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Chapter 9. 토벌, 그리고 라카인(2) (12/18)

Chapter 9. 토벌, 그리고 라카인(2)

“전하께서야말로 착각하시는 것 같군요. 아직도 제가 별궁에 갇혀 살던 그 왕녀라고 생각하시나요?”

로엘린의 말에 레노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그가 막 입을 벌려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그대로 몸을 돌렸다.

“황후마마.”

집무실을 나서기 무섭게 루시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로엘린을 살피는 시선에 담긴 염려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마도 자신이 레노프와 독대하는 내내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피를 나눈 남매 사이에 잠시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가 이렇듯 걱정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 가슴속이 따스해졌다. 로엘린은 루시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시종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왕비마마를 뵈러 갈 것이니 안내하게.”

“……아, 예에.”

시종장이 집무실 안쪽을 잠시 쳐다보다가 머뭇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와장창!

레노프는 책상 위를 쓸어버린 뒤, 이를 악물었다. 그의 이마 위로 헝클어진 머리가 흘러내렸다.

“건방진 것 같으니……. 감히 빈껍데기였던 주제에.”

그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제 할 말을 서슴없이 하던 로엘린을 떠올렸다.

이런 건 그의 예상에 없었던 일이었다. 고작 몇 달 만에 저 불길한 쌍둥이 따위가 이렇게까지 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 제국의 황후가 됐다, 그거지?”

레노프의 푸른 눈이 번득였다. 뒤이어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삐뚤어진 속내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미소가 그 입가로 번져 나갔다.

“좋아. 어디, 마음껏 누려 보라고 해.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괴물’을 떼어 놓고, ‘껍데기 왕녀’를 불러들였으니 거의 다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하!”

레노프는 책상을 짚고 있다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이 살기를 품은 채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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