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 *
하여간, 차강혁을 상대하는 건 결국 저만 손해 보는 일이었다. 이기지도 못하는데 바락바락 덤벼 봤자 무슨 소용인가.
말싸움에서 퇴각하기로 결정한 은서는 다시 샌드위치를 앙 크게 물었다. 입 근육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그런데, 그의 손이 불쑥 다가오더니 엄지로 은서의 입가를 쓰윽 훔쳤다.
“어린애처럼 소스를 잔뜩 묻히고 먹네.”
그는 엄지로 훔쳐 낸 소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혀로 핥아먹었다. 비위도 좋다. 하긴, 섹스할 때 애액도 맛있다고 빨아먹는 남자인데, 입가에 묻은 소스가 뭐라고 못 먹을까.
그는 턱을 괴고 은서에게 시선을 꽂아 넣었다. 숨 막힐 것처럼 짙고 깊은 눈매로 오직 은서만을 눈에 담는다.
“차강혁 씨, 나 그만 보고 다른 곳 봐요.”
“왜?”
“첫째로, 사람이 먹고 있을 때 쳐다보면 되게 부담스러워요. 체할 것 같다구요. 둘째로, 내 얼굴 닳아요.”
“그 귀여운 얼굴이 닳으면 곤란하지.”
뾰족한 말에도 그는 여유로운 미소로 화답하고 시선을 돌려 스튜디오를 둘러보았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이 스튜디오는 벽을 모두 허물어 막힌 곳 없이 탁 트여 있었다. 요활한 공간에는 그녀의 정성이 깃든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많은 작품들을 한눈에 아울러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걸음은 유화로 채색해 풍성한 질감이 느껴지는 초상화 앞에서 멈췄다.
그림 속의 남자는 그와 똑 닮아 있었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달랐다. 현실의 그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부드러워 보였다.
“아, 그 그림은…… 그냥 그린 거예요.”
차강혁이 미완의 초상화를 감상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은서가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어깨가 쪼그라들고 표정은 위축되었다. 허락도 받지 않고 그린 그림이라 그가 싫어할까 걱정됐다.
“잘 그렸군.”
그러나 간결한 대답을 그녀의 걱정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난 예술은 쥐뿔도 모르지만 이 그림이 훌륭하다는 건 알겠어.”
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봄처럼 밝고, 봄처럼 따스한 미소였다. 항상 차강혁을 겨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왜인지 그가 봄처럼 다가왔다.
순간, 심장이 주체할 수도 없을 만큼 가열차게 팔딱거렸다. 세차게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은서는 숨을 여러 번 골라야 했다.
떨림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은서는 남은 샌드위치를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빵을 열심히 씹어도 설렘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어서 무슨 맛인지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 * *
“다 먹었어요. 이제 작업할 거니까 그만 가요.”
샌드위치를 깔끔하게 해치운 은서는 테이블 위를 정리하며 말했다.
“끝날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내 차로 같이 가지. 괜히 늦은 시간에 정 기사 불러내지 말고.”
“네?”
귀가 의심스러웠다. 차강혁이 나를 기다린다고? 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환청을 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왜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하게 만들지? 기다리겠다고.”
당혹스럽다. 남편이 아내를 기다리는 건 지극히도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겠지만, 은서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일이었다.
우린 보통의 부부 관계가 아니기에.
“왜요?”
“잠이 오지 않아.”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으면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면 되지, 왜 여기서 시간을 죽이려는지 모르겠다.
“그냥 집에 가요. 여기선 강혁 씨가 딱히 할 일도 없다구요.”
“저기 책이 많군.”
그는 스튜디오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커다란 책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책 읽게요? 근데 저기 있는 책들은 전부 예술 관련 서적들이에요. 강혁 씨가 좋아할 만한 책은 없어요.”
“그래서 읽겠다는 거야. 저 책들을 보면 잠이 잘 올 것 같거든.”
은서는 인상을 대번에 어그러뜨렸다. 뭐야, 내가 모은 책들을 수면제 취급하고 있잖아.
“그래요, 그럼. 어디 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봐요. 아, 근데 나 아침이 올 때까지 계속 작업할 것 같아요.”
아까 통화할 때는 새벽 2시경에 작업이 끝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은서는 일부러 그의 신경을 긁기 위해 아침까지 작업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든지.”
하지만 의도와 달리 그의 신경 끄트머리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책장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그 무감한 태도에 오기가 돋은 은서는 진심으로 버텨 볼 의향이 생겼다. 과연 차강혁이 언제까지 기다릴지 궁금해졌다.
은서는 스튜디오 한쪽으로 걸어가 멈춰 있던 레코드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동그란 LP판이 돌아가면서 빌 에반스의 유려한 연주가 흘러나온다.
“이게 재즈인가?”
“네. 듣기 싫어도 들어요. 여긴 내 공간이니까.”
상냥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그의 취향과는 수천 광년의 거리를 두고 있을 거라고 멋대로 판단한 은서는 방어적으로 응답했다.
“듣기 싫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당신 독심술 능력이 형편없으니까 웬만하면 하지 마.”
단호한 목소리에 지레짐작했던 것이 무안해진다. 은서는 괜히 입술을 씰룩거리고 작업용 앞치마를 착용했다. 그리고 캔버스 앞에 서서 채색 작업에 들어갔다.
차강혁은 책을 고르고 테이블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예술과 철학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유익한 책이었지만 그의 흥미를 이끌 책은 아니었다.
활자를 눈으로 대충 따라 읽다 지루해진 그는 책에서 시선을 떼고 작업에 몰입하고 있는 은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대형 캔버스 앞에서 작은 체구가 요리조리 움직인다.
가로 162cm, 세로 97cm의 넓은 천 위에는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봄 햇살을 받은 파란 물결 위로는 하얀 빛 알갱이가 반짝거리면서 빛난다.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림보다 아내의 뒤태에 관심이 훨씬 더 많았다.
뒤태 중에서도 특히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단연코 엉덩이였다.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어서 통통하게 솟아오른 엉덩이가 고스란히 부각되어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또 꼴리게 만들지.’
그가 입맛을 다셨다. 저 앙증맞은 엉덩이를 두 손으로 꼭 붙들어 잡고 격렬하게 들이박고 싶다는 충동이 치솟아 오른다.
한창 작업에 매진하고 있던 은서는 뒤늦게 뒤태가 따끔거리는 걸 지각했다. 기분이 요상해져서 뒤를 돌아봤더니 그의 눈빛이 일직선으로 맹렬하게 꽂혀 들어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엉덩이가 예뻐서.”
강속구로 날아든 직구에 은서는 아연해졌다. 뻔뻔함을 인간으로 형상화한다면, 그게 바로 차강혁일 것이다.
“벼, 변태같이……. 남의 엉덩이는 왜 봐요?”
“그게 왜 남의 엉덩이야? 내 아내 엉덩이지. 당신, 내 거라고.”
또다시 훅 들어온 직구에 뺨이 발그레 익어 버렸다.
‘내 거’라는 말, 섹스할 때 얼핏 듣기는 했어도 맨정신으로 듣는 건 처음이다. 단순한 단어에 가슴이 느닷없이 두근거렸다.
“난…… 누구의 여자도 아니에요. 난 그냥 나예요. 그러니까 내 엉덩이 보지 말아요.”
“건방진 소리 하지 마. 유은서 넌 내 거야. 네가 뻗댄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 없으니까 쓸데없이 애쓰지 말라고.”
오만하고 고압적인 말인데 기이하게도 기분이 고양되었다. 은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다시 작업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엉덩이로 노골적으로 꽂혀 드는 시선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더 이상은 말을 보태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새벽 2시가 넘어가자 체력은 한계에 부딪혔다. 하품이 자꾸 쏟아진다. 시야가 뿌예지고 눈꺼풀이 무겁고 삭신은 쑤신다.
은서는 화구를 내려놓고 손목을 탈탈 털었다. 이어서 주먹으로 어깨를 툭툭 치고, 허리를 뒤로 젖히고, 목을 천천히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때였다. 귀에 익은 발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졌다. 이내 큼지막한 손이 은서의 어깨를 힘 있게 주물러 주었다.
“아아…….”
강한 악력이 뭉쳐져 있던 근육들을 자극해 오자 은서는 탄성을 터뜨렸다. 약간 아프긴 한데 그만큼 시원했다.
“어깨가 엄청 딱딱한데.”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생각보다 중노동이구나 싶었다. 직업이 화가라고 해서 부잣집 공주님이 취미 삼아 하는 정도로 속단했는데,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그녀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솔직히 놀랐다.
“돌덩이 같아.”
“지금 승모근 심하다고 욕하는 거죠? 돌덩이 같아서 미안하네요.”
“꽈배기처럼 꼬아서 듣는 것도 재주지. 아니면, 엉덩이 맞으면서 혼나고 싶어서 일부러 틱틱거리는 건가.”
“네?”
음습한 말에 당황한 은서가 몸을 날쌔게 돌려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엉덩이로 계속 나를 꼬셨던 거구나.”
“아니거든요? 내가 뭘 언제 꼬셨다고 그래요?”
“엉덩이 살랑살랑 흔들던 그 정성을 내가 몰라주고. 미안해서 어쩌지? 사과의 의미로 최선을 다해서 박아 줄게. 바지 벗고 엎드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정말 이 남자에게는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난잡한 말들이 날아오니까.
“아니라니까요! 난 차강혁 씨한테 아무런 짓도 안 했다구요!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여긴 내 신성한 스튜디오란 말이에요!”
은서는 두 팔로 몸을 보호하듯 가리고 뒷걸음질 치면서 고함을 빽 질렀다.
불규칙한 숨을 쌕쌕 토해 내고 눈에 서릿발을 세워서 노려보니까, 그가 입매를 끌어 올리며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안 해.”
“……네?”
“그냥 농담한 거야.”
그는 담백하게 말했지만 은서는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았다.
“차강혁 씨가 그런 말을 하면 농담 같지가 않아요. 평소에 오죽했어야죠.”
“집에나 가지.”
“집이요?”
“그래. 집에 가자고. 아침이 오려면 아직도 시간이 남았지만 당신 몸이 지쳤잖아. 무리하지 말고, 푹 자고 나서 맑은 정신으로 하는 게 나을 거야.”
불과 몇 초까지 전만 해도 능글맞게 굴더니 금세 말투가 진지하게 바뀐다. 은서는 뜸을 들이다가 몸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도 목표량보다 많이 진행되었고 그는 예상보다 오래 기다렸으니, 여기서 더 버티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 * *
조수석에 올라탄 은서는 3분도 안 돼서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고, 페라리가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깨지 않았다.
차강혁은 곤히 잠든 은서를 안아 들고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2층 침실로 들어가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남의 손에 옮겨오는 동안에도 은서는 새록새록 잠만 잘 잤다. 잠에 깊게 취하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여자였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꿈나라에 빠져든 은서를 곧게 바라보았다. 단지 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아랫도리는 야만적으로 꿈틀거렸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여자였다.
섹시한 스타일은 결코 아닌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욕구를 들끓게 만든다. 한 번 자고 나면 호기심도 사라지고 몸도 식어 버릴 줄 알았건만, 자면 잘수록 갈증이 생기고 자꾸만 안아 보고 싶어진다.
그는 손을 뻗어 하얀 얼굴을 쓰다듬었다. 평온하게 잠든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해끔하고 순수해 보여서 오히려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너무나도 깨끗해서 더럽히고 싶은 마음, 그녀는 알까…….’
그는 의식을 놓은 먹잇감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훔친다.
달콤하다. 하긴, 유은서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부 달콤한 여자였다. 신체 어느 부위를 베어 물어도 환상적인 단맛이 혀끝으로 녹아든다.
그는 맛있는 입술을 질척하게 빨면서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잘록한 허리를 쓰다듬다가 가슴을 조물거린다.
문득, 신혼여행 때가 오버랩되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정신없이 잠든 그녀를 안아서 침대로 옮겼고, 도둑 키스를 하며 온몸을 어루만졌었지.
그때는 용케도 키스와 페팅 단계에서 멈췄지만 오늘은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아니, 멈추는 게 불가능했다.
맛을 알고 나니 절제심이 와르르 무너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까.
유은서가 이토록 맛있는 줄 모르고 그저 혼자서 상상만 하던 시절에는 그래도 자제력이라는 게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이렇게 맛있는데 대체 어떻게 참으란 말인가. 몇 날 며칠을 굶주린 개에게 고기를 툭 던져 주고 먹지 말라고 하면, 과연 어느 개가 참겠는가.
그는 상의와 브래지어를 끌어 올려 가슴을 꺼냈다. 아름다운 능선을 그리고 있는 봉긋한 젖무덤 위에 조그맣게 솟은 젖꼭지가 꽤 귀엽다.
그는 양손으로 가슴을 주무르며 얼굴을 푹 묻었다.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하다. 손으로 젖가슴을 만지고 얼굴로 부비적거릴 때마다 느낌이 너무 좋다. 부드럽고 푹신해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느낌이다.
이어서 그는 혀를 세워 하얀 살결을 쓸고 연분홍빛 유륜을 훑었다. 앙증맞은 젖꼭지를 입에 담자 기다렸다는 듯이 돌기가 우뚝 선다. 자는 도중에도 예민한 몸은 곧잘 느끼는 모양이었다.
“유은서, 넌 잘 때도 야하구나.”
그는 청바지 버클을 풀어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서 미끌미끌한 물기가 묻어났다.
“의식도 없는 주제에 젖기까지 했어.”
“으음…….”
그는 젖꼭지를 쪼옥 쪼옥 빨면서 손가락으로는 클리토리스를 지분거렸다. 갈라진 틈에서 애액이 찔끔찔끔 새어 나오지만, 은서는 잠투정을 부리듯 옅은 소리만 흘릴 뿐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젖꼭지를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던 그는 혀를 미끄러뜨려 배를 타고 내려왔다. 입술에 힘을 줘서 깜찍한 배꼽을 빨아올리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려 청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겨 내렸다.
다리를 활짝 벌려 가랑이에 시선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농염하게 익어 당즙에 젖어 있는 음부가 입을 벌름거리며 교태스럽게 유혹했다.
그는 요망한 음부에 혀를 가져가 츄르릅 빨았다.
“아…….”
은서가 잠결에 다리를 움찔거렸다. 그러나 눈을 뜨지는 않았다. 허기진 개에게 게걸스럽게 잡아먹히는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느즈러져 있는 모습이 무방비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니까 불안하지. 대책 없이 당하기만 하는 타입이라, 주변에 좆 달린 새끼들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초조해진다.
윤종하도, 신우현도. 자신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미 그 새끼들 손을 탔을지도 모른다.
하이에나 같은 새끼들한테 이 연약한 여자를 빼앗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순식간에 격노에 휩싸이며 위험한 욕구가 무섭게 솟구쳐 오른다.
유은서에게 목줄을 채워 놓고 싶다는 그런 변태적인 욕구 말이다.
길쭉하고 예쁘게 뻗은 목에다 단단한 가죽 목줄을 채워서 온종일 내 옆에만 두고, 오직 나만이 그녀를 보면서 귀여워해 주는 것이다.
“미쳤지…….”
그는 음부에서 입술을 떼고 씁쓸히 중얼거렸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일말의 자괴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자괴감도 잠시, 검지와 중지로 질구를 넓게 벌려 보자 좁은 구멍 안에 갇혀 있던 애액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침대 시트가 흥건하게 젖는다.
그 외설적인 광경에 씁쓸한 자괴감은 금방 증발되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면서도 엉엉 울고 있어. 요물 같은 게.”
찰락거리는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바지 버클이 풀리고 거대한 물건이 형체를 드러냈다.
성실하게 전희를 하는 동안 그의 페니스는 일찌감치 딱딱하게 발기되어 삽입할 준비를 진작 마쳤다.
원래는 이러지 않았다. 유은서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좆이 빨딱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점잖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에 여자들과 자주 데이트를 하지 않았던 건, 그만큼 오랫동안 섹스를 하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은서가 그의 인생에 들어오고 나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제 막 색에 눈을 뜬 혈기왕성한 소년처럼 걸핏하면 좆을 껄떡거리고 휘두르게 된 것이다.
언제나 본능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그로서는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져다주는 쾌감이 미치도록 강렬해서, 그는 기꺼이 유혹당하기로 결심했다.
널 먹어 치우기 위해서라면 개가 되는 것쯤은 마다하지 않겠다고.
“유은서, 네가 날 천지 분간도 못 하는 병신 새끼로 만들었으니까 전부 책임져야지. 안 그래?”
나지막하게 읊조린 그는 욕망으로 한껏 달아오른 페니스를 좁은 구멍 속에 밀어 넣었다. 그때, 은서가 부스스 눈을 떴다.
“아으…… 뭐, 뭐야.”
아랫배를 꽉 채우는 이물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야는 온통 차강혁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음욕에 젖은 눈길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깼어?”
처음에는 이게 꿈인가 싶었다. 막 눈을 떴을 때는 비몽사몽해서 내가 또 야한 꿈을 꾸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허리를 사정없이 쳐올리자, 이건 꿈이 아니라 명백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격한 피스톤질에 은서의 몸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흐응…… 뭐예요, 사람 자는데 이런 짓을…….”
“그냥 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아.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자라는 거야. 개자식…….”
“또 그 소리군.”
“개자식을 개자식이라고 하지…… 흣, 그럼 뭐라고 해.”
“잠이나 자라니까 끝까지 앙탈 부리지.”
“나쁜 놈, 하읏.”
은서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그를 앙칼지게 노려보았다. 이내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팡팡 때렸다.
그의 욕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자고 있는데 섹스를 하다니. 안 그래도 요즘 개인전 준비 때문에 몸이 고된데…… 힘든 것도 몰라주고.
아무리 나를 성욕 해소 도구로밖에 안 본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했다. 진심으로 개 같은 남자였다.
“하으응.”
하지만 생각은 연기처럼 흐트러져 사라지고 몸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의 페니스가 질 속을 퍽퍽 꿰뚫고 들어와 내벽을 긁고 자궁에 닿을 때마다 짜릿한 희열이 전신을 선명하게 관통했다.
눈은 초점이 흐려지며 핏발이 사라졌고, 팡팡 날려 대던 솜 주먹은 힘이 풀려 스르륵 시트 위로 떨어졌다.
“하아앗.”
은서는 그에게 격렬하게 박히면서 흐느껴 울었다.
이런 식으로 당하는 게 서러워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쾌락에 몸이 정복당해서 우는 것인지, 눈물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 * *
금요일 오후 5시, 갤러리에서는 유은서 화가의 개인전 오프닝 파티가 열렸다.
‘봄’을 주제로 한 전시회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화사했다. 물론 봄비를 그린 작품처럼 쓸쓸하고 아련한 감정을 자아내는 작품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희망찬 느낌이었다.
오프닝 파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은서는 격식을 갖춘 포멀한 드레스를 입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오늘 은서는 청순하면서도 요염해 보였다.
봄을 연상케 하는 화사한 벚꽃빛 색감에, 상체는 타이트하게 붙고 치맛자락은 발끝까지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피트 앤 플레어 라인의 드레스는 오직 그녀를 위해 특별 제작된 옷이었다.
넓게 파여 반듯한 쇄골이 드러나는 네크라인과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상의는 요염함을 돋보이게 하고, 나팔꽃을 엎어 놓은 것처럼 하늘하늘하게 펼쳐지는 치마 라인은 청순함을 부각시켰다.
“은서야.”
“은서 누나!”
시간 맞춰 지현과 우현도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은서는 밝게 인사했다.
“바쁠 텐데 시간 내서 와 줘서 고마워.”
“고맙긴, 오는 게 당연하지. 근데, 은서야. 오늘 너 정말 예쁘다.”
“그래? 지현이 너도 엄청 예뻐.”
은서는 쑥스러운 듯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친구의 칭찬에 칭찬으로 화답했다.
“누나, 나는? 난 어때? 나 오늘 좀 멋있지 않아?”
우현이 은서에게 가까이 다가와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대놓고 칭찬을 요구하는 태도에 은서는 미소를 지었다.
“너도 멋있어.”
은서는 나란히 서 있는 남매를 빤히 살펴보았다.
주로 캐주얼한 스타일로 입고 다니던 우현이 번듯하게 슈트를 차려입으니 색달라 보였고, 평소 오피스 룩으로 입고 다니던 지현이 개나리색의 상큼한 드레스를 입으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둘 다 너무 예쁘고 멋있어. 이렇게 근사하게 차려입고 같이 서 있으니까, 남매가 아니라 연인처럼 보여.”
“뭐? 우웩!”
“뭐시라? 윽!”
핀트를 잘못 잡아도 한참이나 잘못 잡은 칭찬에 남매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살면서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었다는 듯, 두 사람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버렸다.
“방금 발언, 안 들은 귀 산다.”
“누나, 역사에 획을 그을 망언이었어.”
“나는 그냥 둘 다 멋져 보여서 칭찬한다는 게…….”
“은서야, 그런 칭찬은 넣어 두는 게 좋아.”
지현이 양손으로 은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엄격하게 말했다. 우현은 지현의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미안…….”
“근데, 네 남편은 어디 있어?”
지현이 전시회장을 휙 둘러보며 물었다. ‘남편’이라는 단어에 우현의 눈빛은 차가운 온도로 식어 내렸다.
“아, 그 사람은 바빠서…….”
그는 제가 개인전을 연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그 전시회가 오늘, 이 시간에,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당연하다. 말하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일에 치여 바쁘게 사는 남자이기에 은서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시간 되면 오세요.’라고 말을 전하려다가도 괜히 부담을 줄까 봐, 혹은 ‘내가 그런 시시한 전시회를 왜 보러 가야 하지?’라는 식의 차가운 답이 돌아올까 봐, 은서는 하고 싶은 말을 입속으로 꾸욱 눌러 삼켰다.
은서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 사람은 오늘 오프닝 파티에 오지 못한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때 갑자기, 전시회장이 술렁거렸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감탄하고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와, 여전히 미남이시네.”
지현 역시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영문을 모르는 은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현의 눈길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시선의 끝에는 놀랍게도…… 차강혁이 있었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은서 앞에 섰다. 기품 있고 클래식한 스타일의 쓰리피스 슈트를 입은 그는 은서가 선물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헤어는 포마드 왁스로 단정하게 넘겼고, 손목에는 가죽 시계, 드레스 셔츠 소매에는 금빛의 커프스버튼, 가슴 포켓에는 행커치프를 꽂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흐트러짐 하나 없는 외양도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상황도. 너무도 완벽했기에 현실이 현실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이건 마치 한낮의 백일몽 같았다.
‘어떻게 이 남자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더욱더 놀라운 점은 그가 손에 새빨간 튤립 꽃다발까지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차강혁과 꽃이라니. 이보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어디 있을까.
믿을 수 없는 장면에 은서는 눈을 여러 번 깜박거렸다. 눈을 새로이 뜰 때마다 차강혁은 사라지지 않고 시야를 가득 채워 왔다. 이건 명백한 현실이라고 일깨워 주듯이.
“축하한다.”
그는 튤립 꽃다발을 툭 내밀고 특유의 저음으로 말했다. 꿈에서도 감히, 이런 장면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차강혁이 내게 꽃을 주다니…….
“아, 고마워요.”
은서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혼이 나간 얼굴로 손을 덜덜 떨면서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안녕하세요. 결혼식 때 인사했었는데, 저 기억하세요? 은서 친구 신지현이에요.”
지현이 발랄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지현 씨. 차강혁입니다.”
“은서는 신랑이 바쁘다고 하던데. 바쁘신 와중에도 여기까지 오셨네요? 예쁜 꽃까지 들고. 외모만 멋있는 게 아니라 마음씨까지 멋있으세요, 호호.”
지현이 속사포처럼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에 반해, 우현은 무표정으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곧잘 나누는 외향적이고 유들유들한 성격인 우현이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지현은 차강혁의 수려한 외모에 감탄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동생의 비정상적인 침묵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어쩜 키도 그렇게 훤칠하게 커요? 저도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인데, 강혁 씨 보려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해요. 대체 키가 얼마예요?”
“191입니다.”
“와, 은서야. 넌 남편이랑 눈 마주치려면 목 빠지겠다.”
은서는 단번에 주눅이 들었다.
차강혁은 191cm, 유은서는 161cm였다. 무려 30cm 차이였고, 이 차이는 은서가 아무리 높은 힐에 올라타도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았다.
비주얼적으로 그와 잘 어울리는 여자는 저처럼 작고 아담한 여자가 아니라, 민승아처럼 시원시원하게 큰 여자였다.
그래서 민승아가 그런 말도 하지 않았던가. 그는 키가 큰 여자를 좋아한다고.
“응. 키 차이가 심해서 불편한 점이 많아.”
은서가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차강혁이 단호하게 반박했다.
“뭐가 불편한데? 누우면 상관없잖아.”
누우면 상관이 없다니. 왠지 야릇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말에 은서의 뺨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지현도 몇 초간 나사 빠진 표정을 짓더니 이내 까르르 웃어넘겼다.
“어머나, 역시 뜨거운 신혼부부답네요. 그럼요, 그럼요. 키 차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누워 버리면 그만인데!”
세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우현은 신경질적으로 샴페인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뜨거운 신혼부부는 무슨. 보나마나 은서 누나를 쥐 잡듯이 잡을 텐데. 꽃 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싸구려 연극에 불과할 테지.’
우현은 드러나지 않게 차강혁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동자가 커다랗게 팽창되고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의 목에는 날카로운 손톱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들이 정말 뜨거운 신혼부부가 맞다고 증명이라도 해 주듯이.
* * *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은서는 탄탄한 팔뚝을 잡아끌어 차강혁을 갤러리의 구석 자리로 데리고 갔다.
은서는 밀담을 나누듯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모르기가 더 어렵지 않나. 내가 유은서 남편인데.”
아, 그렇긴 하네. 스튜디오 주소를 알아내는 게 그에게 일도 아니었듯, 전시회 일정을 알아내는 것 또한 식은 죽 먹기였을 테지.
그런데 아는 건 아는 거고, 정말로 궁금한 건…….
“왜 온 거예요?”
워커홀릭 주제에 굳이 시간을 쪼개서 여기까지 온 저의가 뭘까? 더군다나 예술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남자 아니던가.
“내가 안 오면 더 이상하지 않겠어? 유은서 개인전에 남편인 내가 불참하면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길 텐데.”
공연히 떡밥을 던져 주기 싫다는 거군.
오늘 이 자리에 그가 없다면 호사가들은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바탕 떠들어 댈 것이 분명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나, 그걸 굳이 소문낼 필요는 없었다.
구태여 가십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은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작게 속삭였다.
“내가 튤립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새빨간 튤립의 꽃말이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의미라는 걸 이 남자는 전혀 모르고 있겠지? 만약 내가 꽃말을 알려 준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몰라. 최 실장이 챙겨 준 거야.”
무감한 대답에 은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꽃말까지 깊게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차강혁이 꽃을 살 위인이 아니지.
“네. 최 실장님께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은서는 서운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근데, 내 그림은 어디 있지?”
“강혁 씨 그림이요?”
“날 그렸잖아. 내 초상화 말이야.”
어안이 벙벙해졌다. 차강혁이 그 초상화를 찾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그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고, 이번 전시회 주제와도 맞지 않아요.”
“그렇군.”
차분한 설명에 그는 간단히 수긍했다. 하지만 그 짤막한 말에서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면, 그건 착각일까…….
* * *
차강혁은 이곳에서도 바빴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상대를 해 주는 것도 고역이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포커페이스답게 차강혁은 인상 하나 구기지 않았다. 웃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능숙하게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은서는 그의 옆자리를 지키다가 자연스레 빠져나왔다.
다들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어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 사업이 어떻고, 경기가 어떻고, 업계가 어떻고. 여긴 엄연히 예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인데, 왜 여기서까지 그런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은서는 샴페인을 홀짝거리며 입술을 불만스럽게 삐죽거렸다.
“누나.”
잠깐 혼자 있는 걸 귀신같이 찾아낸 우현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내 남편이라는 작자 옆에 붙어 있어서 좀처럼 다가갈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타이밍을 잡은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전부 다 아름답고 훌륭하더라. 누나, 수고했어.”
“고마워.”
상냥한 칭찬에 은서는 배시시 웃었다.
“누나, 우리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자.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휴대폰을 바꿨는데 사진이 완전 예술적으로 나와.”
우현이 바지 주머니에서 신상 휴대폰을 꺼내 보여 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누나, 저기서 찍자. 난 저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들어.”
우현이 손끝으로 봄비를 그린 그림을 가리키자, 은서는 다소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작품은 응답받지 못하는 짝사랑에 상처받은 마음을 담아낸 그림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차강혁의 빙벽 같은 심장에 제가 흘린 눈물을 봄비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밝고 화사한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그 작품만 홀로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다. 왜 하필이면 우현이 그 작품을 골랐는지 의아했다.
‘희망적인 작품을 선택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은서는 토 달지 않고 그림 앞에 섰다. 그러자 우현이 옆에 바짝 붙어서서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가까이 갖다 붙였다.
서로의 뺨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우현은 버튼을 눌렀다. 찰칵, 하는 셔터 소리가 울리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차강혁과 눈이 마주쳤다.
“누나, 사진 봐봐. 되게 잘 나왔어.”
우현이 어깨에 두른 팔을 풀고 휴대폰 액정을 들이대며 신나게 떠들었다.
하지만 은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영혼을 잃는 듯 멍한 모습으로 오직 차강혁만을 바라볼 뿐이다.
“누나? 왜 그렇게 넋을 놨어?”
차강혁 또한 은서만을 집착맞게 주시하고 있었다.
직선으로 메다 꽂히는 눈빛이 너무나도 싸늘했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밀려오는 한기에 오금이 다 저릴 정도였다.
호랑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 그 무시무시한 기세 때문에 한동안 시름시름 앓는다고 하던데, 꼭 그런 느낌이었다.
* * *
살벌한 시선 피하기 위해 은서는 파우더 룸으로 황급히 피신했다. 거울 앞에 서서 냉기 어린 눈빛을 떠올려 보았다.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본 걸까. 혹시, 우현이 때문에? 하지만 우현이에 대한 오해는 벌써 다 풀렸는데…….’
대체 뭐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런 눈빛을 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은서는 입술을 앙다물고 고민했다. 하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그냥 손이나 씻고 말았다.
은서가 젖은 손을 페이퍼 타월로 닦고 파우더 룸에서 나왔을 때였다. 별안간 손목이 붙들렸다.
차강혁이었다.
그는 강한 힘으로 은서의 손목을 부여잡고 다짜고짜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비상계단이었다.
그는 차가운 벽에 은서를 바짝 밀어붙이고 주먹으로 벽을 쾅 때렸다. 지극히도 억압적인 태도에 연갈색 눈동자가 거세게 동요했다.
“강혁 씨…….”
그는 은서를 완전히 포위시켜 놓은 채로 서슬이 시퍼렇게 오른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매섭게 번뜩이는 눈이 꼭 맹수의 안광 같아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은서가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려고도 했지만, 금세 턱이 붙잡히고 억지로 그 무서운 눈빛과 다시 마주 보게 되었다. 위력적인 기세에 입술마저 달달 떨렸다. 살결 위로는 소름이 돋았다.
“왜…… 이러는 거예요?”
“그걸 몰라서 묻나?”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른다?”
그는 기가 차다는 듯 비소를 터트렸다.
“잘못이 뭔지도 모르겠다니, 남자들한테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게 일상인가 보군.”
“……?”
“이래서 목줄을 채워 놨어야 했던 건데.”
“……네?”
난데없이 고막을 찌르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청초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목줄이라고?
그 순진한 반응에 차강혁은 미간을 짜증스럽게 찌푸리고 그녀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왜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어? 내가 당신 목에 목줄을 채우겠다니까 무서운가?”
“…….”
“유은서, 네 몸은 내 거잖아. 나한테 그 정도 자격은 있는 것 같은데.”
목덜미를 더듬는 손길은 차가웠다. 귓바퀴를 짓누르는 나지막한 목소리에서도 한기가 쌩쌩했다.
계절은 봄이었지만 지금 이곳은 기온이 빙점 이하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잔인한 냉기에 은서는 입을 벙긋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자유롭게 풀어 줬을 때 제대로 행동했어야지. 왜 날 자극해?”
그는 음산하게 으르렁거리며 길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유은서,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 넣어. 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내 거야. 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도 전부 다 내 거라고.”
“…….”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좆 달린 새끼가 너한테 손대는 건 용납 못 해.”
그는 이제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아까 우현이 팔을 올렸던 곳이다. 그다음엔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다. 아까 우현과 거의 닿을락 말락 했던 곳이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고작 우현이랑 사진 한 장 찍은 것 때문에……. 은서가 눈을 꾹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우현이는 친한 동생이에요. 잘 알면서…… 읍!”
목청을 쥐어 짜내어 해명을 시도하는 순간, 인정사정없이 입술을 물어뜯겼다. 그는 은서의 뒷머리를 잡아채고 두꺼운 팔뚝으로 허리를 감아 올리면서 거친 키스를 퍼부었다.
벌어진 입술 새로 혀가 들어와 그녀의 입안을 마음껏 휘젓는다. 장신의 체구가 바짝 밀착해 오자 아랫배로 발기한 페니스가 닿았다.
위험을 감지한 은서는 두 팔로 그를 힘껏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장벽처럼 단단한 몸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형편없는 변명을 듣는 것보단 차라리 입을 틀어막아 버리는 게 낫지.”
난폭하게 입술을 빼앗은 그는 가파른 숨이 가미된 목소리로 느른하게 읊조렸다.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앞으로 조심할 테니까, 제발…… 하읏.”
그가 무릎을 세워 은서의 중심부를 지분거리자 달뜬 신음이 반사적으로 흘러나왔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반응하는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었다.
“강혁 씨, 안 돼요. 그만둬요…….”
은서가 어깨를 비틀고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보지만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올가미처럼 옭아매듯이 은서를 꽉 껴안고 목덜미를 자근거렸다. 이내 혀를 세워 목선을 따라서 할짝거리며 내려가더니, 어깻죽지에서 또 이를 세워 물어 버린다.
“아흣. 그만.”
그는 하얀 살결을 야금야금 물어 대며 손으로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폭신폭신한 가슴을 조물거리고,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움켜쥐고, 아리따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등허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터치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팬티 속은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다. 은서는 억울해서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왜 이런 상황에서, 왜 이런 장소에서, 신체가 흥분하는 것인지 신이 존재한다면 고함을 고래고래 치며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탐스러운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적거리면서 마른 등을 어루만졌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견갑골을 손끝으로 원을 빙빙 그리며 만지고, 척추 선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어 본다. 그러다 불쑥 드레스 지퍼를 잡고 지이익, 끌어 내렸다.
순간, 은서는 절벽에라도 다다른 것처럼 절박하게 외쳤다.
“뭐든지 다 할게요!”
지퍼를 끌어 내리던 손길이 멈췄다.
“파티가 끝나고 나면 뭐든지 다 할게요. 강혁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구요.”
비굴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비굴해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이 중요한 자리에서까지 이럴 수가 있나 싶어 분통이 터져서 뺨을 힘껏 후려치고 싶지만, 성질대로 행동하기보다는 그를 달래는 것이 급선무였다.
여기서 그를 달래지 못한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 자명했다.
“벗으라면 벗고, 기라고 하면 기고,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제발…… 여기서는 참아 줘요.”
은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얼굴로 간곡하게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가련한 얼굴에 침이라도 뱉듯 조소를 내씹고, 그녀의 뺨을 찬찬히 쓰다듬어 내렸다.
“유은서, 네가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가 좋아.”
“…….”
“뜻대로 안 돼서 안절부절못하고 낑낑거릴 때, 미쳐 버릴 것 같아. 뭐 마려운 강아지 같아서 정말 귀엽거든.”
“…….”
“지금 네가 딱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
“참아 달라고?”
“강혁 씨…….”
“나도 참고 싶어. 그런데 이 자식이 못 참아.”
“…….”
“좆이 터질 것 같다고.”
그가 하반신을 강하게 밀어붙이자 두둑하게 솟아오른 앞섶이 더욱 노골적으로 배를 찔러 댔다. 이어서 그는 드레스 지퍼를 마저 끌어 내리려고 했다.
그때, 은서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돌발적인 행동에 흑막처럼 음습한 눈이 묘한 이채로 번뜩거렸다.
“왜? 빌기라도 하게?”
“아뇨. 협상할 건데요.”
“협상?”
은서는 그의 벨트와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리고 드로어즈를 살짝 끌어 내려 발기한 페니스를 꺼내 양손으로 쥐었다.
“입으로 할게요. 그러니까…… 그만 화내요.”
“너 하는 거 봐서.”
“…….”
“잘 빨면 입으로 넘어가 주고, 못 빨면 보지에도 박는 거고.”
“강혁 씨…….”
“자신 있으니까 해 주겠다고 나선 거 아닌가?”
“…….”
“내 분노를 씻겨 줄 만큼 대단한 실력인지, 어디 한번 실컷 빨아 보라고.”
그는 은서의 뒷덜미를 강하게 휘어잡고 자그마한 입속에 페니스를 막무가내로 쑤셔 넣었다. 입속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물건에 은서는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읍, 하는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하아.”
숨이 막혀서 페니스를 빼내고 일단 호흡부터 골랐다. 그런 다음, 고개를 들어 말간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신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자신 없어요.”
“…….”
“강혁 씨도 익히 알고 있듯이 내 실력은 형편없으니까요.”
“…….”
“하루아침에 잘하게 될 리가 없잖아요. 여전히 못할 거라구요.”
“…….”
“그래도 열심히 할 테니까…… 그만 화내요.”
협상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해놓고 결국에는 비는 꼴이 되었다. 하긴, 차강혁과 협상을 하겠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말이 통하는 남자가 아닌데 말이다.
“징징거리지 말고 빨기나 해.”
싸늘한 명령이 귓전을 후려친다. 은서는 한숨을 폭 내쉬고 두 손으로 기둥을 지분거렸다.
맞닿은 시선으로는 그가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은서는 새삼 깨달았다. 그는 나를 징글맞게도 싫어한다고. 그래서 걸핏하면 괴롭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 그는 내가 잘 젖고, 잘 느끼고, 잘 조여서 좋아한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이 대답 또한 결국 나를 상처 주기 위한 말에 불과했다.
내가 너무 싫어서, 날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싶고, 날 비참하게 만들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괜찮아. 미움받아도 상관없어. 그는 다른 여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 차강혁의 인생에서 이제 여자는 나 하나뿐이야. 그러니 마음이 다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은서는 다부지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혀로 귀두 끝을 간지럽혔다. 혀를 몇 번 날름거리지도 않았는데 선단에서 투명한 쿠퍼액이 맺혔다. 성급하게 액을 쏟아내는 페니스가 놀라웠다.
“차강혁 씨도 참 쉬운 남자네요. 벌써부터 이런 거나 맺히고.”
“유은서 너만 하겠어? 지금 팬티 속이 다 젖어서 흥건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
“질질 울면서 보지를 벌름거리고 있겠지.”
심통이 나서 놀려 주려고 했는데 되로 받아먹기만 했다. 힘으로든 말로든 차강혁을 이길 수는 없었다.
정곡을 찔린 은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혀끝으로 두꺼운 기둥을 길게 핥아 올렸다. 그러고는 성난 페니스를 입안에 넣어 앙 물어 버렸다.
작은 입으로 감당하기에는 워낙 큰 크기라 인상이 볼썽사납게 어그러졌다.
“못생겨진 것 봐.”
그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뺨을 검지 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비웃었다.
안 그래도 페니스가 커서 벅찬데 못생겼다는 소리까지 들으니까 서럽다. 은서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후, 너무 예쁘잖아.”
뜨거운 숨을 내쉰 그는 동그란 정수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은서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말은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못생겼대 놓고, 예쁘댄다.
수수께끼 같은 말에 머리가 띵한데도, 은서는 부단히 고갯짓을 해 대며 페니스를 입속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서투른 주제에 남자를 만족시켜 보겠다고 제법 열심이다.
“유은서, 네가 너무 귀여워서 보지에도 박고 싶은데.”
발그레 익은 볼을 살며시 쓸어내린 그가 야릇하게 속삭였다.
“우움, 그건 안 돼요…….”
은서는 페니스를 물고 있는 상태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결사적으로 내젓는 고갯짓과 양 눈썹을 아래로 실그러뜨린 표정, 그리고 눈가에 맺힌 투명한 눈물이 연민을 자아내는 동시에 그의 정욕을 증폭시켰다.
“씨발, 그럼 꼴리게 만들지를 마.”
그는 욕설을 험악하게 내뱉고 달뜬 숨을 몰아쉬었다. 여린 점막이 페니스를 따스하게 감싸고 조여 올 때마다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냉혹한 포커페이스는 어느샌가 붉게 달아올랐고, 지성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눈매도 잔뜩 풀어 헤쳐져 나른해졌다.
그는 열에 취한 얼굴을 하고서 페니스를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는 은서에게 시선을 반듯하게 고정시켰다.
순진한 눈망울이, 잔흔 하나 없는 우윳빛의 피부가, 조막만 한 얼굴에 올망졸망하게 들어찬 이목구비가, 너무나도 맑고 해끔했다.
그런데 이 깨끗한 외양을 하고서 제 좆을 열정적으로 빨고 있는 것이다. 청순한 외모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음탕한 행동이 수컷을 미치게 만들었다.
아랫입술을 굳게 깨문 그는 은서의 뒷머리를 양손으로 꽉 우그려잡으며 더욱 깊게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육체의 모든 감각이, 육체의 모든 세포가 유은서를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 * *
그 무렵, 우현은 빠른 걸음으로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은서가 통 보이질 않았다. 화장을 고쳐야겠다며 파우더 룸에 간다고 말을 하고 사라진 지가 벌써 한참 전이었다.
“누나, 은서 누나 어디에 있는지 알아?”
우현은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조잘조잘 떠들고 있던 지현의 팔뚝을 쓱 끌어내 물었다. 지현은 전시회장을 눈으로 훑어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까 화장 고치러 간다고 했는데 그 후로 통 안 보여. 혹시, 아직도 파우더 룸에 있는지 누나가 좀 봐 줄래?”
지현은 흔쾌히 파우더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부를 충분히 탐색하고 나온 그녀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안에 없는데.”
“파티 주인공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강혁 씨도 안 보이던데. 둘이 같이 있는 거 아니야?”
“뭐?”
“신혼이잖아. 둘이서 몰래 숨어서 찐한 키스라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지현이 킥킥거리면서 익살맞게 웃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우현은 짜증이 나서 언성을 높였다.
“뭐가 말이 안 돼? 신혼 때는 원래 다 그런 거야. 눈만 마주쳐도 활활 타오르는 법이라고.”
지현이 입술을 빠르게 움직였다. 우현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전혀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오늘 은서가 좀 예뻤니? 어찌나 예쁘던지, 강혁 씨 눈에서 하트라도 튀어나올 것 같더라. 계속 은서만 쳐다보고 있는 거 있지.”
지현은 신이 난 목소리로 계속해서 떠들었지만, 우현은 이런 헛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고역이었다.
오만상을 찌푸린 우현은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등 뒤에서 지현이 어디 가는 거냐고 물었지만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우현은 오늘 파티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다시 전시회장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불현듯,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철제문이 시야로 들어왔다.
저쪽으로는 아직 가 보지 않았다.
은서라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비상계단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 많은 건 영 불편해하는 여자니까.
은서가 그곳에 있을 것 같다는 희미한 직감을 느끼며 우현은 철제문을 빠끔 열어 보았다. 그 순간, 몹쓸 장면을 목도하고 말았다.
“하아, 은서야…….”
살짝 열린 문틈으로는 차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은서는 무릎을 꿇은 채로 남자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고 있었고, 차강혁은 그런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즐기고 있었다.
우현의 동공이 터질 듯이 팽창되었다. 만면에는 오직 경악만이 그득 찼다.
꿈이라면 깨고 싶었다. 이런 악몽은 끔찍하니까.
하지만 망막을 가득 채워 오는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생생했고, 청각을 파고드는 사운드는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순식간에 뇌가 텅 비어 버린 우현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석상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우뚝 굳어 있기만 했다.
그때였다. 차강혁이 검은 눈동자를 동물적으로 움직이면서 문틈으로 엿보고 있던 우현과 시선이 절묘하게 겹쳐졌다.
보통의 남자라면 당황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사적인 스릴을 즐기던 걸 타인에게 들켰으니까.
하지만 차강혁은 보통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입꼬리를 기분 좋게 끌어 올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갈라진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은서야, 더 세게 빨아 봐.”
“세게?”
아무것도 모르는 은서는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힘을 강하게 실어 페니스를 몇 번 빨아들이고 물었다.
“으음…… 이렇게요?”
“좋아. 계속 그렇게 빨아.”
은서는 그가 시키는 대로 성심성의껏 페니스를 애무했다. 한층 강해진 자극에 볼록한 울대뼈가 크게 일렁거렸다.
우현은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상황을 들킨 걸 알면서도 뻔뻔하게 과한 요구를 하는 차강혁도, 그런 남자의 요구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드는 유은서도, 모두 이해 가지 않았다.
‘진짜 다 미친 거 아니야?’
아까 그의 목덜미에 손톱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성적인 행위를 했을 거라고 어렴풋이 추측은 했다.
하지만 난잡한 행위를 막상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자 충격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쇠파이프로 머리통을 후려쳐 맞아도 이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아, 은서야. 쌀 거 같아.”
그는 신음에 가까운 숨을 토해 내며 은서의 뒷머리를 붙잡고 허리를 흉포하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컥컥 찔러 오는 격한 추삽질에 은서는 양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부여잡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거친 피스톤질로 숨이 끊어질 듯 할딱거리면서도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순종적인 자세로 그의 욕구를 받아들였다.
“하아.”
난폭하게 쑤셔 박던 그가 짐승처럼 포효하듯 그르렁거리더니 허리짓을 멈추었다.
작은 입속에는 희뿌연 정액이 가득 찼다. 일부는 입속에 다 담기지 못하고 턱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은서는 입안에 든 정액을 꿀꺽 삼켜 냈다. 전부터 자주 해 왔던 것처럼 익숙해 보이는 행동에 우현이 주먹을 굳게 말아 쥐었다.
“맛있어?”
그가 다정하면서도 음험한 말투로 물었다. 은서는 눈을 새침하게 치켜뜨고 콧방귀를 흥, 꼈다.
“또 심통 부리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그는 턱을 타고 흐르는 정액을 손가락으로 훔쳐 은서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은서는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착실하게 핥았다.
“여기도 깨끗하게 정리해.”
그는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거대한 페니스를 은서에게 들이밀었다. 그녀는 군말 않고 페니스에 묻은 정액도 혀로 꼼꼼하게 핥아먹었다.
그제야 우현은 굳어 있던 몸을 서서히 움직였다. 철제문을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닫고 발걸음을 돌려세워 혼란의 장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났어도, 머릿속은 여전히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혼란으로 자욱했다.
* * *
강혁은 바지를 추스르며 철제문으로 흘긋 시선을 던졌다.
관음증 환자처럼 몰래 훔쳐보던 녀석이 사라졌다. 아직까지 있었다면 드레스를 벗겨서 그냥 박아 버렸을 텐데.
은서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벽에 등을 기대고 힘 빠진 다리로 겨우 버티고 서서 가쁜 숨을 할딱할딱 여러 번 몰아쉰다.
그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던 그는 바지 속이 또다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느른하게 풀어진 모습이 묘했다. 선홍색으로 익은 뺨이, 정기가 풀려 흐리멍덩해진 눈동자가, 살짝 부어오른 입술이, 바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이, 야릇하고 뇌쇄적이었다.
그렇잖아도 전시회장에 있던 좆 달린 새끼들이 그녀를 힐끔힐끔 훔쳐보는 게 거슬리던 차였는데, 오럴 섹스 후에 색기까지 머금어서 남자 놈들 시선을 더 끌게 생겼다.
이러니까 내가 미치지. 이러니까 내가 너한테 목줄을 채우고 싶은 거라고.
눈빛을 칼날처럼 위험하게 빛낸 그는 손을 뻗어 은서의 목덜미를 약하게 쥐었다.
“유은서 너, 처신 똑바로 하고 다녀.”
“…….”
“내 물건에 날파리가 꼬여 드는 건 질색이니까.”
“…….”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정말 목줄을 채워 버릴 줄 알아.”
은서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그를 달래보겠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음산한 경고에 물건 취급이었다.
‘내 거’라는 단어에 설렘을 느꼈던 건 모두 헛일이었다.
그가 말한 ‘내 거’라는 건 ‘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물건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었으니까.
제가 그에게 성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확인 사살을 당하면 마음이 꽤나 쓰라리다.
“나쁜 자식…….”
은서는 그를 노려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불만도 이렇게 소극적인 방법으로 표시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했다.
“내가 나쁜 걸 알면서도 반한 건 너야.”
“몰랐어요.”
“뭐?”
“강혁 씨가 나쁜 놈인 줄 몰랐다구요. 윤종하 씨한테 나를 구해 주고 분수대로 데려가서 재킷을 덮어 줬을 때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때 성급하게 반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이 지경까지 추락하진 않았을 텐데…….
“그래서, 후회라도 하나?”
“네. 후회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떨어지는 대답에 그가 미간을 짙게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금세 평정심을 되찾고 특유의 포커페이스와 냉정한 말투로 조롱하듯 응수했다.
“후회한다고? 그럼 때려치우면 되겠군. 날 사랑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
“근데, 못 때려치우겠지?”
“…….”
“유은서는 나한테 반해도 너무 심하게 반했으니까.”
“…….”
“나를 너무 좋아해서 나만 보면 아래를 적시고, 내가 시키는 일이면 뭐든 다 하잖아.”
“…….”
“방금 그랬던 것처럼.”
그의 태도는 지극히도 오만했다. 어떤 짓을 해도 유은서는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거만한 우월감이 온몸 전체에서 넘쳐흘렀다.
슬프고도 절망적인 건, 그의 우월감이 마땅히 옳다는 데에 있었다.
은서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더니 손바닥을 날려 그의 뺨을 짝, 후려쳤다. 뺨을 맞았는데도 그는 여유롭게 웃는다.
능글맞은 미소에 열이 채인 은서가 한 번 더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 손목이 단단히 붙들렸다.
“나, 당신한테 맞으면 흥분되는데.”
“뭐라구요?”
“유은서 너처럼 순해 빠진 여자가 발악하듯 손을 휘두르면 꼴리더라고, 굉장히.”
“…….”
“뭐, 기꺼이 보지에도 박히고 싶다면 한 대 더 쳐도 되고.”
“…….”
“아니, 박게만 해 준다면 수십 대도 맞아 줄 용의가 있어. 어때?”
손목을 풀어 준 그는 어디 실컷 쳐 보라는 듯 고개까지 친히 숙여 주며 뺨을 가까이 갖다 댔다.
은서는 뺨을 후려치는 대신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푹 주저앉았다. 저로서는 상대가 안 되는 남자였다.
* * *
우현은 바깥으로 나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빼어 물었다.
야외 조형물 주변에 설치된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서 탁한 연기를 내보내고 또 내보낸다. 연속으로 담배를 세 개비나 태웠는데도 진정되질 않았다.
현기증이 온 것처럼 머리가 팽글팽글 돌고, 체한 것처럼 뱃속이 울렁거렸다.
‘어떻게 은서 누나가 그런 짓을…….’
도덕책처럼 살던 여자였다. 윤리 규범을 지나칠 정도로 딱딱 맞게 잘 지켜서, 어떤 사람들은 유은서를 두고 지루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현은 그 고루한 지루함이 좋았다. 바른 생활, 바른 태도, 바른 말씨. 그런데, 한없이 올바르던 여자가 비상계단에서 남자와 그런 음란한 짓을…….
강제로 당하는 게 아니었다. 은서는 그의 것을 적극적으로 애무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유은서가…….’
은서를 향한 일말의 배신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은서가 그렇게 된 것도 결국에는 남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착하고 얌전하기만 하던 여자가 그런 음탕한 짓까지 하게 된 건 모두 차강혁 탓이다. 그가 순진한 여자에게 나쁜 물을 들인 것이다.
우현은 차강혁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며 짧아진 꽁초를 비벼 끄고 주먹으로 난간을 세게 내리쳤다.
“애먼 데에 성질을 부리는군.”
건조한 목소리가 귓속을 점령했다. 우현은 인상을 구기고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강혁이었다. 그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담배를 불손하게 입에 물고 긴 다리로 느긋하게 걸어왔다.
그의 등장으로 공기의 흐름이 단번에 달라졌다. 장대한 키와 강한 인상이 가히 압도적이라 공기가 압력을 받은 것처럼 밀도가 높아진 것이다.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차강혁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되었다.
우현도 키가 183cm라 어디 가서 키로 밀리지는 않는데, 차강혁 앞에서는 댈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났나? 주먹으로 죄 없는 난간을 내리칠 정도로?”
차강혁은 대뜸 반말로 지껄였는데, 그게 지극히도 자연스러워서 예의에 어긋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예의’라는 것과는 수천 광년의 거리를 두고 있는 남자처럼 보여서 달리 위화감이 없을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지. 그쪽은 화를 낼 자격조차 없는데 말이야.”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전부 봤잖아. 비상계단에서 유은서가 내 좆을 꿀떡꿀떡 빨고 좋아하는 거.”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선을 넘는 말을 툭 내던지더니, 담배 연기를 우현의 얼굴에 후 내뱉었다.
우현의 턱이 분노로 잘게 떨렸다. 안하무인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훨씬 더 거칠고 오만방자한 남자였다.
“우리 은서, 잘 빨지? 내가 처음인데도 곧잘 하더라고.”
우리 은서? 수준 낮은 음담을 서슴지 않고 내쏟으면서 감히 ‘우리 은서’라는 다정한 호칭을 입에 올리는 게 불쾌하다. 우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체 그런 더러운 말을 제 앞에서 하는 저의가 뭡니까?”
“유은서는 내 거야. 내 아내, 내 여자라고.”
깊고 검은 눈이 야생의 맹금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앞으로는 조심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뭘 조심하란 말입니까?”
“말했잖아. 유은서는 내 아내, 내 여자, 내 거라고. 그쪽이 집적거리는 거 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래서, 저를 의식해서 은서 누나에게 그런 몹쓸 짓을 시킨 겁니까? 보기완 달리 자신감이 별로 없는 타입인가 보군요. 우리가 무슨 불륜이라도 저지를까 봐 불안한 건가요?”
우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차강혁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전혀. 그쪽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잖아. 유은서가 내 좆을 맛있게 빨고 정액까지 삼키는 걸. 날 위해서라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고 하는 여자가, 고작 너 같은 새끼한테 넘어갈까 불안하겠어?”
가소롭다는 식으로 비소를 내던진 그는 다시 우현의 얼굴에다 매캐한 담배 연기를 후 내뱉었다.
우현은 주먹을 말아 쥐고 어금니를 악물었다. 맘 같아선 냅다 주먹이라도 휘갈기고 싶지만, 일을 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은서의 개인전을 망치면 안 되기에.
“난 그저 내 아내 근처에 벌레 새끼가 꼬여 드는 게 싫을 뿐이야. 내 여자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지 마. 이 말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가?”
“벌레 새끼요? 전 오래전부터 은서 누나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당신보다 훨씬 더 일찍 누나를 알아왔다고요. 지나친 발언은 삼가 주시죠. 언행이 너무 거치십니다.”
“내 아내한테 껄떡거리는 놈한테 소프트하게 대할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우현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더니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비장한 표정을 짓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번에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은서 누나가 울면서 저한테 찾아온 거 기억하시죠? 결혼 생활에 많이 지친 것 같더군요. 그날 밤, 하염없이 우는 누나를 달래느라 제가 애를 꽤 먹었습니다.”
그를 자극하기 위해 우현은 일부러 거짓말까지 했다.
그날 은서는 우현을 찾아오지도 우현 앞에서 울지도 않았지만, 그에게 타격을 입힐 수만 있다면 이런 거짓말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차강혁 씨처럼 거치신 분은 은서 누나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누나를 놓아주시는 게 어떨까요? 요즘 세상엔 이혼이 딱히 흠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머리에 총 맞았냐? 유은서를 놓게.”
노골적인 공격에 그는 오히려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설령 머리에 바람구멍이 생긴다 해도 유은서만큼은 절대로 못 놓지. 그 여자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재미요?”
“그래. 유은서가 나한테 박혀서 앙앙거리며 우는 걸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고.”
“…….”
“넌 유은서가 우는 걸 달래 줬다고 했지. 난 유은서를 울려. 한계치까지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여서, 결국엔 엉엉 울게 만든다고. 그 여자는 우는 게 예쁘거든.”
우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차강혁에게 타격을 주려고 공격했지만, 그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본인의 가슴만 찌르는 꼴이 되었다.
“나도 알아. 유은서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는 거.”
순순히 인정하는 말에 우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러다 또 어떤 폭탄을 집어 던져서 사람을 돌아 버리게 만들지 모르는 남자였다.
“너무 깨끗하고 맑지. 대책 없이 순수하고 순진하고.”
“…….”
“그래서 나랑 어울리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해서 그 여자를 더럽히고 있는 중이야.”
“…….”
“그쪽도 머릿속으로는 유은서를 골백번이고 더럽혔겠지.”
“그, 그런 적 없습니다.”
우현은 다급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말을 더듬은 데다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까지 역력해서, 공연히 비웃음만 사는 꼴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지. 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그 여자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마.”
“…….”
“난 분명히 경고했어. 다음번에는 말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꽁초를 바닥에 내던져 구둣발로 짓이겼다. 다음에 또 걸리면 이 담배꽁초처럼 너를 잔인하게 짓이겨 주겠다는 무언의 은유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차디찬 비소를 던지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까만 하늘 아래 혼자 남은 우현은 분노로 온몸을 파르르 떨다가 주먹으로 다시 난간을 강하게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