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왜란의 한가운데에서(2)
흰색
난 아빠를 찾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 녀석도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를 가려는 것이냐?”
“아빠를 찾아야 해!”
“네 부친 말이냐?”
“맞아. 내가 여기에 온 것도 그것 때문이잖아? 분명 여기 어딘가에 아빠가 계실 거야!”
“내가 찾아주마. 그러니 넌 일단 이곳에서 쉬도록 해라.”
“그럴 수는 없어!”
아빠가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분명 위급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나는 걱정으로 인해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래서 이 녀석을 향해서 소리친 것인데 오히려 주변에 있던 두 남녀가 기겁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본다.
아, 그랬다. 얘는 세자였다. 세자 광해군. 이 조선에서 어떤 여자가 멀쩡한 정신으로 세자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상황적 여유를 찾아볼 시간은 내게 없다.
“내가 직접 나가서 아빠를 찾게 해줘. 아빠는 나만 알아볼 수 있잖아?”
그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바깥의 상황이 안 좋은 건가. 그렇다면 난 더더욱 나가봐야 했다. 아빠가 이 안 좋은 상황 속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나섰다.
“저하, 서두르셔야 하옵니다.”
“이 내관.”
광해군이 한 손을 들어 그 남자가 말하는 것을 제지했다. 나는 그제야 평복을 입은 그 남자가 내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 저하.”
“이 여인에게 군졸 두 명을 붙여주게. 부친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허면 저하께서는 강원도로…….”
“겨우 불길을 잡았다 하지 않았는가? 이곳의 사태를 수습하고 민심을 안정시킨 후에 떠나겠네.”
“아니 되옵니다! 왜군이 이곳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사옵니다. 북상한 왜군이 언제 다시 이곳으로 남하할지 모르는 때이옵니다. 천운으로 저하께서 무사하셨사오니 속히 이 회령을 떠나 강원도로 가셔야 하옵니다.”
이 내관이 계속 재촉하자 광해군이 단호한 목소리로 내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세자로서 아바마마의 명으로 분조를 이끌게 된 것은 백성을 살피기 위함이네. 그런데 어찌 백성들을 두고 도망치듯 떠나라하는가? 그럴 순 없네.”
“저하!”
“물론 강원도로 갈 것이네. 그러나 지금은 아니네.”
나와 동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의젓함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젓한 인품에 감탄이나 늘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아빠를 찾아야 했다. 난 우선 그 집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하늘까지 덮고 있는 자욱한 연기였다. 그가 말한 대로 불길을 잡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마을은 온통 연기가 뒤덮고 있었다.
“콜록. 콜록.”
연기로 인해 기침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내가 깨어난 곳은 낡은 초가. 그 초가는 불길에 휩싸였던 마을에서 유일하게 불의 피해를 받지 않은 건물로 보였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세자인 녀석이 이곳에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경민아!”
나를 따라 초가에서 나온 광해군이 날 불렀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곳에 머물거라. 내가 찾아주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리도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곳에서는 아빠를 찾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그때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넌 너의 일이 있잖아. 내 일은 아빠를 찾는 거고, 너의 일은 백성을 돌보는 거잖아.”
내 정확한 지적에 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조금 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대신 약조해다오. 부친을 찾으면 바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알겠느냐?”
“알았어. 약속할게.”
나는 그에게 약속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불길이 잡힌 마을은 말 그대로 전쟁의 한복판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울부짖는 여성들과 아이들. 남은 잔불을 끄기 위해 뛰어다니는 남자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시신을 끌어안고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이름을 부르며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던 일들이 바로 지금 이곳에서 모두 벌어지고 있었다.
“콜록콜록.”
마을 안으로 들어설수록 안개처럼 자욱이 깔린 연기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것도 어려워졌다. 짚이 타면서 연기가 많이 났다. 대부분 민가가 짚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연기가 유독 심하게 나는 것 같았다.
“아빠! 아빠! 콜록콜록.”
아빠를 찾으며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시야를 가로막은 연기는 둘째 치고 그 연기로 인해서 소리를 내려고 할 때마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저……. 아가씨.”
광해군이 붙여준 병사 중 한 명이 기침을 하며 숨을 돌리고 있던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이렇게 연기 속에서 부친을 찾느니, 우선 시신을 모아둔 곳으로 가 보시지요.”
“시신을 모아둔 곳이라니요?”
“관청 앞뜰에 시신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곳에 아가씨의 부친께서…….”
“우리 아빠는 안 죽었어요! 왜 그런 곳으로 가서 찾아야 하는데요?”
내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치자 병사가 당황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니까 소인의 말은……. 어쩌면 그곳에 계실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우리 아빠는 안 죽었다니까요!”
병사들의 말이 내 마음 속 불안을 부채질했다. 난 그들을 놔둔 채 연기 속으로 몸을 던지듯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가씨!”
당황한 병사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난리 통에 죽은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런 죽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아빠를 여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 아빠는 나를 두고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1592년 임진왜란의 한가운데에서는 더더욱!
“아빠! 아빠, 저 경민이에요! 아빠 어디 계세요?! 콜록콜록…….”
뛰어다니며 소리칠 때마다 연기가 쉴 새 없이 입 안으로 밀려들어오며 목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 몸을 돌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인아야! 인아야!”
멀지 않은 곳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연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앞길에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나가던 두 병사들을 붙잡고는 다급히 물었다.
“이보시오! 칠세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를 보지 못하였소?”
“그런 여자아이가 지금 한둘입니까?”
“아니오. 그 아이는 색동 비단저고리를 입었소이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그런 귀한 옷을 입을 아이가 몇이나 되겠소? 잘 생각해보시구려!”
“색동저고리라……. 아! 기억납니다. 왜적처럼 생겼는데 우리말을 하는 이가 있었지요. 그가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아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뭐라더라, 경민인가……. 그 아이를 그리 부르는 것 같던데.”
‘경민이?’
나는 병사의 말을 듣자마자 그쪽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누가 ‘경민’이라고 말했다고요?”
그러자 병사가 나와 더불어 갓을 쓴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랬던 것 같기도……. 아니었던 것 같기도…….”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 있어요?!”
“그 여아가 지금 어디에 있소?!”
“저기 앞에 다친 자들만 모아둔 곳이 있소. 아마도 거기에 있을 거요.”
“다친 사람들이요?!”
“아이가 다쳤소?”
“아참! 내게 물어볼 시간이 있으면 어서 가서 확인을 해 보십시오. 다쳤는지, 죽었는지……. 우리야 알 길이 없지요.”
병사가 무심한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갓을 쓴 양반이 ‘인아야’를 외치며 앞으로 바쁘게 달려갔다. 나는 그런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왠지 병사가 지나가면서 말한 ‘경민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아빠일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공터가 있었다.
그곳에는 다친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저마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돌보거나 치료하는 이는 없었다. 의녀로 보이는 이 두 명 정도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인아야! 인아야!”
나보다 한 발 앞서서 그 공터에 도착한 남자는 다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어린 딸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와는 반대쪽에서 다쳐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살펴보며 아빠를 찾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아이구야…….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흐흑.”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반죽음 상태에 이른 이들이 상당수였다. 이미 숨이 끊어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나는 그중에서 아빠를 발견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경민아!”
그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광해군이 병사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부른 그에게 대답을 줄 새도 없이 다시 다친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를 찾아야 했다.
“아버지!”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뚫고 어린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인아야!”
“아버지이……”
내가 그쪽을 돌아보자 거적을 덮고 누워있는 남자의 옆에 앉아있던 어린 여자아이가 벌떡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 여자아이는 나와 함께 공터에 도착한 남자에게로 두 팔 벌려 뛰어가 안겼다.
“아버지……. 으앙!”
“인아야! 네 어찌 여기에 있었느냐! 네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의주로 가라 하지 않았더냐?! 네 어찌…….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무사해서 다행이다.”
“아버지이이…….”
나는 잠시 부녀의 상봉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치 내가 아빠를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아서였다. 그런 내 곁으로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광해군이었다. 그도 부녀의 상봉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내 어깨에 한 손을 올리며 물었다.
“아직……. 찾지 못하였느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못 찾았다고 대답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방금 전 소녀가 일어났던 곳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짚으로 만들어진 거적을 덮고 있었다. 옆으로 누워있어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머리 모양만으로도 그가 이곳의 조선인들과는 다르게 상투를 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광해군을 놔둔 채 누워있는 남자를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다다르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아……아빠?”
난 누워있는 그 남자가 덮고 있는 거적을 치우며 아빠를 불렀다. 그러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는 남자는 그 어떤 미동조차 없었다. 결국 나는 손을 뻗어 그 남자의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자의 얼굴은 온통 말라버린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틀림없는 내 아빠, 김영찬이었다.
“경민아!”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보고 광해군이 달려왔다. 그는 제일 먼저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부축하더니,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이미 사진으로 내 아빠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아빠가……. 아빠가…….”
“이 내관! 어서 의녀를 불러오게!”
“예, 저하!”
잠시 피를 보고 놀랐던 충격에서 벗어난 나는 아빠를 깨우기 위해 아빠의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
“아……. 아빠……. 아빠 안 돼! 아빠! 아빠!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아빠! 아빠!”
그러나 감긴 아빠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나는 그럴수록 너무나도 겁이 나서 더욱 세차게 아빠의 몸을 흔들며 깨우려고만 시도했다. 그러자 광해군이 그런 나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내 행동을 막아섰다.
“진정해라. 진정해라, 경민아.”
그는 손가락을 아빠의 코끝에 갖다 대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어? 아빠가……. 아빠가 죽지 않았어?”
의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광해군은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더니 의녀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의녀가 우리가 비켜준 자리에 앉더니 아빠의 맥을 짚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아빠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말했다.
“칼로 인한 외상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은 듯합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하느냐? 어찌해야 깨어나느냐?”
“박 의관께서 없으셔서……. 어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사오나…….”
“어찌해야 깨어나는지는 물었다!”
광해군이 의녀를 다그치자, 의녀가 몸을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이, 일단 안정이 필요하옵고……. 피는 멎은 듯하나, 살고 죽는 것은…… 장담치 못하겠나이다.”
“아…….”
의녀의 말을 들은 난 탄식을 내뱉으며 광해군의 품으로 쓰러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아빠를 살려야 했다. 하지만 이 조선에서 칼로 인한 외상을 입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칼로 다친 곳에 꿀을 가져다 붓던 시대였다. 아빠는 절대 이 시대에서는 치료받을 수 없다.
방법은 하나다. 미래로 가는 것. 내가 온 2013년으로 아빠가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만 아빠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난 확신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빠가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야 이 시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빠도, 나도.
“경민아? 정신을 차리거라!”
아빠가 다친 충격에 내가 놀라 정신이라도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광해군이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그때 나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세자’였다. 이 조선시대에서 만큼은 난 ‘세자’인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를 살려야 해. 그 전에……. 아빠가 일어나셔야 해. 제발……. 제발 도와줘. 제발…….”
“알았다.”
그는 울먹이며 애원하는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더니 이 내관에게 명령했다.
“일단 이 자를 이곳에서 옮겨라. 그리고 의녀는 속히 이 자가 깨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거라.”
“예에. 저하!”
광해군의 명령에 따라 아빠는 내가 깨어났었던 그 초가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의녀는 아빠의 상처를 살폈다. 아빠의 상처는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도 심각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시작된 상흔은 대각선으로 등을 찢고 지나갔다. 다친 후에 상당히 시간이 지나서인지는 피는 흐르지 않았다. 대신 상처를 따라 곳곳에 핏덩어리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붉은 고름처럼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었다.
게다가 아빠의 안색은 건강한 정상적인 사람과는 달랐다. 피범벅이 되었던 얼굴을 말끔히 닦아내자, 푸른빛이 가득한 얼굴이 드러났다. 한눈에 보더라도 숨만 겨우 내쉬고 있는 상태였다.
“아빠아……. 흐흑. 정신 차려요. 돌아가야죠. 여기서는 안 된단 말이에요.”
이 세상에 가족이라고는 아빠와 나. 그렇게 단 둘뿐이었다. 나는 지금 이런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빠는 시간여행자였다. 어떤 위기와 위험에 노출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 아빠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런 위험에 빠지시다니!
“저하. 저하께서 구하신 소녀의 아비가 잠시 뵙기를 청하옵니다. 어찌할까요?”
내 뒤에 앉아있던 광해군이 이 내관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좁은 방 안에는 이제 아빠와 나. 그리고 의녀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깨어나실 수 있을까요? 오늘 안에는 깨어나실까요?”
내 물음에 의녀는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대답을 회피했다. 난 의녀에게서 답을 듣는 것을 포기한 채 아빠의 한 손을 움켜잡고는 눈물만 흘렸다. 그때 내 눈에서 떨어지던 눈물 한 방울이 아빠의 손등에 떨어졌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빠가 눈을 떴다.
“아빠?!”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몇 차례 반복하던 아빠의 동공이 나를 향했다.
“아빠? 정신 들어요? 나 보여요? 경민이에요!”
“경민아…….”
“네! 아빠, 저 경민이에요! 정신이 드세요?!”
내 물음에 아빠가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더니 다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여자아이는 무사하니?”
“그 여자아이는 가족을 만났어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그나저나 아빠! 어쩌다가 이리 되셨어요?”
“글쎄……. 나도 그건 잘 모르겠구나. 그저…….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9년 전에 네가 사라졌을 때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 아이를 보고 널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절대 역사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말해 주신 게 아빠잖아요! 게다가 광해군은요? 왜 광해군을 보내시고 아빠가 이렇게 되신 거예요?”
광해군의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순간적으로 의녀를 의식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도 그것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약재를 구해보겠습니다.”
그녀는 우리 부녀만 남겨 놓은 채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아빠에게 말했다.
“어서 돌아가요! 어서 돌아가요, 아빠. 가서 병원에 가요. 병원에 가면 다 괜찮아지실 거예요.”
“경민아……. 우욱.”
갑자기 아빠가 붉은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빠!”
“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다니요?! 지금 이 상태를 직접 보고 그러세요? 빨리 돌아가요! 빨리 돌아가요, 아빠!”
하지만 아빠는 내 외침을 외면하고는 말을 시작했다.
“네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네가…… 스무 살이 되기 전, 내가 죽게 된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제가 스무 살이 되기 전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빠?”
“그게 오늘인지를 몰랐을 뿐이지.”
아빠는 다시 한 번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여기고는 잡은 아빠의 손을 더욱 더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돌아가요. 제발 돌아가요, 아빠. 네?”
“경민아……. 미안하구나. 지금으로써는……. 너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난 일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빠는 그런 나의 뺨을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딸아……. 내 죽음에 네가 많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것은 시간과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은 것. 지금 아빠는 나를 돌려보내려고 하고 있다.
“싫어요. 아빠! 같이 가요! 절대 아빠만 두고 안 갈 거예요!”
“미안하다…….”
“아빠! 제발요!”
나는 애원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빠를 두고 혼자만 돌아가게 될까 봐 붙잡은 아빠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마지막 힘이……. 너를…….”
아빠가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두 눈을 감았다. 동시에 내 뺨에 닿았던 아빠의 손도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빠아!”
나는 아빠를 깨우기 위해 아빠의 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내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내 몸이 점점 투명해지며 점점 거세지는 바람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있었다.
“싫어! 아빠만 두고 갈 수 없어! 아빠!”
나의 울음 섞인 비명을 들은 것인지, 문이 열리며 광해군이 안으로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빠의 시신 옆에서 점점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것 같았다.
“경민아!”
그는 황급히 내 이름을 부르며 내게로 손을 뻗어왔다. 사라지려는 나를 붙잡으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에서만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내 손이 아빠의 몸에 닿지 못하듯이, 그의 손 역시 나의 몸 그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잡히지 않는 나를 향해 그가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난 그런 그를 뒤로 한 채 소용돌이와도 같은 바람 한가운데로 순식간에 말려들어갔다. 애초부터 이 조선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유오디아 작가의 말
작가 블로그
광해군은 그가 죽은 뒤에 받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가 세자가 되었던 1592년에 이미 선조의 서자로서 광해군이라는 군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면서 왕의 시호를 받지 못하고 왕자시절의 이름 그대로 후대에 남게 된 것입니다. 절대 그가 폭군이라서나 여타 다른 나쁜 이유로 군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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