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13)

<54>

호문쿨루스란 뭘까. 내가 알기로는 발전된 골렘,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SF 영화에 나오는 최첨단 안드로이드 뭐 이런 건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대충 내 상태에 대해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렌의 말로는 멸망 전 세계의 마법이 현세대보다 월등히 발전했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육체는 안드로이드가 맞을 것이다.

문제는 내 영혼이 들어 있다는 거지만. 게다가 가짜 육신조차 유리 몸이라는 거.

-[구원자님의 육신은 영혼을 바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상위 변형이 불가합니다.]-

나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글씨를 치워 버리고 꼬맹이 둘을 쳐다보았다.

카일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저 꼬맹이 둘을 죽일 것처럼 살벌하게 굳어 있었고, 렌은 기절한 마법사를 공중에 띄워서 빙글빙글 돌리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허공만 쳐다보았다.

“공주님, 정신이 드십니까?”

“하하, 정신이 드네.”

기억이 주입되고 나는 상당히 곤란해졌다. 왜냐고? 렌이 왜 말투가 이상하다고 하는지 드디어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좀 더 철이 없고, 그냥 반말 찍찍 내뱉어야 정상이었다.

나는 공주니까!

사실 왜 그게 정상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나라 예법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재벌 집 알파녀처럼 이래라저래라…….

물론, 여기 귀족들이 아랫사람들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얘네들 사정 봐주는 내가 굉장히 이상한 거지.

“렌? 손에 든 거 뭐야?”

“응, 공주님. 이거면 고통 없이 보낼 수 있을 거야. 걱정 마.”

“히, 히이익!”

나는 벽에 기대 손에 든 에너지 뭉치를 아이들을 향해 던지려고 하는 렌을 내 옆에 살포시 앉혔다.

“왜?”

“가만히 있도록.”

“공주님 말 한 번 들어줬으면 됐잖아. 왜 내가 아니라 쟤였어?”

렌이 정색하며 물었다. 정말 기분 나쁘다는 듯이. 그래서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구석에 쓰러져 있는 마법사를 가리켰다.

“쟤, 뭘로 보이니?”

“마법사.”

“왜 안 불렀겠어?”

“…….”

나는 일단 렌을 뒤로하고 문제의 꼬맹이들 앞으로 다가갔다.

“좋아. 어쨌든 내가 시킨 대로 했으니까 합의는 봐줄게.”

겁을 잔뜩 먹었는지 머리카락이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알아들어?”

“죄, 죄송, 죄…….”

도대체 내가 기절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애들이 말도 못 하고 거의 뒤로 넘어가려고 한다.

어쩔 수 없지 뭐.

“카일 경. 미안하지만 따뜻한 차나 우유 좀 구해 올 수 있겠나?”

내 물음에 카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자들은 공주님을 납치, 살해하려던 자입니다. 공주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인 줄은 아나, 국법대로 다스려야 합니다. 공주님.”

“국법이라……. 솔직히 말해 국법이 있기는 한가? 국법을 제대로 지키는 귀족이 있었다면 플로린스가 제국보다 훨씬 잘 살았을 거네. 어차피 아버지께 아이들을 선처를 해 달라 말한다면 충분히 이해 주실 분이네.”

“…….”

나는 빨리 시킨 거나 하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카일은 못마땅한 얼굴로 아이들을 보다가 결국 고개를 한 번 끄덕 숙이고 방을 나섰다.

그러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애들을 보자니 어이가 없었다.

“렌, 나 기절한 사이에 뭔 일 있었어?”

“응, 공주님 일어나면 평민이 쟤들 죽여 버린다고 했어. 나만 그런 거 아니야.”

“…….”

나는 이마를 짚었다. 카일의 행동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귀족, 그것도 왕족을 납치했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말이 안 되지.

“자, 됐고, 그래서 너희한테 나 납치하라고 꼬득인 게 누구니? 저 마법사야?”

내 말에 란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아니요. 검은 로브 입은 아저씨였어요.”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그 아저씨가 말하면 죽인다고,”

“에이씨, 그 아저씨보다 공주님이 더 셀 거 아니야! 바보야? 어차피 여기서 입 닫고 있어 봤자 똑같아!”

검은 로브? 그 사람도 똑같은 마법사인가?

“공주님,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그 아저씨가 이거 말하면 진짜 죽인다고 했는데.”

“그 아저씨 얼굴은 못 봤어? 설마 그 아저씨가 약방에서 무슨 약 얻어 오면 되는지 그런 것도 알려 준 거야?”

내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주 숫제 울기 일보 직전이다.

“렌, 괜찮겠어? 지금 애들만 가지고는 배후 색출이 안 될 것 같은데.”

“깨우라고?”

“응.”

내 말에 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일이 살뜰하게 밧줄로 꽁꽁 묶어 구석에 던져둔 마법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냅다 발로 빡!

“야!”

“음, 일부러 자는 척하는데? 어떡하지.”

발길질은 거침이 없었다. 렌은 발로 놈의 허리를 찍어 누른 채 손을 뻗어 마법사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꺾어 들었다.

“큽!”

“마탑에서 보냈어? 용케 찾았네. 혼자 온 걸 보니까 내가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렌이 방긋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황급하게 아이들에게 말했다.

“둘 다 뒤돌아서 눈감고 귀 막아. 너네 이거 들으면 나도 보호 못 해 줘. 알았어?”

“네, 넵! 공주님!”

렌의 눈에 안광이 형형하게 일어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런 말 하기 좀 미안한데 상당히 무서웠다.

어우, 웬만하면 적대 관계로는 안 돌리는 게 좋겠어.

“흠, 평민이 마나 서클을 망가트려 놔서 다행이야. 어차피 멀쩡했어도 살아 나갈 수는 없겠지만. 그러게 공주님은 왜 건드렸어? 용서해 줄 수가 없잖아.”

렌은 정말 안타깝다는 듯 놈의 목을 꺾으며 말했다.

“왜 왔어?”

“커헉, 너는, 분, 분명!”

그때였다. 쾅! 마법사의 안면이 바닥에 짓눌려졌다. 마법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게거품을 물었고, 렌은 인상을 찌푸리며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툭 뱉었다.

“공주님이 듣잖아. 아는 척하면 안 되지. 비밀 아니야?”

소름이 돋았다. 저건 또 무슨 말이야. 비밀이라니?

-[접근 불가 데이터입니다. T^T]-

나는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대충 손으로 치웠다.

염병……. 적응 안 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하신 대마법사,”

“용서 안 하면 어쩔 건데?”

“아아아악!”

빠각,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사의 팔이 굽어지는 걸로 보아 뭔가 마법을 시전한 것 같은데, 슬슬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렌. 밖에 다 들리지 않을까?”

“괜찮아, 공주님! 내가 다 차단시켜 놨어.”

“……그래. 하하.”

렌이 마법사의 턱을 쥐고 제 할 말을 이었다.

“죽을 생각 하지 말고. 그 정도 각오로 혀 깨문다고 안 죽어.”

“아, 아아아!”

차마 두 눈 뜨고 못 봐 주겠다. 꿈에 나올 것 같았다. 머리로는 렌이 지금 뭘 하는지 이해한다. 저게 바로 심문라는 거겠지?

“왜 왔어? 빨리 말해. 우리 공주님 피곤해.”

“내, 내가, 말할 것, 커헉!”

그때였다. 똑똑 소리가 들리고 카일이 안으로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 두 잔을 들고서.

렌은 잡고 있던 마법사의 머리채를 툭 놔 버리고는 카일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내 쪽에 붙은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할래?”

“…….”

카일이 가라앉은 눈으로 렌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네가 해.”

렌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사의 뒷덜미를 붙잡아 번쩍 들어 카일에게로 던졌다.

그리고 내게 빠르게 다가와서 말했다.

“공주님, 나 억지로 한 거야. 저런 애들은 맞지 않는 이상 입 안 열어.”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주님 이것도 무서웠어?”

렌이 순진해 보이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런 렌의 뺨을 두드려 주었다.

“신경 쓰지 마. 괜찮아. 그래서 저놈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대충 알겠어?”

내 대답에 렌이 조금 불편한 기색으로 마법사를 보더니 곧 카일을 향해 해맑게 말했다.

“너, 지금 마탑이랑 뭐 있지?”

카일이 입을 꾹 다물었다. 렌은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열심히 설명했다.

“나를 쫓으려던 놈들은 아니야. 확실해. 적어도 팔 서클 다섯 명은 보내야 맞는데 쟤는 팔 서클도 안 되는데?”

렌의 말에 나는 방금 아이들에게서 들은 말을 덧붙였다.

“애들한테 듣기로는 검은 로브를 쓴 남자가 나를 납치하라고 회유했던 것 같은데. 발설하면 죽인다는 협박도 하고.”

내 말에 카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황급하게 내게 말했다.

“공주님, 여기서 당장 나가셔야 합니다.”

카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석에서 귀를 막고 있던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내 치맛단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공주님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나도 데려가요.”

“그 아저씨가 이거 말하면 죽인다고 했단 말이에요! 흐어어엉.”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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