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30)

7.

* *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앓아누워 있던 은서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스튜디오로 출근했다.

작업에 돌입하기 전, 거울 앞에 서서 빗질부터 했다. 검정 고무줄로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리자, 내내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목덜미의 울긋불긋한 자국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설적인 자국들이 민망하긴 했지만 어차피 스튜디오엔 혼자 있으니 상관없다 싶었다. 작업할 때 머리를 풀고 있으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니까.

폭풍 같았던 주말의 기억이 자꾸만 떠밀려 들어와 집중하기가 어려웠지만, 마음을 굳게 붙들고 밑그림에 채색을 했다.

오후 5시쯤, 작은언니 은경이 스튜디오로 깜짝 방문을 했다. 근처에 외근을 나왔다가 동생 생각이 나서 들렀단다.

은경은 케이크 박스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언니랑 나랑 텔레파시 통했나 보다.”

은서는 테이블에 앉아 홀 케이크를 자르지도 않은 채 포크로 거침없이 퍼먹었다.

은경은 케이크에 푹 빠져 먹는 동생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스튜디오를 느긋하게 걸으며 작업물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구경했다.

많고 많은 작품들 중에서 단연코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다.

은경은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캔버스 앞에 멈춰 서서 뚫어지게 그 그림을 응시했다. 유화로 채색된 초상화는 아직 미완이었지만, 훌륭한 작품이라는 건 능히 알 수 있었다.

“역시 모델이 멋지니 작품도 멋지네.”

은경은 혼자서 중얼거리다 은서를 향해 물었다.

“이 그림도 이번 전시회에 올릴 거지?”

케이크를 먹는 데에 열중하고 있던 은서가 포크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림을 확인하자마자 뺨으로 홍조가 번진다.

“무슨 소리야. 그건 당연히 전시 안 하지.”

“왜?”

“그야…….”

모델이 된 차강혁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그린 초상화다. 그런 그림을 전시회에 올릴 수는 없지. 게다가 전시회의 주제와도 맞지 않았고.

“전시회 주제가 ‘봄’이거든. 언니는 ‘봄’이라는 주제와 그 그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차강혁을 계절에 비교해 보자면 그는 단연코 ‘겨울’이다. 차갑고, 냉혹하고, 빙벽 같은 심장을 가진 남자.

“어울리지.”

하지만 은경은 예상을 빗나가는 대답을 내놓았다. 어울린다고? 차강혁이랑 봄이?

“뭐? 왜?”

“사랑하는 남자를 그린 거잖아. 봄처럼 나를 설레게 하는 남자! 얼마나 멋지니?”

“하…….”

은서는 헛웃음을 지었다. 봄처럼 설레면 뭐하나. 그래 봤자 짝사랑에다 그는 저를 한낱 섹스토이 취급할 뿐인데.

“난 이 그림 마음에 들어. 제부의 근사한 모습을 찰떡같이 잘 표현해 낸 것 같아. 전시회에 올리는 거 한번 고려해 봐.”

은경은 작품 구경을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와 은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런데, 잠깐 구경하는 사이에 홀 케이크의 절반이 사라졌다.

“걸신들렸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말이야.”

은서는 어디 쫓기는 사람처럼 또 급하게 포크질을 했다. 절반이나 먹어 놓고도 먹을 배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왜 아무것도 못 먹었어?”

“그냥 바빴어.”

차강혁한테 당하느라.

“바빠도 잘 챙겨 먹어야지.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해. 우유도 마시고.”

은경이 유리컵에 우유를 부어서 건네주었다. 은서는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케이크를 전투적으로 먹어 댔다.

“은서 너, 좀 야윈 것 같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살이 쪼옥 빠졌구만. 작업 시간 길다고 좋은 작품 나오는 거 아니다.”

“나 무리 안 한다니까. 밤샘도 안 하고, 주말에도 계속 집에 있었는걸.”

“그래? 주말에 쉬었다면서 얼굴이 왜…….”

돌연, 은경의 만면으로 경악이 그득 찼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휘둥그레지고, 턱이 빠질 만큼 입이 벌어졌다.

“아, 작업 때문에 살이 빠진 게 아니었네.”

은경은 동생의 목덜미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응?”

은서가 눈을 맹하게 떴다.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눈이 마냥 순진무구해 보였다. 입가에는 하얀 생크림까지 묻어서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은경의 마음속은 복잡 미묘해졌다. 동생의 왕성한 성생활을 이런 식으로 알게 되다니…….

제 눈에는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처럼 보이는 막내가, 누군가에게는 매혹적이고 섹시한 여자로 보인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제부가 운동을 열심히 시키는 모양이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하나, 둘, 셋, 넷.”

은경이 뜬금없이 숫자를 셌다. 은서는 더더욱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목덜미에만 키스마크가 네 개! 제부도 보통이 아니다.”

“어머!”

깜짝 놀란 은서가 괴성을 지르며 황급히 머리를 풀어헤쳐 목덜미에 있는 자국들을 가렸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목에 키스마크 있다는 사실을 그새 까맣게 잊고 만 것이었다.

“오해하지 마! 이건 그냥 모기한테 물린 거야.”

“모기? 지금이 봄인데 무슨 모기가 있어?”

“봄에도 모기 있어. 요즘 급격한 기후 변화로 봄에도 모기가 있다구!”

“그래? 근데 모기에 물린 자국이랑은 확연히 다른데?”

“그건…… 내가 세게 긁어서 그런 거야!”

은서는 갖은 이유를 들이대며 우기고 봤지만, 그런 허약한 논리가 은경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이 언니한테 숨기려고 애쓰지 마. 그나저나 우리 막내,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좋을 때다, 좋을 때야. 네 형부는 집에 오면 퍼질러 잔다고 바쁜데, 제부는 아주 혈기가 넘쳐나는구나.”

“그런 거 아냐!”

“아버지가 궁합 본 점쟁이, 용하긴 용한가 보다. 두 사람 백년해로할 거라더니 정말 찰떡궁합인가 봐. 은서 너, 이러다 나보다 먼저 임신하는 거 아니야?”

“뭐? 임신? 언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린 그런 사이 아니라구!”

“남편이랑 그런 사이가 아니면, 대체 어떤 사인데?”

“아…….”

할 말이 없었다. 가족, 친구, 지인 모두들 우리가 쇼윈도 부부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여느 부부들처럼 평범하게 여길 뿐이었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언니 빨리 가. 나 일해야 돼.”

상황이 불리해진 은서는 다짜고짜 은경의 등을 떠밀었다.

“야, 나도 바빠. 안 그래도 가려고 그랬어!”

은경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내려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고 은서의 야윈 뺨을 쓰윽 매만진다.

“은서야, 제부한테 언니 말 좀 전해. 할 때 하더라도 잘 먹이고 하라고. 내 동생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

“아, 진짜 빨리 나가라고!”

은서는 얼굴이 푹 익은 홍당무가 된 채로 고함을 바락바락 쳤다.

* * *

강혁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도쿄 지사의 지사장과 한식당에서 미팅 겸 저녁을 먹었다. 지사장은 한국 본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작년에 발령을 받고 도쿄로 떠난 사람이었다.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업무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사적인 부분으로 넘어갔다.

지사장은 가족 이야기를 했다. 영특한 딸들의 자랑부터 시작해서 가끔은 바가지를 긁는 아내의 이야기까지.

“근데 차 사장님, 목은 왜 그렇습니까? 상처가 있네요. 다치셨습니까?”

지사장은 그의 목덜미에 있는 붉은 생채기들을 발견하고 물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한 번 쓸어 만지더니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고양이한테 긁혔습니다.”

“고양이요? 차 사장님, 고양이 키우십니까?”

“아내가 고양이를 데려왔거든요. 귀여워서 안아 줬더니 이렇게 할퀴어 놓더군요.”

“고양이들이 다 그렇죠. 우리 딸들도 얼마 전부터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보호소에서 러시안 블루라는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상당히 예쁜 녀석이지요. 차 사장님 댁에서는 어떤 고양이를 키우십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아직 고양이 쪽은 문외한이라 어떤 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작고 하얗게 생겼어요. 순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성깔이 있더군요. 안아 줄 때마다 손톱을 바짝 세워서 할퀴는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가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애교를 부리고 제 품을 파고들어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하, 그런데 차 사장님. 손톱이 아니라 발톱 아닙니까?”

지사장의 지적에 그는 말없이 웃었다.

* * *

월요일 밤, 은서가 먼저 귀가해 잠자리에 들었다.

몸은 고단했으나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로 인해 잠에 깊게 빠져들지는 못했다. 선잠이 들었다가 얼마 뒤, 침실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에 실눈을 떴다.

샤워를 하고 온 차강혁이 비누 향을 솔솔 풍기면서 옆자리에 누웠다. 일순간 온몸이 긴장으로 수축되고 심장이 쫄깃해졌다.

‘또 미친 짐승처럼 덮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강혁은 조용히 잠만 잤다.

그 후로도 그는 부부 침실로 와서 잠을 청했다. 화요일 밤에도, 수요일 밤에도.

은서는 그가 침실로 들어올 때마다 신체가 뻣뻣하게 경직되었지만, 긴장했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잠이나 잘 뿐, 그녀의 솜털조차 건드리지 않았다. 터치도, 키스도, 섹스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은서는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저번에도 2주 동안은 아무런 일도 없이 흘러갔으니까.

섹스는 단지 해프닝이었을 뿐이라고 마음을 놓고 있던 순간, 별안간 차강혁은 보름달을 본 늑대인간처럼 돌변해서 저를 무지막지하게 먹어 치웠다.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지금의 잠잠한 시기는 어쩌면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닥치기 직전, 잠깐 찾아오는 신기할 정도로 잔잔하고 고요한 전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목요일 밤, 은서는 9시 무렵에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몸을 씻고 옷을 챙겨 입은 후, 홈시어터 룸으로 들어갔다. 영화를 한 편 보고 잠들 계획이었다.

이번에 고른 영화는 전체 관람가 영화였다. 저번처럼 선정적인 작품을 봤다가 불상사가 생기면 곤란해지니까.

영화를 재생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었다. 액정에 뜨는 이름은 차강혁이었다.

고작 이름뿐인데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은서는 전화를 받기 전에 심호흡부터 했다. 그의 전화를 받을 때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는 것이 새삼 우스웠다.

“여보세요?”

-어디야.

“집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서재 책상에 도면이 하나 있어. 그거 챙겨서 지금 회사로 와.

“급한 건가 봐요. 정 기사님 편으로 곧장 보낼게요.”

-아니, 당신이 직접 오라고.

단호한 음성에 은서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얼굴에는 물음표가 만개했다.

“내가요?”

-그래.

“정 기사님 계신데 굳이 내가 왜…….”

-토 달지 말고 오라면 와.

뚝, 전화가 끊겼다.

은서는 매정하게 끊긴 전화를 황당하게 보다가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갖다 달라고 하니까 갖다 줘야지, 내가 뭐 힘이 있나.

서재로 가니 그가 말한 대로 복잡한 도면이 책상 위에 있었다. 은서는 도면을 서류 봉투에 담고 별채에 있는 정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기사님, 지금 바로 강혁 씨 회사로 가야 해서요. 차 좀 대기시켜 주세요.”

은서는 서류와 휴대폰만 달랑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서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헐렁한 고무줄 팬츠에 박스 티셔츠였다. 아직 회사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는 직원들도 있을지 모르는데, 잠옷과 별다를 바 없는 후줄근한 패션으로 회사를 방문하면 그의 면이 서지 않을 터였다.

드레스 룸에 들어간 은서는 옷장을 둘러보면서 신중하게 고민했다.

5분여간의 고민 끝에, 검은색 테일러드 팬츠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미들 힐을 신었다. 서류 봉투와 휴대폰은 토드백에 넣었다.

화장도 할까 생각하다가 지체하면 안 될 듯해서, 핑크색 립스틱만 급하게 바르고 세단에 올라탔다.

“이 시간에 사장님 회사에는 어쩐 일로 가시는 겁니까?”

정 기사가 핸들을 조종하면서 물었다.

“서류를 가져다 달래요. 지금 당장 필요한 서류인가 봐요.”

“그럼 사모님께서 직접 가실 필요 없이, 제가 전달해 드려도 될 텐데요.”

“그 사람이 굳이 저더러 가져오라고 하네요.”

은서는 손끝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굳이 저보고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는 이유를.

침대에서 지독하게 괴롭힌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귀찮은 심부름까지 시키면서 부려 먹으려고 하는 걸까?

뭐, 그래도……. 막상 만날 생각을 하니 심장박동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차강혁의 회사를 방문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사무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떨지, 내심 궁금하기는 했다.

“사장님께서 사모님이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하하.”

정 기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은서는 눈썹을 씰룩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럴 리가 없다. 그 냉혈한이 나를 보고 싶어 할 리가…….

* * *

세단이 삼우조선 사옥 앞에 도착했다.

지하 5층부터 지상 45층까지 하늘 높이 솟아오른 마천루는 그야말로 으리으리했다. 차강혁은 골리앗처럼 거대한 빌딩의 42층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은서는 보안요원의 안내를 받아 42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카드 키로 유리문을 통과해 쭉 직진했다. 제일 안쪽에 비서실과 사장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비서실에는 직원들이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은서는 고단해 보이는 직원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두꺼운 프렌치 도어를 노크했다.

“들어와.”

문 저편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사장실로 들어서자, 넓은 채광창으로 도심의 야경이 빛나고 있었다. 높게 솟은 빌딩들과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리는 불빛들이 서정적이었다.

차강혁은 근사한 야경을 배경으로 한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출근할 때 완벽하던 옷차림과 달리, 지금 그는 다소 흐트러진 모양새였다.

재킷과 넥타이는 사라졌고, 흰색 드레스 셔츠는 단추가 두세 개 열려 있었으며,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상태였다.

기나긴 업무 시간 때문인지 안색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나른해진 얼굴이 안쓰러우면서도 은근히 섹시했다.

“서류 가져왔어요.”

은서가 책상 가까이 다가가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그는 봉투에 든 도면을 확인도 하지 않고 책상 한쪽으로 치워 버렸다.

“똑바로 가져왔는지 확인 안 해요?”

그는 대답 대신 검지를 세워 까딱거렸다.

은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또 어디로 오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맹한 표정을 짓자, 그가 친히 손가락으로 위치를 정확하게 가리켰다. 그의 바로 옆이었다.

왜 거기로 오라고 하는 거지? 은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떼서 움직였다.

곁으로 다가서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신의 체구가 일어선 탓에 은서의 머리 위로 그늘이 졌다.

“왜…… 그래요?”

은서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 물었다. 키 차이가 제법 나서 고개를 한참이나 꺾어야 했지만.

“긴급 상황이야.”

“그래서 곧장 서류 가져왔잖아요. 최대한 빨리 온 거예요.”

“서류 말고.”

“네?”

의문 어린 반문에 그가 입매를 유하게 끌어 올리고 검지 끝으로 바지를 가리켰다.

은서의 눈동자가 그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고 이내 파도가 넘실거리듯 동요했다. 앞섶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설마…….

“유은서 네가 해결해 줘야겠어.”

이제야 명쾌해졌다. 그가 나를 왜 여기로 불러들였는지. 이건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었다. 내 몸을 또 잔인하게 착취하려는 것이다.

“차강혁 씨, 미쳤어요? 여긴 회사예요. 여기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죠?”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아. 하지만 네 생각에 자꾸 꼴려서 일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한 번 풀고 나면 괜찮아질 것 같으니까 어떻게 좀 해 봐.”

“내 생각이요? 강혁 씨가 내 생각을 왜 해요?”

머리가 띵하고 얼떨떨했다. 차강혁이 내 생각을 했다고? 도대체, 왜?

“말했잖아. 유은서 너, 잘 젖고, 잘 느끼고, 잘 조인다고. 이렇게 야한 여자를 어떻게 생각 안 하겠어?”

“그딴 소리 집어치워…… 앗!”

순간 그가 은서의 양 어깨를 내리눌러 강제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굴욕적인 상황에 은서는 만면을 찡그러뜨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그는 바지 버클을 풀어 페니스를 꺼냈다. 그리고 서늘하게 명령했다.

“빨아.”

은서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 남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색마였다. 다른 곳도 아닌 회사에서, 이런 변태적인 짓을 시키다니……. 성욕 앞에서는 일말의 윤리성도 사라지는 걸까?

거절의 표시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러자 그가 페니스로 하얀 뺨을 톡톡 두드렸다. 저속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었다.

뺨을 자꾸만 건드리는 사악한 페니스를 피하기 위해 은서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춰 버렸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뒷덜미를 잡아채 억지로 고개를 쳐들게 만들었다.

시선이 부딪쳤다. 직선으로 강하게 내려다 꽂히는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야성적인 욕망이 거세게 들끓고 있었다. 뜨거운 욕정을 숨김없이 발산하고 있는 압도적인 눈빛에 숨이 턱턱 막히고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그는 겁에 질린 은서를 달래듯이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고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세심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오히려 등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이제 곧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 때쯤, 그는 손아귀로 은서의 턱과 뺨을 세게 틀어쥐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조그마한 입속에 반쯤 발기한 페니스를 우악스럽게 쑤셔 넣었다.

“읍……!”

입안을 가득 채운 커다란 물건에 은서가 외마디 소리를 냈다.

도끼눈을 치켜뜨고 그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지만, 날 선 눈빛은 그를 자극하면 자극했지, 그를 물러서게 만들 수는 없었다.

간악한 물건을 입에 담은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체념을 하고 두 손으로 얌전히 기둥을 쥐었다.

발악하듯 반항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건 수많은 학습을 통해 체득했다. 더군다나 도어 사이를 두고는 아직 비서실 직원들이 있었다.

어설프게 저항을 했다 소란이라도 일으키면 그도 저도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답이었다.

은서는 입에서 페니스를 빼내고 막혀 있던 숨을 할딱할딱 몰아쉬었다. 그런 다음, 손으로 기둥을 쓸어 만졌다.

어마어마하게 큰 크기를 자랑하는 페니스는 두 손으로 잡았는데도 한참이나 남았다. 두툼하고 길게 뻗은 모양새가 꽤나 잘생겼다. 물론 페니스를 두고 잘생겼다고 표현하는 게 상당히 괴상하긴 하지만.

“어때? 잘생겼지?”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정확하게 정곡을 찔러 왔다.

“살다 살다 본인 물건을 두고 잘생겼다고 자찬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은서는 콧방귀를 흥, 뀌고 냉랭하게 대꾸했다.

“빨고 싶게 생겼잖아.”

“별로요.”

“좋아할 거야.”

“……?”

“유은서 네 보지가 내 자지를 좋아하듯이, 요 귀여운 입도 좋아서 미칠걸.”

그는 검지 끝으로 도톰한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은서는 눈을 매섭게 치켜뜨면서도 양손으로 기둥을 부지런히 지분거렸다. 이윽고 혀를 내어 귀두 끝을 할짝거렸다.

그러자, 그가 은서의 머리통을 쥐어 잡으며 열에 찬 숨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예민한 그의 반응에 신경계가 제멋대로 들끓었다.

은서는 좀 더 과감하게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귀두 위에서 자그마한 원을 그리듯이 혀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기다란 기둥을 혀끝으로 쭈욱 핥아 올렸다.

“하아.”

그의 숨소리가 한층 더 짙어졌다. 은서는 시선을 위로 끌어 올려 그의 반응을 꼼꼼하게 살폈다.

이렇게 대놓고 빤히 쳐다보면서 페니스를 할짝거리고 있는 게 민망한 짓이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는 있지만, 흥분한 그의 모습이 지나치게 섹시해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이라 분명 서툴고 형편없을 텐데도 그는 제법 잘 느끼고 있었다. 질끈 깨문 입술과 일그러진 인상, 옅게 상기된 뺨과 붉게 달아오른 귓불이 터무니없이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걸핏하면 저를 괴롭히던 그가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열띤 반응을 살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고작 이런 걸로 흥분하다니, 괜히 신기하기도 했고.

핥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의 페니스는 완전히 다 발기해 버렸다. 어쩜 이렇게도 잘 서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딴딴한 기둥 위로는 불끈한 심줄이 도드라졌고, 선단에서는 투명한 쿠퍼액이 맺혔다.

은서는 쿠퍼액을 혀로 핥아먹고 양손으로 그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어 잡았다. 이내 입으로 페니스를 앙 물어 담았다.

츄웁 츄웁, 달콤한 아이스 바를 빨아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안 가득히 페니스를 담고 고개를 열렬히 움직여가며 빨아 댄다. 성난 물건이 작은 입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질척한 타액을 잔뜩 묻히고 가느다란 은실을 만들어 냈다.

“으음…….”

맛을 음미라도 하듯 은서의 입에서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이한 일이다. 더럽고 지저분한 행위인데, 전혀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짜릿해서 황당할 지경이었다.

팬티 속은 뜨끈뜨끈해지고 애액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온몸으로 자연스레 번져 나가는 열기에 이성은 자취를 감추고, 본능이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은서는 페니스를 최대한 입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목구멍을 찌를 정도로 깊게 넣었는데도 페니스가 남아서 다 들어가지 못했다.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만큼 크나큰 물건이었다. 이 가공할 만한 무기로 밑을 가열차게 쑤시고 박아 대니 정신을 못 차리지.

“하아.”

그는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감탄했다. 시선을 꼭 맞대고 열심히 펠라티오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미칠 듯이 귀여웠다.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입술로 어울리지도 않게 남자 좆을 빨고 있다니. 기묘한 괴리감에 쾌감은 배가 되었다.

은서는 어쩔 수 없이 서툴러서 간간이 이를 세워 긁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단 숨을 내뱉었다. 치아로 페니스를 건드리면 기분이 죽어야 정상인데, 어처구니없게도 자극이 되었다.

결국 중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사람인 걸까.

유은서가 빨아 주니까 그저 좋기만 했다. 그녀의 작은 입속, 탐스러운 입술, 말캉말캉한 혀, 고른 치열, 모든 것이 다 극상의 만족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은서야…… 맛있어?”

갈라진 목소리가 물었다. 은서는 페니스를 욕심 맞게 빨면서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라면서 왜 이렇게 맛있게 빨아?”

그는 커다란 페니스를 가득 머금어 빵빵해진 볼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은서가 눈을 도도하게 치켜떴다. 물론 그러면서도 질척한 오럴은 멈추지 않는다.

“좋으면서 아닌 척하긴. 후우…….”

그는 블라우스 윗단추를 끌러서 손을 집어넣고 젖가슴을 주물렀다. 폭신폭신한 촉감이 가히 훌륭했다.

이내 기다란 손가락이 앙증맞은 젖꼭지를 콕 집어 만지작거렸다. 손끝을 빙빙 돌리며 젖꼭지 위에서 회전을 하자, 은서는 눈꼬리를 괴롭게 늘어뜨리며 간드러지는 신음을 터뜨렸다.

“흐응, 으음…….”

청초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남자 좆을 꿀떡꿀떡 빨고 있는 앙큼한 광경을 계속 보고 있자니, 그의 인내심은 바닥나기 직전까지 몰렸다. 버티기가 점점 힘겨워진다.

“하아.”

결국 이성이 끊어진 그는 은서의 뒷머리를 강하게 잡아채고 피스톤질을 하듯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우웁! 흐읍.”

거친 허리짓에 은서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와 강도를 더 높여 가며 난폭하게 허리를 놀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딱딱한 페니스가 목구멍 깊숙한 곳을 연신 찔러 댄다. 호흡이 달린 은서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얼마 못 가서 유리알 같은 눈물이 투둑투둑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으흡.”

“흣.”

실컷 허리를 밀어붙이던 그가 마침내 절정에 도달했다. 그는 포악한 맹수처럼 그르렁거리며 입안에 정액을 듬뿍 뿌려 놓았다.

정액 양은 심하게도 많았다. 크림 같은 정액은 입안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서 입가로 주르륵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은서는 입을 벌린 채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때, 그가 작은 턱을 붙잡아 입을 앙다물게 하고는 음산하게 명령했다.

“삼켜.”

등줄기를 선득하게 할퀴는 명령에 은서는 군말 없이 정액을 꿀꺽 삼켰다. 비릿한 맛이 났지만 역하지는 않았다.

기함할 일이다. 내가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온갖 더러운 짓들을 다 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싫지가 않았다.

차강혁에게 그새 길들여지기라도 한 걸까?

그는 입 주변으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는 정액을 손으로 훔쳐 그녀의 입안에 집어넣었다. 은서는 혀를 날름거리며 손가락에 묻은 정액을 성실하게 핥아먹었다.

모두 깔끔하게 먹어 치운 후에야, 그는 티슈로 은서의 입과 페니스를 닦아 냈다. 그리고 바지를 추슬렀다.

그제야 은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끝났어…….’

오럴을 한다고 힘이 몽땅 빠진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우고, 브래지어를 똑바로 하고 블라우스 단추를 채웠다.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어 정숙하고 단아한 유은서로 돌아왔지만, 실은 팬티가 축축하게 젖어서 영 찝찝했다. 가슴 돌기도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한 차례의 사정으로 욕망을 해소한 그와 달리, 은서는 이제 한창 달아오른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강혁에게 안아 달라고 징징거리면서 매달릴 수도 없지 않은가.

지금 은서에게 중요한 건 온몸을 고약하게 칭칭 휘감고 있는 뜨거운 열기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은서는 홍조가 피어오른 뺨을 두 손으로 톡톡 치고 몸을 돌려세웠다. 그때였다. 커다란 손이 덥석, 허리를 붙잡았다.

다부진 팔뚝이 은서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어서 포근한 입술이 정수리로 닿았다. 상냥한 입맞춤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후희를 하듯이 은서의 몸을 어루만지며 귓불과 어깨에 차례대로 키스했다.

다정한 스킨십에 몸이 녹아들 것만 같았을 때, 그가 불쑥 팬츠 버클을 풀고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강혁 씨!”

기습적인 침입에 은서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온몸을 긴장감으로 뻣뻣하게 수축시켰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짐승은 벌써 사냥감을 물어 버렸으니.

“여기가 흥건하네. 유은서 너, 내 거 빨면서 질질 쌌구나.”

“아, 아니에요…….”

“아니라면서 여긴 왜 물이 줄줄 흐르지?”

그가 은서의 몸을 돌려세워 팬츠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순식간에 하의가 사라진 탓에 전신이 싸늘해지고 머리끝이 삐죽거렸다.

“강혁 씨……. 한 번 풀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잖아요. 사정했으니까…… 이제 다 끝난 거 아니에요?”

당혹스러운 얼굴로 따져 묻는 은서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그는 눈을 묘한 광채로 빛냈다. 흑막의 눈동자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묘한 빛은 음험함, 그 자체였다.

“당신이 안 끝났잖아. 이렇게 흠뻑 젖은 아내를 그냥 돌려보내는 건 남편의 도리가 아니야. 직무유기라고.”

섹시한 저음의 목소리가 귓바퀴에서 나른하게 부서져 내렸다. 그는 우아하게 뻗은 손가락으로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끌렀다.

“그만둬요…….”

단추가 세 개쯤 풀리고 브래지어와 속살이 드러났을 때, 은서가 어깨를 움츠리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도망간 만큼 성큼 다가왔다.

“솔직하게 굴 수는 없는 건가? 박아 달라고 애교를 부리면 내가 진심으로 귀여워해 줄 텐데.”

“솔직하게 굴고 있어요. 싫어요. 하고 싶지 않아요.”

은서는 손으로 벌어진 옷깃을 부여잡아 속살을 가리고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대꾸했다.

“그래?”

그가 피식 웃는다. 여유가 넘쳐흐르고 자신감이 그득한 미소다. 그래서 은서는 더 화가 났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강혁은 페이스를 잃는 법이 없다. 언제나 판을 주도하고 언제나 게임을 지배한다. 나약한 장기짝에 불과한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남자였다.

“정말 싫다면 소리를 질러.”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문밖에 직원들이 있으니까 구조 요청을 하라고. 여기 당신을 강간하려 드는 발정 난 짐승 새끼가 있다고, 어서 구해 달라고 힘껏 외쳐보란 말이야.”

신랄한 말에 은서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철저한 계산 하에 나온 조롱이었다. 결국은 제가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꼼짝없이 당할 거라는 걸 알고, 선심 쓰듯이 소리를 질러 보라며 비웃는 것이다.

은서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눈에 핏발까지 세워서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가시 돋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만큼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 지금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눈빛을 하고 있어.”

“…….”

“이런 눈으로 쳐다보면 미치게 꼴린다고.”

“…….”

“나를 유혹하는 건 유은서 바로 너야. 나는 그저 당신의 유혹에 무릎 꿇을 뿐이라고.”

무릎을 꿇는다고? 천하의 차강혁이? 여태껏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헛웃음을 지으려는 순간, 그가 옷깃을 부여잡고 있던 은서의 손을 힘으로 잡아 내렸다. 옷 사이가 벌어지고 다시 무방비하게 속살이 드러났다.

은서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를 비웃을 짧은 틈조차 제게는 없다는 것이 분통 터졌다.

반면 그는 즐거운 표정으로 블라우스의 마지막 단추까지 끌러냈다. 이내 툭 소리와 함께 얇은 옷감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손을 놀렸다. 이번에는 등 뒤로 손을 가져가 능숙하게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 버렸다.

은서는 저항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얌전히 당하기만 했다. 회사라는 장소 특성상, 그가 조롱한 대로 소리를 꺅꺅 지르면서 발악할 수는 없었으니까.

“개자식…….”

대신 작게 욕설을 갈기며 이기죽거렸다.

“개자식? 유은서, 다른 욕은 모르나? 매번 똑같은 욕이군. 창의성이 부족한 편인가?”

“닥치고 빨리 끝내기나 해요.”

“분부대로 하지.”

그가 싱긋 미소를 짓고 옷을 마저 벗겨 냈다. 이제 은서는 구두를 제외하고 모두 벗겨져 훤한 알몸이 되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회사에서 이런 꼴이라니, 몹시 부끄러워져 어깨를 오그리고 양팔로 몸을 가렸다.

“팔 내리고 어깨 펴. 당당하게 자랑 좀 해. 당신 몸은 아주 끝내주니까 자랑할 자격이 충분히 차고 넘친다고.”

이런 오만한 칭찬 따위 조금도 달갑지 않다. 은서는 공연히 더 고집스럽게 몸을 가리며 눈을 매섭게 흘겼다.

그러나 알몸을 어떻게든 수호하고자 하는 행동은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만 만들 뿐이었다. 진한 눈썹이 꿈틀거린다.

“말 안 들어?”

“…….”

“빨리 끝내고 싶으면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새침 떠는 모습이 귀엽긴 하지만, 그만큼 누르고 싶어지기도 하거든.”

“…….”

“하찮은 반발심으로 날 자극해 봤자 별로 좋은 꼴은 못 볼 거라고 조언해 주는 중이야, 다정하게.”

다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건 조언이 아니라 경고였다. 채찍질처럼 날카롭게 날아 들어오는 경고.

마지못해 은서는 팔을 내리고 어깨를 똑바로 폈다. 겁도 없이 짐승의 성질머리를 건드려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는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차강혁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명화를 감상하듯 예리한 눈매로 그녀의 나신을 세심하게 뜯어보았다.

작지만 알찬 몸이었다. 볼륨 넘치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탱글탱글한 엉덩이로 이어지는 아찔한 곡선이 언제 봐도 꼴렸다. 이미 정액을 한 차례 쏟아 낸 아랫도리로 또다시 피가 맹렬하게 몰려들었다.

아리따운 육체를 충분히 감상한 그는 책상에 복잡하게 흩어져 있던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 버렸다. 그리고 은서의 허리를 한 팔로 안아 들어 그녀를 책상 위에 앉혔다.

은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평소 일하는 책상 위에서 섹스를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이상야릇해졌다.

회사에서 섹스를 하는 것도 기함할 일인데, 서류가 가득한 업무 책상 위라니……. 왠지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벌려 봐.”

그는 가느다란 발목을 툭툭 건드리며 직설적으로 명령했다.

“어서.”

은서는 긴 숨을 몰아쉬고 천천히 다리를 벌려 주었다. 그러자 구멍 안에서 고여 있던 애액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느릿느릿 떨어져 내렸다.

그는 다리 사이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는 손가락으로 애액을 훔쳐 입안에 집어넣고 맛을 보았다. 그게 정말 꿀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짓 하지 말아요…….”

“맛있는데, 왜 하지 말라고 그래.”

그가 눈꼬리를 곱게 휘면서 눈웃음을 쳤다. 소년처럼 천진난만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있는 맹수처럼 음험해 보이는 미소였다.

교묘하게 이중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소가 은서의 심장을 과녁 삼아 쿡 찔러 왔다. 배알이 간질간질해지고 밑이 뜨거워진다. 이런 불온한 상황에서도 체온이 상승하는 몸뚱어리가 원망스럽다.

차오르는 흥분에 자괴감을 느낄 때, 그가 불쑥 무릎을 꿇었다. 은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로 무릎을 꿇을 줄은 몰랐는데…….’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굽힌 그는 은서의 양쪽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허벅지를 붙잡았다.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달콤한 꿀이 흘러넘치는 음부에 살포시 키스한다. 쪽, 하면서 울리는 소리가 음란한 행위를 연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뜻했다.

은서의 머릿속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작 제 밑이나 빨아 보겠다고 차강혁이 이토록 쉽게 무릎을 꿇다니……. 어떤 판이든 주도권을 휘어잡고 왕처럼 군림하는 최상위 수컷치고는 무릎이 너무 가볍다.

아니, 기꺼이 무릎이 가벼워질 만큼 그의 욕정이 실로 대단하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뇌리에서 갖가지의 상념들이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복잡한 상념들도 그가 본격적으로 혀를 질척하게 굴리자 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는 두 손으로 포실한 허벅지를 부드럽게 쓸어 만지면서 혀로 살랑살랑 장난을 치듯 젖은 아래를 할짝거렸다.

츄르릅 츄르릅, 붉은 혀가 여린 속살을 훑을 때마다 색정적인 소리가 고막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은서는 온몸을 자지러뜨리며 신음을 터뜨렸다.

“하읏…… 읍!”

입을 벌리고 부주의하게 소리를 내던 은서는 밖으로 신음이 새어 나가면 안 된다는 자각에 손으로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시선을 끌어 올려 은서와 눈을 맞췄다. 밑구멍을 야금야금 먹어치워 나가면서 그윽하게 눈길을 섞는 검은 눈동자가 실로 야했다. 야심만만하고 패기 넘치던 눈동자는 취한 것처럼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

아, 사실 그는 취하긴 취했다. 색에 흠뻑 취해서 애액으로 지저분해진 음부를 츕츕 빨아 대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흐읍.”

그가 구멍 속으로 혀를 집어넣자 소리를 참는 건 더더욱 어려워졌다. 은서는 얼굴에 자국이 남을 만큼 세게 손아귀로 입을 압박했다.

노련한 애무에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관통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고문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마음껏 교성을 내지를 수 없어서, 이 황홀한 쾌락을 억지로 목구멍 안으로 삼켜야 해서, 답답하고 갑갑했다.

좁은 구멍 속을 침범한 혀는 부드러우면서도 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혀끝으로 안을 샅샅이 훑다가, 혀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짓궂게도 희롱한다.

그러다 입으로 음부를 흡입하기라도 할 것처럼 게걸스럽게 쭈웁쭈웁 빨아들였다. 강한 자극에 은서는 허리를 크게 튕겼다. 매끄러운 살결 위로는 소름이 쫙 돋아났다.

“읍…….”

이제 그만했으면 싶었다. 장난 같은 전희는 집어치우고 진짜 숨 막히는 쾌락을 가져다주기를 애타게 원했다.

그때, 텔레파시가 통하기라도 한 건지 그가 입술을 떼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손등으로 입가에 들러붙은 애액을 거칠게 닦아 낸 그는 은서의 어깨를 짓눌러 책상 위에 눕게 만들었다. 등으로 책상의 차갑고 딱딱한 촉감이 닿자 은서는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무질서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로는 서류들이 몇 장 깔려 있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향한 지독한 갈망이었다.

그가 바지 버클을 풀고 페니스를 꺼냈다. 아까 정액을 실컷 내뿜었던 페니스는 놀랍게도 또 꼿꼿하게 서 있었다.

저 크고 단단한 페니스 안에 저를 향한 욕망이 가득 응축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자, 은서는 벌써 황홀경에 취해 버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두 다리를 움직여 그의 허리를 감쌌다. 하얀 다리로 그의 허리를 옭아매듯 끌어안고 힘을 줘서 당기자, 탄탄한 몸이 자연스레 실려 오면서 서로의 하체가 바짝 밀착되었다.

적극적인 은서의 행동에 그는 입꼬리를 만족스럽게 끌어 올렸다.

“누가 요물 아니랄까 봐 역시 앙큼하다니까.”

그녀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음탕한 속성을 이끌어 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온순하고 순진하기만 하던 숙녀가 과감히 가면을 벗어 던지고 요악하고 매혹적인 요녀로 변신할 때면, 언제나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오직 나만이 보고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녀의 발칙하고도 비밀스러운 모습에, 그는 홀리듯 현혹당하고 마는 것이다.

“유은서, 날 홀리는 것도 적당히 하라고. 너 때문에 좆질하느라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니까.”

그는 풍성하게 늘어뜨린 긴 머리칼을 부드럽게 넘겨 주며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젖어 있는 아래에 페니스를 갖다 대고 부비적거렸다.

한껏 달아오른 물건이 질구 주변을 빙빙 돌면서 배회한다. 그는 쿠퍼액이 흐르는 귀두로 클리토리스를 문질거리고 아찔하게 벌름거리는 소음순을 꾹꾹 눌렀다. 그러다 구멍 속으로 페니스를 넣을 듯 말듯 감질나게 애를 태웠다.

“으읍…….”

은서는 입을 틀어막은 채로 온몸을 바르작거렸다. 괴로웠다. 자극은 쉴 틈 없이 몰려오는데 진짜 원하는 자극은 주지 않고 있었다.

어서 빨리 삽입을 해 달라고 조르듯이 밑구멍이 요동을 친다. 음란하게 입구를 벌리고 애액을 질질 쏟아내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은서는 절절하고 간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흥분으로 탁해진 그녀의 눈동자는 열정과 음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끔한 얼굴에 색욕으로 번진 눈이 꼭 타락한 천사처럼 보였다.

“은서야, 박아 줄까?”

그가 귓가에 대고 짓궂게 속삭였다.

은서는 굴종하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회로는 이미 오래전에 뚝 끊겼다. 이성은 작동을 멈추고, 오직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아 차강혁을 가지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었다.

섹스는 언제나 강압적으로 시작되지만, 그가 지배하는 게임의 룰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려 결국에는 은서도 그를 애타게 원하게 된다.

빌어먹을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능을 억누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손길, 그의 입술, 그의 체온이면 그녀의 몸은 당연하다는 듯 무장 해제되어 열렸으니까.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말로 해 봐. 박아 달라고.”

“흡…….”

“어서. 박아 달라고 빌어 보란 말이야.”

조급하게 채근하는 목소리에 은서는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살짝 내리고 겨우겨우 목소리를 냈다.

“바, 박아 주세요.”

치욕스러웠지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제 몸이 차강혁을 열렬히도 원하고 있었기에.

애처로운 간청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입매를 유하게 끌어 올리고 은서의 입술에 쪽쪽, 베이비 키스를 찍었다. 그러고는 팽팽하게 기립한 페니스를 애액과 타액으로 범벅된 좁은 구멍 속에 거침없이 꽂아 넣었다.

“흐읍!”

고대하던 삽입에 은서가 골반을 격하게 튕기면서 우는 소리를 냈다.

그는 리드미컬하게 허리를 놀렸다. 욕망으로 불끈 달아오른 페니스는 내벽을 긁으면서 정교하게 포인트를 찔러 왔다.

치밀하게 성감을 자극하는 능란한 피스톤질에 은서의 발끝이 오므라지고 몸이 가느다랗게 경련했다.

그는 너무나도 쉽게 은서를 쾌락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녀를 흥분케 만드는 것은, 그녀를 절정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를 울게 만드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마치 유은서를 쾌감에 길들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태어난 남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은서야, 좋아?”

“흐흡.”

“지금 네 보지가 어떤지 알아?”

“아으…….”

“내 자지를 아주 꿀떡꿀떡 잘도 삼켜 대고 있어. 후…….”

그는 완벽하게 맞물린 교합 지점을 보며 느른하게 속삭였다. 상스럽기 짝이 없는 말인데 말투는 다정하고 목소리는 감미로워서, 더러운 말이 그리 거슬리지도 않았다. 미칠 노릇이었다.

그는 하얀 목덜미를 자근거리면서 박차를 가했다. 근육질의 거구가 가녀린 몸을 부서뜨리기라도 할 기세로 폭주하듯 허리를 쳐올린다.

맹렬한 피스톤질에 은서의 몸이 버티지를 못하고 책상에 쓸려 자꾸만 뒤로 밀려 나갔다.

“유은서, 똑바로 받아야지. 이것밖에 못 해?”

꾸짖듯이 쏟아지는 말에 은서가 인상을 어그러뜨렸다. 네가 무식하게 처박는 걸 나더러 대체 어쩌라는 거냐며 잔뜩 억울해하는 표정이었다.

허물어진 얼굴이 제법 깜찍해서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는 가녀린 몸이 뒤로 밀려나지 않도록 골반을 세게 그러잡았다. 그러고는 귀두를 자궁 경부에 바짝 밀착시켜 거침없이 허리를 놀렸다.

“하으읏.”

퍽퍽, 한참을 격정적으로 치받던 그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은서의 눈동자에 의문이 만연해졌다. 벌써 끝났나?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생각할 때, 그가 은서를 번쩍 안아 올렸다.

“……!”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갑작스러운 체위 변화에 놀란 은서는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렇게 박히는 것도 좋아할 거야.”

은서가 눈을 멍하게 떴다.

“네 음란한 보지는 내가 어떻게든 박아 주기만 하면 좋다고 질질 우니까.”

그는 은서를 안아 올린 채로 서서 가열차게 추삽질을 했다.

은서는 그의 뒷목에 손톱을 콱 박아 넣으며 절박하게 매달렸다.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체위는 낯설기만 했다. 공중에서 박히다니 불안하고 괴이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짜릿했다. 사지 끝으로 저릿한 전류가 뻗쳐 나가고, 육신은 경이로운 쾌락에 젖어 버렸다.

“하아앗.”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교성이 터져 나온다. 소리가 새어 나가는 걸 막기 위해 은서는 고개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잇새로 앙 물어 버렸다.

하얀 드레스 셔츠에 핑크빛 립스틱 자국이 묻었지만, 그런 사소한 자국 따위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은서의 눈앞에 보이는 건 오직 번쩍번쩍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뿐이었다.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것만 같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기에 결국 눈물샘이 터진다. 짭조름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셔츠까지 적셔 버렸다.

“하아, 은서야.”

“흡…….”

“고개 들고 나 좀 봐. 얼굴 보면서 하고 싶어.”

“아읍.”

“나를 봐, 은서야. 응?”

애절하게 부탁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기막히게도 섹시했다. 이토록 강렬한 섹시함을 거부할 힘 따위는 없다. 은서는 어깨에 묻었던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읏…… 읍!”

간드러지는 신음이 쏟아지자마자 그는 격한 키스를 퍼부었다.

열락에 취한 숨결과 신음을 그가 고스란히 삼키면서 사납게 허리를 밀쳐 올린다. 서로의 혀가 끈적끈적하게 옭아매어지고, 서로의 몸이 하나 되듯 뜨겁게 옭아매어졌다.

* * *

파정을 한 그는 은서를 다시 책상 위에 앉혔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쓰윽 벌려 보자 유백색의 정액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일부는 바닥에 떨어지고 일부는 책상에 묻었다.

난잡한 광경에 은서는 치를 떨었다. 아, 더러워. 신성한 회사에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그러나 정작 사무실 주인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다. 그는 티슈를 뽑아 먼저 그녀의 밑을 성심성의껏 닦아 내고, 그다음에 페니스를 닦아 바지를 추슬렀다. 책상과 바닥은 제일 마지막에 닦았다.

티슈를 휴지통에 내던져 버린 그는 고개를 기울여 키스를 시도했다. 입술이 절묘하게 맞닿으려는 순간, 은서가 고개를 홱 꺾고 책상에서 내려왔다.

“이제 됐죠?”

질펀하게 대줬으니까 더 이상 너랑은 볼 일이 없다는 식의 말투다. 자못 도도하게 쏘아붙인 은서는 바닥에 떨어진 옷들을 주섬주섬 주워 입기 시작했다.

어디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한 손길로 속옷을 입고, 팬츠 버클을 닫고, 블라우스 단추를 채웠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섹스 후에는 늘 그렇듯 자괴감이 찾아오지만 오늘은 유난히 심했다. 한껏 달아올라서 페니스를 열심히 물고 빨았던 것 하며, 안달이 나서 어서 삽입을 해 달라고 애걸하기까지 했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날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처절하게 매달리는 꼴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 남자는 나를 장난감 취급이나 할 뿐인데……. 놀림이나 당하는 주제에 좋다고 앙앙대는 꼴이 통탄스러울 만큼 한심했다.

“이제 이런 건 그만해요.”

옷을 다 차려입은 은서는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사랑 없는 섹스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맞대며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우리한테 왜 사랑이 없어? 당신이 나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잖아.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무심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그나마 남아 있던 얄팍한 자존심마저 와르르 붕괴되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이건 혼자만의 사랑이었고,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그는 감정의 우위를 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군처럼 군림하면서 제 몸을 잔인하게 착취하고 있었다.

“그래요. 나, 차강혁 씨 사랑해요.”

은서는 그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당당한 고백에 그의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이채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강혁 씨는 나를 사랑하지 않잖아요. 당신은 그저 성욕을 풀 상대가 필요할 뿐이죠.”

“그래서?”

“차강혁 씨에겐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말이에요. 당신 성욕을 받아 주겠다는 여자들은 차고 넘칠 테니까, 이제 다른 여자랑 잘해 봐요.”

당돌하게 말을 지껄이자마자 후회가 찾아왔다. 홧김에 욱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이다. 마지막 말은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

사랑 없는 섹스로 상처받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강혁이 다른 여자와 자는 걸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은서가 상상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자는 꼴을 볼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몸을 내어 주고 착취당하는 쪽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말은 이미 쏟아졌고 한 번 쏟아진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은서는 고개를 떨구고 절망했다.

어쩌면 그는 이 말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내 입으로 다른 여자들과 즐겨 보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그동안 나를 끔찍하게 괴롭힌 것일지도…….

“다른 여자는 필요 없어.”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예상을 깨부쉈다.

은서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여자는 필요 없다고? 진심이야?

심장이 발작하듯 팔딱거린다. 하도 요란스럽게 날뛰어서 박동 소리가 바깥으로까지 새어나갈 것만 같았다.

“난 누구랑 달라서 불륜 판타지 따위는 없거든.”

그 ‘누구’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칭하고 있다는 걸 은서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불륜 영화를 감상하다 창피하게 들켜 버렸으니까.

맘 같아서는 ‘나도 불륜 판타지 따위는 없어요. 난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도 줄곧 차강혁 씨를 떠올렸다구요.’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은서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끝내주게 재미있으니까.”

“재미요? 날 괴롭히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 유은서 너처럼 곱고 바르게 자란 여자가 내 좆을 빨고, 내 좆에 박혀서 할딱대는 꼴을 보는 게 재미있어. 다른 새끼들은 네가 그런다는 걸 상상도 못 하겠지.”

과연 입에 걸레를 물고 사는 남자다웠다. 사람을 봄처럼 설레게 만드는 말로 운을 떼고, 결국에는 도를 넘어서는 모욕을 무심하게 툭 내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멸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른 여자는 필요 없다는 그 말이 심장에 말뚝처럼 콱 박혀 들어와서, 저급한 뒷말들은 그저 귓바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좋은 말만 기억한다는 게, 딱 이런 건가 보다.

“유은서, 결국 넌 내 밑에서 울게 돼 있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마.”

그가 은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윽고 엄지로 도톰한 아랫입술을 살포시 짓누르다가 다시 키스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은서는 고개를 홱 꺾어 버렸다. 새침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걷어내고 몸을 돌려 총총 걸어갔다.

아직 몸에는 섹스의 여운이 남아 있었고,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는 필요 없다는 단호한 그의 말이 깊게 박혀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키스를 한다면 또 핀이 나가서 안아 달라고 어리광을 부릴지 몰랐다.

은서는 프렌치 도어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그 꼴로 나갈 건가.”

문을 열려는 찰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은서의 행동을 제어했다. 내 꼴이 뭐 어때서?

그때, 차강혁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어깨를 휘어잡아 은서를 돌려세웠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리바리한 얼굴을 보며 그는 입가를 말아 올리더니,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내 정액 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잖아.”

저속한 말에 은서가 미간을 확 좁혔다.

“눈과 얼굴은 빨개졌고 헤어는 엉망이야. 블라우스 단추도 잘못 채웠고.”

“…….”

“나한테 실컷 박혔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군.”

은서는 시선을 내려 재빨리 블라우스를 확인했다. 그의 말처럼 단추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급하게 채우느라 실수가 생겼던 모양이다.

당황해서 허둥거리자 그가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끌러 내렸다. 단추가 모두 풀리고 벌어진 틈새로 단정한 속옷과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는 흥미로운 눈길로 은밀한 틈새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내 그의 손끝이 가슴에서부터 배까지 선을 그리듯이 일직선으로 주욱 훑었다. 은서가 옆구리를 살짝 떨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하아…….”

요염한 반응에 그는 더욱 대담해져서 팬츠 버클까지 손길을 뻗쳤다.

무의식적으로 은서는 하반신에서 힘을 뺐다. 그가 쉽게 옷을 벗길 수 있도록. 그가 쉽게 다리를 벌릴 수 있도록.

머리가 시킨 건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육체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확실히 제 몸뚱어리는 자존심이라는 게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몸을 섞지 않겠다고 단언한 주제에, 아찔한 손길에 이끌려 금세 몸이 풀려 버리다니.

한심한 스스로를 탓하면서 동시에 더 큰 자극을 기대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블라우스 단추를 정확하게 맞춰 잠그기 시작했다. 예상을 벗어난 행동에 은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쉬워?”

“뭐, 뭐가요?”

“잔뜩 기대하던 얼굴이었는데.”

“내가 뭘 기대했다고 그래요? 착각하지 말아요.”

은서는 앙칼지게 부정했다. 하지만 막판에 눈동자를 빙그르르 굴리는 바람에 날 선 반응도 나약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기대했잖아. 내가 여기서 또 박아 주기를.”

밀어를 속삭이듯 야릇한 목소리가 귓바퀴에 걸터앉았다. 단지 목소리일 뿐인데도 몸이 달았다.

“아니라니까요. 그런 거…… 기대하지 않았다구요.”

은서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열심히 부정하는 만큼 괴로웠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몸은 언제부터 이토록 음탕해진 걸까?

스스로를 향한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차강혁은 그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은서의 턱을 쥐고 고개를 들게 해서 시선을 그윽하게 맞대었다.

“내 허락 없이 고개 숙이지 마.”

그는 엄격하게 명을 내리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주었다. 그러고는 탄탄한 팔뚝으로 무작정 은서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앗……!”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다. 힘세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걸핏하면 사람을 들어 올린다. 그의 품에 안겨 공중에 가뿐히 떠 있는 은서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앙탈을 부렸다.

“왜, 왜 이래요? 내려 줘요!”

“얌전히 있어. 반항하면 엉덩이를 때려 줄 테니까.”

강경한 목소리에 요란스럽게 휘적거리던 다리가 뚝 멈춘다. 이윽고 은서는 양팔로 그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여기서 엉덩이를 맞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는 척척 걸어가서 은서를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여린 눈동자가 극적으로 커졌다. 실로 이상했다. 차강혁이 또 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더군다나 지금은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의아해하는 은서를 지그시 바라보며 작은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등에 입술을 가볍게 포갰다. 쪽, 하는 앙증맞은 소리가 사무실 안으로 넓게 울려 퍼졌다.

일순간, 은서의 가슴이 뭍에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야단스럽게 팔딱거렸다.

‘차강혁이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손등에 키스를 해 주다니. 꼭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잖아…….’

물론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행동이겠지만, 그러한 사실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연심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가파르게 뛰고 명치가 간질간질해진다.

‘이러니까 내가 차강혁을 못 놓지.’

그는 구제 불능 색마에 난폭한 개자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마음을 격하게 뒤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를 미워하려고 해도 좀처럼 미워지지 않는다.

증오가 폭발하듯 끓어오르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지금처럼 달콤한 순간에, 증오는 빠르게 녹아내리고 애정이 뜨겁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내가 어리석은 건 어쩌면 내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

“열 좀 식히고 가.”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마침 눈에 튀는 흔적이 시야로 들어왔다. 은서는 다급한 손길로 그의 어깨를 붙들어 잡았다.

“강혁 씨, 셔츠에…….”

새하얀 드레스 셔츠의 어깨 부분에는 핑크색 립스틱 자국이 옥에 티처럼 남아 있었다.

“립스틱이 묻었어요.”

그는 핑크색 자국을 힐긋 보고 다시 은서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그랬나 봐요. 셔츠 잠깐만 벗어 봐요. 곧장 지워올게요.”

“날 그렇게도 벗기고 싶나?”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이런 건 바로바로 지워야지, 내버려 두면 나중에 잘 안 지워질 수도 있다구요.”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는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바닥에서 일어나 채광창 가까이로 다가섰다.

크고 넓은 창 너머로는 도시의 야경이 환하게 비춰 들어오고 있었다. 무수한 조명들이 갖가지의 색깔을 뽐내면서 어두운 밤하늘을 근사하게 수놓는다. 왠지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봄밤의 분위기.

창을 열자 선선한 밤공기가 실내로 잔잔하게 불어 들어왔다. 그는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고 붙을 붙였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 끝이 잿빛으로 타들어 갔다.

은서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낭만적인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한 채 느긋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자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그리지 못할 아름다운 명화 말이다.

넋 놓고 보고만 있던 은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차강혁에게 더 이상 반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음이 자꾸만 그에게로 이끌려 가고 있었다.

* * *

은서는 그새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보니 저는 소파에 세상 편하게 누워 있었다. 머리 밑에는 쿠션이 받쳐져 있었고, 익숙한 슈트 재킷이 몸을 덮어 주고 있었다.

시야는 어두웠다. 부스스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사무실 안의 조명이란 조명은 죄다 소등되었고, 책상 위의 스탠드만 홀로 빛을 내고 있었다.

차강혁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서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은서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뺨을 톡톡 두드려 정신을 차리고 재킷을 잘 정리해서 옆자리에 놓아 두었다.

“일어났어?”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귓전을 두드렸다.

“네…….”

은서는 민망해져서 콧잔등을 슬슬 긁었다. 남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저는 태평하게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 다소 머쓱했다.

“30분이면 끝나. 조금만 더 자.”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가 않나 보다. 더 자라고 말하는 거 보면.

“집에 같이…… 가자는 뜻인가요?”

“그래.”

“싫어요. 난 지금 갈 거예요.”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건지, 좋으면서 괜히 뾰족한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너무 날카롭게 대답하진 않았나 은서가 본인의 말투를 돌이켜 보는 순간, 그는 리모컨을 집어 들고 사무실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그럼 잘 들어가라.”

미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감각한 목소리에 은서는 김이 팍 샜다.

한 번만 더 청하면 못 이기는 척 기다렸을 텐데. 어서 가 버리라고 친절하게 조명까지 밝혀 주고, 고맙다고 해야 할지…….

이제 와서 기다리겠다는 것도 우스워서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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