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래서 뭐 어쩌자고.”
겨우 이성을 붙잡은 나는 상심에 빠진 마법사에게 물었다.
애초에 납치 실패범 주제에 왜 상심에 빠졌는지부터 정말 미지수였다.
“공주님, 박력 있다. 아까보다 말투가 가벼워졌어.”
“…….”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헛바람만 툭툭 튀어나왔다.
일단 나는 저 이상한 마법사를 뒤로하고 열린 문 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기로 했다.
뭐가 되었건 내 두 눈으로 정말 이 방 밖에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
“키에에에에에엑!”
쾅!
나는 곧 소스라치게 놀라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에 마법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이 발동했는지 문밖으로 쾅쾅거리는 소음이 들렸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봤다. 눈알이 한 스무 개쯤 박혀 있던 기괴한 무언가를.
괴물이…… 진짜 있잖아?
“봐, 나 공주님 찾는데 진짜 애먹었다니까?”
“이건 꿈이야…….”
“꿈 아닌데. 정신 차려, 공주님.”
“…….”
뇌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삼 일 동안 독방에 갇혀서 빵만 먹을 때도 이렇게까지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내가 충격 먹거나 말거나 마법사는 내게로 쪼르르 달려와 방긋방긋 웃으며 물었다.
“이제 어쩔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쭉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고, 놈도 그런 나를 따라 자리에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 잘생긴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밀며 열심히 갸웃거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공주님?”
“……그걸 도대체 왜 나한테 묻니. 네가 납치하셨다며!”
나는 결국 실실 웃으며 앞에서 계속 깔짝깔짝 신경을 돋우는 동화 속 인물에게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래도 내가 빙의했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공주인 척 행동하려고 했으나 이제 와서 공주는 뭔 공주! 지금 괴물이 튀어나오는 탑에 갇혔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게다가 어차피 동화 속인데 뭐, 캐릭터에 몰입 좀 못 한다고 큰일이야 나겠어?
“앗,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공주님.”
“……지금 깜짝 놀랄 때야? 이놈 자식아, 어떡할 거야. 그러니까 애초에 공주를 왜 납치해! 번거롭게 납치할 게 아니라 그냥 평화롭게 얼굴로 꼬시면 됐잖아!”
갑자기 열이 단전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와 나도 모르게 놈의 멱살을 붙잡고 짤짤 흔들었다.
내가 분노와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막 미친 사람처럼 굴자 놈은 뭔가 깨달은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얼굴? 꼬셔?”
그리고 제 얼굴을 척 가리키는 게 아닌가?
“공주님 눈에 내가 잘생겼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놈이 내 양어깨를 턱, 잡고는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에 나는 괜히 뻘쭘해져서 벌떡 일어나 벽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으나 놈도 벌떡 일어나서 나를 따라오는 바람에 왜인지 꼴이 놈과 벽 사이에 갇힌 모양이 되었다.
“응? 얼굴로 꼬시면 넘어와 줄 거였어? 잘생기면 그게 되는 거야?”
놈은 눈까지 반짝이며 내게 자신이 잘생겼냐고 물었고,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옴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 인간이 초면부터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이해도 안 되고 적응도 안 됐다.
“지금 그게 중요해?”
“나 공주님 말 듣고 잠깐 자신감이 생길 뻔했단 말이야.”
놈이 시무룩해진 얼굴로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물었다.
“근데 공주님. 지금이라도 꼬시면 넘어와 줄 거야?”
나는 조용히 놈에게서 벗어났다. 만난 지 고작 십 분밖에 안 됐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공주님 어디 가!”
“좀 닥쳐 줄래.”
“공주님. 근데 처음 봤을 때랑 너무 성격이 다른 거 아니야?”
나는 놈의 입을 닫으려는 요량으로 먹다 만 검은 빵을 마법사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놈이 혀를 빼꼼 내밀며 빵을 뱉어냈다.
“으엑. 맛없어.”
“…….”
환장하겠네. 지금 이게 동화라 마법사 성격이 이 모양인 거지? 그런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생활 마법서라도 훔쳐 오는 거였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나는 고개를 돌려 멍하니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에 마법사가 빵긋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내가 만든 거거든. 기껏 공주님 데려왔는데 굶으면 안 되잖아.”
그러고는 내 발치에 스르륵 쓰러지며 울상을 지었다.
“매일 공주님이 있을 법한 방 스무 개에 세 개씩 떨어트려 놓느라 나 마나가 모자라.”
“…….”
“그래서 쉬어야 해.”
울고 싶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맛대가리 없는 검은 빵을 이놈이 만든 거고, 이유는 내가 굶어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로써 확실히 놈에게 살의는 없다는 걸 확인했다.
죽일 생각이었으면 번거롭게 끼니 챙길 생각 안 하고 벌써 죽였겠지.
“날 납치한 목적이 뭐야.”
내 물음에 마법사가 고개를 들고 고민하는 듯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권력?”
“…….”
“내가 왕이 꼭 되어야 하거든.”
진짜 또라이인가?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금방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 또라이니까 동화 속 악역이지. 그럼 그럼.
“……그럼 납치를 하면 더더욱 안 되는 거 아니야?”
단순한 놈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묻자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물었다.
“원래 결혼하려면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누가?”
“귀족들은 다 그렇게 하던데. 레프론 공국의 레프란토 대공도 지나가는 엘프를 납치해서 결혼했고, 프로센 제국의 왕도 삼 대째 포로를 납치해서 첩실로 들였고 또, 마트란 왕국에서도 무희를 납치해서,”
나는 다시 남은 검은 빵을 놈의 입에 물려 주었다. 와, 진짜 어질어질했다.
“나 이제 이거 물려. 그만 줘도 돼.”
“그건 지금 나랑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야?”
내 물음에 마법사가 빵을 퉤퉤 뱉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공주님,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나한테 반해 봐. 사랑의 묘약은 내 전공이 아니라 못 만들었어.”
“…….”
환장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또라이 마법사보다는 용사가 나을 수도 있겠다.
용사나 기다리자, 라고 마음먹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으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공주님 오빠도 죽여 줄게.”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뭘 들은 거지?
“미쳤나 봐.”
“왜? 저번 주에도 공주님 오빠가 공주님 죽이려고 했잖아.”
“……미쳤네.”
나는 이제 진심으로 진지하게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과연 어린이 동화에 빙의한 게 맞을까?
여자주인공이 갑자기 오빠한테 살해 위협은 왜 받는 건데……? 이거 그냥 용사가 탑에 갇힌 공주님 구하러 오는 평범한 동화잖아!
“공주님 나 멀쩡한데 자꾸 미쳤다고 하면 조금 억울한데.”
“하하하하하하!”
“공주님 미쳤어?”
나는 마법사를 깔끔히 무시하고 저 멀리 구석으로 가서 놈을 등지고 쭈그려 앉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격렬하게 가고 싶었다! 독방에 갇힌 삼 일 동안 수도 없이 한 생각이지만 혹시 내가 그동안 잘못한 게 있었을까?
나는 무단횡단도 안 했고, 범죄 이력도 없는데?
동생에게 책을 읽어 줬을 뿐인데 이렇게 가혹한 상황 속으로 던져진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그냥 역하렘 고수위 판타지나 읽을걸!
“……공주님?”
그냥 헛웃음만 나왔다. 삼 일 동안 검은 빵으로 연명하다 겨우 날 납치한 마법사를 만났는데 지도 갇혔단다.
그런데 또 얘가 하는 소리가 납치당하기 직전에 이 몸이 오빠한테 죽을 뻔했다네.
“…….”
마법사가 정말 당황한 듯 주춤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하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살다 살다, 하하하하.”
“……공주님?”
나는 물끄러미 내 이상행동에 당황한 듯 옆에서 쭈뼛거리는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마법사라며. 집에 보내 주면 안 되나? 응?”
비록 동화 속 등장인물이지만 여주를 납치한 세계관 내 악역이면 그 정도 마법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긴 거 보니까 막 진짜 악역처럼 나쁘게 생기지도 않았다.
“음, 아직 못 돌아가. 아무리 내가 마나를 회복한다고 해도 여길 빠져나가는 덴 시간이 걸리니까.”
마법사가 내게로 주춤주춤 다가오더니 이내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춰 왔다.
“흐음. 이럴 때는 미안해, 라고 하는 거지?”
“…….”
어른들은 사람 말 함부로 믿는 것이 아니라며 경고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찾아와서 공주님이 화난 것 같아. 맞아?”
“…….”
마법사와 시선을 마주치자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꼭, 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놈의 푸른 눈이 너무 진지하게 빛나서 그런가? 아니면 마법사가 예상보다 잘생겨서?
나는 언제 맺혔는지도 모를 눈물을 대충 소매로 문질러 닦고선 물끄러미 마법사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마법사는 또라이였지만 여태까지 내가 실물로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다.
아니, 냉정하게 영상매체 포함해도.
역시 인간은 시각 정보에 많이 휘둘리는 종족인가 보다.
“그런데.”
“…….”
그때였다. 마법사가 돌연 씨익 웃으며 내게 물었다.
“공주님이 말하는 집 있잖아, 그거 왕궁 말하는 거 아니지?”
나도 모르게 딱딱하게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증발한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꼭 형체 없는 무언가에 완벽하게 압도된 기분이었다.
“공주님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