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해의 연인-8화 (8/110)

제8화. 시간을 넘어서(2)

흰색

-네 이년!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알람은 바뀌지 않았다. 이 알람 소리는 아빠가 재미있어 하시던 거였다.

나는 스마트폰의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전날 밤의 꿈이 뒤숭숭해서인지 잠을 깊게 잠들지 못한 것 같았다.

꿈속에서 광해군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가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나를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지 꿈일 뿐이겠지만, 그에게 나를 만났던 건 한 편의 재미있는 추억거리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현실이다. 난 아빠를 잃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여전히 힘들었다. 더욱이 방문을 나서면 아빠가 떠났던 그 날 그대로인 집을 보면서 더욱 더 아빠가 그리워졌다. 내 방을 나와 아빠의 서재로 들어선 나는 책으로 가득한 방 안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내가 만약 미국으로 가면……. 이 집의 물건들은 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까마득하다.

고모에게 전화한 건, 잘한 건지 아닌 건지 아직 확신할 순 없다. 그러나 누군가 어른이 챙겨주려고 한다는 건 나쁘지 않다. 그 사람이 나에게는 낯선 친척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는 서재를 둘러보다가 며칠 전 광해군이 쓰러뜨렸던 책들을 묵묵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광해군에게 건네주었던 ‘정감록(鄭鑑錄)’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들어 올리며 잠시나마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런 잡서 따위도 읽지 않으니까, 왜란 따위나 겪었던 거라고.’]

그가 광해군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떠들어 댔던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러나 곧 웃음은 눈물로 바뀌어버렸다. 눈물이,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눈물이 정감록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책을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아빠의 손때가 묻은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조선왕조실록도 있었다.

난 사실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나마 남들보다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건, 아빠의 덕분이었다. 8살 때 세종대왕의 시대로 가게 된 것도, 단순히 어린이용 위인전기에서 나온 세종대왕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종대왕은 멋진 분이시긴 했다. 신분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고, 날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무수리도 아닌 정식 생각시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니 말이다. 그 덕에 나는 세종대왕 소생의 옹주님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 시절이 마냥 불행하다고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좋았고 편해졌을 무렵 아빠가 날 찾아냈고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빠는 ‘광해군’에 관한 연구에만 매달렸다.

정확히는 내가 15살이 되던 어느 날. 문득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꺼내셨다.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의 첫 시작은 인조반정부터였다.

[‘경민아. 조선시대에는 총 두 번의 반정이 있었지. 연산군 때의 중종반정. 그리고 광해군 때의 인조반정. 이렇게 두 번이. 이 두 반정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니? 연산군 때의 중종반정은 모든 사람들이 연산군의 폭정에 견디다 못해 합심해서 연산군을 폐위시켰지. 그만큼 연산군이 말년에 저지른 죄가 컸으니까. 신하들이 그런 연산군을 쫓아 보내고 그들 스스로 진성대군을 왕으로 선택해 그를 중종으로 만들어주었지. 하지만 광해군의 인조반정은 다르단다.’]

[‘어떤 게 다른데요?’]

[‘백성들 그 누구도 광해군이 포악하다거나 그가 나쁜 왕이라서 쫓겨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저 광해군과 그의 정치적 기반인 북인에 대한 불만을 가진 서인 세력을 인조가 이용한 거야. 인조는 그 스스로가 광해군과 그의 정치세력인 북인에 대해 불만을 가진 서인들을 끌어 모았지. 단 하루 만의 일이었다. 단 하루 만의 정치적 반정에서 광해군은 패배한 거야. 그래서 광해군은 제주로 쫓겨나면서도 언젠간 자신이 복위될 거라고 굳게 믿었단다. 죽는 날까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지. 결국 조선은…… 서인들의 세상이 되었단다. 인조는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게 편이 되어준 서인을 무시하지 못했고, 조선은 그때부터 서인독재 시대. 붕당의 시대가 열리는 거란다. 그렇게 조선은 쇠퇴하기 시작한 거지.’]

아빠는 유독 광해군 문제에 관해서는 상당히 열정적이셨다.

[‘인조와 서인들이 광해군을 왕위에서 쫓아내면서 갖다 붙인 명목 중에는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거기에 죽이려고까지 했다는 죄명이 있었단다. 어째서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죽이려고 한 것일까? 적어도 그들은 광해군 즉위 초반까지는 정치적으로도 화합하는 분위기였거든. 아무리 자신보다 9살이나 어린 계모라지만 광해군은 왜 그렇게까지 했었을까…….’]

[‘아빠가 그때도 가서 보았어요?’]

[‘그래. 봤단다. 나 역시 인목대비가 폐위되어 서궁으로 불리게 된 그날, 궁궐에 있었지. 그리고 그곳에서 지켜보았단다. 광해군은 아주 화가 나 있었어. 신하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직접 사약을 들고 인목대비에게 찾아갈 듯이 그렇게 말이다. 대체 어린 시절부터 역사책을 좋아하고 영민하던 그가 왜 그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또 그것으로 자신의 몰락을 가져오게 만들었는지…….’]

그때 난 어려서 그런지 별 생각 없이 아빠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아빠가 가서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광해군에게.’]

그러자 아빠가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아니야, 경민아. 아빠가 시간을 뛰어넘어 그 시대로 가서 직접 두 눈으로 역사적 사건을 볼 수 있고, 당사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볼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 역사 속 인물들의 속마음까지는 들여다볼 수가 없단다. 그것이 바로 시간여행자들이 가진 한계 중의 하나인 거지.’]

‘시간여행자의 한계…….’

아빠는 대체 무엇을 보시려고 1592년에서 그런 죽음을 맞이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걸까?

-딩동

벨소리에 나는 서재를 나왔다. 인터폰을 확인하니 고모였다. 약속한 시간보다도 일찍 찾아오신 모양이었다. 문을 열어드리자, 식빵과 잼. 버터 등을 가득 담은 봉지를 들고 들어오셨다.

“아무래도 네가 아침을 잘 챙겨먹지 못할 것 같더구나.”

그러더니 식탁에 사온 물건들을 풀어놓으시며 말했다.

“아침에 빵 먹는 건 괜찮니?”

“아,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네. 그럼 점심은 밖에서 밥을 먹자. 그건 그렇고 오는 길에 구청에서 일찍 네 아빠 실종신고를 했어. 일단 경찰이 조사를 나온다고 하더구나.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경찰이 조사도 나오나봐. 요즘 미국도 그러기는 하지만.”

“그런데 고모. 어제 말씀하신 거요. 할아버지도 시간여행에서 돌아가셨다고…….”

“맞아. 고려시대였을 거야. 고려 후기. 오빠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우리 집안이 저주받았다는 건가요?”

의자에 앉아 식빵에 잼을 바르던 고모가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더니 날 돌아보았다.

“네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도 모두 시간여행을 하던 도중에 죽었기 때문이야.”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증조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에 대한 건 할아버지에게 들었지만 말이다.”

“그럼 왜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빠는 막지 않았죠? 나중에라도 시간을 거슬러 가서 막았으면 되었잖아요.”

“네 아빠가 도대체 뭘 말해준 건지……. 잘 들으렴, 경민아. 만약 네가 시간여행을 해서 네 아빠가 죽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니?”

“그건…….”

“네가 전화로 그랬지? 이미 갔을 때는 오빠가 죽어가고 있었다고. 바로 그거야, 시간여행자는 그 날짜에 갈 수 있지만 시간은 맞출 수 없어. 그리고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경우는 더더욱 피해가듯이 가게 되지. 마치 어떠한 힘이 작용하듯이. 그래서 넌 오빠가 죽기 직전에야 그곳에 도착한 거야. 바로 오빠의 정해진 인생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증거지. 이것 역시 시간여행자의 한계라고 볼 수 있겠네.”

“좋아요. 아빠가 죽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아빠를 다시 볼 수는 없을까요?”

“오빠를 보고 싶은 거니?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요?!”

“오빠가 죽은 걸 네가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야. 그런 경우는 네가 시간여행을 하더라도 이미 죽었다는 역사적 ‘일’을 알고 있는 너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있는 오빠와는 마주칠 수 없어.”

“그럼 다시는 아빠의 생전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건가요?”

내 목소리가 조금 울먹거렸던지, 고모가 타이르듯 말했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난 그 방법은 말해주고 싶지 않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군요? 말해주세요!”

고모가 식탁 위에 놓인 유리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한 잔 마시더니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는 <시간의 뒤틀림>을 이용하는 거지.”

“시간의 뒤틀림이요?”

“그래. 아주 우연히 만나는 걸 기대하는 거야. 1초가 될지 10분이 될지 모르지만 과거의 오빠가 나타난 그 장소에 네가 먼저 가 있다가, 말 그대로 시간의 뒤틀림을 이용해 ‘우연히’ 만나는 거지. 그럼 아주 잠깐이지만 오빠를 볼 수 있게 될 거야. 하지만 뒤틀림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지는 우리 시간여행자들도 몰라. 네가 오빠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하더라도 뒤틀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만날 수가 없는 거지. 무엇보다도 그러려면 먼저 네가 과거로 가야 하는 건 알지? 더욱이 과거로 간다면 다시 원점인 이 시간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곳에서는 또다시 시간여행을 하지 못하고 갇히게 되잖니. 오빠는 이미 죽었으니 널 이곳으로 다시 데려올 사람도 없는데. 게다가 고작 그 1초가 될지, 10분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위해서 과거로 갈 생각은 아니겠지?”

듣기만으로도 아예 불가능한 방법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아빠가 언제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거기에 나는 정확한 날짜를 맞추어서 시간여행을 할 수 없는 여자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상 <시간의 뒤틀림>을 이용해 아빠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방법은요?”

“그건 말이다. 네가 ‘역사’의 일부가 되는 거야.”

“역사의 일부요?”

“그래.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역사의 일부는 될 수 있거든. 사실 나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이게 가능한지는 잘 몰라. 분명한 건 우리 집안의 여자만 가능하다는 거야.”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난 고모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고모는 나를 보며 말했다.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건 말이야. 과거로 돌아간 네가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무는 거야. 그럼 자연히 역사에 동화가 되지. 간단히 말하면 그래.”

“그게 아빠를 만나는 방법이 되나요?”

“맞아. 지금 2013년에 사는 너는 사라지고, 그 과거에 사는 네가 되는 거니까. 다시 말해 과거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라고나 할까? 그러면 너는 네 아빠의 죽음과도 관련이 멀어지니까, 과거의 사람으로서 시간여행자인 아빠를 만날 수 있는 거야.”

“잘 모르겠어요.”

내가 어려워하자 고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보자. 네 엄마가 의료사고로 돌아가신 건 알지?”

“네.”

“그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왜 오빠는 과거의 네 엄마를 만나러 단 한 번도 널 데리고 가거나 돌아간 적이 없는 줄 아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하게 곁에 없었던 엄마. 그 빈자리를 못 느낄 정도로 나에게 많은 애정을 주셨던 아빠.

“그래. 내가 설명해줄게. 오빠가 너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니, 내가 말해주어야겠구나. 잘 들으렴, 경민아. 넌 지금 17살이지? 네가 태어난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17년이 흘렀어. 넌 지금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날로부터 17년간 그 어떤 시대로도 시간여행을 할 수가 없어. 바로 동시대에 또 다른 네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같은 원리야. 오빠는 네 엄마가 살아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그 동시대에 또 다른 오빠 자신이 존재하니까 말이야. 그러니 아무리 그리워도 갈 수 없었겠지. 비극적이게도.”

고모의 목소리가 퍽이나 슬프게 들렸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태어나서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엄마가 아니었다. 나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시며 날 키워주신 아빠. 아빠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만이 궁금했다.

“그럼 고모의 말씀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으로 제가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네요?”

“맞아. 대신에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거야. 최근까지 오빠는 어느 시대를 주로 여행했니?”

“광해군에 관련된 조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주로 선조 말년부터 광해군 시기와……. 인조가 재위하던 시대를 다니셨어요.”

“그렇다면 선조 말년이 좋겠구나.”

“네?”

“그때로 네가 시간여행을 하는 거야. 그 시대에는 네가 존재하지 않잖니. 태어나질 않았으니까. 그러니 네가 그곳에서 살면서 역사에 동화되는 거지. 적어도 십 년 정도는 그렇게 과거에서 살아야 할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빠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고모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난 그런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그렇게 해서요? 그렇게 해서 아빠를 만나면요?”

“아마도……. 세월이 흘러서 네가 그 시대 역사의 일부가 되었을 테니까, 오빠를 만나기만 한다면야……. 오빠는 네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고 널 만나러 종종 시간여행으로 찾아올 수가 있게 되겠지.”

“아빠를……. 계속 만날 수가 있다고요?”

며칠 전 아빠를 잃은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나에게는 아주 솔깃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까지는 장담할 수가 없구나. 너도 알다시피 그렇게 해서 오빠에게 일어날 죽음을 미리 알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알지? 어떠한 물리적 충격이 너에게 가해질 거고, 심하게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상대방이 알게 되어 정해진 역사가 바뀌게 되는 사실을 내가 말하게 된다면, 물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죽음에도 이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그뿐만이 아니었다. 광해군 그 녀석이 담배를 손에 넣었을 때, 나에게 가해졌던 고통이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 고통 이상에 이른다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가서도 역사에 순응하며 산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네 말 한마디로 역사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넌 오빠를 만나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어. 미래를 알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 또 당해야 한다는 거야. 과거에 가서 그런 세월을 살겠다고? 이미 죽은 오빠를 만나기 위해서? 나는 반대다. 그런다고 꼭 만난다는 보장도 없잖니?”

고모가 반대한다는 말은 더 이상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 순간 나는 아빠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던 시기를 떠올렸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최근 몇 년간 광해군을 중심으로 한 연구 때문에 선조 말년부터 인조 재위기 사이를 계속해서 들락거리셨다는 것만 알 뿐. 정확히 언제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볼 때마다 물어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묻지 않은 것이 후회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은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기억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아빠가 말하기를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던 날 궁궐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날로부터 적어도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난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인목대비가 유폐되던 날에 아빠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아빠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니 궁궐에서 계속 지내며 살아간다면, 아빠를 다시 만날 기회는 분명 자주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0년이라……. 듣기만 해도 엄청 긴 세월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궁궐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세종대왕 시대에 갔을 때는 우연히 만난 세종대왕의 도움으로 생각시로 궁궐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궁녀라고 하기에는 이미 생각시를 벗어난 나이인 17살. 지금 나이로 내가 궁궐에 남아있을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있지 않느냐. 내가, 네가 알고 있는 내가 조선에 있지 않느냐. 그러니, 조선에 아예 아는 사람이 없다 말하지는 못하겠지.’]

‘광해군이 있었어! 그에게 부탁한다면? 무엇보다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할 때, 조선의 왕은 바로 광해군이잖아!’

광해군과 나는 안목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니 그에게 부탁해서 궁궐에 남아있게 해달라고 한다면 아빠를 만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아빠에게 일어날 ‘죽음’에 대해서도 어떤 암시를 줄 수 있다면…….

‘아빠가 죽지 않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이런 속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챈 것인지, 고모가 나섰다.

“헛된 생각은 하는 건 아니겠지? 네가 어려서 이 고모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데, 네가 역사가 된다는 것. 그건 오빠를 만나서 나중에 일어난 위험을 알려준다고 해도 넌 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는 거니까.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넌 그곳에서 살다, 그곳에서 죽어야 한다는 거야.”

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빠를 평생 보지 못한 채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비한다면 차라리 조선으로 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적어도 지금의 내 생각으론 그랬다. 그곳에서 아빠를 만난다면 계속해서 아빠를 만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니까.

‘조선으로……! 조선으로 가면……!’

단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내 안에서 무언가 강렬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 나 역시 당황했다. 그 반응은 따스한 바람이 아닌, 격정적인 어떤 바람이 되어 내 몸을 천천히 휘감기 시작했다.

고모가 무언가 눈치 챘는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경민아! 너!”

“고모…….”

“안 돼! 어리석은 생각하지 마! 그런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우리 집안 사람들도 모두 그게 가능하다고 여기다가 모두 실패하고 죽은 거라고! 그러니 어서 멈춰! 멈추라고!”

“하, 하지만……!”

멈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강렬한 무언가가, 아빠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어디론가 끌어갈듯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기는 이상했다. 아직 어느 시대의 어느 날로 갈지를 전혀 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김경민!”

고모가 점점 거세게 몰아치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동시에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아주 빠르게 돌아가며 내 정신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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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c4****) 2013-08-13 12:18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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