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수라간 생활(3)
흰색
밤이 깊어가고 취조가 시작되었다.
행궁의 마당에 추국청(推鞫廳, 죄인을 심문하는 임시 관청)이 설치되고, 난 그 한가운데에 의자에 앉혀졌다. 달아날 생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 팔과 다리를 나무의자에 꽁꽁 묶였다.
곳곳에 놓여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롯불이 내 신경을 자극했다. 한밤중에 진행되는 심문은 어두운 주변 탓에 험악한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었다.
“어허.”
누군지도 모르는 흰 관복을 입은 남자들이 헛기침을 하며, 하나 둘씩 추국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 앞쪽에 상석에 놓인 단 하나의 의자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줄지어 섰다.
왼편으로 세 명. 오른편으로 세 명.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관복이 붉은색이라는 것과, 중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높은 관직의 사람들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죄인의 이름이 김경민이 맞는가?”
나는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 이름 앞에 붙은 ‘죄인’이라는 말을 인정하는 게 될까 싶어서였다.
“대답하게.”
내가 대답을 주저하자, 멀찍이 서 있던 병사 한 명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병사에 손에 들린 몽둥이처럼 생긴 나무막대에 내 시선이 쏠리는 바로 그때였다.
“정원군마마 드십니다.”
맨 마지막으로 추국청에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정원군이었다.
그는 상당히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긴장한 얼굴에 비하면 내 얼굴은 거의 사색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는 추국청에 들어서자마자 잠시 내 얼굴을 응시하더니, 곧 상석에 빈자리로 놓여있던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그의 왼편에 서 있던 한 대신이 정원군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심문을 시작하시지요.”
그때 정원군의 오른편에 서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에 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주리를 먼저 틀어야겠소!”
그러자 정원군이 그 남자 쪽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병판대감. 아직 혐의만 있을 뿐이오.”
“혐의라니요? 증거도 있사옵니다.”
“증거라니요?”
“전하께서 피를 토하신 것이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곧 독이 어떤 독인지 밝혀진다면, 저년도 굳게 입을 다물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당장 날 죽일 듯이 기세등등하게 말하는 저 남자가 바로 병조판서였다. 정원군은 더 이상 병조판서와 말씨름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시 심문이 시작되었다.
“죄인의 이름이 김경민이 맞는가?”
나는 긴장한 채 정원군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김경민은 맞아요. 하지만 죄인은 아닙니다.”
“허허! 저 계집이……!”
또다시 나서는 병조판서.
“어제 양화당에 야참을 만들어 올린 이가 맞는가?”
또다시 심문이 이어진다.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
“음식에 들어간 재료는 무엇이었는가?”
“닭고기와 삶은 계란. 현구자 열 몇 알 정도 됩니다. 거기에 간장과 들기름. 소금을 사용해서 소스를 만들었는데…….”
“소스라니?”
“아……. 소스는 양념이에요.”
“저거요, 저거! 저 소스라는 것이 독의 이름이 틀림없소!”
정원군이 흥분한 병조판서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그가 직접 나서서 나를 고문이라도 할 분위기였다.
심문관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수라간에서는 어떤 일을 맡고 있는가?”
“전 수라간에 들어온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주로 잡일을 합니다.”
“잡일을 하는 나인이 어찌하여 전하께서 드실 야참을 만들었단 말이냐?”
“그날 전하께서 양화당에 계신 줄은 몰랐어요. 저는 인빈마마께서 드시는 야참인 줄 알고 만든 것입니다.”
“아무리 전하께서 계시는 줄 모르고 인빈마마의 야참을 만들었다고 하나, 어찌하여 수라간 상궁에게 고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하였는가?”
“그건…….”
제일 먼저 나인들을 떠올렸다. 나에게 야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그녀들을 말이다. 그녀들은 전하가 인빈마마의 처소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 수도 있고, 알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나를 골탕 먹이기로 작정하고 이 일을 벌였다면, 남은 음식을 함께 먹으며 수다나 떨다가 갔을 리는 없다. 그러니 일단 죄가 없는 그녀들까지 이 일에 연관시킨다면 일이 커진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도무지 저 눈을 부라리고 있는 대신들을 바라보면서 대답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서 바른대로 대답하지 못할까!”
병조판서의 다그침에 놀란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바로 내 앞에 이런 나를 걱정스러운 듯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는 정원군이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나를 도와주기 위해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를 도와주기에는 내 억울함이 풀릴 만한 증거가 현재로서는 한 가지도 없었다.
“전 인빈마마의 은덕으로 수라간 나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빈마마의 총애에 보답하고자 늘 기회를 바라고 있었는데……. 어제 인빈마마께서 야참을 드시고 싶다 하셔서, 은덕을 갚을 마음에 상궁마마님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직접 만들었습니다.”
“거짓이요. 거짓이 분명하오!”
“허허, 병판. 아직 허 의원의 진맥결과가 나오지 않았소. 그러니 섣부른 판단은 맙시다.”
“우상대감!”
병조판서와 우의정. 거기에 왕족인 정원군까지 참석한 추국청이었다. 나는 보통 사태가 아니라는 걸 감지하고는 몸을 떨었다.
“정원군마마. 죄인에게 형벌을 가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 죄인이 입을 열 것입니다.”
우의정에게 밀린 병조판서가 정원군에게 말했다. 지금 여기에 모인 그들로서는 왕이 피를 토한 이유를 찾아내야 했고, 어떤 결과를 얻어야 했다. 그리고 혐의를 가진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나를 어떻게든 쥐어짜내 답을 찾으려는 듯 보였다.
정원군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가득하다.
“그럼, 형을 내리겠사옵니다.”
병조판서가 독단적으로 나섰다.
“저 죄인의 주리를 당장 틀어라!”
병조판서의 명령이 떨어지고, 곧바로 내 양 옆으로 병사들이 지렛대로 보이는 나무를 들고 다가왔다. 난 나에게로 다가오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전 독을 넣지 않았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사들이 묶인 내 다리 사이로 지렛대를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또 다른 병사는 내게 다가와 내 무릎 위에 묵직하고 납작한 돌덩이를 올려놓았다. 아마도 주리를 틀 때,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보였다.
무거운 돌덩이가 내 무릎 위에 놓이자, 내 양옆에 서 있는 병사들이 바깥쪽으로 지렛대를 잡아당기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차마 보지를 못하고 두 눈을 질근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멈추시오!”
“멈춰라!”
정원군의 목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하아…….”
고문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에 멈춰진 여파로 나는 놀라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추국청 안으로 누군가 급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허준이었다. 정원군 역시 앉아있던 의자에 일어서 있었다. 그는 허준이 오는 것을 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허 의관. 전하의 곁에 있어야 할 그대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오?”
우의정이 허준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허준이 우의정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정원군에게 말했다.
“독이 아니었습니다. 독이 아니었습니다, 정원군마마.”
“독이 아니라니? 그것이 정말이요?”
“예.”
“독이 아니라니? 그럼 어찌 전하께서 피를 토하셨단 말이오!”
병조판서가 각혈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물었다. 그러자 허준이 이번에는 병조판서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피를 토하시게 된 것은 밤새 기침하신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원래 밤에 기침이 잦으십니다. 특히 지금은 날이 추워지는 시기라 더욱 기침을 조심하셨어야 했는데, 어젯밤 야참으로 찬 성질이 강한 음식을 드시고 기침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양화당의 나인이 불을 때는 것을 잊었다 합니다. 날이 추운데다가 불을 때지 않은 곳에서 지내시다 보니, 찬 기운을 잔뜩 머금은 옥체가 병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약을 드시고 많이 나아지셨습니다.”
“그 말은……. 아바마마께서 괜찮으시다는 것이오?”
정원군이 확인하듯 허준에게 물었다.
그러자 허준은 고개까지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예.”
허준의 입에서 왕이 괜찮다는 확인까지 나오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무죄였다. 선조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평소 기침이 잦다. 그런데 하필 어제 먹은 찬 음식에 불까지 때지 않은 방에 머무르다가 기침이 심해졌고, 그 결과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찬 음식을 올린 저 죄인을…….”
“병조판서 대감. 전하께서 대감을 찾으십니다.”
허준의 말에 병조판서가 하던 말을 멈추고는 급히 추국청을 빠져나갔다. 그를 따라 우의정을 비롯한 병사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내 옆에 서 있던 병사들도 내 무릎에 올려놓은 돌을 치우고 지렛대를 빼냈다.
“인빈마마께서 정원군마마를 찾으십니다.”
허준이 작은 목소리로 정원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때, 정원군은 여전히 의자에 묶여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겠네. 곧 가지.”
뒤늦게 허준에게 대답을 준 정원군이 천천히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 바로 앞에서 멈춰 서서는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모두 물렸다.
이제 추국청에는 의자에 묶여있는 나와 정원군뿐이었다. 정원군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몸을 굽혀 의자에 묶인 내 발과 손의 줄을 풀어주었다. 날 자유롭게 풀어준 뒤에도 정원군은 굽힌 몸을 펴지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원군마마……?”
내가 미동도 하지 않는 그를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불렀을 때였다.
“내 탓이오…….”
“네?”
“내가 그대를 수라간으로 보내라 어머님께 그리 부탁했소. 그래서 그대가…….”
난 그가 자신으로 인해 수라간으로 가게 된 내가 이런 고초를 당했다고 여긴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수라간이 아니라 침방으로 갔었더라도, 난 궁궐에 남아있게 된 사실 하나만으로 기뻤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의 죄책감을 덜어주려 서둘러 위로의 말을 늘어놓았다.
“아이참, 그거랑은 관계없어요. 제가 운이 나빴던 거죠. 사실 전 남을 도와주는 거랑은 절대 안 어울린다니까요.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건데, 어제 수라간 궁녀들이 갑자기 제게 부탁하더라고요. 인빈마마 야참을 좀 만들어달라고요. 거기에 괜히 잘난 척한다고 나섰다가 이런 꼴 당한 거죠.”
“경민…….”
그제야 정원군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정원군마마.”
정원군이 내게 미안해할수록, 이상하게 내 마음에는 부담감이 커진다. 아마도 그것은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
임금님 ‘각혈’ 사건 이후 나는 수라간에서 쫓겨났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처소를 옮기지는 않았다.
수라간을 떠난 내가 가야 하는 곳이 정해지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좁은 행궁에서 마땅히 새로운 거처를 찾아주는 것이 어려워서인 듯 보였다. 어쨌든 그 덕에 수라간 소속 무수리로 들어온 운지도 계속해서 날 모실 수 있었다.
추국이 있었던 그 다음 날 아침. 인빈이 날 불렀다.
“널 수라간으로 보낸 뒤에도 내 밤잠을 설친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마녀 인빈’의 앞으로 불려가 나는 혹시라도 그녀의 변덕스런 비위를 거스를까, 고개를 숙인 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다행히도 전하께서 어제의 일을 내 소관으로 내려주시어 잘 수습되었다만, 네년이 추국청에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나뿐만 아니라 정원군까지 다칠 뻔했다.”
어제의 일로 정원군까지 다칠 뻔했다는 인빈의 말을 난 이해하지 못했다. 난 인빈의 추천으로 수라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 그런 내가 독살사건과 연루되었다면 골치 아파지는 건 인빈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원군은 왜 다칠 뻔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밀려오는 궁금증에 시선을 들어올리던 나는 인빈의 시선과 마주치자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인빈이 그런 나를 향해 말했다.
“정원군 그 아이가 전하께 자신이 추국하여 일을 소상히 밝히겠다며 주청을 드렸다. 어미와 자식이 서로 이 일을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나서는 꼴이라니. 사헌부에서 우리 모자에게 누명을 씌우기에 딱 좋은 먹이거리를 만들어준 셈이지.”
어머니인 인빈과 아들인 정원군이 서로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말한 것. 다른 관점에서 이를 본다면 인빈이 전하를 시해하려고 작정한 것을 정원군이 막기 위해 나선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원군이 이 일에 관련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어머니의 죄를 덮기 위해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가 추가될 수도 있었다는 인빈의 상황적 말이 이제야 난 이해가 되었다.
“고개를 들어라.”
인빈의 명이 떨어지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녀와 시선을 맞추지는 않았다. 내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것은 왠지 소름끼치게 싫었다. 정원군은 그토록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어머니인 그녀는 정원군과는 전혀 달랐다. 둘이 모자 사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수라간에서 고생깨나 해서 죽을상이 된 줄 알았더니……. 여전히 반반하긴 하구나.”
그녀가 나를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널 아직 나인 명부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 아마도…….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라간에도 더 이상 둘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네게 선택할 권한을 주마.”
그제야 난 인빈과 시선을 맞췄다.
“내 아들 정원군이 널 위해 그리 나서는 걸 보니, 네가 단단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간 며늘아기 때문에 내 아들의 원을 풀어주는 것을 고민했기에, 널 나인 명부에도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의 일로 이 고민은 계속할 수 없게 되었구나. 네 이름이……. 경민이라고 했느냐?”
“예에, 마마.”
“널 내 아들의 첩으로 주고자 하는데, 넌 어떠하냐?”
“예?”
나는 뜬금없는 인빈의 말에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놀란 내 얼굴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평생 구중궁궐에서 사내의 손도 닿지 못한 계집으로 죽느니, 네게는 그 편이 낫겠지.”
“그게…….”
“오오? 싫으냐?”
“그게 아니라……. 제가 감히, 어찌 감히 정원군마마의 첩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의외로구나. 너 같은 계집이 주제를 알고 거절하다니? 아니면 속내는 다른 것이냐? 겉으로만 거절하는 것이야?”
“전…….”
“정녕 싫다면, 이제라도 네 이름을 나인 명부에 올려 정식 나인으로서 궐에서 지내게 해 주마. 그리되면 죽기 전에는 궐을 떠나지 못할 것이야. 그래도 상관치 않겠다는 것이냐?”
죽기 전까지는 궁궐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는 인빈. 그러나 아빠를 만나고 그 전에 한 번이라도 광해군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나는 궁궐에 남아야만 했다.
더욱이 이 조선시대에서 궁궐을 떠나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각오한 나는 인빈을 향해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답했다.
“예. 전 나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인이 되어 이 궁궐에서 살고 싶습니다. 마마.”
그러자 인빈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인빈이 말했다.
“좋다. 정 상궁, 거기 밖에 있는가?”
“예, 마마.”
인빈의 말에 바깥에서 중년의 상궁이 재빨리 들어와 몸을 숙였다.
“앞으로 이 아이를 양화당에 두게. 그 전에 제조상궁에게 말해, 이 아이가 내 사가에서 들어온 아이라 말하고 나인 명부에 이름을 올리라 전하게. 그럼 알아서 조치해 줄 것이야.”
“예, 마마.”
“그러나 이 반반한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 적당히 안 보이는 곳에 두고 일을 시키게.”
“예, 명 받잡겠사옵니다.”
정 상궁은 말을 마친 인빈이 내게서 고개를 돌리자, 나에게 눈짓을 주며 따라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인빈에게 인사를 하고는 정 상궁을 따라 인빈의 전각을 나왔다.
정 상궁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를 매서운 눈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수라간 궁녀였다지?”
“네. 상궁마마님.”
“어제 그 사단을 만들었던 것도 네가 맞느냐?”
그러나 이번 그녀의 질문에는 난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하지 않아도 그녀의 매서운 눈초리는 이미 모든 것을 들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좋다. 마마께서도 네 얼굴을 보기 싫다 하시니, 앞으로 양화당 퇴선간에서 일하거라.”
퇴선간. 음식이 들어가고 빠지는 그 중간 과정에 있는 곳이다. 모든 전각에는 구석에 하나씩 있는 공간이기도 한데, 작은 부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라간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먼저 퇴선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상전이 식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대기하게 된다. 그때 식은 음식은 그곳에서 살짝 덥히기도 하기 때문에 작은 아궁이가 딸려 있는 게 대부분의 구조다.
조선에 와서 처음 광해군을 보았던 곳도 다름 아닌 중궁전 퇴선간에서였다.
보통 퇴선간은 수라간에서 음식을 가져온 궁녀들이 상전이 식사를 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대기하며 음식을 관리한다. 그런데 그 일이 양화당 소속 궁녀가 된 내게 내려졌다는 것은, 하루 종일 그 좁은 아궁이 전각을 떠나지 말고 처박혀 있으라는 소리와도 같다.
인빈은 정말로 내가 보기 싫은 모양이다. 어차피 나도 ‘마녀 인빈’과 마주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퇴선간은 듣기에는 별로지만 앞으로 양화당에서 일하게 될 내게는 최선의 일터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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