. 전하께서 가신 곳이 어디이신 줄 아시옵니까?”
“아마 편전으로 돌아가셨겠지. 더는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네.”
그대로 돌아선 난 최 내관이 보이지 않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앞으로 한걸음 내딛었다. 그때 등 뒤에서 최 내관이 소리 내어 말했다.
“능풍도정께서 계신 내의원이셨사옵니다.”
순간 내 두 발은 땅에 박힌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최 내관이 그런 내 뒤에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능풍도정의 시신 앞에서 전하께서는 주위를 모두 물리라 명하셨사옵니다. 오직 소인만이 남아 전하의 곁에 있었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숨을 거두신 능풍도정을 끌어안으시고는 통곡하시며…….”
“그만. 그만하게!”
나는 나도 모르게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서였다.
혼이 죽은 명이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했다는 최 내관의 말에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난 가까운 건물 기둥으로 다가가 손을 대어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최 내관이 걱정스럽게 부른다.
“원빈마마?”
나는 결국 참고 참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땅에 떨어지는 내 눈물을 바라보던 나는 더 이상 혼자 이 슬픔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혼이 보고 싶어졌다. 그를 당장 만나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최 내관을 보았다.
“전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내 얼굴을 보며 최 내관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소인이 길을 열겠사옵니다.”
***
혼은 의외의 장소에 있었다.
그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망루에 올라 멀리 경운궁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나는 홀로 망루 위에 올라 혼의 뒤로 다가갔다.
그는 망루를 지키는 병사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나의 발걸음 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난 그런 그의 왼쪽으로 다가가 오른팔로 그의 허리를 살며시 감았다. 놀란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날 발견하고 눈도 덩달아 커졌다.
“원빈…….”
곧 그는 망루 위에 그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왼팔로 나의 허리를 감으며 짧게 미소 지었다.
“경민아.”
그는 마치 어제 나를 본 듯이 맞아주었지만, 우리는 거의 세 달 동안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내 허리를 감고 있는 그의 팔에서 낯설지 않은 온기가 전해진다. 그 온기만으로도 나는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평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멀리 보이는 경운궁을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 서로가 느끼는 감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단지 이렇게 가까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난 삼 개월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모두 나누는 것 같았다.
“경운궁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혼이 내게로 시선을 잠시 돌리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경운궁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곧 그가 입을 열어 그 이유를 설명해주리라고 생각했고, 잠시 뒤 그는 내 생각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바마마께서 승하하시기 한 해 전의 일이다. 그땐 네가 유배를 갔을 때였지.”
내가 유배 중이던 때의 이야기를 거론하며, 그가 내 허리에 두른 팔에 자연스레 힘을 준다. 마치 ‘유배’라는 단어가 다시 나와 그를 떨어뜨려 놓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듯이 말이다.
“그 당시 내 마음 안에는 드러낼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제주로 유배를 떠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한 나약함에 대한 원망을 필두로, 네가 그리워도 그립다 소리 내어 말할 수도 없는 고통. 영창에게 세자의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게 되면, 다시는 너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까지. 하루하루가 그렇게 숨 막히도록 괴로웠었지.”
혼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홀로 한성에 남아 겪어야 했던 심적인 고통들이 내 마음으로 전해져왔다.
“그러던 중 편전에 아바마마를 뵈러 갔다 뵙지 못하고 도로 나오던 길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더구나. 그날, 연주군부인이 네 명의 아들들과 함께 입궐해 인빈을 뵈었었지.”
직감적으로 혼이 명이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걸 알아차린 내 몸이 슬며시 떨려왔다.
“홀로 있던 내 앞으로 제기 하나가 떨어졌지. 명이 그 아이가 놀다가 내 앞에 떨어뜨린 것 같더구나. 그 아이는 내가 떨어진 제기를 주어줄 것이라 여기고 환히 웃으며 다가왔었다. 순간 무슨 악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그 제기를 담 너머 궐 밖으로 던져버렸다.”
다시 나를 돌아본 혼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소리를 낼 수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소리를 내지 못하여도 자신의 마음을 모두에게 드러낼 수 있는 그 아이가 원망스러웠던 것 같다. 헌데…….”
혼의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한다.
“그 아이가 너와 나의 아이였다니.”
난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알게 되었다.
그는 명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그 아이가 죽음으로써 지난 날 아이에게 준 상처를 만회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명이가 죽은 뒤로, 거의 매일 밤 그날의 일이 꿈에 나오더구나. 어찌 그때의 나는 그 제기를 그 아이의 손에 쥐어주지 않고 궐 밖으로 던져버렸던 것인지……. 그날의 일이 이토록 내 마음에 남아 괴롭게 만들 줄은 정녕 몰랐구나.”
난 노 진사 댁에서 명이를 혼에게 인사시키려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의 명이는 혼을 두려워하며 내 뒤로 몸을 숨겼었다. 혼은 그런 명이를 보며 그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짧게 말했다.
이제야 나는 그 상황의 뒤에 내가 모르던 혼과 명이의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명이가 처음에 혼이 널 어려워하던 거였어.”
나는 그의 넓은 등을 쓸어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혼아. 넌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준 일이 있었잖아.”
난 혼이 풍등을 하늘로 날려 보내던 그 순간, 명이의 밝은 얼굴을 떠올렸다.
그 때 혼과 명이는 서로 눈을 맞추며 미소를 주고받았었다. 혼도 나를 바라보며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지 눈동자에 잠시 빛이 어린다.
난 그런 혼에게 말했다.
“그 이후로 명이의 마음속에는 너와 함께한 좋은 기억만 남았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나의 진심어린 위로에 혼이 두 팔로 나를 끌어안는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과 추억이 가득한 경운궁을 바라보며 서로의 슬픔을 나누었다.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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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풀려난 정원군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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