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열아홉
금요일 오후, 아이들이 하교를 마친 학교, 따뜻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서원은 선오와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움직이기도 귀찮은지 미동도 없이 부는 바람을 맞고만 있었다.
서원은 아무래도 좋았다.
데이트랍시고 어떻게든 한번 자 보겠다고 머리나 굴리는 또래 남자애들과는 달라서 좋았고, 이렇게 가만히 노을을 보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아 좋았다.
"선오야, 이거 답 알아?”
"뭔데.”
“국사 모의고사 2번 문제 답."
서원은 선오가 문제지를 건네주자마자 답을 확인했다. 저처럼 문제지에 밑줄을 여러 번 그은 흔적도 없이 답만 체크된 깔끔한 문제지.
"어, 맞았다! 나도 이거 3번 했는데.“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아냐, 맞을 거야.”
"너 나를 너무 믿는 거 아니냐?"
"지난번에도 만점 받았잖아."
"늘 만점을 받을 순 없지."
"그래도 믿는 게 뭐 나쁜 건가?"
“그런 건 아니긴 한데..."
그럼 뭐가 문제냐는 듯 서원이 생글생글 웃었다. 너무도 뻔뻔해서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렇지만 생긋 웃는 저 얼굴에다 대고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어 선오는 서원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뭐, 이렇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고,
생각해보면 그녀는 처음부터 좀 이상했다.
1년 전, 공에 맞을 뻔한 그녀와 맞닥뜨린 게 첫 대면이었던 거 같은데, 괜찮으냐 물어도 멍하니 올려다보기만 하고, 우연히 하굣길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하등 관심도 없어 보이던 그녀가 첫 고백을 했던 것도 그 이흐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가만히 기억을 곱씹는 사이 그녀가 환한 미소로 불었다.
"너 저녁 먹고 들어갈 거지? 같이 라면 먹으러 갈래?"
"......"
“왜 그렇게 봐?”
1년 전쯤, 그녀가 건넨 첫 고백에 분명 거절을 했었다. 그런데 고3이 되고, 그녀가 다시 고백을 해왔다. 몇 번만 만나 달라니. 순간 왜 저 눈을 보며 거절치 못했을까.
선오는 고요히 쏟아지는 그녀의 두 눈동자를 응시했다. 대놓고 꼬시는 건지, 순진한 척 꼬시는 건지, 어느 쪽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그녀의 말이 허튼소리는 아닌 듯 보였다.
"별로 생각이 없네. 너 혼자 먹고 들어가라.”
"아까 점심도 안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 같이 가자. 나 잘 아는 라면집 있어. 응?"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린다.
그 눈이, 휘어지는 눈매가. 도톰한 입매가 그랬다.
말없이 그녀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맞춰주자 그제야 기분이 좋은지 서원이 발을 동동거리며 길을 잡는다.
"너 라면 좋아해? 난 좋아하는데."
호응해주지 않아도 굴하지 않고 웃는다. 이상하게 조잘거리는 소리가 밉지 않았다.
<금단증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