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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장 (46/47)

종장

흐릿했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라파엘은 살며시 눈을 떠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살수일 때부터 종종 쓰러졌다가 눈을 뜨곤 했다. 물론 흙바닥에서 눈을 뜨는 일도 부지기수였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낯선 천장을 보며 깨어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좀 특별했다. 천장이 낯선 것이야 늘 있는 일이었지만, 바닥이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라파엘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아. 라파엘은 이 방의 정체를 깨닫는다. 여기는 선실이었다. 그러나 어떤 배의……? 사리스 왕의 배인가, 라고 생각했다가 라파엘은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만약에 자신이 포로가 되었다면 선실에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이렇게 화려한 선실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라파엘은 머리맡에 있는 자신의 검을 들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낯설었으니까.

팔은 이미 치료가 되어 있었다. 부상이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처치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고통이야 익숙했다. 라파엘은 천천히 선실 문을 열었다.

바닷바람이 부드러웠다. 몹시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으로 새하얀 구름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본 적이 있던가. 라파엘은 멍하니 그 바다를 보다가 인기척에 놀라 몸을 숨겼다.

“비전하께서…….”

익숙한 목소리였다. 라파엘은 몸을 드러냈고, 그 순간 시녀들이 들고 있던 은대야를 떨어뜨렸다. 비전하! 시녀들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나 라파엘은 그 시녀들을 보는 순간, 그녀들을 제치고 갑판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안네마리?”

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파엘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갑판에 서 있는 왕이 보였다. 푸른 바다를 등지고 선 왕이, 역시 푸른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라파엘을 보고 팔을 내밀었다. 환한 웃음이 가득한 그 얼굴을 보며 라파엘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이다. 아아, 정말로 행복한 꿈이 아닌가.

라파엘은 왕의 품으로 달려갔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라파엘은 어떤 신에게 감사했다. 신의 가호가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왕이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 몸을 마주 안으며 라파엘은 몇 번이고, 누군가에게 감사했다.

<제물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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