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나는 렌이 들고 있는 도감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이걸 지금 찾아서 먹겠다고?”
“응.”
나는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문제의 문장이 있는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걸?”
“공주님, 버섯 먹으면 죽어?”
극단적인 화법에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내가 이상한 것인지 재고해야 했다.
그러고는 다시 논리정연하게 렌에게 물었다.
“렌, 이건 마약류…… 아니야?”
그에 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했다.
“응. 경계 안에서 구하려면 비싸.”
“……이걸, 지금 먹겠다고? 혹시 마약이 뭔지 모르는…… 거야?”
내 물음에 렌이 해맑게 고개를 저었다.
“잘 아는데?”
“…….”
할 말을 잃은 나는 렌이 들고 있는 식물도감을 빼앗아 들고 책장을 휘리릭 넘겼다. 지금 뒷면에 멀쩡한 식물들이 한 트럭은 나오는데 굳이 이걸 찾고 있는 이유가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공주님 지금 무섭잖아. 저거 먹으면 나아져.”
“렌? 그, 나 생각해 준 건 고마운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왜?”
렌이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내가 먹었던 것 중에는 저게 제일 좋았는데? 여기 적혀 있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안전성이 확보된 거야, 공주님. 내가 먹어 봤으니까.”
도대체 평소에 뭘 먹은 거야……? 나는 잠시 렌의 과거에 대해 상상해 보려다가 말았다.
원래 이런 얘기는 본인이 직접 꺼내기 전까지는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다.
“렌. 여기 이게 많네.”
다행히 내가 펼쳐 본 페이지에서 멀쩡한 식물을 찾을 수 있었다.
‘마크리시온.
덩굴 식물의 일종으로, 길쭉한 원통형 형태인 과실은 식용 가능하다.’
그리고 때마침 우리 눈앞에 해당 식물이 잔뜩 자라 있었다.
“아무런 효능도 없는데?”
렌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내게 말했다.
“내가 버섯 알레르기가 있어서 렌.”
“알레르기?”
나는 설명 대신 렌의 손을 잡고 눈앞의 식물을 몇 개 땄다. 이 정도면 오늘은 괜찮겠지.
“공주님 알레르기가 뭐야?”
“그 몸에 안 좋은 거 있어.”
“흠.”
렌은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공주님 지금 나한테 거짓말하고 있는데.”
나는 황당한 얼굴로 렌을 쳐다보았다. 쓸데없는 데서 예리해, 왜?
“응. 맞아. 사실 거짓말이고, 솔직히 네가 나 걱정해 줘서 일부러 저 버섯을 우리 식량으로 고른 건 잘 알겠는데, 내 상식선에선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마약은 아니야. 내가 버텨 볼게.”
내 말에 렌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말의 어느 포인트에 감탄하고 놀라는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공주님 그러면 이제부터 안 무서워할 수 있어?”
“…….”
렌이 뭔가 재밌는 걸 발견한 아이처럼 씨익 웃으며 제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그리고 관찰하듯 내 얼굴을 이리저리 훑으며 쳐다보았다.
잘생긴 사람에게는 면역이 없어서 심장 아프니까 떨어져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오히려 렌의 얼굴이 있었기에 내가 이 미친 상황에서도 용케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 무서워해 볼게.”
“장담은 못 하는 거네?”
렌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을 살짝살짝 건들며 말했다.
“뭐, 좋아. 상관없어.”
뭐가 상관없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넘어가는 듯해 다행이었다.
나는 품 안에 있는 식량을 꼭 껴안고 렌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잡아끌었다.
방금 말도 안 되는 마약 버섯 얘기로 무서워 죽을 것 같던 공포감이 어느 정도 휘발되어 버려서 이성이 돌아왔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공주님 어딘지 알고 가?”
“여기로 쭉 가면 된다며. 빨리 가자.”
***
“공주님 이쪽.”
“응!”
“공주님 거기 말고 이쪽.”
나는 렌을 잡아끌며 열심히 설명대로 방향을 틀었다. 아니, 이럴 거면 왜 나한테 끌려가는 거야? 본인이 앞장서지?
렌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보고 그냥 안 하기로 했다.
도대체 뭐가 재밌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렌은 옆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든, 위에서 박쥐가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든 시종일관 싱글벙글했다.
그리고 연신 내게 잡힌 손을 꼼지락거렸다. 절로 내 얼굴까지 빨개지려고 했다.
도대체 왜 꼼지락거리는 건데? 그리고 내가 뒤돌아볼 때마다 짓는 수줍은 미소는 또 뭐고?
“공주님 거의 다 왔어.”
“진짜?”
“응.”
렌은 내 손을 당겨 제 품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의아해진 나에게 쉿, 제 입술에 검지를 대고 조용히 하라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렌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죽였다.
렌은 나를 아주 조심히 이끌어 버석거리는 수풀 앞으로 데려갔다. 렌이 수풀을 가르듯 치우자 오두막이 보였다.
나는 떨리는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 버려진 숲에 있는 오두막이라면 상태가 뻔했지만, 나는 아주 티끌만 한 희망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 멀쩡할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지.
눈앞에 보이는 오두막은 크든 작든 크기를 떠나 그냥 완전한 폐가 그 자체였다.
“공주님.”
그때였다. 렌이 내 귓가에 바람을 불어 넣듯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나는 깜짝 놀라서 크게 움찔거리며 렌을 쳐다보았다.
렌은 그런 내 모습이 웃겼는지 아까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실실 웃었다.
“저기야. 다행히 몬스터는 없는 것 같지?”
“나야 모르지……!”
나는 렌의 속 터지는 질문에 아주 작게 속삭이며 열불을 토해 냈다. 그에 렌은 또 뭐가 좋은지 푸흐흐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저기서 묵자.”
“…….”
사실상 노숙이랑 저 건물에 들어가는 거랑 뭐가 그렇게 다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중이었다.
그만큼 렌이 찾은 오두막의 상태는 끔찍했다. 금방이라도 좀비나 귀신 같은 게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비주얼이었다.
“문 열면 무너질 것 같은데……?”
“이미 무너져 있는 허공보다는 낫지 않아?”
나는 렌의 말에 내가 있는 곳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바람은 싸늘했고 여기서 노숙하다가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적어도 벽이라는 엄폐물이 있는 오두막 안에 머무는 것보다 배는 높았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렌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렌의 어깨를 잡고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까짓것 들어가 봤자 귀신밖에 더 나오겠어……,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 귀신이 실재하지. 그것도 겁나 흔하게.
“공주님, 내 어깨 빠지겠다.”
“……아니야. 나 참을 수 있어. 견딜 수 있어……!”
“뭘?”
나는 물끄러미 잘생긴 렌을 쳐다보았다. 염치없는 거 진짜 알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절대 안 떨어진다. 두고 봐라.
나는 렌의 팔을 덥석 안고 결연하게 말했다.
“가자. 나 마음의 준비 됐어.”
“그래.”
렌은 공포에 벌벌 떠는 나와 달리 아무렇지 않게 룰루랄라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기절할 뻔했다. 오두막 주변에는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토템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토템 주변으로는 족히 이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이빨 빠진 도끼가 무작위로 듬성듬성 꽂혀 있었고, 마당에는 짐승인지 몬스터인지 알 수 없는 뼈들이 널려 있었다.
사람 뼈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사람이 사라진 지 오백 년이나 지났는데 백골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이미 탑 안에서 본 게 있어서 단호하게 결론 낼 수 없었다.
“나, 아직 안 된 것 같아…….”
나는 렌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려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불길한 생각만 떠올랐다. 도대체 이게 뭔 잔해야!
“왜? 보니까 여긴 그냥 단순한 이교도들의 안식처 같은데.”
“……그게 어떻게 단순,”
“어차피 걔들도 오백 년 전에 죽었잖아.”
렌의 또 맞는 말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오두막 문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딱, 하루 자는 거다. 딱 하루.
“가자, 공주님.”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렌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밖에서 쏟아지는 붉은빛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흠, 침실이 어디지.”
렌은 이 살벌한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고 시종일관 덤덤한 태도로 거리낌 없이 불쑥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당연히 나도 혼자 버려질 수는 없었기에 렌의 팔을 꽉 붙들고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낡아 빠진 나무 벽에 걸려 있는 이상한 동물들의 박제들, 그리고 녹이 잔뜩 슨 촛대, 알 수 없는 그림들과 거꾸로 매달려 있는 초상화들.
“여긴가?”
렌이 예고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머리가 세 개인 여자가 우뚝 서서 나와 렌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