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13)

<6>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층의 문은 반이 부서져 있었고, 그나마 멀쩡한 문들도 열고 들어가면 내부에 먼지만 잔뜩 쌓여 있는 엉망진창인 연구실일 뿐이었다.

이름 모를 몬스터들이 방 안에서 우르르 튀어나오는 건 덤이었다.

“흐아아악!”

“공주님 이제 이런 거에 일일이 놀라는 것도 웃기지 않아?”

나는 이를 악물고 렌을 째려봤다. 지금, 들어가는 방마다 먼지 풀풀 날리면서 눈깔 여섯 개 달린 괴물이 눈 뒤집고 달려드는데 안 놀라는 게 정상이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렌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쿡쿡 찔렀다.

“왜 때리는 거야?”

“내가 넌 줄 아니? 난 새가슴이라고! 여기로 가는 게 맞긴 해? 나 진짜 무서워 죽겠어…….”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렌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손을 휘둘러 마법을 난사했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눈 멀쩡히 뜨고 돌아다니는 데에는 렌의 덕도 컸다.

몬스터들이 마법 몇 방이면 픽픽 쓰러지니까. 적어도 얘 옆에 있으면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 무서운 건 아니었다. 당장 밤에 불 꺼진 학교만 가도 오들오들 떠는데 시시각각 괴물이 출몰하는, 버려진 탑에서 혼절 안 하고 돌아다니는 게 기적일 정도이다.

나는 렌의 옷자락을 꽉 잡으며 그가 발을 옮기는 곳으로 열심히 고장 난 트렉터처럼 달달거리며 따라갔다.

“공주님, 그런데 말이야. 아까 잠겨 있던 문 열어 봐야 할 것 같지 않아?”

그때였다. 갑자기 렌이 자리에서 우뚝 멈추더니 방금까지 방긋방긋 웃고 있던 표정을 굳히고 내게 물었다.

그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잠겨 있던 문을 열려고 시도하던 렌을 떠올렸다.

영 찝찝하단 말이지.

“봉인되어 있다며. 무슨 수로 여는데? 아직 못 여는 거 아니야? 지금 그거 열쇠 찾겠다고 돌아다니는 거 아니었어?”

나는 또 한 번 뒤에서 들려오는 괴물의 울부짖음에 렌의 팔뚝을 구명줄처럼 꽉 붙든 채로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그에 렌이 내게 붙들린 제 팔을 멀뚱히 쳐다보더니 멍하니 입을 뻐끔거렸다.

도대체 무슨 대답을 내놓으려 그러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의 잘생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딱히 이 상황에 적절한 감상은 아니지만, 잘생긴 건 참 잘 생겼다.

영 상황이 현실감 없어서 그렇지, 보면 볼수록 잘생겼다. 현실에서 실제로 봤다면 눈도 못 마주치고 말도 못 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가만히 내가 붙들고 있는 놈의 팔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이때 아니면 언제 존잘남 팔뚝을 잡아 보겠어?

“…….”

“…….”

나는 괜히 놈의 팔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묻는 듯한 놈의 순수한 의문이 담긴 눈빛에 좀 뻘쭘해져서 놈의 팔뚝을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아니, 근데 마법사라면서 근육은 왜 있는 거야?

팔이 상당히 단단했다. 아니? 단단한 정도가 아니라 딴딴한데? 손가락으로 찌르면 안 들어가겠는데?

“대답 안 해 줄 거야?”

내 물음에 렌의 파란 눈동자가 다시금 보라색으로 번뜩였다.

“음, 글쎄.”

그러고는 그 보라색 눈동자로 나를 유심히 살피듯 쳐다보았다. 파헤치듯 파악하려는 시선이 묘하게 집요해서 신경이 쓰였다.

“내가 풀 수 없는 수준의 봉인이야. 아예 영원히 풀지 말라고 만든 것 같은 봉인.”

놈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럴 거면 아예 벽으로 메꾸지 뭐 하러 열쇠 구멍까지 만들어 놨대? 그리고 종자보관소라며. 거기에 처박아 둬서 어디다 쓸 건데? 그럴 거면 뭐 하러 종자를 비축해 놨어? 거기 종자보관소 아닌 거 아니야?”

내 말에 렌은 입술을 꾹 다물며 잘생긴 한쪽 눈썹을 쓱 들어 올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

“공주님 생긴 것보다 상당히 합리적인 것 같아서.”

“…….”

이건 또 무슨 반응이야? 그럼 내가 비합리적으로 생겼다는 거야?

어차피 빙의한 공주의 몸이니 내 얼굴과 다를 게 뻔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찝찝한 느낌에 표정을 찌푸리고 렌의 팔을 다시 한번 꾹꾹 찌르며 말했다.

“이러다가 식량이고 나발이고 여기서 헤매다 죽겠어.”

그에 렌이 흘끗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다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뭔가 할 말을 생각 중인가 싶어서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한 육십 초 동안 가만히 기다린 것 같다.

벌써 눈만 여섯 번 마주쳤다.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없는데?”

“…….”

머리가 아파 왔다. 과연 이 인간을 믿고 여기를 나가도 되는 게 맞는가.

다시 한번 동화 속 용사님을 기다리는 편이 팔자에 맞는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전방 이백 미터 앞을 지나가는 커다란 지네 괴물을 보고 깔끔하게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일단 내 얄팍한 상식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면 칼 들고 설치는 용사보다는 마법사가 더 셀 것 같았다.

왜, 영화에서도 결국 최종 보스는 마법사 아닌가? 그리고 얘가 마법사 주제에 스텟 분배를 잘못했는지 힘도 세 보인다.

“있잖아, 공주님.”

“응?”

내가 놈의 팔에 찰싹 붙어 고개를 들고 얼굴을 쳐다보자 잠깐 얼어붙는 듯싶더니 다시 눈썹을 쓱 들어 올렸다.

“공주님이 정신을 차린 게 이 탑 안에서부터라고 했지?”

“응. 그런데?”

내 말에 렌이 뭔가 고민하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왜?”

“…….”

황당했다. 마법사라 그런지 생각하는 것도 좀 일반인이랑 다른 건가?

“그게 질문이야?”

“응.”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니?”

내 말에 렌이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휙 저었다. 그러자 이전과 같은 황금색 마법진에서 빛이 쭉 뻗어 나가며 천장에 있던 거머리 같은 괴물에게로 쏘아졌다.

나는 아직까지도 현실성 없는 광경에 입만 쩍 벌리고 렌을 쳐다보았다.

물론 렌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무튼 네 말대로 열지 말라고 되어 있는 곳이면 종자보관소일 리가 없잖아. 거기 포기하고 다른 데부터 찾자. 괜히 헛수고하지 말고.”

“…….”

내 말에 렌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니, 현실적인 소리 해 줬더니 표정이 왜 저래?

“난 들어가 보고 싶은데.”

나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빨리 탑을 나가야겠다는 사람이 거길 왜 들어가? 여러모로 머리가 아팠다.

“마법사는 한번 한 약속을 어기면 안 되거든.”

“갑자기 여기서 약속 얘기가 왜 나와?”

내 물음에 렌이 방긋 웃으며 해맑게 설명했다.

“공주님, 하필이면 공주님이 왜 여기서 눈을 떴을까? 원래 있던 공주님은 어디 가고 갑자기, 이 시기에, 이곳에서.”

분명 목소리는 활기찼지만 이상하게 놈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찝찝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왜 난 여기서 눈을 떴을까? 원래 있던 공주는 어디 가고?

그때였다. 렌이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내 턱을 살짝 훑었다. 그러고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말간 얼굴로 제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특유의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누군가 소환한 것 같지?”

“…….”

“공주님 안 놀라? 무려 오백 년 전에 멸망해서 아무도 없는 구 마탑에 공주님이 소환, 아. 맞다. 공주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

렌이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덥석 내 손을 잡고 살짝 흥분한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렌의 눈 색이 스르륵 파란색에서 다시금 보라색으로 변했다가 또다시 파란색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상하게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했다. 세상에 저렇게 눈동자 색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인간이 어디 있어!

“공주님. 우리 그 방 들어가자.”

“……못 연다며 무슨 수로? 그 방을 열면 답이 나와?”

내 물음에 렌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금색 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적어도 여기 누가 숨어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나는 렌의 팔뚝을 잡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왜 가만히 있냐고?

당연히 얘가 뭔 소리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나는 눈만 깜빡거리며 최대한 저 수수께끼 같은 말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저놈 말대로라면 내가 누군가에 의해 소환되었다는 말인가?

아니 왜? 나는 내 이마를 빡빡 때려 보았다. 하, 더럽게 아프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나 망상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여기 누가 숨어 있다는 거야? 날 납치한 사람, 아니 소환한 사람이? 그럼 이 몸의 원래 주인인 공주는 어디 갔는데?”

내 물음에 렌의 표정이 순식간에 섬뜩하게 굳었다. 그리고 웃음기가 사라진 입에서는 꽤나 간담이 서늘해지는 문장이 흘러나왔다.

“공주님이 소환된 이상, 원래 있던 영혼은 제물로 바쳐졌겠지.”

렌이 제 검지로 내 명치를 가리켰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 간 떨리게 만드는 무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영혼에 관한 마법은 대개 등가교환이 기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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