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중심축 (17/20)

3. 중심축

새콤한 음식이 먹고 싶어 덜 익은 귤을 사 왔다. 서원이 살던 집은 주인이 바뀌어도 여전히 그녀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런 거 말고 밥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니?" 

“응. 근데 요샌 이런 게 더 좋아. 엄만 괜찮아? 가게는 왜 나오지 않겠다는 건데?"

"이제 네 인생에 엄마는 발 안 담그려고 해, 더는 개입 안 할 거야. 괜히 내가 껴서 들...." 

“엄마.” 

"엄마는 엄마 살길 알아서 잘 찾을 테니 넌 네가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 그냥, 더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괜찮아. 더 바랄 게 없어. 부모 복 없으니 서방 복이라도 있어야지. 더 이상 내 걱정 한다고 네 인생 멈추지 마." 

서원은 가끔 화연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 친정집 오듯 빌라를 찾았지만 화연은 그마저도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윤애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얼마 전에 문 서방이랑 거기서 쉬다 왔다며."

“이제 언니한테 내려갈까 하고, 엄마도 다 생각해둔 게 있어. 걱정 마. 절대 너한테 짐 되는 일 없을 거야. 이제 엄마도 엄마 인생 살 테니 너도 네 인생에 더 집중해."

화연이 희미하게 웃는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녀는 제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했다. 

서원이 장사든 뭐든 홀로 잘해 내고, 생활력이 강한 건 엄마인 화연을 닮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원에게 침이 되는 것도 원치 않겠지만, 선오를 보는 것도 죄짓는 기분에 불편한 마음이 클 것이다. 

서로가 편치 않은 사이이니 그 화살이 딸에게 향할까 걱정이기도 할 테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자신의 욕심만으로 화연을 잡아둘 수도 없었다. 

또 귤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서원은 마음 한편이 울컥하는 와중에도 입 안 한가득 귤 한 알을 넣고 오물거렸다. 

“아이는, 건강하지?” 

"응. 우리 아기 낳을 때까지만 여기 있으면 안 돼?" 

“무슨 일 있으면 금방 올라올게, 아직도 엄마 눈엔 애 같기만 한데 우리 서원이." 

귤 하나를 더 까는데 전화가 왔다. 선오였다. 잠깐 고민하며 머뭇거리자 어서 받아보라고 화연이 눈짓을 했다. 

“응, 선오야. 안 그래도 집에만 있기 따분해서 잠시 나왔어. 이제 출발하려고, 아냐, 데리러 올 필요 없어. 여기서 바로 택시 타고 가면 돼. 금방인데 뭘, 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서 가방을 챙겨 들었다. 

"엄마, 나 이제 가볼게.” 

“그래라. 너 너무 오래 있었던 거 아냐?" 

“어차피 오늘은 습도 쉬는 날인데, 뭘. 나오지 마요." 

서원은 빌라를 나와 불러놓은 택시로 올라탔다. 삐거덕, 열린 창문 틈으로 걱정 섞인 눈을 한 화연이 보였다. 

어서 들어가라 손을 흔들었다. 

"H호텔로 가주세요."

서원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걸었다. 데이트하자고 하더니 호텔로 오라는 건 뭐야. 

물론 호텔이 숙박만 제공하는 업체가 아닌 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눈에 훤했기에 그의 의도가 충분히 의심스러웠다. 

서원은 내심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고 그와 마주 앉았다.

“왜 거기 있어, 이리로 와." 

그가 자신의 연자리를 톡톡 두들긴다. 그는 마주 앉아 있는 것보다 늘 그의 옆자리에 앉는 걸 좋아했다. 

물론 슬쩍 은밀한 손장난을 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가 발기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을 찾다가 급히 사방이 막힌 곳을 찾아 들어가기도 했었다. 

"빌라 갔었어?"

"응."

답을 하며 슬쩍 눈치를 봤다. 엄마에 관련된 말은 되도록 꺼내지 않으려 했는데 그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녀의 몫으로 주문한 주스를 앞에 놓아주며 자연스럽게 손을 닦는다. 

"숍 쉬는 날이기도 하고, 안 본 지도 좀 돼서 갔다 왔어." 

웃지도 못하고 말을 돌리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미소만 띠는데 그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누가 너더러 엄마랑 연 끊으래? 왜 그렇게 눈치를 봐."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은연중 남아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실을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점차 나아지고 있는 중이니, 서로가 그것으로 만족했다. 

더 무리하고 싶지도 않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를 애써 붙이려 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반감만 깊어질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가끔은 줄을 타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허공 높이 매달린 줄 위에 서 있어도 넘어지지도 떨어지지도 않으니, 서원은 지금 이 상태로도 좋았다. 

“오늘 우리 하루 자고 갈까? 너 괜찮아?" 

“꼬시는 멘트 좀 참신할 수 없어?" 

"그래도 너한텐 이렇게 직접적인 게 제일 잘 먹혀서.”

"......"

“왜?” 

“내가 이렇게 쉬운 놈이었다는 게 새삼 어이가 없어서." 

그는 그녀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남자였다. 

하지만 신서원 한정으로 쉬워지는 남자라니. 

그건 더 짜릿한 일이었다. 

서원은 슬쩍 그에게로 더 붙어 앉았다. 

“왜. 더 꼬시려고?” 

주위를 살피던 서원이 발그레한 뺨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 보여주고 싶어서." 

그리고 낮게 소곤거렸다. 

“내 보지가 왔다 갔다 하면서 문선오 자지 빨아 먹는 거." 

어젯밤, 침대 헤드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민 채 상체만 시트로 숙인 자세로 열심히 방아질을 하며 보란듯이 제 안에 자지를 파묻었었다. 

추잡에 열을 올리고 있을 보지의 생생한 모양하며 애액을 질질 싸는 추접한 모습을 그에게 잘 보여줄 수 있는 자세기도 했다. 

그녀의 음탕한 보지 놀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남자.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는 한참 동안 교합부를 감상했다. 

아닌 말로 떡메라도 치듯 육중한 기둥을 안으로 박을 때마다 찌걱찌걱 떡 치는 소리가 그야말로 상스러웠다. 물론 그래서 더 흥분했다.

'밑에서 야한, 아응, 아앙, 소리, 나, 아!' 

'더 소리 내면서 빨아. 그래야 더 맛있지.' 

정말 구멍이 아이스크림 자지를 빨듯 추릅, 춤, 츄읍, 쩍, 쩍, 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던 게 생생하게 들렸었다. 

입을 쩍 벌린 질 구멍이 자지를 안으로 안으로 끊임없이 삼켰다가 게워내며 게걸스레 빨아댔었다. 

윤활유로 기름칠이 된 페니스가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갈 때면 정말 배 속까지 더부룩한 기분이 들었다. 

질 내 깊숙이 안착한 페니스를 맛보느라 엉덩이를 좌로 돌리고 우로 돌리고, 보란 듯이 감탕질을 했었다. 

'우으응, 너무 커서, 더, 맛있, 흐응, 아.' 

애액 시럽이 잔뜩 발린 아이스크림 자지가 맛있다고, 눈이 풀리면서도 엉덩이를 끊임없이 흔들어 교미에 정신을 쏟았었다. 보지 거품이 잔뜩 묻은 자지를 보며 그가 쯧 혀를 찼다.

'네가 얼마나 흔들었으면 좆 더러워진 거 봐라.' 

'괜찮아, 아흣, 으응, 나중에 입으로도, 아앙, 아, 빨아, 흣, 먹을, 거야, 아응.'

'그렇게 맛있어?' 

'후으응, 내 보지가. 아앙, 자지 잘 빨아, 응, 정말? 앙, 아!'

그렇게 물었을 때, 승천하는 용처럼 벌떡 일어선 성기가 안으로 팍팍 파묻히는 와중에도 거하게 꿈틀거리던 게 느껴졌다. 

희뿌연 정액을 뿌리는 순간에도 구멍을 이용해 찔꺽찔꺽, 앞뒤로 빨아 치대니 안에서 감기고 섞여 더욱 걸쭉한 소리가 났다. 

그녀 역시 좋았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분명, 그도 이성을 잃고 속절없이 넘어가는 자세 중 하나였다. 늘 뒤통수가 뜨거울 정도로 그의 시선이 쏟아졌으니까.

그걸 또 해주겠다고 유혹하는데 그가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씨발. 너 지금." 

"태교에 욕은 절대 안 된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장난해? 사람 돌게 만들어놓고 맨날 내빼지, 어?"

문선오가 제 우혹에 넘어가 회까닥 돌아가는 재미에 맛이 들렸다면, 그의 말대로 자신이 정말 요망한 요부인 걸까. 

여기서 사랑한다는 말까지 하면 정말 직격타인데, 그가 그녀를 끌고 올라가다시피 하며 손을 잡았다. 룸을 잡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그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미 발기한 것이다.

"저녁 먹으려고 한 거 아니었어?" 

"룸서비스는 괜히 있어? 너 빨리 안 와?" 

그가 바르게 걸음을 옮기면서 성을 내듯 말하는데, 그보다 더 화가 난 성기의 형태가 확연히 보였다. 

결국 또 저녁 식사는 물 건너간 셈이었다.

또 계절이 지났다. 엄마가 주는 양분과 아빠가 주는 사랑을 받으며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빨리 찾아온 진통이었다. 

선오는 출산 준비로 혼자 고동을 감내하고 있는 서원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머리칼에 식은땀이 잔뜩이었다. 눈물을 흘리 면서도 즉즉 손등으로 닦아내는 그녀가 애써 괜찮은 척한다.

"선오야.” 

"그래, 리틀 신서원 낳으면 이번엔 아이랑 셋이서 놀러 가자.” 

“울려고 하는 건 아닌데 자꾸 눈물이 나와." 

얼마나 아프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그녀가 입까지 씰룩거렸다. 울음을 참으려는 것이다. 

괜찮다고 다독였다. 더 원하는 대로 다 하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선오는 자신이 해줄 것이 없어 속이 상하고 가슴이 다 타들어 가는 아픔을 맛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색하면 그녀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 소리 없이 마음을 죽였다. 

그는 끙끙대고 있는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다 1인 병실 문 밖을 쳐다보았다. 빼꼼 모습을 보이는 여자. 

“어, 어디 가?” 

"어디 안 가. 옆에 있을 거야. 잠깐만 있어 봐.” 

선오는 병실을 나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화연과 마주 섰다. 

“연락해 줘서 고맙네."

여전히 그녀는 죄인이었다. 눈도 들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고맙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곁에 있어 주세요. 서원이한테 힘이 될 겁니다."

안으로 들어가려 걸음을 떼던 그녀가 다시 돌아와 마주 섰다. 

“자네한텐 내가 평생 속죄하며 살겠네. 염치없지만 우리 서원이 잘 부탁하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아니 나 때문에 평생 힘들었을 아이야, 죗값은 내가 다 받을 테니 우리 딸만은......"

출산할 때 친정 엄마가 큰 힘이 된다는 말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하는 모든 선택과 결정은 그 누구도 아닌 서원을 위주로 돌아갔다. 출산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서원을 모를 리 없었다. 

바보 같지만 이미 서원에게 자신을 내어줬을 때부터 제 삶의 중심축은 서원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그 훨씬 이전부터, 그 누구에게도 구태여 표현하지 않은 채 삼킬 뿐, 서원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입 밖으로 꺼낼 이유가 없었다.

따로 말이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관계, 이보다 더 굳건한 사이가 있을까. 그걸 사랑이라는 흔해 빠진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표현이 어려웠다. 

자신이 배운 그 어떤 단어를 조합해도 이 마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 마음을 입맞춤 한 번으로 대신하면 서원은 곧잘 알아듣고 안겨 오곤 했다. 

나도 너와 마음이 같다는 듯.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