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보모상궁이 되다(1)
흰색
콕콕……. 코코코콕…….
차갑고 작은 손이 내 볼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콕콕…….
“히힛.”
중간 중간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도 섞여있다. 이런 것들이 단잠에 빠진 듯 잠들었던 나를 깨웠다.
-코코콕…….
“헤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마치 무엇이 홀린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네다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내가 눈을 뜨자, 당황하며 놀란 눈으로 내게서 떨어졌다.
그 아이는 몇 겹이나 된 옷 위에 비단으로 만들어진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어서, 제 몸 하나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거기에 그 아이는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깨어난 것을 보자마자, 슬그머니 문 쪽으로 다가가가더니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동시에 나는 놀란 눈으로 문 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린 것인지, 소복이 쌓여있는 눈에 마치 낙엽이 떨어지듯 살랑살랑 떨어지는 눈을 보고나서야, 내가 조선으로 온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더불어 나를 붙잡으려고 했던 고모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나는 문을 통해 불어 들어오기 시작한 한기에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당기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복을 입고 조선으로 온 기억은 없는데, 어느새 하얀 저고리와 치마로 갈아입혀져 있었던 것이다.
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일반 민가가 아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기와집이 분명했다. 거기에다가 아까 본 아이는 누구일까? 무엇보다도 내가 제대로 된 시기로 온 것이 맞을까?
그때 열린 문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복장으로 보아하니, 궁궐의 상궁처럼 보였다. 그녀는 내가 누워있는 이불 발치로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깨어나셨습니까.”
“아, 네에…….”
“그럼 이부자리를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
“옷이라니요?”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그러더니 원래 하려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꺼내려는지 잠시 우물쭈물 거렸다.
“소인은 아는 게 없습니다. 소인이 아는 것이라고는,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궁인의 복장으로 갈아입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궁궐이에요?”
“예. 행궁입니다.”
“행궁?”
행궁이라면 왕이 거둥하는 임시 궁궐을 말한다. 사실상 왕이 머물면 민가라도 행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궁궐의 전각이라고 하기에는 일반 양반 댁 기와집에 가까운 구조를 하고 있었다.
상궁은 내 앞으로 옥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꺼내놓았다. 거기에 당의까지.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궁의 복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상궁이 내민 이 옷을 입기 전에 궁금한 것이 더 있었다. 분명 조선으로 오게 된 것까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행궁, 그러니까 궁궐 안에서 내가 깨어났단 말인가?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먼저 이 옷으로 갈아입으십시오. 곧 아기씨에게 사정을 알려주실 분이 오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상궁은 방금 전까지 내가 누워있던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상궁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옷을 다 갈아입었을 때쯤, 상궁도 이불을 다 정리하고는 나와 마주앉았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절대 잊지 말고 행하셔야 합니다.”
그녀는 꽤나 의미심장한 얼굴이었다.
“이곳은 행궁이지만 주상전하와 중전마마. 세자저하와 세자빈마마를 비롯하여 현재 왕자마마와 그 식솔들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절대, 그 어디에도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허락이 있을 때까지 절대 이 방을 나가서도, 이 방 안에서 소리를 내셔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다른 이들이 아기씨의 존재를 알게 될 경우, 큰 사단이 날 것입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험.”
그때 닫힌 문 밖에서 남자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상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바깥을 향해 공손하게 대답했다.
“들어오시지요.”
먼저 일어선 상궁은 나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나 보고도 일어나라는 것 같았다. 뒤늦게 이를 알아챈 나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갓을 쓴 젊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략 20세쯤 되었을까……. 좀 더 젊게 본다면 나와 동갑인 듯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추운 밖에서 들어왔기 때문인지, 갓 아래에 담비로 만들어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담비는 조선시대 일반 양반들도 함부로 가지지 못할 정도로 고가품이었다. 이곳이 행궁이라고 했으니, 저 남자는 왕족인 걸까?
내 의문은 옆에 서 있던 상궁이 대신 풀어주었다.
“정원군마마.”
그녀가 그에게 올리는 인사말 속에서, 나는 그가 ‘정원군’이라는 이름의 왕족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정원군은 상궁에게서 인사를 받자, 그 다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시선을 상궁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나가보게. 또한 이 일은 입단속을 다시 한 번 해 두도록 하고.”
“예에, 명 받잡겠나이다.”
상궁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가자, 이제 방 안에는 정원군과 나, 이렇게 단 둘만 남게 되었다. 그는 잠시 동안 내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색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서 있기만 할 수 없다고 느낀 건지, 내 쪽으로 성큼 발을 옮겼다. 그리고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안쪽에 상석에 스스로 방석을 깔고는 자리에 앉으며 내게 말했다.
“앉게.”
나는 그의 발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대충 편할 대로 앉았다가,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을 느끼고는 뒤늦게 조선 여자들처럼 자리를 고쳐 앉았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불편한 자세로 앉아 손을 공손히 모으는 것은 말이다. 그러나 4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세종조 조선에서 엄격하다면 둘째라면 서러울 강 상궁 아래의 생각시였다. 특히 세종대왕의 부름을 자주 받았던 나를 강 상궁은 더욱 엄격하게 가르쳤다. 그때 배운 것이 4년 만에 다시 쓰이게 될 거라고는 그땐 상상조차 못했었다.
“어찌하여 소저께서 이 행궁에 있게 되었는지 궁금하리라 믿소.”
“저를 여기로 데려오신 분이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질문을 내뱉은 나를 보며, 그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시선을 내게서 돌리더니 피식거리며 웃는 게 아닌가? 그의 웃음을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갓 쓴 남자가 웃는 건 그 녀석 이후로 처음이라서 그렇게 생각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그의 시선이 다시 내 얼굴을 향했다.
“그 나라는, 그러니까 소저의 나라는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여인이라면 다들 그리도 당돌한 모양이오.”
“……!”
나는 그의 말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나라’라니? ‘소저의 나라’라니? 지금……. 이 사람 내가 온 것을 알고 있어? 어떻게?
놀란 내 얼굴을 보며 그가 조금은 굳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해서 짚어본 것인데……. 사실인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정원군’이라는 신분을 알게 해주는 이름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정중하게 나오는 그의 태도 때문일까? 나는 평소 내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존칭을 최대한 써가며 그에게 묻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소. 그리고 오늘 낮에 사냥터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었소. 바람이 사라지자 그곳에 소저가 있었소. 분명, 갑자기 나타난 것이오. 난 그리 보았고, 그리 확신하오. 그런데……. 오래전에 어떤 분께서 바람과 함께 나타나고 사라져야만 볼 수 있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었소. 그래서 내 짐작해본 것인데…….”
“그 분이 누구죠?!”
아빠가 아니라면, 이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그 분에 대해서는 내 함부로 입에 올릴 수도 담을 수도 없기에…….”
“광해군인가요?”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 나온 ‘광해군’이라는 말에 그가 한쪽 눈을 치켜 올려 뜨며, 나를 응시했다. 지금 저 남자의 눈빛은 내가 정답을 말했다는 걸까?
“그가 지금 여기에 있나요? 그 사람을 만나야 해요! 지금 당장!”
광해군이 있는 곳을 알려주면 당장이라도 이 방을 박차고 나갈 기세인 나를 보며, 그는 한참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잔뜩 흥분한 내가 어느 정도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런 부분만 보더라도, 그는 상당히 침착한 성품이 소유자가 분명해 보였다.
“만약 소저가 찾는 분이 이곳에 없다면, 그래서 만날 수 없다면……. 또다시 바람이 되어 사라질 것이오?”
나는 정원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광해군이 아니라는 걸까? 아니면 광해군이 죽은 지 한참 뒤의 시대로 온 것이라는 걸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는 말이다.
“제가 쓰러져 있을 때, 무엇을 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제발, 제발…….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광해군이라면, 그 사람을 지금 만나게 해 주세요!”
“그 분을 어찌 만나려는 것이오?”
“어찌 만나다니요? 왜 만나냐고요?”
“그렇소.”
“그건 그 사람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겠어요!”
부탁해야 한다. 내가 궁궐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적어도 날 알고 있을 테니까, 어느 정도 도움은 주겠지. 무엇보다 아빠가 나타나는 인목대비를 폐궁하는 시기에 그가 조선의 왕이 된다. 그러니 전적으로 그의 도움이 내겐 필요했다.
“내가 불허한다면.”
“네?”
“그것은 불가하오.”
“어째서요? 정원군이시라면 왕족 아니세요? 그럼 그를 만나게 해주는 건 어렵지 않으시잖아요? 좋아요. 그럼 제가 여기에 있다고만 전해주세요. 그러면 그가 날 보러 오진 않아도, 나 보고 보러 오라고는 할 테니까요.”
“어찌 그리 확신하시오? 그 분이 그리 말하실 것이라고 말이오.”
“그거야…….”
광해군이 말한 대로 우린 친구니까. 아니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조선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내게는 광해군뿐이었다.
“그거야……. 내가 그를 만나면 알게 될 거예요!”
확신은 아니지만 일단 우기고 보기. 광해군을 만나야 어떤 수가 생기지 않겠는가? 나의 고집이 담긴 발언에 정원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불가하다 하지 않았소.”
“어째서요?”
“먼저 이곳은 행궁이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좁은 행궁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소. 그런데 신분조차 확실치 않은 그대가 그 분을 알현한다는 것은…….”
“잠시만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니요?”
광해군이 현대로 왔었던 것은 1592년. 아빠가 함경도 회령에서 돌아가신 것도 1592년이다. 그때는 막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 그런데 지금 이 정원군이라는 사람은 전쟁이 끝난 뒤라고 한다. 지금이 전쟁이 끝난 뒤라면, 대체 몇 년도라는 거지?
“내가 말한 그대로요. 왜적이 물러간 지 몇 해 되진 않았소만.”
“올해가 몇 년도죠?”
내 질문이 의외라는 표정의 정원군.
당연할 것이다. 어디 깊은 산 속에서 살다 나온 것이 아닌 이상,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한 조선인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는 내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판단했는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만력 27년이오.”
“만력 27년(1599년)…….”
1592년. 막 세자가 된 광해군은 나와 동갑인 만 17세. 그러나 지금은 그로부터 7년이나 흐른 뒤였다. 7년이라니, 1년이나 2년도 아니고 7년이나 흐른 뒤로 와 버리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광해군이 세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왕이 되는 건 지금으로부터 9년 뒤. 아빠가 있었던 인목대비 유폐가 일어나는 건 광해군 즉위 후 4년 뒤. 아직 여유가 있다. 문제는 그 여유라는 시간 동안 내가 궁궐에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
광해군은 7년이나 지났는데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더 궁금한 것은 없소?”
정원군이 내게 물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요, 정말……. 그에게 들었나요?”
“그 분께 들었소.”
‘그 분’을 강조하는 그의 말투에, 내 신경이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7년 뒤라는 것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 상태에서 광해군은 그저 나와 동갑이던 모습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 7년 전이라서 그가 나와 동갑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세자다. 지금도 세자이고, 그때도 세자이고. 함부로 입에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겠지.
나는 다시 한 번 여기가 조선시대임을 상기했다. 무엇보다 이 정원군이라는 사람을 잘 이용해야만 일이 쉽게 풀려 광해군도 빨리 만날 수 있게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좋아요, 그 분. 그 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불가하오.”
불가, 불가, 불가! 대체 불가 소리만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럼 나중에라도 만나게 해 주실 수 있어요?”
“시기를 봐야 할 것 같소만. 약속할 순 없소.”
“한시가 급해요! 하루가 급하다고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저의 사정이오.”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정원군이 슬슬 미워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대놓고 말싸움이라도 해서 광해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고 싶은데, 이성이 겨우 이런 내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랬다. 여기는 조선이다. 그리고 나는 돌아갈 수 없다. 아니,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지금으로써는 일단 광해군을 만나는 게 중요했다. 그를 만난다고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해결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럼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죠?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건, 그가 한 말을 믿는다고, 그래서 그를 만나게 해주려던 게 아니었나요?”
내 말 중 어떤 말이 그의 정곡을 찌른 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지금까지 그 어떠한 여자도 그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이 없던지. 왜냐하면 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살짝 어렸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시선을 내게서 거두더니, 닫혀있는 창밖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것이 꽤나 긴 시간처럼 느껴져서, 그의 생각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빨리 답을 얻으려는 것이 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대답은 내가 느낀 긴 지루함에 비해, 현실적으로 빨리 나왔다.
“여인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소. 그러나 소저에게는 설명이 필요할 듯싶군.”
“설명이라니요?”
“지금 주상전하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은 모두 이 좁은 행궁에서 머물고 있소. 새로운 궁궐의 공사는 시작조차 하지 못하였소. 그러니 언제까지 이곳에서 지내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소.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오?”
“지금 내가 있는 이 궁에 그도 있다는 거지요.”
정원군이 하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나의 발언에, 그가 어이없다는 듯 짧은 웃음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궁궐 말에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소. 그런데 지금은 밤말도 새가 듣고, 낮말도 쥐가 듣소.”
“그게 무슨 말이죠?”
“다시 말해서 이 좁은 행궁 안에 궁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왕자들의 식솔과 그 노비들까지 거주하여, 혼잡하기 이를 데 없소. 이런 데에서는 소문이 나기 쉬운 법이지.”
“그 말은……?”
“세자저하를 뵙고 싶소? 낮이든 밤이든 불가하오. 그 분은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으시는 분이오. 특히 그분의 정적들에게는.”
지금 정원군의 말은, 광해군을 끌어내리려는 세력들이 많다는 건가? 그리고 그들의 감시의 눈을 피해서 내가 그를 만날 수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뭐가 그리 복잡한 거지? 나는 그를 만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단 말이야.
“때가 되면 그 분을 만날 수 있게 해 드리겠소. 내 약조하리다. 허나, 그 전까지는 불가하오.”
‘또 나왔네, 또. 그 불가라는 말.’
“하지만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어요. 난 이 조선에서 갈 곳도 없고……. 그리고 정원군께서 말씀하신대로라면, 궁에 사람이 많아서 나에 관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하려고요?”
돌이켜보니 아까 그 상궁도 내 존재를 다른 이들이 알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준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보다.
“그건……. 내 생각해 둔 것이 있소.”
유오디아 작가의 말
작가 블로그
이미 소제목에서 다 들켜버린 정원군의 생각...ㅠ9ㅠ
광해의 연인 관련상품
eBook
광해의 연인
다음화 미리보기
종이책
광해의 연인 2 책
구매하기
별점
9.9
4,238 명의 회차별점입니다.
별점주기
좋아요 34
관심등록SNS 보내기
이전화
다음화
목록
댓글 553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