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별 외전 (30/30)

특별 외전

* * *

“도진아, 여긴 무슨 색깔로 칠하고 싶어?”

한가로운 주말, 은서는 각양각색의 물감이 뿌려진 팔레트를 보여주며 상냥하게 물었다. 도진이는 손으로 붓을 꼭 그러쥔 채, 미간에 주름을 깊게 잡아가며 ‘끙’ 하는 소리를 냈다.

뽀얀 얼굴과 조그만 손에는 물감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은서는 키득키득 웃었다.

영락없는 꼬맹이 주제에, 인생을 좌우할 선택의 기로에 선 어른처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너무 귀여워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조금 뒤, 도진이가 짧은 손가락으로 초록색 물감을 가리켰다.

“이거.”

“초록색? 그럼 나무는 초록색으로 칠할까?”

“웅!”

도진이는 붓에 초록색 물감을 묻혀 채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는 생기 넘치는 초록 잎으로 만발해진다.

은서는 흐뭇한 눈길로 도진이를 지켜보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물꼬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도진이가 갑자기 붓을 탁, 내려놓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만할래애…….”

“응?”

“재미엄써졌져.”

“그럼 그림은 그만 그리고, 종이접기 놀이할까?”

이번에도 도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 할까?”

도리도리.

“피아노 칠까?”

도리도리.

“그럼 도진이 뭐 하고 싶어?”

도진이는 까만 눈동자를 살살 굴리면서 눈치를 보더니, 입술을 작게 오물거렸다.

“아빠한테 갈래애……. 아빠랑 놀구 시퍼.”

“아빠 지금 서재에서 일하시는 중이라고 했잖아. 나중에 아빠 일 다 끝나시면, 그때 놀아달라고 하자.”

청을 거절당한 도진이는 불만스럽다는 듯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제법 반항적인 눈매로 은서를 쳐다보았다.

은서는 그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목소리에 힘을 꽉 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시져. 나눈 아빠한테 갈 끄야!”

돌연, 도진이는 악다구니를 쓰고 후다닥 달려서 방을 냉큼 뛰쳐나갔다.

너무 쏜살처럼 달려나가서 막을 틈도 없었다. 고작 4살밖에 안 된 주제에 뭐가 저렇게 빠른 건지.

사력을 다해 달린 도진이는 금방 서재 앞에 도착했다. 팔을 높이 뻗어 문고리를 힘차게 내리고, 서재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빠! 아빠아!”

귀청을 찢기라도 할 기세로 우렁차게 소리친다. 전쟁통에서 아빠를 찾기라도 한 것처럼 처절하고 애타는 절규였다.

책상에 앉아 도면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던 차강혁은 고개를 들어 조그만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도진이는 다시 또 후다닥 달려서 아빠 곁으로 갔다. 차강혁이 의자를 살짝 돌려 마주 보자, 도진이는 폴짝 점프해서 그의 무릎 위에 올라탔다.

“아빠, 노라 줘!”

도진이는 작은 손으로 아빠를 꼭 끌어안고, 널찍한 가슴에 뺨을 부비적거리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그때, 뒤늦게 서재로 따라 들어온 은서가 벼락처럼 소리쳤다.

“차도진, 아빠 일하신다니까!”

그의 품에 쏙 안겨든 도진이를 보고 은서는 눈썹을 실그러뜨렸다.

물감이 묻은 손으로 만지고 얼굴로 비빈 바람에, 그가 입고 있던 에르메스 흰색 폴로셔츠가 알록달록 물들어버린 것이다.

“도진이 너, 아빠 옷까지 엉망으로 만들고……!”

노기 섞인 엄마의 얼굴을 보고 도진이는 더 깊게 아빠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빠가 화난 엄마로부터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굳건한 믿음에 보답하듯, 차강혁은 옅은 미소를 짓고 여유롭게 말했다.

“뭐 어때. 그냥 옷인데.”

그는 도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오히려 옷에 물감을 더 묻히기 시작했다. 흰색 폴로셔츠가 마치 낙서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평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은서는 졌다는 듯 표정을 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외견만 보면 차강혁이 엄격한 아빠, 유은서가 자애로운 엄마일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엄격한 건 은서였고, 관대한 건 강혁이었다.

절벽에서 새끼를 밀어뜨린다는 사자처럼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보이는 남자지만, 그는 아들에게 한없이 온화하고 너그러웠다.

얼마 전, 도진이가 파텍필립 시계를 와장창 박살 냈을 때에도 그는 오늘처럼 웃어넘겼다.

도진이가 아르마니 넥타이를 가위로 댕강 잘라버렸을 때에도, 붉은색 페라리에 매직으로 낙서를 벅벅 갈겨 놓았을 때에도, 그는 아들의 장난기가 재미있다는 식으로 그저 웃을 뿐이었다.

차 회장이 잔인한 방식으로 아들을 극한까지 몰아세웠던 것과 달리, 그는 친구처럼 친밀하고 편한 아빠가 되고 싶어 했다.

언제든 도진이가 기댈 수 있고, 고민을 터놓을 수 있고, 함께 장난을 치며 놀 수 있는 그런 아빠가.

“아빠, 나 쬬꼬렛 줘.”

도진이가 그를 향해 양손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은서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저 녀석이……. 아까 초콜릿 달라고 해서 안 줬더니, 아빠한테 달라고 하는 것 좀 봐.’

차강혁은 첫 번째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도진이가 초콜릿을 워낙 좋아해서, 자신을 보러 오면 언제든 챙겨주려고 서랍 안에 초콜릿을 가득 채워두었다.

“강혁 씨, 안 돼요. 주지 말아요.”

서랍을 열려는 순간, 은서가 단호한 음성으로 그의 행동을 제지시켰다.

“도진이 지금 초콜릿 먹으면, 나중에 저녁밥 안 먹으려고 할 거예요.”

은서의 말에 그는 서랍에서 미련 없이 손을 떼고, 도진이의 통통한 얼굴을 양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도진아, 초콜릿은 이따 저녁 먹고 줄게.”

차강혁이 너그러운 아빠라고 해도, 엄마인 은서의 의견을 거스르면서까지 맹목적으로 도진이를 챙기진 않았다.

은서가 안 된다고 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아무리 도진이를 아끼고 사랑해도, 그가 최우선적으로 따라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내였다.

“아빠, 찌금 주면 안 돼애? 도지니는 찌금 쬬꼬렛 머꼬 시픈데…….”

도진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꿈벅꿈벅거리며 특유의 혀 짧은 소리로 간절하게 말했다.

이 녀석, 얼굴은 시크하게 생겼으면서 하는 짓은 여우가 따로 없다.

강혁은 토실토실한 뺨을 손으로 살짝 집었다가 놓으며, 귀엽게 응석을 부리는 아들을 차분하게 달랬다.

“저녁밥 먹은 다음에 초콜릿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대신 아빠랑 저녁밥 먹을 때까지 신나게 놀자. 뭐 하고 놀까?”

“풋볼!”

아직은 말할 때마다 혀 짧은 소리로 어설픈 발음을 하는 도진이가, ‘풋볼’만큼은 정확하게 발음하고는 했다.

그만큼 도진이는 풋볼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칠 때는 30분도 못 가서 싫증을 내는 녀석이, 아빠와 풋볼을 할 때면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해 댈 정도니까.

한때, 은서는 도진이가 풋볼을 배우는 걸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도진이는 여느 아이들이 그러듯 자연스럽게 공을 가지고 놀았고, 아빠와 같이 공놀이를 하다 보니 또 자연스럽게 풋볼을 체득하게 되었다.

‘나랑 같이 공놀이를 했더라면, 최소한 풋볼을 알게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도진이가 공을 가지고 놀기 시작할 무렵, 은서는 자신이 도진이와 공놀이를 할 테니 당신은 가만히 있으라며 일부러 강혁을 배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도진이는 체력마저도 아빠를 닮아서 도무지 지칠 줄을 몰랐다. 도저히 자신의 체력으로는 아들의 열혈 에너지를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도진이는 강철 체력인 아빠와 공놀이를 하게 되었다.

풋볼 선수 출신인 아빠와 공놀이를 하면 아들이 뭘 배우겠는가. 당연히 풋볼을 배우겠지.

“아빠, 풋볼! 풋볼 하자!”

도진이가 공 던지는 시늉을 하며 채근했다. 그는 도진이를 한 팔로 안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은서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강혁 씨, 괜찮아요? 일하는 중이었잖아요.”

“나중에 도진이 잘 때 하면 되지.”

“밤늦게 일하면 피곤하잖아요.”

“안 피곤해. 밤새 ‘운동’을 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데, 고작 일쯤이야.”

능청스러운 대답에 은서의 낯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가 내뱉은 ‘운동’이라는 단어에 아주 음탕하고 외설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도진이가 못 알아들어도 그렇지, 애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은서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괜히 앙칼지게 받아쳤다.

“그래요. 오늘 밤엔 운동 말고, 일이나 실컷 해요.”

“아니, 아무리 바빠도 ‘밤 운동’을 빼먹을 수는 없지.”

그는 은서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길게 훑어보고는 입꼬리를 묘하게 끌어 올렸다. 이렇게 맛있는 먹잇감을 절대로 놓칠 수는 없다는 눈빛이었다.

속옷 안까지 낱낱이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깊고 그윽한 눈매에 은서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순간 미래를 예언하듯, 그의 품에 안겨 속절없이 단 숨을 할딱거리고 앙앙거리며 우는 제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등골이 쭈뼛거리면서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린다.

그는 여린 어깨를 손으로 꾹 짚으며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이 녀석, 지금부터 내가 제대로 훈련시킬 거야. 저녁 먹고 나면 대책 없이 곯아떨어지도록.”

“…….”

“밤새 깨지도 않겠지.”

“…….”

“그럼 당신은 내 밑에 갇혀서 우는 거야, 아주 예쁘게.”

더운 입김과 함께 날아든 나지막한 음성에 귓불이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심장은 빠른 템포로 격발하듯 박동하고 있었다. 마치 오늘 밤을 애타게 기다리듯이.

* * *

차강혁은 소프트 폼으로 만들어진 유아용 풋볼 공을 도진이에게 쥐여주고 잔디 정원을 향해 걸어갔다.

도진이는 어서 풋볼 놀이를 하고 싶다고 시위라도 하듯, 자그마한 손으로 공을 쪼물쪼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은서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풋볼이 그렇게도 좋을까. 옆에서 보는 나는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인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도진이의 꿈이 풋볼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도진이는 아빠가 회사에 가지 않고 자신과 하루 종일 풋볼만 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풋볼을 열렬히 좋아했지만, 정작 도진이의 꿈은 따로 있었다.

도진이의 꿈은 바로…….

“도진아, 도진이는 이따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공룡!”

그렇다. 도진이의 장래희망은 공룡이었다. 얼토당토않은 꿈에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왜일까.

은서는 도진이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래. 도진이는 어른이 되면 풋볼 선수 말고, 꼭 공룡이 되는 거야. 자, 엄마랑 약속.”

“약속!”

도진이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굳게 맹세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약속에 차강혁은 피식 웃었다.

현관을 나오자 넓고 푸른 잔디 정원이 펼쳐졌다. 차강혁은 정원의 중간 지점쯤에 가서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주었다.

잔디 위로 발을 디디기가 무섭게 도진이는 공을 옆구리에 착 끼고 풋볼 선수처럼 포즈를 잡았다.

상체를 굽혀 낮게 자세를 취하고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면밀히 체크한 후, 쿼터백처럼 절도 있는 손짓으로 작전을 지시했다.

“아빠아, 빨리 저기루 달려가!”

차강혁은 엔드 존이 있는 전방을 향해 맹렬히 질주했다.

도진이는 바람처럼 달리는 그를 향해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4살짜리가 던지는 거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멀리. 풋볼 신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그는 하늘 높이 뜬 공을 손쉽게 잡아채고 계속 달렸다. 이내 엔드 존 안에 다다른 그는 잔디 위로 공을 터프하게 내리쳤다.

“얏호! 터치다운!”

도진이는 양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엔드 존에 있던 그는 단숨에 달려와, 도진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차도진 선수, 실력이 점점 느는걸.”

“헤헤…….”

“도진아, 이번에는 아빠를 제치고 저기 엔드 존까지 공을 들고 달려 봐.”

바닥에서 일어난 그는 도진이 앞을 굳건한 장벽처럼 가로막고 섰다.

도진이는 바디체크를 해서 아빠를 넘어뜨리겠다는 심산으로, 그의 다리에 온몸을 내던져서 쾅 들이박았다.

“아니, 그렇게 과격하게까지…….”

정원 가에 서서 부자의 열혈 운동을 지켜보고 있던 은서가 입술을 불안하게 들썩거렸다.

하지만 은서의 우려와 달리, 도진이는 씩씩하기만 했다. 오히려 승부욕이 생기는지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거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눈매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차강혁과 똑 닮았다. 지기 싫어하는 저 마음도 분명 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겠지.

도진이는 다시 한번 장벽 같은 아빠를 향해 온몸을 거세게 들이박았다. 차강혁이 다리를 슬쩍 피해 주자, 도진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엔드 존을 향해 매섭게 달렸다.

옆구리에 공을 딱, 끼고 초음속처럼 질주해서 엔드 존에 다다른 도진이는 공을 바닥에 퍽, 거칠게 내리꽂고 크게 환호했다.

“터치다우운!”

그 후로도 부자의 놀이는 계속되었다. 도진이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아빠의 코치를 따라 공을 던지고 거침없이 내달렸다.

가만히 구경을 하던 은서는 작업실로 들어가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겨왔다.

정원 한쪽에 마련된 나무 벤치에 앉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남자가 푸르른 잔디를 자유롭게 누비는 풍경을 크로키하기 시작했다.

빠른 손길로 남편과 아이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는데, 문득 가슴이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평범한 일상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평범하기 때문에, 감정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걸까?

저 남자와는 평범한 순간을 결코 공유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너무 차갑고 비정해서, 남편이 되어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건조하고 무심해서, 아빠가 되어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두기에, 그는 너무도 야만적인 짐승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은 도저히 그를 길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 찢기도록 상처받고 숨통이 끊어질 만큼 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일들을 보란 듯이 비웃듯, 그는 다정한 남편이 되었고 자상한 아빠가 되었다. 사랑을 줄 줄 알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그런 남자가.

그래서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리, 척박하고 험난한 길을 헤매고 헤매다가 마침내 행복이 가득한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 * *

하늘 위로 서서히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은서는 연필을 내려놓고 스케치북을 덮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아직도 풋볼 삼매경에 빠진 아들을 향해 외쳤다.

“도진아, 이제 씻고 저녁 먹자.”

“시져! 더 할래애!”

도진이는 반항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맞받아치며, 공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려고 들었다.

그때, 차강혁이 도진이의 뒷덜미를 붙잡아 세우고는 단호하게 공을 빼앗았다.

이윽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도진이와 시선을 반듯하게 맞추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도진, 엄마가 방금 뭐라고 하셨지?”

“씻구…… 밥 머그라고…….”

좀처럼 보기 힘든 아빠의 엄격한 태도에, ‘시져!’라며 호기롭게 받아치던 도진이는 급격히 공손해져서 양손을 꼬물꼬물 움직여 배꼽 앞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그 모습이 퍽 깜찍해서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지만, 강혁은 꾹 참고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럼 도진이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 말 드러야 해…….”

“그래,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거야. 우리 풋볼은 다음에 하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씻고 밥 먹으러 가자. 응?”

도진이가 고개를 끄덕끄덕이자, 그는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작은 몸을 가뿐히 들어 올려 목말을 태웠다.

은서가 그의 옆으로 다가가 나란히 서자, 도진이는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며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거렸다.

“엄마, 도지니 씻구 밥 머그러 갈 그야…….”

젖니 사이로 발음이 휙휙 새는 목소리가 어찌나 귀여운지. 은서는 눈꼬리를 곡선으로 휘면서 해사하게 웃었다.

봄처럼 화사한 웃음에 도진이도 덩달아 신이 나는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 머리를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 * *

도진이는 아빠와 함께 목욕을 했다.

그는 잔디 위에서 구르던 몸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씻겼다. 아이를 씻기는 건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해 봐서, 어려울 게 전혀 없었다.

욕실에서 나온 그는 아이의 젖은 몸을 타월로 닦아내고, 헤어드라이어로 두피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꼼꼼하게 말려주었다.

그런 다음, 새 옷을 입혔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꼬마 신사처럼 보여서 그는 피식 웃기도 했다.

“자, 그럼 밥 먹으러 갈까.”

도진이 손을 잡고 다이닝 룸으로 갔더니, 은서가 먼저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와아, 마시께따!”

맛깔스러운 음식을 보고 도진이는 환호성을 외치며 얼른 의자에 앉아 포크를 냉큼 집어 들었다.

“차도진.”

포크로 떡갈비를 찍으려는 순간, 은서가 사뭇 엄한 목소리를 냈다. 도진이는 돌처럼 굳어버리더니, 잠시 후 천천히 손을 움직여 포크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엄마, 아빠가 수저를 들어야 식사가 시작된다는 걸 은서가 오래전부터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아, 얼르은 요기 앉아.”

도진이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며 채근했다. 차강혁은 의자에 앉아 수저부터 들었다.

이어서 은서도 수저를 들자, 도진이는 기다렸다는 듯 포크를 들어 떡갈비를 쿡 찍었다. 한입 크게 베어 물고 고기를 냠냠 씹어 먹는데, 먹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엄마는 왜 콩 안 머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은서의 밥그릇을 유심히 주시하며 도진이가 말했다.

자신과 아빠의 밥그릇엔 콩밥이 가득 담겨 있는데, 엄마 밥그릇엔 그저 흰밥만 있는 것이 영 이상한 것이었다.

“엄마는 콩 안 좋아해서 안 먹어.”

“왜애? 콩 안 머그면 키 안 크는뎅…….”

“엄마는 이게 다 큰 거야.”

“으응……?”

도진이는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엄마는…… 아빠처럼 못 커?”

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진이는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지었다.

“왜? 왜애 엄마는 아빠처럼 못 크는데에? 그럼 엄마가 너어무 불쌍하자냐……!”

필요 이상으로 격렬한 반응에 은서는 기가 막혀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불쌍하다니? 내 키가 뭐 어때서?

차강혁은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큭큭 웃는다. 도진이의 얼토당토않은 반응이 그저 재미있어 죽겠는 모양이다.

“엄마, 안 불쌍하거든?”

“왜애? 엄마는 아빠보다도 훠얼씬 작은데에? 아빠는 이만한데, 엄마는 요만하자나!”

‘아빠는 이만한데.’라고 말할 때 도진이는 두 팔을 최대한 크게 벌려서 거대한 동그라미를 만들고, ‘엄마는 요만하자나.’라고 말할 때는 조그만 주먹을 집어 들었다.

쥐눈이콩만 한 꼬맹이가 보기에도, 그와 자신의 덩치 차이는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다.

황당한 표현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차강혁이 불쑥 말했다.

“대신 엄마는 작아서 요정처럼 예쁘잖아.”

“마자 마자. 엄마는 팅커벨 가타!”

도진이가 앙증맞은 손으로 박수를 짝짝 쳤다.

은서는 웃음을 풉, 터뜨렸다. 낯간지러워 죽겠는데 한편으로는 듣기 좋았다. 요정 같다는 그 말이, 팅커벨 같다는 그 말이.

* * *

새카만 어둠이 깔리자, 은서는 도진이를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고 침대 곁에 앉은 은서는 동화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용감한 용사의 이야기였다.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도진이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아까 낮에 아빠와 풋볼을 한다고 제법 지쳤던 모양이다.

은서는 동화책을 내려놓고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을 내쉬면서 곤히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쩜, 이렇게도 똑같이 생겼을까.”

차강혁과 똑 닮은 얼굴이 볼 때마다 신기하다. 아무리 아빠와 아들이라지만, 이렇게 닮아도 되나 싶을 정도다.

지난번 명절 때 시댁에 가서 앨범을 꺼내봤을 때는 새삼 많이 놀랐다. 어린 시절 차강혁과, 지금 도진이의 모습이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같아서.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린 차강혁에게서는 도진이처럼 개구쟁이스러운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앨범 속의 차강혁은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정제된 모습이었다.

반듯한 자세와 차분하게 굳은 얼굴, 어두운 정글 속을 홀로 누비는 짐승처럼 고독한 눈빛…….

해맑게 웃어야 할 어린아이가 왜 이런 눈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애답게 응석이나 어리광을 부리지도 못하고, 늘 무거운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쓸쓸한 유년 시절을 보냈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 위로 섬돌이 꽉 눌러앉은 것처럼 속이 답답해진다.

“그 사람도 우리 도진이처럼, 엄마 아빠 사랑을 듬뿍 받는 개구쟁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손을 뻗어 보들보들한 얼굴을 쓰다듬는데,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도진이를 쓰다듬는 게 아니라, 꼭 어린 시절의 차강혁을 쓰다듬는 듯한 그런 기분이…….

그 순간, 은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왔다. 즉시 서재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지금 당장,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서재 앞에 도착하자, 은서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바쁜 그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번뜩 든 것이다.

‘오늘 도진이랑 놀아준다고 제대로 일도 못 했는데…….’

게다가 자신이 포옹을 하면, 그는 포옹에서 끝날 남자가 아니었다. 폭주한 짐승처럼 잔뜩 흥분해서는 몇 번이고 저를 집어삼킬 테지.

‘다음에……. 아쉽지만, 다음에 안아 줘야지…….’

서재 앞에서 서성이던 은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돌려 욕실로 걸어갔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잠에 들 생각이었다.

옷을 모두 벗고 완벽한 알몸이 되어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수전을 열자 물줄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몸은 금세 젖어 들어갔다.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하염없이 물을 맞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

이내 성큼성큼,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고막을 사로잡았다. 예기치 못한 침입에 어깨가 긴장으로 굳어졌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다가, 은서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면서 멈췄다.

등 뒤로 거대한 체구가 장벽처럼 서 있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코끝으로는 맑고 청량한 향기가 잔잔하게 스며들어왔다.

순간, 양가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피어올랐다.

오직 본능을 따라서 난폭하게 움직이는 잔혹한 짐승 앞에, 젖은 나신의 상태로 서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반면, 당장 몸을 돌려세워 넓은 품에 쏙 안겨들고 싶을 만큼 좋은 향기에, 설렘이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대조적인 감정들이 제멋대로 뒤범벅되면서 오묘한 흥분이 찾아왔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뒷머리가 저릿해진다.

그는 긴 팔을 뻗었다.

큼지막한 손은 수전을 움켜쥐었다. 힘줄이 불끈 도드라진 섹시한 손은 수전을 힘 있게 꺾어서 물을 잠갔다.

소나기처럼 내리던 물줄기는 소나기처럼 그쳤다. 조용해진 욕실 안으로는 서로의 숨소리만이 속삭이듯 울려 퍼지고 있었다.

“……!”

탄탄한 팔뚝이 젖은 나신을 옭아매듯 끌어안자, 은서의 눈동자는 당황으로 얼룩졌다.

빈틈 하나 없이 바짝 밀착된 몸으로는 발정 난 짐승의 심볼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서 널 갖고 싶다고 안달이라도 내듯, 단단한 그것은 등허리를 쿡쿡 찔러댔다.

은서가 어깨를 살짝 비틀자, 그는 더욱더 강한 힘으로 그녀를 품 안에 가둬서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

“하고, 씻어.”

열기 섞인 목소리가 귓바퀴에 부딪혀 나른하게 부서져 내렸다. 일순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만 싶어졌다.

하지만, 은서는 한 가닥 남은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고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차강혁 씨, 하던 일은 다 끝냈어요?”

“아니.”

그는 양손으로 탐스러운 가슴을 움켜쥐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기가 막혔다. 아직 일도 다 끝내지 않은 주제에, 다짜고짜 욕실에 들이닥쳐서 야한 짓이라니.

“그럼 다 하고 와요. 업무 끝내고 오면 상대해 줄 테니까.”

은서는 제 가슴을 덧그리듯 쓰다듬고 있는 음란한 손을 찰싹, 때렸다.

그러나 그의 손은 오히려 더 대담하게 움직였다. 그는 손가락 끝을 세워 핑크빛으로 예쁘게 익은 젖꼭지를 희롱하듯 꾹꾹 눌렀다.

“하아…… 하지 마요! 서재로 돌아가서 일이나 하라구요!”

“몸부터 풀고.”

“……네?”

“몸을 풀어야, 일에 집중이 더 잘 된다고.”

“…….”

“밤 운동, 하자.”

보드라운 입술이 정수리에 쪽, 닿았다.

다정한 입맞춤이었지만, 그의 손은 다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왼손은 가슴을 그러쥔 채로 맘껏 농락하고, 오른손은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기다란 손끝이 외음부에 닿자, 은서는 얼른 그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원하는 걸 쟁취하는 남자였다. 아내를 압도적으로 굴복시켜, 가장 음탕한 방식으로 그녀를 맹렬하게 먹어치우는 남자였다.

“서재에 틀어박혀 있는데, 유은서 네 생각밖에 안 났어.”

귓불을 잘근 깨물면서 그는 흥분이 자욱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연갈색 눈동자는 확연하게 동요했다. 심장은 가파른 템포로 뛰었다.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

나도 줄곧 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니…….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기뻤다.

“그 녀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너를 납치해오고 싶을 만큼, 애가 타고 몸이 달았지.”

“…….”

“이것 봐. 좆이 터질 만큼 아프다고.”

그는 하반신을 더욱 거칠게 밀어붙이며, 잔뜩 성이 난 그것으로 은서의 등허리를 압박하듯 짓눌렀다.

그에게는 이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일 테다. 믿기 어려울 만큼 음란한 방식이지만, 그의 아내가 된 이상 감수해야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은서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고개를 젓지도 않고, 그만두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그에게 육체를 내던지고, 그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을 뿐이다.

긴 손가락은 구멍 주변을 배회하듯, 빙글빙글 돌면서 만지작거렸다.

감질나는 자극에 아래가 뜨끈해지면서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은서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얕은 신음을 토해냈다.

“하읏…….”

색에 취한 아내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흐트러진 눈동자도, 벌어진 입술도, 간드러진 신음도, 모든 것이 환상적이다.

그는 입매를 지그시 끌어 올리고, 할딱할딱 가쁜 숨을 쏟아내는 붉은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그녀의 입속을 무법자처럼 휘저으며 혀를 질척하게 엮어 넣는다.

혀뿌리까지 탐욕스럽게 빨아대면서 손끝으로 클리토리스를 툭툭 건드리자, 어서 박아 달라고 아양을 떨듯 자그마한 구멍이 입을 빠끔거리며 벌름거렸다.

“여기, 나를 꽤나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데.”

낮은 목소리로 조소하듯 내뱉으며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좁은 구멍 속으로 비집어 넣었다.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던 작은 구멍은 마디가 굵은 손가락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아앙…….”

내벽을 얄궂게 긁자, 은서가 발정기 암고양이처럼 끼를 떨듯이 울먹거렸다. 눈시울은 잔뜩 붉어졌다.

곧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얼굴이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잔뜩 괴롭혀 주고 싶다. 엉망으로 망가뜨려서 목이 쉴 정도로 울게만 만들고 싶다.

그의 잔인한 가학성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은서는 연신 교성을 터뜨렸다. 그의 손가락이 스위트 스팟을 찾아서 건드릴 때마다, 골반이 뒤틀리고 온몸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흐응…….”

끊임없이 주어지는 자극에 애액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의 손은 물론이고 팔뚝까지 흥건하게 적셔버리자, 은서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활활 타올랐다.

정작 그는 입꼬리를 유려하게 끌어 올리며 즐거워했다.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낸 그는 은서의 얼굴 앞에서 애액으로 범벅이 된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짓궂은 남자였다. 은서는 인상을 팍 찡그러뜨리고 고개를 치켜세워 그를 딱 쳐다보며 눈을 앙칼지게 흘겼다.

순한 얼굴로 그렇게 째려보면 얼마나 깜찍한지 모른다. 그는 피식 웃음을 내뱉고, 가운뎃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끈적끈적한 애액을 혀로 할짝할짝 보란 듯이 핥아먹자 은서의 얼굴은 아예 사색이 되었다.

“강혁 씨, 그만해요. 더럽잖아요…….”

“그래, 유은서 넌 더러운 여자야.”

“…….”

“나만 보면 보지 구멍을 벌리고 질질 싸는, 더러운 여자.”

그는 은서의 등허리를 짓눌러 상체를 숙이게 만들고, 양손으로 골반을 틀어잡아 엉덩이를 잘 보이게 들어 올렸다.

은서는 손바닥으로 타일 벽을 짚고 의지했다. 이렇게 그에게 엉덩이를 내보인 채로 다리를 벌리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지만, 수치심을 이기는 건 언제나 욕망이었다.

그의 사랑을 느끼고 싶다는 열띤 욕망이, 항상 모든 것을 이겼다.

“박아 줄게. 자궁까지 깊숙하게.”

그는 하얀 엉덩이를 찰지게 후려치고 바지 버클을 풀었다. 드로어즈를 살짝 끌어 내리고 발광하듯 부풀어 오른 페니스를 꺼냈다.

질질 싸고 있는 건 은서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욕정에 지배당해 프리컴을 질질 싸고 있었으니까.

팽팽하게 기립한 기둥으로는 힘줄이 단단하게 서 있었다. 그의 모든 세포가 그녀를 열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하으읏!”

흥분한 페니스가 좁다란 구멍 속을 거침없이 파고들자, 은서는 골반을 크게 들썩거리며 교성을 터뜨렸다. 수년 동안 매일같이 박혔는데도, 좀처럼 삽입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공할 만큼 무시무시한 크게 탓이겠지.

거대한 페니스는 그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폭주한 기관차가 끝 모르게 돌진하듯 작은 구멍을 마구 쑤셔 댔다.

온몸을 꿰뚫듯이 파고 들어오는 우람한 페니스에 눈앞이 흐려졌다. 눈 끝으로 눈물이 서서히 맺히다, 이내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흣…….”

은서는 고개를 살짝 틀어 젖은 얼굴로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상냥하게 해 달라는 무언의 요구였다.

하지만 그는 측은하게 우는 얼굴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간악하게 웃었다.

이 여자는 울 때 제일 예쁘다.

그녀를 더 울게 만들기 위해 허리를 난폭하게 쳐올렸다. 그러자 은서가 엉엉 소리를 내면서 서럽게 울어 댔다.

그는 난잡하게 교합된 지점을 나른하게 응시하며 격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퍽퍽, 둔탁한 소리가 욕실 벽을 때리고 은서는 목 놓아 울기만 했다.

“내 걸 아주 맛있게 집어삼키고 있어. 내 자지가 그렇게 좋아?”

“하으……. 벼, 별로…….”

좋으면서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안 그럴 것 같으면서, 꼭 이렇게 가시를 세우고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이러면 본인만 괴로워질 뿐인데. 혀를 가볍게 찬 그는 은서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휘어잡고, 거친 숨을 쏟아내며 으르렁거렸다.

“아니긴 뭐가 아냐. 좋다고 물고 조이고 난리 났는데.”

“흐응…… 모, 몰라, 그런 거…….”

“몰라? 제대로 알려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더욱 깊숙하게 페니스를 쑤셔 박고 허리를 흉포하게 움직였다. 자궁벽을 거침없이 찔러대는 야만적인 짐승의 몸짓에 은서는 손톱으로 타일 벽을 애처롭게 긁고 엉엉 울면서 애원했다.

“아, 알았어……. 좋아, 좋으니까…… 제발 천천히, 하아…….”

너무 강한 힘에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가냘픈 애원에도 성난 짐승은 그저 폭풍처럼 퍽퍽 몰아붙이기만 한다. 마치 더 울어보라는 식으로.

“하앗, 강혁 씨 제발…….”

울면 울수록 그는 미친놈처럼 더 흥분했다. 그가 포악하게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쾌감이 강제적으로 주입되었다.

겉으로는 거칠어 보여도, 그는 능숙하게 은서의 성감만을 자극하고 있었다. 어디를 건드려야 하는지,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어디를 들쑤셔야 하는지, 그는 은서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감각을 일깨우는 짜릿한 쾌감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정신이 완전히 이탈되었다. 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그의 피스톤질에 보조를 맞췄다.

늘 그랬다. 그는 항상 은서를 색욕에 빠진 탕녀로 무너뜨렸다.

“아읏, 강혁 씨…… 좋아요…… 너무 좋아요…….”

“하아, 은서야…….”

서로 함께 절정에 다다른 순간, 그는 빠르게 페니스를 빼내고 그녀의 엉덩이에 정액을 흩뿌렸다. 유백색의 정액이 통통한 엉덩이를 타고 허벅지까지 천천히 흘러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그는 다급한 숨을 할딱할딱 몰아쉬는 아내를 달래듯이 꼭 껴안고 척추 선을 따라서 꼼꼼히 입술을 맞췄다.

* * *

그는 세 번 연속으로 은서를 먹어치운 다음에야 그녀를 씻기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로 그녀를 충분히 적시고, 새하얀 거품이 풍성하게 올라온 샤워 타월로 젖은 몸을 세심하게 문질렀다.

보드라운 타월이 목덜미나 젖꼭지, 옆구리 같은 약한 부위를 스칠 때마다 은서는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단 숨을 쏟아내고는 했다.

그러면 그는 입가에 음험한 미소를 머금고, 더욱 노골적으로 약한 지점을 괴롭히듯 훑었다. 그러다 열이 바짝 오른 은서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퍽, 때리는 건 덤이었고.

그는 깨끗하게 씻긴 은서를 공주님처럼 소중하게 안아서 부부 침실로 데려왔다.

포근한 침대에 그녀를 눕히자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졌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손을 뻗어서 흐트러진 머리칼을 찬찬히 쓸어 넘겨주었다.

소도 때려잡을 것처럼 큼지막하고 터프하게 생긴 손이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게 움직인다. 따스하고 다정한 손길이 괜히 좋아서 은서는 눈꼬리를 접고 배시시 웃었다.

“뭘 그렇게 웃어?”

“그냥요.”

일상의 모든 순간순간이 마냥 좋기만 해서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혹시 지금 나,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은서는 이불 밖으로 손을 삐죽 내어서 볼을 살짝 꼬집어 보았다. 아얏, 통증의 선명함에 안도감이 들었다.

“뭐 하는 짓이야.”

“그냥 한번 꼬집어 봤어요.”

“엉뚱하긴.”

그는 빨개진 볼을 달래듯이 손으로 살살 어루만져 주다가, 고개를 숙여 입술을 쪽, 맞췄다. 아릿하게 느껴지던 통증이 그의 입맞춤 하나에 마법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럼 잘 자라.”

깊은 밤과 근사하게 어울리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인사를 전한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 은서가 스프링 튕기듯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워 양손으로 그의 팔목을 꼬옥 붙들어 잡았다.

“일할 거…… 많아요? 내일 하면 안 돼요?”

은서는 눈동자를 빙그르르 굴리며 입술을 조그맣게 움직였다.

같이 자고 싶었다. 그의 팔을 베고 넓은 품에 갇히듯 안겨서, 그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고 감미로운 호흡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잠들고 싶었다.

“마저 끝내고 올게. 먼저 자고 있어.”

하지만 그는 냉정했다.

간절하게 팔목을 붙들고 있는 조그만 손을 미련 없이 떼어낸 그는 은서의 가슴을 살포시 짓눌러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목까지 단단히 덮어주고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준 다음, 발걸음을 뚜벅뚜벅 내디뎠다. 이내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부부 침실에 홀로 남은 은서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아쉬워했다.

‘하여간 일 중독자답다니까. 그냥 푹 자고 내일 하면 될 텐데.’

속으로 투덜투덜거리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사르륵 잠이 들었다. 욕실에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당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얼마쯤 잤을까.

죽은 듯이 꿈나라를 헤매던 은서가 부스스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옆자리를 봤는데, 텅텅 비어 있었다.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일하고 있는 거야?’

협탁 위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새벽 4시였다.

‘미쳤어, 정말! 8시에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새벽 4시까지 일하고 있는 거야? 강철 체력, 강철 체력, 했더니 자기가 진짜 강철 인간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은서는 마음속으로 따발총을 연사하듯 잔소리를 쏟아내며 침대를 빠져나왔다. 쿵쿵, 성급한 걸음으로 서재까지 향한다.

일도 좋지만, 이제 그만 그를 재워야 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걸 아내로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서재에 당도한 은서는 노크도 생략하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는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산처럼 높이 쌓여있는 파일 위로 서류를 툭 집어 던진 그는 아내의 등장에 입매를 묘하게 끌어 올리며 능글거렸다.

“안 그래도 침실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당신이 먼저 여길 들이닥치다니.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었나?”

은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곧 긍정. 죽은 듯이 자다가 중간에 깬 건, 분명 그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일 테니까.

책상 쪽으로 걸어간 은서는 그의 앞에 서서 빤히 올려다보았다. 눈자위가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쉬엄쉬엄하면 안 되는 걸까. 피로로 얼룩진 얼굴이 안쓰러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도진이랑 놀아준다고 시간 많이 빼앗겼죠. 그리고 나 때문에도…….”

“그건 빼앗긴 게 아니야. 함께 한 거지.”

명료한 대답에 가슴으로 뜨거운 전율이 일었다. 그는 ‘일 중독자’였지만, 그보다 더 심한 ‘가족 중독자’였다.

“이제 다 끝난 거예요?”

“응.”

“그럼 어서 자러 가요.”

그의 손목을 잡아끌려는 순간이었다.

별안간 그가 잘록한 허리를 한 팔로 감아 안아 은서를 번쩍 들어 올리고 서류가 가득한 책상 위에 턱, 앉혔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연갈색 눈동자가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순진하게 뜬 눈망울을 곧게 마주하며 그는 입매를 비스듬히 말아 올렸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처럼 축축하고 질척한 미소였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로 입술을 가까이 가져왔다. 청량한 스킨 향이 짙어지고, 더운 숨결이 귓바퀴를 어지럽히듯 간질였다.

“그거 알아? 새벽 운동이 몸에 좋은 거.”

나른한 음성이 고막을 뜨겁게 자극했다. 전신으로 퍼지는 열기에 어깨가 가냘프게 떨렸다. 그는 목소리만으로도 은서의 체온을 제멋대로 날뛰게 만드는 남자였다.

코너에 몰린 초식동물처럼 연약하게 몸을 떠는 그녀를 흥미로운 눈길로 주시하며, 그는 어깻죽지를 찬찬히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손길에는 위험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은서는 발악하듯 어깨를 비틀어 그의 손길을 애써 피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다시 그의 손아귀 안이다. 그는 강한 악력으로 은서의 뒷목을 단단히 틀어잡고 거친 키스를 퍼부었다.

“으읍!”

입술을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강압적인 키스에 호흡이 잔뜩 흐트러졌다.

은서는 두 주먹을 그러쥐고 그의 등을 팡팡 때려 댔다. 그러나 어설픈 반항에 오히려 두 손목이 붙잡혀서 단단히 결박당하고 말았다.

입술을 억지로 벌려 혀를 밀어 넣은 그는 그녀의 입안을 탐색하듯 헤집었다.

동시에 무릎을 세워 다리 사이를 얄궂게 지분거렸다. 능수능란한 자극에 은서는 온몸을 배배 꼬면서 야트막한 신음을 쏟아냈다.

이러다 잡아먹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 이대로 두면 오히려 제 쪽에서 어서 먹어달라고 아양을 떨 것이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그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애처로울 정도로 절박한 공격에 그가 입술을 떨어뜨렸고, 은서는 재빨리 양팔을 엑스 자로 교차해 제 몸을 보호하듯 가렸다.

“강혁 씨, 안 돼요! 당신 4시간 뒤에 출근이라구요!”

그는 피가 새어 나오는 입술을 엄지로 쓰윽 훑으며 피식 웃었다. 이놈의 암고양이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온순하게 길들인 것 같다가도, 앙칼지게 입질을 하며 집사를 물어뜯는단 말이지.

“운동은 원래 바쁜 시간을 쪼개가면서 하는 거야. 그래야 건강해진다고.”

느긋하게 대답한 그는 자신의 셔츠 자락을 쭈욱 찢어버렸다.

돌발적인 행동에 은서가 인상까지 쓰면서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무슨 짓을 하려고? 얼핏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2초 뒤, 그 두려움은 명확한 행동으로 다가왔다. 그는 셔츠 조각을 솜뭉치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은서의 입속에 마구 쑤셔 넣었다.

“유은서, 입질은 안 돼. 사람을 함부로 물면 안 되는 거야.”

“우웁……!”

웃겨, 자기는 맨날 나 물면서!

항변하고 싶지만 입에 천 조각이 가득 물려있어 뭉개지는 비명만이 야속하게 흘러나올 뿐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 그는 왼손으로 은서의 두 손목을 휘어잡고 오른손으로는 가죽 벨트를 풀었다.

찰락거리는 금속성의 소리가 청각을 날카롭게 긁었다.

“으읍!”

절벽까지 내몰린 은서가 목청을 쥐어짰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죽 벨트로 그녀의 손목을 정교하게 묶어 결박시켰다.

“성질 더러운 고양이는 발톱도 곧잘 휘두르니까, 이렇게 묶어두는 게 좋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능청맞게 내뱉은 그는 검지 끝으로 은서의 이마를 툭, 쳤다. 그러자 여리여리한 몸은 책상 위로 풀썩, 맥없이 쓰러졌다.

“우웁!”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그는 은서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마지막으로 얇은 팬티가 대리석 바닥 위로 툭 떨어지고, 그녀는 이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었다.

먹기 좋은 상태로 잘 손질된 몸을 오만한 눈길로 뜯어본 그는 책상 서랍을 열어 작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콘돔이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해 볼까.”

그녀의 눈앞에서 콘돔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며 그는 악마처럼 사악하게 웃었다.

* * *

“나빴어……!”

뒤처리를 끝낸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은서는 도끼눈을 치켜뜨고 새된 음성을 왈칵 내질렀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온통 번져서 엉망이었다. 손끝으로 투명한 눈물을 세심하게 지워주자, 서러움이 복받치는지 다시 또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응석을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강혁이 옅게 웃었다. 대체 누가 믿을까. 이 여자가 4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라고.

“뚝! 이제 그만 자러 가자.”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은서를 안아 들고 부부 침실을 향해 큰 보폭으로 걸어갔다.

침실 안으로 들어와 은서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이윽고 강혁도 옆자리에 눕자, 은서는 ‘흥!’ 하는 콧소리를 크게 내더니 몸을 홱 돌려서 매정하게 등을 보여주었다.

화가 나도 단단히 났다고 시위하는 것이다. 토라진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다. 그는 피식거리며 그녀의 머리 밑으로 억지로 팔뚝을 밀어 넣어 팔베개를 해 주었다.

그래도 화가 난다고 숨을 씩씩거린다. 심통 난 아이를 달래듯 강혁은 그녀의 어깨를 도닥도닥 두드려주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거친 숨소리는 잦아들고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바퀴로 걸쳐 들었다.

고개를 살짝 움직여 그녀의 얼굴을 확인해봤더니, 눈을 꼭 감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자는 모습이 꼭 천사 같았다.

“잘 자라, 우리 공주님.”

그는 그녀의 눈두덩에 살포시 키스해 주었다.

* * *

다시 또 주말이 찾아왔다.

오늘은 저택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둘째 언니, 은경이 딸을 데리고 놀러 온 것이다. 5살이 된 은경의 딸, 하윤은 그새 더 자라 있었고, 둘째를 임신 중인 은경의 배는 그새 더 부풀어 있었다.

“안녕하세요오…….”

하윤이는 배꼽 인사를 꾸벅하더니 차강혁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살짝 붉어진 얼굴이 수줍어 보인다.

이내, 하윤은 앵두 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작게 말했다.

“이모부! 안아 쥬세요…….”

그는 하윤이를 익숙하게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자 도진이가 그의 바지를 살살 잡아당기며 칭얼거렸다.

“아빠아, 나두! 도진이두 안아 죠오!”

그는 하윤이를 오른쪽 팔뚝에 안정적으로 앉히고, 왼쪽 팔로 도진이를 손쉽게 안아 올렸다.

“애들 산책 좀 시키고 올게요. 이 사람이랑 편히 쉬고 계세요.”

양쪽 팔에 아이 두 명을 안아 든 그는 정원으로 나가서 유유자적하게 걸었다. 은서는 테라스에서 은경을 마주 보고 앉아 다과를 즐겼다.

“제부는 힘도 좋아. 애들 두 명을 들고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네. 네 형부는 요새 하윤이 컸다고 안아주기 힘들다고 징징거리는데 말이야.”

푸르른 정원 풍경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차강혁을 감탄 섞인 눈길로 바라보며 은경이 재잘거렸다.

은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강철 체력다웠다. 아이 두 명을 한꺼번에 안는 것쯤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근데, 형부는 어디 갔어?”

“골프 치러. 얘, 우리 하윤이 좀 봐. 쟤 완전 좋아죽는다.”

하윤이는 차강혁이 뭐라고 말만 하면 까르르, 예쁘게도 웃어 댔다.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도 하윤이는 그를 만날 때마다 먼저 다가가 안아 달라고 하고, 그가 하는 말에 하나하나 즐겁게 반응하고는 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이라 어린애 입장에선 무서울 법도 할 텐데, 하윤이는 그런 것도 없이 그저 이모부만 보면 좋아서 신이 났다.

“하윤이, 얼마 전에 제부 때문에 펑펑 울었다?”

“뭐? 왜?”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은서는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만면에는 물음표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조카가 차강혁 때문에 울다니, 대체 왜? 저 남자는 성인 여자도 모자라서, 이제 어린 여자애들마저 울리고 다니는 거야?

“하윤이가 나중에 어른 되면, 제부랑 결혼하고 싶다고 그랬거든.”

은경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막내 이모부는 막내 이모랑 결혼했기 때문에 하윤이 너랑은 결혼 못 한다’고 설명해줬더니, 애가 무슨 나라 잃은 애처럼 서럽게 꺽꺽 우는 거야. 우는 애 달랜다고 어찌나 진땀 뺐는지.”

그때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은경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와중에 네 형부는 ‘막내 이모부 말고 나랑 결혼하자, 하윤아.’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하윤이가 뭐라고 그랬는지 아니?”

“뭐라고 했는데?”

“아빠랑은 결혼하기 싫대. 곧 죽어도 잘생긴 막내 이모부랑 결혼하고 싶다나 뭐라나.”

은서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 뭣 모르는 어린애도 차강혁이 잘생긴 건 아는 모양이다.

‘하윤아, 그에게 도달하는 길은 너무도 척박하고 험난해서 이모가 대신 걸었단다. 부디 이해해주렴.’

연하게 미소를 지은 은서는 잔을 들고 따뜻한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남산처럼 부푼 은경의 배를 보고 조용히 물었다.

“언니, 예정일이 다음 달이라고 했지? 배가 많이 불러서 힘들진 않아?”

“힘들긴. 우리 하윤이한테 동생 만들어 줄 생각하면 그저 기쁜걸. 근데, 너흰 둘째 계획 없니?”

은서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아이는 도진이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임신은 단단히 각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힘들었으니까. 특히, 출산 후에는 몸이 심하게 쇠약해져서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몸이 회복되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차츰 맞추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임신 때 겪었던 고통은 희미해지고, 대신 그때의 벅찼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묘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때가 그리웠다. 배 속에 있는 조그만 아이가 온전히 나에게만 의지해서 나의 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때가.

배 속에서 아이가 꼼지락거릴 때마다 태동이 느껴졌다. 흥겨운 음악을 들으면 아이는 춤을 추듯 꼬물거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신이 나는지 발로 콩콩 차고는 했다.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순간이 이따금씩 그리웠다. 아이와 완전히 하나가 된 듯한 소중한 추억이…….

“조만간, 그 사람이랑 얘기해 보려고.”

은서는 입술을 신중하게 움직였다.

얼마 전 그가 욕실에서 질외사정을 했을 때, 못내 아쉬웠다. 콘돔을 사용할 때면, 그딴 거 집어치우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곤 했다.

둘째 욕심이, 나름 간절한 것이다.

“요즘, 그런 생각 부쩍 하거든. 아들을 키워봤으니, 이제 딸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 하윤이처럼 예쁜 딸을 낳으면 어떤 기분일지, 너무 궁금해.”

은서가 조곤조곤 말했다. 은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명쾌하게 대답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지!”

* * *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한 주가 찾아왔다. 차강혁은 월요일부터 야근이었다.

저녁 9시가 되자, 은서는 공룡 피규어를 가지고 놀던 도진이의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끌었다.

“도진아, 이제 그만 자러 가자.”

“아빠눈? 아빠 아직 안 왔자나. 아빠 오면 잘래애.”

“아빠는 오늘 늦으신대. 도진이 먼저 자자.”

“시러. 도진이는 아빠 기다릴 고얌. 아빠 보구 잘 끄야.”

도진이는 은서의 손을 탁, 뿌리치고 찡찡거렸다. 이런 아빠 덕후 같으니라고. 그냥 자면 될 걸, 꼭 아빠 얼굴을 보고 자겠다고 이 난리다.

은서는 자세를 낮춰 앉아 양손으로 도진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눈높이를 맞췄다. 눈을 제법 매섭게 뜨고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말했다.

“차도진,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아빠는 도진이가 엄마 말 안 들으면 싫어하는데.”

아빠 덕후, 도진이는 아빠가 싫어한다는 말 하나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크게 들썩거렸다. 그러더니 목청 좋게 소리를 질렀다.

“도진이 이제 자러 갈 끄야! 도진이는 차캐서 엄마 말 잘 드르니까!”

후다닥, 방으로 번개처럼 달려간 도진이는 운동선수처럼 점프해서 침대 위로 풀썩 올라갔다. 매트리스에 편하게 누워 베개를 베고 이불까지 꽁꽁 덮는다.

이내 뒤따라 방으로 들어온 은서를 향해 ‘엄마, 나 잘했지?’ 하는 식으로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도진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

은서는 아들의 얼굴을 상냥하게 어루만져 주고, 스툴에 앉아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금 뒤, 도진이가 눈을 꼭 감고 꿈나라에 빠져들자 조명을 모두 소등하고 방에서 나왔다. 바로 옆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베이비시터에게 혹시 도진이가 잠에서 깨면 잘 돌봐달라고 말을 전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조리대 앞에 서서 휴대폰으로 레시피를 확인했다.

“이 정도는 껌이지.”

계란 샌드위치의 레시피를 읽은 은서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중얼거리고 앞치마를 둘렀다.

오늘은 늦게까지 야근하는 차강혁을 위해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할 참이었다. 매번 밖에서 음식을 사 가거나, 주방 직원들이 만들어 준 음식을 가져다주고는 했는데, 그를 향한 제 마음을 표현하려면 한 번쯤 직접 요리를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만들어 볼까.”

요리 과정은 간단했다. 계란을 삶아서 소금, 마요네즈, 후추, 설탕을 넣어 으깨서 빵에 넣기만 하면 끝이었다.

은서는 완성된 계란 샌드위치를 세모 모양으로 잘랐다. 식빵 사이에 계란을 듬뿍 채워 넣어서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사람, 좋아하겠지.”

자신이 손수 만든 계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그를 상상하자, 헤실헤실 웃음이 삐져나왔다. 종이 가방에 계란 샌드위치와 직접 즙을 낸 오렌지 주스를 챙겨 넣은 은서는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옷을 골랐다.

‘회사에 가는 거니까, 아무래도 오피스룩이 좋겠지.’

은서는 펜슬 스커트에 블라우스를 입었다. 스커트 기장이 딱 무릎까지 와서 정강이에 있는 흉터가 훤히 드러났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 남자는 내 흉터마저도 사랑해주니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간식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이제 곧 그를 볼 거라는 생각에 설렘이 봄꽃처럼 피어났다.

* * *

집무실 도어를 열자, 밤 조명들이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야경을 등 뒤에 두고 일에 매진 중인 차강혁이 보였다.

은서는 종이 가방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간식 배달 왔어요.”

서류에 꽂혀있던 시선은 자연스레 은서를 겨누었다. 은서는 배시시 웃고 집무실 중앙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이리 와서 먹고 해요.”

테이블 위에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세팅하는 사이, 차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가 맞은편 자리에 앉자, 은서는 계란 샌드위치 한 조각을 건네주며 자못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거 내가 만들었어요.”

짙은 암색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그는 은서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계란 샌드위치를 한 번 보더니,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신이 만들었다고?”

“…….”

“그 귀한 손으로?”

“…….”

“영광인걸.”

뺨이 수줍게 달아올랐다. 귀한 손이라니, 영광이라니. 간단한 요리를 한 것치고는 너무도 과한 표현들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차강혁스러운 반응이긴 했다. 그는 그런 남자니까.

항상 과함이 넘쳐흐르는 남자였다. 애정도 과하고, 성욕도 과하고, 제 위에서 군림하며 내뱉는 음담패설도 과하고…….

그는 계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강인한 턱 근육으로 우아하게 씹어 먹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계란에 소금 뿌렸어?”

“네.”

“얼마나?”

“많이 뿌렸죠! 팍팍!”

은서는 소금을 팍팍 치는 시늉을 하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차강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잘했어.”

그는 샌드위치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혀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짠맛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이건 계란 샌드위치가 아니라, 소금 샌드위치였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내색도 하지 않고, 아내가 만들어 준 샌드위치가 무슨 일류 셰프의 손에서 탄생한 일품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기쁘게 먹었다.

“맛있어요?”

“응. 맛있다.”

“나도 하나 먹어볼래요.”

은서가 한쪽 남은 샌드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강혁이 민첩하게 그녀의 손목을 붙들어 잡았다.

“안 돼. 먹지 마.”

“네? 왜요?”

“내가 다 먹을 거니까.”

소금으로 범벅된 샌드위치를 은서가 먹게 둘 수는 없었다.

첫째, 이렇게 짠 음식은 그녀의 몸에 해로울 테고, 둘째, 다량의 소금으로 자신의 요리가 실패한 걸 알면 그녀는 분명 실망할 테니까.

“욕심도 많긴. 그렇게 맛있어요? 다음에 또 만들어 줄게요.”

내막도 모르고 은서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하하호호 신나게 웃었다.

* * *

계란 샌드위치(일명 소금 샌드위치)를 모조리 다 먹어치운 그는 오렌지 주스로 입가심을 했다.

은서는 집무실 내부를 둘러보더니 그의 자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온갖 서류들이 흩어져 있는 널찍한 원목 책상, 검은 가죽으로 제작된 커다란 의자, 그의 직책과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반짝거리며 빛나는 명판이 왠지 근사해 보였다.

“나, 저기 앉아 보고 싶어요.”

검지 끝으로 그의 자리를 가리키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서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까지 걸어갔다. 검은 가죽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더니 미소를 샐샐 짓는다.

“어때요? 나, 사장처럼 보여요?”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고서 묻는다. 그는 버릇없는 새끼고양이처럼 보인다고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어이, 차 비서. 커피 좀 타와.”

자신이 정말 보스라도 되는 양, 은서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탁 치며 꺼드럭거렸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는 군소리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나 집무실과 연결된 탕비실로 들어갔다.

귀여우니까, 이런 장난쯤이야 얼마든지 받아줄 용의가 있었다.

머신을 작동하자 쪼르르, 맑은 소리가 나면서 향긋한 커피 향이 진동했다. 잠시 후, 머신이 작동을 멈추었다.

커피를 채운 잔을 쟁반에 받쳐 집무실로 돌아간 그는 비서처럼 공손하게, 커피 잔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은서는 도도한 얼굴로 잔을 집어 들었다. 광고 속 배우처럼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돌연 이맛살을 팍 구긴다.

“에잇, 너무 쓰잖아! 시럽을 넣었어야지! 차 비서는 일한 지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내 취향을 몰라? 시럽, 세 번 펌핑이잖아!”

시럽 세 번 펌핑은 너무 달다고 말하려다가, 역시 관뒀다. 대신 그는 반듯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시정하겠습니다.”

이쯤 되면 그도 역할 놀이에 심취한 듯 보였다. 아내의 기막힌 장난을 즐기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시럽을 세 번 펌핑해서 커피를 돌려주었다. 은서는 커피를 살짝 홀짝이고는 달달한 맛이 만족스러운지 히죽 웃었다.

해끔한 아내의 얼굴을 그윽한 눈길로 지켜보던 그는 걸음을 내디뎌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의자를 살짝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만든 다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자, 은서의 눈동자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또 무슨 망측한 짓을 하려고?’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가느다란 발목을 움켜잡고 의자 팔걸이에 다리를 한 쪽씩 올려놓았다.

스커트가 허리까지 말려 올라가면서 그의 얼굴 앞에서 가랑이를 활짝 벌려놓은 상태가 되었다. 수치스러운 자세에 은서의 만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그는 검지를 간단히 움직여 팬티를 한쪽으로 젖혔다. 핑크빛으로 농익은 음부가 여실히 드러나자 혀로 아랫입술을 할짝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이내 손끝으로 나비 날개처럼 어여쁘게 펼쳐진 소음순을 쓸어내리며 능글맞게 속삭였다.

“당신 비서가 개라서요.”

“…….”

“개처럼 빨아 주려고.”

그는 핑크빛 음부에 입술을 파묻고 혀를 날름거렸다. 츄릅츄릅, 질척한 마찰음이 귓바퀴에 달라붙는다.

은서는 입술을 꾹 깨물고 신음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붉은 혀가 좁다란 구멍 속을 요망하게 파고들자 참지 못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하아……! 강혁 씨…….”

저릿한 자극에 허리가 제멋대로 들썩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의자 팔걸이에 다리를 계속 걸쳐두는 게 불편해서, 그의 어깨 위에 다리를 받치듯 올려놓고 양손으로 그의 머리통을 꼭 잡아 쥐었다.

그는 혓바닥을 노련하게 굴리면서 자극점을 집요하게 건드렸다. 콩알처럼 부푼 클리토리스를 질척하게 핥기도 하고, 소음순을 빨아대기도 하고, 혀를 세워 구멍 속을 마구 파헤치기도 한다.

좁은 구멍 속에서는 애액이 꾸륵꾸륵 새어 나와 그의 입술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이제 그만 박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애타게 들 때쯤, 그가 입술을 떨어뜨리고 은서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는 투명한 애액이 번들거리는 입술로, 우아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박한 말을 툭 내뱉었다.

“개새끼처럼 하는 거, 내가 알려줬지?”

물음표로 끝난 말이었지만, 사실은 명령이었다.

은서는 조종당하듯 의자에서 내려와 책상에 양팔을 짚고 엎드렸다. 그리고 그가 편하게 삽입할 수 있도록 엉덩이를 조금 더 높이 들어 올렸다.

그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입꼬리에 걸고, 책상 서랍을 열어 콘돔을 꺼냈다. 잇새로 콘돔 포장지를 뜯고, 바지를 열어 팽팽하게 기립한 페니스에 콘돔을 씌웠다.

애액이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좁은 구멍에 성난 페니스를 거칠게 쑤셔 박자, 은서가 골반을 움찔거리며 간드러진 교성을 내질렀다.

“하으읏……!”

그는 양손으로 하얀 엉덩이를 주무르며 허리를 격하게 쳐올렸다.

퍽, 퍽, 가혹한 피스톤질에 온몸이 뒤흔들린다. 은서는 손톱으로 책상을 긁어대며 가녀리게 흐느꼈다.

“개처럼 박아 주니까, 좋아?”

흥분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어와 세차게 소용돌이쳤다. 딴에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그가 무섭게 머리채를 휘어잡고 자궁까지 퍽, 페니스를 찔러 넣었다.

“이래도?”

“흐응…….”

쾅쾅, 거세게 몰아붙이는 강한 힘에 책상을 긁는 손톱이 죄다 부서질 지경이었다. 결국 은서는 눈물을 훌쩍훌쩍 삼키며 뭉개진 발음으로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조, 좋아요……. 하아…….”

진작 그럴 것이지. 꼭 되도 않는 고집을 부려서 짐승의 야만성을 끌어내고 만다.

그는 머리채를 놓아주고 그녀의 등에 차근차근 입술을 맞췄다. 물론 자궁까지 자극하는 가열찬 허리 짓은 멈추지 않은 채로.

* * *

그는 녹초가 된 아내를 소파에 눕혔다. 쾌감의 여진으로 잘게 떨고 있는 몸에 재킷을 덮어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눈 좀 붙여. 일 끝나면 깨워줄게.”

“잠깐만요…….”

책상으로 돌아가려는 그를 은서가 얼른 붙잡았다. 은서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워 앉고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인지 간절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우리, 피임 그만하면 안 돼요?”

“뭐?”

“딸을…… 갖고 싶어요.”

돌발적인 아내의 고백에 그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표정으로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수 초간 정적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는 무겁게 입술을 떼었다.

“난 반대야.”

다갈색 눈동자가 요동치듯 흔들렸다. 그의 반응이 늦어서 불길한 예감이 얼핏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반대’라는 강경한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왜, 왜요? 나 임신했을 때, 강혁 씨 무척 좋아했잖아요. 도진이 낳고 나서는 나를 또 임신시키고 싶다고, 당신 입으로 말하기도 했고…….”

“그래. 내 욕심으로는 당신을 또 임신시키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야. 하지만, 내 욕심보다는 당신 몸이 먼저라고.”

“내 몸이 어때서요?”

“유은서, 벌써 잊었어? 입덧이 심해서 두 달 동안 흰죽만 먹었었잖아. 그 탓에 임산부인데도 체중이 빠지고 빈혈까지 생겼었지.”

입덧이 한참 심했을 무렵, 다행히 도진이는 건강했지만 양분을 모조리 빼앗긴 은서는 체중도 줄고 체력도 약해져서 많이 힘들었다. 빈혈이 생기면서 현기증도 심해졌고, 그러다 한 번은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때 차강혁의 넋 나간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절 후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제 손을 꼭 부여잡고 있던 그의 낯빛은 핏기라고는 하나 없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강혁 씨 말대로 딱 두 달 그랬어요. 임신 기간 내내 그랬던 것도 아니잖아요.”

은서는 애써 항변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만삭 때는 배가 남산처럼 불러서 허리 아프다, 무릎 아프다고 매일 울었지. 게다가 똑바로 누우면 숨이 막힌다고 항상 옆으로만 누워야 한다고 또 울고.”

“울진 않았어요. 그냥 투정 좀 부린 거지…….”

“출산 후엔 뼈가 약해져서 잘 때마다 끙끙거리고, 손목이 시큰거려서 한동안 그림도 못 그렸잖아.”

“이젠 다 회복되어서 그림 잘 그리고 있잖아요.”

은서는 그를 곧게 응시하며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는 첫째보다 낳기 훨씬 수월하대요.”

이어서 일격을 날리듯, 회심의 말을 던졌다.

“예쁜 공주님을 보고 싶지 않아요?”

“예쁜 공주님은 여기 있잖아.”

일격을 당한 건 도리어 은서였다. 그는 검지 끝으로 은서를 정확하게 가리켰다.

기가 막혔다. ‘예쁜 공주님’이라는 설탕 같은 단어에 그의 마음이 사르륵 녹으면서 움직일 줄 알았는데, 도리어 저를 지목할 줄이야.

걸핏하면 저를 ‘공주님’이라고 일컬으며 놀리던 게 진심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럼, 우리 이렇게 해요. 도진이한테도 물어보는 거예요. 도진이가 동생을 갖고 싶다고 하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우린 둘째를 갖는 거예요.”

“다수결이 항상 옳은 건 아니야.”

“하지만 민주적이죠. 이건 가족의 일이니까, 가족 모두가 함께 결정해야 하는 거예요. 당연히 도진이의 의견도 물어봐야죠.”

곧 죽어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겠다는 듯 은서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 집요한 눈빛에 강혁은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녀석이 결정하게 하자고.”

* * *

다음 날, 차강혁은 정시에 퇴근했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은서는 도진이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도진아, 도진이는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없어?”

“이써!”

“동생 생기면 좋을 것 같아?”

“쪼아!”

“좋아?”

“웅! 동생 생기면 가치 풋볼하고 놀 끄야.”

긍정적인 도진이의 반응에 은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반면, 차강혁의 만면에는 암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도진아, 풋볼은 아빠랑 자주 하잖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빠랑 계속 풋볼 하면 되는데, 굳이 동생이 필요할까?”

“아빠는 너무 강하자냐! 솔지키 아빠랑 풋볼 할 때 쪼끔 힘드러…….”

“동생이 태어났는데 만약 그 동생이 여자라면, 도진이랑은 풋볼 실력이 안 맞아서 재미없을 거야.”

“왜애?”

“그야 여자니까 운동 능력이 남자보다…….”

“차강혁 씨, 거기까지! 아이한테 왜 쓸데없는 편견을 심어주려고 해요?”

은서는 그의 말을 칼 같이 자르고 냉정하게 말했다.

“결정 났으니까 이제 더는 긴말 하지 말아요.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하라구요.”

* * *

둘째를 갖기로 결정한 밤, 차강혁은 침대에 걸터앉아 거만하게 명령했다.

“빨아 봐.”

은서는 미간을 진하게 찌푸리고 어이없다는 식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검지로 바지 앞섶을 가리키며 뻔뻔하게 지껄였다.

“임신을 하려면 이걸 먼저 세워야 할 거 아냐. 그래야 내가 당신 보지에 씨를 듬뿍 뿌려 주지.”

지저분한 음담패설 따위, 그냥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중요한 사실이 뇌리를 강렬하게 관통했다. 은서는 재빨리 휴대폰을 들고 어플을 체크했다.

짐작대로 오늘, 배란일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텅 비면서 생각이란 것이 사라졌다. 오직 본능만이 전신을 지배할 뿐이다. 은서는 휴대폰을 침대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오만한 폭군처럼 거들먹거리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만한 폭군의 씨가 필요했다. 바지 버클을 풀고 드로어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페니스를 꺼냈다.

이미 반쯤은 커져 있는 상태였다.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는 남자이니 굳이 놀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즐거움과 기대감이 어른거리는 눈빛으로 은서가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두껍고 기다란 기둥을 양손으로 살살 쓸어내리다가 혓바닥을 내어 귀두 끝을 날름거렸다.

약간의 자극만 줬을 뿐인데도, 그의 것은 힘줄을 딴딴하게 세우면서 몸체를 더욱 키웠다. 간지럽히듯 혀로 길게 기둥을 핥아줬더니, 완전히 발기해서는 프리컴을 질질 흘린다.

은서는 투명한 액을 혀로 음미하듯 할짝거리고는, 입을 크게 벌려 페니스를 앙 물었다.

양손으로 기둥을 만지작거리면서 동시에 혀를 살살 굴려서 빨아 주자, 그가 입술을 살짝 벌리고 불규칙한 숨을 쏟아냈다.

“하아, 맛있어?”

흥분으로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은서는 곧은 눈길로 그를 주시했다. 초점이 이탈된 동공과 살짝 찌푸려진 미간이 섹시했다.

그의 흥분에 덩달아 흥분한 은서는 페니스를 야릇하게 빨아올리며 부끄러운 말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으음…… 맛있어요.”

그는 피식 웃으면서 은서의 머리통을 세게 휘어잡았다. 피스톤질을 하듯 허리를 가볍게 쳐올리자, 거대한 페니스가 목구멍을 턱턱 찔러댔다.

은서는 양손으로 그의 허벅지를 꼭 붙잡고 투박한 피스톤질을 입으로 받아냈다.

“우웁…….”

거대한 페니스를 감당하기에 은서의 입은 너무도 작았다. 타액이 질질 새어 나오고 숨이 다 막혔다.

질 속에 박아 넣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지만, 은서가 느끼는 자극은 난폭하기만 했다. 결국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찬찬히 흘러내렸다.

야릇하게 젖은 눈동자가 그를 겨냥하자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혈액이 뜨거워지고 욕망이 폭주하듯 튀어 오른다.

“씨발.”

그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은서의 뒷머리를 잡아당겨 페니스를 빼냈다.

“옷 벗고 올라와.”

서늘한 명령에 은서는 주저 없이 옷을 벗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그의 무릎 위에 조심스레 올라타 앉았다.

그는 딱딱하게 서 있는 앙증맞은 젖꼭지를 입에 담고 쯉쯉 빨면서, 손가락으로 가랑이 사이를 헤집어 젖은 구멍을 살살 벌렸다.

이내 페니스를 손에 쥐더니 교합을 맞췄다. 성난 페니스와 젖은 구멍이 완벽하게 맞물리면서 서로 하나가 된다.

“하읏!”

은서는 야살스러운 교성을 터뜨리며 그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았다.

그는 허리에 힘을 강하게 실어 쳐올렸다. 퍽퍽, 둔탁한 교합음이 침실을 장악하고, 음탕한 신음 소리는 더욱 짙어졌다.

임신을 할 생각에 한껏 흥분이 된 은서는 거친 허리 짓에 맞춰서 적극적으로 골반을 움직였다.

춤을 추듯 요염하게 움직이는 아리따운 자태를 보고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순진한 얼굴로 서슴없이 몸을 야하게 놀리고 있는 모습이 꼭 타락한 천사 같았다.

“내 딸은, 유은서 널 닮지 않았으면 좋겠어.”

끊어질 듯 신음을 내지르며 무아지경으로 느끼던 은서가, 갑작스러운 말에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왜요?”

“널 닮으면 분명, 눈부시도록 예쁠 테니까.”

“…….”

“수컷 새끼들이 어여쁜 내 딸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릴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좆같아지거든.”

“바보 같아…….”

은서는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키스했다.

그는 혀를 질척하게 엉겨 넣고 더욱 깊숙이 그녀를 파고들었다. 말뚝처럼 쑤셔 박혀온 페니스 때문에 아랫배가 다 울렁거릴 정도였다.

인터코스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는 더욱 난잡하고 격렬하게 허리를 놀려 댔다. 은서는 손톱으로 넓은 등을 긁어가며 폭주하는 그의 욕망을 힘겹게 받아들였다.

한참 뒤, 그가 짐승처럼 포효하며 몸을 잘게 떨었다. 아기씨를 품은 정액은 좁은 구멍 속을 가득 채우다 흘러넘쳤다.

그는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정액을 훔쳐내 좁은 구멍 속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남김없이 빨아들여야지, 칠칠치 못하게 흘리면 어떡해.”

“양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죠.”

은서는 배시시 웃으며 그를 단단히 껴안고 빨개진 귓불을 장난치듯 깨물었다. 감질나는 자극에 이미 파정을 한 페니스는 다시 또 몸체를 키우기 시작했다.

“다시 박아야겠어.”

낮은 목소리가 달팽이관을 음험하게 짓눌렀다.

“이번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그 귀여운 구멍으로 내 씨를 모조리 다 삼켜내는 거야. 알겠어?”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은서는 좋다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나를 닮은 아기를 낳을 생각만 하면, 그저 다 좋기만 했다.

* * *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붙어먹은 덕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소식이 찾아왔다.

“여기 안에, 내 동생이 있다구우?”

도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은서의 배를 살포시 만져 보며 물었다.

“응. 아직은 아주 작아서 느낄 수 없지만, 조금만 더 크면 배 속에서 아기가 발차기도 하고 그럴 거야.”

“와아, 신기하다아…….”

도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수를 짝짝 쳤다.

“우리 도진이, 동생 태어나면 동생이랑 자주 놀아줄 거야?”

“웅! 매일 노라 줄 거얌!”

우렁차게 대답한 도진이는 엄마의 배에 대고 또 씩씩하게 외쳤다.

“내 동생, 빠알리 나와서 나랑 풋볼하고 노올자!”

한껏 들뜬 아들의 모습을 보고 강혁은 환하게 웃더니 도진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이윽고 은서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배 속에 있는 태아에게 감미롭게 속삭였다.

“아가야,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렴. 미래에서 만나자.”

그는 배에다 입술을 쪽, 맞췄다. 그러자 도진이도 아빠를 따라서 엄마 배에 쪽, 뽀뽀했다.

“미래에서 만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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