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13)

<103>

렌은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정신이 나갈 것 같음을 몸소 보여 주었다.

렌의 몸에서는 차마 형용하기 어려운 열감이 피어올랐고, 렌은 그게 내가 신경 쓸 것 없는 아주 사소한 몸의 변화라고 했다.

아니, 제3차 성장기야 뭐야. 몸에 변화가 올 게 뭐가 있어.

“큰일인 거잖아!”

내가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치려 하자 렌은 그냥 제 미간을 찌푸리며 힘으로 나를 눌러 앉혔다.

“얌전히 있어.”

“…….”

“나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아, 공주님. 그러니까 한눈팔게 좀 해 줘.”

렌이 이를 악물고 나를 아플 정도로 꽉 껴안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렌의 소원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하.”

렌은 붉어진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괴상하게 웃었다.

나는 애써 두 손을 모아 렌의 가슴을 문질러 주었다. 뭔가 분위기상 토닥여 주거나 어루만져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지금 렌의 상태는 이상했다. 정상이 아니었다.

꼭 패닉이라도 온 사람처럼.

정신 나갈 것 같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왜? 그리고 방금 들린 비명 소리는…….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렌의 품 안에 완전히 갇혀 버려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렌은 곧 나를 안고 있던 몸에 힘을 쭉 빼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렌의 붉은색 눈에는 황금빛 문장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렌은 꼭 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이상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렌의 뺨을 오른손으로 감쌌고, 렌은 그런 나를 보며 뜨거운 숨을 뱉어내더니 또다시 내게 입을 맞추었다.

어디까지 받아 줘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나를 만지는 렌의 손길은 거칠었고, 사방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이대로 내가 가만히 있는다면 어렵지 않게 부적절한 상황으로 일이 커질 것 같았다.

투둑, 소리와 함께 드레스의 실밥이 끊어졌을 때 나는 정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대로 어울려 주느냐, 아니면 나중을 기약하고 렌을 진정시켜야 하나.

내가 진정시킨다고 해결될 문젠가?

렌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이다. 이건 어린애도 알 만한 사실이었다.

“흐으, 렌. 그만.”

일단 나는 렌에게서 떨어져 말했다. 바깥이 소란스럽게 웅성거리는 걸로 봐서 이대로 침대로 직행하면 분명 문제가 생긴다.

렌은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가만히 보더니 이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그리고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렌은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조금 들뜬 사람처럼 나를 안고 침대로 직행했다.

“싫어졌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황금색 마법진이 웅웅 소리를 내며 더 세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랑한다고 했잖아.”

렌은 지금 명백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원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잡……, 조사…….”

“…구속…… 왕자……!”

렌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나는 밖의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렌이 그렇게 설치해대던 마법진은 예상했듯 전투 인형이라는 암살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이렇게 밖이 소란스러운 걸 보아하니 암살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상황은 끝난 거야?”

조금 허무했다. 이렇게 쉽게 끝난다고? 나 긴장 진짜 많이 했는데? 뭐, 그래도 다행인 건가?

내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렌은 여전히 빙글 돌아 버린 눈빛으로 고개만 까딱거렸다.

“공주님 나 정상 아니야. 조용히 해.”

나는 렌의 요구대로 더 이상 말하는 대신 그의 이마를 짚었다. 어차피 마법적인 문제라 이런다지만, 렌의 상태를 정확히 알 리가 없으니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지 않은가.

역시나 렌의 이마를 짚어 봤자 큰 변화를 느낄 수는 없었다.

“응응, 일단 침착하자.”

내가 렌을 꼭 안고 뒤통수를 쓸어 주자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그러다가 곧 뭔가 자포자기한 몸짓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곧 그냥 축 늘어졌다.

“정상 아니라니까.”

“그래도 조금만 참자. 응? 지금은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상황 봐서 그때 마음껏 어울려 줄게.”

***

렌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힘에 취해 있었다.

시아의 손에 끼워진 코어 파편은 일부러 방치해 놓은 게 맞다. 마나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그거라도 있는 편이 안전하니까.

심지어 코어와 렌의 힘은 상성이 아주 좋아서 온갖 보호 마법이란 보호 마법은 다 코어 파편에 때려 박아 놨는데…….

아, 이건 시아에게 직접 건 마법이 아니니까 괜찮다. 혹시라도 그가 없을 때 납치라도 당하면 어떡해?

상상도 하기 싫다.

아무래도 과도한 마법이 걸린 상태로 흡수해 이렇게 정신없는 게 아닐까 하고 렌은 생각했다.

건물 바깥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한꺼번에 들어온 정보량에 정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서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 버렸다.

벌레들이 틈새 없이 와글거리는 기분. 렌은 그중에서 유독 거슬리는 마나를 찾아 다리부터 묶어 버렸다.

죽이는 건 좋지 않다. 애써 그의 공주님이 마련해 준 판인데 그걸 망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놈들을 붙잡아 인질로 쓴다. 마탑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밝히고, 조금 어렵고 번거롭겠지만 그놈들의 대가리에 박혀 있는 강제 술식을 제거한다.

그리고 마탑의 지하 상황에 대해 알아낸다.

렌의 희망대로 지하에 갇혀 있는 인형들을 다 꺼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만……, 그가 언제 그런 희망을 품었더라?

“렌, 그만…….”

렌은 앞에 있는 부드러운 살덩이를 앙 하고 깨물면서 눈을 깜빡였다.

안고 있는 체온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뜨겁다.

“…….”

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휙휙휙 새로 열린 듯한 감각 뒤로 수많은 장면이 지나가 이미 그의 뇌는 과부하 상태였지만 생각해야만 했다.

그는 목표를 상기시켜 보기로 다짐했다.

그의 목표는 코어의 탈환이었다. 왜? 그게 있어야 차원 이동 술식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실패하면 어떡하지? 실패한다면…… 그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버려지는 건가?’

렌은 혀를 날름거리며 다시금 아름다운 여자를 눈에 담았다.

전신이 녹아내리는 기분.

아아, 아무것도 모르겠어.

조그마한 손길이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쓸어내린다.

‘생각하기 싫어.’

중요하지 않다. 지금 그의 품에 아무것도 모르고 안겨 있는 여자가 중요하지, 그 외의 것들이 뭐가 중요하지?

마음이 어둡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철컥, 철컥. 잠깐 멈춰 있던 마나 순환 고리가 다시 억지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렌은 고리가 터지지 않게 집중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비교해 비교적 조그마한 시아의 손을 꼭 잡고 비틀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렌?”

“응응. 괜찮아. 괜찮아.”

렌이 머리를 까딱거리며 휘청거리자 시아가 영문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신경 쓰이는 듯한 얼굴로 휘청거리는 그를 잡아 주었다.

문제는 워낙 큰 체구 때문에 본인도 함께 휘청거렸지만.

렌은 시야에 담긴 여자가 또 귀여워서 바보처럼 헤, 하고 웃어 보였다.

뭔가 완벽하게 충족된 느낌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다.

“공주님 이리 와. 얌전히 있어야 해. 알았지? 위험하니까.”

렌은 횡설수설 제가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른 채로 떠들며 본능대로 시아를 안아 들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말하는 시아의 멍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에 렌은 다시 실실 웃었다.

시아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조금만 나쁘지 그랬어.

너무 입 안의 혀처럼 굴잖아, 지금.

렌은 조심스럽게 시아의 얼굴을 제 로브로 가려 버렸다.

그리고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런 감정 없는 얼굴로 굳게 잠겨 있는 문을 활짝 열었다.

활짝 열린 문 앞으로 경직된 듯 굳어 있는 기사들이 보였다.

왕자가 일 처리 하나는 똑바로 한 모양이었다.

왕세자 소속 기사단 본대가 움직인 모양인데?

렌은 뚜벅뚜벅 인형이 떨어져 널브러져 있을 외곽 벽으로 향했다.

목격자는 충분히 확보해 뒀고, 마탑을 칠 구색은 전부 갖춰 놨다.

조금 불만인 점은 그의 마나에 다른 이들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 정도?

다행히 시아는 그의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 영혼 자체에 마나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정말 다행이었다. 역시, 시아의 말대로 그녀는 제 운명이 맞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벌써 피부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경외감과 공포심 때문에 도망갔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품 안에 얌전히 안겨 있다니.

무표정했던 얼굴에 희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격렬하게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렌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지금은 시아의 말대로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음, 그래도…….

렌은 바로 제 로브를 걷어 시아를 더 높이 올려 안았다. 로브를 걷자 어리둥절해 보이는 시아의 표정이 드러났고, 렌은 그대로 시아의 입에 입을 맞췄다.

“……어디 가는 거야?”

“응응. 다시 조용히 있어. 공주님. 들키면 안 돼. 알았지?”

“…….”

시아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렌은 다시 시아를 제 품에 감췄다.

아직 위험하다. 인형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도 해야 했고, 그들이 무슨 마법을 부릴지 모르니 제 품에 있는게 가장 안전했다.

“……마법사님.”

렌은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온 흑마법사의 어린 꼬맹이를 흘끗 쳐다보았다.

음, 시아는 어린애들에게 관대한 면이 있으니 나름 친절하게 굴어 줘야지?

“너희가 아무것도 못 해서 내가 직접 나섰어. 나 더 강해졌다? 느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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