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어느 날(2)
흰색
짜증 섞인 내 목소리에 오히려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다. 나는 그런 녀석의 얼굴을 외면한 채 녀석이 보려던 책의 제목을 보았다. <인조실록>이라고 적힌 한자가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사고본이 아니라 그 사고본을 역사편찬위원회에서 새롭게 만든 양장본이었다.
그러니 녀석이 이 책을 읽더라도 이것이 사고본과 같은 실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시간여행자는 과거의 사람과 공존 시 과거의 사람이 절대 알면 안 되는 ‘미래’의 사실에 근접할수록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 녀석을 과거에서 데려온 것은 아빠이지만, 아빠는 현재 이곳에 없다.
그러니 그의 근처에서 가장 가깝게 있는 시간여행자인 내가 그 통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빠는 이것을 경고라고 말씀하셨다.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과거의 사람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을 사전에 막으라는 경고라고 말이다.
뭐 나에게는 그런 경고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내가 이 녀석의 쓸데없는 짓거리에 하마터면 크게 아플 뻔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일 뿐. 난 당장에 꿀밤이라도 쥐어박을 듯한 기세로 녀석을 째려보며 말했다.
“가만히 있으랬잖아!”
“미안하오…….”
무언가 불만이 가득하긴 하지만, 제가 읽으려던 것이 ‘남의 책’임이 분명한 사실을 인지하며 사과하는 녀석. 바로 꼬리를 내리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녀석이 상당한 미소년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짜고짜 책부터 빼앗은 게 미안할 정도로 갓을 벗어서 드러난 녀석은 매우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그 잘생긴 얼굴에 마음이 약해진 것은 아니지만, 내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심심하면 다른 책 줄게. 내가 주는 것만 읽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어르자 녀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글은 좀 알아?”
그러자 녀석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소학은 물론이고 사서삼경을 끝마쳤소. 그런데 내 어찌 글을 모르겠소?”
“소학에 사서삼경이 조선의 기본 교과서인건 알겠는데, 그 정도는 나도 다 끝마쳤거든.”
이젠 당시에 배웠던 책들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이 모든 걸 내게 가르쳐주신 분이 세종대왕이셨다는 것이다.
4년 전 아빠와 함께 돌아와 다시 초등학교를 들어갔던 나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세종대왕에게서 사서삼경을 배웠다고 말했다가 ‘왕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니 역으로 이 조선시대에서 온 녀석에게 세종대왕에게 글을 배웠다고 하면 ‘왕따’는 못 시키더라도 날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왕이 누구셨어?”
적어도 녀석이 살았던 시대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서적을 내어줘야 할 테니까 말이다.
“선왕의 시호 말이요?”
“그래.”
“그걸 왜 묻는 것이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심할까 봐 읽을 책 찾아주려는 거야. 책읽기 싫으면 말고.”
녀석이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명종공헌헌의소문…….”
“거기까지!”
나는 그 녀석의 말을 잘라버리고는 돌아서서 책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명종이니까…….”
명종이 선왕이라고 말한다면 이 녀석은 선조 시대에서 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아빠는 광해군 연구에 매진하셨다. 아마도 이 녀석도 광해군 연구와 관련해서 아빠가 데려온 게 틀림없었다.
어쨌든 선조시대에서 온 녀석이라고 해서 명종실록을 내어줄 수도 없다. 실록은 사고에만 보관되는 귀한 것으로 임금도 함부로 볼 수 없는 책인데 평범한 양반에게 내어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정감록]
“이거 좋겠네.”
나는 정감록을 집어 그 녀석에게 내밀었다.
“예언서라 재미있을 거야.”
“예언서?”
“아마 명종시기 쯤에 민간에 돌아다녔으니까, 본 적 없어?”
그 녀석은 한자로 쓰여 있는 정감록의 제목을 눈으로 읽더니 대답했다.
“이런 잡서(雜書)는 듣도 보도 보지 못하였소.”
슬슬 내 말투에 이 녀석도 짜증이 나는 건지, 말투가 약간 비꼬듯이 들린다. 하긴 짜증이 날 법도 했다. 눈떠보니 낯선 곳인데다가 이상한 옷차림의 여자에게 반말이나 찍찍 듣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신분상 양반인데 얼마나 콧대가 높을까? 옷차림도 보통 양반이 입기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질의 비단. 양반도 그냥 양반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대저택에 살며 하인들을 여럿 거느리며 사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주눅이 들 이유는 전혀 없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할 구닥다리 조선 녀석에게는 더더욱!
“이런 잡서 따위도 읽지 않으니까, 왜란 따위나 겪었던 거라고.”
당당하게 녀석의 말을 맞받아치던 나는 순간 실수를 깨달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건 선조 때가 맞지만, 만약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살던 녀석이라면 난 지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미래의 일을 알려주고 말았으니까. 나는 통증을 예감하며 겁부터 집어먹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커녕 가벼운 두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왜란’이라는 엄청난 말이 내 입에서 나왔는데 말이다. 게다가 왜란의 의미를 캐묻거나, 또는 무슨 말을 한 거냐고 물어야 할 이 녀석도 꽤나 조용하다. 그렇다는 말은 이 녀석이 왜란을 겪었다는 거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떠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임진왜란 7년 전쟁. 7년 동안 일어났던 이 전쟁을 이 녀석은 안다는 거다. 안 그래도 녀석의 얼굴을 보니 뭔가 속상한 건지 억울한 건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분한 걸까? 고작 여자인 내게 꾸지람이나 들었기 때문에. 아니면 왜놈에게 짓밟힌 조선에 대한 슬픔에 화가 나서인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녀석은 왜란이 일어난 시기거나, 그 이후의 선조시대에서 온 것이 확실해 보였다. 왜란 이후에도 십 년은 넘게 선조가 왕위에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 아빠가 녀석을 데려온 시대는 임진왜란이거나 아니면 그 뒤의 시대라는 거다.
슬슬 걱정이 밀려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 아빠야 물론 시간여행이 가능하니까 위험 속에서도 알아서 피해 다니실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시대에서 이 녀석을 데려오신 걸까.
아빠는 최대한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시간여행을 하시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직접적으로 역사적 변화와 관련 있는 인물을 데리고 오는 위험한 일 따위는 하지 않으신다. 뭐, 이 녀석은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데려오셨을 것이다. 그래도 하필 왜 이 녀석이었는지는 아빠가 돌아오면 꼭 물어볼 생각이다.
침묵만 흐르던 가운데 녀석은 내가 건넨 정감록을 한 손에 꼭 든 채로 좁은 서재의 바닥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녀석의 망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이 머리 모양을 보니 조금 신기하긴 하네. 어라? 꽤 좋은 향기가 나는 걸. 무슨 물로 머리를 감았어?”
어색해진 분위기도 벗어나볼 겸 건네 본 말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책을 펼쳐들더니 완전히 나를 무시하는 녀석. 기분이 나빠진다. 나는 결국 손가락으로 그의 망건에 고정된 머리 더미를 툭툭 건드렸다.
두어 번 찔렀을까.
-탁!
그녀석이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건들고 있던 나의 손목을 낚아채 잡았다.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남자라 그런지 손힘이 상당했다
“무엄하다!”
“아, 아파……!”
아프다는데 놓아주기는커녕, 손에 힘을 더 주는 녀석. 참다 참다 폭발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파, 아프다고……!”
내가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아프다고 소리 내자, 녀석은 세게 움켜잡고 있던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다면 미안해.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화를 낼 것까진 없잖아?”
말은 이렇게 말하지만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앉아있는 녀석의 옆에 놓인 검이 상당히 신경 쓰여서다. 혹시라도 화가 폭발해서 검을 뽑아들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는 건 나였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고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릴 테니까.
“알았으면, 그만 나가보거라.”
아까의 정중하던 태도는 다 어디가고, 내가 고개 숙이고 들어가자 역시나 양반 본색이 나온다. 계집종 부리듯 하는 말투. 저 말투, 그래 기억한다. 조선 세종조로 시간여행을 했던 나의 수라간 나인 시절, 나를 아주 강아지 부리듯 했던 강 상궁이 저런 말투를 잘 썼던 것 같다.
화딱지가 다시 올라오려고 했다. 그러나 일단 후퇴. 이 녀석의 심심함을 달래줄 책도 한 권 건네 줬겠다. 나는 녀석을 홀로 둔 채 조용히 나갈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꼬르르르륵. 꼬륵.
익숙하지만 요즘 시대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그 녀석이 앉아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자, 그 소리는 또다시 들려왔다.
-꼬르르르르르륵
마치 합창을 부르듯이 들려오는 소리에 그 녀석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어흠! 어흠! 어흐흐흠!”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헛기침으로 가리려고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은 소리.
“너…….”
“어흠! 나가라 하지 않느냐!”
그제야 난 녀석의 짜증 섞인 화가 배고픔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배고파?”
“어흠~!”
왜 난 이 녀석을 보는데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걸까. 결국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녀석의 얼굴은 불에 활활 타오르듯이 색이 더 진하게 변한다. 그 모습에 내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만 가고 녀석이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호통을 친다.
“나가라 하지 않느냐!”
“됐고, 따라 나와.”
“뭐라 하였느냐?”
“배고프잖아. 배고프면 밥 먹어야지. 넌 오늘 운수 좋은 줄 알아.”
이유는 모르지만 이 녀석과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 밖으로 나온 녀석은 거실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 사이 나는 보온밥솥에서 밥을 꺼내 새 공기에 담았다. 남아있는 곰국도 데워서 파까지 송송 썰어 국그릇에 담아 식탁에 차리자 냄새를 맡은 녀석이 부엌으로 왔다. 녀석은 내가 식탁에 차려낸 음식 주변을 기웃거리기만 하고 앉지 않았다.
“뭐해? 앉지 않고.”
내 말에 그는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에게 식탁 의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건 명나라에도 있잖아.”
그는 잠시 주저하는 것 같더니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의자가 영 불편한지, 균형을 잡듯이 식탁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오려는걸 간신히 참고는 그에게 새 수저와 젓가락을 주었다.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후루룩, 후륵. 찹찹찹.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신없이 밥을 먹는 녀석. 딱 봐도 거지상이다. 어쩌다가 양반이 이런 꼴이 됐을까.
“천천히 먹어. 체할라. 대체 얼마나 굶은 거야?”
흡입하듯 밥 한 그릇을 뚝딱해버리고 국그릇을 거의 들어서 마시는 녀석. 나는 안됐다는 생각에 서둘러 밥 한 그릇을 더 내어주며 유리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밥 한 그릇을 일단 먹고 들어가서인지, 내가 건네는 유리잔으로 시선이 꽂혔다. 나는 서둘러 변명하듯 말했다.
“명나라에서 왔어. 명나라에서.”
천원 숍에서 샀으니, 메이드 인 차이나는 분명하니까.
그는 유리잔을 찻잔을 들어 올리듯 두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물 한 잔을 깨끗이 비워냈다. 그리고는 다시 식사를 이어나갔다.
“오늘 하루 종일 굶었어?”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반나절?”
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젓더니, 식사를 멈추더니 고개를 들었다. 여자보다도 더 새하얀 얼굴과 반짝이는 두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흘.”
“사아아아흘?! 정말? 사흘이나 굶었어? 어쩌다가?”
양반이 사흘이나 굶다니.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이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옷차림으로 보아서는 전혀 굶을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허리춤에 매달린 반이 깨어진 옥패.
“굶었으면 그 옥패라도 팔아서 요기라도 하지 그랬어.”
내 말에 그의 시선이 자신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는 밥맛을 잃은 것인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춤에 찬, 반쯤 깨어진 옥패를 소중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른 것은 다 팔아도 이것은 그럴 수 없다.”
“왜? 중요한 거야?”
“내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이가 준 것이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반이 깨어져 잃어버렸다. 이곳에 와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하는 걸로 보니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은 아닌 것 같고…….
“더 안 먹어?”
“이제 되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다시 양반으로 돌아온 녀석. 나는 그런 그가 방금 전까지 아주 급하게 밥을 먹었던 사람임을 상기시키는 농담거리라도 말하려고 했지만, 반쪽짜리 옥패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혹시 좋아하는 거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만들어줄게.”
“후식?”
“응. 간식 말이야. 내가 이래봬도 요리를 좀 할 줄 알거든.”
“되었다.”
정중하게 사양하는걸 보니 내 요리솜씨를 믿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 녀석이 믿긴 어렵겠지만 난 어린 시절의 5년을 세종조의 수라간에서 보냈다. 녀석과 같은 평범한 양반은 평생 구경도 못할 음식들만 5년을 보았다는 말이다.
“아무리 못해도 수라간 나인 실력은 된다니까. 걱정 말고 말해봐.”
“수라간 나인? 이곳에도 수라간이 있느냐?”
“수라간은 궁궐에나 있는 거지. 여기에는 없어.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수라간 나인급 실력은 되니까 걱정 말고 먹고 싶은걸 말하라는 거지. 그것도 특별히 동갑이라서 해주는 거야.”
“동갑이라니? 지금 너와 내가 갑이라는 것이냐?”
“응.”
내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두어 번 끄덕였다. 그가 잠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조금 뒤 내게 말했다.
“삶은 계란을 먹고 싶구나.”
“삶은 계란? 그 흔한 걸 왜? 난 신선로 같은 걸 이야기할 줄 알았지. 어차피 신선로는 재료가 없어서 못해주지만.”
“좋아하는 것을 말하라 하지 않았느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삶은 계란이다.”
“어째서? 삶은 계란은 흔하잖아.”
“내 어머님이 해주셨던 유일한 음식이었다.”
그의 말에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어머님이 삶은 계란밖에 안 해주셨어?”
정성스레 차린 반찬도 아니고 고작 삶은 계란이라니, 의외로 좋아하는 게 삶은 계란 정도라면 간단하지만 말이다. 마침 어제 저녁에 장을 볼 때 사온 계란 한 판이 집에 있었다.
그때, 그가 조금은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어머님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님에 대한 기억은 하나뿐인데, 그것이 바로 내게 삶은 달걀을 해주셨을 때다.”
그제야 나는 그가 엄마가 없는 소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에게는 엄마에 대한 기억 자체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태어나던 날, 엄마는 돌아가셨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난 아마 그 맛과 똑같은 맛은 못 낼 거야. 그건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불가능할걸.”
“알고 있다.”
더 힘 빠지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일부러 힘차게 답을 주었다.
“대신 삶은 계란 하나로 조선 그 어디에서도 절대 볼 수 없는 걸 만들어줄게!”
“조선 그 어디에서도 절대 볼 수 없는 것……?”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그러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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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 2013-08-18 00:48 |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