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어린 용사는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린다 (5/45)

  4. 어린 용사는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린다

성벽을 들어서자 어설프게 만들어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이곳은 마을이 생길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마녀의 숲과 가까우며 산속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 성벽과 그 속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주민들, 그리고 높은 곳에 지어진 성까지. 아무래도 필요에 의해 새로이 만든 마을처럼 보였다.

괴물이 나오는 숲이기에 방어선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탑에 갇혀 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인간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여자였다. 성벽에서 보았던 병사를 제외하곤 지금껏 마주친 남자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아이만큼은 굉장히 많았다. 이 마을의 주민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젊은 남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임신한 여인들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누구의 아이일까. 또 어린아이들의 아빠는 과연 누구일까.

이곳은 나라가 버린 장소였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을 뿐, 어떻게 살든지 상관하지 않는 곳이었다. 다만 괴물이 숲을 넘어왔을 때 시간을 벌어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주민이 많이 필요했다.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인원으로 주민의 수를 계속 늘려야 하는데 남자는 거의 없다.

결국 이곳은 누군가에겐 천국이고 또 누군가에겐 지옥인 곳이었다. 나는 이러한 장소를 본 적이 있었기에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삐쩍 말라 퀭한 인상을 지닌 마을 여인들은 소년을 힐끔거리며 수군거리느라고 바빴다. 멀리 도망가거나 괴물이라도 된다는 듯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치는 여인도 있었다. 역병에 걸린 환자를 본 것처럼 괜히 자신의 몸을 털며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

“또 돌아왔네. 정말 징글징글하구먼.”

“어떻게 마녀의 숲에서 살아 돌아올 수가 있는 거지? 정말로 괴물도 피하는 건가?”

“지금껏 괴물이 먹지 않는 것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여인들은 조그맣게 속삭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해지면서 마을 전체가 웅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많은 말소리로 인해 알아듣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유난히 또렷하게 박히는 말들이 있었다.

“정말 괴물인 건 아닐까.”

“괴물이라서 자기를 거두어준 어미와 형제를 잡아먹은 건가.”

“아니지, 어미를 잡아먹은 건 영주고 형을 잡아먹은 건 괴물이니 상관이 없지.”

“그럼 역시 저주를 받은 거로구먼.”

“그렇고말고. 그 저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진 거라고. 역시 처음부터 거두는 것이 아니었어. 괴물에게 잡아먹히든 말든 숲에 내다 버렸어야 했다고.”

“그토록 감싸던 어미도 땅 속에서 가슴 치며 후회하고 있을걸. 거두지 말 걸 그랬다며.”

소년의 시선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여인들에게 닿았다. 여인들은 화들짝 놀라 황급히 도망쳤다. 그러면서도 진저리를 치거나 기도를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나는 진짜 저 생김새가 무섭다니까.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올 수가 있어? 역시 저주받은 것이 틀림없어.”

“내게는 저주가 옮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개죽음은 싫으니까요.”

소년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가는 내내 경멸이 담긴 시선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소년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여인들은 그런 소년에게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으며, 자신의 자식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간간이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엔 마녀 때문인데 애꿎은 녀석만 죽어나가고 있네.”

“그러니 마녀를 죽이면 끝난다고 하지 않았어? 마녀를 죽일 것처럼 가더니 왜 그냥 돌아온 건가 몰라. 자신이 살 길은 그거밖에 없는데.”

살 길은 그거밖에 없다는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마녀를 죽이라고 괴물이 사는 마녀의 숲으로 내몰고,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게 했다는 마녀가 갇혀 있는 탑까지 가게 했다는 것은 결국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마녀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위해주는 척 사지로 내몰았다.

희망이라곤 그거밖에 없었을 어린 용사는 정말로 달려왔을 것이다. 마녀를 죽이기 위해. 마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결국 자신에게 향한 화살을 모조리 마녀에게 돌렸을 것이다. 모든 일의 원흉은 마녀야. 자신이 아니라 마녀 때문이야. 그러니 마녀를 죽이면 돼. 소년이 갈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마녀에게 동정심을 품고 말았다. 마녀의 어둠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너 때문이라고 외치던 소년은 너 때문이 맞느냐며 의문을 품었다. 죽어 마땅한 마녀가 아닌 그 진실을 바라보고자 애썼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마녀를 죽이기 위해 달려가던 소년이 언제나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면 그것이야말로 괴물이 아니던가.

그러니 마녀를 만나러 오면 안 되는 일이었다. 마녀를 죽이라는 것은 소년을 내쫓기 위한 구실일 뿐이었다. 죽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했다.

마녀를 죽이라며 등 떠밀린 용사가 마녀를 죽이지 못한다면 그의 존재는 필요가 없어지고, 마녀와 내통을 한다며 죽일지도 몰랐다.

혹은 사실은 용사가 마녀였다며 죽일지도 몰랐다.

죽이려고 든다면 이유는 어느 것을 가져다 대어도 상관없으니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년이 처음 찾아왔던 그날부터 보고 있었다. 어린 용사의 운명을.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사실을. 나를 죽여 현재를 바꾸면 미래 또한 바뀔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결국 소년이 죽는다는 것을.

그래서 계속 도망가라고 했다. 날 죽이지 않을 거라면,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면 찾아오지 말라고, 날 생각하지 말라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라고 계속 말했다. 안전한 곳에 꼭꼭 숨어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언제나 도망가라고 외쳤다.

하지만 어린 용사는 청년이 될 때까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엔 빛을 잃어버렸다. 내 말대로 멀리 도망쳤다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나 때문에 죽는 청년에게 미안해하는 나를 위로했다. 마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다며 나를 감쌌다.

사실 나는 소년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무서우니까. 이곳을 벗어나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이 묻혀 있는 땅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나는 마녀로 몰리면서까지 도망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어린 용사는 마녀와 많이 닮아 있었다.

* * *

어느덧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비록 내 눈에는 짙은 회색과 옅은 회색이 뒤섞인 하늘로 보일 뿐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색상으로 노을을 칠하며 바라보았다. 포근하고 감미로웠던 짙은 노을을 그렸다. 천천히 거닐고 있는 구름이 무척 부드러워 보였다.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결국 이렇게 마주하고 있었다. 오롯한 내 몸이 아닌 시각과 청각으로만 다시 만나게 된 세상이었지만, 그마저도 흐릿하고 무채색으로 보이는 세상이었지만 가라앉아 있던 감정과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잊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소년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나는 끝을 보게 될 테니까. 그토록 바라던 끝을. 그렇게 되도록 만들 테니까.

아,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탑에 갇혀 있던 내가 듣던 종소리는 이 마을에서 나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던 마을의 모습이 아니었다.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뛰놀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가는 아이들도 없었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바삭하게 구워낸 빵과 미지근하게 데운 우유, 부드럽게 으깬 감자 등을 준비하는 다정한 엄마도 없었다.

따뜻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이들이 없었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던 그 모습 대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회색빛 노을처럼 삭막한 마을만 존재할 뿐이었다. 지친 기색이 완연한 사람들은 오늘 하루도 겨우 보냈다며 한숨 돌릴 뿐이었다.

다만 다른 곳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상인들만 그나마 눈동자에 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들은 소년이 숲에서 가져온 물건에 관심을 가지며 다가오기도 하고, 한눈에 보기에도 적은 양이지만 돈이나 음식 등을 내밀며 구입해 가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진저리를 치고 없는 사람 취급을 했는데 상인들은 아니었다. 숲에서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을 주문하기도 하며 적어도 인간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괴물이나 저주받아 가까이 가면 안 되는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하지 않았다.

소년은 들고 있던 괴물 뼈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약초를 팔고 얻은 음식과 돈을 챙긴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인들은 혀를 차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참 안됐어. 단지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를 지녔을 뿐인데 괴물 취급 받다니 말이야.”

비록 현재 내 시야는 회색빛 외에는 볼 수가 없었지만 상인의 말대로 소년과 다른 이들의 차이점 정도는 느꼈다. 소년의 머리카락만큼 밝은 회색을 지닌 사람은 없었으며 소년의 눈동자만큼 진한 회색을 지닌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흰 털과 붉은 눈동자를 지닌 짐승은 저주받아 피를 부른다는 사실을 말이네. 그렇게 태어난 짐승은 야생에서도 버림받고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지. 죽기 위해 그렇게 태어난다는 말도 있네.”

죽기 위해 태어날 짐승은 없을 터였다. 단지 그렇게 태어나 일찍 죽임을 당할 뿐이었다. 나는 겉모습만 다를 뿐, 여느 짐승과 똑같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써주는 이는 없다.

“그러게, 차라리 이전에 죽었으면 낫지 않은가. 그걸 거두어 키운 데아도 안타깝고, 어미를 잃었음에도 보호하겠다며 제 목숨을 던진 보누스도 가엽네. 역시 저주받은 건 맞는 것 같아.”

“데아와 보누스를 죽인 건 이곳 주인이 아닌가. 그자야말로 진정한 괴물이지. 이 마을을 보게. 이게 정말 사람이 살 곳으로 보이는가.”

“예끼,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는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경기를 일으키나. 아무튼 저 애만 불쌍하게 되었네. 다음 차례는 저 소년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또 어떤 고통 속에서 살게 될는지. 하긴. 정말 저 소년이 자초한 것일는지도 모르겠군. 저 애를 받아들인 이후로 이 마을이 이렇게까지 처참해졌으니 다른 이들의 원망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멀어져 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상인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우리만 손해 보게 생겼어. 저 소년이 죽으면 더 이상 숲의 물건을 얻을 수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죽일 거면 보누스는 살려두고 저 애를 죽이든가 하지.”

상인도 마을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지독했다. 동정과 연민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이익 계산에 급급한 그 모습이 더 잔인했다.

어린 용사의 사그라지는 빛을 신경 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금 소년의 뒤를 쫓았다. 소년의 얼굴도 삭막했다. 상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기를 바라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얼마 안 가 소년의 집에 도착했다.

소년의 집은 마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나무판자 몇 개로 대충 비와 바람만 막은 정도였으며, 주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쓰고 버린 물들이 흘러 내려와 한가득 고여 썩어 있었다.

나는 왜 소년이 내게서 풍기는 악취나 탑 내부에서 나는 냄새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도 다를 것이 없었다.

짐승 사체와 온갖 쓰레기, 심지어는 먹다 남은 음식도 여기에다 버리는 모양인지 벌레가 들끓었고, 비록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심한 악취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소년이 긴 여정을 마치고 이제 막 집에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돌이 소년의 머리를 치고 날아가 썩은 물에 빠졌다.

하지만 소년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괴물의 기척을 느낄 정도였으니 주위를 둘러싼 어린아이들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모른 척했거나 무시했을 터였다.

돌이나 쓰레기, 짐승 뼈 등을 한가득 들고 있던 어린아이들은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해맑게 웃으며 던져대기 시작했다.

“야, 이 괴물아! 여기가 어디라고 또 오냐!”

“차라리 저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서 죽어버려라!”

“넌 저주받아서 괴물도 피해 간다며? 더러워. 재수 없어.”

“저 머리색과 새빨간 눈동자는 언제 봐도 징그럽다니까. 얼른 꺼져! 마을에 저주 퍼트리지 말고 숲에 가서 죽으란 말이야! 너 때문에 우리 엄마가 무서워한다고!”

아이들이 던지는 온갖 잡동사니는 소년의 몸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 고인 물에 빠져 주위를 더럽히거나 들고 있던 빵을 떨어트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소년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녀에게는 그래도 감정을 보이곤 했는데 이곳에 온 뒤로는 표정이 죽어 있었다. 어린아이다운 순수함과 능청스러움이 사라졌다.

처음 성벽을 들어설 때부터 병사의 말과 여인들의 말과 현재 어린아이의 말들까지……. 소년의 마음속엔 끝없이 상처가 생기며 피가 흐르고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른 이들에게 그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려고 애쓰는 건지, 아니면 소용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포기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곧 들고 있던 것을 모두 던진 아이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또 던질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한 아이가 두꺼운 나무토막을 들고 던지려고 했다.

고작 그 정도로 크게 다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자칫하면 나무토막의 무게 때문에 뒤로 밀려나 소년이 구정물에 빠질지도 모르기에 아이에게 다가가 발을 붙잡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아이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토막 대신 주먹만 한 돌을 던졌다. 무거운 나무토막 때문에 균형을 잃은 거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저 괴물은 엄마도 죽이고 형도 죽이고, 근데 자기는 안 죽어. 끔찍해.”

“너 때문에 모두들 죽고 있어. 그러니 얼른 사라져!”

“네가 나타난 이후로 마을은 저주받았댔어. 너 때문에 사람들이 괴롭댔어.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없으면 돼! 네가 죽어야 한다고!”

인형 같던 소년의 몸이 크게 일렁였다. 아이들은 잠시 멈칫하며 소년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고는 자신의 말에 소년이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기쁜지 더욱 신이 나서 외쳤다.

“넌 괴물이야! 너 때문에 모두 죽으니까!”

“이 괴물아! 다음엔 누구를 죽일 거냐!”

“아니야! 이제 곧 괴물이 죽을 차례야! 이제 괴물을 숨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맞아, 모두 죽어 버렸잖아?”

“너도 얼른 죽어버려!”

“죽어! 죽어!”

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해맑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은 잔인하고 사나웠다. 소년이 고개를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자 모두들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년의 빨간 눈을 보면 저주받는다는 얘기를 믿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소년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저 하나의 놀이로 여기는 듯했다. 그로 인해 소년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생각해 주지 않았다.

소년은 땅에 떨어진 빵을 주워 들어 톡톡 가볍게 털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 바닥에 몸을 뉘였다.

소년은 굉장히 지쳐 있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메마른 얼굴은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대로 죽는 건 아닌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소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곧 짙은 회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눈동자는 초점 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늘 이러고 있는 건가. 꼭 죽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마음만큼은 여러 번 죽임을 당했을 거라 여겨졌다.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미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성벽에 들어서면서부터 소년의 모든 것이 사그라져 있었다.

마녀의 탑에 찾아왔던 어린 용사는 태양처럼 밝고 따스했다. 마녀의 숲을 걸어가던 어린 용사는 늠름하고 뛰어났으며, 태양의 축복 아래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어린 용사는 너무나 어두웠다. 마치 탑에 갇힌 마녀를 보는 듯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만 소년을 바라보았다.

몸을 잔뜩 웅크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소년의 몸이 한없이 작아져 있었다. 그에 비해 소년을 감싼 공간은 너무 크게 느껴졌다.

몹시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차라리 얼른 어둠이 내려와 소년을 감싸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 생겨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여린 소년의 살은 어린아이들이 던진 물건에 곧바로 터져나갔다. 그래서 너무 많은 상처가 생겨났다. 아플 것이 분명한데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건지 너무 익숙한 것인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어쩌면 마음에 난 상처가 더욱 아파 못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 기억 속에 소년도 언제나 상처투성이였다.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에 크고 작은 흉터가 가득했다. 어느 날은 상처였다가 또 시간이 지난 후에는 흉터만 남기고 아물었다가 어느 순간에는 끔찍한 상처로 뒤덮여 있기도 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어린 용사가 더욱 작게만 느껴졌다. 소년과 함께 성벽을 들어선 순간부터 동정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지 않느냐고 묻고 있었다. 소년이 내게 그러했듯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어 그저 눈으로만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 순간 소년의 입이 벌어졌다.

“내가…….”

갑자기 말을 꺼내 당황스러웠지만 단지 혼잣말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으며 맡아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들릴 리도 없었다. 그저 소년의 그림자나 주위 어둠에 숨어 따라다니는 어둠에 지나지 않으니까.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지 눈을 감고 누워 있던 소년의 입이 다시금 작게 움직였다.

“내가 죽인 거야?”

소년의 말은 허공을 맴돌았다. 당연하게도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니다, 소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저 죽을 운명이었을 뿐이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너는 단지 힘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반복되니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 것뿐이다.

그저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낼 힘이 없었을 뿐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당하고, 삶에 지친 이들의 분노와 원망을 받아내는 피해자가 되었을 뿐이다.

“내가 죽으면 끝나는 거야?”

네가 죽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바뀌는 건 없다. 네가 이 괴물들을 불러낸 원흉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끌거나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 네가 죽는다고 해서 괴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평화를 되찾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게 정말 저주라면 너는 저주의 피해자일 뿐이다.

“이런 내가 세상을 구한다고? 거짓말…… 거짓말이야.”

나는 소년이 차라리 울었으면 했지만 메마른 목소리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가여운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상처투성이 손 대신 검은색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소년의 몸을 덮었다.

일부러 힘을 주지 않았으니 아무런 느낌도 없겠지만, 나 또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새하얀 소년의 몸이 그림자로 뒤덮였다.

순간 소년이 눈을 떴다. 내가 보일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대로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다. 그 붉은 눈동자가 탑에 앉아 있는 나를 꿰뚫어 볼 것 같았다.

눈을 뜨니 탑 내부가 보였다.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던 세상이 아닌 진득한 어둠으로 가득 찬 익숙한 공간이었다.

나는 서둘러 내 얼굴을 감쌌다. 흠뻑 젖어 있었다. 시각과 청각만 느낄 수 있었던 터라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니, 이곳에 있던 내 육체를 느끼고자 했다면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엎어져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 또한 한꺼번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속이 콱 막혀 소리도 새어 나오지 못했다.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싸하게 타는 것 같기도 하는 고통이 나를 괴롭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크게 헐떡이며 울음을 토해냈다.

너무 아팠다. 소년이 겪은 일이, 앞으로 겪을 일이 슬프고 괴롭고 가여웠다. 그 모습을 냉정하게 지켜보던 나였지만 감정이 돌아오자마자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이제야 왜 소년이 나를 이해한다고 말했는지 알았다.

어린 용사는 마녀와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어린 용사의 뒤를 쫓으며 마녀의 잔상을 보았다. 소년이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고 있었다.

어린 용사는 언제나 마녀를 의심하고 위로하고 다독였지만, 실은 스스로에게 향해 있는 거였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며 그것이 꼭 너 때문만은 아니라던 말도, 마녀를 죽여도 달라지는 건 없고 또 이게 정말 저주라면 넌 단지 저주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말도, 억울하지 않느냐는 말도, 모두 그렇게 말하면 자신 또한 믿게 된다던 말도.

마녀에게 향한 것처럼 보였던 말들은 사실 모두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소년도 탑에 갇힌 마녀를 보며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던 거였다. 마녀가 자신과 닮았으며 어쩌면 자신처럼 그렇게 몰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래서 죽여달라고 속삭이던 마녀가 불쌍했었나 보다. 빛과 어둠이라는, 용사와 마녀라는 전혀 다른 두 사람임에도 너무나 닮아 있어 자신의 이면을 보는 기분이 들었나 보다. 미래, 혹은 꽁꽁 감추고 있는 자신의 마음.

나 또한 소년의 뒤를 따라다니며 계속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어린 용사가 아닌 마녀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던지는 말에 상처 입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보이지 않는 피를 뚝뚝 흘리고 있던 검은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모두 나 때문이라고, 내가 원흉이라고, 나만 죽으면 된다고 말하는 소녀가 보였다.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네 탓이 아니야.”

용사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듣는 이는 마녀였다.

마녀는 처음으로 족쇄를 벗어던진 느낌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