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페르시아 제국
샤샤샥-
수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마치 먹잇감을 모는 맹수의 몸짓과 흡사했다.
피융!
날카로운 파공음 소리가 숲속에서 울려 퍼졌다.
“전하!”
칼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은 남자는 뒤따라오는 자신의 주군의 안위를 살폈다. 그의 주군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헉, 헉.”
“괜찮으십니까?”
“헉, 헉. 난 괜찮아. 하악, 하악.”
“조금만 참으십시오.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는 주군의 상태가 악화되자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랴!”
그는 주변을 살피며 빠르게 말을 몰았다. 말은 온통 땀에 젖어 쉴 새 없이 달렸다.
쉬잉-
다시금 화살 세례가 이어졌다. 남자는 말의 고삐를 한 손으로 잡은 뒤 오른손에 쥔 검에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의 검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직 소드 마스터만이 내뿜는다는 오러 블레이드였다.
“하앗!”
남자의 기합과 함께 검에 어린 푸른빛이 화살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자 화살들은 그 힘에 부서져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크윽!”
“아스칼!”
그러나 워낙 많은 화살이었고, 그간 적들의 추격으로 지친 탓에 한 발의 화살을 허용하고 말았다.
“전 괜찮습니다.”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은 아스칼은 손으로 화살을 뽑아냈다. 그러자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독이…….’
아스칼의 상처를 본 은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미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젠장, 라몬 공작!”
그의 이름은 케이시스. 페르시아 제국의 황태자였다. 한데 그가 이런 숲속을 내달리듯 도망치고 있었다.
케이시스의 표정을 본 아스칼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파래지는 얼굴로는 설득력이 약했다.
“전 괜찮습니다, 전하. 어서 이곳을!”
그때 날아온 비수가 케이시스가 탄 말의 눈에 적중했다.
히이이잉-
“으윽!”
“전하!”
말이 고통에 날뛰자 케이시스는 말고삐를 쥐며 말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말은 몸부림치며 케이시스를 결국 바닥에 내팽개치고 말았다.
“전하!”
케이시스가 바닥에 떨어지고 미동하지 않자 아스칼은 얼른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다리의 상처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케이시스의 안위뿐이었다.
“죽여라!”
적들도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며 검을 빼 들었다.
“전하!”
아스칼은 케이시스의 생사를 확인했다. 낙마한 탓에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누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언제 화살에 맞았는지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젠장!”
“쳐라!”
“네 이놈들! 감히!”
아스칼은 케이시스를 등에 업고 검을 다잡았다. 그의 기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검에 어린 오러 블레이드!
“조심해라! 상대는 소드 마스터다!”
“하앗!”
아스칼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단 한 수에 대여섯 명이나 되는 살수가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살수들이 움찔했다.
“독, 독에 당했다. 쳐라!”
“네깟 놈들에게 당할쏘냐!”
아스칼의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숲속에 살수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한 남자가 차가운 대리석 복도를 걸어갔다. 스산한 공기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단순히 겨울의 매서운 냉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남자는 화려하게 장식된 문 앞에 섰다.
“알리게.”
“공작님, 세자크 남작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라.”
“드시지요.”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두꺼운 문이 열리고 세자크라 불린 남자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싸늘한 복도와 달리 열기가 느껴졌다. 세자크는 푹신한 카페트를 밟으며 방의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곤 한 중년인이 창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세자크는 그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중년인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세자크는 그의 손이 온통 핏자국인 것을 보고 멈칫했다.
“공작 전하, 손이…… 얼른 씻을 물을 대령하지 않고 뭐 하느냐!”
“예, 예!”
시녀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움직였다. 세자크는 그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창가엔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다. 그의 손에 묻은 피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세자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바닥에 구겨진 종이 쪼가리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주워 읽고는 안색을 굳혔다.
“이건…….”
“실패했다.”
짙은 진홍색 눈동자를 지닌 중년인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했다.
“분명 최고 정예들로 구성하여…….”
“실패했다고 말했다.”
“……송구합니다.”
중년인이 천천히 세자크에게 다가왔다. 그는 피로 물든 손을 들어 세자크의 뺨을 훑어 내렸다. 세자크의 얼굴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세자크, 내 말하지 않았느냐.”
세자크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쓸모없는 놈을 내가 어찌 처리하는지…….”
“죄, 죄송합니다…….”
“분명 말하였다.”
꽈악.
공작의 손이 세자크의 목을 쥐었다. 세자크는 숨이 가빠졌다.
“커, 커억.”
“내 분명 그 애송이에게 소드 마스터가 함께 있으니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공작은 이내 손을 풀었다. 그러자 세자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공작님, 씻을 물을 대령했습니다.”
공작은 시녀가 가져온 물로 손을 씻고 물기를 닦았다. 그러자 피로 물든 손은 깨끗해졌다.
“아스칼…….”
중년인은 미간을 꾸욱 눌렀다.
황태자의 호위 기사 아스칼. 그놈이 문제였다. 제국의 다섯 명의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인 아스칼은 황태자의 심복 중 심복이었다. 한 번은 그를 포섭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접근해 보았으나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 출신이라 인질조차 잡을 자가 없었다. 거기다 황태자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보다 깊었다.
중년인의 눈이 번뜩였다.
“다크소드로 간다. 채비하거라.”
“모시겠습니다.”
세자크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중년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몸을 돌렸다.
“목숨줄이 질기군, 황태자.”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어렸다.
* * *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아스타.
레칸 대륙의 드넓은 북부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 제국의 수도에 드디어 헬리아 일행이 발을 디뎠다. 성문을 지나 수도 안으로 들어가자 벨리앙 백작의 영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길은 잘 다듬어진 돌로 탄탄히 깔려 있었고, 거리와 상점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3층 이상 되는 건물도 많이 눈에 띄었고, 특히나 상인으로 보이는 자가 많았다.
“우와! 사람이 정말 많아!”
“저것 좀 봐! 우와!”
숀과 휴가 들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국엔 처음 와보는 그들로서는 제국의 문물이 낯설었던 것이다. 바닥은 전부 돌로 짜 맞추어져 있어 마차가 다니기 용의했고, 길거리엔 마석을 박은 가로등들이 세워져 있었다. 숀 일행이 놀라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과 달리 헬리아는 미묘한 눈빛을 띠었다.
“여기가 제국인가…….”
수도의 분위기는 며칠 있을 황제의 탄신일로 축제 분위기였다. 거리엔 악사들과 상인들이 가득했고, 탄신일에 초대된 타국의 인물도 여럿 눈에 띄었다.
헬리아는 주변을 훑다가 몸을 돌렸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때요? 멋지지 않아요?”
“우와, 대단해. 마석으로 만든 전등은 처음 봤어.”
알런이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의기양양 숀 일행에게 제국에 대해 이것저것 말해주었다.
헬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하아…….”
뭐라도 이득이 될까 싶어서 계약서를 받아두긴 했는데, 지금까지 알런의 가치라곤 그저 반반한 얼굴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혼자 길도 못 찾는 길치에다 힘은 여자만큼이나 나약했고, 성격 또한 모질지 못했다. 한마디로 헬리아의 기준으로 보자면 어디 쓸래야 쓸 곳이 없는 놈이었다. 그나마 성격이 참 밝고 착한 게 장점인데, 그건 헬리아에게 별 득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하다니…….”
이제까지 손해 본 일이 한 손에 꼽을 정도인 헬리아는 알런에 대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헬리아는 숀 일행과 시끌벅적 떠들썩한 알런을 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예?”
“수도에 왔잖아.”
“아…….”
알런은 헬리아 일행의 정체를 모른다. 그저 평범하지 않은 여행자 정도로 보고 있었다. 헬리아의 말에 알런은 급 우울해졌다. 이제까지 정이 든 탓에 헤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곧 형을 본다는 생각에 얼굴의 그늘을 지우고 웃으며 말했다. 수도에 있다면 시간이 나면 다시 보면 그만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 꼭 잊지 않을게요.”
“은혜는 무슨. 네 한 사람 몫이나 잘하라고.”
“너무해요.”
알런이 헬리아의 야박한 말에 울상을 지었지만 그게 그녀의 애정 표현(?)이라 생각했다.
“어디 길 잃어버리지 말고, 강도나 만나지 말고.”
“예예.”
알런이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시간 되시면 한번 놀러 오세요. 제가 한 턱 쏠게요!”
헬리아는 손을 휘이휘이 저어주었다.
“잘 가.”
“어디 다치지 말고.”
“길도 잃어버리지 마.”
숀 일행이 애정 어린 충고를 해주며 알런을 송별했다. 알런은 가슴이 찡해 오자 눈물을 훔치곤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봬요!”
알런은 웃으며 걸어갔다.
헬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푹 한숨을 쉬었다. 문득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저거 어디 납치라도 되지 말아야지.”
헬리아의 혀 차는 소리에 일행은 모두 공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사고가 일어났다.
“어이, 예쁜 아가씨?”
“무슨 일이세요?”
“아니, 너무 예뻐서 밥이나 한 끼 먹자고.”
“아, 저 아가씨 아니에요.”
“에이, 빼지 말고.”
남자 서너 명이 알런을 포위하더니 그를 끌고 가려는 게 아닌가! 알런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들은 끈질겼다. 헬리아 일행은 멀찍이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숀, 렌스, 휴.”
“네에.”
숀 일행이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저거 집까지 데려다줘.”
헬리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암만 생각해도 저런 놈이 이제까지 숨 쉬고 살아왔다는 게 참으로 용했다. 어디 수호천사라도 떡하니 붙어 있었나?
헬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숀 일행이 알런을 따라가자 엘라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라임은 힐긋 이안을 한번 보더니 다시 헬리아를 보았다. 헬리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방을 잡아야지.”
하지만 헬리아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새카맣게 까먹고 있었다. 바로 성수기라는 것을.
* * *
“미안하게 되었수. 방이 이미 다 꽉 찼거든.”
“죄송합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
“황제 폐하의 탄신일이라 방이 없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슈, 하지만 쉽게 구하긴 힘들 거유.”
가는 여관과 가게마다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어딜 가나 빈방은 찾을 수 없었다. 바로 황제의 탄신일로 각 영지와 타국에서 찾아온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이걸 까먹고 있었다니…….”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붐비게 마련. 물론 예약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건 아르센 왕국의 사신단 이름으로 예약한 방이기에 들어갈 수 없을 뿐이다. 게다가 그 예약한 방도 내일부터였다. 사신단 일행은 일정대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후우, 어쩔 수 없나…….”
“제가 방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이안의 말에 헬리아는 그를 보았다.
“무슨 수로?”
“돈을 더 주면 방을 바꿔줄 겁니다.”
“이런 날엔 바꿔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할 거야. 그렇게 아까운 짓을 할 순 없지.”
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신분을 숨기고 온 마당에 조금이라도 튀는 일은 삼가야 했다.
“어디 찾아보면 빈방이 있겠지? 설마 죽으라는 법 있겠어?”
“…….”
“뭐, 죽진 않네.”
“위험한 곳입니다. 언제 부서질지 모릅니다.”
“정말 여길 들어갈 거야?”
그렇게 반나절을 돌아다니길 한참. 헬리아 일행은 수도 외곽에 위치해 있는 여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툭- 바삭.
헬리아는 스윽 여관 기둥을 만져 보았다. 그 순간 우수수 나뭇조각들이 떨어져 나왔다. 과연 서 있는 게 기적이었다.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군.”
“정말 들어갈 거야?”
엘라임은 혀를 찼다. 헬리아 일행이 찾은 여관은 수도 외곽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매우 허름했다. 얼마나 허름한지 폐가 직전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그 탓인지 가게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헬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외곽에 위치해 있는 다른 여관들도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선택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이걸 들어가 말아?’
“어이, 이보슈? 거기에 들어가려고?”
지나가던 한 남성이 헬리아 일행을 보고 손사래를 쳤다.
“거 큰일 나네. 가뜩이나 유령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유…… 령?”
엘라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헬리아는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구겼다.
“암튼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다른 곳으로 가게나.”
남성은 그렇게 말하곤 뒤꽁무니에 유령이라도 붙을 새라 얼른 도망갔다.
“…….”
“유, 유령이 있대!”
엘라임이 놀라 소리쳤다.
“무슨 정령이 유령을 무서워하냐?”
“그놈들은 실체가 없잖아!”
“너는 실체가 있고?”
“헬리아!”
헬리아는 엘라임의 말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이이익-
거친 경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꼭 문 여는 소리가 귀신의 곡소리와 닮아 엘라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히익! 놀랐잖아! 말하고 열어야지!”
“꼴값 떨지 말고 얼른 들어와.”
헬리아의 말에 엘라임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삐그덕. 삐그덕.
바닥은 나무 소리로 기괴했고, 안은 어두컴컴했다. 분명 창문이 있고, 밝은 낮임에도 안은 스산했다.
“유령이 있는 게 틀림없어!”
“세상에 유령이 어딨냐?”
“왜 없어! 정령도 있는데.”
“…….”
그렇긴 하다만. 헬리아는 자꾸 붙는 엘라임을 억지로 떼어내고 안으로 더 걸어들어갔다.
끼익, 끼익-
“조심하십시오!”
갑자기 들려온 인기척에 이안이 검을 빼 들고 헬리아 앞을 가로막았다.
“무언가 있습니다.”
그 소리는 점차 헬리아 일행과 가까워졌다.
끼익, 끼익-
“…….”
“…….”
“으악, 유, 유령이다!”
엘라임이 빽 소리를 질렀다.
퍽!
“누가 유령이야, 제대로 보기나 해.”
헬리아가 엘라임의 머리를 때리자 엘라임이 천천히 눈을 뜨고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유, 령인데?”
“할머니야.”
“쿄쿄쿄쿄, 자주 듣는 말이니 상관없네.”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한 노파였다. 작달막한 키에 시커먼 옷을 두르고, 머리는 새하얗게 세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헬리아도 정말 유령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쿄쿄쿄쿄!”
노파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음산하게 가게에 울려 퍼졌다.
“저기, 방이 있나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남아도는 게 보였다. 이런 여관에 누가 오겠는가. 이건 허름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쿄쿄쿄쿄! 물론이네. 방은 많으니 마음껏 쓰게나. 하룻밤에 5골드이네.”
“5골드라구요?”
“엄청 비싸잖아!”
헬리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녀의 시선과 노파의 시선이 마주쳤다.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비싸다니?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른 데로 가보든지. 쿄쿄쿄쿄! 물론 방이 있다면!”
‘요 할망구가.’
헬리아는 이를 으득 물었다. 빈방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산 노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5골드라는 파렴치한 가격을 내뱉은 노파는 헬리아에게 노괴로 바뀌었다.
헬리아는 순간 얼굴 표정을 싹 바꾸었다.
‘이런 노괴에게 당할 수야 없지.’
“그런가요?”
“으음?”
노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헬리아의 행동이 자신의 예상과 다른 탓이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다른 곳으로 가봐야죠.”
“빈방이 없을 텐데?”
“뭐 찾아보면 여기보다 더 좋은 데가 없을려구요?”
“쿄쿄쿄쿄!”
‘요 맹랑한 꼬마, 이 나를 상대로 튕겨 보겠다?’
‘후후, 내가 순순히 돈을 줄 리 없지요.’
헬리아와 노파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옆에 있던 엘라임과 이안은 그저 멀찍이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암튼 그렇게 됐어요. 그럼 이만.”
“흥, 노숙해야 할 거야.”
헬리아가 몸을 돌리자 이안과 엘라임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멈칫.
앞서 가던 헬리아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노파의 주름진 얼굴 속에서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헬리아는 알아챌 수 있었다.
“한데 이 여관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자릿세는 낼 돈은 있으신가 모르겠네.”
노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골드면 생각해 보겠는데…….”
“흥, 어림없는 소리!”
그러나 노파는 그들이 정말 가버릴까 초조한 모습이 역력했다. 헬리아는 주름진 표정에서 그것을 포착했다.
‘물었군!’
“1골드라도 자릿세하고 남을 텐데……. 한데 1골드도 없으면 돈도 못 벌고, 자릿세도 못 내고…… 아휴, 안타까워라. 1골드도 참 큰돈인데.”
“…….”
노파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1골드와 무일푼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추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 싸움은 누가 백기를 먼저 드느냐다!’
노파의 말처럼 이곳이 아니면 빈방이 없거나, 빈방을 구하려면 하루 종일 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헬리아는 결코 초조해하는 낯빛을 보이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뻥카도 필요한 법!
“쿄, 쿄쿄……! 이 요망한 꼬맹이!”
“1골드도 많잖아요?”
헬리아의 말에 결국 노파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이리 들어와. 밥이나 줄 터이니 처먹고 배탈이나 나라고.”
“후후후!”
헬리아는 씨익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돈도 많으면서.”
엘라임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헬리아는 손가락을 들어 흔들었다.
“자고로 돈은 아낄수록 좋은 법이야.”
“그러다 똥 된다.”
“밥이나 처먹어.”
순간 엘라임은 헬리아가 늙으면 노파 같은 노괴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 무섭다!’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나길 엘라임은 바랐다.
“나 보고 여길 들어가란 말이야?”
가게 밖에서 잔뜩 짜증이 난 음성이 들려왔다. 노파의 음식을 먹던 헬리아 일행은 자연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후진 여관이라니, 이거 무너지는 거 아니야? 나는 이런 데서 못 잔다고!”
옅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전형적인 도련님 같은 한 청년이 팔짱을 끼며 띠꺼운 눈으로 가게를 보고 있었다. 고운 얼굴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봐선 귀족인 듯싶었다.
“그러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탄신일이라 사람이 많아 방을 구하기 힘들 거라구요.”
“예약을 했어야지!”
청년의 말에 시종으로 보이는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이야 했죠. 누구 때문에 예약 날짜에 도착하지 못했을 뿐이죠.”
“이씨! 에른, 그 누구가 나지? 나인 거지? 나 욕한 거지?”
에른은 싱글벙글 웃으며 청년을 달랬다.
“에이, 제가 왜 도련님을 욕하겠습니까? 그저 그 누구 씨만 아는 거지. 암요.”
“그거 나잖아!”
“뭐, 알면 됐습니다.”
에른은 귓가를 후벼파며 강짜를 부렸다. 청년은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나 여기서 못 자. 안 잘 거야.”
에른은 피곤하다는 얼굴로 얼른 청년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러다 여기도 못 잡으면 노숙을 해야 합니다. 도련님 노숙하고 싶으세요? 도련님 바닥에서 자는 거 싫어하시잖아요?”
“……노숙은 싫다고.”
“자자, 그럼 들어가지요. 생각보다 좋을지 누가 압니까?”
“……가게도 허름해서 꼭 유령 나올 것 같은데…… 음식도 분명 맛없을 거야. 침실도 후질 테고.”
“그 입 좀 닫고 이제 들어가죠.”
에른이 청년을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청년은 여지없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야! 이것 좀 봐! 완전 후지잖아! 후져!”
“네네, 참 후지네요. 그렇지만 갈 곳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죠.”
“이씨!”
청년은 씩씩거리며 철퍼덕 헬리아 일행과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청년이 곱게 앉아 있자 에른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노파에게 다가갔다.
“하루 묵으려 하는데 방세는 어떻게 됩니까?”
노파는 헬리아를 한번 보더니 그 예의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쿄쿄쿄쿄! 5골드네.”
“5골드요? 너무 비싼데요?”
“흥! 그럼 가든지!”
노파는 곧장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미 헬리아 일행으로부터 1골드를 받은 탓에 정말로 그들에게 돈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내심 그들이 5골드를 내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거 너무 비싼데…….”
“안 낼 거야? 그럼 가.”
“조금만 깎아주실 수 없으신가요?”
“에른!”
그때 청년이 에른과 노파에게 다가왔다. 에른은 그런 청년을 보고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붙잡았다.
“도련님은 왜 또 귀찮게 나서세요?”
“흥, 고작 5골드 갖고 깎는 네가 보기 흉해서 그렇다!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줘버려.”
“네에? 하지만 비싼데…….”
타악!
청년은 제 주머니에서 5골드를 꺼내 노파에게 던졌다. 노파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그 돈을 흘리지 않고 제 주머니에 쏙 넣었다.
“쿄쿄쿄쿄! 고 도련님은 누구와 달리 아주 예의가 바르구먼.”
“대신 제일 좋은 방으로 줘.”
“좋은 방?”
노파의 눈이 가늘어지다 웃음을 지었다.
“쿄쿄쿄쿄! 한데 이걸 어쩌나? 이미 제.일. 좋은 방은 누가 차지했는데.”
“뭐라고?”
둘의 이야기를 듣던 헬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왠지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적중했다.
“저 맹랑한 아가씨가 제.일. 좋은 방을 차지했다네. 도련님이 잘 방을 말일세.”
청년의 시선이 헬리아에게 옮겨갔다. 헬리아는 노파를 향해 이를 갈았다. 노파는 씨익 웃으며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쿄쿄쿄쿄! 아까의 복수다. 요 맹랑한 꼬맹이!’
상대가 귀족으로 보이자 자신에게 시비를 걸게 만든 것이다. 헬리아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이를 갈았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청년이 뚜벅뚜벅 헬리아에게 다가왔다. 뒤에서 에른이 골치가 아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무슨 일인데?”
헬리아의 반말에 청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흥! 감히 평민 주제에 감히 이 라…… 읍!”
“하하, 도련님. 이런 아름다운 레이디에겐 예의를 차리셔야죠.”
“야!”
에른이 청년의 입을 콱 틀어막자 청년이 버둥거렸다. 에른의 키가 청년의 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탓에 청년은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헬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서 이런 개차반 도련님과 이상한 시종이라니…….’
“으읍, 야! 나 말할 거야!”
“도련님은 그 입이 문제입니다. 그 입 좀 닥치고 있어요.”
“이씨! 너 자꾸 나랑 맞먹지?”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우리 사이 아무것도 아니거든?”
“하하하, 암튼 실례했습니다.”
에른이 청년을 끌고 가려 하자 이번엔 청년이 에른의 팔을 내치고 헬리아 앞에 다시 섰다.
“방 바꿔.”
“너 나 알아?”
순순히 물러날 줄 알았는데 되레 질문을 받자 청년은 살짝 당황했다.
“모, 몰라.”
“그런데 왜 반말이야? 어린 게.”
“어, 어리다니 난 열아홉이라고!”
“어리네.”
“그럼 넌 몇 살인데?”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하는데?”
헬리아가 이상한 애를 봤다는 듯한 눈빛으로 보자 청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암튼 방이나 바꿔.”
“싫어.”
“……싫어?”
“내가 다섯 셀 동안 네가 방을 바꿔야 하는 이유 다섯 가지 대면 바꿔주지.”
헬리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엘라임과 이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러다 애 하나 잡지.
“좋아.”
꽤 쉽다고 생각했는지 청년은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얼마 가지 못했다.
“하나.”
“우선 내가…….”
헬리아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둘, 셋, 넷, 다섯. 끝.”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헬리아가 숫자를 다 세 버렸다.
“아직 다섯 안 됐잖아!”
청년은 버럭 화를 냈다.
“난 그냥 다섯을 센다고 했지, 시간을 맞춰 센다곤 안 했어.”
“감히 날 우롱해!”
자신을 놀린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청년은 이를 물고 에른의 손에서 돈주머니를 빼앗아 헬리아의 발치에 던졌다.
“돈 더 줄 테니 방 바꿔.”
헬리아는 바닥에 떨어진 돈을 보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감히 내게 돈을 던져?’
헬리아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라임과 이안은 한숨을 쉬었다. 헬리아는 천천히 일어나며 팔짱을 끼었다. 그러자 청년과 눈높이가 맞았다. 청년은 갑자기 헬리아가 일어나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뭐, 뭐?”
“내가 그지 새끼냐?”
“그, 그지?”
“그리고 나 돈 많거든? 그래서 안 바꿔줄 거그든?”
“바, 방 바꿔!”
“내가 왜?”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자 청년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헬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딱 이런 족속이 있다. 제 뜻대로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내는 놈들. 헬리아의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러자 청년이 몸을 움츠렸다. 헬리아에게서 은연중 흘러나오는 드래곤의 기운에 몸을 떤 것이다.
“주워.”
“주, 주우라고?”
“셋 셀 동안 줍는다. 하나.”
“흐, 흥! 내가 그 말을 따를 줄 알아?”
“둘.”
“나, 난 안 해!”
헬리아의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졌다. 그러자 청년은 히끅 놀라더니 얼른 바닥에 있는 돈을 주웠다. 저도 모르게 줍자 청년의 얼굴이 또 빨개졌다.
“이, 이건 그냥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거야.”
“방은 안 바꿔.”
“흐흥! 됐어. 내가 안 바꿀 거야! 내가 안 할 거라고.”
“알았으면 얼른 밥이나 처먹어.”
“…….”
청년은 헬리아의 기세에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쪼그라졌다. 옆에 있던 에른이 한숨을 쉬더니 청년을 잡아 이끌었다.
“에구, 도련님, 그러게 왜 나서서. 애초에 싸움도 못하시는 분이 그러다 맞으면 어쩔려구요?”
“야, 내가 그래도 여자한텐 안 진다.”
그때 헬리아가 눈을 번뜩이자 청년이 얼른 에른의 뒤로 숨었다.
“도련님은 참 귀여우시다니까.”
“너 나 무시하지!”
“자자, 레이디 말처럼 밥이나 처먹고 입 좀 다물어 보세요.”
“이씨.”
청년과 에른이 결국 다른 식탁으로 갔다. 한데 노파는 그들에게 헬리아 일행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에 같이 앉아.”
노파의 말에 청년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왜!”
“쿄쿄쿄쿄! 나이를 먹었더니 허리가 아픈지 영 움직이기 힘들고, 나중에 청소도…… 아구구구, 허리야…….”
“이씨!”
청년은 짜증 난다는 듯 화를 냈지만 씩씩거리며 헬리아 일행 사이에 앉았다. 헬리아는 자신을 향해 음흉하게 웃는 노파를 보며 자신을 또 엿 먹이려는 수작임을 알아챘다.
‘늙으면 더 꽁해진다고 하더니…….’
제대로 똥 밟은 듯했다. 청년이 아무 말도 없이 그들 테이블에 앉자 그래도 염치가 있는 에른이 웃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이미 청년은 합석해 있었지만 말이다. 헬리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에른도 자리에 앉았다. 그들까지 합류하자 둥근 테이블이 꽉 찼다.
청년은 헬리아와 엘라임, 이안을 살짝 훑어보다 노파가 가져온 스프와 통밀빵을 보더니 눈을 좁혔다.
“나 통밀빵은 소화가 안 돼서 싫은데…….”
“그냥 처드세요.”
에른이 얼른 스프에 빵을 찍어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으읍!”
“아,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에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제가 모시는 분으로 알베르 님이십니다.”
“리아예요.”
“야, 너 왜 나한테만 반말이야?”
소화를 다 시킨 알베르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헬리아가 확 째려보자 시선을 피했다. 제대로 쫄은 모양이다.
“그리고 여긴 동행하고 있는 라임과 이안.”
“아, 여행자이신가요?”
“뭐…….”
헬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대답했다. 상대방의 정체는 대략 짐작이 갔다. 고급스런 복장과 미세하게 느껴지는 여관 주위에 있는 기척들은 아마 호위 기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불 보듯 뻔하다. 귀족이나 그 이상의 신분이라는 것.
물론 그렇다고 쫄 헬리아가 아니었다. 상대가 귀족이라고 해도 헬리아도 귀족, 아니, 왕족 아니겠는가.
“그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하루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아마 알베르 때문일 것이다. 잘 좀 넘어가 달라는 말로 들렸다.
“스프도 밍밍해. 난 좀 더 짠 게 좋은데.”
“그만 좀 투덜거리고 드시기나 하세요.”
“너 본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잘라 버릴 거야.”
“네, 제발 좀 잘라주세요.”
“흥.”
알베르는 투덜거리면서도 잘도 스프와 통밀빵을 먹었다.
헬리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뭐, 오늘 보면 더 안 보겠지.’
헬리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항상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그렇게 질긴 인연일 줄 누가 알았겠나.
“배불러.”
알베르가 포크를 내려놓고 입가를 닦았다. 그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맛도 없고.”
“에이, 다 드셔 놓고선.”
알베르가 쏘아보자 에른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말대로 알베르는 자신의 몫뿐만 아니라 에른의 것도 빼앗아 먹은 것이다.
헬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투덜이가 따로 없군.”
“누가 투덜이라는 거야!”
“그 누구 씨만 알겠지.”
“이게!”
알베르가 씩씩거리자 헬리아는 씨익 웃으며 그를 보았다. 헬리아의 금안이 자신을 직시해 오자 알베르는 뱀 앞의 생쥐처럼 또 몸을 움츠렸다.
‘아이 씨, 내가 왜 이러지?’
알베르는 괜히 아닌 척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휘익 가버렸다.
“에구,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에른은 헬리아 일행에게 인사를 한 뒤 얼른 알베르를 뒤쫓아 갔다. 그제야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예의 바른 사람이네. 참 힘들겠어.”
엘라임이 에른을 보며 동정을 표했다. 하지만 헬리아는 에른을 떠올리곤 고개를 갸웃했다.
‘암만 봐도 즐기는 것 같은데…….’
제 주인을 대놓고 까는 놈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
가게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단번에 문을 주시했다. 허름한 로브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뚜벅뚜벅.
남자는 천천히 노파를 향해 다가갔다.
“빈방 있습니까?”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여관 주인인 노파는 오늘따라 찾는 손님이 많으니 주름진 눈이 활짝 피었다.
“쿄쿄쿄쿄! 빈방이야 많지!”
“방 하나 주시오.”
“5골드네.”
남자는 곧장 노파에게 돈이 든 주머니를 내던졌다. 주머니를 빠르게 낚아챈 노파는 내용물을 보더니 쿄쿄쿄쿄 하며 더할 나위 없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자자, 식사는 하겠는가?”
“되었소. 아무도 방해하지 마시오.”
“암, 그리하지. 쿄쿄쿄쿄!”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터벅터벅 무언가 큼지막한 것을 끌어안고 방으로 올라갔다.
헬리아는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을 찌푸렸다.
“도대체 누구지?”
“혹시 그 남자가 안고 있는 거…….”
“사람이야.”
“살인마인가? 혹시 시체를 유기하려고?”
요즘 엘라임이 무슨 추리소설이라도 보는 걸까. 헬리아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예 틀린 추리는 아니었다. 남자에게서 진한 피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살인마인가…….”
하지만 살인마치곤 느낌이 달랐다.
“…….”
이안은 물끄러미 남자가 사라진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않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관을 바꾸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안의 말에 헬리아는 그를 보았다. 이안은 미간을 좁히며 헬리아를 보았다.
“그자 소드 마스터입니다.”
헬리아의 눈이 좁아졌다.
* * *
캄캄한 어둠이 수도 아스타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아스타의 거리는 환한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길거리엔 축제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 났다.
불빛이 스미지 않는 틈 사이로 누군가 어둠을 활보했다. 한 건물 지붕 위로 검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검은 야행복과 얼굴엔 복면을 쓰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복면 사이로 드러난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만이 빛날 뿐이었다.
“여긴가?”
복면을 쓴 남자가 눈을 좁히며 건너편 여관을 살폈다. 여관은 다른 곳과 달리 매우 허름했고, 언제 부서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운영하고 있는 게 용하군.”
남자는 낮게 혀를 차며 그 낡은 여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의 눈매가 살짝 좁아졌다.
“귀찮게 됐군.”
여관 주위로 열 명 정도의 무장한 이가 포착되었다. 필시 여관 안에 있는 누군가의 호위 병력일 터. 손쉬울 거란 이번 의뢰가 처음부터 꼬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해야 할 일. 복면인은 낮게 혀를 차고 다시 주위를 살폈다. 무장한 자들의 무위는 그가 감당할 만한 것이었다.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음?’
이미 상대의 전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 이상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면 문제가 있었다.
‘소드 마스터가…… 둘?’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정보원들이 소드 마스터의 기감에 걸리지 않게 멀리서 관찰했기에 정보가 누락된 것 같았다.
남자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여관 안에 있는 두 명의 소드 마스터. 남자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밤하늘에 뜬 달빛이 검은 구름에 가리는 순간,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의 눈동자가 어둠만큼 깊어졌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은밀하게 암살하려던 남자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남자는 얼굴을 가린 검은 복면을 벗었다. 그러자 그의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다크소드의 특급 암살자.
세인.
바로 그였다
그는 긴장된 눈빛으로 여관을 내려다보았다.
* * *
아스칼은 황태자 케이시스를 침대에 눕혔다. 미리 포션을 먹여둔 덕분에 겉으로 보기엔 상처가 보이지 않았지만 워낙 상처가 깊었던 탓에 쉽게 깨어나질 못했다.
“전하…….”
아스칼은 제 상처는 돌보지도 못 하고 케이시스의 안위만을 염려했다.
“으, 으으…….”
케이시스가 낮게 신음했다. 그의 체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스칼은 황태자의 체온을 확인한 뒤 방에 있는 장작을 찾아 난로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건물이 워낙 낡고 허름한 탓인지 외풍이 심했다. 아스칼은 눈을 찌푸렸다. 적들의 눈을 피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여관으로 온 것인데 이곳에서 황태자를 치료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아스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감돌았다.
“라몬 공작…….”
이런 짓을 할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러나 황태자가 몸을 떨며 신음을 흘리자 아스칼은 이불을 덮어 그의 몸을 따듯하게 했다. 하지만 방은 쉽게 따듯해지지 않았다.
“이 방은 너무 춥다.”
아스칼이 주변을 살피다 그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
그의 손이 자연히 허리춤에 있는 검집으로 갔다. 아스칼의 기감이 예민해졌다.
‘누구지? 자객인가?’
아스칼은 최대한 숨을 죽인 채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순간 느껴졌던 기척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예민해진 건가…….”
그러나 조금의 낌새라도 안심할 수 없는 노릇. 그들은 적들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스칼은 검을 쥐었다.
“전하…….”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켰다.
* * *
“완전 냉골이네.”
엘라임은 허연 입김에 혀를 찼다. 다 쓰러져 가는 여관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난방이 안 될 줄은 몰랐다. 이거야 원, 밖이랑 안이랑 차이가 없으니. 하지만 셋 모두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지라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헬리아는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도시는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캄캄한 어둠조차 환한 불빛들에 주춤하는 듯 보였다. 지나다니던 사람들을 보던 헬리아는 문득 잊고 있던 이들이 떠올랐다.
“얘네들은 도대체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알런을 바래다주러 갔던 숀 일행이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혹시 위치를 모르는 거 아니야?”
엘라임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도착한 뒤 위치를 일러두었습니다.”
“혹시 어디서 노는 거 아니야?”
엘라임이 장난스런 숀 일행을 떠올리고 웃었다. 아마 구경을 하느라 목이 빠져 있을 것이다.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아니, 내버려 둬.”
이안이 통신구슬을 꺼내려 하자 헬리아는 손을 저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때 되면 오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그 알런과 함께 있으니 문제가 생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헬리아는 축제의 불이 켜진 길거리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제국의 추위는 아르센보다 더 매서웠지만 축제를 즐기는 이들의 마음은 그 추위마저 녹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을 텐데…….”
헬리아는 이내 창문을 닫았다.
“그럼 이만 잠이나 자야지.”
헬리아도 이렇게 긴 여행은 처음이어서 피로가 몰려왔다. 하품을 내뱉은 헬리아는 침대에 눕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뭐 해?”
헬리아는 머리를 짚었다. 자신이 그 개차반 도련님의 이상한 시종에 대해 품평할 입장이 아니었다.
“왜 안 가?”
“난 좀 있다가.”
“넌 정령계로 가.”
엘라임이 헬리아의 말에 슬그머니 시선을 외면했다. 헬리아는 눈을 좁히고 이안을 보았다. 문가에 서서 뭐 하는 짓이야.
“전 호위 기사입니다.”
이안은 헬리아가 말하기 전에 미리 선수 쳤다. 헬리아는 두 남자를 노려보며 팔짱을 끼었다.
“그래서 밤새 나랑 같이 있겠다고?”
엘라임과 이안은 헬리아가 쏘아보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나 결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래?”
헬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랑 같이 있겠단 말이지?”
부스럭.
시선을 돌리고 있던 엘라임과 이안의 귓가에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섣불리 시선을 돌릴 수도 없었다.
‘시선을 돌리면 너 죽는다.’
‘죽고 싶지 않다면 움직이지 마라.’
서로가 견제하는 상황. 그러나 또 옷가지 하나가 스르륵 바닥에 떨어지자 굳게 고정되어 있던 고개가 끼기긱 돌아가려 했다.
“다 벗었어.”
“뭐야!”
“……!”
엘라임과 이안의 고개가 순간 헬리아를 향했다. 그러나 헬리아는 팔짱을 끼고 그들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닥엔 있어야 할 그녀의 옷 대신 테이블보가 떨어져 있었다. 물론 그녀는 옷을 전부 잘 입고 있었고. 헬리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엘라임과 이안은 겨울인데도 왠지 모르게 땀을 흘렀다.
“그, 그게 아니라…….”
“왜 내가 벗었다고 하니까 보는데?”
“그, 그게…….”
“…….”
말이 없어진 두 사람. 헬리아는 당장 그들에게 선고했다.
“당장 나가!”
똑똑-
그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헬리아 일행의 시선이 모두 문을 향했다.
‘그자입니다.’
이안의 눈짓에 헬리아는 살짝 눈을 좁혔다. 피 냄새를 흘리며 들어왔던 그자. 헬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왜 찾아온 거지?’
고민할 찰나, 다행히 먼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하겠소.”
낮은 저음의 목소리. 그 목소리엔 살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엘라임과 이안은 당장에라도 공격할 준비를 갖췄다.
“죄송하지만 방을 바꿔주실 수 있으시오?”
일부러인지 상대는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목적을 말해왔다. 해칠 의사가 없다는 표현일까. 헬리아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헬리아는 초췌한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짧은 갈색 머리에 큰 체구, 그리고 옅은 하늘색 눈동자를 지닌 남자였다. 티 없이 곧고 깨끗한, 헬리아는 그의 눈빛에서 그것을 보았다.
‘이런 자는 남을 함부로 해치지 않아.’
헬리아는 남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데 묘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지?’
헬리아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기억이 잘 안 났다. 요즘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 남자는 되레 그녀의 표정에 자세를 더 낮췄다.
“환자가 있소. 미안하지만, 그 방이 너무 추워서 그런데 방을 바꿔주실 수 있겠소?”
헬리아는 남자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일말의 거짓도 없는 눈이었다. 되레 그 눈에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다.
“환자라…… 환자는 당신인 것 같네요.”
헬리아는 그러면서 남자의 허리춤에 있는 검과 그의 상처를 살폈다. 환자가 얼마나 심한지 모르지만 그도 부상이 심했다. 다리는 독에 당했는지 시커먼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헬리아의 눈에 이채가 살짝 깃들었다. 다친 소드 마스터와 환자라니, 관심이 아니 생길 수 없었다. 하지만 위험한 냄새가 났다. 헬리아는 고민했다.
남자는 품에서 헬리아에게 돈을 내밀었다.
“돈이라면 내겠소. 부탁드리오.”
“흐음.”
헬리아는 그가 내민 돈주머니를 보았다. 무직한 양이나 소리로 들어보건대 필시 제법 큰돈이 들어 있을 터. 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감사하오.”
“대신 돈 말고 다른 걸로 받아도 될까요?”
남자의 눈이 일순 가늘어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엇을 말이오?”
“아, 어려운 건 아니에요. 단지 나중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돼요. 보아하니 검 좀 쓰시는 것 같은데…….”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뭐 정 힘드시면 거절해도 돼요.”
“……아니오. 후에 반드시 부탁을 들어드리겠소.”
“아, 그리고 이건 환자한테 드리고, 이건 본인이 드시는 게 좋겠어요.”
헬리아는 품에서 포션 두 개를 꺼내 그에게 넘겼다. 남자는 의심의 눈으로 헬리아를 보았다. 헬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르센에서 포션 장사를 해요.”
“……아르센 왕국…… 상인이오?”
장사를 한다는 말보다 남자는 그녀가 타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에 더 안심한 듯 보였다.
“상인에겐 인연이 제일 중요하죠. 그냥 주는 건 아니니까 받아요.”
남자는 머뭇거리다 이내 포션을 받았다.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가 염려가 되었고, 오히려 대놓고 그냥 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 끌렸다.
“고맙소. 그럼.”
남자는 별다른 말없이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엘라임이 헬리아에게 물었다.
“왜 방을 바꿔준 거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야.”
“만나지 않았더라면 몰라도 이미 만났어. 그렇다면 최대한 얻을 건 얻어야 하지 않겠어?”
“무슨 일이 생겨도 난 몰라.”
엘라임은 고개를 휘이 내저었다.
다친 소드 마스터와 환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헬리아는 그저 눈매를 휘며 웃었다.
* * *
“쿄쿄쿄쿄!”
노파는 주름에 가려진 눈동자를 빛내며 오늘 매상을 세어 보곤 나직이 웃었다. 제법 쏠쏠한 것이 올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것 같았다.
“어디 손님이 또 안 오나?”
때마침 하늘이 노파의 소원을 들은 것일까.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한 사내가 여관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어이구, 이게 웬 횡재냐!’
노파는 남자를 보곤 얼씨구나 싶었다. 그 연보랏빛 머리의 사내는 눈을 곱게 휘며 말했다.
“빈방 있습니까?”
“쿄쿄쿄쿄! 있고말고!”
“그럼 하루만 묵어가겠습니다.”
“방값은 5골드네.”
노파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남자를 살폈다. 그 노란 머리 계집처럼 떽떽거릴지 아니면 아무 소리도 않고 툭 하니 5골드를 내밀지 내심 기대가 되는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주머니를 받아 든 노파의 눈이 커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묵직한 느낌으로 봐선 5골드가 아니었다.
노파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보았다. 그는 그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럼…….”
홀로 남은 노파는 주머니를 열어보고는 눈을 좁혔다. 그 안에는 10골드가 들어 있었다.
끼익-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른 세인은 언제 웃었냐는 듯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냉막한 표정을 지었다.
끼익끼익-
나무로 된 복도는 기괴한 소리를 흘렸다. 세인은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소드 마스터. 하지만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런 상대를 제거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미 한 번의 습격으로 잔뜩 경계심이 오른 상태였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소드 마스터의 기운이 역시 둘이군.’
세인은 느껴지는 기운에 눈을 좁혔다. 역시나 정공법이 주요했다. 목표물이 어느 방에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도박은 금물이었다. 그는 최대한 손님인 척 몸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언제 튀어나왔는지 모를 단검이 창가로 스며든 달빛에 미약한 빛을 내뿜었다. 세인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었다.
황태자 케이시스의 암살!
다크소드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너무나 위험한 의뢰였다. 하지만 다크소드에선 이 일을 받아들였다.
세인은 그 점이 이상했다. 아무리 제국 최고의 암살 조직 다크소드라지만 제국에서, 제국의 황태자를 암살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의뢰를 받아들였다.
‘우선 집중하자.’
하지만 곧 목표를 눈앞에 두자 상념을 떨쳐 버렸다. 이미 의뢰를 맡은 이상 완벽히 이행해야만 한다.
‘단숨에 숨통을 끊어놓는다.’
세인은 황태자가 머무는 방문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똑똑-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오?”
아스칼은 방문을 열어 문을 두드린 사람을 보았다. 그의 눈의 시리게 변했다. 누군가의 방해를 받는 게 불쾌하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문을 두드린 알베르는 팔짱을 낀 채 짜증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뭐야? 그 여자 방 아니었어?”
알베르는 다시 방을 확인했다. 분명 그 금발 여자의 방이었다.
“방을 바꿨소.”
“그 여자! 내가 바꿔달라고 할 때는 콧등으로 안 듣더니!”
“무슨 용무요?”
“뭐, 오히려 다행인가. 이봐, 방 좀 바꿔줘.”
아스칼의 눈이 좁아졌다. 그는 더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알베르가 더 빨랐다.
“내 방은 너무 춥단 말이야.”
“그래서 어쩌라는 거요?”
아스칼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에른이 알베르를 말렸다.
“도련님, 제가 따뜻하게 해드린다니까요.”
“추워 죽겠단 말이야! 그리고 네가 어떻게 따뜻하게 해줄 건데!”
“그거야 제 온기로…….”
알베르가 에른의 무릎을 발로 찼다.
“아얏!”
“네 온기로 따뜻해질 바에얀 콱 얼어 죽고 말 거야!”
에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베르가 다시 아스칼에게 물었다.
“방을 바꿔주면 지금 방세보다 두 배를 더 쳐주지. 그러니 방을 바꿔.”
“더 듣기 싫으니 이만 가시오.”
“이봐!”
아스칼이 한 치의 여지도 없이 거절하자 알베르는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문이 닫힌 후였다.
에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돌아가세요.”
“이익! 그 방은 춥단 말이야! 허름하고 벌레도 나오고!”
“후우, 정말 어린애라니까.”
“나 어린애 아니거든? 나 열아홉이거든?”
“네네, 자자, 그럼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러 갑시다. 이렇게 서 있는 게 더 춥잖아.”
“흥, 이대로 물러날 줄 알아? 방 바꿔줄 때까지 문을 두드릴 거야.”
알베르가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콰앙!
“어?”
알베르는 자신의 주먹을 보고 에른을 보았다.
“내 주먹이 이렇게 셌나?”
“젠장, 그게 아니에요!”
콰아앙!
다시금 큰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세인은 쇄도해 오는 이안의 검에 몸을 피했다. 그의 이마에서 작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대장, 이거 실력이 더 늘었는데요?”
“누가 대장이라는 거지?”
이안의 싸늘한 음성에 세인은 휘익 찔러 들어오는 그의 검을 막고 밀어냈다.
“이야,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분명 아르센 왕국에서는 1왕자가 온다고 들었는데…….”
세인은 허를 찔린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겉으론 실실 웃는 세인이지만 결코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젠장, 그 소드 마스터가 대장인 거야?’
그렇다고 이안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이제 갓 소드 마스터에 오른 그가 두려울 리 없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이는 정작 따로 있었다.
“오랜만이네, 세인.”
그것은 바로 세인을 보며 활짝 웃고 있는 헬리아였다.
‘하필이면 공주라니!’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세인이 그 짝이었다. 그는 아직도 그날 일을 잊지 못했다. 그날 보였던 공주의 신위. 그것은 결코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다신 안 만날 줄 알았는데!’
세인은 다시는 공주를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그렇게 몸 성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아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지금쯤 아르센의 땅바닥에 묻혀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니 참 반갑네요.”
“반갑지 않은 눈치인데?”
“하하, 그럴 리가요.”
너무 티가 났나. 세인은 침음을 삼키며 서둘러 퇴로를 확인했다. 헬리아 공주만으로도 힘든데 이 안에는 소드 마스터가 된 이안, 그리고 푸른 머리 남자까지 함께 있었다. 세인은 그가 헬리아 공주와 함께 다니는 정령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도망갈 생각하지 마, 세인.”
헬리아가 찡긋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세인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하하, 한데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전 이만…….”
“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온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세인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세인은 작게 입술을 깨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누굴 찾아온 거야?”
“누구라뇨?”
“설마하니 그날 일을 겪고도 날 찾아올 정도로 바보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봤나?”
헬리아가 피식 비웃었다.
“내가 아니면 누굴까나?”
“…….”
누구보다 속이 쓰릴 사람은 바로 세인이었다. 헬리아는 썩어가는 세인의 표정에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점점 궁금해지는데? 다크소드의 특급 암살자님께서 직접 나설 일이 뭔지.”
세인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헬리아 공주는 지나칠 정도로 감이 좋았다. 그리고 한번 물면 결코 놓지 않았다. 거기다 뒤끝도 드래곤 꼬리만큼이나 길었다. 헬리아의 눈이 번뜩였다. 세인은 순간 몸을 움찔했다.
“네가 직접 올 사람이라면 누굴까나~”
세인은 뒷걸음질 쳤지만 뒤에는 이안과 엘라임이 가로막았다. 그리고 앞에는 헬리아가 웃고 있었다.
‘큰일 났군.’
세인의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헬리아는 세인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세인은 그녀가 움직이자 움찔했지만 쉽게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헬리아는 세인을 지나쳐 방 밖으로 나갔다. 자연히 세인의 시선도 그녀를 향했다.
“무, 무슨 일이야?”
알베르가 헬리아 일행과 세인을 보고 놀란 듯 소리쳤다. 옆에 있는 에른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헬리아는 알베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알베르의 옆에 있는 아스칼에게 도달했다. 아스칼은 이미 검을 뽑아 든 채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세인은 침을 꼴딱 삼켰다.
“저자인가?”
“…….”
헬리아의 시선을 받은 아스칼의 몸에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인은 몸을 긴장시켰다. 헬리아는 아스칼을 바라보다 다시 그를 보았다.
“이쯤 되면 좀 궁금하긴 한데…… 방 바꿔준 사이에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헬리아의 말에 세인은 주먹을 쥐었다.
‘방을 바꿨단 말인가.’
세인에게는 정말 최악이 아닐 수 없다.
헬리아는 아스칼을 보았다.
“제국의 다섯 번째 검 아스칼 로젠.”
“……!”
“아스칼 로젠!”
알베르는 놀라 눈이 커졌다. 페르시아 제국에는 유명한 소드 마스터 다섯 명이 존재한다. 그중 평민 출신의 소드 마스터가 한 명 있다. 바로 아스칼 로젠. 가난한 평민 출신으로 황태자의 기사단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아스칼의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소드 마스터가 뿜어내는 살기에 여관 안은 잔뜩 긴장감으로 버무려졌다.
“뭐, 뭐야! 아스칼이라니!”
“쉿, 여기선 조용히 해야 합니다.”
에른이 살기에 몸은 떨면서 입만 둥둥 산 알베르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는 누구냐?”
아스칼이 세인을 향하던 검을 헬리아에게 겨누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단숨에 그녀의 목을 노릴 듯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의 옆에 있는 엘라임과 이안 때문이었지만, 더 큰 것은 바로 그녀 본인의 기세였다.
‘내 살기를 받아내다니……!’
아스칼의 미간이 치켜 올라갔다.
그때였다.
두두두두! 척척척!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여관 안으로 열 명의 기사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들은 헬리아 일행과 아스칼을 향해 칼을 겨누고 알베르를 향해 달려갔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이런…….”
에른은 미간을 짚었다.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왕자?”
헬리아는 알베르를 향해 네깟 놈이 무슨 왕자냐 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알베르는 헬리아의 표정에 얼굴을 붉히더니 말했다.
“흥! 나는 라비안 왕국의 제2왕자 알베르 라비안이다!”
어떠냐! 알베르가 팔짱을 끼며 당당히 말했다.
“라비안 왕국?”
그의 말을 들은 헬리아의 표정이 점점 썩어갔다. 이거 자신의 생각보다 일이 더 꼬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비안 왕국이라니. 몇 년 전 세드릭의 사건으로 그들이 범인으로 몰려 사이가 더욱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아르센 왕국의 공주인 헬리아에겐 라비안 왕국의 왕자인 그의 존재가 매우매우 껄끄럽다는 것이다. 거기다 그가 데리고 온 기사들까지.
‘어디 도련님인 줄은 알았지만 라비안 왕국의 왕자라니? 저런 놈이?’
“너는 누구냐!”
아스칼이 다시 헬리아를 향해 답을 재촉했다. 당당히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던 헬리아는 머리가 아파졌다. 아스칼의 물음에 여관에 모인 모든 사람의 시선이 헬리아를 향했다.
‘아구, 머리야.’
헬리아는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곤란한 사람은 또 있었다.
‘아…… 내 신세야.’
세인은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쾅쾅!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가 맞아?”
숀은 닫힌 가게를 보면서 알런에게 물었다. 알런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가게를 보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알런은 굳게 닫힌 서점을 보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숀 일행과 함께 형이 운영하는 서점으로 갔다. 한데 도착한 서점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고, 형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 집에 있는 거 아니야?”
“아뇨, 지금은 가게에 있어야 할 시간이에요.”
“어디라도 갔겠지.”
휴의 말에 알런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닫힌 서점이 마음에 걸렸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알런은 다시 한번 굳게 닫힌 서점을 보고선 침울해졌다.
“집에라도 가보자.”
숀은 알런의 어깨를 툭 쳤다. 그도 알런의 형이라는 ‘세인’을 만나 보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이 든 숀은 알런을 위로했다.
“네…….”
“집은 가까워?”
“얼마 안 걸려요.”
알런과 숀 일행은 알런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말처럼 십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자그마한 집이 한 채 있었다.
“여기예요.”
알런이 집을 가리켰다. 작고 허름하지만 형제 둘이 살기엔 그리 나쁘지 않은 집이었다.
“근데 집에도 형은 없는 것 같은데?”
“아직 안 들어왔나 봐요. 분명 편지도 했었는데…… 아직 못 받은 건가.”
워낙 눈이 많이 온 탓에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런은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집에서 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덜컹.
“어라?”
“왜, 무슨 일이야?”
숀이 묻자 알런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긁었다.
“저 그게…….”
“뭐가 잘못되었어?”
렌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알런이 하하 웃다 침울해졌다.
“그게 열쇠가 없어요……. 생각해 보니 오는 길에 잃어버려서…….”
알런의 말에 세 사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도 아직 안 왔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날씨도 추운데.”
숀은 이 짐 덩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공주님은 그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주고 오라고 했다. 한데 집에는 왔는데 이대로 그를 집 앞에 놓고 가면 안전할지 확신이 안 섰다. 제대로 집 안에 넣어주고 와야 그나마 안전하다고 할 것 같았다.
“그게 아무래도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춥다고.”
휴가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었다. 제국의 한겨울 날씨는 아르센의 겨울보다 혹독하고 매서웠다.
“죄송해요…….”
꼬르르륵-
알런의 배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하.”
알런은 머쓱해져서 그저 웃었다.
“그러고 보니 먹은 게 없어서…….”
“후우…….”
세 사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숀은 보다 못해 알런에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쪽지를 써놓고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어때? 우린 돈도 없고. 형이 쪽지를 보면 찾아올 거야.”
“그, 그래도 될까요?”
알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숀은 다시 알런을 데려가면 헬리아 공주가 어떤 소리를 내뱉을지 상상이 안 가지만 그래도 그녀의 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이렇게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저, 정말 고맙습니다!”
알런이 웃으며 소리쳤다. 숀은 볼을 긁적이며 민망하게 웃었다.
‘뭐, 공주님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숀 일행은 그렇게 다시 헬리아가 머무는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선 부슬부슬 흰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 * *
여관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스칼은 여전히 검을 치켜든 채 헬리아와 세인을 향해 있었고, 헬리아는 그런 아스칼을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세인이 오도 가도 못 하고 서 있는 형국이었다.
“난 이제 어떻게 하지?”
“쉿, 도련, 아니, 왕자님은 좀 분위기 파악 좀 하세요.”
에른이 조용히 알베르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 말을 바꾸지.”
아스칼은 헬리아에게서 세인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놈을 넘겨라.”
모두의 시선이 세인으로 향했다. 이 일의 주범은 바로 그였다. 세인은 들고 있는 검을 힘껏 말아 쥐었다. 저도 모르게 아스칼의 기세에 몸이 반응한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헬리아의 말에 아스칼은 물론 세인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스칼의 미간이 좁아졌다.
“결국 너도 한패인가?”
“한패였다면 이렇게 소란을 피울 리 없겠지. 나라면 이런 소란 없이 조용히 처리했을 테니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스칼은 헬리아를 노려보았다.
“무슨 속셈이냐?”
“속셈은 없어. 무엇보다 나도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으니까.”
헬리아가 세인을 흘낏 바라보았다. 담담하게 세인을 몰아붙였지만, 그녀도 역시 세인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 그건 헬리아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세인은 머쓱하게 웃었다. 하지만 속은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앞에는 헬리아 공주가, 뒤에는 제국의 다섯 번째 검이라 불리는 아스칼 린넨이 있었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젠장…….’
“그렇다면 무력을 사용하는 수밖에!”
아스칼은 세인을 통해 이번 암살을 지시한 이를 밝혀내야 했다. 자신들을 암살하러 온 자는 소드 마스터. 어중이떠중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스칼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엘라임과 이안이 아스칼을 막아섰다. 아스칼은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눈을 찌푸렸다.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유감은 없지만 날 방해하지 마라!”
아스칼의 검이 이안의 검과 부딪쳤다. 아스칼은 이미 완숙한 소드 마스터. 익숙해졌다 하나 아직 이안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상대였다.
“크읏!”
날카로운 일검에 이안이 나직이 신음을 내뱉었다. 손에서부터 발끝까지 찌릿함이 느껴졌다.
‘강하다!’
괜히 제국의 다섯 번째 검이 아니었다.
“내가 도와줄까?”
뒤에서 엘라임이 빙글거리며 웃자 이안이 눈매를 찌푸리곤 아스칼의 검을 뿌리쳤다.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
이안이 아스칼을 향해 움직였다. 상대가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나 그는 지금 부상 중. 부상 중인 상대를 상대하는 것이 천생 기사인 이안에겐 불쾌한 일이었지만, 그의 상처로 서로의 실력은 비등할 터! 이안의 검이 빠르게 아스칼을 향해 쇄도했다. 아스칼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도대체 이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점차 이성을 되찾은 아스칼은 이들이 암살자와 한편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어쩔 수 없는 법! 아스칼이 검의 빠르게 움직였다.
아스칼과 이안이 검을 겨루는 동안, 세인은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자가 없자 슬금슬금 몸을 움직였다.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수야 없지!’
세인의 눈이 빛이 났다. 의뢰는 실패로 돌아갈 테지만 그는 결코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때다!’
그가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턱!
“어딜 가려고?”
헬리아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씨익 웃었다. 세인은 흡사 사신을 만난 듯 몸을 떨었다.
“하, 하하…….”
“에른…….”
“예, 왕자님.”
에른이 대답했다.
“나는 뭐 하지?”
“왕자님은 그냥 입 다물고 있으시면 됩니다.”
“그런 거야?”
“네.”
알베르는 조용히 찌그러져 있었다.
“크읏!”
아스칼과 이안의 대결은 결국 아스칼에게 기울었다. 이안이 소드 마스터의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하나 이미 그 일은 아스칼도 겪어왔던 일이다. 당연히 경험에서 이안이 아스칼에게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안은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
‘젠장.’
이제 갓 소드 마스터에 오른 이안이다. 이만한 것도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안은 만족할 수 없었다.
“뛰어난 실력이다. 시간이 지난다면 나를 능가할 터. 하지만!”
뛰어난 젊은이의 목숨을 앗는 것은 매우 유감이나 그것보다 황태자 전하의 일이 더욱 중요했다. 아스칼의 검이 이안의 목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그만둬! 아스칼!”
멈칫!
아스칼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이안의 목 언저리에서 멈췄다.
“어떻게…….”
아스칼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와 함께 이곳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얼굴색은 파리했다. 하지만 곧은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아스칼을 꾸짖고 있었다.
“저, 전하!”
“검을 거둬, 아스칼.”
“하오나……!”
“아스칼!”
“…….”
환자의 목소리라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기백에 아스칼은 결국 검을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안을 주시하다 몸을 돌렸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보다 아스칼, 네 다리는…….”
아스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미 치료를 했습니다.”
아스칼은 순간 자신의 다리를 치료한 포션을 헬리아에게서 받았음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경솔함에 고개를 숙였다. 초조함으로 인해 앞뒤 사정을 살피지 않고 먼저 검을 뽑았다. 그가 먼저 검을 뽑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케이시스는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건물과 기사들, 그리고 헬리아 일행을 보고 눈을 좁혔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무엇을?”
케이시스의 단호한 표정에 아스칼은 푹 고개를 숙였다. 이미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케이시스는 낮게 한숨을 쉬곤 사람들을 둘러보다 이내 헬리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잠깐의 대화와 상황을 봤을 때, 지금 이 순간 대화를 나눌 사람이 그녀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케이시스의 현안에 헬리아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원하던 바네요.”
헬리아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둥근 테이블엔 헬리아, 케이시스, 알베르가 앉아 있고, 세인 주위로 엘라임, 이안, 아스칼이 서 있다. 따뜻한 차를 잔에 따르자 향긋한 차향이 번져 나간다. 에른이 헬리아와 케이시스, 알베르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세 명 모두 밤중에 마시는 차에 거부감 없이 차를 음미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세계군.’
그 모습을 바라본 세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케이시스와 엘베르는 너무도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헬리아의 모습에 눈에 살짝 이채가 돌았다. 여기서 헬리아의 정체를 아는 이는 세인과 엘라임, 이안밖에 없었다. 그 외 인물들은 도대체 헬리아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아슈란 왕국에서 난 자스민 차로군.”
헬리아는 단 한 모금에 차에 대해 꿰뚫었다. 차를 내온 에른이 놀라 눈이 커졌다.
“예, 맞습니다.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헬리아의 말에 알베르가 놀라 차를 다시 마셨다.
‘이걸 먹고 어떻게 아는 거야?’
알베르의 그런 눈치를 꾄 에른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왕자님, 그거 왕자님이 매일 드시는 차예요.’
혀가 발인 알베르는 헬리아가 차를 맞췄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하지만 케이시는 그녀의 다른 면에 놀랐다.
‘아슈란 차는 매우 고가의 상품. 도대체 정체가 뭐지?’
케이시스의 눈이 매처럼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오직 헬리아만은 여유롭게 차를 음미했다. 아슈란 왕국은 사히즈 사막에 세워진 왕국이다. 사막이라 차가 나기 쉽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그 힘겨운 사막에서 자란 자스민 차는 대륙에서 손에 꼽는다.
“다시 소개드립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케이시스입니다.”
케이시스가 헬리아를 보며 말했다.
“라비안 왕국의 왕자 알베르다.”
알베르가 뒤이어 말했다.
헬리아는 싱긋 웃었다.
“리아라고 불러요.”
케이시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자신을 밝힌 것은 그녀도 정체를 밝히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헬리아가 그런 얕은 수에 넘어갈 리 없었다.
“에른, 쿠키는 없어?”
“왕자님, 쿠키는 아쉽지만 없습니다.”
그 입 좀 다물고 가만히 찌그러져 계시면 됩니다, 라는 게 에른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도 눈치가 있었다.
“그럼 본론을 말씀드리죠.”
케이시스가 세인을 보며 말했다.
“그자를 넘겨주십시오.”
“어째서요?”
“……그자는 나를 암살하러 온 자객이오.”
“당신을 공격하진 않지 않습니까? 참 바보같이 나를 공격했죠.”
세인은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내가 왜 바보같이…….’
케이시스가 헬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태양처럼 빛나는 금발과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금안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은 매우 당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발과 금안?’
순간 무언가 생각이 나려 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케이시스는 다시 물었다.
“넘겨주지 않을 거란 말입니까?”
“넘겨줄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요.”
케이시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뒤에서 아스칼이 검을 뽑아 드는 것이 보였다. 케이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스칼은 입술을 깨물고 다시 검을 검집에 넣었다.
케이시스와 헬리아의 눈빛이 오갔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케이시스는 이 금발의 아가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정체부터가 물음표였다. 상대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케이시스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테이블에서 가장 유리한 사람은 그녀가 아닌가 하고. 케이시스는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헬리아가 암살자를 두둔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서로 한패라 하기엔 암살자의 태도가 그렇지 못했다.
‘적인가, 아니면 아군인가…….’
케이시스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비록 실수였다 하나 그는 분명 나를 암살하러 온 암살자입니다. 오히려 그를 두둔하는 것은 귀하에게 결코 좋지 못한 일입니다.”
“제가 언제 두둔한다 했습니까? 넘겨주기 싫다고 했지.”
헬리아는 빙글거리며 웃었다. 케이시스는 그녀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아우,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알베르는 머리가 아파졌다.
“암살자를 데려가서 어찌하려고요?”
이번엔 헬리아가 되물었다. 케이시스가 입을 열려는 찰나, 아스칼이 흥분해 먼저 입을 열었다.
“라몬 공작! 그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이는 엄연한 반역죄입니다!”
“아스칼!”
케이시스가 아스칼의 이름을 외쳤다. 아스칼은 그의 호통에 주춤하며 분한 듯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미 말은 내뱉어진 상황. 그 말을 들은 헬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여기서 그의 이름을 듣게 될 줄 몰랐다.
‘라몬 공작!’
황제파와 황태자파가 대립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황제도 알고 있는 건가?’
라몬 공작은 누구나 다 아는 황제파의 사람이다. 그런 자가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일이다. 케이시스가 세인을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라몬 공작의 죄를 밝히고 싶겠지. 하지만.’
황태자에겐 안타깝게 되었지만 이대로 세인을 데려가 버리면 헬리아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는 일!
헬리아가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약속하지 않았나요?”
“약속이라니?”
케이시스의 음성에 아스칼이 흠칫했다. 케이시스는 아스칼의 반응에 다시 헬리아를 보았다.
헬리아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방을 바꿔주면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죠.”
“그건!”
“아스칼!”
케이시스가 아스칼의 말을 잘랐다.
“무슨 이야기요?”
“저분이 방을 바꿔달라고 하기에 대신 방을 바꿔주면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고 약속했었죠. 설마 잊으신 건 아니겠죠? 아니면 모른 척하겠다는 건가요?”
“……그건.”
“그를 넘겨주지 않겠습니다. 이게 제 부탁이에요.”
아스칼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이건…….”
케이시스가 아스칼의 말에 앞서 말했다.
“아스칼, 약조를 했나?”
“……네.”
“너의 이름으로?”
“…….”
케이시스는 아스칼의 침묵에 눈을 감았다 떴다.
“그렇게 하시오.”
“전하!”
“너는 나의 기사이기 전에 제국의 검이다. 너의 이름으로 맺은 약속은 그리 가볍지 않다!”
“…….”
아스칼은 죄송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너는 상심 마라. 나를 위하여 그리하였다는 것을 내 모르지 않아.”
“전하…….”
헬리아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과하지요?”
“이랬다가 저랬다 뭘 어쩌라는 거야.”
“쉿.”
알베르가 헬리아의 말에 토를 달자 에른이 얼른 그의 입을 막았다.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입니다. 아무래도 방과 암살자는 이치에 맞지 않네요. 저도 그렇게 염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랍니다.”
헬리아는 웃었다. 어차피 헬리아도 단지 그런 약속으로 세인을 홀라당 넘겨 먹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주도권을 자신에게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그를 저에게 내주면 전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날 돕는다?”
케이시스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 금발 여인이 어떻게 자신을 돕는다는 건지 궁금해졌다. 자신을 향해 한 치의 밀림도 없는 당당한 여인이다. 필시 예사 신분은 아닐 터.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 선뜻 믿기도 어려웠다.
“전하께서 이곳에 온 이유는 암살자들의 습격 때문이겠죠?”
“…….”
“한데 황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황궁을 막고 전하를 암살하려 하기 때문. 아닙니까?”
“하고픈 말이 무엇이오?”
“전하를 안전하게 황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전하께서 그를 통해 라몬 공작의 죄를 밝히고자 하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
“이 일은 암살자 하나 잡았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지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중요한 건, 전하께서 황궁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거겠죠.”
헬리아의 말에 케이시스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헬리아를 보았다.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지?’
그녀의 배포와 당돌함,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식견에 케이시스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케이시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떴다.
“알았소.”
“전하!”
“아스칼, 그녀의 말대로다. 이자를 데려간다고 그자를 어떻게 할 순 없다.”
케이시스는 헬리아를 보았다. 그는 이젠 경계의 눈빛보다 흥미로운 눈으로 헬리아를 보았다.
“하면 어떻게 날 도울 생각이오?”
“현재 탄신일을 맞아 각국에서 초대받은 이들이 황궁으로 입궁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합류해서 들어간다면 저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케이시스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말대로 타국이라면 저들도 쉽게 수색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과연 누가 그를 숨겨줄 것인가 말이다.
“미안하지만 난 사양이야.”
알베르가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곤 말했다. 그의 말에 에른은 이번만큼은 그의 입을 막지 않았다. 알베르의 말대로 그도 황태자를 숨겨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이런 자리도 매우 부담이 되었다.
“난 황제파의 눈에 찍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알베르는 남의 나라 정치 싸움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탄신일 구경이나 하다 얼른 갈 셈이었다.
케이시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점은 걱정 마시죠. 어차피 이 투덜이에겐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나 왕자라니까!”
알베르가 헬리아를 향해 씩씩거렸다. 그러나 헬리아가 노려보자 알베르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고 차를 홀짝였다.
‘에잇, 도대체 눈깔이 뭐 그래.’
에른은 그런 알베르를 토닥이면서 묘한 눈으로 헬리아를 보았다.
‘정체가 뭐지?’
앞에는 제국의 황태자가 있고, 옆에는 라비안 왕국의 왕자가 있다. 하지만 저 여자는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이는 둘 중 하나이다.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는 배포를 지녔든가, 아니면 그만한 신분을 지니고 있다든가.
‘아니, 둘 다인가?’
에른의 시선이 헬리아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암살자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이 투덜이 왕자의 움직임도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헬리아가 씨익 웃었다.
“저는 다르지요.”
“……당신은 대체 누구요?”
케이시스가 헬리아를 보았다.
“태자비께서는 안녕하신지요?”
“무슨 말이오?”
케이시스는 헬리아의 말에 감을 잡지 못했다. 헬리아는 살짝 머리를 긁적였다.
‘벨리앙 백작이 아무 말도 안 했나?’
이쯤 되면 알아차릴 만도 하건만. 헬리아는 좀 더 힌트를 주기로 했다.
“아까 드린 포션은 어떻게, 잘 쓰셨습니까?”
“포션은 잘……!”
그는 다시 한번 헬리아를 응시했다. 금발과 금안! 케이시스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태자비, 그리고 포션. 케이시스는 드디어 기억의 조각을 모두 맞추었다.
‘설마!’
헬리아가 싱긋 웃었다.
‘알아차렸나?’
헬리아와 황태자 케이시스는 면식이 없는 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태자비의 병환으로 벨리앙 백작이 아르센 왕국에 사신으로 온 차에 헬리아는 벨리앙 백작을 통해 태자비에게 포션을 주었다.
케이시스가 벨리앙 백작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본 적이 없기에 기억하는 게 늦을 뿐. 헬리아는 케이시스의 눈에 어린 경악에 자신의 정체를 이미 파악했음을 느꼈다.
헬리아는 눈을 살짝 찡긋했다. 여기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케이시스는 그녀의 표정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소.”
“전하, 아직 신분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만. 되었다. 그녀의 신분은 내가 보장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라.”
아스칼은 케이시스의 말에 뭐라 입을 열려 했지만 그의 단호한 표정에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케이이스는 헬리아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설마 그녀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케이시스는 벨리앙 백작의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고맙소.”
두 번이나 자신을 도와준 은인에게 케이시스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뭐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알베르는 케이시스의 행동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알베르의 눈이 헬리아를 향했다. 흰 피부, 붉은 입술, 길고 찰랑거리는 금발과 금안. 눈이 번쩍 뜨일 미녀였다. 순간 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 어, 가, 갑자기 왜 더운 거지?’
알베르는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고 다급히 차를 들이켰다.
“그보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오?”
케이시스의 시선이 세인을 향했다. 세인은 난감하게 웃었다.
“그 일은 제게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
헬리아는 웃으며 말했다.
* * *
까닥까닥.
세인은 다리를 까딱거리는 헬리아를 보았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곤 그를 보았다. 세인은 침을 꼴딱 삼켰다. 도대체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 두 손에는 마나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이젠 도망치는 건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방 안의 침묵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녀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가 되레 수십 가지나 생각이 나자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 아스칼에게 붙잡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젠장.’
세인은 좌불안석이 되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헬리아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래?”
딱 그 한마디. 세인은 눈을 좁혔다. 헬리아는 그에게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았다.
“왜 묻지 않으십니까?”
“물어서 뭐 하게?”
“…….”
헬리아가 턱을 괸 팔을 빼고 다시 팔짱을 끼었다.
“네 조직은 이미 다크소드라는 것을 알고 있고, 목적이야 황태자 암살, 그리고 암살을 의뢰한 사람은 확실하진 않지만 라몬 공작. 다 아는 거 물어서 뭐 하게. 왜 이래 초짜처럼.”
세인은 땀을 삐질 흘렀다.
“자, 다시 묻지. 이제 어떻게 할래?”
“…….”
세인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묻는 것은 정보가 아니었다. 그가 이제 어떻게 행동할지 묻는 것.
세인은 헬리아를 응시했다. 금발의 금안을 지닌 이 공주는 무서운 사람이다. 적으로 만나선 안 될 사람을 적으로 만나 버렸다. 세인은 그간 그녀의 곁에서 지켜보면서 깨달았다. 그녀가 무서운 것은 무력과 지력, 그 두 개를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헬리아는 결코 쓸모없는 일에 나서지 않는다. 세인은 그 점을 다시금 상기했다.
‘그녀가 날 붙잡아둔 이유.’
그리고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그것이 이 대화의 핵심이리라. 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뭘 바라십니까?”
그는 그렇게 머리가 좋지 못하다. 그는 그저 암살자일 뿐. 모르는 것이 있다면 머리를 쥐어짜기보다는 묻는 게 편하다. 세인의 물음에 헬리아는 씨익 웃었다. 그가 물음으로써 그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협조해.”
세인이 그녀를 보았다.
“제가 그리할 것 같습니까?”
“뭐, 죽고 싶다면.”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럼 정말 죽어볼래?”
헬리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엘라임과 검을 뽑아 든 이안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안이 검을 높이 쳐들어 곧장 세인의 목에 검을 대었다.
“자, 잠깐!”
검은 세인의 목에서 고작 몇 미리 앞에 멈춰 섰다. 세인은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젠장, 진짜 죽이려고 했잖아?’
이안의 눈에 깃든 것은 명백한 살기였다. 그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그를 죽일 셈인 것이다. 하지만 세인은 결코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후…….”
세인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힐끗 헬리아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자 세인은 찔끔했다.
‘젠장.’
후회하고 또 후회가 되었다. 세인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도대체 공주는 어쩔 셈이지?’
세인이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가 황태자를 도움으로써 얻는 이득.
‘황태자와 손을 잡을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뭔가 꺼림칙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 얼른 결정하라고.”
갑작스레 들린 헬리아의 목소리에 세인의 상념도 끊겼다. 세인은 머리가 아팠다.
그때 그의 결정을 도와줄 존재가 나타났다.
“멈춰라!”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숀 일행은 헬리아 공주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발을 들이밀자마자 자신들을 향해 검을 겨누는 기사들을 보곤 놀랐다.
“네놈들은 누구냐!”
알베르의 호위 기사 단장이 앞으로 나서며 숀 일행을 막아섰다. 이제까지는 나서지 않고 지켜보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숀은 호위 기사 단장의 말에 일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아, 저기 저희는 안에 계신 리아라는 분과 일행인데요.”
숀은 헬리아 공주의 정체를 숨기고 말했다. 숀의 대답에 기사들은 움찔했다.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잠시 숀 일행을 훑어보다 검을 내렸다. 숀 일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래?”
“나도 모르겠다.”
“뭔가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숀과 휴의 대화에 알런이 끼어들었다.
“하아, 만나 보면 되겠지.”
숀은 머리가 아팠다.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무슨 안쪽만 태풍이 불었는지 건물이 박살이 나 있었다.
“내, 내 가게가…….”
한쪽 구석에서 노파의 벙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대체.”
숀은 가게 안을 보고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일에 반드시 공주님이 끼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 이건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괜히 온 거 아니야?”
“그냥 늦게 올 걸 그랬나?”
숀 일행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이내 그들의 시선이 뒤에 따라오는 알런을 향했다.
“뭐라 하겠지?”
“우린 죽은 목숨이야.”
“설마 그러겠어?”
마지막에 렌스가 긍정적인 말을 내뱉었지만 숀과 휴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마, 아니, 그분이 그럴 성격이 아니지.”
“암.”
“이미 데려왔으니 어쩔 수 없잖아.”
렌스가 숀과 휴의 반응에 살짝 이마에 땀을 흘렸다.
숀과 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알런을 데려오긴 했지만 이게 과연 잘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염연히 그들이 멋대로 행한 일이었다.
“잠시 머물다 갈 거니까 뭐라 하시진 않을 거야.”
렌스는 최대한 분위기를 쇄신시켜 보았다.
“그래요, 형이 올 때까지만 있다 갈게요.”
알런의 말에 숀은 고개를 끄덕이고 헬리아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똑똑-
“고, 아니, 아가씨, 숀입니다.”
잠시간 방 안은 조용했다.
“이 방이 아닌가?”
숀이 고개를 갸웃할 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숀은 헬리아에게 알런에 대해 말하려다 일순 말문을 열지 못했다.
“……!”
세인. 그였다. 한데 세인이 왜?
“늦었어.”
“아, 알런의 형이 집에 없어서 잠시 왔어요. 그런데 어?”
숀 대신 말을 하던 휴와 렌스는 방에 있는 익숙한 얼굴에 놀라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는 찰나, 먼저 말한 이가 있었다.
“어? 형!”
“혀엉?”
숀 일행의 눈이 모두 커졌다. 하지만 정작 세인보다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알런!”
“형이 여긴 어떻게 있는 거야?”
“그, 그게…….”
‘그러는 넌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세인은 알런이 이곳에 있는 것에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퍼뜩 옆에 있는 헬리아를 떠올렸다.
‘젠장, 하필이면!’
“아, 형? 형이구나. 네가 형이란 말이지. 으음, 좋지, 형.”
헬리아가 씨익 악마의 웃음을 지으며 세인을 보았다. 세인은 등줄기에 싸한 소름이 돋았다.
‘젠장!’
정말이지 오늘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세인이었다.
알런은 형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형이 왜 여기에 있어? 가게 문도 닫고.”
“그게…….”
세인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때 헬리아가 나섰다.
“아, 알런의 형이었어? 가는 길에 빈방이 없어서 헤맸는데 여기 세인이 여관을 찾아줬어.”
“정말로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함께 저녁 식사를 했지. 그렇지, 세인?”
헬리아의 말에 세인은 눈을 좁혔다. 하지만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 아, 그보다 되게 우연이다.”
알런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형, 편지 못 받았지? 내가 길을 잃고 도와준 분들이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 덕에 이렇게 집에 왔어.”
“그, 그래?”
세인이 힐끔 헬리아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편지, 젠장, 편지를 받았어야 했는데.’
숀을 제외한 휴과 렌스는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종된 세인이 이곳에 있다니. 게다가 뭔가 일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그때 알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알런은 머리를 긁적였다. 헬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배가 고픈 모양이네. 그러고 보니 너희도 식사를 안 했지? 내려가서 먹어.”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참 잘 왔어.”
알런을 데리고 말이야. 헬리아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
상황을 인지한 렌스가 알런과 휴를 데리고 나왔다.
“숀?”
숀은 가만히 세인을 보고 있었다. 세인도 그런 숀의 눈빛에 어색한 눈빛을 지었다. 숀은 입술을 깨물곤 몸을 돌렸다. 그런 숀의 행동에 세인은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숀만은 세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숀 일행이 내려가려 할 때 헬리아가 문득 알런에게 물었다.
“아참, 알런.”
“네?”
“그건 잊지 않았지?”
“그거라니, 아, 그거요?”
세인이 안절부절못한 눈으로 둘을 보았다.
‘그거라니?’
헬리아기 세인을 힐끔 보곤 웃었다. 알런은 그런 분위기도 모르고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잊지 않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서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알런은 그렇게 씩씩하게 말하곤 숀 일행과 함께 방을 나갔다. 이제 다시 세인과 헬리아, 엘라임, 이안만이 방에 남게 되었다.
세인의 목소리는 전과 달리 낮아졌다. 이제껏 다른 이들에게 묻혀 있던 세인 또한 소드 마스터. 결코 약한 자가 아니었다. 다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몸을 사리고 있었을 뿐이다. 마나 구속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세인이 내뿜는 기세에 부서질 듯 떨리는 것이다. 그의 음성엔 살기가 짙게 배였다.
“내 동생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세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짙어졌다. 헬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눈앞에 계약서를 내밀었다.
“신체…… 포기 각서?”
“뭐 솔직히 말해서 알런이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이거 개똥도 약에 쓸데가 있다고. 후후후.”
“이런 계약서 따위로…….”
“따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날 그렇게 허술하게 본 거야? 마법이 걸려 있어. 그거 찢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젠장!”
세인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젠 그가 할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게 협조해.”
“…….”
“그럼 그 계약서는 물론 그에게 건 마법도 풀어주지.”
세인은 눈을 감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받아들이는 일밖에는. 세인은 새삼 헬리아의 수완에 몸을 떨었다.
“좋습니다. 당신의 말을 따르지요.”
세인이 헬리아를 보았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간단해.”
헬리아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다크소드, 거기에 우리를 데려가면 돼.”
“……!”
세인은 그 말을 듣자 그녀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다크소드를?”
“난 말이야. 날 건드린 놈들은 결코 가만히 안 놔둬.”
뒤끝이 우주 안드로메다까지 뻗어 있는 헬리아다. 자신을 암살하러 온 다크소드를 결코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지려고.”
헬리아의 금안이 번뜩였다. 세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