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30)

13.

* * *

은서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차강혁을 기다렸다.

하지만 홀딱 벗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그건 부끄러우니까. 대신 짧은 기장의 원피스를 입었다. 속옷도 다소 과감한 스타일로 맞춰 입었고.

왠지 긴장감이 피어올라 무릎 위로는 주먹이 동그랗게 말아졌다. 웃긴다. 처음도 아닌데.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몸을 섞었는데.

그럼에도 은서는 마치 첫날밤을 치르는 신부처럼 긴장이 되었다. 그동안 그와 떨어져 있던 기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설렘과 긴장을 증폭시킨 모양이다.

시간이 되었다. 차강혁이 저택에 도착했다.

그의 도착을 반기듯이 하얗고 찬연한 빛기둥이 채광창을 통해 비춰 왔다. 침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포장지가 싸인 기다란 상자였다.

“……?”

순식간에 은서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겉모양을 보아하니 선물이 틀림없다. 저 남자가 출장 선물을 준비하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건가 보다.

차강혁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가서서 검지를 까딱거렸다. 오만한 제스처에 은서는 군말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똑바로 섰다.

그녀의 모습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예리하게 훑어본 그는 탐탁지 않다는 듯 한쪽 눈썹을 삐딱하게 치켜세웠다.

“유은서, 내 말을 안 들었군.”

“…….”

“난 분명히 옷을 벗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거의 다 벗은 거예요.”

치마 기장은 지나치게 짧아서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수준이었고, 네크라인은 과감하게 훅 파여서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사실상 원피스가 아니라 슬립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차림이었다.

“선물이나 주세요.”

은서가 두 손을 내밀었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입매를 묘하게 끌어 올리고 손 위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묘한 미소의 의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은서는 단순히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빠른 손길로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뭘까? 차강혁한테 선물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두근두근, 기대감을 한 아름 끌어안고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이 조악한 물건은 대체 뭐지?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은서의 표정은 급격히 굳어졌다.

“이게 뭐예요?”

은서는 뾰족한 말투로 따지듯이 물었다.

“장난감이잖아.”

그는 뻔뻔한 낯짝으로 능청맞게 대답했다.

장난감이라. 그래, 장난감이 맞기는 맞지. 문제는 그 장난감이라는 게 사람용이 아니라 고양이용이라는 것이지만.

상자 안에 든 조악한 물건은 일명 ‘오뎅 꼬치’라고 불리는 고양이 장난감이었다. 가느다랗고 기다란 막대 끝에 보드라운 밍크 털 뭉치가 달린 장난감 말이다.

이 남자는 나를 정말 사람 취급도 안 하는구나 싶었다. 발끈한 은서는 장난감과 상자를 보란 듯이 바닥에 퍽 내동댕이쳤다.

처음부터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차강혁이 다른 남자들처럼 평범한 선물을 줄 리가 없는데.

“왜 집어 던지고 그래.”

그는 긴 팔로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웠다. 그리고 은서의 눈앞에서 털 뭉치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뭐 하는 짓이에요?”

“이걸 이렇게 흔들면 고양이들이 좋아한다고 하던데.”

“…….”

“당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군.”

“기막혀…….”

내가 진짜 고양이도 아니고 이딴 걸 좋아할 리가 없잖아.

“당신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고른 선물인데, 이런 반응이면 너무 서운하다고.”

은서는 어금니를 세게 악물었다. 하긴, 내 생각을 하며 신중하게 고르기야 했겠지. 어떻게든 나를 골탕 먹이려고 환장한 남자니까.

“이건 선물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하는 거예요.”

쌀쌀맞게 응수한 은서는 그의 손에 든 장난감을 빼앗아 다시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낸다.

“참 버릇이 없어.”

“…….”

“선물을 집어 던지질 않나, 고약한 말버릇도 여전하고, 내 말도 전혀 듣지 않았지.”

“…….”

“아무래도 벌을 줘야겠군.”

“…….”

“옷 벗어.”

엄격한 명령에 은서는 눈을 새치름하게 치켜떴다.

차강혁 역시 밤바다처럼 짙고 어두운 눈으로 그녀를 곧게 주시했다. 이채가 팽팽하게 빛나는 깊은 눈동자 속에는 성난 야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따위 잡아 삼키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위협적이고 압도적인 눈빛이다.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은서는 호흡이 부족해져서 질식할 것 같다는 두려운 느낌을 받았다. 전신으로 발한이 퍼져 나간다.

“…….”

결국 은서는 순순히 굴복을 하고 원피스의 어깨끈을 끌어 내렸다. 그녀는 성난 야수와 맞서 싸울 정도로 대범한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사르륵, 소리와 함께 얇은 원피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뒤쪽에 있는 암체어로 우아하게 걸어갔다. 티크우드로 제작된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암체어에 기다란 다리를 거만하게 꼬고 앉아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연기를 후, 내뿜은 그는 나지막하게 명령했다.

“속옷도 벗어야지.”

은서는 등 뒤로 손을 가져가 브래지어 버클을 풀었다. 부끄러운 행위도 그의 명령이면 결국에는 따르게 된다. 그에게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있기에.

툭, 브래지어가 떨어졌다. 곧이어 팬티도 벗어 내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된 은서는 뺨이 수줍게 달아올랐다. 하얀 피부 위에 진 홍조가 꼭 먹음직스러운 복숭아 같았다.

그는 그윽한 눈길로 무방비한 나신을 세세히 뜯어보았다.

우윳빛 살결 위에 군데군데 찍어 놓았던 표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사라졌다.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깨끗하고 보들보들한 몸에는 언제나 제 것이라는 표식이 진하게 새겨져 있어야 하거늘.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봐.”

그는 굶주린 상태였지만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계획이었다.

은서는 짓궂은 명령에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가 시키는 대로 모델처럼 한 바퀴를 빙 돌았다. 홀딱 벗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만, 뭐 언제는 저 남자의 행동이 이해 갔던가.

“한 바퀴 더.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정말 가지가지 한다. 은서는 불평하듯 숨을 내뱉고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그러자 차강혁이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워 은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먹잇감을 손에 쥔 포식자답게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저걸 대체 왜 또 줍지? 은서는 의구심을 품다가 곧 이어지는 그의 행동에 인상을 거하게 찌푸렸다.

그는 막대 끝에 달린 털 뭉치로 은서의 얼굴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목선과 어깨, 팔뚝까지 쓸더니 불쑥 젖꼭지를 살살 문질렀다.

“하앗…… 이상한 짓 하지 말아요!”

은서가 어깨를 비틀고 팔을 감싸서 가슴을 가렸다.

“가만히 있어. 사지를 묶어 버리기 전에.”

냉엄한 경고에 몸이 단번에 경직되었다. 어떻게든 본인의 뜻을 관철시킬 남자라는 걸 잘 알기에, 반항이 무의미하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은서는 별수 없이 팔을 내리고 어깨를 똑바로 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젖꼭지 위에서 다시 장난감을 가볍게 흔들었다. 보드라운 털들이 예민한 피부를 간질이자 입술 새로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조그맣게 벌어진 입술이 도발적이다. 영롱하게 빛나던 연갈색 눈동자는 슬슬 총기를 잃기 시작했고, 핑크빛 젖꼭지는 딱딱하게 솟아올랐다.

그는 농염하게 익어 가는 그녀의 몸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막대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젖꼭지를 정성스럽게 문지르고 천천히 내려와 배꼽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가, 음란한 구멍을 감추고 있는 다리 사이를 쓰윽 점령했다.

“흣, 그만해요…….”

은서가 골반을 움찔거렸다.

이건 그가 만져 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감각이었다. 짜릿하긴 했지만 훨씬 더 치욕적이었다. 사람 손길이 아니라 고작 털 뭉치 따위에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침대에 누워.”

그는 장난감을 거두고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드디어 끝인 건가. 얄궂은 장난질은 종료되고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에 은서는 안도감을 품고 침대에 누웠다.

“다리 벌려 봐.”

은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선뜻 다리를 활짝 벌려 주었다.

그가 떠나 있는 동안 내내,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간절한 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애타는 열망에 지배당하면 다리를 벌리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게 된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제야 갈망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은서의 맥박이 가파르게 질주했다. 그녀는 고대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털 뭉치로 가랑이를 살랑살랑 괴롭혔다.

“하읏, 이건 싫다구요…….”

짜증 섞인 불평에 무감한 눈길이 꽂혀 들어왔다. ‘네가 싫은데 뭐 어쩌라는 거냐.’라는 눈빛이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끊임없이 밍크 털로 자극을 주었다. 간질간질, 심술궂은 장난에 배꼽 아래가 뒤틀리고 가랑이가 후끈거렸다.

“흐응……. 싫다니까. 제발 그만해요.”

은서는 급기야 다리를 오므리고 두 손으로 아래를 가렸다. 눈가는 축 처져서 그야말로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낱 고양이 장난감으로 농락당한 것이 어지간히도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싫은가?”

그의 물음에 은서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곧바로 ‘네.’라고 대답했다. 고갯짓만으로 답하면 보나마나 버릇이 나쁘니 어쩌니 하면서 꼬투리를 잡을 게 틀림없으니까.

“알았어. 그만하지.”

그는 담백하게 대답하고 장난감을 미련 없이 휙 던졌다.

“버렸어. 이제 다시 벌려 봐.”

멀찌감치 떨어진 장난감을 보고 안심한 은서는 다리를 또 넓게 벌려 주었다.

그는 살짝 젖어 있는 아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지겨울 만큼 그곳을 봤으면서도 매번 볼 때마다 눈빛을 호기심을 반짝 빛낸다.

“몇 번이나 했지?”

“……네?”

“내가 없는 동안 혼자서 여길 몇 번이나 만졌냐고.”

직구로 날아든 질문에 은서는 말문이 막혔다. 눈동자가 방황하듯 데굴데굴 멋대로 굴러간다.

“어서 대답해. 그동안 몇 번이나 만졌어?”

“몰라요……. 그런 거 묻지 말아요.”

계속되는 추궁에 은서는 입술을 굼뜨게 움직였다.

“좋았나? 혼자서 하니까?”

“모른다니까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보고 그는 입꼬리를 음험하게 말아 올렸다.

“해 봐.”

“네?”

“혼자서 해 보라고.”

은서의 낯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 여기서, 당신 앞에서, 혼자서 하란 말이야? 어처구니가 없어도 한참이나 없는 요구에 입술이 달달 떨렸다.

“혼자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어차피 내 말 어기고 혼자 했잖아.”

“…….”

“어디 내 앞에서도 한번 해 봐.”

“…….”

“보고 싶어. 유은서가 혼자서 음탕하게 즐기는 모습.”

“싫어요……. 안 해요.”

은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번에 들킨 것도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는데, 그 난잡한 짓거리를 또 보여 달라니.

이 남자는 자위의 의미를 아예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남 앞에서 하면 그게 자위인가, 싸구려 저질 포르노지.

“싫어?”

“싫어요!”

“그래.”

그는 턱을 매만지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물러나 주는 건가? 속내를 좀처럼 파악할 수 없어 알쏭달쏭해지는 순간, 그가 다시 입술을 차분하게 열었다.

“마당에서 정 기사가 세차를 하고 있더군.”

생뚱맞은 말이었다. 은서는 눈을 갸름하게 떴다.

“거기서 박아 줄까?”

이어지는 말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아니면 정원도 괜찮겠지. 정원사가 잔디를 손질하고 있던데.”

“미친 새끼…….”

상스러운 욕설이 저절로 튀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는 열반에 다다른 자도 냅다 욕을 갈길 것이었다.

“맞아. 당신 남편 미쳤어. 그러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메마른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잘도 내린다. 그의 차갑고 잔인한 속성이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명령을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저를 정말로 야외로 끌고 나가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해 버릴 남자다.

은서는 눈을 꾹 감았다. 방법도 없고 도리도 없었다. 그에게 굴종하는 것 말고는.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다리 사이로 오른손을 가져갔다. 은서는 손끝으로 외음부를 원을 그리듯이 매만지다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작은 구멍을 살짝 건드렸다.

“하아.”

그가 지켜보는데도 몸은 몸대로 달아올랐다. 아니, 어쩌면 그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더 달아오르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의 그윽한 눈길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희롱하고 있다는 것이 괴상한 배덕감을 부추기고 있었기에.

오묘한 감정에 제법 과감해진 은서는 왼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어 젖꼭지를 지분거리며 가슴과 아래를 동시에 괴롭혔다.

“아앙.”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암체어로 가서 앉았다.

담배를 꺼내 물고 지포라이터로 칙, 불을 붙이자 담배 끝이 잿빛으로 타들어 갔다. 그는 담배를 깊게 빨고 연기를 내뱉으면서 음란한 광경을 여유 넘치는 자태로 관람했다.

“구멍에 손가락 좀 넣어 봐.”

그의 지시에 은서는 중지를 세워 천천히 젖은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딱딱한 이물감에 신음성이 짙어졌다.

“하흣.”

은서는 좁은 구멍 속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점점 단계를 높여 가는 자극에 흘러나오는 애액의 양도 많아졌다.

그는 빠른 속도로 담배를 피웠다. 금세 한 대를 다 태우고 새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두 번째 담배 역시 금방 타들어 갔다. 그는 기계적으로 세 번째 담배를 꺼내서 물고 불을 붙였다.

줄담배에 침실은 연기로 자욱해지고, 안개 같은 연기 뒤로는 은서가 혼자서 은밀하게 즐기며 색기를 잔뜩 뽐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돌리던 손가락은 이제 다소 강하게 안을 쑤신다. 손가락을 찔러 넣을 때마다 찔꺽거리는 야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읏.”

“혼자서 할 때 손가락 하나만 넣나?”

“으응, 응…….”

“그럼 오늘은 두 개 넣어 봐.”

“두 개는 안 해 봤는데. 흣…….”

“충분히 들어가. 내 자지도 들어가는 곳이잖아.”

부당한 명령이라도 그가 내린 것이라면 거역할 수 없다. 은서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기 시작했다. 좁다란 구멍을 조금씩 벌리면서 겨우겨우 비집어 넣었다.

“하으응.”

이물감이 더 심해졌다. 안을 빠듯하게 채우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손가락을 집어넣어도 내부를 완벽하게 채우지는 못한다.

유은서를 완전하게 채울 수 있는 건 오직 차강혁뿐이니까.

“하으…….”

은서는 발끝에 힘을 주고 교성을 터뜨리지만, 이건 단순히 저차원적인 흥분에 불과했다. 부족하고 모자란 흥분인 것이다.

차강혁에게 안긴 이후로 자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진짜 흥분에 사로잡히려면, 진짜 절정에 도달하려면, 진짜 오르가슴을 느끼려면, 그가 절실히 필요했다.

“하아, 강혁 씨…….”

은서는 그를 직시하며 애타게 그를 불렀다. 어서 이리로 와서 쾌락을 이끌어 내달라는 듯이.

“이런 거 싫어요. 혼자서 하고 싶지 않아요. 하읏……. 강혁 씨랑 하고 싶어.”

손가락으로 내부를 쑤시고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은서는 거듭 애원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그를 절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맹목적으로 오로지 차강혁만을.

하지만 그는 줄담배만 내리 피우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나는 안달이 나서 미칠 것 같은데…… 저 남자는 저렇게도 천하태평하다니.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강혁 씨, 제발. 하아……. 제발, 가게 해 주세요.”

은서는 숨을 가쁘게 할딱거리면서 빌고 또 빌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들어찬 눈으로 간절하게 애걸하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절박한 모습이 그의 마음에 닿은 것일까.

마침내 그가 담배를 비벼 끄고 의자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침대로 다가와 섰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온몸을 바르작거리며 떨고 있는 그녀를 오만하게 내려다본다.

“너무 밝히는군.”

“흐읏.”

“나를 원해?”

“으응, 당신을 원해요…….”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내 좆을 원하는 거겠지.”

“아아앙…….”

“유은서 넌 나한테 박힐 때만 예쁘게 구니까.”

시니컬한 일갈에 은서가 수음을 멈추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작은 손으로 탄탄한 팔목을 잡아끌어 그를 침대로 주저앉혔다.

은서는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꼭 감싸 쥐었다. 그와 눈을 곧게 맞추고 욕망이 진하게 배어 있는 음성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야. 난 차강혁의 모든 것을 원해요.”

이내 은서는 그에게 살포시 입술을 맞췄다. 그런 다음, 한 손으로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다른 손은 그의 왼쪽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차강혁의 입술, 차강혁의 손, 차강혁의 온기, 차강혁의 숨결, 차강혁의 심장까지…… 차강혁의 전부를 원한다구요.”

“…….”

“그러니까 어서 나한테 줘요.”

애절하게 속삭인 은서는 다시 그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을 상냥하게 머금으며 재킷을 벗기고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드레스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끌러서 벗겨 내고, 완벽하게 윤곽이 잡힌 근육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그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조심스럽게 혀를 움직이자 그가 은서의 뒷머리를 부여잡고 능숙하게 혀를 뒤섞으며 딥 키스에 호응해 주었다. 찰박찰박, 두 개의 혀가 하나가 되듯이 엉켜 든다.

“하아.”

아쉬운 여운을 남기며 서로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는 키스만큼 뜨거운 시선을 맞대 오면서 엄지로 젖은 입술을 쓸어 냈다. 그리고 가녀린 몸을 부서질 듯이 껴안았다.

“줄게.”

“…….”

“모두 다 줄 테니까 어디 실컷 해 봐.”

“…….”

“유은서 네 맘대로 나를 가지고 놀아 보라고.”

감미로우면서도 결연한 속삭임이 은서의 귓가를 짜릿하게 진동시켰다. 격정에 사로잡힌 은서는 또다시 그에게 열띤 키스를 바쳤다.

진하게 입을 맞춘 뒤, 그의 목덜미로 입술을 묻었다. 멋지게 뻗은 목선을 핥고 어깻죽지로 내려와 이로 자근거리면서, 그의 바지 위를 조물조물 매만졌다.

유유자적하게 담배나 피우며 한껏 여유로워 보이던 그였지만, 사실 그의 바지는 이미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고작 제 수음이나 보면서 흥분했다니. 변태 같은데 왠지 기분이 좋다.

은서는 조급하게 바지를 열어 페니스를 꺼냈다. 그의 페니스는 꼿꼿하게 발기된 것은 물론이고 선단에는 투명한 액까지 맺혀 있었다.

‘발정이 나도 단단히 났네.’

은서는 배시시 웃으며 두 손으로 페니스를 소중하게 쥐고 혀를 날름거리며 끄트머리를 핥았다. 그러면서도 눈은 똑바로 그를 응시했다. 정기가 풀려 한껏 흐트러진 눈으로.

색기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짐승의 열기가 그의 몸을 지배했다. 맘 같아선 당장 다리를 잡아 벌리고 난폭하게 페니스를 꽂아 넣고 싶지만, 요사스럽게 요기를 부리는 모습을 조금은 더 즐기고 싶어 간신히 참는 중이었다.

은서는 본격적으로 페니스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기둥을 쥔 손을 상하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혀를 내밀고 페니스를 입속에 넣었다 뺐다를 열심히 반복했다.

작은 입에 들어가기에는 페니스가 너무 커서 고운 얼굴이 어그러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놓지 않고 고집스럽게 페니스를 입에다 넣고 빨아 댔다. 달콤한 아이스 바를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맛깔스럽게도 먹는다.

그는 긴 머리카락을 넘겨 주며 감탄하듯 열띤 숨을 내뱉었다.

“후……. 맛있어?”

“으응…….”

“네 거야.”

은서가 눈꼬리를 접고 또 배시시 웃었다.

그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느꼈다. 어서 그녀의 안을 가르고 들어가고 싶어졌다. 이 음탕한 요물을 부서져라 파고들고 엉망으로 망가뜨리고만 싶었다.

“그만.”

그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동그란 정수리를 손으로 꽉 우그려잡아 멈추게 했다.

“보지에 박고 싶어.”

갈증에 찬 목소리로 읊조린 그는 침대 위에 나른하게 누웠다. 은서는 눈치 빠르게 그의 위에 올라타 앉았다.

하지만 그가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색다른 명령을 내렸다.

“뒤로 돌아서 앉아.”

“뒤로?”

“그래.”

또 이상한 걸 시키려나 보다. 은서는 그의 명령에 충실히 따라서 몸을 반대로 돌려 그에게 뒤태를 보인 채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기분이 묘하다. 꼭 말을 거꾸로 타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요?”

“이제 넣어 봐.”

은서는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리고 페니스를 손으로 쥐었다. 젖은 구멍을 찾아 교접점을 맞추고 엉덩이를 천천히 내려앉자, 성난 물건이 벌름거리던 입구를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아.”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얕은 탄성을 흘리며 계속 엉덩이를 내려 앉혔다. 이내 페니스가 뿌리 끝까지 들어와 구멍 속을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하읏.”

단지 집어넣고만 있을 뿐인데도 황홀해졌다. 이 충만함은 언제 느껴도 짜릿하다.

그는 유려한 곡선으로 휘어져 있는 등허리를 손바닥으로 주욱 훑어 만지다가, 요분질을 채근하듯 엉덩이를 찰싸닥 두드렸다.

은서는 두 손으로 그의 탄탄한 허벅지를 붙잡고 골반을 살살 돌렸다. 춤을 추듯 움직이는 하체가 가히 색스러웠다.

그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요리조리 흔들리는 엉덩이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자극이 너무나도 컸다. 큼지막한 손바닥이 또 흐벅진 엉덩이를 세게 후려쳤다.

“하으응.”

하얀 엉덩이 위에 볼썽사나운 손자국이 남는다. 은서는 가냘프게 흐느끼면서도 요분질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하게 골반을 움직였다. 이제 그녀는 위에서 아래로 팟팟, 방아를 내리찍었다.

“아흣, 어때요? 좋아요?”

은서는 고개를 돌려 그를 빤히 바라보며 새빨개진 얼굴로 물었다.

“글쎄. 테크닉이 영 형편없는데. 어떻게 넌 해도 해도 안 느냐.”

“하아앗.”

“유은서 너처럼 못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냉정한 대답에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고개를 홱 돌려 버린다. 골이 난 모습이 제법 귀엽다.

그는 입매를 만족스럽게 끌어 올리고 일어나 앉아 은서를 옭아매듯 꼭 겹쳐 안았다.

“근데, 맛있어.”

그는 양손으로 젖가슴을 조몰락거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윽고 그가 허리를 리드미컬하게 쳐올리자 페니스가 자궁 입구를 둔탁하게 두드렸다.

“유은서 보지, 너무 맛있다고.”

“하아앙…….”

“매일매일 잡아먹어야 하는데, 후……. 너무 오랫동안 못 먹었어. 그동안 못 먹은 거 빠짐없이 다 벌충할 줄 알아.”

등 뒤로 긴박하게 날뛰고 있는 그의 심장박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격렬한 파동에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귓가로 닿는 말은 더없이 저급했다. 그 이질적인 감각에 은서의 몸은 더욱 뜨거워졌다.

“아침에도 먹고, 점심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고, 네가 잘 때도 먹을 거야.”

“변태……. 누가 대줄 줄 알고. 흣…….”

더러운 말솜씨에 전염이라도 된 건지 은서 역시 되바라지게 받아쳤다. 하지만 페니스로 자꾸 들쑤시는 통에 간드러진 신음이 쏟아져 나와서 그리 당당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피식 웃는다.

“유은서, 기억상실증인가? 제발 잡아먹어 달라고 징징거리면서 운 게 누군데. 지금도 보지 벌리고 잘만 대주면서.”

“이제는 안 할 거야. 아흣, 테크닉 형편없다며……. 나 못한다며.”

왜 앙탈을 부리나 했더니 아까 전에 놀려 먹은 걸로 삐진 모양이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그는 지그시 미소를 짓고 통통한 귓불을 빨았다. 동시에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짓궂게 튕기면서 피스톤 운동의 가속을 높였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안 대주면 강제로 하면 되니까. 유은서 넌 나한테 강간당하는 것도 좋아하잖아.”

“미친놈……. 아앙.”

“날 미치게 만든 건 너야.”

퍽, 퍽, 제멋대로 박아 대는 광포한 추삽질에 몸이 속절없이 흔들린다. 은서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을 꼭 겹쳐 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아으읏.”

희열이 육체를 꿰뚫는다. 은서의 눈가에 눈물이 대롱대롱 맺히더니 힘없이 툭 떨어졌다. 그는 그녀의 턱을 붙잡아 고개를 돌리게 해서 뺨에 번진 눈물을 혀로 핥아먹었다.

하지만 쉴 틈 없이 몰아쳐 오는 격한 피스톤질 때문에 눈물은 또 그녀의 얼굴을 촉촉하게 적셨다.

“하응…….”

그는 맹렬하게 쑤셔 박으면서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지분거렸다. 내벽과 음핵을 동시에 괴롭히자 자극은 배가 되었다. 은서는 경련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앗. 이러면 너무 힘든데…….”

“좋아하잖아. 깊게 박아 주고 강하게 자극을 주면 줄수록, 너란 여자는 좋아서 새끼고양이처럼 가르랑거리며 울잖아.”

“흐응.”

“지금도 잔뜩 발정이 나서 밑에도 위도 온통 울고 있는걸.”

“하읏.”

그가 말한 대로였다. 폭풍우처럼 온몸을 무시무시하게 뒤덮쳐 오는 열락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자그마한 밑구멍은 애액을 흥건히 쏟아 내며 질질 울고 있었다.

“내가 박아 주는 게 그렇게 좋아?”

“별로……. 아읏.”

삐진 게 생각보다 오래가는군. 그가 쿡 웃는다.

“그래? 근데 내 자지를 왜 이렇게 꽉 물고 있지? 아예 뽑아 먹을 기세로 조여 대고 있는 주제에.”

“하으…….”

“그 입은 거짓말을 해도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고.”

“개자식……. 흣.”

“내가 개자식이래도 유은서 넌 나를 사랑하잖아, 그렇지?”

“흐응.”

그는 피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극단적인 속도와 강도로 쾅쾅 쑤셔 박았다. 단단한 페니스가 끝까지 밀고 들어와 내벽을 긁고 자궁을 자극할 때마다 은서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으읏.”

“은서야…….”

아드레날린은 한계치를 뛰어넘었다. 그는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은서를 꽉 껴안고 야만적으로 몰아쳤다. 거칠지만 동시에 뛰어난 기교로 포인트를 정확하게 찔러 댄다.

“흐으응.”

“하아.”

함께 절정을 맛본 순간, 그는 그녀의 안에 정액을 가득 쏟아부었다. 서서히 움직임이 잦아들고 침실 안에는 가파른 숨소리만이 야릇하게 뒤엉켜 들었다.

호흡을 고른 그가 은서의 턱을 움켜쥐고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아직도 그에게는 뜨거운 욕망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입술과 혀를 잡아먹는다.

* * *

섹스가 끝나고 나면 대단히 민망해진다. 오늘은 특히나 민망함의 정도가 극도로 심했다.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은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허튼소리를 잘도 지껄여 댔다. 흥분에 취하면 뻔뻔한 말들을 곧잘 늘어놓기는 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했다.

‘차강혁에게 모든 걸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다니…….’

되도 않는 응석에 기꺼이 전부 주겠다고 대답한 그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사랑이 유해한 만큼 섹스 역시 유해한 것이었다. 멀쩡한 정신을 뿌옇게 흐려 놓고, 맨정신이었으면 결코 하지 못할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게 만들지 않는가.

신기루 같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은서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잇새로 약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읏.”

나른하게 휘늘어진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입맞춤을 해 주던 그가 갑자기 젖꼭지를 앙 물었다. 은서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제 또 새로운 게임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예상대로 그는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여린 살결 위에서 그가 노련하게 손을 놀리자, 전신으로 서서히 쾌감이 번져 나가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단숨에 텅 비어 버렸다.

은서는 사념들을 모조리 다 내팽개치고 그가 주는 자극에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그와의 섹스는 유해했지만, 해로운 만큼 짜릿하고 황홀해서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

* * *

은빛의 햇살이 환하게 비춰 들어오던 넓은 창에서는 이제 캄캄한 어둠이 쏟아지고 있었다.

강렬했던 대낮의 햇살이 지고 광막한 밤이 몰려와 노오란 보름달이 휘영청 뜰 때까지, 차강혁은 끊임없이 은서의 몸을 탐했다.

그 짓을 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은서는 중간에 까무러지듯 기절도 해서 짧은 순간 기억을 잃기도 했다.

“짐승도 이렇게는 못해…….”

은서는 침대에 홀로 뻗어 누워서 천장을 공허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젠 그를 짐승이나 색마라고 부르는 것도 어쩌면 부족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멍하게 누워 있는데 침실 문이 벌컥 열리고 차강혁이 들어왔다. 샤워 가운만 달랑 걸치고 있는 그는 청량한 향기를 솔솔 풍기고 있었다.

얼굴은 어쩐지 상쾌해 보인다. 고된 섹스로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은서와 달리, 그는 원기를 제대로 충전한 것처럼 보였다.

“유은서, 일어나서 샤워해.”

“좀 있다가요.”

“늑장 부리지 말고 빨리 씻으라고. 저녁밥 먹어야지.”

“지금 몇 신데요?”

창문 너머의 하늘을 보면 밤이 꽤 깊은 것으로 보이는데.

“11시 30분.”

“네? 그럼 저녁밥이 아니고 완전 야식이잖아요.”

“어쨌든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자.”

“그냥 잘래요.”

배가 고프긴 했지만 크게 먹고 싶은 욕구는 없었다. 그저 태평하게 너부러져서 잠이나 자고 싶을 뿐. 게다가 시간도 늦었고.

은서는 이불을 끌어와 얼굴까지 뒤집어썼다. 하지만 이내 이불이 걷어지고 검은 눈동자가 직선으로 꽂혀 들었다.

위력적인 눈빛에 어깨가 움찔 떨리는 순간, 그가 굳센 팔로 은서를 번쩍 안아 올렸다.

“아앗!”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붕 뜨자 저절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은서는 내려 달라고 앙탈을 피우거나 발버둥을 치지는 않았다. 숱한 학습의 효과로 그런 저항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배웠기 때문에.

그는 은서를 거뜬히 안아 올린 채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욕실의 샤워부스에 내려놓았다.

진득한 시선이 하얀 몸을 훑는다. 뒤늦게 알몸 상태라는 것을 인지한 은서가 황급히 다리를 모으고 손으로 가슴과 아래를 가렸다.

“변태같이 어딜 봐요?”

“내 거, 내가 보는데 문제 있나?”

“뻔뻔하긴. 어서 나가기나 해요.”

“씻겨 줄까?”

“네?”

예상 밖의 말에 은서가 꺼벙한 표정을 지었다.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려고.”

여자 몸을 본인 손으로 씻겨 줄 만큼 차강혁이 다정한 남자는 절대 아닌데. 혹시, 샤워를 시켜 주겠다는 명목으로 음란한 장난이라도 치려고 이러는 건가?

“됐으니까 나가 줄래요?”

흑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은서는 까칠하게 대꾸했다.

“알았어. 그럼 빨리 샤워하고 나오라고.”

그는 은서의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고 발걸음을 돌렸다. 깔끔하게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은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거 보면, 따로 흑심은 없었나?

하지만 차강혁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여자 몸을 씻겨 주는 귀찮은 일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데…….

은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생각한다는 것도 결국 피로를 부추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 수전을 틀었다. 샤워기에서 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 * *

은서는 샤워를 마치고 다이닝 룸으로 갔다. 차강혁은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밥상 앞에서 노트북으로 도면을 살펴보고 있었다.

‘저 일중독자…….’

은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그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제야 그는 노트북을 덮었다.

그녀는 식탁 위를 빙 둘러보았다. 갖가지 맛깔스러운 반찬들로 화려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군침이 꿀꺽 넘어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몸도 녹진하게 풀렸고 정신도 환기가 되어서 그런지, 식욕이 왕성하게 돌기 시작했다.

은서는 냉큼 수저를 들고 소고깃국을 떠서 호호 불고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시원하네.”

국물 맛을 보자마자 은서는 눈꼬리를 곱게 접고 감탄했다. 누가 보면 술을 마시고 해장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차강혁도 젓가락을 들었다. 바닥난 체력을 음식으로 채울 기세처럼 전투적으로 먹는 은서와 달리, 그는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그는 천천히 밥을 먹으며 그녀를 관찰했다. 다람쥐처럼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복스럽게 잘도 먹는다.

그런데, 오물오물 잘 먹으면서도 한사코 젓가락이 향하지 않는 반찬이 있었다.

“콩은 왜 안 먹지?”

“맛없잖아요.”

“편식을 해서 키가 안 자랐나 보군.”

건조한 목소리가 나무라듯 말하자 은서는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161cm의 키가 딱히 작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차강혁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저보다 키가 30cm나 큰 남자 옆에 있으니, 제가 무슨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하찮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옛 연인, 민승아는 키가 178cm나 되는 늘씬한 여자였다. 민승아의 말에 의하면 그의 이상형은 키가 큰 여자였고.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은서는 아담한 체형을 자연히 단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키가 작아서 미안하게 됐네요. 내가 작아서 싫죠? 그럼 결혼하지 말지 그랬어요. 나는 이 결혼 안 한다고 똑똑히 말했어요. 근데 내 말을 무시하고 이 결혼을 억지로 밀어붙인 건, 다름 아닌 차강혁 씨라구요.”

콤플렉스 때문에 공연히 반응이 뾰족하게 나갔다.

“밥 잘 먹다가 왜 또 심술을 부려?”

“심술이 아니고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강혁 씨는 키 큰 여자 좋아하잖아요.”

그의 눈썹이 기묘하게 꿈틀거렸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나도 차강혁 씨, 너무 커서 별로 맘에 안 들어요. 올려다볼 때마다 목이 꺾일 것 같단 말이에요. 원래 내 이상형은 키가 180 정도 되는 남자예요. 적당히 큰 남자가 보기도 좋고 편하기도 하죠.”

“쓸데없는 말 집어치우고 밥이나 먹어라.”

그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은서는 콧방귀를 흥, 뀌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온 은서는 침대에 헤딩하듯 철푸덕 드러누웠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금 뒤에 침실로 따라 들어온 차강혁이 대뜸 그녀의 팔목을 잡아끌어 강제로 몸을 일으켜 앉혔다.

“아, 왜요.”

은서는 오만 짜증을 다 부렸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웬 쇼핑백들을 침대 위에 툭 던졌다. 그것도 무려 다섯 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쇼핑백에 은서는 짜증도 잊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게 다 뭐예요?”

“열어 봐.”

그는 단조롭게 대답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은서는 얼떨떨한 얼굴로 쇼핑백 하나를 집어서 안에 들어 있는 상자를 꺼냈다.

익숙한 로고에 리본에 곱게 매어져 있는 상자는 겉으로 봤을 때는 무언가 좋은 물건이 들어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은서는 들뜨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했다.

낮에도 선물인 줄 알고 잔뜩 기대했다가, 생뚱맞게 튀어나온 고양이 오뎅 꼬치에 얼마나 실망을 했던가. 이번에도 그는 신박한 물건들로 저를 능글맞게 놀릴 것이 뻔했다. 그러고도 남을 남자다.

은서는 별다른 기대감 없이, 오히려 약간의 경계심을 품은 채로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멀쩡한 물건이 나왔다.

“드레스네요.”

별 희한한 물건으로 사람 속을 또 다 뒤집어 놓을 줄 알았는데, 정작 멀쩡한 물건이 나오니까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생각도 못 했는데…….”

은서는 어리벙벙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 빠른 손길로 다른 쇼핑백들도 죄다 열어서 물건을 꺼내 보았다.

모두 하이패션 브랜드의 드레스들이었다. 미니 드레스, 맥시 드레스, 선 드레스, 랩 드레스, 시스 드레스. 각기 다른 스타일의 드레스들이었지만 하나같이 세련되고 우아했다.

은서의 만면으로 해사한 미소가 번졌다.

“최 실장님이 챙겨 주셨어요?”

“그럼 내가 한가하게 여자 옷이나 고르겠어?”

그의 충직하고 유능한 비서가 챙겨 준 형식적인 선물이라 해도, 어찌 됐든 무뚝뚝한 남편으로부터 출장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은서는 황송했다.

하지만 이런 시큰둥한 대답을 바란 것은 또 아니었다. 그냥 그렇다고만 해도 충분할 것을, 꼭 재수 없게 말을 비틀어 해서 사람 기분을 잡치게 만든다.

“최 실장님이랑 결혼할 걸 그랬어요. 여자 맘도 잘 헤아리고, 센스도 뛰어나고, 취향도 훌륭하고.”

은서는 얼굴에서 미소를 깨끗하게 지워 내고 까끌까끌하게 응수했다.

“최 실장, 키 180이야.”

“역시 최 실장님이랑 결혼했어야 했어! 누구처럼 크기만 한 남자 말고!”

두 주먹까지 불끈 쥐면서 은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때, 갑자기 그가 은서의 턱을 틀어잡고 시선을 짙게 맞대더니 한쪽 입매를 유하게 끌어 올렸다.

“최 실장, 능력 있고 성실해. 지금껏 내 밑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남자지. 바닷물을 콜라로 만들어 오라고 시켜도 능히 해낼 사람이야.”

나지막한 음성이 최 실장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굳이 이렇게 자세히 말을 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은서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난 최 실장을 내 오른팔로 여기고 있어.”

“…….”

“내 손으로 직접, 내 오른팔을 자르고 싶지는 않은데.”

흑요석처럼 까만 눈동자 위로 야릇한 광채가 번뜩였다. 지독하게도 날카롭고 지독하게도 위력적인 눈빛이었다.

공기마저 무겁게 짓누르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은서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흐트러졌다.

“……농담이었어요.”

“나도 농담이었는데.”

거짓말.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누가 농담을 한다고.

“아무튼…… 최 실장님께 선물 잘 받았다고 전해 주세요. 난 옷이 잘 맞는지 입으러 가 봐야겠…… 앗, 뭐 하는 거예요?”

돌연, 그가 쇼핑백들을 모조리 바닥으로 밀어내 버리고 은서의 어깨를 짓눌러 넘어뜨렸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출렁거리고 연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무방비하게 쓰러진 몸 위로 느긋하게 올라타 앉았다.

“왜…… 이래요?”

“디저트를 먹으려고.”

“네?”

음험한 미소를 지은 그는 원피스 자락을 잡아 가슴 위쪽까지 끌어 올렸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탓에 하얀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놀란 은서가 소리를 꺅 질렀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폭신폭신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혀를 날름거렸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젖무덤을 혀로 핥고 이를 세워 자국을 남긴다. 이윽고 연한 분홍빛의 유륜을 맛보고, 도도하게 서 있는 깜찍한 젖꼭지를 입에 담아 쪼옥 빨았다.

“하아.”

능숙하게 성감을 자극하는 혀 놀림에 은서는 발끝을 오므리고 두 손으로 그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엮어 넣으며 열띤 신음을 흘리고 그의 헤어를 엉망으로 헤집어 놓았다.

가슴을 실컷 빨던 그는 이제 혀를 미끄러지듯 굴려 배를 타고 내려와 팬티 위에서 쪽쪽거렸다.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뜨거운 숨결이 닿고 몰캉한 혀가 닿았다.

그는 천 위에서 실컷 애무를 하다가 팬티를 한쪽으로 젖혀서 갈라진 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충분히 감상을 한 다음엔 질구에 입술을 묻고 쪼옥쪼옥 키스했다.

“아앙, 강혁 씨…….”

짜릿한 자극에 음부는 차츰 젖어 들어가 꿀을 질질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혀끝으로 달콤한 꿀을 질척하게 핥아 올리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난 키 큰 여자 별로 안 좋아해.”

“흐응.”

“난 맛있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유은서 너처럼.”

이 남자는 저를 한낱 디저트 취급이나 하면서 또 짓궂게 놀리고 있었다.

발끈한 은서가 그의 머리칼을 사정없이 쥐어뜯으려고 하는 순간, 그가 한쪽 눈을 곱게 접고 찡긋 윙크를 날렸다.

순식간에 은서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이건 반칙인데. 이렇게 상큼하고 섹시하게 윙크를 하는 건 너무 치사하잖아.

“하읏.”

“달콤하고 부드러워. 여태까지 먹은 디저트 중 최고로.”

그는 난잡한 행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계속해서 아래를 빨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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