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해의 연인-5화 (5/110)

제5화. 왜란의 한가운데에서(1)

흰색

띠리릭.

“아빠!”

디지털 도어락이 기계음을 내며 문이 열리자, 나는 아빠를 부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집은 내가 아침에 이 녀석과 나올 때와 똑같은 상태였다. 불도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두운 집 안. 사람의 온기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거실에 불을 밝힌 후 바로 서재로 향했다. 그런데 서재 안도 불이 꺼져 있었다. 서재 역시 아침과 똑같은 상태로 날 맞았다. 단 한 번도 아빠는 이렇게 늦은 적이 없었다. 시간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셨지만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해가 지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오셨으니까. 게다가 생각해보니 이처럼 시한폭탄과도 같은 과거의 사람을 한마디의 말도 없이, 마치 던져놓듯이 두고 돌아오지 않으신 적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점점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라도 아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물론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해도 걱정할 건 없었다. 시간여행자인 아빠는 몸이 묶인 상태이든, 감옥에 갇혔든 언제든지 미래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시간여행자는 마법사도 아니고, 시간여행을 위해서 딱히 주문 같은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위험한 일이 닥쳤을 경우다. 아빠가 돌아올 틈이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어찌된 일이냐?”

어느새 서재까지 온 그 녀석이 열려있는 문 앞에 서서 나를 부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려고 했다. 그때 내 눈에 서재에 놓여있는 그 녀석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너 말이야. 조선에서 이곳으로 오기 전에……. 어떤 상황이었어?”

내 물음에 그 녀석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 당시 왜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혼란하고…….”

“왜적?!”

그제야 나는 아빠가 임진왜란 시기로 시간여행을 떠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전부터 아빠는 광해군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선조 말기부터 광해군 재위기. 인조 즉위 초기를 아주 바쁘게 돌아다니셨다. 그런 아빠를 둔 덕분에 나는 광해군과 관련한 시기에 관해서 만큼은 아빠에게 아주 생생하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왜적. 왜적이 쳐들어오고 얼마 뒤, 내 형님께서 함경도 회령에 머무시던 도중에 왜적에게 붙잡히셨다는 말을 듣고 급히 그곳으로 향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왜적에게 붙들리셨다는 내 형님은 다른 곳으로 끌려가신 뒤였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머물던 마을이 왜적에게 포위되어 사흘간 숨어있는 통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었다.”

난 왜 아빠가 함경도 회령으로 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선사에 미루어 봐도 그 지역은 특별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녀석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던 도중 왜적이 내가 숨어 지내던 마을에 불을 질렀다. 온통 불바다가 되었지.”

“부, 불바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데?”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그 마을을 빠져나가던 중이었다. 어떤 계집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그래, 계집아이가 하나 길거리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런데 말을 탄 왜놈 하나가 그 계집아이를 발견하고는 칼을 빼어들고 달려왔지. 나는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검을 뽑아들고 말을 타고 달려드는 왜적 앞으로 나섰지.”

역사책에서나 보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 왜란을 경험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말. 온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그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그 시기로 갔다는 아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왜적과 검을 몇 번 겨루던 도중 정신을 차리니, 이곳에 와 있더구나.”

이 녀석이 미래로 온 건 분명 아빠가 보냈기 때문이다. 아빠가 아니라면 과거의 사람을 미래까지 오게 만드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런데 왜 아빠는 오지 않은 것일까? 게다가 왜적과 싸우고 있는 이 녀석을 왜 미래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시간여행자는 과거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가문의 불문율이라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경민아, 시간여행자가 아무리 그 역사를 바꾸려고 해도, 한 번 정해진 역사는 결코 변하지 않아. 만약 역사를 바꾸려고 시도한다면 역사는 정해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를 어그러뜨리려는 시간여행자를 죽음으로 내몬단다. 그걸 우리 집안에서는 <소리 없는 죽음>이라고 부르지.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역사는 제자리를 찾아간단다. 지금의 미래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는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버리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으로 저 녀석을 보낸 건 우리 아빠. 그러나 아빠는 저 녀석이 죽어야 할 녀석이었다면, 불에 타서 죽든, 왜적과 싸우다 죽든 동정심으로라도 이 녀석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아빠의 죽음을 의미할 테니까.

무엇보다도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녀석을 아빠가 구했을 리가 없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아빠가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했다. 이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분명 아빠에게 어떤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그 녀석을 지나쳐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빠와 찍은 가장 최근 사진을 가져와 그 녀석의 앞에 내밀며 물었다.

“이것 좀 봐봐! 여기 이 사람! 우리 아빠, 우리 아빠를……. 그때 그날 못 봤어?”

“네 부친을 말이냐?”

“그래!”

“글쎄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구나.”

“잘 생각해봐! 네가 왜적과 싸울 때, 우리 아빠가 거기에 있었는지!”

간절하게 묻는 내 얼굴을 슬며시 쳐다본 그 녀석이 다시 사진 속 우리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보지 못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당장 모든 걸 이 녀석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이 녀석은 정말 모르는 걸까? 이 녀석이 2013년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빠가 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분명 이 녀석의 손이든 팔이든 붙잡고 미래로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를 보지 못했다니!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임진왜란, 불타고 있는 마을, 왜적의 포위. 아빠가 돌아올 수 없었던 상황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울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혹시……. 아니다.”

“뭔데?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그가 무언가 떠올린 게 확실하다는 생각에, 난 눈물을 훔쳐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기억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네 부친은 조선인이 아니냐.”

“아니……. 맞아! 그래, 조선인이야. 그런데?”

“이리도 머리가 짧았다면, 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왜적이 네 부친일 리는 없지 않느냐?”

“아빤 왜적이 아니지! 하지만 머리를 짧으신 편이야.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내가 왜적을 말 위에서 떨어지게 만들었지. 그 후에 검으로 겨루는 동안 어린 계집아이가 어찌되었는지 울음을 그치더구나. 이상하다 여기어 돌아보았을 때, 왜적과는 옷차림이 사뭇 다른 어떤 이가 계집아이를 감싸 안고는 다른 왜적의 칼을 맞고 있었다.”

“카……. 칼을 맞았다고? 찔렸다는 거야?”

녀석은 내게 답을 주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이 내 아빠가 확실하다면, 내가 받을 충격을 걱정해서일까?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

급히 말을 돌리려는 그를 보며 나는 아빠가 그 곳에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야한다고 마음먹었다. 여자인 이상 혼자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여행을 하더라도 일단 아빠를 만나기만 한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새 울음을 완전히 그치고 조선으로 갈 결심을 굳히는 내게 그가 묻는다.

“괜찮으냐?”

“괜찮아. 그리고 조선으로 가야겠어.”

“네가 말이냐? 조선으로?”

“응. 아빠가 그곳에 있어. 난 아빠를 찾아야 해. 그리고 너도 조선에 돌아가야 하잖아. 그러니까 나와 함께 가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나였다. 녀석은 그것이 생각났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함께 가자꾸나.”

나는 4년 만에 조선으로 가기 전에 앞서 옷장에서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엄마의 한복을 꺼내 입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려는 시기가 조선에서도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라는 것을 의식해서였다. 현대인의 복장으로 갔다가는 왜인으로 몰려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어보는 엄마의 한복은 신기하리만치 내게 딱 맞았다. 머리칼을 땋아 어설픈 댕기까지 매며 조선으로 갈 준비를 끝마쳤다.

날 보는 그 녀석은 매우 놀란 눈빛이었다.

“왜? 이상해?”

“그건 녹의홍상이 아니냐?”

“녹의홍상(綠衣紅裳, 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

그의 물음에 난 내가 입은 한복을 살펴보았다. 아빠에게 듣기로는 결혼할 때 맞췄던 한복이라고만 들었을 뿐이었다. 혹시 이 녀석이 온 시기에서는 이런 색의 한복을 입지 않는 걸까?

“그래. 어찌 혼례도 올리지 않은 처자가 그 옷을 입는단 말이냐.”

“아……. 맞다. 그랬지.”

녹의홍상은 혼례를 마친 신부가 입는 색의 한복. 하지만 내가 입을 한복이라고는 이 한복 단 한 벌뿐이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그리고 이건 내 옷도 아니야. 돌아가신 엄마 거야.”

“어머님의 것이란 말이냐?”

이상하게도 재차 확인하는 그 녀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일단 급한 대로 입은 거야.”

그가 내 사정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갓을 고쳐 잡으며 말한다.

“어찌되었든 잘 어울리는구나. 분명 너는 조선의 여인이 틀림없다.”

“그래그래, 난 조선 사람이니까.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어서 가자.”

난 그를 거실로 이끌었다. 우리 집에서 그나마 가장 넓은 공간을 가진 곳이 바로 거실이기 때문이었다. 난 거실에서 그 녀석과 마주선 채로 물었다.

“올해 연호가 어떻게 되지?”

“연호라 하면……. 만력 스무 해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가늠해보았다. 만력(萬曆) 20년이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바로 그 해였다.

“그럼……. 오늘은 그해 몇 월 며칠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가 바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바로 그 날을.

“구월, 열아흐레였다.”

‘9월 19일이란 말이지.’

“헌데 그걸 왜 묻는 것이냐?”

난 여자이기 때문에 조선시대로 정확한 시간여행을 할 수가 없다. 지금 무턱대고 임진왜란 때로 가자고 생각하고 갔다가는 왜란이 일어나기 몇 해 전으로 가게 될지, 아니면 몇 년 뒤로 가게 될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이 녀석을 보내준 것은 어쩌면 나에게 올 수 있는 열쇠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여행자 집안에서 여자의 시간여행은 불규칙하다. 하지만 이 녀석처럼 과거의 사람이 있다면, 정확한 시간으로 갈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9년 전에도 그랬다. 무턱대고 세종대왕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연상했다. 그 결과 세종조의 시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는 있었지만, 거의 말년의 세종대왕을 만났다. 오히려 그것은 다행이기도 했다. 세종대왕께서는 나를 친딸처럼 어여삐 여겨 주셨으니까. 대신 아빠는 나를 찾기 위해 세종대왕의 재위기를 다 뒤지셔야 했다. 5년 동안이나.

“돌아가야 하니까.”

나는 앞뒤 설명 다 빼버린 말로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그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자, 내 손을 잡아봐. 아빠야 손을 안 잡아도 가능하시지만……. 난 어찌 될지도 모르고.”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내가 내민 두 손을 잡았다.

1592년 9월 19일. 함경도 회령. 제발 정확히 도착하기만을 바란다.

“나에게 설명해줘.”

“무엇을 말이냐?”

“네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상황 말이야. 그때…… 마을이 포위되었었다고 했었지?”

“그랬다. 왜적이 그곳을 포위하고 불을 질렀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이 녀석과 함께 돌아가야 하는 곳을 떠올렸다. 그러자 따뜻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기 시작하며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내 눈 앞으로 그가 말한 1592년 9월 19일 함경도 회령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이 맞잡고 있는 손 때문인지, 그가 보았던 그 장면들과 순간들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불바다가 된 마을.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사람들.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곳곳에 말을 타고 달리며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는 왜군들도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내 몸에 긴장감 가득한 전율이 흘렀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에도 작은 떨림이 일었다. 이것을 느낀 것인지 그가 눈을 감고 있는 내게 물었다.

“헌데…….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말을 덧붙였다.

“지금껏 네 이름조차 묻지 않았구나.”

나는 우리 두 사람을 감싼 바람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곳으로 데려갈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입을 열어 그의 물음에 답했다.

“경민이야. 김경민.”

“경민이라…….”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을 때였다. 주변을 감싸 안았던 따뜻한 바람이 순식간에 거세지며 우리를 삼켜버렸다.

***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온몸이 다 쑤시고 아프다. 어딘가에 누워있는 것 같기는 하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마치…… 가위에 눌린 듯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도 어렵다.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정신이 들 때쯤 천끼리 부대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겁게 감겨있던 눈에 힘을 주었다.

가늘게 뜬 두 눈 앞으로 누군가 서 있는 뒷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는 겉옷을 벗고는 그 위에 다홍색의 도포를 걸쳐 입고 있었다. 그 이외에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곳이 어디든 간에 서둘러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자저하, 의녀를 데려왔사옵니다.”

‘세자……?’

“어서 들어오너라.”

“예, 저하.”

작은 문고리가 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계속해서 감기려는 눈에 힘을 주며 그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살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그 두 사람은 조선시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민 복식을 하고 있었다.

“박 의관은 어찌되었더냐?”

다홍색 도포를 입은 이가 들어온 남자에게 물었다.

“박의관은 왜적에게 끌려갔다 하옵니다. 그나마 의녀가 남아 데려왔사옵니다.”

“알겠다. 의녀는 어서 이 여인을 살펴 보거라.”

“예, 저하.”

명을 받은 의녀가 내 쪽으로 몸을 굽혔다.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 의녀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그녀가 급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신을 차린 듯합니다.”

“정신을 차렸다고?!”

그러자 다홍색 도포에 갓을 쓰고 있던 남자가 의녀를 젖히고 내 앞에 얼굴을 보였다. 그제야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녀석’이었다. 옷차림이 나와 만났을 때와 달라져 있었다.

“너, 너는…….”

그 녀석을 보자마자 나는 아빠를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가집의 작은 방처럼 생긴 곳. 게다가 그 녀석을 포함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건데 이곳은 조선이 틀림없었다.

“아빠……!”

나는 아빠를 찾아야 한다는 의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내 어깨를 팔로 부축하며 말했다.

“쉬어라. 아직 움직이기에는 이르다.”

“안 돼……. 아빠를 찾아야 해. 여기…… 여기가……. 조선이지?”

“조선이다.”

“조선이야? 정말로 내가 조선에……. 아빠를 찾아야 해. 아빠를…….”

이렇게 시간여행이 힘든 일이었던가? 9년 만에 시도를 한 것이 무리였을까? 아니면 이 녀석을 데리고 온 것이 무리가 된 것일까?

“세자저하. 더 이상 회령에서 지체하실 여유가 없사옵니다. 하루라도 빨리 분조의 신하들이 기다리는 강원도로 떠나셔야 하옵니다.”

아까부터 들어온 남자가 이 녀석을 보고 ‘세자’라고 부르는 말이 거슬린다. 이 좁은 방 안에는 지금 이 녀석과 나. 그리고 두 사람뿐. 세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이런 낡은 초가에 세자가 있다는 사실이 더 믿기지가 않았다.

“그만 하거라. 그보다 의녀는 어서 이 여인의 상태부터 살펴 보아라.”

“예에, 저하.”

여자가 내 손을 잡더니 맥을 짚으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여인의 손을 뿌리치며 그 조선 녀석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너……. 누구야?”

“내가 누구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너……너…….”

“이 분은 조선의 세자저하이시오.”

그때, 방금 전까지 그의 뒤에서 그를 세자라고 불렀던 남자가 내게 대답했다. 나는 놀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너…… 세자야?”

그제야 그는 내가 무엇 때문에 놀란 얼굴이 되었는지를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내가 바로 이 조선의 세자이다.”

쿠쿵!

큼지막한 돌덩이 수십 개가 한순간에 정수리로 와르르 쏟아지는 느낌이 덮쳐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에 세자라고 불렸던 사람. 분조를 이끌었던 세자. 그건 다름 아닌…….

“광해군?!”

나는 나를 부축하던 그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통증이 모두 잊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 입으로 그를 향해 광해군이라고 외치고는 스스로 놀라 내 입을 틀어막았다. 모든 퍼즐들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한다.

먼저 형님이 함경도 회령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에 그가 회령으로 달려왔다던 말. 그러고 보니 임진왜란 때 광해군의 멍청한 형인 임해군이 함경도 회령에서 관리들을 구타하다가 고을 이방의 배신으로 왜적에게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아빠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내가 바로 세자 광해군이다.”

나에게 확답을 주는 이 조선 녀석. 아니, 광해군.

그렇다면 아빠가 이 녀석을 미래로 보낸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몇 년 전부터 아빠가 연구하던 것은 다름 아닌 광해군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아빠가 이 녀석을 2013년으로 보낸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광해군이 왜적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든 죽게 되어도 절대 역사에 손을 대실 분이 아니셨다. 나에게 누누이 말씀해 오신 것이 바로 그것이니까. 하지만 광해군을 미래로 보낸 건 아빠가 확실하다. 어째서 아빠는 오지 않고 이 녀석만 보냈던 걸까?

‘맞다! 아빠!’

유오디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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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이 조선의... 국모다!!! ... 국모...? (에잇! 맞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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