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 *
황홀한 절정을 맛본 은서는 숨을 가쁘게 할딱거리며 전신을 늘어뜨렸다. 짐승처럼 과격하게 몰아붙인 그 남자 덕분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두꺼운 팔뚝을 은서의 목 아래로 밀어 넣어 편안하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이내 그의 손은 몰랑몰랑한 아랫배를 주무르더니 자연스레 움직여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솥뚜껑도 우습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손인데도 풍만한 가슴을 다 담아내지 못해 출렁거리며 넘쳐흘렀다.
“안 그래도 가슴이 큰데, 임신하면 더 커져서 무거워지겠군.”
“기대하는 거예요? 내 가슴이 여기서 더 커지기를?”
은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기대가 아니라 걱정이지. 당신 힘들까 봐.”
“거짓말. 기대하고 있으면서. 차강혁 씨는 변태 중에서도 특출난 변태니까 분명 기대하고 있을걸요.”
“유은서, 내가 여러 번 말했지. 너 독심술 능력 형편없다고.”
그는 유륜을 야살스럽게 쓸어 만지다가 엄지와 검지로 젖꼭지를 살살 돌리듯이 지분거렸다.
짓궂은 자극에 은서는 옆구리를 움찔 떨고 단 숨을 내쉬었다. 그는 언제나 너무도 쉽게, 또 너무도 빠르게 그녀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은서가 내 아기를 품은 채로 제발 안아 달라고 매달리는 상황 정도는 기대하고 있지.”
귓가로 나른한 음성이 스쳤다. 나지막하지만 짙은 음욕이 배어 있었다.
“……네?”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로 성욕이 강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성욕이 아예 사라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대요.”
“당신은 아니야. 내가 제대로 길을 들여 놨으니까, 임신 기간 동안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취해서, 스스로 다리를 벌리며 박아 달라고 조르게 될 거라고.”
“그래요. 꿈꾸는 건 자유죠.”
은서는 입술을 삐죽거리고 가슴을 쪼물거리는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래 봤자 음흉한 손은 다시 가슴 위로 올라와 제멋대로 만지작거리지만.
“근데, 테스트기는 언제부터 하면 되지? 2주 뒤에 하면 되나?”
성급한 물음에 은서는 푸흡,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한 번으로 임신이 됐을 거 같아요? 임신이 쉽게 되는 건 아니라구요. 어차피 배란일도 아니었는걸요.”
또박또박 말을 내뱉고 나서 은서는 잠시 한 템포 쉬었다. 그러고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수줍어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앞으로는 배란기 때마다 꼬박꼬박 해야 돼요. 내가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 둘게요.”
“그럴 필요 없어.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늘 하던 대로?”
“그래. 늘 하던 대로. 매일같이 하면 그만이잖아.”
역시, 이 남자는 특출난 변태다.
“그런 의미에서 늘 하던 대로 2차전에 돌입해야겠군.”
그는 느긋하게 은서의 위로 올라와 혀를 날름거렸다. 맛있는 사냥감에 군침이 돈다는 듯이.
“앗, 싫어요! 하지 마요!”
지칠 대로 지친 은서는 앙칼진 소리를 꺅 지르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안간힘을 쓰며 그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 봤자 그의 검은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 * *
넓은 창으로 아루바의 눈부신 태양 빛이 비춰 들어오고 있었다.
“으음…….”
곤히 자고 있던 은서는 직선으로 내리쳐 오는 햇빛에 잠투정을 부리며 눈꺼풀을 힘겹게 끌어올렸다. 흐릿한 시야는 눈을 몇 번 깜빡여 주자 조금은 선명해졌다.
옆에는 당연히 차강혁이 누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살짝 틀었다. 하지만 그는 누워 있기는커녕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업무 삼매경에 푹 빠져 있었다.
‘지독한 워커홀릭 같으니라고. 여행을 왔는데도 일이나 하고 있다니.’
은서는 상체를 일으켜 세워 노트북을 확 낚아챘다. 화면에는 입체적인 시뮬레이션 모형이 구현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다랗고 둥그런 외관이 선박 같지는 않았다.
“이건 선박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잠수함 아니에요?”
“잠수함도 선박이야. 물속으로 항해하는 선박이지.”
그는 노트북을 다시 가져가며 대답했다.
“강혁 씨, 잠수함도 만들어요? 운반선만 만드는 줄 알았어요.”
“운반선, 잠수함, 전투함, 여객선까지. 만들기는 운반선을 제일 많이 만들지. 수요가 가장 많으니까.”
“전투함은 어떤 건데요?”
“말 그대로 전투할 때 사용하는 군용 선박. 전함, 어뢰정, 순양함 등등.”
그는 키보드의 키를 누르며 잠수함 모형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조절했다. 그러자 은서가 고개를 빠끔히 들이밀고 화면을 열심히 눈여겨보았다.
“전쟁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이걸 차강혁 씨가 만들 줄은 몰랐어요.”
신기한 물건을 접한 것처럼 은서는 순진한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깜찍한 아내의 모습에 그의 입가로 웃음기가 은연하게 맺혔다.
“중간 기항을 하지 않고 1만 해리를 항해할 수 있는 잠수함이야.”
“1만 해리면 거리가 어느 정도 되죠?”
“18,520km. 부산항에서 LA항까지 중간에 멈추지 않고 다이렉트로 왕복할 수 있지.”
대단한 물건인가 보군. 은서는 턱을 슬슬 쓰다듬으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출중한 능력으로 이처럼 대단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게 새삼 멋지고 감탄스러웠다.
“휴가가 끝나고 나면 인도 출장으로 한동안 바쁠 거야.”
“인도요?”
“인도 해군 잠수함 프로젝트 입찰 경쟁에 뛰어들기로 했거든. 휴가가 끝나면 뭄바이로 가서 이 잠수함을 보여 주며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지. 그래서 말인데…….”
그는 노트북을 협탁으로 옮겨 놓고 잘록한 허리를 붙잡아 은서를 무릎 위에 올려 앉혔다.
끈적끈적한 손길로 등허리를 야릇하게 쓰다듬는 그는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향긋한 살 내음을 맡으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미리 실컷 해 둬야겠어. 당신 말대로 임신이 쉽게 되는 건 아니니까.”
길고 우아하게 뻗은 손가락이 엉덩이 골을 부드럽게 훑어 내려오다가 질구에 멈춰서 음탕하게 만지작거렸다. 은서는 골반을 비틀면서 앙앙거렸다.
“잠깐만요, 하읏! 배란기도 아닌데 해 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괜히 헛수고하지 말아요! 하아…….”
“헛수고라니. 여자는 365일 내내 가임기야. 어서 아기를 가지려면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해야 한다고. 당신은 우리 아기를 빨리 보고 싶지도 않아?”
마지막 말에 요란하게 앙탈을 부리던 은서가 일순 잠잠해졌다. 우리 아기, 당연히 빨리 보고 싶지. 어서 만나서 사랑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인걸.
그리고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여성의 몸은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언제든 임신이 가능하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으니까.
결심을 굳힌 은서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살포시 잡고 진한 눈 맞춤을 했다. 연한 갈색의 눈동자에는 남자를 홀리려 드는 요기가 자욱했다.
“우리 아기, 보고 싶어 죽겠어요. 그러니까 어서 빨리 임신시켜 줘요.”
노골적으로 보채는 말에 그는 음험한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뒷목을 잡아당겨 입술을 난폭하게 훔쳤다.
* * *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차강혁은 인도 뭄바이로 훌쩍 떠나 버렸다.
무려 한 달간의 일정이었다. 덕분에 아기를 갖기 위해 매일같이 하겠다며 뜨겁게 불태우던 그의 열정도 휴지기를 가져야 했고, 은서는 홀로 긴긴밤을 보내며 독수공방하게 되었다.
달력에 표시해 놓은 배란기도 소용없게 되었다.
“따라가지 그랬어?”
오랜만에 지현을 만나 저녁을 먹는데, 지난주에 그가 인도로 출장을 떠났다고 얘기하니까 그런다. 따라가지 그랬냐고.
물론 따라갈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에게 넥타이를 매 주면서 나도 동행하면 안 되냐고 슬쩍 물어볼까 말까 수차례 고민했었다.
하지만 남편 일을 방해하는 철부지 아내처럼 보일까 봐 결국에는 묻지 못했다.
“일하는데 어떻게 따라가.”
“강혁 씨는 일하고, 은서 넌 관광하면서 그림 그리면 되지. 뭐 방해된다고.”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은서는 와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지현은 코웃음을 쳤다.
“집착은 네 남편이 너한테 하는 게 집착이고요. 네 목덜미 좀 봐라.”
지현이 포크로 가리킨 은서의 목덜미에는 살구색 파스가 넓게 붙여져 있었다.
인도 출장을 떠나기 전, 그는 흰 목덜미에 울긋불긋한 키스마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래서 가리려고 파스를 붙여 놓았는데, 눈치 100단인 지현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다.
“잠을 잘못 잤는지 목이 뻐근해서…….”
순순히 긍정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은서는 딴에 거짓말을 쳤다. 물론 지현은 그 어설픈 거짓말에 넘어가 주지 않았다.
“잠을 잘못 잔 게 아니고 네 남편이 널 안 재웠겠지.”
얼굴이 화르륵 익어 버린 은서는 괜히 파스 위를 쓸어 만졌다.
“차라리 좋게 생각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니니?”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서 몸이 편해지긴 했다만, 그래도 그 잘난 얼굴은 마주 보고 싶은걸. 아침저녁으로 영상통화를 하긴 하지만 영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네 남편 돌아오면 또 너를 실컷 굴리겠지. 미리 허리 관리나 잘해 놔. 부러지지 않게.”
“그런 거 아냐…….”
조그맣게 부정해 보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 * *
은서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가 떠난 후로 밤늦게까지 작업에 전심전력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육신이 피로로 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외로움이 잠을 앗아 간 것이다.
차강혁이 떠난 지 벌써 28일째 되는 날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늦은 밤 귀가해 잠자리에 누웠지만 은서는 여지없이 불면과 조우해야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그가 없는 일상에는 조금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뒤척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스탠드 불빛을 켜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은 새벽 2시. 뭄바이는 지금 밤 10시 30분쯤 되었을 거다. 은서는 키패드를 두드려 메시지를 찍어 보냈다.
[뭐 하고 있어요?]
만약 지금 그의 시간이 여유롭다면 영상통화를 하자고 할 참이었다. 하지만.
[일.]
단조로운 대답에 김이 팍 샜다.
[내가 방해했어요?]
[조금.]
빈말도 안 해 주고 기분 좀 나쁜데. 삐진 걸 티를 낼까 말까 고민하던 때였다. 그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알려 왔다.
[출장 일정이 더 길어질 것 같아. 2주 정도.]
[네? 2주나 더 있다가 돌아온단 말이에요?]
홍채가 터지기라도 할 것처럼 커다랗게 팽창되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면 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외로움을 견뎌 왔는데…….
여기서 2주나 더 추가된다고?
[그래.]
야속하게도 그는 아쉬운 기색조차 없었다. 모든 일을 덤덤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이듯, 이번 일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알겠어요. 일해요. 방해하지 않을게요.]
은서는 이쯤에서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많이 바쁜 건지 그는 답장조차 보내지 않았다. 은근히 서운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바쁜 사람을 제가 이해해야지, 뭐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우울한 건 우울한 거다. 더 길어진 기다림에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을 후벼 파고, 헛헛하고 울적한 감정이 기분을 끝없이 추락시켰다.
은서는 무겁고도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천장만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그와 함께 뉴욕과 아루바를 여행하면서 꽤 많은 사진과 영상을 찍어 둔 것이 퍼뜩 기억났다.
잠도 안 오는데 그거나 감상하자 싶었다. 은서는 침실 전체 조명을 환하게 점등하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좋은 건 크게 봐야 하니까 노트북을 부팅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노트북에 연결해서 낯선 이국에서 찍어 놓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 보았다.
그런데, 침대에서 찍은 사진들이 참 많다.
시트로 알몸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상의를 벗어 던져 탄탄한 근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그에게 나른하게 기대고 있는 사진이 왜 이리도 많은 건지.
게다가 복숭앗빛으로 은은하게 익은 뺨과 초점이 흐려진 눈은 누가 봐도 섹스를 실컷 하고 경계 없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이런 걸 대체 왜 찍었는지…….’
왜 찍었나 싶긴 하지만, 침대에서 보낸 시간이 워낙 많았기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뉴욕에서든 아루바에서든, 그는 발정 난 짐승처럼 혈기왕성하게 날뛰지 않았던가.
인도 출장에서 돌아오면 또 잔뜩 욕정해서는 저를 침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할 테다.
「유은서 너, 침대에서 형편없다고. 교육을 아무리 시켜도 터무니없이 서투르지. 죽었다 깨어나도 그 형편없는 섹스 실력으로 남자를 휘어잡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라고.」
침대 타령을 하다 보니, 그가 예전에 했던 말이 불현듯이 뇌간을 자극해 왔다.
‘이참에 스킬이나 습득해서 차강혁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까?’
너무 외로웠던 나머지 어리석은 생각이 피어올랐고, 은서는 그 어리석은 생각을 과감히 행동으로까지 옮겨 버렸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검색창에 남사스러운 내용을 입력한다. 남자 뿅가게 하는 스킬.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검색어였지만, 놀랍게도 많은 내용들이 나왔다.
은서는 한껏 집중해서 내용을 읽어 보았다. 마치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라도 하는 학생처럼.
그런데, 갑자기 머리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지면서 청량한 스킨 향이 코끝을 간질여 왔다. 이내 저음의 목소리가 고막을 툭툭 건드렸다.
“입에 얼음을 물고 오럴을 해 주면 차가움으로 인해 자극이 배가 된다. 각진 사각 얼음을 이용하면 성기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웬만하면 원형 얼음을 이용할 것.”
설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등줄기로는 싸한 한기가 훑어 내린다. 저음의 목소리는 계속 말했다.
“이런 것까지 찾아보다니, 정말이지 날이 갈수록 음탕함이 진화하는군.”
“…….”
“그런데 얼음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 난 유은서의 입과 혀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제발 환청이길 바라며 은서는 몸을 살짝 돌려서 고개를 천천히 치켜들었다. 이런 팁을 찾아본 걸 들키는 건 무지무지 쪽팔린다고. 제발 외로움이 불러낸 착각이길.
하지만 여지없이 바람을 무너뜨리고 망막으로는 근사한 슈트 차림의 차강혁이 맺혀 들어왔다. 동공이 터질 듯이 커다래진 은서는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대경실색했다.
“뭐, 뭐야……. 왜 왔어요?”
“내 집에 오는데도 이유를 설명해야 하나?”
그는 아내의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인상을 구겼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당황해서요.”
한 시간, 아니 30분만 늦게 왔어도 온갖 환대를 다 해 줬을 텐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끄럽고 창피해서 도저히 면이 서지 않아 어설픈 반응만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까 메시지 보낼 때…… 인도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톨게이트 지나서 서울로 진입하는 중이었는데.”
“그럼 아까 말했던 건 다 뭐예요? 출장 일정이 2주나 길어진다고 하고, 일하는데 내가 방해했다 그러고, 마지막에는 답장도 안 보내고…….”
은서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고 주절거렸다. 서운한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까 속절없이 떠들게 되었다.
그는 피식 웃고 검지로 도톰한 입술을 살포시 짓눌렀다.
“그냥 유은서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밑밥을 좀 깔았지.”
철저히 속았다는 생각에 은서는 주먹으로 그의 팔뚝을 툭 때렸다. 그래 봤자 솜방망이 주먹이었지만.
“내가 집에 오면 쪼르르 달려와서 품에 안길 줄 알았는데, 이런 수준 낮은 글이나 보고 있었군.”
“수준이 낮다뇨. 엄연히 정보성 글인데.”
“내가 한국을 비운 사이 ‘정보’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뀌기라도 한 건가. 대체 이딴 허접한 글은 왜 읽는 거지?”
“그거야…… 잘하고 싶으니까.”
은서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개미가 기어갈 만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민망해서 고개를 푹 숙이자, 그가 은서의 턱을 가볍게 쥐고 찬찬히 끌어 올렸다.
“잘하고 싶어서 섹스를 글로 배운다고?”
“…….”
좀 웃기긴 한가. 은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눈동자를 뱅글뱅글 굴리며 뒷머리를 멋쩍게 매만졌다.
“유은서, 그림 실력 어떻게 키웠어? 글로 배우면서 갈고 닦았나?”
“아뇨. 피나는 연습을 했죠!”
부끄러움에 당장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갈 것처럼 소심하게 굴더니, 막상 본업 이야기가 나오자 은서는 주먹을 불끈 쥐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확신 가득한 대답에 그는 입매를 유려하게 말아 올렸다.
“그래, 그거야. 실력을 키우는 데에는 연습만큼 좋은 게 없다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해 봐야만 하지.”
나지막한 음성에는 묘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 은서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순진무구한 얼굴에 눈을 맹하게 깜빡거리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그는 은서를 번쩍 안아 들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침대 위로 그녀를 던져 버렸다.
여린 몸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먹기 좋게 흐트러진 그녀의 몸 위로 여유롭게 올라탄 그는 긴장으로 바짝 마른 붉은 입술을 손끝으로 야릇하게 훑어 만졌다.
“당신 말대로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가, 강혁 씨…… 읍!”
불쑥 은서의 입속으로 가운뎃손가락이 밀려 들어와 입안 곳곳을 부드럽게 헤집었다. 타액이 그의 손가락에 들러붙어 엉망이 되었다.
“해 뜰 때까지 연습할 거야.”
그는 입속을 계속 휘저으며 귓가에 대고 나른하게 속삭였다.
“내일 아침까지 실력이 늘지 않으면 엉덩이를 때려 줄 줄 알아.”
더운 숨결이 귓속을 파고 들어와 그녀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 * *
“아으, 엉덩이 아파.”
잠에서 깨자마자 은서의 손은 엉덩이로 향했다.
아침 해가 밝아올 때까지 차강혁에게 실컷 당하다 기절한 것까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엉덩이를 어찌나 때려 대던지, 보나마나 분명 새빨개졌을 것이다.
진짜 너무했다고 징징거리고 싶은데 차강혁은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더니 시간은 오전 11시쯤 되었다.
“출근한 건가?”
그는 새벽 2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를 입맛대로 요리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지쳤을 테니 푹 쉬었으면 좋겠는데…….’
걱정을 하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
출근한 줄 알았던 사람이 난데없이 침실로 들어와 당황한 것도 잠시, 샤워 가운만 느슨하게 걸치고 촉촉이 젖어 있는 그의 모습이 가히 섹시해서, 은서는 표정이 어벙해지면서 눈자위가 충혈되었다.
후각을 자극하는 향긋한 비누 향은 발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저 남자에게 혹독하게 당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이상하게 체온이 상승하고 몸이 달아올랐다.
“출근했을 줄 알았어요.”
“오늘 일요일이야.”
“아……. 요즘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요일 감각이 사라져서.”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몸 갈아서 일하는 줄 알고 마음 아팠는데, 마침 일요일이라니 다행이었다. 그가 하루라도 편히 쉴 수 있어서.
“일은 어떻게 됐어요? 수주 따냈어요?”
새벽에 재회를 하자마자 격렬하게 몸부터 부딪치느라, 그에게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을 겨를도 없었다. 그는 젖은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 넘기고 대답했다.
“나흘 전 뉴스를 챙겨 보면 알 거야.”
“네?”
은서는 시트로 알몸을 가리고 일어나 앉아 협탁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검색을 했더니 삼우조선이 인도 해군 잠수함 7척을 수주받았고, 수주 규모는 9조에 해당된다는 소식이 이미 나흘 전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다.
“와, 9조…….”
범상치 않은 숫자에 입이 떡 벌어진다.
인터넷에는 그가 인도 국방부 장관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는 사진이 널리 퍼졌고, 공중파 프라임 뉴스는 인도에 있는 그의 인터뷰를 따서 내보내기도 했다.
거기다 부가적인 반응으로 그의 수려한 외모가 또다시 화제를 일으켰고, 프라임 뉴스에 나온 인터뷰 영상은 흔히 말하는 ‘움짤’로 제작되어서 네티즌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기도 했다.
“나흘 전에 계약 체결했으면서, 왜 이제 왔어요?”
“세부적인 계약 조건을 조율하느라.”
“아, 그랬구나. 아무튼 축하해요.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정말 잘됐어요.”
그는 브리프케이스에서 타원형의 조그만 통을 꺼냈다. 사탕 통이었다. 그는 뚜껑을 열어 민트 사탕 하나를 손바닥에 덜어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알싸하면서도 산뜻한 향이 은서의 코끝에까지 닿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작년 가을부터 줄곧 금연을 하고 있는 그는 담배가 당길 때면 이렇게 민트 사탕을 먹고는 했다.
이어서 그는 브리프케이스에서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사각형의 납작한 케이스였다.
“선물이야.”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가 케이스를 내밀었다. 은서의 얼굴로 희색이 만연해졌다.
“열어 보기 전에 내가 먼저 맞춰 볼게요. 목걸이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답을 말하자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똑똑하군.”
은서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케이스를 열었다. 그런데, 목걸이가 맞기는 한데…….
“이건 사람 목걸이가 아니잖아요.”
고양이들이나 할 법한 방울 목걸이였다. 웃음꽃이 활짝 피던 얼굴은 금세 노기로 그득해졌다.
“이 목걸이를 하고 있으면, 당신이 빨빨거리며 돌아다닐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고.”
그는 실로 뻔뻔하게 떠들어 댔다. 정말 고양이처럼 손톱을 세워서 할퀴어 버릴까 보다. 은서는 노한 숨을 색색거리며 도끼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괘념치 않고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방울 목걸이를 집어 들어 은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풍성한 머리칼을 한쪽 어깨로 늘어뜨리고 목걸이를 채우려고 들자, 은서가 경기를 일으키며 악을 썼다.
“뭐 하는 짓이에요? 하지 마요!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승자는 언제나 차강혁이었다. 그는 기어코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목에 방울 목걸이를 채워 버렸다.
“잘 어울리는데. 무척 귀여워.”
그가 검지 끝으로 방울을 톡 건드리자 딸랑거리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이것 봐. 불도 들어온다고.”
기다랗게 뻗은 손가락이 스위치를 딸깍거렸다. 붉은색 조명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기가 막혔다.
“개자식! 머릿속에 나 갖고 놀릴 생각밖에 없지?”
은서가 눈을 부라리고 상스러운 욕설을 섞어 가며 화를 냈다. 그래 봤자 그의 신경 근처도 긁어내지 못했지만.
“심통 부리지 마. 더 귀여우니까.”
돌연 그가 은서의 몸을 가리고 있던 시트를 확 잡아 내렸다. 숨겨져 있던 알몸이 드러나자 그녀는 소리를 꺅 내지르며 양손을 교차해 가슴을 가렸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몸을 섞었으면서도 번번이 순진한 반응을 보인다. 그는 피식 웃음을 뱉었다.
“귀여우면 나 못 참는다고.”
야릇한 말을 속삭인 그는 한 손으로 은서의 양 손목을 가뿐히 움켜잡아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러자 푸딩처럼 미끈한 젖가슴이 훤히 드러났고, 그녀의 얼굴은 먹기 좋은 토마토처럼 푹 익어 버렸다.
그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맺히고, 검은 홍채는 은서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저돌적으로 빛났다. 욕정을 숨기지 않고 원초적으로 발산하는 짐승의 열기가 그의 몸 전체에서 휘돌고 있었다.
압도적인 아우라에 긴장한 은서가 숨을 꿀꺽 들이마시는 순간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달콤한 내음을 실컷 풍기고 있는 우유 푸딩 같은 가슴을 맛깔스럽게 빨아먹었다.
* * *
인도 해군 잠수함 입찰 경쟁에서 승리를 차지한 차강혁을 축하하기 위해, 유 회장은 L호텔의 그랜드 홀에 수백 명의 사람을 불러 모아 거하게 파티를 열었다.
“우리 사위야, 사위. 일을 어찌나 잘하는지 요샌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른다니까. 복덩이가 따로 없다고.”
유 회장은 그를 데리고 연회장을 휘저으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덕분에 그의 아내인 은서는 파티에서 파트너도 없이 혼자 연회장 구석이나 서성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일부러 공들여서 꾸몄는데…….’
은서는 짧은 기장의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답지 않게 과감한 패션이었다. 매번 흉터를 가린다며 전전긍긍하느라, 집 밖으로 나갈 때는 바지도 치마도 늘 긴 것만 입었으니 말이다.
물론 얇은 검정색 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흉터가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는 이마저도 하지 못했다. 전에는 무조건 살빛을 완전히 가려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꽁꽁 싸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흉터를 훤히 드러내 놓고 그에게 열렬히 달려가면서 은서는 흉터 콤플렉스를 자연히 극복하게 되었으니까.
‘재미없어.’
남편을 빼앗긴 파티는 지루하고 하품만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끄러운 데다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다.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 은서는 샴페인 잔을 웨이터에게 건네주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바깥으로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까 했지만, 76층인 이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귀찮아졌다. 게다가 아직은 겨울이라 춥기도 했고.
긴 복도를 천천히 따라 걷던 은서는 그랜드 홀 옆에 있는 소규모 미팅 룸 앞에 멈춰 섰다. 문고리를 슬쩍 돌려 보니 잠겨 있지 않았다.
은서는 주변을 재빠르게 탐색하고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미팅 룸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여기서 머리를 식힐 요량이었다.
“와, 야경 봐.”
전면 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도심의 야경에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랜드 홀에서는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근사한 야경을 즐길 틈도 없었는데.
왠지 신이 난 은서는 폴짝폴짝 뛰어서 창가로 다가섰다. 유리창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도심 전체를 아울러 본다.
낮에는 회색빛이었던 차가운 직선의 도시는 밤이 되자 갖가지 색들로 반짝반짝 빛나며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같이 야경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담아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별안간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온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호텔 직원인가? 멋대로 미팅 룸에 들어온 게 발각됐나 봐.’
뚜벅뚜벅,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명료한 구두 굽 소리가 달팽이관으로 걸쳐진다. 소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은서의 어깨도 점점 움츠러들었다.
은서는 곤혹스럽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최대한 예를 갖춰서 직원에게 문제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근육질의 팔뚝이 은서의 허리를 감아 오더니 등 뒤로 장신의 체구가 바짝 밀착해 왔다. 청량한 스킨 향은 후각을 진하게 자극하고, 등허리로는 딱딱한 무언가가 닿았다.
“내 고양이가 여기 숨어 있었군.”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익숙한 음성이었지만 은서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심장이 조여들면서 호흡마저 어려워진다. 직원에게 발각된 것보다 도리어 이쪽이 더 나빴다.
짐승이 사냥을 하러 나왔으니까.
등허리를 은근하게 짓누르는 발기한 페니스는 그가 얼마나 허기졌는지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대체 왜 파티 중간에 발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 남자이니 달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사람한테 고양이라뇨.”
오묘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은서는 일부러 모가 난 말투로 틱틱거렸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럼 ‘나비’라고 불러 줄까.”
더운 숨이 살갗을 간지럽히고, 따뜻한 입술이 목선을 타고 야릇하게 흘러내린다. 동시에 그의 손은 가슴을 그러쥐었다.
순간 혈액이 뜨거워지면서 신경계가 반응을 시작했다. 당연했다. 제 몸은 그에게 철저히 길들여졌으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그의 손끝만 닿아도 달아오르는 것이다.
이대로 멍청하게 있다가는 금방 잡아먹힐 것이었다. 은서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이성적으로 말했다.
“우리 이만 나가요. 직원 허락도 없이 함부로 이곳에…… 으읍!”
하지만 차강혁은 언제나 과감한 남자였다. 일단 본능이 폭발하면 물러서는 법이 없다.
그는 그녀의 입속에 기다란 손가락을 불쑥 집어넣어 입안을 약탈하듯 헤집었다. 그의 욕망만큼이나 비틀리고 음험한 핑거링이었다.
“우움…….”
은서는 어깨를 뒤흔들며 발악을 했지만 강철 같은 몸에 꼼짝없이 포박당해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입속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는 손가락 때문에 말을 할 여력조차 없었다.
바로 옆 연회장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심지어 양가 가족들까지 와 있는 상황에서 날 탐하려고 들다니…….
“달력을 봤어.”
그는 통통한 귓불을 깨물고 차분하게 속삭였다. 낮은 목소리로 음욕을 노련하게 숨기고 있지만, 그래 봤자 그는 발정 난 개였다.
“오늘이 배란일이던데.”
‘배란일’이라는 말에 은서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다. 오늘 분위기를 봐서는 아버지가 이 사람을 자정 전에는 안 보내 줄 것 같은데…….
방심하는 사이, 드레스 스커트가 끌어 올려지고 살빛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는 얇은 검정색 스타킹이 찌이익 찢어졌다.
이윽고 팬티를 한쪽으로 젖힌 그는 입속에서 손가락을 빼내, 타액이 번들번들하게 묻은 중지로 질구 주변을 난잡하게 희롱했다.
“아읏.”
아래가 차츰 젖어 들자 외음부를 지분거리던 손가락은 구멍 안을 자연스럽게 밀고 들어왔다. 은서는 도심의 야경이 훤히 비춰 들어오는 유리창에 손바닥을 짚고 허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흐응…….”
겨우 손가락 하나로 유린당할 뿐인데도 음부가 흠뻑 젖어 버렸다. 흥분이 과도해져서 애액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수준이 되자, 그는 손가락을 빼내고 바지 버클을 풀었다.
찰락거리는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전신을 소름 돋게 만든다. 그는 페니스 끝으로 입구를 빠끔빠끔 벌리고 있는 발칙한 구멍을 문지르며 적당히 괴롭힌 후에 깊숙이 쑤셔 박았다.
은서가 골반을 들썩거리고 울음소리 비슷한 신음을 내질렀다.
“아흐흣!”
뒤에서 가냘픈 몸을 꽉 끌어안은 그는 퍽퍽, 맹렬하게 박음질을 했다. 가슴을 주무르고 뒷목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춰 주면서 허리를 격렬하게 쳐올린다.
눈앞에 펼쳐진 도심의 야경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또 흐려졌다. 유리창으로는 뜨거운 입김이 자꾸 닿아서 뿌예졌다 투명해졌다 뿌예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등으로는 그의 가파른 심장 울림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이상하게도 그 심장 울림이 감격스러워 은서는 눈물을 톡톡 흘리고야 말았다.
* * *
연회장으로 돌아간 은서는 샴페인으로 마른 목을 축였다. 그때, 우연히 마주친 큰 언니 은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은서야, 너 스타킹 신고 있지 않았어?”
“아, 찢어져서 버렸어.”
“그래? 입술도 다 지워졌네.”
그의 손가락을 열심히 물고 빨았으니 립스틱이 지워질 만도 했다. 은서는 뺨으로 열이 몰려드는 걸 느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최대한 태연하게 대꾸했다.
“배고파서 음식을 막 집어 먹었더니 립스틱이 다 지워진 모양이야.”
“머리도 헝클어졌네. 무슨 사고라도 쳤니?”
은하는 동생의 머리칼을 손으로 단정하게 정리해 주었다. 은서는 애매모호한 미소만 띤 채 곁눈으로 차강혁을 찾았다.
그는 다시 유 회장에게 붙들려서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막내 사위로 소개당하고 있었다.
스타킹이 찢어지고 립스틱이 지워지고 머리칼이 엉클어진 자신과 달리, 그는 처음 본 모습 그대로 흐트러짐 하나 없이 완벽하기만 했다. 조금 전에 잔뜩 발정이 나서 숨을 헉헉거리며 흉포하게 피스톤질을 하던 남자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 * *
겨울의 추위가 녹아들고 봄이 찾아왔다.
계절은 변했지만 차강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발정했고, 걸핏하면 달려들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 곤란할 때가 많았지만, 어서 아기를 가지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은서는 번번이 그의 마수에 넘어가고는 했다.
뭐, 달리 임신 욕구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발정 난 그를 막아내지는 못했을 테지만.
흥분한 그를 멈춰 세우는 데에 성공한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욕정에 사로잡힌 그는 화약을 가득 실은 마차처럼 겁 없이 질주해 버려서, 그저 불꽃을 펑펑 작렬하며 터뜨릴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의 봄에는 좋은 소식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마침내 그가 지겨운 재활을 끝내고 오른쪽 어깨와 팔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골프나 수영을 다시 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하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어깨를 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좋은 소식은 차윤혁 군과 윤현주 양의 결혼이었다. 집안의 반대가 극렬했지만 두 사람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 내고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바위 같은 차 씨 집안 어르신들의 마음을 움직인 데에는 차강혁의 활약이 컸다. 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인 만큼, 집안에서도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특히, 차 회장은 예로부터 장남을 고압적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장남의 말이라면 무시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했다.
차 회장에게 차강혁이란, 당신이 만든 최고의 역작이었고 당신이 가진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그런 아들의 말이라면 일단은 귀 기울여 들어 보는 것이었다.
“현주 씨는 어쩜 저렇게 고울까요.”
하객들로 가득 찬 예식장, 늘씬한 몸매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머메이드라인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현주를 보고 은서는 감탄했다.
“당신이 더 고와.”
그의 목소리가 고막을 툭 건드렸다. 말투는 딱딱한데 내용은 다정했다. 이런 부조화가 은서를 늘 웃게 만들었다.
“도련님도 너무 잘생겼어요.”
각이 딱 맞게 떨어지는 턱시도를 입은 윤혁은 차강혁의 소프트 버전 같았다.
칼끝처럼 날카롭고 육식 짐승처럼 거칠고 야성적인 우아함을 내뿜는 차강혁에 비해, 차윤혁은 부드러운 인상과 편안한 느낌으로 여심을 뒤흔드는 남자였다.
분명 이목구비는 똑 닮았는데, 형제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대극적으로 달라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다른 놈한테 잘생겼다고 하지 마.”
동생을 향한 칭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는 삐딱하게 반응했다.
“도련님인데 왜 그래요.”
“XY 염색체를 가진 놈이야. 관심 두지 말라고.”
그러면서 불쑥 손바닥을 뻗어 은서의 눈을 가려 버리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정말.
은서는 피식거리며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러자 그는 다시 손을 올려 눈을 가리고, 은서는 또 안간힘을 써서 손을 끌어 내리고, 그런 유치한 장난을 쳤더랬다.
티격태격하는 사이, 예식은 절정으로 치달아 신랑은 신부에게 달콤한 키스를 바쳤다.
“우린 결혼식 때 키스 못 했는데…….”
은서는 양손으로 그의 손을 꼭 그러잡고 키스 장면을 몰입해서 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괜히 부러웠다. 제가 결혼식을 올릴 때는 키스도 달콤함도 없었다. 불안과 긴장, 그리고 슬픔과 모호한 두려움이 가미된 채로 격풍에 휩쓸리듯 예식이 거행되었을 뿐이었다.
“신혼여행 가서는 신부가 꽁무니를 내빼는 바람에 섹스도 못 했지.”
그 역시 아쉬운 게 많다는 투로 받아쳤다. 하지만 그의 아쉬움은 지나치게 적나라했기에, 은서는 눈을 드세게 치켜뜨고 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난 차강혁 씨를 배려한 거였어요.”
“나를 진정으로 배려했다면 함께 샤워를 하자고 했을 거야.”
그는 저질스러운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혹은, 그 전에 리무진에서 한 번 하게 해 주었던가.”
갈수록 도를 넘어서는 무례한 정직함에 은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면, 그보다 더 전에 신부 대기실로 나를 끌어들여 웨딩드레스를 찢게 해 주었겠지.”
“…….”
“잘 들어. 나한테서 도망치는 건 날 배려하는 게 아니야. 날 고문시키는 거지”
“…….”
“그런 의미에서, 이 드레스라도 찢게 해 주는 게 어떨까. 지금 당장 비상계단으로 가는 거야. 아니면 코트 룸도 괜찮겠지.”
욕정 어린 시선이 벚꽃색 드레스를 입은 은서를 길게 훑어보았다.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사납고 위험한 눈빛이었다.
‘꿈 깨요.’라고 퉁명스럽게 응수하려는 순간, 강한 악력에 의해 손목이 붙잡혔다. 은서는 하객들의 외투가 행거에 빽빽하게 걸려 있는 코트 룸으로 속히 끌려왔다.
벽으로 몸이 바짝 밀쳐지고 그는 무작정 키스를 퍼부으며 하반신을 맞붙여 왔다. 늘 그렇듯 그의 앞섶은 단단하게 성이 나 있는 상태였다.
신성한 결혼식장에서까지 나를 탐하려고 들다니. 저속한 음욕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은서는 그의 아랫입술을 꽉 물어 버리고 주먹으로 넓은 어깨를 팡팡 때려 댔다.
“미쳤어, 미쳤어! 동생 결혼식에서까지 이러고 싶어요?”
그는 핏방울이 맺힌 입술을 엄지로 쓸어보며 가볍게 웃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가슴 포켓에 꽂혀 있던 행커치프를 꺼내 그녀의 입안에 재갈처럼 쑤셔 박았다.
“우웁!”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방음이 잘되는 곳은 아니니까. 문밖으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니고 있다고.”
“읍.”
“뭐, 소리를 실컷 질러서 나한테 잡아먹히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생중계해 주고 싶은 거라면, 굳이 사양은 하지 않겠다만.”
여린 눈동자가 불안하게 일렁거렸다. 그는 얼마든지 소리를 질러보라는 식으로 행커치프를 입안에서 빼냈다.
“하아……!”
입속을 틀어막던 게 사라지자 가쁜 숨이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은서는 가슴을 격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며 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때, 성난 페니스가 아랫배를 장난스럽게 쿡쿡 찔러 왔다. 곧 있으면 무참히 박아 넣을 거라며 위세를 뽐내듯이.
결국 은서는 눈꼬리를 내리고, 백기를 팔랑팔랑 흔들 듯 입술을 작게 우물거렸다.
“……드레스는 찢지 말아요.”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 앞에서 은서는 한없이 미력했다. 그저 굴복하는 수밖에.
입꼬리를 오만하게 끌어 올린 그는 다시 입속에 행커치프를 우악스럽게 박아 넣고, 야생의 짐승들이 으레 그러듯이 뜨겁게 달궈진 정욕을 광폭하게 발화시켰다.
* * *
격한 섹스로 체력이 다 소진된 탓에 배가 엄청나게 고파 왔다.
흐트러진 차림새를 단정하게 정돈한 은서는 코트 룸을 빠져나와 잰걸음으로 뷔페로 향하며 자못 비장하게 다짐했다.
“많이 먹어야지.”
그리고 그 앙증맞은 뒤태를 강혁이 즐겁게 감상하며 느긋한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워낙 다리가 길어서 그의 느긋한 걸음과 은서의 잰걸음이 속도가 얼추 비슷했다.
“뭐부터 먹을까? 회? 스테이크? 퀘사디아? 랍스터?”
기분 좋은 고민을 하며 뷔페 안으로 힘차게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별안간 음식 냄새가 코끝을 역하게 찔러 오면서 속이 니글니글 메스꺼워졌다.
당초 다짐과 달리, 은서는 음식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입을 강하게 틀어막은 채 몸을 돌려 뷔페를 다급하게 뛰쳐나와야 했다.
“왜 그래?”
돌발적인 아내의 행동에 놀란 그가 바짝 따라오며 물었지만, 은서는 입을 꾹 막고 가열차게 달리기만 했다.
마침내 화장실에 당도한 그녀는 변기를 붙잡고 그제야 참고 참았던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
신물이 역류한다. 은서는 위장을 쥐어 짜낼 듯이 꺽꺽거리는 괴로운 소리를 내며,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 내고 또 게워 냈다.
한참을 그렇게 쏟아 내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변기 물을 내리고 티슈로 입을 닦았다. 밭은 숨을 할딱거리고 세면대로 가서 입안을 물로 여러 번 깨끗하게 헹궈 낸 다음에야, 은서는 힘이 쏘옥 빠진 걸음으로 터덜터덜 화장실에서 나왔다.
여자 화장실 앞에는 차강혁이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그가 대뜸 은서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디를요?”
“산부인과.”
은서도 얼핏 예상하기는 했다. 지난겨울부터 장소며 시간을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해 댔으니, 갑작스러운 구역질이 어쩌면 입덧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건 논리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산부인과로 향하는 건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다.
“오늘 일요일인데 무슨 병원이에요.”
“최 실장한테 연락해서 의사 대기시켜 놓으라고 했어. 어서 가자고.”
“일단 진정 좀 해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심장이 떨려서 미칠 것 같단 말이야.”
교교한 호수처럼 냉철하게 빛나던 흑색의 눈동자는 지금 이 순간 격류가 몰아치듯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짜릿한 기대감이 그를 미치게 만든 것이다.
“강혁 씨, 우선 근처 약국 가서 테스트기부터 사 와요.”
은서도 마음이 들끓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최대한 차분해지려고 애쓰며 흥분한 짐승을 달래듯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만약 임신이라고 나오면 도련님이랑 현주 씨, 아니…… 이제 동서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두 사람 리무진에 오르는 거 보고 의사한테 가요.”
“좋아. 테스트기를 사 오지. 하지만 지체하는 일은 없을 거야. 양성 반응이 나오는 즉시, 그대로 병원으로 데려갈 줄 알아.”
* * *
이보다 선명한 빨간색 두 줄은 없었다. 양성 반응이 확인되자마자 그는 단언한 대로 은서를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임신 5주 차입니다.”
의사의 말에 그는 은서의 손을 꽉 잡고 손등에 열띤 키스를 퍼부었다.
기쁨으로 격양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키스였다. 만약 이 자리에 단둘이 있었다면, 그는 손등이 아니라 입술에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을 것이다.
“여기 보이시나요?”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가까이 옮겨 주며 말했다. 은서는 화면을 곧게 응시하며 눈을 갸름하게 뜨다가, 울상을 지으며 눈동자를 혼란스럽게 굴렸다.
“아, 안 보이는데요. 우리 아기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
그가 손끝으로 정확한 위치를 가리켰다. 콩알만 한 무언가가 보였다.
“아……. 저 콩알이 우리 아기예요?”
“이건 아기집이라고 불리는 임신낭이고, 여기 안에 태아가 살고 있지요. 기특하게도 자리를 아주 잘 잡았습니다.”
은서는 시선을 흘긋 내려 배를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 아기는 지금 콩알보다 더 작단 말인가. 세상에…… 너무 귀엽잖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그러다 문득, 우리 아기는 괜찮을지 걱정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지난 5주 동안 계속 섹스를 했는데……. 그것도 매우 난폭하게. 심지어 아까 결혼식장에서도 하지 않았던가.
“저, 근데…… 최근에 계속 부부 관계를 했는데…… 아기한테 괜찮을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은서가 우물쭈물 말을 더듬거리며 묻자, 의사는 친절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태아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은서는 천만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 *
“이제 어떡해요?”
“뭐가.”
“안정기가 될 때까지 당분간 부부 관계 못 하잖아요. ‘발정, 차강혁 선생’께서 그 기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요?”
산부인과를 나오면서 은서는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신나게 쫑알거렸다.
“벌써 5주가 흘렀으니 이제 7주만 참으면 되겠군. 문제없어. 당신 다리 다쳤을 때도 나는 곧잘 참아냈다고. 그때는 오히려 당신이 내 바지 앞섶을 만지작거리며 안달을 냈었지.”
“…….”
부끄러운 기억을 상기시켜 주자 열이 화르륵 피어오르면서 하얀 얼굴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서 있으면 만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앞으로는 시도 때도 없이 세우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싶은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받아치면 또 지는 것 같아 은서는 그냥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뭐라도 먹어야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전부 다 말해.”
그는 은서를 페라리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채워 준 뒤, 손을 배 위에 지그시 올려놓았다.
두 가지 의미였다. 배 속에 있는 아기를 느끼고 싶은 마음과(비록 태동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입덧으로 인해 텅텅 빈 아내의 속을 달래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은서는 시선을 끌어 내려 힘줄이 불끈 도드라지게 돋은 터프한 손을 물끄러미 주시하다 또박또박 대답했다.
“떡볶이.”
느닷없이 떡볶이가 당겼다. 빨간 빛깔을 곱게 뽐내며 매콤한 풍미로 혀끝을 자극하는 떡볶이가 미친 듯이 먹고 싶어졌다.
의외로 소박한 대답에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겨우?”
“그냥 떡볶이 말고요,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 작은 분식점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파는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아직도 장사를 할까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 먹었던 떡볶이가 아직도 생각난다니, 상당히 맛있었던 모양이야.”
“실은 먹어 보지는 못했어요.”
은서는 아쉬움이 진하게 배인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애들이 엄청나게 맛있다고 하도 극찬을 해서 나도 정말 먹어 보고 싶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밖에서 파는 떡볶이는 자극적이라고 못 먹게 했거든요.”
과잉보호가 극심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파파 걸, 마마 걸다운 스토리는 아예 입 밖에 꺼내 보지도 못했을 테다. 부모의 철저한 비호 아래서 자란 나약한 제 모습이 그를 실망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단점들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그래서 내가 떡볶이 타령만 하면 엄마가 집에서 손수 만들어 주고는 했는데, 사실 별로 맛있지는 않았어요. 자고로 떡볶이란 달고 매워야 하는데, 엄마가 해 주는 떡볶이에선 자연의 건강한 맛이 느껴졌으니까요.”
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떡볶이에서 자연의 맛이 느껴지는 걸까.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일이다.
“학교 끝나면 맨날 운전기사와 경호원이 픽업하러 와서 몰래 먹으러 갈 수도 없었어요. 수업 끝나면 애들이랑 어울리지도 못하고, 기계처럼 학원에 가고 과외나 들으러 가고 그랬죠.”
그는 은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원대한 꿈을 안고 도망을 치기로 결정했어요.”
“도망?”
“가방으로 차 문을 열어 주는 경호원의 얼굴을 퍽 치고 쏜살처럼 달아났죠. 떡볶이도 먹고, 오락실도 가고, 만화방에도 갈 거라는 꿈에 잔뜩 부풀어서요. 그런데, 그만…….”
심상치 않은 음성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검은 눈은 묘한 불안에 잠식되었다.
“차에 치이고 말았어요.”
끔찍한 결말이었다. 밤처럼 깊은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형편없이 일그러진 그의 인상은 본인이 당한 사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바보 같죠?”
분위기를 괜히 가라앉혔나 싶어 은서가 눈꼬리를 휘며 헤헤 웃었다.
그 순간, 커다란 손이 은서의 뒷목을 확 잡아당기더니 입술을 부딪쳐 왔다. 다정하면서도 거칠게 혹은 거칠면서도 다정하게, 그녀의 입술을 음미하고 숨결을 훔쳐 간다.
짙고 짙은 키스 후에 그는 콧잔등에 가볍게 입술을 누르고, 더운 숨이 섞인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뭐든지 다 해 줄게.”
“……?”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다 하게 해 주고, 다 먹게 해 주고, 다 가지게 해 줄 거야.”
“…….”
“그러니까 달아나지 마라.”
도망치는 거에 유난히 예민하네. 자상한 집착에 은서는 싱긋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전한 품 안에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은서가 가장 원하는 것이니.
“그럼 갈까.”
그가 시동을 걸었다. 은서는 배를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근데 떡볶이를 먹어도 될까 모르겠어요.”
“왜?”
“달고 매울 테니까요. 자극적인 음식은 아기한테 안 좋을 텐데…….”
“먹고 싶은 건 그냥 먹어.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고.”
단호한 대답만큼 그는 힘 있게 액셀을 밟았다. 페라리는 밝고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실컷 받으며 경쾌하게 도로를 질주했다.
* * *
운 좋게도 떡볶이 가게는 예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낡은 간판에 작고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벽에 붙은 메뉴를 훑어본 은서는 떡볶이부터 순대, 튀김, 어묵, 만두까지 다양한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할머니께 이 가게를 언제부터 하셨는지 여쭤 보았는데, 할머니는 무려 40년 가까이 이 가게를 지켰다고 하셨다. 은서는 이곳이야말로 장인의 가게라며 손뼉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조금 뒤에, 테이블 위로 음식이 하나둘 올라왔다. 그녀는 조급한 포크질로 새빨간 떡을 쿡 찍어서 입안에 넣었다. 하지만.
“읍…….”
콩알보다 작은 아기는 아직 떡볶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려 도저히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던 은서는 티슈에 뱉고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입덧 때문에 기운이 전혀 돌지 않아 집으로 오자마자 침대에 뻗어 버렸다.
그러다 저녁 시간이 되었고, 은서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다이닝 룸으로 갔다. 하지만 식탁에 세팅된 진수성찬을 보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우욱!”
은서는 변기를 붙잡고 안 그래도 비어 있는 속을 또다시 게워 냈다.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온 그는 그녀의 등을 주먹으로 툭툭 두드려 주고, 손바닥으로 살살 문질러 주었다.
그 자상한 손길 때문에 은서는 고되고 힘든 데도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차강혁이 옆에 있으면 어떠한 일도 거뜬히 버틸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샘솟아 오르는 것이다.
속을 실컷 비워 낸 은서는 물로 입안을 헹구고 양치질까지 깨끗하게 한 다음에 침실로 돌아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걱정스러운 눈매로 은서를 주시하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강혁 씨,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밥 먹고 와요.”
“됐어.”
“점심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입덧을 하는 아내 때문에 그 역시 점심부터 계속 빈속이었다.
“괜찮아. 아내가 입덧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남편이 속 편하게 밥이나 먹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하나도 안 우스운데요. 먹을 사람은 먹어야죠.”
“배고프지 않아.”
그는 은서의 배를 어루만지더니 불쑥 엄격하고 근엄한 투로 나무라듯 말했다.
“엄마 힘들게 하지 마라.”
뭣 모르는 아기한테 이게 대체 무슨 훈계인지. 기가 막힌 은서는 그의 손등을 아프지 않게 가볍게 때렸다.
“콩알보다 작은 애한테 왜 그래요.”
“아니, 그래야 돼. 조기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고. 아무리 내 새끼라도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대원칙은 알고 태어나야지.”
“유난이야, 정말.”
티격태격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사모님.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홍 집사였다.
“네. 들어오세요.”
은서의 대답에 문이 열리고 베드 트레이를 든 홍 집사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은서가 지친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자, 홍 집사는 베드 트레이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트레이에는 물에 찹쌀만 넣고 끓인 흰죽이 있었다.
“사모님, 저도 첫애를 가졌을 때 입덧이 심했는데 흰죽은 그나마 먹을 만하더라구요. 사모님도 한번 드셔 보세요.”
은서가 수저를 들려는 순간, 갑자기 큼지막한 손이 대뜸 끼어들어 수저를 낚아채고 죽을 조금 떴다.
그는 입김을 후후 불어서 죽을 적당히 식힌 다음에 은서의 입 앞으로 수저를 바짝 들이밀었다.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먹이를 주는 것처럼.
“자, 먹어 봐.”
은서는 눈동자를 빙그르르 굴려 옆에 서 있는 홍 집사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벌려 죽을 받아먹었다. 홍 집사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이건 괜찮아?”
“괜찮으세요?”
꿀꺽 죽을 삼키자마자 양쪽에서 질문이 날아왔다. 은서는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괜찮아요. 이건 먹어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네요.”
긍정적인 대답에 그는 천만다행이라는 듯 안도한 표정을 짓고 죽을 식혀서 계속 떠먹여 주었다. 홍 집사는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도록 침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 * *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입덧은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입덧이 끝나고 나니 미칠 듯한 식욕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먹을 생각밖에 나지 않는 것이다. 원래 이렇게 식욕이 강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요즘엔 차강혁에게 전화를 걸어 이걸 사 와라, 저걸 사 오라며 부려먹기 일쑤였다. 귀찮을 텐데도 그는 싫은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은서가 복스럽게 잘 먹는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오늘도 은서는 여지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는 떡볶이.
그는 퇴근을 하고 은서가 졸업한 초등학교 근처의 가게로 가서, 달달하고 매운 떡볶이를 포함해 각종 분식을 가득 사 들고 집으로 귀가했다.
“아기가 배가 많이 고팠나 봐요.”
은서는 식탁에 앉아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쫀득쫀득한 떡을 꼭꼭 씹어서 꿀꺽 삼키기 무섭게 오징어 튀김을 새빨간 양념에 찍어 입안에 넣는데, 양념이 흐르면서 턱에 묻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대신 옆에 앉은 그가 티슈를 뽑아 턱에 묻은 양념을 닦아 주었다.
“강혁 씨도 먹어요.”
“난 됐어.”
그는 은서가 먹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는 얼굴을 했다.
음식을 다 해치우고 나니 포만감이 밀려오며 몸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은서는 의자 등받이에 반쯤 눕다시피 몸을 기댔다.
“만족할 만큼 찼나.”
그는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배 위로 손을 살며시 올려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 완전 빵빵하게 채웠어요.”
“그럼 이제 나도 채워 줘.”
귓가를 스치는 그의 은밀한 목소리에는 열감이 배어 있었다.
배를 어루만지던 손은 그대로 아래로 내려와 허벅지를 쓸어 만진다. 동시에 미끈한 혀가 귓불을 야릇하게 간지럽혔다. 은서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아기가…… 놀라면 어떡해요.”
“괜찮아. 거칠게 안 해.”
“항상 거칠게 하면서…….”
“누구보다도 아기를 원했던 사람이 나야. 우리 아기에게 해가 될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검은 욕망을 품은 손은 자연스럽게 치마 안으로 침범해 들어와 얇은 팬티 위를 지분거렸다. 손끝에 살짝 힘을 주며 원을 덧그리자, 도톰한 입술이 벌어지며 신음인지 숨결인지 모호한 소리가 새어 나갔다.
은서는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음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의 손을 양손으로 꼭 붙들어 잡고 고개를 약하게 내저었다.
“아흣, 그만.”
“우리, 너무 오랫동안 못했잖아. 당신 발목만 봐도 미쳐 버릴 지경이라고.”
그의 목소리는 조금 더 짙어지고 조금 더 간절해졌다.
“그럼…… 입으로 해 줄게요.”
“싫어. 유은서 보지에 박을 거야.”
질 낮은 말에 왜 귓가는 뜨끈해지는 걸까.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그는 거침없이 팬티를 젖혀 음부를 만지작거렸다.
익숙하게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음순을 더듬더니, 좁은 구멍 속을 파고 들어와 짓궂게 내벽을 긁는다. 온몸으로 퍼지는 열기에 은서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교태 넘치는 신음을 터뜨렸다.
“하아……!”
그는 동그란 정수리에 입술을 누르고 한쪽 팔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 가슴을 주무르며,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구멍 안을 헤집었다.
노련한 자극에 아래가 젖는 건 금방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은서 역시 그를 애타게 원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훌륭한 몸을 볼 때마다, 그가 좋은 향기를 풍길 때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가 짙은 시선으로 저를 바라볼 때마다, 그에게 안기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참고 참았는지, 아마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흐응…….”
끈적끈적한 애액이 그의 손가락을 온통 적셔 놓고, 찔꺽찔꺽 문란한 소리가 다이닝 룸을 가득 채웠다. 인내심이 뚝 끊어진 은서는 그의 귓가에 대고 조급하게 속삭였다.
“침대로 가요, 하읏…….”
“그럴 여유 없어.”
구멍 안을 점령하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그가 두 손으로 잘록한 허리를 붙잡아 식탁 위에 올려 앉혔다.
이윽고 그는 빠른 손길로 바지 버클을 풀어 단단하게 팽창한 페니스를 젖은 구멍 안으로 성마르게 꽂아 넣었다.
“아흣!”
은서가 진저리를 치면서 손톱 끝이 하얘질 정도로 그의 어깨를 꼭 틀어쥐었다.
그는 벌어진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퍼붓고 등을 찬찬히 쓸어 주며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홀한 전율이 사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 *
흰 눈이 하늘하늘 내리는 어느 겨울날, 부부는 같이 저녁을 먹고 티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영화를 한 편 본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다.
은서는 그의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웠다. 배가 거의 터질 듯이 남산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서 옆으로 눕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는 등 뒤에서 은서를 꼭 안아 주고 뒷머리에 키스해 주었다.
평화로운 일상 같지만, 사실 깊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예정일이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아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괜찮으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편하게 지내라고 하는데, 자꾸 마음이 급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아가, 엄마 안 보고 싶어? 나는 우리 아기 빨리 보고 싶은데.”
은서는 배를 살살 문지르며 뱃속의 아기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을 겹쳐 잡더니 뱃속의 아기에게 엄격하게 꾸짖었다.
“애태우지 말고 어서 나와라. 엄마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
“아기한테 그러지 말래도. 근데, 대체 언제쯤 나올까요? 보고 싶어 죽겠는데.”
“그냥 최후의 방법을 쓰지.”
“최후의 방법? 그게 뭔데요?”
은서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좋은 방법 알고 있으면 진작 얘기하지, 왜 이제야 꺼내요?’라며 핀잔을 주려고 할 때, 그가 기막힌 해법을 내놓았다.
“섹스.”
“네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말 돼. 정액에 있는 프로스타글란딘 성분이 분만을 유도한다고.”
정말인가? 마음이 혹한 은서는 일단 팩트 체크는 해 봐야겠다 싶어 협탁 위에 있는 휴대폰으로 팔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불쑥 가슴을 그러잡고 조물조물거리기 시작했다.
“……차강혁 씨는 내가 지금 코끼리만 해졌는데 나를 안고 싶어요?”
“이렇게 귀엽고 섹시한 코끼리는 본 적이 없는데.”
그는 가지런한 치아로 귓불을 잘근 깨물고 혀를 굴리면서 목덜미로 내려왔다. 등허리로는 딱딱하게 성이 난 페니스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음흉한 페팅에 그녀의 몸은 벌써부터 달아올랐다. 막달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해서 최근 한 달간은 전혀 하지 않았기에 흥분이 고조되는 속도도 자연히 빨랐다.
그는 파자마 치마를 끌어 올려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놀렸다. 귓가로는 그의 뜨겁고도 거친 숨소리가 연신 걸쳐 들었다.
그가 이렇게 짐승처럼 폭주할 때는 은서도 이성을 다 내던져 버리고 그저 그에게 몸을 내맡기고만 싶어진다.
결국 경계를 풀어 버린 은서는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을 찾아 키스했다. 찰박찰박 두 개의 혀가 감기고, 그는 팬티를 찢어 발기한 페니스를 작은 구멍 안에 서둘러 밀어 넣었다.
“하으…….”
난폭하게 쑤셔 박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며 그는 느긋하게 피스톤질했다.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자상하게 허리짓을 하며 성감을 자극하자, 은서가 끼 떠는 소리를 흘리며 전신을 바르작거렸다.
부드러운 건 부드러운 것대로 좋았다. 거칠게 극한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감각 세포를 건드려서 욕정의 굴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아읏.”
“하아, 은서야…….”
한참 동안 허리를 쳐올리던 그가 은서를 소중하게 껴안고 몸을 부르르 떨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단 숨을 천천히 고른 그는 열띤 키스를 퍼부었다.
질척하게 입술과 숨결을 빼앗은 후에 그는 그녀의 다리를 벌려 아래를 확인해 보았다. 달콤한 크림파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자신만만하게 호언했다.
“이제 곧 우리 아기가 나올 거라고.”
* * *
은서는 그의 굳세고 단단한 팔뚝에 꼭 안긴 채로 곤히 잠들었다. 그러다 새벽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깼다.
마치 생리가 터질 때처럼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이불을 들춰 보자마자 은서는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
“강혁 씨!”
날카롭게 찢어지는 아내의 목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축축하게 젖은 시트를 보고 그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빨리 병원 가자.”
* * *
양수가 터진 새벽부터 오전까지 내내 진통하다가, 자궁이 10cm가량 열리자 분만실로 이동했다.
은서는 분만실로 따라 들어온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괴성을 내지르며 힘을 주었다.
“더 세게 힘주세요. 계속요. 힘껏 밀어 주세요!”
뼈마디가 죄다 뒤틀리는 고통이 전해진다. 교통사고를 당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프고 괴로웠다.
내가 이 힘든 길을 대체 왜 택했나, 얼핏 후회가 될 만큼 잔인한 격통이 온몸을 난폭하게 때려 대고 있었다.
“머리가 보여요! 조금만 더요. 자, 호흡하시고 다시 힘주세요.”
은서는 인상을 가득 쓰고 그의 손을 거의 부서뜨릴 지경으로 세게 쥐면서, 힘이란 힘은 다 끌어모아 아이를 보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얼마 후, 응애응애 우는 아기 울음소리가 고막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감격적이라 은서는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늠름한 왕자님이네요. 아버님, 탯줄 잘라 주세요.”
가위를 건네받은 강혁은 그답지 않게 손을 떨었다. 웬만해선 긴장하지 않는 남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는 충분히 심호흡을 한 다음, 신중하게 가위질을 해서 탯줄을 잘랐다.
이윽고 간호사가 아기를 요에 감싸서 그에게 전해 주었다. 아기를 품에 안자 그는 감정이 복받쳐 오르며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여태까지 살면서 두 번째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은서가 제 사랑을 받아 주었을 때였고.
“우리 아기야.”
그는 은서의 옆으로 다가가 품에 안은 아기를 보여 주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와서 피부가 빨간데도 잘생긴 게 훤히 보였다. 강인한 인상과 뚜렷한 이목구비가 차강혁과 똑 닮아 있었다.
“우리 아들 이렇게 잘생겼는데…… 내 얼굴은 엉망이라 어떡하죠? 첫인상을 잘 심어 줘야 하는데, 엉망인 몰골로 우리 아기랑 처음을 텄네요.”
은서는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부끄럽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아니야, 당신 지금 너무 아름다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눈부실 정도로.”
그는 다정한 손길로 땀과 눈물을 닦아 주고, 그녀의 이마와 콧잔등 그리고 입술에 차례대로 키스했다. 은서는 싱그러운 미소로 키스에 화답하고 아기를 마주 보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반가워, 아기야. 앞으로 우리 잘 지내자.”
사랑으로 맺어진 아기를 보자마자 살과 뼈를 찢을 듯한 고통이 깨끗하게 지워지고, 가슴 벅찬 환희와 행복이 온몸을 덮쳐 왔다.
이제 아이까지, 우리 셋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너무나 기대되고 너무나 두근거렸다.
물론 가끔은 힘들 때도 있겠지. 어려울 때도 있을 테고 장애물을 만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셋이 함께하기에, 모든 것은 괜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