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약탈혼 (2/6)

2장. 약탈혼

“이제키엘 경. 알펜시아드 왕국으로 가서 하일릭 공작의 후계를 이으셔야겠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마자 받은 명령은 급작스러웠다. 청문실에 소환된 백색 제복 차림의 성기사는 침착하게 반문했다.

“신께서 내리신 성기사 작위가 제게 차고 넘치는데, 굳이 세속의 지위를 더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일릭 공작가와 알펜시아드 왕실이 교리를 앞세워 강하게 요청하고 있소.”

“왕실까지 말입니까?”

“그렇소. 대륙의 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거절은 신중해야 할 것이오.”

성기사는 추기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빛 한 점 없는 공간을 응시했다. 어둠에 위장된 무수한 시선이 느껴졌다.

“후계를 이으라 하셨는데, 공작의 아들 자리를 수락만 하면 되는 겁니까?”

“일단은 그렇소. 자세한 것은 왕국의 대주교를 만나 들으시오.”

“알겠습니다. 교단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는 예를 갖췄다. 신의 종이자 교단의 기사인 그에게 순종은 무엇보다 강력하게 요구되는 미덕이었다.

청문실을 돌아 나온 그는 교단의 채근에 따라 바로 알펜시아드 왕국으로 향했다.

당장 공작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기에 환속 또한 아니었다. 그는 성기사 신분을 유지한 채 백은 기사단과 함께 움직였다.

성기사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가 세도 귀족가의 혈통을 타고났다는 사실은 놀랍긴 해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맏이의 계승권에 위협이 될 만한 자식들을 수도원에 맡겼다가 필요해졌을 때 물건처럼 꺼내 쓰는 경우는 귀족들 사이에서 흔했다.

문제는 알펜시아드 왕실이 개입했다는 점이었다.

대륙을 북서부를 굴복시킨 알펜시아드 왕국은 성황청이 위치한 판로엠 시국(市國)의 국경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전쟁 군주가 새 왕으로 등극하느라 잠시 전화가 멎은 지금, 교단은 알펜시아드 왕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이런 시점에 공작가와 왕실의 서신을 받고 알펜시아드로 향하는 성기사라니, 교단의 외교 사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정략적으로 막중한 역할을 짊어졌음을 인지했다. 잘해나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성기사의 고민은 안중에도 없이 백은 기사단은 신이 난 상태였다.

믿고 따르는 단장이 무려 공작가의 도련님이었다고 하니 덩달아 신분이 상승한 기분이었다. 벌써 환속하여 공작가의 가신이 되겠다고 설레발을 치는 단원도 있었다.

해맑은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그의 근심도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갑작스러운 일신의 변화가 그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귀족이 되면 사람을 찾는 것도 수월해질 테니.’

그는 습관처럼 손가락의 낡은 반지를 쓸었다.

성기사와 백은 기사단은 꼬박 보름의 여정 끝에 알펜시아드의 국경을 넘어 왕도 루알펜에 도착했다. 근교의 수도원에서 나고 자란 성기사에게는 10년 만에 밟는 고향 땅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공작저가 아닌 왕궁이었다. 하일릭 공작 내외는 이제키엘을 자식으로 인정하자마자 요양을 핑계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의 귀족 신분 인정은 국왕과 대주교의 공증 아래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시작부터 국왕 알현이라니 얄궂은 난이도였다.

‘국왕의 이름이 칼리오페였던가. 그래서 사람들이 부르길, 블러디 칼리오페라고.’

숙청과 몰살에 미친 포악하고 무자비한 군주. 아무리 봐도 신실하고 고결한 성기사와는 딱히 친해질 일이 없을 부류였다. 그는 다시금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왕궁에 도착하자 시종들이 성기사 일행을 맞이했다. 여독을 풀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목욕으로 몸을 정결히 하고 새 기사단복으로 갈아입기 무섭게 알현실로 불려갔다. 국왕이 백은 기사단을 보고 싶다고 한 탓에 일행 모두를 동행했다.

“문 뒤에 국왕 폐하께서 계십니다. 무장을 해제해 주십시오.”

국왕을 섬기는 진명 기사단이 무기를 두고 들어가도록 강권했다. 기사로서 달가운 요청은 아니었으나 순순히 따랐다.

드르르륵.

금과 보석을 입힌 아치문이 좌우로 벌어졌다.

긴 카펫의 길. 그 끝은 일곱 계단 높이의 단상이 받치는 왕좌에 닿아 있었다. 세속의 권좌에는 턱을 괴고 다리를 꼬아 앉은 오만한 여인이 자리했다. 제복 대신 화려한 드레스로 무장한 그녀는 감탄이 나올 만큼 위압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성기사는 왕실 예법에 따라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그는 계속 시선을 바닥에 향한 채 백은 기사단을 뒤에 세우고 걸어 나갔다. 알펜시아드의 왕, 블러디 칼리오페의 앞으로.

“이제키엘 하일릭이 국왕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아아, 드디어 왔군. 기다리다 잠들 뻔했다.”

은색 정수리로 음성이 떨어진 순간, 성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말았다.

설핏 흔들리는 눈에 국왕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비쳤다. 알현실 좌우에 사열한 이들에게 국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어서 예식을 거행하라!”

“……예식?”

신분 인정은 인가만 있으면 되므로 예식이라 부를 만큼 거창한 절차가 필요할 리 없었다.

아연해하는 성기사를 두고 좌우에서 사제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신앙심 없기로 유명한 알펜시아드 왕실에 어울리지 않게도 많은 숫자였다. 마치 특별한 행사를 위해 파견을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불현듯 성기사의 뇌리에 위화감이 스쳤다. 때마침 한 사제가 두 잔의 성배를 대주교에게 건넸다. 그것은 교단이 주관하는 특정한 의식에 쓰이는 물건이었다.

대주교는 혼란스러워하는 성기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크흠, 그럼 칼리오페 레지나 알펜시아드 국왕 폐하와 이제키엘 하일릭 공작 영식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예? 우리 단장이 결혼이라니요?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성기사를 대신해서 백은 기사단이 반발했다. 그러나 무장한 진명 기사단이 즉시 그들을 막았다.

“아아, 그대에게 설명이 필요하겠군.”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순간 국왕이 나섰다. 그녀는 단상에서 내려와 성기사에게 다가갔다.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는 입술에서 잔혹한 말이 떨어졌다.

“하일릭 공작이 그대를 짐에게 팔았어. 제 목숨을 대가로 그대를 짐에게 주기로 했지.”

“…….”

성기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을 국왕에게서 떼지 못했다.

“그러니 그대는 짐의 국서가 되어야 해. 거부한다면…….”

스릉!

성기사의 등 뒤에서 동시다발적인 쇠 울음이 들렸다. 진명 기사단이 비무장한 백은 기사단의 앞에서 검을 빼든 것이었다.

“한 놈씩 목을 치겠다. 그 입에서 승낙의 말이 나올 때까지.”

국왕은 성기사의 턱을 붙잡았다. 그를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는 소유욕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백은 기사단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어떻게 성황청 소속인 백은 기사단장을 협박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한 나라의 국왕 폐하셔도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이런 건 약탈혼입니다! 교단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장,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시끄럽군. 본보기가 필요한 모양이지.”

국왕이 진명 기사단에게 눈짓했을 때, 마비되었던 성기사의 정신이 돌아왔다.

“잠깐.”

그는 국왕의 시선을 제게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받아들일 테니 그러지 마십시오.”

“단장!”

국왕은 가늠하는 눈으로 성기사를 훑었다.

성기사는 치욕스러운 승낙을 입에 담으면서도 의연했다. 그것이 자극제가 되었다.

“짐은 말이지.”

국왕이 퇴폐적으로 붉은 입술을 비틀어 웃어 보였다.

“하일릭 공작가에 유감이 아주 많아. 그 핏줄을 이은 그대를 상냥히 대하리란 기대는 버려야 할 거다.”

“…….”

“대주교!”

어서 예식을 시작하라는 외침이었다.

대주교의 주관하에 혼인 서약을 비롯한 정식 절차가 치러졌다. 서로를 반려로 맞이하겠냐는 신성한 문답도 빠지지 않았다.

격식을 갖춘 기만적인 약탈혼에 백은 기사단의 침통한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식순에 이르렀다. 은쟁반에 받쳐진 성배 두 개가 국왕과 성기사 앞으로 내밀어졌다.

안에는 투명한 술이 찰랑이고 있었다.

국왕은 지루한 식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제 몫의 성배를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남은 성배를 성기사에게 건넸다.

“마셔라.”

“예.”

성기사의 목울대가 약동하며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성기사에게 음주는 금지된 행위였다. 내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몸에 곧장 홧홧한 기운이 올라왔다.

“이, 이것으로 두 분께서 반려의 연을 맺으셨음을 선포합니다!”

국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성기사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주변을 향해 무성의한 명령이 떨어졌다.

“피로연은 그대들끼리 하도록.”

퇴장의 웨딩 마치는 약탈혼다웠다. 국왕은 성기사를 이끌고서 알현실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걸음이 빨랐다. 피 이외에 그녀를 흥분하게 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다들 나가라. 짐이 부르기 전까지 시중은 필요 없다.”

“네, 폐하.”

국왕의 침실에는 필요한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신방답게 달콤한 향이 피어오르고 은은한 촛불이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국왕은 성기사의 팔을 뿌리치듯 놓고 가슴팍을 밀었다. 그는 끌려올 때부터 그랬듯이 저항 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시리도록 맑은 벽안이 국왕과 시선을 맞춰왔다. 그녀로 하여금 가지고 싶으면서도 부숴버리고 싶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눈이었다.

그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 하얀 제복을 구깃하게 쥐었다. 이대로 잡아당기든 밀어 넘어뜨리든 저 좋을 대로 가학심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때였다.

“칼리.”

“…….”

멈칫, 그녀의 행동에 제동이 걸렸다.

그 틈에 온기가 그녀의 한쪽 뺨을 덮었다. 성기사의 오른손이었다.

“역시 당신이 맞군요.”

“…….”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칼리가 알펜시아드의 왕이셨을 줄은…… 윽!”

국왕은 성기사의 턱을 으스러뜨릴 기세로 틀어쥐었다.

“그래, 왕이 되었지. 가지고 싶은 건 다 빼앗아 가지려고.”

“…….”

“잘 지냈어, 이즈?”

짐짓 다정한 것은 음성뿐이었다. 오래전의 애칭이 나온 순간부터 그녀는 거짓으로도 웃을 수 없게 되었다.

답 없는 그를 그녀가 재촉했다.

“짐이, 아니, 내가 묻잖아.”

“…….”

“감히 나를 떠나서 잘 지냈느냐고.”

마지막 음성은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그녀의 붉은 눈 안에서 상처를 엿본 그가 괴롭게 표정을 무너뜨렸다.

“그때 일에 대해선…… 어떻게 된 건지 설명드리겠습니다. 들은 다음에 화내 주세요.”

“아니, 필요 없다. 지금은 듣고 싶은 기분이 아니니까.”

대화를 거부한 그녀가 드레스 자락을 크게 들춰 올리고 한쪽 무릎을 세웠다. 비단 니삭스에 감싸인 무릎이 성기사의 다리 사이를 뭉근하게 눌렀다.

“그런 것보다 지금은 국서로서의 의무나 다하도록 해.”

작은 숨 멎음과 함께 성기사의 하반신이 저릿해졌다. 그는 무심코 시선을 내렸다가 퍼뜩 놀랐다. 어쩐지 아까부터 배가 당긴다 싶더라니 어느새 그의 바지춤이 빠듯하게 부풀어 있었다.

당황하는 그를 보며 그녀가 픽 웃었다.

“성기사라고 약에 내성은 없는 모양이지.”

“설마, 아까 마신 술이……?”

“그래. 국서가 첫날밤에 부실해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깨달은 즉시 성기사는 몸 상태가 급변하는 것을 느꼈다.

열기로 시야가 흐려지고 입에서 뜨겁고 거친 숨이 뱉어져 나왔다. 통제 바깥에 있는 묘한 감각이 그의 몸을 잠식하고 정신을 굴복시키려 들었다.

“하…….”

극심한 목마름과 같은 괴로움을 참고자 손등의 뼈마디가 희게 도드라지도록 주먹을 쥐어보았다. 평소의 반의반도 안 되는 악력은 그나마도 금방 풀려버렸다.

국왕의 기대보다 훨씬 센 약효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윽!”

듣기 싫다는 듯이 국왕이 무릎에 무게를 강하게 실었다. 터질 것 같은 남성에는 폭력적인 자극이었다.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이 그녀의 무릎에 간신히 닿았다. 그러나 차마 밀어내지는 못했다.

그동안 국왕의 시선은 그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반지를 향해 있었다. 약지. 결혼이나 약혼과 관련된 손가락이었다.

붉은 눈동자에 불꽃이 튀었다. 그녀는 성기사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탄탄한 허리를 휘감은 가죽 벨트가 순식간에 풀려나갔다. 당혹하는 그를 노려보며 양손을 붙잡아 가차 없이 침대 기둥에 결박했다.

“이게, 무슨, 풀어주십시오.”

“싫구나.”

“칼리.”

“아양 떠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이대로 얌전하게 굴어.”

그녀는 정말로 그를 약탈할 심산인 듯했다.

거침없는 손길이 성스러운 기사 제복을 잡아 좌우로 활짝 벌렸다. 셔츠까지 단번에 찢어내자 근육으로 잘 짜인 상체가 섬세하고 단단한 굴곡을 자랑하며 훤히 드러났다.

탐미적인 남체를 내려다보던 국왕이 손을 펼쳐 그의 목덜미부터 탄탄한 가슴까지 쓸었다. 약 기운이 도는 피부는 열감을 띠고 촉촉하게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손길을 느낀 흉곽의 오르내림이 좀 더 거칠고 빨라졌다. 입술 색과 똑같은 유두를 건드리자 그의 목에서 억눌린 신음이 샜다.

자극받은 국왕이 다급히 제 옷도 벗기 시작했다. 탈피하듯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어 던지자 슬립 차림의 몸이 드러났다. 짧고 얇은 슬립은 풍만한 윗가슴과 단련된 허벅지를 다 내보였다.

성기사의 호흡이 일순 멎었다. 흐려져 가던 벽안에 욕망이 서서히 깃들었다.

국왕은 그 이상 벗지 않고 성기사의 하체에 손을 댔다. 바지를 활짝 벌리자 압박에서 해방된 남성이 퉁기듯이 바깥으로 나왔다.

“카, 칼리!”

다급한 부름은 거의 신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곳마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 속살 깊이 파묻기 좋도록 크고 굵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휘어진 데 없이 곧고 색이 깨끗한 기둥과 유혹하듯 불그스름하게 물든 선단의 살점은 꼭 성기사인 저를 닮았다.

그 탓인지 귀두에서 맑은 선액이 방울져 흐르는 모습이 괜히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국왕의 시선을 느낀 듯 곧은 기둥은 힘줄이 불거지며 더욱 크고 두껍게 부풀었다.

그가 정신을 놓을 듯한 기분으로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이는 동안, 그녀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냥은 안 들어가겠어.”

국왕은 협탁의 장미 향유를 제 손에 듬뿍 묻히고 엉덩이를 띄웠다. 젖은 손이 더듬어 들어간 곳은 그녀의 허벅다리 사이였다.

슬립에 가려진 곳에서 찌걱찌걱 야릇한 물소리가 울렸다. 손이 들락거릴 때마다 미처 안에 들어가지 못한 향유가 시트 위에 뚝뚝 떨어졌다.

국왕은 성가시다는 듯이 대충 넓히는 작업을 끝내버리고 성기사의 몸에 올라탔다. 홀린 듯이 멍하던 벽안에 초점이 잠깐 돌아왔다.

“아, 안 됩…니다. 이, 대로는… 다치실…….”

“입 다물어. 재갈까지 물리기 전에.”

의도와 관계없이 그의 거부는 국왕을 더 사납게 만들었다. 그녀는 선액으로 번들거리는 우람한 남성을 쥐고 향유로 젖은 좁은 입구에 맞췄다.

“윽.”

“헉.”

허리를 내림에 따라 도톰한 살점과 질구가 귀두를 머금었다. 그러나 빡빡한 구멍으로 받기엔 그의 것이 너무 컸다.

국왕의 전신이 땀으로 촉촉해졌다. 한참이 지나도록 그녀의 아래는 고작 선단을 꽉 문 채로 얕은 진퇴를 거듭할 따름이었다.

“흐, 으윽…… 칼리…….”

넣을 듯 말 듯 애태우는 감각이 성기사를 미치도록 했다.

국왕은 황홀한 고문에 취해 헐떡이는 성기사의 모습을 조금 짜증스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이 은발을 포악하게 그러쥐었다.

“무엄하게, 네가 너무 발정이 나는 바람에 잘 안 들어가잖아.”

“죄송…합니다. 윽…….”

순순한 대답에 그녀는 실소했다. 초점을 잃고 흐려진 눈을 보아하니, 약 기운 때문에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국왕은 당장 삽입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는 자리를 옮겨 성기사의 얼굴 위로 올라탔다.

“칼리……?”

장미향 나는 분홍빛 속살이 눈앞에 위치하자 벽안이 흔들렸다.

국왕이 명령했다.

“핥아라.”

“…….”

“넣고 싶으면 어서.”

성기사의 몸은 거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홀린 눈으로 속살을 보던 그가 본능에 따라 떨리는 입술을 댔다. 정점에 입 맞추고 보드라운 살갗을 입술로 깨물다가 빨아올렸다.

“의외로 꽤…… 흐읏.”

신음에 독려받은 뜨거운 혀가 강하게 비벼지기 시작했다. 미끈하고 부드러운 살갗을 탐식하듯이 핥고 빨다가 혀끝을 세워 속살을 파고들었다.

타액과 애액으로 미끈하게 낸 길을 따라 말랑한 살덩이가 들락날락을 반복했다.

“하… 읏, 흐응… 아…….”

은발을 파고든 국왕의 손가락이 저절로 곱아 들었다. 골반이 저릿하게 떨려 왔다.

“하아, 그만……!”

질구가 숨을 쉬는 듯이 개폐되었다. 푹 젖어버린 안에서부터 애액이 왈칵 터져 성기사의 얼굴에 튀었다.

국왕은 호흡을 고르며 그를 살폈다. 고귀한 성기사의 얼굴에서는 치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젖은 콧날과 번들거리는 입술을 하고서 애타게 그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약에 단단히 취한 지금 그를 가져야 했다. 국왕은 삽입을 위해 다시금 자리를 잡고 몸을 내렸다.

“윽…….”

“크읏.”

성기사의 것이 그녀의 주름을 뚫고 안을 빠듯하게 벌리며 파고들었다.

고작 반을 품었는데 벅차도록 크고 뜨거운 부피감이 그녀의 몸을 잘게 떨리도록 했다.

곧 그녀는 결심한 듯이 이를 악물고 그의 위로 털썩 앉았다. 남성이 속살에 콱 박히며 완전한 삽입이 이루어졌다.

국왕이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약 때문에 정신이 나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국왕은 픽 웃으며 대꾸했다.

“…빌어먹게, 크구나.”

다행히 국왕의 아래는 성기사를 삼킨 감각에 금방 익숙해졌다. 뿌듯한 만족감이 골반을 저릿하게 울렸다. 터질 듯이 맥박치는 성기사의 남성이 내벽을 두드렸다.

국왕은 그것을 아래로 조여 물며 살짝 움직여보았다. 밑에 깔린 이의 반응은 직방이었다.

“큭……! 칼리……!”

야릇한 물소리를 내며 기둥과 속살이 미끌미끌 비벼졌다.

쾌감에 휩쓸린 성기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국왕 역시 쾌락을 좇았다. 엉덩이를 더욱 높게 띄워 움직이자 풍만한 가슴이 탐스럽게 출렁였다. 아래에 깔린 성기사를 애 닳게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가죽 벨트로 결박된 그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아…… 칼리……. 하……!”

성기사는 절제 없이 헐떡였다. 그는 국왕을 더욱 깊이 탐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국왕이 작게 웃었다.

“이즈,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 알아?”

“하, 칼리…….”

“성기사라는 분께서…… 여자의 아래를 빨더니 이제는 스스로 허리를 흔드시나?”

“미치, 겠습니다……. 제발, 칼리…….”

“이제 애원까지 해?”

국왕은 일부러 얕은 자극만 가도록 골반을 살살 돌렸다.

“이럴 거면 성기사는 왜 됐어? 응?”

“아, 크흣…. 칼리… 부디…….”

“날 떠나지 말고 얌전히 기다렸어야지. 그랬으면 진작 이렇게 예뻐해 줬을 텐데.”

성기사는 괴로움으로 찌푸린 얼굴조차 지독하게 매력적이었다. 그런 미남자의 뺨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기 위해 국왕이 제 상체를 성기사의 몸 위로 포갰다.

부우욱.

뭔가가 찢기는 소리가 귀를 울린 것은 그때였다.

국왕은 허리를 감싸 안는 뜨거운 손에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들자 너덜너덜해진 가죽 벨트가 기둥에서 달랑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너! ……읍!”

결박에서 풀려난 성기사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국왕의 입술을 찾아 먹어치우는 일이었다.

뜨거운 혀로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안을 헤집었다. 갈급한 입맞춤을 한참 동안 이어간 뒤에는 이마부터 턱 끝까지 얼굴 전체에 키스를 퍼붓고 귓불을 깨물었다.

성기사는 한 손으로 국왕의 허리를 받치고 다른 손은 그녀의 쇄골에서부터 미끄러뜨려 가슴에 가져다 댔다. 얇은 천 너머로 부드러운 부피감과 봉긋한 돌기가 느껴졌다.

참지 못한 손이 슬립을 내려 걷었다. 손아귀에 쥐인 가슴이 부드럽게 뭉그러졌다.

그의 숨이 일순 멎으며 벽안이 욕망으로 짙어졌다. 성기사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그는 즉시 퍽퍽 소리가 나도록 허리를 짓쳐 올리기 시작했다. 질컥질컥 물이 튀었다.

“감히…… 하읏!”

통제권을 뺏긴 국왕은 단단한 품에 안긴 채 쾌락을 받아들였다. 행위를 이어가면서 성기사는 쉴 새 없이 그녀에게 입 맞췄다.

호흡을 고를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입술을 떨어뜨릴 때면, 국왕의 눈에는 지독히도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고결한 성기사가 짓기엔 음란한 표정이었다.

미약이 성기사의 이성을 날리고 자제가 되지 않는 상태까지 끌어내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국왕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짐승이 따로 없구나.”

대꾸할 여유도 없이 성기사는 국왕의 나신을 시트에 눕혔다. 욕심만큼 그녀의 허벅지를 벌려 최대한 깊게 그를 받아내도록 했다.

두툼한 기둥이 미끄덩거리는 점막을 다시금 뚫고 들어갔다. 곧 젖은 살과 살이 치댔다.

“아흣! 앗! 응, 하으읏!”

“칼리…, 크읏, 칼리…….”

선단에 걸치도록 빼냈다가 뿌리까지 콱 박아 넣기를 반복했다.

선액을 흘리며 내벽을 긁듯이 비벼댐에 따라 절정감이 국왕을 정신 못 차리게 했다. 이성이 짓뭉개진 그녀가 그를 마주 끌어안으며 이름을 불렀다.

“이즈, 흣, 으응, 이즈…….”

국왕은 지금 스스로가 얼마나 다정하고 달콤한 음성을 내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성기사는 뭔가를 견디듯 턱에 힘을 주었다. 그 와중에도 멈출 기색이 없는 허릿짓에 따라 미지근한 땀이 국왕의 몸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칼리……!”

한계에 다다른 성기사가 국왕을 꽉 끌어안았다. 저를 가장 깊숙한 곳에 파묻은 채로 그가 등줄기를 잘게 떨었다. 그의 남성이 그녀의 안에서 한참이나 꿀렁거렸다.

두 사람은 혼몽한 눈을 하고서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여운에서 먼저 벗어난 것은 약에 취하지 않은 국왕이었다.

“감히.”

그녀의 손이 성기사의 턱을 부서뜨릴 듯 쥐었다. 붉은 눈은 노여움으로 이글거렸다.

“짐이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안에서 가버리다니.”

“죄송, 합니다.”

“다시 세워라.”

“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순식간에 빠듯하게 부풀어 오른 남성이 다시금 국왕의 허벅다리 안을 찔렀다.

행위는 지치지 않고 반복되었다. 국왕은 약효가 너무 오래 가는 것 아닌가 의아했지만, 몰아치는 쾌락 탓에 생각은 금세 끊겨버렸다.

그리고 어느덧 첫새벽이 밝았다.

질퍽해진 곳에서부터 하얀 거품이 고여 흘러내렸다. 울혈 가득한 국왕의 허벅다리가 경련하며 내벽이 조여들었다. 쥐어짜인 남성은 이제 사정을 해도 맑은 물만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만, 됐다…….”

국왕이 지친 손길로 성기사를 밀어냈다. 욕정을 풀만큼 풀고 나서야 드디어 약 기운이 떨어진 듯, 성기사는 천천히 허리를 뒤로 물렸다.

단단히 박혀 있던 남성이 뽑혀나가자 구멍에서 백탁한 액체가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적나라한 광경에 국왕이 부러 타박했다.

“하, 대체 얼마나 해댄 거냐.”

“…….”

이제 좀 이성이 돌아오는지 성기사는 차마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목덜미가 붉었다.

한편 그것은 국왕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만드는 외면이었다.

그녀는 성기사의 턱을 잡아 제게 향하도록 한 뒤 작게 으르렁거렸다.

“외면해도 소용없다. 첫날밤까지 치렀으니 짐과 그대의 결합은 유효해.”

“…….”

성기사는 의아한 눈으로 국왕을 보다가, 문득 그녀의 시선이 제 왼손 약지에 고정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국왕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가라앉은 것은 그때였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결혼의 증표를 주지 않았지. 그런데…… 그대는 이미 반지를 끼고 있구나.”

“아, 이건…… 지금 빼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 없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국왕은 성기사의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읏, 칼리?”

나긋한 손길이 두툼한 기둥을 훑었다. 국왕이 성기사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그댄 손가락보다 여기가 더 예쁘니.”

남근이 금세 힘을 받아 꺼덕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손을 뗀 국왕은 협탁을 뒤져 아름답게 세공된 한 쌍의 링을 꺼냈다. 반지라기엔 크고 팔찌라기엔 애매한 사이즈로, 잡아당기면 둘레를 약간 넓히기도 하는 구조였다.

국왕은 그것을 무방비한 성기사의 남성에 가져다 댔다.

“칼리?”

“짐이 주는 웨딩 링이다.”

“잠깐, 그걸 왜 거기에…… 윽!”

국왕은 한 쌍의 링을 성기의 뿌리 부분과 선단 바로 아래쪽에 각각 채웠다. 링은 발기한 성기를 위아래에서 꽉 옥죄며 요도를 조였다.

“예쁘구나.”

“무슨, 이런 걸…….”

성기사는 음탕하게 장식된 제 아래를 황망히 내려다보다가 신음을 흘렸다.

국왕이 어여쁘다는 듯이 다시금 남성을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링에 압박당한 채 받는 뭉근한 애무는 쾌감과 고통을 동시에 주었다.

“하, 으, 칼리…….”

억눌린 신음이 남자의 목을 울리고 애원하는 눈빛이 그녀에게 오롯이 고정되었다.

국왕은 제 손 안에서 통제당하는 남자의 모습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국왕은 이대로 오랫동안 그를 손에 넣고 놔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침 마땅한 명분도 있었다.

“얄궂은 운명이라 생각해라. 네가 하필 하일릭의 후계자로서 짐과 재회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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