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그리워할 연戀, 그릴 모慕
눈물이 어룽진 눈가가 보였다. 취기에 흐느적거리면서도 그가 입술을 붙이는 대로 앓는 소리를 내는 그녀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독주가 뒤늦게 반응이 오는 건지 온 뺨이 발그레하다. 몸도 평소보다 조금 더 뜨겁고.
서원은 술에 취한 채로 하는 섹스를 좋아했는데, 명주에게도 그게 통한다는 게 놀랍고 기묘하기까지 했다. 입으로는 아니라 하지만 그녀의 몸 상태만 보아도 빠삭하게 아는 그로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어찌, 어찌 아앙, 이러십, 아앗!”
“손, 그러다 다친다.”
부르르 떠는 손이 이미 다 헤쳐진 저고리를 움켜쥐고 있다.
꽁꽁 싸매고 있는 속적삼을 풀어 젖통 두 쪽도 꼼꼼하게 맛을 봤다. 손에 착 감기는 살결하며 손바닥으로 한 움큼 쥐었음에도 흘러넘치는 젖통, 금방이라도 젖이 흐를 것 같은 갈색 유두까지 두 눈으로 꼼꼼하게 확인했다. 유륜에 난 점 모양하며 개수도 그대로고.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8년을 빨았던 서원의 젖꼭지가 확실하다.
“이, 이러지, 흣. 대감….”
보지 말라 자꾸만 치맛자락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소용없는 도망을 쳐보지만 이미 옷자락은 저고리, 치마 할 것 없이 넝마처럼 풀어헤쳐진 상태였다.
그는 더욱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에 완전히 명주의 가슴띠를 열어젖히고 젖통을 주물럭거렸다. 두 손 안에서 출렁거리는 무게감 역시 신서원의 젖이다.
“아앙, 아. 어찌, 아!”
젖꼭지를 입 안에 넣고 평소 먹던 대로 빨고 이로 잘근잘근 씹어도 보고, 손가락 새에 넣어 돌렸다가, 여차하면 당기고, 모유를 쥐어짜듯 꼬집어도 봤다. 반응하는 몸짓하며, 교성, 파르르 풀리는 눈꺼풀, 모든 게 그가 알던 그대로였다.
명주가 정말 서원이라는 증거를 두 눈으로 확인하자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이 뛰었다.
선오는 다소 흉포하게 그녀를 뒤집어엎고 엉덩이를 치켜올렸다. 직접 맛까지 봐야 했다.
무명 속곳을 헤쳐 열고 꿉꿉한 보지 속을 헤집어 얼마나 빨아 젖혔는지 모른다. 혀를 좌우로 벌려 소음순 덮개를 열어가며 구멍을 빨았다.
콧구멍만 한 질구에 혀를 딱 붙이자 움찔움찔, 미세하게 움직이는 입구 근육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유독 널따란 소음순, 짙은 점액 덩이, 뜨끈뜨끈한 서원의 치부. 이게 얼마나 그리웠던가.
엉덩이만 쳐들고서 음부를 내어주고 있는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흐… 아! 싫…!”
“너는 모르겠지만 명주야, 너 나랑 해서 다친 적은 없어. 너무 많이 해서 부었으면 모를까.”
“…대, 감. 흣.”
“괜찮아. 빨아줄 때 힘 풀고 있어. 착하네. 그래.”
차분해져야 하는데, 문선오다워야 하는데, 그를 그답지 못하게 만드는 여자. 유일한 여자.
‘내가 다른 남자랑 살림 차리고, 아이도 낳고, 막 문선오는 누군지도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도 넌 평정심을 유지할 거 같아. 이성을 잃지도 않고, 차분하게.’
서원이 그리 물었던 적이 있었다.
코웃음을 쳤었다, 자신만만했었다. 그랬었다, 등신같이.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
그녀로 인해 이렇게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어대고 그의 이성을 난도질 내고 괴롭힐지 꿈에도 몰랐었다.
그는 걸리적거리는 음모를 옆으로 쓸어내고 소음순 사이사이를 핥는 데 집중했다. 두툼한 양 덮개를 혓바닥으로 문대며 맛을 보다, 음핵을 구슬리는데 입 안으로 왈칵, 애액이 뭉텅이로 들어온다.
선오는 놓칠세라 바짝 입술을 처박고 받아먹었다. 서원의 맛. 그녀가 아랫구멍으로 뱉는 분비물을 수도 없이 먹고 목을 축였는데 모르는 게 이상했다.
혀로 감기는 그녀의 맛, 늘 두 눈에 담았던 색, 촉감, 모든 게 확실했다. 이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알 수 있는 그녀의 맛이기도 했다. 물론, 어쩌다 보니 전생에서의 사정은 이리 됐지만 송학도를 죽이면, 다시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이다. 문선오가 아는 그녀의 맛을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음을 손수 보여 줄 작정이었다.
그는 통통한 엉덩이를 더욱 바짝 당겨 회음에 코를 파묻은 채로 야들야들한 속살을 빨았다. 흠뻑 애액이 고인 보지에 입을 담가놓듯 묻고 나서야 안도했다.
이제야 좀 진정되는 기분이다. 그러다가도 이곳으로 송학도 같은 놈의 아이를 배출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분노가 치솟았다.
송학도와 혼인을 한 사이이니 그 새끼와 밤낮으로… 씨발.
“대, 감 하앗, 흣, 안… 돼. 아아.”
“아파?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뭐, 어디가.”
속궁합만 수년을 맞춰온 몸이었다. 제 서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텐데, 문선오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 몸을 갖고 자꾸만 안 된다 부정만 한다.
“아흐읏, 대, 감, 아!”
“그냥 내 이름 불러. 너 그거 잘하잖아.”
답이 없다. 그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말과 간드러지는 교성만 터트릴 뿐. 제 품 안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다가도 거부 섞인 반응이 그의 마음을 할퀴기도 했다.
이렇게 아이 다루듯 달래가며 섹스를 해본 적도 없었던 거 같은데, 여기 와서 할 짓 안 할 짓 다 해본다.
“이러면 안 되, 옵, 하읏, 니다. 저한텐 서방, 님,이 아앗.”
“왜, 내가 외간 남자라서?”
자신을 외간 남자라고 지칭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도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어차피 네 서방한텐 잘 대주지도 않는다면서.”
“우으… 읏.”
“어? 명주야.”
선오는 그녀의 엉덩이를 끄집어 당겨와 치켜 들린 성기를 맞댔다. 불거진 귀두를 질구에다 맞추고 각도를 조준하자 흐느낌이 심해졌다. 삽입의 신호임을 그녀 역시 아는 것이다.
그가 퍼부어주는 쾌감을 제대로 버텨내지도 못할 만큼 달아올랐으면서 우린 안 된다고 부정부터 한다. 그럴수록 흥분한 성기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찔끔찔끔, 쿠퍼액을 지려댔다. 곧이어 터질 정액까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이 안에다 퍼부어줄 생각이었다.
귀두가 천천히 파고들기 시작하자 몸부림이 거세어진다. 특별히 그녀가 좋아하던 뒤치기로 골랐다는데도 앓는 소리를 한다.
“후으, 아아!”
제 서방의 것이 아닌, 낯선 씨를 머금고 있는 사내의 성기가 연약한 치부를 찌르고 들자 제 보지를 보호하려는 듯 자동반사적으로 입구를 오므려댔다.
“이러면 제대로 못 싸. 네 서방 말대로 혼인을 했으면 아이를 가져야지.”
송학도 같은 열등한 종자와 그녀는 맞지 않다. 그녀의 자궁 안에 그 새끼의 아이를 잉태케 하느니.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 게 낫지. 그 꼴을 어찌 본단 말인가.
“대, 감, 아! 안… 아아!”
사정이 끝나면 귀두 삿갓 새새에 낀 점액 덩어리까지도 꼼꼼히 빨아먹던 서원이 떠오르자 다시금 속이 쓰렸다. 어떤 추태를 부려도 서로에겐 흠도 흉도 아니었다. 부끄러워하다가도 금방 품 안으로 안기던 그녀였다.
애널 섹스가 해보고 싶대서 몇 번 시도는 하였으나 도저히 그게 들어갈 구멍이 아니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는데, 그러게 왜 욕심을 부리냐 엉덩이를 찰싹 때려준 적이 있었다.
귀두만 불룩하게 끼운 채 뒷구멍이 아프다 울고불고, 호되게 눈물을 쏙 빼고도 아쉬운 눈을 하던 그녀였다.
그에게 여기도 저기도 다 너를 갖고 싶다는 귀여운 소리를 하면서 만져라도 달라 엉덩이를 들이미는데 그게 사랑스러웠다.
그래, 사랑스러웠다. 그를 돌아보던 그 얼굴이, 눈이, 눈물 맺힌 미소가.
너 아니면 안 된다는 그 웃음이.
그녀가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그렇듯이 서로를 마주 보며 안고 싶었다.
평소 좋아하는 대로 뿌리 직전까지 퍽 들이박아 심을 돌려도, 넘어가는 소리를 하며 꺽꺽거릴 뿐, 이름은 불러 주지 않는다. 보짓물을 오줌 싸듯 싸지르면서도 부정하듯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녀는 신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하려고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지 급기야 요를 입 안으로 밀어 넣고서 울어 젖힌다.
“신서원.”
“흐응, 으응!”
젖무덤을 받쳐놓은 안고름이 엉망으로 풀어 헤쳐진 탓에 추삽질을 할 때마다 젖통이 우악스레 쓸렸다.
‘나, 나아, 젖꼭지 아파, 흐으, 선오야아, 빨아 줘어, 아앙!’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 속의 목소리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를 향해 웃어주는 서원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전생이든 현생이든, 서원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가슴 아플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아! 대, 감, 제발, 아으!”
“필요하면 낳아. 씨는 얼마든지 뿌려줄 테니까.”
거칠게 성기를 쳐올렸다. 선오는 좌절과 성취감을 동시에 맛보았다.
* * *
명주는 아무도 없는 초가집 방 안에 누워있었다.
‘누가 너더러 더럽대? 왜 숨겨 숨기길.’
음부에서 부끄러운 물이 진탕 나오는데도 그는 그런 말을 하며 아래위로 깊이 입맞춤했다.
질척한 물이 나오는 아래와 침이 흥건한 입술, 어느 것 할 거 없이 대군의 입술이 들러붙어 왔다.
‘저, 저는 지아비가 있는….’
‘이제 그건 약발 다 떨어졌어. 외간 남자 정액이나 질질 싸면서 할 말은 아니지 않아?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게 더 흥분돼?’
‘대, 대군께서 어찌 이토록 지, 짐승처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녀가 대군의 날렵한 얼굴만 바라보고 있자 그가 말을 바로 잡았다.
특별히 정중히 다시 읊어준다는 눈매에 장난스러운 미소까지 감돌았다.
‘대체 몇 번을 말해주랴.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러니 그리 산짐승 보듯 보지 말고 이리와 보지나 더 벌려 봐. 마저 빨아야 할 게 아니냐. 흐르다 못해 싸는데, 너.’
독주를 마셔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의 세상이 빙빙 도는데도 그 얼굴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문선오 자지 맛있다고 보지로 먹고, 똥구멍으로 먹고, 울고불고 엉덩이 흔들어 재낄 땐 언제고 뭐가 또 부끄러운데. 어?’
‘…저는.’
‘뭐가 또 부끄러워 울먹이십니까. 예?’
‘노, 놀리시는 것이지요?’
‘언제는 보지에 거미줄 치게 전에 빨리 뚫어달라고 난리도 난리도 아니었으면서. 네 서방이랑은 섹스리스라며. 거미줄 치기 전에 자지 넣어준다니까. 그러고 싶다며.’
‘어찌 자꾸 제가 모르는 말씀만 하십니까.’
‘알아, 넌 모르는 거. 자꾸 강조 안 해도 충분히 알아. 내가 왜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짝사랑을 여기까지 와서 하고 있는지, 씨발.’
대군께서도 취하셨던 건가. 취한 분이라고 하기엔 그 눈동자가 너무도 강인하고 뜨거웠다. 연신 괴로운 눈을 하고 있었다. 꼭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내처럼, 그렇지만 거칠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자꾸 다정하게 손을 뻗어 더 혼란스럽기만 했었다.
‘많이 아파? 아파하진 않던데.’
‘…….’
‘아픈지 보게 벌려 봐. 넌 내가 아는 신서원이랑 달리 사람 참 기다리게 만드는데 소질이 있구나. 소인이 한번 봅시다.’
‘왜 자꾸 놀리십니까.’
‘그러니까 빨리 벌려 봐. 봐야 알지.’
태어나 그런 야만적이고 짐승 같은 입맞춤은 해본 적도, 본 적도 없었다. 남녀 간의 교접도 그러했다. 교성이 점잖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그토록 음탕한 소리를 내지를 줄 아는 여인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독주에 취해 보이는 모든 것이 흐릿했어도 명백하게 기억이 난다.
송학도의 양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였다. 우락부락한 모양하며 삐뚤삐뚤 난 핏줄, 마주 보기도 겁이 나는 귀두, 그리고 알이 야무지게 박혀 들썩거리는 고환까지. 그에 비하면 송학도는 어린아이의 성기와 진배없었다.
아무리 뒷물을 해도 음부가 미끈거렸다.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퍼내고 퍼내도 씨물은 다 가시지가 않았다. 얼마나 양물이 컸으면 들락거렸던 구멍이 그의 양물 크기대로 뚫린 느낌이 들었다. 다시 원상태로 다물리는 데도 한참이었다.
쉴 새 없이 빨아 젖혀 멍이 든 가슴은 옷자락이 쓸릴 때마다 아팠다.
그뿐인가. 뽑힐 듯 먹혔던 혀가 아렸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이상했다.
말은 그토록 음란하게 하면서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어쩐지 애원하는 듯했던 사내.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도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레 몸을 뒤집고 가슴을 만지고, 꼭 연모라도 하는 것처럼.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는데도 거부감이 없이 자꾸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니 희한하면서도 기이한 일이었다.
“명주야. 안에 있어?”
문밖에서 진골 댁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왔다. 명주는 저고리를 단단히 단속하고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하도 가랑이 속을 벌려대 엉덩뼈 마디가 욱신거린다. 문을 열자 밝은 얼굴의 진골 댁이 서 있었다.
“아유, 안에 있었네.”
“무슨 일이신지요?”
“자네 모친하고 서방 말이야. 의금부로 끌려가는 게 미뤄졌다는 소식이 들려서. 듣기로는 다시 재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어찌 될진 모르지만 일단 당장에 끌려가지 않은 게 어디야. 어휴. 의금부로 끌려가면 뼈도 못 추린다던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게, 그게 정말이에요? 제 어미가….”
“그래! 분명 별일 없을 거야. 어휴,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네. 해쓱해져서는.”
명주는 두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대군이 손을 써놓은 걸까. 저를 도와줄 이가 이 나라 천지에는 아무도 없으니 짐작할 만한 것이 그것뿐이었다.
두 눈을 글썽거리자 진골 댁이 쯧 혀를 찼다.
“하긴. 나오면 뭐하누. 사람 구실을 해야 사람이제. 나온들 뭐가 달라질까.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이나 해. 이래서 어디 서방 건사는 하겠어? 짐승만도 못한 그놈을 서방이라고.”
홀로 있어봤자 기생이나 되었을 팔자, 제 부모는 차라리 한 사내에게 사랑이라도 받고 살라며 송학도에게 자신을 보냈다. 어차피 이 나라에서 천출이라는 신분은 다 그런 생이었다.
기생, 혹은 높으신 분의 첩, 그도 아니면 그분들의 사노비, 운이 좋으면 평민의 아내. 우습게도 자신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기방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무들은 화초를 올리고 기생이 되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무는 예판 대감의 눈에 들었다가 첩이 되었는데, 그토록 불타오르던 연정이 식고 독수공방이 길어지자 그예 거슬린다는 이유로 본부인에게 맞아 죽었다.
그보다는 낫지 않는가.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렇게.
아비를 잃었는데 어미까지 의금부로 끌려가 뼛조각 하나 남지 않게 개죽음을 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이게 저였다. 미련스럽게도, 그런 어미라도 손을 놓을 수 없는 바보가 저였다.
송학도는 어서 아이를 가지라 재촉했지만 자식을 낳아봤자 그 팔자는 어미를 닮을 게 뻔했다. 제가 어미의 팔자를 대물려 받은 것처럼.
차라리 자식이 없는 게 모두를 위해 나았다. 아이에게마저 이 팔자를 잇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의미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차라리 어디 멀리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인 자신의 처지가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보다도 가엾었다.
* * *
“대감. 팔복입니다.”
명주가 왔다. 이틀 전 그 일이 있고 어제는 그녀가 오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알아보라 하니 집 밖엔 나오지도 않고 내내 잠만 청했다고 했다. 푹 쉬게 내버려 두라 명하며, 따로 데려오지도 않았다.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일은 멈출 수가 없었던 듯 하루를 쉰 그녀가 다시 찾아왔다. 그마저도 신서원을 닮아 그를 속상하게 만든다.
“잘 모셔. 그 여자가 나다, 생각하고.”
“예, 대감. 이리 오시게.”
이 집에 소일거리를 하러 온 명주가 말없이 팔복을 따른다.
팔복에게 데려가 일을 시키라 했더니 그의 도포며 답호며 걸레 조각까지 있는 대로 죄다 긁어모아 내다 던져 준 모양이었다.
저렇게 많은 일을 주라 한 적은 없는데, 눈치는 개나 갖다 준 팔복은 정말 그녀를 부리는 하인인 줄로 알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고도 푹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는 명주가 일감을 들고 그를 피해 간다.
“어디 가. 이리로 와.”
불신의 눈이 불안으로 흔들린다. 대감께서 부르시는데 가지 않고 뭐하냐는 팔복의 눈짓에 결국 그녀가 그를 따라 사랑으로 들어왔다. 선오는 제 비단 방석에 자리를 잡아 앉고는 너 편한 데 앉아 일을 하라고 눈짓했다.
그렇다고 구석에 앉을 건 뭐야. 최대한 그의 손이 닿지 않을 법한 구석 자리에 앉는 것을 보는데 입이 썼다. 이건 뭐, 집주인이 일하는 자가 편한지 눈치를 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주객전도였다.
단둘이 한 지붕 아래 있으면 특유의 애교 섞인 콧소리를 내며 안겨 오던 서원이 떠오르다가도 힐끔 눈치를 보는 명주를 보고 있자면 또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명주를 보는 내내 서원의 흔적을 찾고 있다. 헛웃음이 났다.
옷을 다 개켰는지 그녀가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있다.
“뭐, 벌써 다 했어? 이리 갖고 와봐.”
손 본 도포 한 자락을 들고 눈치만 보기에 가져오라 손짓을 했다.
쭈뼛거리는 그녀가 쥐고 있는 옷을 내미는데, 손끝이 스치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인다. 겨우 고개 좀 들게 해놨더니 또, 처음의 장명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저 속곳 안에 들어찬 음부를 벌려 그의 좆을 박은 채 재미는 볼 만큼 봤으면서, 마치 이틀 전날의 일은 다 잊은 사람처럼.
“하여튼 모른 척이 무기지.”
“감사합니다.”
“뭐?”
“소인의 어미를 구해주신 거, 뭐라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가득 차오른 눈동자가 힐끔 그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천천히 시선이 고정됐다. 그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리던 그날 밤의 명주가 선명해진다. 조신한 장명주도 잠자리에선 신서원이었다. 어찌 요란하게 교성을 지르며 찔러주면 찔러주는 대로 물을 싸던지, 간만에 예뻐해 주느라 날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이틀 전 일은….”
탁, 손목을 잡아 확 끌어왔다. 품 안으로 털썩 주저앉는 그녀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서원의 살 냄새. 만나면 끌어안고 좆 맞추기 바빴으니 늘 맡아오던 냄새였다. 그를 들끓게 만드는 유일한 향이기도 했다.
“어, 어찌 또….”
쥐면 부러질 것 같은 손목엔 아직까지 그날 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 그 말 마저 하면 후회할 텐데.”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린 서원 때문에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문선오답지 않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 그렇지만 이젠 숨기지도, 숨길 수도 없는 마음.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아시고요.”
“내가 여기서 널 오래 보진 않았지만 네가 어떤 성격인지는 파악이 되거든.”
“…….”
“밑은 좀 괜찮아?”
“미, 밑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뭘 놀라, 놀라긴.”
은밀한 곳을 가리키는 그의 말에 수줍어진 그녀는 다 알면서 뺨만 붉히고 있다. 그게 또 귀엽다가도 짓궂게 놀려 주고 싶기도 하고, 괴롭혀주고 싶기도 했다. 귀엽긴.
“괜찮은지 보기라도 하게 누워 봐.”
“무엇을 말입니, 아앗!”
그대로 그녀를 눕히고 치마를 들쳤다. 그의 손자국이 선명히 남아 벌겋게 멍까지 든 피부를 꼼꼼히 살폈다. 유독 피부가 연약해 현생에서도 한번 자국이 스미면 지워지는 데 오래 걸렸었다. 다소 미열은 있지만 다행히 크게 아픈 상처는 없어 보였다.
선오는 버둥질치는 그녀의 두 발목을 낚아채 아이 기저귀를 갈 듯 위로 치켜들고 제 양어깨 위로 한쪽씩 얹어 편히 자리를 잡도록 도왔다. 밑구멍까지 제대로 보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소리 내면 팔복이가 들어와서 구경한다.”
그러자 또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젓는다.
격렬한 섹스를 한 다음 날이면 괜찮은지 확인해 달라며 들이밀던 건 서원이었다. 그러니 그에겐 이런 행동이 낯선 일도 아니었지만 명주에겐 놀라 자빠질 일일만도 했다.
얇은 다리속곳 위로 손을 가져다 댔을 때 뜨끈한 열을 머금고 있는 음부가 만져졌다. 속곳을 옆으로 밀어젖히고 손가락 한 마디를 넣어 상태를 가늠했다. 발가락을 꾹 오므리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그녀가 차마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작은 신음을 토했다.
“아프진 않아 보이는데.”
‘그래도 난 아픈데. 혀로 확인해보면 더 정확할지도 모르잖아.’
어이가 없었다. 환청이라니. 다시 서원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이건 병이다. 병이 틀림없지.
정신 차려라, 문선오.
‘어디서 수작이야.’
‘그게 아니라 이제 당분간은 못하거든, 나.’
‘왜, 너 어디 가?’
‘아니 그게 아니라… 시작해서.’
‘뭐?’
‘…생리일이.’
‘…….’
‘얼마 안 남아서.’
제 위에서 오줌도 싸놓고 그거 한마디 하는데 뺨이 발그레. 알다가도 모를 신서원.
선오는 지난날의 그녀가 생각나 짙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떠올려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들었다 놨다, 사람을 아주.
결국 또 이성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와르르, 공든 탑이 하루에도 십수 번이나 무너진다. 원인은 모조리 그녀였다.
선오는 이리저리 엉켜 엉망인 음모를 젖히고 축축하게 습기가 고인 구멍으로 혀를 냈다.
혀끝을 이용해 양 두덩 새를 가뿐히 열고 진입한 그는 자유자재로 속살을 후비고 들어갔다.
“으응, 응, 안, 되어요. 안…!”
“돼. 괜찮으니 힘 풀어.”
늘 그랬듯, 서원이 못내 좋아 자지러지던 지점을 향해 혀를 뻗었다. 콧날이 음핵을 짓누른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 각도를 조준해가며 코끝을 비비자 아니나 다를까 진한 씹물을 찔끔찔끔 지리기 시작했다.
선오는 평소 그녀가 자주 요구해오던 대로 중지 하나를 항문으로 쿡 욱여넣었다. 음부를 빨면서 뒷구멍 주름을 살짝살짝 흔들어 마찰해주면 더 많은 양의 애액을 싸지르던 그녀였다. 중지로 자잘한 주름을 벌려 깊숙이 밀어 넣자 전에 없이 허리가 튄다.
‘앞뒤로 둘 다 만져 줘어, 흐읏.’
욕심도 많던 신서원. 제가 원하던 것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신서원의 얼굴은 한 장명주는 이러지 말라 도리질을 한다.
선오는 넣어 놓은 중지를 앞뒤로 움직여가며 본격적으로 보지를 빨았다. 꼭 입은 펼친 속살을 빨면서, 손은 뒷구멍에 가 있었다. 열에 아홉은 이래왔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포지션이었다.
애널 섹스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친 그녀가 처음으로 터득한 방법이었다.
중지를 위로 꺼덕거리며 예민한 똥구멍 주름을 마찰하자 주룩 질구가 애액을 덩어리째 게워낸다. 덩달아 뒷구멍이 손가락을 바짝 좼다. 만족의 신호였다.
흡족해하는 그녀를 보니 선오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마음 놓고 혓바닥을 구슬려 회음까지 삭삭 핥아 먹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녀가 원하는 건 다 해주었었다. 이것저것 해보기를 원하는 그녀에게 휘말려 시도한 것만 수십 가지는 된다. 싫다는 건 말았고, 좋아하는 체위는 공들여 했었다.
“…씨발.”
또 서원의 생각에 발기했다. 대체 어쩌자고, 또.
“으흣… 흐.”
명주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는데 정신이 확 들었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지 미열이 오른 상태인데 이러다가 또 일을 칠지 몰랐다. 그랬다간 이 약한 몸이 몇 날 며칠을 앓아누울지 모를 일이 아닌가.
현생에서 한번 그랬던 전적이 있었다. 여긴 제대로 된 병원도 없을 텐데. 그것도 그거지만 저리 울어 젖히니 탈진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선오는 허리를 일으키고 그녀의 벌어진 다리에서 완전히 머리를 뺐다. 빨아주다 말아 애액이 흥건한 구멍을 보고서도 입맛만 다셔야 했다. 어서 빨지 않으면 물이 다 흐른다고 아양을 떨던 서원은 여기 없었다.
명주가 열이 서린 눈가를 닦는다.
“또 울렸네, 또 울렸어.”
한평생 여자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봤어야 알지. 거절이 익숙한 그에겐 모든 게 어려웠다.
늘 그가 하는 거라면 뭐든 다 좋다던 서원이었다. 문선오가 좋아서 울던 서원만 보아온 그였으니, 그에겐 여자를 달래는 것이 어렵기만 했다.
“이리 와서 기댈래? 어깨라도 빌려줘?”
괜찮다고 고개를 젓는다.
“아프면 약이라도 사다 주고.”
그것도 괜찮다 한다. 애가 닳고 몸이 닳은 건 그뿐이라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져 속이 상했다. 문선오가, 그 문선오가.
“그냥 다 괜찮다 하지 말고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
눈물을 찔끔 매단 그녀가 또 눈을 내리깐다.
자신의 감정 따위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신분. 그녀의 낮은 자세에 선오는 또 그것을 인지했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살피는 일은 모조리 그의 몫이라는 소리기도 했다.
말을 안 하니 그녀의 모든 기분을 그저 추측할 수밖에.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히는 몰라도 저리 운다는 건….
“싫구나. 이건.”
그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선오는 그녀의 몸을 일으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가 촉촉하다. 보통은 키스를 해달라는 신호인데, 그녀는 현실의 서원이 아니니 곧이곧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었다.
키스, 하고 싶다.
선오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죽이며 툭, 머리에 손을 얹어 흐트러진 것을 쓸어주었다.
“키스하는 것도 싫어?”
“…….”
“됐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
모양 빠지게도, 꼴사납게도 한 여자를 두고 인생 최대의 시름에 빠져있었다.
해가 다 진 저녁, 대궐 같은 기와집을 나왔다.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걷는 그녀와 나란히 발맞추던 선오는 옆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전생이라 해도 외형이나 몸을 섞을 때나 똑같지, 그 외의 것은 모두 너무나 딴판이 아닌가.
전생에서까지 자신을 휘두르는 괘씸한 여자.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자.
현검의 보고로는 그리 오래지 않아서 송학도와 명주의 모친이 풀려날 거라 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연 대군이라는 인물은 힘이 있었다. 그를 숨어 지지하는 세력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니 임금이 불안할 만도. 우선은 명주부터 완전히 제 여자로 만들어 놓고 엎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처리해나갈 생각이었다.
다른 사내가 곁을 지나가자 더욱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길가 안쪽으로 세웠다. 손이라도 잡고 걸었으면 좋겠는데, 대군이 서방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돌아다닌다고 알려지면 당장은 명주가 곤경에 처할 터였다.
이 나라는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소리를 서원이 들었으면 코웃음을 쳤을 텐데.
꼴사나운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가 머무는 초가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걷던 두 사람은 낡은 초가집으로 들어가는 담벼락 어귀에서 멈춰 섰다.
“또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뭐 필요한 게 있으면 돌아다니지 말고 나를 불러. 네 집 앞에 사람을 붙여놓을 테니까. 저번처럼 떡볶이니 뭐니….”
어차피 말해도 알아듣지도 못할 여자에게 뭔 말을 하는 건지.
“아니다, 됐다. 그만 들어가.”
“저….”
어째 가지 않고 그녀가 그를 불렀다. 단 한 번도 먼저 그를 부른 적은 없는 듯한데, 이리 할 말이 있다고 부르는 것이 처음인 듯싶었다.
“대감의 함자도 제대로 여쭈지 못한 듯하여…. 감히 여쭈어도 될는지요.”
“내 이름은 문….”
문선오, 그녀에게 몇 번 그렇게 말했지만 이 세계에서 그는 그 이름이 아니었다. 이제 와 다른 이름을 알려주면 영 이상하려나. 어차피 그녀에겐 벌써 미친놈으로 낙인이 찍히지 않았던가. 하긴 왕의 자식인데 성 씨가 아비와 다르다면 그 또한 의아한 일일 테다.
생각해보면 그녀더러 서원이라 부른 적은 많아도 제 이름을 알려준 적은 몇 번 없는 듯도 했다. 잠자리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보라 말해주었지만 교성을 터트리느라 제 정신 하나 챙기기 힘들었던 그녀가 그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
아마 이름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묻고 있을 것이고.
“이선이다.”
여태 단 한 번도 알려주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조차 이곳에 와 처음 알게 된 이름. 그럼에도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알려주어 고맙다고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뒤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어딘가 불안했다. 선오는 부르려다 말았다.
그녀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신 저 등을 홀로 보내진 않겠다고, 그리 다짐했건만 언제쯤이나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건지.
서원이 보고 싶었다. 현실에서의 그녀가.
그러다가도 현실로 돌아간다면, 이대로 명주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와 걱정이 앞섰다. 현생에서나 전생에서나 그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그녀 때문에 선오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 * *
고단했던 하루가 또 지나간다. 집안일을 마친 명주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마른빨래를 개켰다. 모친과 바깥사람은 석방을 앞두고 있었다. 두 사람이 관아로 끌려간 지도 벌써 십여 일이 되어간다. 서방이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곧 집으로 돌아올 송학도를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명주는 문득 대군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그는 복잡해 보이기도 했고, 자주 생각에 잠겨 있기도 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매가 매서운 데다 콧날이 날카로워 더욱 안색이 냉해 보였다.
큰 키에 단단한 몸, 누구나 돌아볼 만한 외모, 전체적으로 저 같은 건 가까이 다가갈 생각조차 가질 수 없는 외양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남자, 그리고 높은 신분. 그런 의문투성이의 사내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말없이 따를 뿐이었다.
꼭 바래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뚝 서서 집까지 함께 걷는데 그럴 때면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꼭 언제 또 이런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괴이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정말 대군의 말대로 자신이 기억을 하지 못하는 그와의 접점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대군과 같은 왕족의 핏줄이 자신과 연이 있을 만한 일이 없지 않은가.
삐걱거리는 방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하늘이 불그스름했다.
반듯하게 개어진 옷가지들을 곁으로 밀어두던 명주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또 속이 울렁거렸다. 요즘 따라 자주 그랬다. 잘 먹지도 못하는데 게워내기만 하니 더욱 헛구역질이 나 역하기만 했다.
결국 다시 옷감을 쥐다 말고 입을 틀어막았다. 가만, 달거리가 있어야 하는 날이 벌써 며칠이나 지났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계산하던 서원은 낯빛이 시퍼레졌다.
“…….”
혼인을 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달거리를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걸러본 적 없었다.
설마, 설마. 아니라고 생각을 해봐도 짐작이 가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기방에 있을 때 기녀들이 배 속에 아이가 들어섰는지 확인하던 여러 증상들이 있었는데 그 중 몇 가지 증상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었다. 이럴 때 보통 열에 아홉은 임신이었다.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었던 것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짐작 가는 밤이 번뜩 떠올랐다.
대군과의 그 밤.
송학도와 잠자리를 갖지 않은 지가 벌써 한참 전이니 복중의 아이는 십중팔구….
만약 정말 짐작대로 복중에 아이가 들어선 거라면, 대군의 아이였다. 그 남자의 씨였다.
혼인 후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들어서지 않던 아이가 대군과의 잠자리 한 번에 들어섰다.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다 그녀의 잘못이라고, 여인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자신의 죄라 윽박지르던 송학도의 말이 떠오르자 온몸에 핏기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잉태할 수 없는 몸이라 생각했었다. 합방에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으니 모든 죄는 저에게 있는 거라, 그녀 역시 그리 생각하고 살아왔다. 아이가 태어나 봤자 어차피 제 팔자를 물려줄 것이니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정말로 이 배 속에 아이가 들어선 것일까.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주춤거렸다.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 건 그때였다.
“부인.”
모진 고초에 조금 수척해진 송학도가 성큼성큼 방문을 박차듯 열고 들어왔다.
“오, 오셨어요. 서방님.”
“내 얼마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게 다요?”
“예?”
“이런 목석같은 여인을 안사람이라고 두고 있는 내가 불쌍하지.”
분명 고문을 당했을 텐데 저 우렁차고 억센 음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두근두근. 가슴이 요동친다. 정말 자신이 아이를 가지기라도 한 거라면…. 그것도 대군의 씨를 품고 있는 거라면….
“설마, 오랜만에 만난 서방 품을 거절하진 않을 테지.”
가늘게 뜬 눈으로 다가와 앉는 송학도는 굶주린 짐승 같은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처음 만나 혼인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하루였다. 자신의 의사 따위는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던 혼인.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송학도는 이런 눈을 하고 있었다. 뱀과 같이 교활한 눈.
이 나라에서 여자 하나 사고파는 것이야 어디 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천것은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되는 것이 이 나라인 것을. 그러니 원하지 않는 혼인 또한 제 처지에 당연하다 여겼다. 그런데 그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이가….
‘내 이름은 이선이다.’
하필 그 남자, 대군이었다.
자신이 천것이라 하여 함부로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어디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을 하면 그저 뒷짐만 지고 있어도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고, 결국 집으로 향하는 길에 다친 곳은 괜찮으냐 물어왔었다. 무거운 짐을 어찌 여인이 드느냐고 손수 천것의 짐을 나눠서 지시던 분이 그분이었다. 신분 따위는 상관치도 않고 그저 여인이라 귀히 대해주시던 분이었다.
“뒷정리 좀 하느라요. 이부자리 준비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셔요.”
“부인.”
다가와 앉는 송학도가 엉덩이를 콱 움켜쥔다. 화들짝 놀라 몸을 물렸다. 며칠 전, 또 어디 아픈 게 아닌지 확인을 하겠다고 대군이 농을 흘리며 다가오던 것이 떠올랐다. 몸을 겹치는데 이곳저곳 입술을 가져다 대며 장난스럽게 깨물곤 했다. 아프다고 눈썹을 찡그리니 대번 깨문 곳을 핥아주었었다. 아직 그의 잇자국이 선명히 박힌 엉덩이가 아팠다.
“왜 그러오.”
“아, 아닙니다.”
“왜 자꾸 그리 몸을 물리시오.”
또 사내가 의심이 그득한 눈으로 자신을 본다. 저 의심병은 기어코 자신이 죽어야 없어질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 한들 사내를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늦었는데 어서 잠자리에 드셔요.”
다소 성급하게 옷고름을 푸는 손이 성교를 원하고 있었다. 지금 옷고름이 풀리면 대군이 남긴 자국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불과 이틀 전에도 종들의 눈을 피해 자신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정성껏 빨아준 대군의 흔적들이 선명했다. 꼭 싫지 않게 간지럽히고 자꾸 자신의 기분을 살피어 애무하는 대군의 정성 어린 눈 때문에 종내 밀어내지도 못했었다.
서투르지만 다정한 그 눈 때문에. 생전 처음 받아보는, 여인으로서 사랑받는 그 기분 때문에.
그의 흔적을 송학도가 발견한다면 펄쩍 뛰어대는 것은 물론, 또 뺨을 얻어맞고 매질을 당할 게 분명했다. 명주는 저고리를 동여맸다. 대번 의심의 눈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체했는지 속이 좋질 않아서요.”
“서방 없는 동안 딴 놈이랑 놀아난 건 아니겠지. 응? 오늘은 절대 그냥 못 넘어가오. 내 아이가 잘 들어서는 약까지 지어온 참이야.”
그가 엉덩이를 다시 잡아채었다. 시뻘건 열을 뿜어내는 송학도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다. 몇 년을 함께 산 지아비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대군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저도 모르게 송학도를 밀어내는데 그의 눈가가 확 일그러졌다.
“대체 뭘 감추고 있길래 저고리를 그리 움켜쥐고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서방 두고 딴 놈이랑 붙어먹기라도 한 게야?”
“…그런 일 없었습니다.”
“그럼 그 옷을 벗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야.”
성급해진 사내가 우악스럽게 저고리를 풀어헤쳤다. 싫다 밀어내는데 짝, 뺨을 얻어맞았다.
“오늘은 정말 끝을 봐야겠다. 네년이 어떤 놈이랑 붙어먹었는지 꼭 알아내야겠어.”
얼얼하게 아파 오는 뺨을 돌볼 새도 없이 벽으로 몸이 떠밀리는데 배가 아파 왔다. 주저앉듯 몸이 앞으로 쏠리자 발길질을 하려는지 그의 발이 올라왔다. 더 버티기가 어려워 있는 힘을 다해 송학도의 다리를 콱 깨물었다.
“악! 이년이!”
명주는 송학도가 발을 감싸 쥐고 엎어져 있는 사이에 배를 감싸 안고 재빠르게 열린 방문으로 튀어 나갔다.
어느새 완연히 내려앉은 어둠 속으로 그렇게, 그렇게, 달렸다.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한없이.
“미련한 놈 같으니라고! 사내놈들이 여인 하나 못 쫓아서 놓쳐! 대감께서 그리 잘 살펴보라 일렀건만.”
“사내놈이 행패를 부리기에 소인이 막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는데,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지라. 쫓아가려 하였으나 워낙 주위가 어두워. 하,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사라진 건지는 소인이 똑똑히 보았습니다. 찾고 있는 중이오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대감.”
명주를 감시하고 있던 그의 호위무사가 머리를 숙였다. 현검이 명을 내려 달라 쳐다본다.
명주가 이 다 늦은 밤에 사라졌다.
“말과 검을 가져와.”
“예. 송학도를 처리해두라 이르겠습니다.”
“조용하게 잡아들여. 내가 갈 때까진 죽이지 말고.”
“예. 대감.”
검을 건네받은 선오는 명주가 사라진 곳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