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잇닿은 시간 (11/20)

10. 잇닿은 시간

“문선오 아나운서, 우리 숍에 몇 번 오셨던 분 맞죠? 사장님 찾으러 오셨던….”

“두 분 어떤 사이예요? 사장님하고 같이 있는 거 보니까 친해 보이시던데.”

서원이 지난 시간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종종 받아 온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친한 친구라고 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연인 사이라 답했다. 선오에게 둘 사이에 대해 은연중 허락을 받은 이후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네 마음대로 하라며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던 그였다.

“…그냥.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기도 하고… 부모님이 서로 아는 사이기도 하고.”

“문선오 아나운서가 사장님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 맞아.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직원들이 괜히 하는 소리에도 서원은 기분이 좋았지만 역시나 부담도 되었다.

엄마가 출소하는 날짜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다. 좋았지만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그가 좋은데, 여전히 자신의 유일한 사랑인데, 정말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아도 되는 건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언젠가 문제가 될 그날의 일을 떨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다.

그는 상관없다 했지만 그 문제로 힘들어할 선오를 볼 자신이 아직은 없었다.

“어제 그 남자들 난동 부렸을 때도, 사장님 나가셨다니까 바로 뛰어가시고.”

그래서 그렇게 찾아온 거였구나.

대체 왜 가게 이전을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가 원한다면 늘 두말 않고 했었다. 늘 그의 의견이 타당하고 합리적이었으며 옳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 질문에는 마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다. 그는 그런 남자였고, 그런 선오의 면을 사랑했다. 자신과는 달리 늘 냉철하고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일무이하게 몸을 섞을 때를 빼면.

“그나저나 비가 엄청 오네요. 벌써 며칠짼지.”

“그러게요. 장마도 아닌데. 이러다 작년 태풍 때처럼 도로 잠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에이 설마, 태풍도 아닌데 그 정도까지 오려구요.”

“지난 태풍 때 갑자기 폭우 때문에 도로에도 물 차서 저 교통사고 나고 한동안 고생했잖아요. 차도 침수될 뻔하고. 일기예보에서는 오다 말 거라더니 맞는 게 없지.”

직원들이 창밖을 보며 한마디씩 걱정 섞인 목소리를 했다. 그가 이 비를 뚫고 잘 들어갈지 또 걱정이었다. 어차피 숨길 수 없는 마음이었다.

둘 사이의 문제는 마음이 식고 말고가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전화를 한번 해볼까. 목소리가 너무나 듣고 싶었다. 오는 전화도 안간힘을 써 받지 않고 있는데 그의 목소리가 그리워 눈물까지 찔끔 났다.

“사장님 기다리는 전화라도 있으세요?”

“아, 아뇨. 그냥….”

“혹시 문선오 아나운서?”

농담 반 진단 반으로 웃던 직원들이 난감해하는 그녀의 표정에 반색했다.

“어머, 정말이었어요? 정말 두 분 그런 사이인지는 몰랐어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비가 많이 와서 좀….”

그러고 보니 지난번 낚시할 때 둘러줬던 재킷도 못 돌려줬는데, 그 핑계 대고 얼굴 한 번만 보고 올까. 아니다. 한 번 보면 또 보고 싶어지고, 마음을 열게 되면 이젠 정말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지금도 겨우겨우 참고 있는데, 둑이라도 터지는 것처럼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그땐….

“어, 지금 문 아나 ST기업에 강연 하나 봐요. SNS에 사진 올라왔네요.”

“어디, 어디요?”

퇴근 준비를 하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저는 문선오 아나운서 실물 두 번밖에 못 봤지만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아니 실물도 실물인데 그 목소리 실제로 들으니까 더 좋은 거 있죠. 사장님은 매일 들으시겠구나. 매일 뉴스 보는 거 같겠어요. 일상생활에서도 발음이 그렇게 정확하세요? 전 아나운서들 실생활에서도 그런지 그게 늘 궁금했어요.”

관심 많은 직원들이 한두 마디씩 보탰지만 서원은 조금도 웃질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간신히 단속하고 있는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였다.

“참, 사장님 재계약 어떻게 됐어요?”

가게 이전을 고려해보라고 그가 건네준 상가 자료들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하는데, 일단 얼굴을 한번 보기는 해야 할 거 같긴 했다. 그래. 다 핑계였다. 그가 너무 보고 싶어 만든 핑계.

조용히 재킷만이라도 놓고 올까. 그냥, 그의 흔적만이라도.

지금 가면 빈집일 테니.

쏟아진 비로 군데군데 웅덩이가 고였다.

운동화는 벌써 웅덩이를 밟아 양말까지 흠뻑 젖었다.

결국 그의 집까지 왔다. 몰래 재킷만 두고 갈 생각이었다. 물론 허울 좋은 구실이었다.

헤어지자고 해놓고 몰래 그의 흔적을 찾는 자신이 바보 같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마음이라면 사랑도 아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를 마음에 둔 순간부터 거스를 수 없었다. 아무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게 없었다. 숨기지 못하는 것이 사랑임을 부정하진 않을 생각이다.

“…….”

서원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순간 심장이 덜컹거렸다. 그가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다.

늘 쓰던 비밀번호를 눌러봤자 맞지 않는 번호라는 신호음만 울렸다.

자신이 그와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이었다. 공유하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정리하던 것. 물론, 더 엄밀히 말한다면 공유라기보다 저 혼자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해야 맞겠지만. 그가 그녀의 집으로 먼저 온 적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그가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늘 곁에 있었다.

그가 교환학생으로 떠난 순간부터 혼자 그의 집을 찾았다.

따로 약속 장소를 정하지 않고 이 집에서 만나는 게 어떠냐고 겨우 돌려 물었는데 그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 뒷자리를 부르며 대수롭지 않게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집엔 되도록 들어가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허락해줬다는 사실에 들떴었다.

이젠 발을 들이지 말라는 걸까. 그녀의 제안대로 이렇게 끝을 보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을 했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잘됐다.

재킷을 쥔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우리는 안 된다고 실컷 엄포를 놓고, 그가 보고 싶어 밤손님처럼 도둑걸음을 한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그 오랜 시간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비밀번호가 바뀌었단 건 결국 그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뜻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서원은 미어지는 가슴을 끌어안고 쓰게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왜였을까. 문득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르는 번호를 누르는데, 비밀번호가 일치할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

역시, 그가 자신의 집을 다녀갔었다.

우리가 처음 데이트를 했던 그날을 선오 역시 잊지 않고 있었던 거다.

0501.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데이트하자고 했던 그녀의 제안을 그가 받아준 날이었다.

‘늦었냐?’

‘아니. 전혀.’

다른 애들보다 유독 키가 큰 그가 교복 차림으로 휘적휘적 걸어오는데 앞으로 마주 서자 그림자가 졌다. 교복 셔츠가 달라붙어 있는 단단한 가슴이 먼저 보였다.

‘시험은 잘 봤어?’

‘시험보다도, 너 단추.’

‘응? 아.’

교복 셔츠 단추 하나가 풀려 중간이 벌어져 있었다. 어서 잠그라 턱짓하던 그가 남자애들이 지나가자 삐딱하게 앞을 막아서는데 그날 그는 완전히 신서원의 남자가 됐다.

확신했다. 이 남자라면 제 사랑이어도 되겠구나.

서원은 대문 앞에서 문을 열지도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역시 그녀의 마음과 같다고, 그가 말하고 있다. 그 역시 우리의 처음을 잊지 않았다고.

네가 너무 좋아. 네가, 네가 너무 좋아. 선오야.

울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문선오 앞에선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아무런 계획도 계산도 할 수가 없다.

서원은 한참만에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밀려오는 문선오 향기. 그의 스킨 냄새.

변한 게 없는 집은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고 간 칫솔, 속옷, 브래지어, 장난처럼 끄적거리고 간 메모장의 낙서도, 모든 게 그대로였다.

꼭 이 집에 자신만 들어오면 모든 게 제자리인 것만 같은 집.

서원은 조심스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침대에 앉자 선오의 스킨 향이 그야말로 태풍처럼 범람했다. 이불에 얼굴을 묻고 안정제처럼 그의 향을 들이켰다. 밖은 여전히 비가 쏟아졌다.

이곳은 지난 세월 유일했던 그녀의 안식처였다.

그냥 그가 내미는 손을 잡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고민했다. 그 중심엔 엄마 화연이 있었다.

정말 두 사람의 손을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 * *

선오는 다소 피곤한 몸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지긋지긋한 비는 내일 새벽이 되어서야 그칠 거라고 했다.

습관처럼 넥타이를 끄르고, 걸치고 있던 슈트 재킷을 대충 벗어 테이블에 얹는데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는 다른 미묘한 분위기.

집은 전과 다를 게 없었지만 꼭, 꼭 어딘가 달라진 듯한 분위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안을 둘러 보았지만 서원은 없었다. 거실 의자에 전에는 없었던 재킷이 걸쳐져 있을 뿐.

며칠 전 그가 그녀에게 둘러 주었던 옷이었다.

서원이 다녀갔다.

그 사실이 확실해지자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선오는 그길로 대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운전대를 잡고 빗속을 헤쳐 달렸다. 전화를 하려고 옷을 뒤적거리는데 습관처럼 겉옷을 테이블에 얹어둔 게 생각났다.

비가 많이 와 도로 위의 차들이 서행한다.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핸드폰도 없고 도로는 꽉 막혀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니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온다고 말도 안 하고 몰래 도둑걸음을 해놓고, 앙큼하게 다녀갔다는 흔적만 남겼다.

제 속을 태워 죽이려고 작정을 한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다시 제 품에 안으면 엉덩이를 때려줄 심산이었다.

야속한 비는 속절없이 내린다.

선오는 익숙한 골목에 주차를 하고 그녀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신서원.”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잠금장치를 걸었는지 열리지 않았다. 비밀번호는 바꾸지 않은 게 분명했다. 끝까지 정말.

“나 죽일 거 아니면 이 문 열어.”

그래도 답이 없다.

“나 다른 여자 만나?”

분명 집 안에 있는데, 이 문 너머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거 다 아는데, 그녀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너 좋아하는 거, 다른 여자한테 다 해줘도 돼? 정말 그래?”

다른 여자한텐 죽어도 싸면 안 된다고, 이 자지는 제 안에만 들어올 수 있는 거라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짐받던 그녀였다. 다른 사람이 그의 아기를 낳으면 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고, 밑을 빨아주는 것도 다른 여자한텐 절대 해주지 말라고, 눈치를 보면서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안겨 오던 그녀였다.

못 이기는 척 수긍해주면서도 속 시원하게 약속해주지 않아 늘 그녀가 애타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신서원.”

그녀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분명 그녀 역시 자신과 같으면서.

“그래, 알았어. 다른 여자 보지도 빨아주고 너 좋아하는 자지도 박아줘야지, 뭐. 별수 있어?”

침묵뿐인 대문에서 돌아 나와 아무렇게나 주차해놓은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다.

천천히 골목을 나와 그녀의 집이 보이지 않을 때쯤, 선오는 긴 한숨과 함께 운전대로 고개를 박았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그녀의 집 앞까지 빠르게 후진했다.

그녀가 신발도 채 신지 않고서 골목에 나와 서 있었다. 멀어져가는 차 뒤꽁무니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선오는 차에서 내려 비를 맞고 있는 그녀와 마주 섰다.

“신서원.”

“싫어.”

잔뜩 비를 맞아 눈물인지 뭔지 알아보긴 힘들었으나 분명 울음이었다. 자신은 그녀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른 여자한테 그러지 마. 제발.”

사랑스러운 눈으로 애원하는데 심장이 녹아떨어질 것만 같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아닌 척 해왔었다. 선오는 손을 뻗어 올려다보는 머리통을 끌어안았다.

“선오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골목 한복판에서 부둥켜안고 있었다.

미친 짓이었다. 어차피 그녀를 사랑한 순간부터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지금 알았을 뿐.

* * *

그대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그의 집으로 왔다.

씻고 나와 나란히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데 서원은 촉촉이 젖은 눈으로 그를 염탐했다.

“뭐, 왜 또. 신서원 그렇게 보면 무서워.”

“나 궁금한 거 있어.”

“뭔데.”

선오는 옆으로 와 앉는 그녀를 보며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의 품 안으로 쏙 들어온다.

“너 이거 손에 상처 뭐하다가 다친 거야?”

질투에 눈이 뒤집혀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발버둥 혹은 발악의 증거였다.

그걸 그대로 말했다간 다신 없을 쪽팔림을 감당해야 할 게 뻔했다.

“말 안 해줘.”

“그리고 우리 가게 건물주분이랑은 원래 아는 사이야? 아니잖아. 근데 왜 그때 나쁜 놈이라고 했어?”

그 또한 손에 난 상처와 관련이 있기는 한데.

“말해봤자 너 안 믿을 거야.”

“뭔데 그래?”

가슴에 안긴 채 그의 다리 사이를 노린다 싶더니 살살 페니스를 만지며 손장난을 치는데 헛웃음과 실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서원이 이거 없이 그간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한시도 제 좆 없인 못 사는 신서원이 오래도 버텼지. 하긴 그녀를 조소할 것도 없었다. 저 역시, 아니,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명주를 안으면서도 이 몸이 그리웠으니.

“난 미친놈 되기 싫다.”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 말해봤자 저만 미친놈 되는데, 굳이 말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말해주면 빨아줄게.”

“하여튼 신서원, 너 때문에 못 살아. 어? 더워. 너무 딱 붙지 마.”

“거짓말.”

키득거리며 안기는데 선오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참. 그리고 너, 다른 놈한테 서방 소리 하기만 해. 내가 그 서방님 소리에 화병 났던 거 생각하면.”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서방? 서방님?”

“야.”

요리조리 대답을 피하는 그녀가 웃는데, 그 웃음에도 안도가 물안개처럼 가슴 안을 채운다.

“잠옷 치마 빨아놨네? 문선오 섬유유연제 냄새 난다.”

“좋다며.”

“응. 네 냄새는 다 좋아.”

눈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느새 시선이 은근해지고 야릇 미묘해진다. 그것을 눈치 못 챌 그녀가 아니었다.

손을 내려 제 잠옷 치마 속, 속옷을 옆으로 밀어젖히는데 손으로 만져달라는 뜻인 듯 보였다. 보지도 넓힐 겸 어차피 할 거, 한번 절정을 보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해 손을 뻗었다.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씹질을 하는데 달뜬 눈꺼풀이며 뺨이 느끼느라 한창이다. 젖은 구멍 속이 불덩이다. 보지 좀 만져준 것만으로도 흥분할 대로 한 것이다.

“더 돌려줘?”

“으응, 응. 거기, 거기. 아앙!”

“하여튼 야해, 신서원.”

살짝 감은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쌀 때 치마 올리고 싸.”

“응, 으흣.”

“뒤도 만져줘?”

“아흐… 일단, 흐, 보지만.”

치맛자락을 내려 그의 손을 숨겨놓고 얌전히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어째 더 음란해 보인다. 손가락을 굽혀 뜨뜻한 액이 괸 안쪽까지 꺼덕거리며 쳐대자 기어이 눈이 풀리는데 이런 그녀를 볼 수 있는 게 저뿐이라 그게 기뻤다.

그의 굵직하면서도 길쭉한 손가락을 앞뒤로 비비적대며 미끄럼을 타던 그녀가 페니스를 넣어 달라 신호를 보내왔다.

“자지 넣고 쌀래.”

“올라와.”

그녀를 위로 올려 앉히고 등을 받쳐 안았다. 그러자 무게중심이 자연스레 앞으로 쏠려 그녀가 목을 끌어안는다.

상체를 숙여 그의 목을 꽉 껴안는 서원이 쌔근쌔근 가쁜 숨을 쉬며 삽입을 기다렸다. 선오는 급하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눌러 죽이며 꺼낸 성기를 쥐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입구로 꽂아 넣었다.

무리하지 않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 질구서부터 순차적으로 밀고 들어갔다.

우람한 살덩이에 질주름이 밀려 올라가고, 눅진눅진한 속살이 귀두를 찬찬히 눌러 감싸는 생생한 느낌.

선오는 그를 집어삼키는 구멍 주위를 문지르며 좀 더 유연하게 품을 수 있도록 풀어주었다.

“천… 천히.”

“여기서 어떻게 더 천천히 넣어.”

콧구멍에 방망이 끼우듯 성기를 꽂아 올리고 편안히 허리를 내려주었다. 성기가 들어가자 꿀떡꿀떡 집어삼키는 질구 주위가 발열한다. 그의 것이 비정상적으로 큰 데다 다소 급하게 삽입하다 보니 생식기 살갗이 버티질 못해 홧홧하게 열이 나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미 흥분이 오를 대로 차오른 상태였다. 살덩어리로 와락 달려드는 내벽이 벌써 흥건한 물기를 머금었다. 상태를 보니 몇 번 흔들면 금방 쌀 성싶었다.

제 남자 좆이 좋아 가슴팍으로 엎어진 그녀를 보자니 시작도 전에 서원이 아니라 자신이 쌀 지경이었다.

“근데, 조금 전에, 흐읏, 그게 무슨, 으응, 말이야? 갑자기 웬, 서방님?”

“그 소리 하지 말랬지. 내가 아주 그 서방 소리만 들으면 진절머리가 나.”

“무슨 말인지 모르…, 읏. 아흐… 그새 자지가 더, 커진 거 같아. 아아!”

천천히 넣으라 야살을 떨더니 막상 다 들어가자 젖통이 떨어져라 엉덩이를 흔드는데 신서원은 신서원이다 싶었다.

그 와중에도 보다 편한 자세를 잡느라 다리를 더욱 벌리고 엉덩이를 좌우로 돌리며 허릿짓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뜨끈뜨끈한 점막이 귀두를 사방으로 문질러대 선오는 말없이 생사를 헤맸다.

맛있다고 쩍쩍, 방아를 찧으면서도 너도 맛있냐고 묻는 얼굴이 얄미웠지만 사랑스러웠다.

“으응, 응. 자꾸 불끈거리지 마.”

“그게 내 의지대로 되냐. 그게 싫으면 빼야지, 왜 자꾸 흔들어.”

스멀스멀 입꼬리가 올라간다 싶더니, 구멍에 힘을 주고 속살로 기둥을 꽈악 조이며 자지를 주무른다. 구멍 속으로 당겼다, 풀었다, 페니스를 씹듯 잘근대는 그 농밀한 보지 속 떨림에 선오는 부지불식간에 신음했다.

애액에 절여진 귀두가 그대로 뽑혀 구멍 속으로 빨려드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힘을 빼라고 엉덩이를 때리는데, 그 반동에 위아래로 움직이다가 안쪽에 숨은 극치성감대를 찍어 눌렀는지 더 좋다고 앙앙 울어댄다.

“내 서방님은, 흣, 너뿐, 앙! 아!”

“아, 씨발.”

“서방님이라고 하니까, 으응, 자지 엄청 불끈거린다.”

“야.”

“서방, 아앙! 거긴 갑자기 찌르면 정말 나 싸.”

“그럼 더 좋고.”

“변, 으흣, 태야.”

“양심도 없지, 신서원. 누가 누구보고.”

끙끙 앓는 그녀의 얼굴을 끌어와 뺨을 맞대자 금방 뜻을 알아채고 키스해온다. 쩝쩌업, 침이 줄줄 새는지도 모르고 반쯤 입을 벌린 채 키스했다. 들이치는 페니스를 만끽하느라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그녀 때문이었다. 아랫구멍을 드나드는 속도만큼 혀가 빠르게 감겼다.

혀를 말아 감는 족족 침이 괸다. 서원의 맛. 다디달았다. 그 맛을 참지 못한 그가 그녀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물 먹은 스펀지처럼 침이 뚝뚝 흐르는 혓바닥을 정신없이 빨았다.

유연하게 방향을 바꿀 때마다 우묵하게 패는 혓바닥 중앙에 서로의 침이 담뿍 고였다가 이내 목구멍 안으로 꿀렁거리며 넘어갔다.

한참만에야 떼어낸 입술 주변엔 침이 말도 못 했지만 외려 그 모습이 더 그를 달궈놓았다.

“앙! 아아! 선, 오야. 흣, 안아, 줘.”

꽉 안아달라 요구하는 그녀를 더욱 끌어오며 이제 어디도 가지 말고 여기 꼭 붙어있으라 단속했다. 꿈에서라도 두 번 다시 그녀를 잃고 싶진 않았다.

“나, 아흐응, 이제, 정말 나… 선오, 아!”

“보지 힘 빼.”

어두운 고지를 향해 짓쳐 들어가던 페니스가 음부 속을 심히 압박했는지 성기를 먹고 있는 입구의 떨림이 거세졌다. 싸겠다는 신호를 감지하고서도 더욱 몰아붙였다.

이번에는 어느 누가 와도 그녀를 지키겠다고, 비장한 다짐을 하며.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사타구니를 부르르 거리며 저에게 몰아치는 쾌감에 집중한다.

유독 보짓물이 많은 신서원. 그의 음모를 적시는 맑은 흥분액을 확인하고서 잘했다고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가 몸으로 하는 표현을 귀신같이 잘 알아채는 그녀이니 곧장 알아들었을 것이다.

“서방니임, 어서 싸주세요. 이 소리 하지 말란 말이지?”

“나한텐 해도 돼. 딴 놈한테 그러지 말란 소리야.”

“응.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어요, 서방님.”

키들거리며 웃는 그녀가 장난을 치는데, 아무래도 놀리는 게 분명했다.

“소첩은 쌌으니 이제 흣, 서방님이 소첩 안에, 으응, 정액 많이, 싸주세요. 네에?”

“야 너….”

그녀의 도발에 결국 핀이 뽑혀버린 선오는 그녀를 끌어다 눕히고 미친놈처럼 골반을 흔들었다. 단 한 번의 좆질도 허투루 하는 것이 없었기에 치는 족족 힘 있게 성기가 박혀들었다.

생각해보니 괘씸하다. 그는 죽도록 마음고생 시켜놓고, 저 좋아하는 좆은 원 없이 받아먹는다.

선오는 너 한번 죽어 보라는 심산으로 몰아붙였다. 정수리가 다 짜릿하고, 쾌감으로 배꼽 아래가 지끈거린다.

그녀가 없던 세계는 그야말로 어딘지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어둠 속이었는데 그녀와 함께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어딜 가든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그 간단한 이치를 새삼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녀는 그의 세계에서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고3,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할 때부터 예견된 결말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원의 고백을 받아준 순간부터.

“이제, 이제, 뒤로.”

서원이 원하는 대로 질구에서 빼낸 귀두를 항문에 갖다 대고 찬찬히 주름 속으로 넣어 뒷구멍과 좆을 이었다.

“아흣, 아!”

몇 번 시도한 적이 있다고 버티기는 하는데 그래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연약하게 이어지는 떨림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위로, 흐응, 앉을까?”

그를 제 품에 꼭 끌어안고 싶어 그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여튼 이 자세 참 좋아해.”

다시금 마주 보고 싶어 하는 그녀를 위해 허리를 세운 그가 눕힌 몸을 안아 들고 자신의 위로 올려 앉혔다. 그녀가 놓칠세라 그의 목을 끌어안는데 더운 숨을 거푸 몰아쉰다. 선오는 천천히 서원의 엉덩이 두 알을 잡고 상하로 움직였다.

확실히 뒷구멍은 페니스를 반도 먹지 못하고 게워내기를 반복한다. 그는 빠져나오려는 귀두를 꾸욱 눌러 넣고서 천천히 추삽질을 이었다. 뒷구멍 근육이 과도하게 죄 그는 절로 신음이 샜다. 바르르 대는 서원의 두 다리가 쾌감인지 만족인지 낭창하게 떨렸다.

“아앙, 아! 천천, 하으윽.”

“너무 조여, 너 지금.”

“으흥, 흐, 똥구멍이, 아!”

“아파?”

“기분이 이상, 흐으. 아! 또!”

“괜찮아. 싸.”

선오는 시원하게 싸라며 빈 보지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어 빠르게 추켰다.

“안, 잠깐, 선오, 아!”

끙끙 앓던 서원이 어디가 좋은지 말도 제대로 안 해주고 냅다 물을 졸졸 싸는데, 가늘게 늘어지는 눈꼬리는 만족감을 표하고 있었다. 뒷구멍을 자극한 게 그 나름대로 좋았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앞서 싼 것과는 다른 물줄기. 섹스할 땐 굳이 따로 화장실을 가지 말라고 했다. 제 앞에서 다 하라고, 그게 보고 싶어 굵고 긴 자지를 이용해 일부러 속을 압박하고 두드려 절정을 터트린 적도 숱했다.

딱히 좆이 커서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데 그녀와의 섹스에서 이 흉악한 성기가 유용한 것만은 분명했다. 제 자지의 크기와 생김새는 그녀의 만족과도 일맥상통했다. 그것을 알기에 그녀 역시 제 앞에서 숨김없이 쌌다.

“더 싸.”

“흐으응… 아….”

“쉬해.”

왜일까. 더러운 건 딱 질색이고, 샤워하는 순간을 누구보다 즐길 정도로 깔끔한 성격인데 그녀와 벌이는 모든 추접스러운 짓은 싫지 않았다.

뒤로는 자지를 먹겠다 씰룩씰룩 엉덩이를 흔들면서 앞으로는 만족 어린 분비액을 갈긴다. 손가락을 빠르게 추킬수록 뒷구멍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순간 가해지는 엄청난 항문압에 참지 못하고 정액을 지렸지만 그녀의 오르가슴이 먼저였기에 선오는 이를 악물었다. 괜찮으니 더 싸라는 그의 토닥임에 소변 줄기가 가늘어졌다, 세졌다, 하며 일정하지 않게 흐르는데 그 모습도 예뻤다.

“으응, 아!”

물을 빼는 중간중간 한 템포 씩 쉬어갈 때마다 똥구멍이 귀두를 꽉꽉 조였다. 앞으론 싸고 뒤로는 먹고, 앞뒤로 난잡한 꼴도 색스럽기 짝이 없다.

더 넣어도 될 거 같다고 엉덩이를 밑으로 꾹 눌러앉는데, 그래 봤자 귀두에서 조금 더 들어갔건만 그녀는 큰일이라도 치른 사람처럼 흡족한 표정이었다.

마지막 방울까지 시원하게 갈긴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손가락을 뺐다.

문선오가 만져주면 신서원은 온몸이 성감대가 된다. 그것을 자신보다 그녀가 먼저 깨친 게 분명했다.

“이제 빼. 이러다 내가 싸겠다.”

“시, 싫어.”

“뒤로 싸?”

말이 없어진 그녀가 그저 침묵하며 그를 쳐다본다. 그래 달라는 긍정의 침묵. 이 여우 진짜. 그는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에 정신도 못 차리고 서원이 뿌려놓은 유혹의 덫을 헤맸다.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싸기 전에 말할게, 거기다 싸줘.”

“어디로 먹을 건데.”

“음, 생각해보고 말해줄게.”

“알았다, 알았어.”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샌다. 사랑스러워서 졸도라도 할 거 같다. 한번 마음을 인정하니 이제는 더 숨기는 게 곤혹이었다. 문선오와 어디든 잇고 싶어 안달이 난 신서원, 아니 실은 서원이 없인 한시도 버틸 수 없는 문선오.

그의 진심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서원이 끙끙대며 추삽질에 열을 올리다 말고 그를 빤히 보았다.

“너 그렇게 쳐다봐도 사랑한단 말 안 해줄 거다. 오래전부터 사랑했단 말도, 신서원뿐이라는 말도, 안 해줄 거다.”

문선오다운 고백에 서원이 황홀한 눈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맞닿아 이어진 아래쪽은 흡사 불덩어리로 매듭지어진 듯 뜨거운데, 마주하고 있는 시선은 눈물이 나도록 따뜻했다.

비가 완전히 그친 새벽녘이었다.

잠귀가 밝은 데다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라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깨곤 했다.

그런 그를 알기에 덩달아 서원도 늘 죽은 듯이 잠을 청했다. 선오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제 품에서 바르작거리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눈을 꾹 감고 있는 서원이 보였다.

몇 번 하고 실신하듯 늘어진 그녀와 샤워까지 다시 했다. 늘 섹스 후 실신하듯 잠이 드는 그녀였지만 서원은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신서원.”

부스스한 눈으로 그를 보는 서원의 뺨을 어루만졌다.

“응?”

“무슨 생각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 어떻게 알아?”

“네 표정.”

“나 자고 있었잖아.”

“눈 감고 있어도 생각하고 있는 거 보여.”

문선오가 예리하다는 건 그새 잊었는지 새삼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그냥 정말 네가 내 남자가 된 게 맞나, 그런 생각.”

“난 원래 네 남자였는데.”

낯간지러운 말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싫어한다기보다 성격 자체가 그랬다. 그런데 자꾸 애정 어린 표현을 건넸을 때 번지는 그녀의 못 견디게 사랑스러운 얼굴이 보고 싶어 그답지도 않은 말이 나간다.

“내가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알아. 너 여자한테 별로 관심 없는 거. 그래서 내가 조금 마음 놨던 것도 있어.”

“근데 왜 그렇게 나 좋다고 목맸어. 그냥 두면 네 건데.”

“너 인기 많아. 내 주위에도 문 아나 이상형이라고 하는 사람 되게 많은데. 우리 직원들도 그래.”

“그래, 고맙다.”

장난식으로 받아치자 금세 또 배시시 웃는다.

“이미 정 들 거 다 들어서 이제 없이는 살지도 못하고.”

“그게 걱정이야?”

“지켜야 할 게 생긴다는 건 원래 그런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어느 누구인들 안 그럴까. 제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생긴다는 건, 바꿔 말하면 혹여 그녀가 곁에 없는 일이 생긴다면 그의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래, 자신의 한 몸 따위야 불구덩이에 파묻혀도 상관없다. 지켜내면 그만이다. 그래야지. 현생에서만큼은 반드시.

신서원이 전생에서처럼 희생한다는 소리만 하지 않으면 쉬운 일이었다. 저 성격상 그게 안 되니 그게 문제였지만.

“나 지켜줄 거야?”

“그럼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사랑 타령 했겠어?”

저 지켜준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그녀가 다가와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이렇게 네가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

“그건 쉽지.”

꾸물꾸물 올라온 그녀가 그의 뺨에 입술을 맞대고 웃었다. 선오는 작은 몸을 안고 덩달아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우리 가게 건물주분은 왜 나쁘다는 건지 말 안 해줄 거야?”

“너 그 새끼한테 가까이 가기만 해.”

“원래 그렇게 친하지도 않아.”

“걘 너한테 관심 있어 보이니까 하는 소리야.”

“큰일 날 소리야.”

“그래, 잘 아네.”

“근데 그거 질투야?”

서로를 끌어안고 뒹굴 거리는데 극락이 있다면 여기가 분명했다.

서원의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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