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113)

<56>

나는 머릿속에 강제 주입된 정보를 열심히 굴려 봤다.

어차피 이 대륙은 혼란한 상태였다. 제국은 미쳤는지 천하를 호령하겠다 작정하고 정복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플로린스는 아주 걸리적거리는 나라다, 이 말이다.

“하, 돌겠네?”

만약 이대로 내가 바깥에 있는 암살자들을 데려간다?

그러면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전쟁, 아니면 꼬리 자르기.

어쨌든 나는 가짜다. 호문쿨루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

하지만 마법 때문에 왕과 현 왕비는 나를 진짜 제 자식으로 알고 있겠지.

“카일 경. 할 수 있겠나?”

“예. 공주님.”

의외로 카일은 당황한 기색은 보였지만 가타부타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도망가지 않아. 나머지는 어떻게 하든 상관없으니 우두머리 하나만 생포해서 이쪽으로 데려오도록. 그리고 마법사?”

“……공주님 나 슬슬 불안해?”

나는 렌의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여관 주인에게 돈을 좀 주고 오게. 안 그래도 우리 때문에 가게가 소란스러워졌는데 인간 된 도리로서 사례는 해야 하지 않겠어?”

“…….”

***

나는 요주의 두 인물인 렌과 카일을 보았다. 확실히 위험한 놈들은 맞는데, 실력은 있다.

-[카일 펜디엄은 엄선해서 고른 제물입니다. 구원자님. *^-^*]-

저 염병할 이모티콘. 집에 돌아가기만 해 봐. 이모티콘 다신 사용 안 한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문제의 암살자를 노려보았다. 죽탱이 밤탱이가 된 걸로 보아 야무지게도 팼나 보다.

“플로린스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내 말에 렌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대답했다.

“텔레포트만 쓸 수 있으면 일주일이면 가겠는데, 흠. 어떡하지? 마탑에서 눈치챌 텐데.”

렌이 고민하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나와 그 외 떨거지들을 쭉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차마 눈 뜨고 봐 줄 수 없는 몰골의 마법사에게 물었다.

“안 그래?”

“……악마 같은 자식, 그런다고 내가 굴복, 악!”

마법사의 말에 렌이 손날로 마법사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헛소리하지 말고. 공주님이 보잖아. 그렇지?”

“…….”

나는 렌의 팔을 잡고 마법사에게서 떼어냈다.

그리고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좋아. 일단 마탑이 내게 적대적인 건 알겠고. 카일 경. 저자들의 정체는 알아냈나? 제국에서 보낸 이들인가?”

내 물음에 카일이 침착하게 게거품을 물고 널브러져 있는 놈을 뒤집어 뒷덜미를 보여 주며 말했다.

“제국 출신 정예 부대입니다.”

나는 잠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얘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눈 감고 봐도 제국에 이를 갈고 반역 준비하는 사람 같잖아…….

일단 나는 최대한 모르는 척 물었다.

“그대를 노린 것 같지는 않고?”

“……마법사의 말대로 저를 죽이고자 했다면 등급이 높은 자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카일은 꽤 제국의 세세한 정보까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다면 저 빌어먹을 암살자 둘 다 나를 노린 게 확정이라는 건데…….

“혹시 내 얼굴이 유명한 편인가?”

내 물음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주님의 초상이 플로린스를 넘어 제국 곳곳에 퍼져 있으니 알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어차피 이자들을 잡아도 적어도 제국 안에 머무는 이상 날 계속 공격하겠군.”

“…….”

두 남자의 표정이 곤란하다는 듯 구겨졌다.

나는 옆에서 눈치를 보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쨌든 당장 암살자들은 잡았으니 시간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써 준 증서를 가지고 곧장 플로린스로 가라. 돈은 충분하게 준 것 같으니 용병을 고용해도 좋다. 하지만 추천은 안 해.”

“……공주님?”

“아무래도 너희들 나이가 있으니 보나 마나 사기를 치려 들 거다. 그러니까 너희는 포탈을 이용해서 플로린스까지 빠르게 간다. 알겠어?”

내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관에 기본적으로 비치되어 있는 편지지에 대충 입국 허가 요청서를 적어 주었다.

“이거 보여 줘도 안 믿을 수 있으니까, 안 들여보내 주려고 하면 은화 몇 닢만 찔러 줘. 절대 금화는 안 돼. 그래도 안 들여보내 주면 내 이름 들먹이면서 공주님께서 돌아오면 화를 입을 거라며 협박해.”

나는 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뭔데, 공주님?”

“금화 하나만 더 줘. 모자랄 것 같아.”

“나 저금통이야?”

“싫어?”

내 말에 렌이 순순히 돈을 내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들을 써먹긴 해야 하는데…….

“플로린스에 도착하자마자 도시에 있는 소문이라는 소문은 다 긁어 와. 내가 너희를 살려 주는 건 그 대가야. 알았니?”

아이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출발해.”

“네!”

나는 아이들의 등을 두드려 주며 자리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이마를 짚었다. 환장하겠다.

“좋아. 일단 외부 압력 안 들어간 시종은 확보했고.”

내 말에 카일이 의아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그게 뭔 소리냐는 것 같았다.

“내가 시종이 있어 봤자 어머니의 입김이 닿은 자들밖에 더 있겠나? 자네의 목적을 이루려면 내 세력이 좀 단단한 편이 좋지 않겠어?”

나는 성큼성큼 기절해 있는 검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놈의 볼을 쿡쿡 찔렀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제국과 마탑이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분명해졌으니 어떻게든 해야겠는데…….”

흠, 나는 내 턱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 이 인간 좀 깨워 보게.”

***

생각보다 이 세계의 취조 방식은 과격하기 그지없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입으로 들으니까 더 기분이 나쁜 걸……? 내가 너네들한테 뭐 했다고? 안 그래도 내가 지금 기분이 상당히 나쁘거든?”

예상대로 제국은 날 거슬려하고 있었고, 암살자는 날 노리고 온 게 맞았다.

“내 정보는 이미 제국에 넘어갔나? 내가 국경을 넘어 버렸다고? 하긴, 넘어갔으니까 날 찾아온 거겠지?”

놈은 ‘이 여자 도대체 뭐지?’라는 얼굴로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뭐, 신기하겠지. 세상에 어떤 공주님이 이런 식으로 말하겠어.

“놀랄 것 없네. 그대가 나보다 놀랐을 리는 없으니까 말이야. 안 그런가? 납치당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암살이라니. 화가 안 나고 배겨?”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두 암살자를 보고 있자니 회의감이 물씬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 뭔데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거지?

평소 같으면 학교 가서 강의 듣고 집에서 드라마나 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좀 지나치지만 잘 팼군, 카일 경. 이래서야 말이나 제대로 할지. 곤란하겠어.”

“죄송합니다. 공주님.”

카일이 여전히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고, 의외로 평온해 보이는 건 렌뿐이었다.

“괜찮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겠어?”

나는 카일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아 문제의 암살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자, 그럼 서로 힘들이지 않게 빨리빨리 넘어가자고. 예 아니오, 로 대답하도록.”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암살자들을 살려 돌려보내 경고를 해야 할까? 날 만만히 보다가는 큰코다친다고?

아마 여기서 암살자들을 처리해 봤자 또 보낼 게 뻔했다.

적어도 내가 제국에 있는 이상은 말이다.

텔레포트로 이동했다면 훨씬 더 빨리 플로린스까지 도착했겠지만 아쉽게도 내 주위에 있는 두 남자는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신분이 보장되어야지만 이용할 수 있는 텔레포트는 절대 못 쓴다.

들키는 순간 감옥행일 테니까.

그럼 렌이 텔레포트를 열면 안 되냐고?

그건 더 안 될 소리다.

내게 강제로 주입된 지식에 의하면 텔레포트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적어도 팔 클래스 이상의 대마법사뿐이다.

심지어 이동 마법은 제국과 마탑에서 빡세게 관리하고 있는 마법이다.

만약에 함부로 군대나 암살자라도 이동시켰다가는 큰일이 아니겠는가.

특히, 제국은 대륙 전체를 삼키려고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국정 운영이었지만 말이다.

경쟁 국가가 없다면 대륙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 게다가 어차피 세계 정복해 봤자 금방 분열될 텐데 뭐 하러?

대충 제국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압도적인 공포 정치로 주변 국가들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럼 그 정복당한 나라에 남은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냐? 보니까 숨 쉬듯이 차별당하면서 살고 있는데. 분명 언젠가는 들고 일어나겠지.

실제로도 내 옆에 카일이 이를 갈고 있지 않은가.

뭐……. 하긴, 그걸 모르니까 뻘짓을 하는 거겠지만.

아무튼 그 덕에 렌이 텔레포트 마법을 쓰는 순간 마탑이 달려와서 잡아갈 거다.

“거기 누워 있는 마법사. 자네한테도 해당되는 질문이네. 뭘 기절한 척하고 있나?”

“…….”

내 말에 렌이 마법사의 뒷덜미를 덜렁 들어 내 앞에 쿵 내려놓았다.

쟤는 근데 마법사라면서 진짜 근력에 올인했나. 힘이 왜 이렇게 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