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해의 연인-71화 (71/110)

제71화. 가례(2)

흰색

“너무 힘들었어. 이제 이걸 또 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에게 위로의 말을 받고자 꺼낸 질문이었다. 그런데 내 질문을 들은 혼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하는 것 같았다. 이처럼 답을 피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을 보며 난 겁부터 집어먹었다.

“설마…… 또 있어?”

“오늘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만.”

여전히 그의 눈동자는 양화당의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 말고!”

내 목소리가 커지자 혼이 마지막까지 대답을 피할 요량인지 입을 한번 모았다가 풀며 말했다.

“경민아, 넌 이제 과인의 원빈이 아니냐? 과인은 빈을 한 명만 두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앞으로 빈의 품계를 가진 내명부의 후궁은 오직 너 하나일 것이니, 빈으로서 치러야 할 궁중행사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니 그때마다 맞는 차림을 갖춰야 할 것이고…….”

“그런 건 중전마마가 하시는 거잖아?”

“그렇다면 경민아. 네가 인빈을 모시던 때를 기억하느냐?”

혼이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혼의 말을 듣고는 인빈의 나인으로서 양화당에서 지내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인빈의 권세는 대단했었다.

인목왕후가 계비로 궐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는 사실상 중전이나 다름없는 지위를 누렸다. 물론 그 지위에 합당한 역할로서 중전의 대리로 많은 일들을 했다.

그러나 몇 년 뒤 인목왕후가 들어오고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단장하고 화려하고 무거운 가체를 하루 종일 착용한 채 양화당에서 머물렀다.

꾀병을 부릴 때도, 정말 몸이 아팠을 때도 그녀가 가체를 벗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설마…… 나도?”

난 조금씩 떨려오는 손가락으로 나 자신을 가리켰다. 혼이 그런 나를 보며 헛기침을 하더니 또다시 시선을 피한다.

가체가 여인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비용 부분에서도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고 법으로 금지하기 시작한 것은 영조 때.

의례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순조 때에 이르러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뒤의 일.

“나 원빈 안 해! 숙용, 숙원, 숙의…… 아니, 이 머리를 안 하는 후궁은 없는 거야?”

투정부리는 나를 혼은 두 팔로 끌어안았다. 난 그의 팔에 등을 기댄 채 연거푸 한숨만 내쉬었다.

혼은 그런 내가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라도 하는 것인지 내 한쪽 뺨을 집게손으로 집어 위 아래로 흔든다.

마치 그만 한숨 쉬고 이젠 자신을 돌아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벌써부터 머리에 가체를 다시 올린 기분만 한 가득이다. 난 상상속의 가체의 무게를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였다. 달콤한 향이 내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눈 앞에 자그마한 붉은 명주실에 매달린 옥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우전쌍옥(于闐雙玉)이다.”

혼이 웃으며 그 옥패를 내 손에 놓았다.

우전(于闐)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호탄의 옛 지명이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옥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조선은 옥을 생산하지 않았고, 대신 중국으로부터 옥을 수입해왔다. 아마 혼이 말하는 이 우전쌍옥 역시 그런 경로를 통해서 들어온 것 같았다.

“네게 주는 것이다.”

이 옥이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는 혼의 말에 나는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나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옥을 살폈다. 그러던 나는 옥의 뒤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했다.

[원빈 김씨(元嬪 金氏)]

“원빈 김씨?”

내가 새겨진 글을 중얼거리듯 읽자 혼이 헛기침을 했다. 나는 잠시 옥에서 시선을 떼고 혼을 보며 물었다.

“이 원빈이…… 혹시 나야?”

“그렇다. 허나, 네 말대로 더 이상 원빈을 하지 않겠다면…….”

혼이 내 손에 있던 옥에 묶인 붉은 명주실을 잡아당긴다. 도로 가져가려고 한 것이다.

“아, 아니야! 원빈 할 거야!”

옥에서 풍기는 향기에 취한 듯, 내가 두 손으로 옥을 움켜쥐자 혼이 소리 내어 웃는다. 옥을 되찾은 나는 혼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난…… 이제 노 씨잖아.”

노 진사의 양녀로 원빈이 되었기 때문에 김 씨가 될 수 없다. 내 얼굴에서 속마음을 읽은 듯 혼이 말한다.

“부득이하게 노 진사의 양녀로 입궐하였다 하나, 너는 원래 김가가 아니더냐.”

“그랬지.”

“너는 입궐하여 내 곁으로 오기 위해 태생을 잊어야 했고, 가문을 버려야 했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였지. 그러나 내 항상 마음이 쓰였다. 더욱이 너의 부친께서 살아계셨더라면 노수눌의 양녀가 된 것을 매우 아쉬워하였을 것 같더구나. 비록 궐의 모든 이들은 나인 김경민을 죽었다 여기고 모두 잊었다 하더라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네가 김가였던 사실도, 나인 김경민으로서 나를 위해 제주로 유배를 가야만 했던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곳에 네 본성(本姓)을 새겨 넣었느니라.”

내 아버지까지도 배려한 혼의 말에 나는 이 옥이 너무나도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고마워, 혼아.”

나는 그 옥을 두 손으로 소중히 쥐었다. 그러자 옥에서 나는 향이 더욱 진해졌다. 나는 그 향을 더 자세히 맡기 위해 코끝으로 가져갔다. 그런 나를 보며 혼이 물었다.

“향이 어떻느냐?”

“좋아. 마치 초콜릿 향 같은 게…….”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말했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어디선가 이 향과 똑같은 향을 맡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고레?”

“아, 아니. 조청 향이 난다구.”

초콜릿이 무엇인지 모르는 혼은 자신이 조청을 잘못된 말로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는 것 같다.

“그것은 향옥(香玉)이다. 이 조선에서는 단 두 개만 있는 것이다.”

“두 개? 맞다. 쌍옥이면 원래 두 개인거지? 다른 한 개는 어디에 있어?”

“이 우전쌍옥은 원래 아바마마의 것이었다. 아바마마께서 내 어머님이신 공빈마마의 빈 책례(冊禮, 책봉식) 때 그중 하나를 하사하셨다. 후에 어머님께서 그 옥에 내 군호와 이름을 새겨 나에게 주시었지.”

혼의 말을 듣자니 이 옥은 혼이 어머니에게 받았다는 그 옥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원빈 김씨’라는 글자가 아닌 그의 군호와 이름이 새겨져 있었을 테니까.

“그럼 이 옥은 선대왕마마께서 지니시던 거야?”

“그렇다. 아바마마께서 승하하시고 물려받은 것이다.”

혼의 말을 듣자, 나는 더욱 더 그의 어머님이 물려주셨다는 또 하나의 옥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 혼의 군호가 적혀 있고 내게는 빈호가 적힌 옥이 있으니, 그 두 옥을 함께 본다면 더 특별할 것만 같아서였다.

난 혼에게 물었다.

“공빈마마께서 주신 옥은 어디에 있어?”

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늘 몸에 지녔었다만 왜란 중 반쪽을 잃었었다. 허나 전혀 짐작하지 못한 곳에서 그 옥의 반쪽을 되찾았었지.”

그가 옥의 반쪽을 잃었다는 말에 나는 혼을 처음 만났던 2013년을 떠올렸다.

식탁에 앉아 깨어진 옥을 소중히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는 매우 슬퍼 보였었다. 난 지금 혼이 말하는 어머님의 옥이 바로 그때 보았던 옥패라고 확신했다.

“왜란 중 잃어버렸던 옥을 찾았다고? 어디서?”

“대비께서 찾아주셨다.”

혼은 이 자리에 없는 대비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나 순간 나는 어디선가 맡은 적이 있다고 여겼던 이 옥의 향을 어디서 맡았는지 기억해냈다.

그곳은 바로 대비전에서였다. 미영이의 구명을 위해 입궐했던 그날 퇴궐 길에 들렸던 대비전에서 나는 영창대군이 떨어뜨린 쪼개진 옥을 보았다. 그때 그 옥에서 나던 향기가 바로 지금 혼이 내게 준 옥에서 나는 향기와 똑같았다.

당시 쪼개진 옥이라 글자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대비전에서 본 그 쪼개진 옥이 혼이 말하는 어머니의 옥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대비께서 왕후가 되시기 전에 간택으로 입궐하셨을 때 내게 돌려주셨다. 후에 국혼 날 대비를 처음 뵈옵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대비께서 내게 돌려주시기 전까지 수년을 소중히 보관하고 계셨다고 하셨다. 옛말에 부모자식간의 인연은 하늘이 정한다더니, 내 어머님의 옥의 반쪽을 대비께서 지니고 계셨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지 않느냐?”

대비가 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혼은 하늘이 정한 부모자식 간의 연으로 풀이했다. 그 정도로 혼은 대비를 신뢰하고 있는 걸까?

“헌데……. 다시 잃고 말았다.”

“다시 잃었다니?”

“중전이 둘로 나뉜 옥을 명으로 보내 고쳐보겠다며 가져가더니 얼마 뒤 잃었다 하더구나. 안타까운 일이다만 이미 잃은 것을 어찌하겠느냐.”

대비가 지니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중전이 지니다가 잃었다는 말에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언제였어? 중전마마께서 잃어버리신 게?”

“아바마마께서 승하하시기 닷새 전의 일이다.”

나는 혼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대비전에서 그 옥을 본 것은 혼이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임해군의 옥사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대비전에서 보았던 그 옥이 혼이 말한 잃어버린 옥이라면 잃어버린 시기가 맞지 않았다. 혼이 이미 잃어버렸을 때, 나는 그 옥을 대비전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혼이 내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선조가 승하하기 전에 중전이 잃어버렸다는 그 옥을 대비가 훔친 것이 된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혼은 잃어버린 옥의 반쪽을 되찾아준 사람이 대비라고 말했다. 되찾아준 반쪽뿐만 아니라 그 나머지 반쪽까지도 대비가 다시 훔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난 공빈마마의 옥이 대비전까지 흘러들어간 경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혼이 준 정보로만 추론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옥의 행방을 좇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나를 혼이 유심히 바라본다. 나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에 내 모든 생각을 집어넣느라 혼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혼이 왼손으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어그러뜨리더니 그때까지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나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잠시 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혼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그가 오른손으로 내가 입은 장삼의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호, 혼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것이냐?”

혼의 입에서 불평이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혼의 무표정에 숨겨진 불만을 읽었다. 난 혼의 존재도 잊은 채 머릿속으로 옥의 행방만 좇고 있었다.

혼은 가례 날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옥의 사연에만 정신이 팔린 내가 불만이었던 것이다. 혼의 마음을 알게 된 이상 나는 변명할 여지를 잃고 말았다.

그저 주인 품에 안긴 순한 강아지마냥 숨을 죽였다.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내 옷고름을 잡아당기며 일어나는 혼의 미세한 움직임에 촛불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내가 인식하며 자연스럽게 촛불 쪽으로 시선이 향했을 때였다. 달궈진 듯 뜨거운 혼의 입술이 내 입술에 살포시 닿았다.

한 번,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이 촛불을 등지고 매끄러운 흑요석 같이 빛난다. 두 번,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세 번, 그 미소를 담은 입술이 또 한 번 내 입술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짧지만 반복적인 입맞춤에 내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당장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그의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사라졌을 때, 갑자기 혼이 행동을 멈췄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무언가에 시선을 모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내 한쪽 어깨였다. 그리고 그곳엔 지난날 호랑이로부터 종이를 구하다가 남은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혼은 촛불 아래 드러난 어깨의 흉터를 조심스럽게 쓸며 물었다.

“이제야 이것이 흉터였음을 알겠구나. 어찌하다 다친 것이냐?”

그는 이 흉터에 대해서 알고 있었음에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투였다.

나는 가빠오는 숨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주저하고 말았다.

혼은 내가 수라간 나인이었다는 과거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아는 건 내명부에 적힌 그대로 인빈의 사가에서 들인 사람이라는 것. 그것뿐일 것이다.

물론 그가 마음먹고 알아본다면 내가 종이의 보모상궁으로 정원군의 처소에 머물렀던 과거가 밝혀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원군과 나의 사이에 대해서도…….

혼은 아직 나와 정원군의 얽힌 이야기에 대해 모른다. 그에게 정원군은 아끼는 아우이자, 그를 지키기 위해 뱃속에 있던 명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며 유배를 자처한 고마운 아우였다.

어쩌면 혼이 즉위한 후에도 인빈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정원군 덕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원군의 선택한 희생이 그가 아닌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면…….’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오래전 혼과 나의 사이가 친구와도 같다고 정원군에게 당당히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와 혼은 친구의 사이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었고, 난 이제 그의 후궁이 되었다.

그때는 내 생각이 짧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지금 혼에게 정원군과 나의 사이가 오랜 친구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설사 정원군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난 무서웠다. 혼이 그 말을 믿지 않을까 두려웠고, 혹시라도 내 말로 인해 오해가 생겨 혼과 정원군의 사이가 틀어질까 무서웠다.

‘난 말할 수 없어. 단지 종이의 보모상궁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정원군이 지금처럼 계속 혼이 아끼는 아우로 남기를 바랐다.

“경민아?”

혼이 내게 다시 한 번 묻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혼을 올려다보며 상처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활짝 웃었다.

“오래전에, 어렸을 때 다쳤던 거야.”

“이 정도로 흉터가 남을 일이었다면 크게 다쳤던 것이냐?”

“그땐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동안 흉터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는걸. 왜? 보기 흉해?”

흉하다고 묻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혼이 내 흉터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의 입술은 아주 오랫동안 내 흉터 위에 머물며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날의 아픔이 되살아난 듯 찌릿한 전율이 흉터에서 시작되어 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으응……. 혼아.”

혼이 흉터에서 입술을 떼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나왔다.

다쳤던 것도 나고, 흉터를 입은 것도 난데, 그는 내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 날에 느꼈던 아픔까지도 모두 가져가 머금은 것만 같다.

“다시는, 너의 몸에 이러한 작은 상흔 하나조차도 남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약조하마.”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답하려다가, 사뭇 진지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에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대신 그의 얼굴에도 웃음을 주고 싶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는 베개에 닿아 있던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 입술을 그의 입술에 포갤 듯 가까이 가져대 댔다.

혼은 그런 나를 보며 놀란 기색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내 입술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러나 내 입술은 그의 입술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았다.

그의 숨결이 내 얼굴에 바로 닿는 곳에서 나는 하려던 행동을 멈췄다. 그리곤 내 코를 그의 코에 가져가 부드러운 빗질을 하듯이 두 번 반복해서 마주 비볐다.

혼은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자 놀란 얼굴이다. 나는 그런 혼의 등을 두 팔로 감쌀 듯 껴안으며 애교 있게 싱긋 웃었다.

“무엇이냐? 무엇을 한 것이냐?”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의 혼은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난 그런 혼을 향해 높임말을 쓰며 태연스럽게 굴었다.

“잊으셨사옵니까? 다시는 신첩의 몸에 그 어떤 상흔도 입지 않게 하시겠다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전하께 신첩의 입술을 쉽게 내어드렸다가 신첩에게 상흔이라도 생긴다면, 전하께서 신첩을 탓하시지 상흔을 내신 전하를 탓하시겠사옵니까? 그러니 오늘 밤 신첩의 입술을 내어드리지 않겠사옵니다.”

그러자 혼이 씩 웃더니 내게 말한다.

“밤은 길다. 네가 과연 얼마나 네 입술을 과인에게 내어주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을지 내기나 하자꾸나.”

그는 두 팔로 나를 부둥켜안더니 고개를 들어 내 머리맡의 홍촉을 훅 불어 껐다. 그제야 양화당에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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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싹뚝싹뚝. 이제는 익숙한 싹뚝싹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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