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해의 연인-41화 (41/110)

제41화. 외전- 가라고 가랑비, 있으라고 이슬비(2)

흰색

이들 형제는 큰길가에 나와서야 멈춰서 잠시 숨을 돌렸다.

“어휴. 들키는 줄 알았네.”

여유가 생기자, 담벼락 아래에 숨어서 삼키던 궁금증을 정원군이 밖으로 꺼냈다.

“형님. 도대체 그 여인이 누구입니까?”

“병조참판 댁 여식이다.”

“벼, 병조참판이요? 그 낭자가 정말 병조참판 댁 규수란 말입니까?”

“그렇다.”

정원군이 놀란 눈으로 신성군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신성군은 태연스러운 얼굴이었다.

정원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신성군 스스로 병조참판 댁 여인을 맞아들이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병조참판이 누구던가? 어머니 인빈은 물론이고 외백부 김공량이 툭하면 꺼내어 비판하기를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 비판은 구사맹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구사맹의 아들 구성 역시 그 비판의 주된 대상이었다.

인빈의 하나뿐인 오라버니인 김공량은 왕의 총애를 받는 누이를 뒷배삼아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에 불만인 세력들이 생겨났는데, 그 대표주자가 바로 구사맹의 아들 구성이었다. 구성은 젊은 패기를 숨기지 않고, 언제나 자신이 대간의 지위에 오르는 날이 있다면 반드시 김공량을 규탄하여 파직시키겠다는 강한 언행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선조는 이 점을 두고 구성을 중심으로 한 젊은 관료들이 뭉쳐 혹시라도 인빈의 집안을 위해하는 상소를 올릴까 염려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훗날 신성군을 세자로 책봉할 때를 대비해 이들 집안이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을 항상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오나 병조참판이라면 늘 외백부에 대해 험담하는 이가 아닙니까?”

“상관없다. 이제 곧 병조참판과 외백부는 사이가 좋아질 것이다.”

“어찌 말입니까?”

“내 일전에 아바마마께 말씀을 올렸다. 원수도 사돈을 맺으면 사이가 좋아진다고 말이다. 아바마마께서도 내 말뜻을 알아들으셨는지 칭찬해주셨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하오나 형님, 형님께서는 형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콕 요점을 집는 정원군의 말에 신성군이 잘생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종달새 말이냐? 걱정 말거라. 우선 저 낭자를 내 첩으로 맞아들인 뒤 내자로 만들 것이다.”

신성군의 부인 신씨는 일명 ‘잔소리쟁이’였다. 신성군의 뒤를 매일 같이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언행을 일일이 트집 잡았다.

신씨와 혼인하면서 궐을 나와 살던 신성군은 이런 신씨를 피해 자신의 사가에서 머물지 않고 궐에 들어와 지내는 날이 많았다.

“아바마마의 뜻으로 혼례를 치렀기에 그 시끄러운 종달새가 안채에 들어앉았다만, 곧 소박을 주어 내쫓을 것이다. 그때도 내 뒤를 따라다니며 시끄럽게 구는지 내 두고 볼 것이다.”

소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열두 살의 신성군은 알고 하는 소리일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김칫국부터 마신 신성군이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앞서 가기 시작했다. 정원군은 그런 신성군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신씨가 잔소리가 많은 것은 정원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신성군을 위해서 하는 말들이었다. 그렇다면 신씨는 진심으로 신성군을 위하는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을 내쫓겠다니?

자그마한 입술을 삐쭉거리며 고개를 내젖던 정원군이 신성군의 뒤를 따라 걸으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노리개가 담긴 주머니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머슴을 피해 도망치던 도중에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정원군은 자신이 챙겨든 노리개를 자신이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서둘러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노리개를 찾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병조참판 댁 담벼락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누가 깨끗하게 빗질을 한 것 마냥 낙엽 하나 보이지 않는 땅바닥을 살피며 당황하는 정원군의 머리 위로 낭랑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을 찾고 계신 것입니까?”

정원군이 고개를 들었다.

담 안쪽의 고목나무 위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정원군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 소녀는 뽀얀 얼굴에 여우의 귀처럼 쫑긋 선 귀여운 귀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사슴의 눈 마냥 유들유들한 눈은 그녀가 형 신성군이 늘 말해오던 소녀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 소녀의 한 손에는 신성군의 비단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이제야 낯을 뵙는군요.”

정원군을 내려다보며 소녀가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였다. 담 안쪽에서 놀란 여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나무 위에 오르시다니요. 어서 내려오셔요!”

여종의 등장에 놀란 소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나무에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나뭇가지들 사이에 둔 발을 헛딛으며 담 밖으로 비틀거리며 쑤욱 떨어진 것이다.

“어머나!”

소녀의 짧은 비명소리가 담을 가르고 있었다. 담 아래서 소녀를 올려다보던 정원군이 급히 두 팔을 벌리며 소녀를 받으러 뛰어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정원군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비슷한 체구의 두 사람이 서로를 받아준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결국 정원군은 떨어지는 소녀를 두 팔로 받으며 그대로 뒤로 넘어져 한바탕 굴러버리고 말았다.

“아윽…….”

소녀를 안으며 그대로 바닥에 어깨와 등을 부딪친 정원군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그러자 바로 자신의 몸 위에서 겁에 질려 두 주먹을 쥐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녀와 마주했다. 소녀는 자신의 얼굴을 정원군의 가슴 언저리에 깊게 파묻고 있었다.

“괜찮소?”

자신의 통증도 뒤로한 채 정원군은 소녀부터 걱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담 밖으로 떨어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원군은 통증을 삼키며 몸을 일으키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다행히 소녀는 다친 곳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조금 전 정원군이 보았던 나무 위에 선 소녀의 당돌한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그저 정원군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수줍은 얼굴로 잘 익은 사과마냥 붉디붉은 얼굴을 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놓아주셔요.”

여전히 정원군과 잡고 있던 손을 슬며시 빼며 소녀가 돌아섰다.

그때였다. 소녀가 다시 돌아서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노리개가 담긴 주머니를 들었다. 그리곤 방금 전까지 정원군과 잡고 있던 손 위에 그 주머니를 놓아주며 말했다.

“약조하신 대로 소녀를 정식으로 맞이하러 오실 때, 다시 전해주시기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소녀는 돌아서 가버렸다.

***

1592년 겨울 의주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곳).

눈이 비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늘은 짙은 잿빛이었다. 도무지 변덕스러운 북쪽 지방의 날씨는 적응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런 북쪽 지방의 날씨와 매번 마주할 때마다, 한성을 떠나온 모든 이들은 한성의 봄이 그리워했다.

“아아아악! 신성군! 이리 갈 수는 없는 게요! 이 어미를 두고…… 어찌…… 어찌 간단말이오! 신성군!”

신성군의 시신이 담긴 관이 의주 행재소인 취승당(聚勝堂) 앞에 도달하자 인빈 김씨는 차가운 겨울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비를 맞으며 신성군의 관을 붙잡고 통곡했다. 선조는 취승당 마루에 서서 그런 인빈을 차마 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소리 없는 눈물만 흘렸다.

신성군의 관 옆에 서서 비를 맞는 정원군은 차마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다.

신성군과 함께 떠난 자신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멀쩡히 살아 돌아오고 형 신성군은 숨을 거뒀다. 마치 신성군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인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누구도 그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원군의 마음 안에는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신성군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심어지고 말았다.

“의복을 갈아입으셔야지요.”

지친 기색으로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정원군을 부인 연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맞이했다. 그리고 정원군은 어깨가 떨릴 정도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 여…… 연지야…….’ ]

왜였을까.

정원군도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신성군은 연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연지가 자신의 부인이 된 뒤로는 신성군이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잊어야 했다. 상식적으로는 분명 신성군은 그러했을 것이라 정원군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과 연지가 혼례를 올린 후, 신성군은 단 한 번도 연지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있더라도 형식적인 대화가 오갈 뿐, 연지와 말도 섞은 적이 없던 신성군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까? 계속 연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것뿐일까?

“대감?”

“나가보시오.”

“소첩이…….”

“나가보라 하지 않았소.”

스스로 내뱉은 말에 놀라버린 정원군이었다.

이름 모르는 궐의 나인에게조차도 이처럼 싸늘하게 말을 건네 본 적이 없던 정원군이었다. 자신의 이러한 말투에 연지가 상처를 받을 것이란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 알겠사옵니다…….”

연지가 고개를 들지 못하며 조용히 밖으로 물러나갔다.

축 처진 어깨로 돌아나가는 연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원군의 머릿속에 2년 전 늦가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

1590년 늦가을 경복궁 양화당.

“어머님, 소자가…… 혼인을 한다니요?”

“호호. 뭘 그리 놀라십니까. 이제 정원군도 혼사를 치를 나이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건…… 소자도 아옵니다. 허나 지금 말씀하신 처자는 병판대감의 여식이라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병판대감은 외백부에 대해 험담하는 이라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된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그런데 병판대감의 여식과 혼인이라니요?”

“그랬지요. 그러나 전하의 말씀을 듣고 이 어미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바꾸시다니요?”

“병판의 집안과 사돈으로 얽힌다면 그쪽에서도 더 이상 오라버니를 헐뜯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사돈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정원군은 혼사를 치를 준비를 하세요. 전하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계신 이상, 이 혼사는 올해를 넘기진 않을 겁니다.”

“예……. 어머님.”

정원군의 마음에 한 가지 걸리는 사실이 있었다.

신성군이 마음에 두었던 여인 역시 병판대감의 여식이었다. 병판 대감에게는 여식만 여섯이라고 했다.

대체 자신과 혼사를 올리게 되는 여인은 병판대감의 몇 번째 여식이며, 신성군이 마음에 두었다는 그 여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린 정원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 양화당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비켜라!”

“시, 신성군마마!”

스스로 양화당의 문을 열어젖히고 뛰어 들어온 것은 신성군이었다. 그런 신성군을 보고 놀란 정원군과는 달리 인빈은 태연하게 들어 올리려던 찻잔을 도로 내려놓으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잊으신 것입니까, 신성군.”

그러나 신성군은 씩씩거리며 인빈의 가까이로 바싹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정원군을 가리키며 인빈을 향해 소리쳤다.

“왜 부야입니까? 소자가 분명 병판대감의 여식은 소자의 첩으로 들이겠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그러자 인빈이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신성군을 향해 말했다.

“모두 다 신성군을 위한 것입니다.”

“무엇이 말이옵니까? 소자가 마음에 둔 여인을 부야와 맺어주는 것이 말이옵니까?”

“신성군.”

인빈이 조금은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신성군을 불렀다.

“신성군은 아직 어려 잘 모릅니다. 전하도 이 어미도 모두 신성군을 위해 그리 한 것이에요.”

“소자는……. 소자는 이해할 수 없사옵니다! 어서 이 혼사를 물러주십시오. 어머님!”

“그것은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인빈이 딱 잘라 거절하며 목소리를 차갑게 바꾸었다.

“어머님!”

“신성군. 신성군은 지금 혼인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것도 전 평안도절도사 한성부판윤 신립의 여식과 말입니다. 지난날 신성군의 장인 신립이 북방의 야인들과 왜적들을 물리친 공로로 백성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인망을 받는지 아십니까? 신성군은 그를 장인으로 삼아 그 덕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어디 이뿐만입니까? 신립의 친족들은 모두 당상관이지요. 이들은 모두 훗날 큰일을 할 신성군의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정녕 이를 모르십니까? 그런데도 병판대감의 여식을 첩으로 들여 보세요. 여인 하나 잘못 들여 집안을 망친다는 말이 딱 들어맞게 될 겁니다. 더욱이 새아기와 병판의 여식은 사촌간입니다. 혼인으로 엮인 이들 집안을 원수지간으로 만들 셈입니까?”

인빈의 말은 어디로 보나 옳은 말이었다.

신성군의 장인인 신립의 여동생은 병조참판 구사맹의 두 번째 부인이 되어 연지를 낳았다. 그러므로 인빈의 말대로 신성군의 부인 신씨와 연지는 서로 사촌 간이었다.

연지가 정원군과 혼인한다면 신성군에게는 힘이 되어줄 또 다른 세력을 얻음과 동시에 외척 간의 결속력을 다지게 되는 일이 된다.

하지만 연지가 신성군의 첩이 된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되어버린다. 애초에 신립이 신성군을 자신의 사위로 받아들인 것도 그가 유력한 세자의 후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직 신성군과 신씨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첩이 된 연지가 먼저 신성군의 아들이라도 낳게 된다면?

신성군이 훗날 세자가 된다고 가정할 때, 그 아이는 차기 조선 국왕의 장자가 되는 것이다. 비록 그 아이가 서자라고 하더라도 장자로서의 권한은 그만큼 막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립의 가문과 구사맹의 가문은 인척에서 원수지간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인빈에게는 연지를 정원군과 맺어주어 신성군에게 힘을 더 실어주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어찌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소자의 간절한 청을 거절하시려는 것이옵니까?”

제 뜻이 인빈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신성군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신성군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들어주던 인빈도 이번에는 신성군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것이 신성군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신성군에게는 그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분통 터지는 상황일 뿐이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전하의 뜻도 이 어미와 같을 것이니, 괜히 끝난 이 일로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려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만 퇴궐하세요. 또한 앞으로 이유 없이 궐내에서 묵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사가에서 새아기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양화당을 나온 신성군은 나인들이 자신을 보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눈물을 훔쳐냈다.

하지만 아무리 훔쳐내도 속상함에 터진 눈물은 쉽사리 그치려 하지 않았다. 정원군은 그런 신성군의 곁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의 청은 들어주지 않더라도 신성군의 청이라면 늘 들어주던 인빈의 단호한 태도를 보자니, 이 혼사를 물러달라고 하더라도 전혀 먹혀들 것 같지가 않았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자신과 혼사를 올리게 될 병판대감의 여식이 다름 아닌 형 신성군이 마음에 둔 처자였다. 이를 또 어찌 한담!

“저…… 형님…….”

정원군이 어렵사리 신성군을 불렀다.

그러나 잔뜩 붉어진 눈으로 정원군을 한 번 노려본 신성군은 몸을 홱 돌려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정원군은 무거운 침을 삼키며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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