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까마귀 왕비
라파엘 에반스가 말에 올라타자 스완이 내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정말 먼저 갈 겁니까?”
스완은 그저 혀를 차는 정도였지만 뒤에 있는 부하들은 그렇지 않았다. 부하들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상대는 라파엘 에반스였지만, 왕의 총비이기도 했다. 그들 주제에 왕의 총비에게 무슨 수로 말이나 걸어보겠는가―“같이 가시죠”라고 권하고 있었다. 라파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참 많았고, 특히 전설 같은 소문들의 진위도 묻고 싶었는데 라파엘은 말을 타고 간다고 하지 않는가. 라파엘이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하지만, 라파엘. 궁문을 통과하지 못할 겁니다.”
스완의 말에 라파엘이 주섬주섬 자신의 가방에서 소개서를 꺼냈다. 시종장의 인장이 찍힌 그 소개서는 두 가지 면에서 스완의 한숨을 자아냈는데, 첫째는 왕의 그 철두철미함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저러고도 그 탈궁이 우연이라고 믿는 라파엘의 아방함 때문이었다. 스완이 더는 못 참고 눈살을 찌푸렸다.
“라파엘, 정말 당신은 이번 탈궁이 당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까?”
라파엘은 말 위에서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라파엘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스완이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은 대단히 유능한 남자입니다. 나는 당신처럼 정확하고 신속한 무인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나는 확실히 둔한 편이지만…….”
라파엘이 중얼거렸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압니다.”
스완이 그럼 그렇지 하고 중얼거렸다. 라파엘이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는 스완이 당연한 듯 토우셔에서 에드워드 라 쇼어의 위치를 내놓았을 때였다. ‘심심해서’ 전서구로 명령을 내렸다고 스완은 말했지만 특수군은 왕의 곁에서 움직이는 집단이다. 물론 왕의 곁에서 떨어질 때도 있지만 왕의 곁에서 떨어져 오랜 시간 있는 집단은 절대 아니었다. 전서구를 보낼 상대가 존재할 리 없다. 특히 스완 라 포 특수군 대장은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고 있지 않았던가. 그제야 라파엘은 냉정하게 자신이 일어나서 탈궁하던 그 순간까지를 돌이켜보았다.
누군가가 준비한 듯한 물건들과 만남.
그건 ‘듯한’이 아니라 준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왕궁의 주인이 아니면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라파엘은 왕궁의 주인이 대단히 보고 싶어졌다.
“그는.”
스완이 픽 웃었다.
“성질은 개차반이고, 특히 손도 안 대고 코 풀려는 그 행태가 참 재수 없지만.”
라파엘은 스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스완이 누구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왕을 말하는 걸까? 왕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다정하고 달콤하고 애틋했다. 그는 라파엘에게 지나칠 정도로 잘해주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살인 기계인 남자에게 그는 늘 최선을 다했다.
라파엘은 무표정하게 스완을 내려다보면서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채 스완이 말을 이었다.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라파엘이 눈을 깜빡였다. 왕을 말하는 건지 아닌지 몰라 그가 입을 열려는 무렵 스완이 왕과 닮은 미소를 씩 지으며 말했다.
“가십시오, 비전하.”
라파엘은 스완의 뒤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바람을 타고 실려 오는 바다 냄새를 맡았다. 토우셔는 해안 도시, 조금만 가면 왕의 눈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파엘이 만나고 싶은 바다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라파엘은 “그럼, 궁에서”라고 말하고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라파엘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부하들이 아쉬운 눈으로 라파엘의 등을 좇았다. 아아―.
부하들 대부분은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 같은 나이에 전설을 보유한 라파엘 에반스를 무작정 동경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사실 그들은 국왕인 이그나치오 23세의 총비인 안네마리 제1왕비보다 살인 기계 라파엘 에반스가 몇 천 배 좋았다. 아, 멋지도다. 아, 근사하도다. 형님이라 부르게 해주세요. 양날검을 쓰는 저 기백. ‘훗. 내가 자르지 못하는 건 없어, 베이비. 사내가 검을 빼면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 법. 자신의……(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렇게 말할 것만 같지 않은가. 물론 그들도 이 계통에서 일했으니 이런 망상이 어처구니없다는 걸 알고, 어느 날까지는 이런 망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라파엘이 왕과 대치 중에 결국 검을 거두는 모습은 그들의 심장을 직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사나이 에반스의 인기는 은근슬쩍 특수군들 사이에서 점차 올라가는 중이었다. 라파엘이야 워낙 둔해서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이대로라면 평생 감지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왕은 조금 달랐다.
우리 전하는 금세 아실 텐데 말이지. 어찌나 눈치가 귀신같으신지 말이지. 게다가 온 궁을 손바닥 안에 넣고 쥐락펴락해대시니, 원.
스완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거기까지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다. 쇼어 가문이 망한 오늘은 즐거운 날이었고, 그러니 사소한 건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의 집에서는 아름다운 공작부인이―그가 좋아하는 3대 조건. 어머니, 미인, 연상―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키스 도중에 버려지신 그분께서 표표히 열받으셨을 모습을 떠올리자 스완은 음 하고 신음하며 하늘을 노려보았다.
“토우셔의 특산물이 뭐였더라?”
뜬금없는 특산물 타령에 부하들이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토우셔 말입니까? 송로버섯…….”
“조개…….”
“진주…….”
스완이 고개를 돌렸다. 진주? 스완의 시선을 받은 부하가 “정확히는 여기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런타우니 섬에서 채취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무인도니까요”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고도 스완이 시선을 치우지 않자 “최고급 진주의 90% 이상이 여기서 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스완이 시선을 치우지 않자 “실버그레이 진주가 인기일 겁니다”라고 덧붙였고, 스완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의 얼굴에 머물자 부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저라고 진주에 대해 잘 알지는…….”
남자가 이만큼 잘 알면 됐지, 라고 생각하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 못 하고 변명조로 중얼거리는 부하에게 스완이 픽 웃었다.
“누가 뭐랬냐?”
시선으로 뭐라고 한 주제에 시치미다. 부하가 그저 시선을 내리깐 사이 스완은 다시 마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공작부인께 사죄를 하려면 진주 한두 알로는 부족할 것 같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안네마리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왕은 회의 중이었다. 아니, 회의를 빙자해서 신하들을 조지는 중이었다. 도대체 아는 게 없어. 왕은 웃으면서 비아냥거렸다. 무겁지도 않아? 머리는 왜 들고 다녀? 그냥 놓고 다녀, 그럼 차라리 효율적이기나 할 텐데. 머리도 거시기도 놓고 다니란 말이야. 왕이 빈정대는 동안 시종장은 빈틈없는 얼굴로 왕의 찻잔에 끊임없이 찻물을 부었고, 귀족들은 왕은 그렇다 치고 시종장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말을 하다 보면 목이라도 말라 그만두기 마련인데 저놈의 찻물이 끊임없이 준비되어 있으니, 저 독살 맞은 혓바닥이 쉬지 않고 나불나불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왕은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였다. 몇 년 전에는 얼음물을 뒤집어써도 덜덜 떨며 비굴하게 웃어야만 했던 천한 출신인 왕세자가 그 위세등등했던 쇼어 가문을 몰락시켜버렸다. 방법도 지독했다. 에드워드 라 쇼어가 노트코로 망명을 가고자 한 모양인데, 그 목이 노트코 대사의 배 돛대에 매달렸다. 대사와 수행원이 몰살당했는데도 노트코 공국은 아직도 공식적인 발언이 없다. 그들도 찔리는 데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헤수스에 들어오면서 국왕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는가. 도리어 헤수스 측에서 해명을 요구해올까 봐 전전긍긍한 모습이었다. 이런 지경이니 그 누가 왕에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쇼어가가 몰락하면서 가문의 그 거대한 재산이 공중에 떠버렸다. 이번엔 즉위 때처럼 얼렁뚱땅 개인 재산으로 편입시키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저 구렁이 같은 왕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신하들은 왕을 주시했다. 이번엔 절대로 그렇겐 안 돼. 그들은 왕을 노려보며 다짐, 또 다짐했다.
그때, 시종의 보고에 시종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장은 곧 왕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고, 왕의 뱀 같은 혀가 두 시간 45분 만에―대부분의 신하들이 처음부터 이 순간까지 시간을 재고 있었다―처음으로 멈췄다.
왕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말만 안 하면 미남이야. 모두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입만 닥치면 저렇게 아름다운 남자도 흔하지 않아. 선왕도 그러하거니와 로잘리 제2왕비가 한 미모 했거든. 그런데 저 입이…….
그때, 왕이 일어섰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노골적으로 안도의 기색이 일렁이는 신하들을 보고 왕이 싱긋 웃었다.
“앞으로 내가 며칠간 자리를 비울 예정이지만.”
왕의 이런 미소는 언제나 불길한 결과를 동반한다는 걸 아는 신하들의 얼굴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일주일 뒤부터는 매일 봅시다.”
“매…… 일 말입니까.”
“그래요, 매일.”
왕은 모두의 위에 서는 자.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몰라도 헤수스에서 왕이 정중한 언어를 쓴다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신하들이 침을 꿀꺽 삼키자 왕이 팔짱을 꼈다.
“얼마나 일을 했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때로 인간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울 수도 있지요. 경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몇 년 전의 누군가를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 누군가는 왕 자신이었다.
진짜 제대로 걸렸구나. 이 시점에서 신하의 반은 사직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왕은 무능한 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무능한 자에 대한 왕의 혐오는 지독하다. 최소한 왕의 신하는 왕이 ‘쓸모 있다’고 인정한 자이고, 그들은 궁중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인물들이다. 진퇴양난의 늪에 발이 빠져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왕이 말했다.
“곧 여름이 옵니다. 우리나라의 유일하게 좋은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제대로 일을 해두지 않으면 또 겨울에 엄청난 인명 손실이 있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초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떤 귀하신 분이 얼어 죽으셨다는 이야기들은 다들 들으셨겠지요?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만, 그렇게나 동사는 헤수스에서 심각한 일입니다. 올해는 제발 방비를 철저하게 해서 단 한 사람의 백성도 그런 불행한 일을 겪지 않도록 힘씁시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이 열심히 일을 해야겠지요. 참, 그리고.”
왕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쇼어가의 장례식이 다음 주쯤 열릴 예정이라군요. 가주는 당연히 제럴드 라 쇼어 근위대장이 됩니다만, 저는 그를 외무대신으로 천거할 생각입니다.”
“너무…… 젊지 않습니까.”
친왕파 인물인 재무대신이 물었다.
“그 점이 좋지 않습니까? 패기가 넘치니까요. 그리고 그는 근위대장으로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는 좋은 무인이지만, 너무 좋은 사람이고 저는 근위대장으로 좋은 사람은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연소 외무대신이 됩니다.”
“아, 걱정하지 마시오.”
슬슬 말에서 정중함이 사라지고 있었다.
“최연소 외무대신으로 영원히 남게 해줄지도 모르니까. 죽으면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겠나?”
왕이 움직였다. 그의 안네마리가 돌아왔다. 문득 토우셔에서 수도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의아해진 그였지만, 어쨌거나 전서구로 스완에게서 보고를 받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안네마리가 돌아왔다. 이 닭대가리들과 인간의 말로 씨름할 시간 따위 없었다. 그의 안네마리가 침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입씨름이 웬 말이란 말인가. 저, 전하? 전하! 누군가가 그를 애타게 부르는 것도 같았지만 왕은 급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다치진 않았더냐?”
“피가 좀 튄 것 같긴 했지만 왕비의 피 같지는 않았다는 보고입니다.”
“과연. 귀여운 게 결정적인 데서 참 기특하단 말이지.”
저렇게 말을 빙 둘러서 후려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재주는 아닐 텐데. 시종장은 그저 정중한 미소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이그나치오궁을 빠져나와 선 플레이스로 향하던 왕이 걸음을 멈췄다. 왕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이 종종 그러하듯, 길목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이할 점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이런 재주를 부리기엔 몹시 고귀하고 자존심이 드높은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이사벨 로지아나 태후.
그녀가 시녀들을 이끌고 거기 서 있었다. 늘 평정을 지키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왕은 그녀가 어느 정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름도 좀 보이고 말이야.’
처음으로 미인이라는 생각도 좀 들었다. 사실 그동안 이사벨 로지아나의 얼굴은 너무나 매끈해서 밀랍 인형 같았고, 왕은 늘 그녀의 얼굴이 납을 뒤집어쓴 여자처럼 소름 끼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인간적이고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가 걸어왔다.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났다. 그녀의 손이 매섭게 움직이는 걸 보면서도 왕은 일부러 뺨을 움직이지 않았다. 첫 번째 손찌검은 맞아주었다.
“선왕의 인장을 사용했잖아!”
그녀가 고함을 질렀다. 이그나치오궁과 선 플레이스를 잇는 중앙 정원, 환한 대낮에 쏟아지는 눈길도 그녀에겐 다 상관없는 듯했다. 가문을 잃고 유일한 아들마저 잃은 그녀는 미친 여자처럼 악다구니를 썼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어! 이렇게까지!”
그러면서 그녀가 손을 한 번 올렸지만 두 번째 손찌검은 왕의 손에 막히고 말았다. 왕은 그녀의 손목을 움켜쥔 채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렉시스의 낙마에 네가 개입했다는 심증이 내게 없는 줄 알아!”
“심증이라면 제게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게 뭐가 어때서요?”
왕이 물었다. 그녀의 파렴치한 짓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왕은 살아남아 그녀의 목을 죄었다. 그리고 왕도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같은 잔의 술잔을 서로 주고받았을 뿐이다. 어느 쪽도 더 취하거나 덜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그녀가 피해자인 척 구는 것이 우스워, 오래전에 모든 것을 잃었다가 최근에 겨우 한 사람을 얻은 왕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비웃었다.
“에드워드를 살려서 보낸다고 약속했잖아!”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만, 에드워드 라 쇼어는 워낙 적이 많더군요. 제가 그를 건드리진 않았지만, 제가 그를 보호할 의무까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거짓말! 그의 몸에는 ‘왕에게 충성을’이라고 적혀 있었어. 그건, 너의 그 더럽고 야비한 특수군이라는 이름의 개들이 한 거겠지. 네 손으로 한 게 아니니까 네가 한 게 아니라고 할 셈인가? 그런 비겁한 소리를…….”
아아―왕이 웃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나 했지요, 어머니.”
왕은 달콤하게 웃었다. 태후는 그가 이 타이밍을 노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태후가 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고, 이제 태후에게 마지막 타격을 줄 것이다. 손을 들어 귀라도 막고 싶은데, 태후에겐 아직 자존심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귀를 막을 수가 없었다. 왕의 앞에서는 절대로 그리할 수 없었다. 왕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라파엘 라 쇼어.”
왕의 목소리에 태후의 심장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당신들이 버린 그 아름답고 가여운 아이 말입니다. 마리 트리지아의 분신. 그 아이가 저를 너무나 사랑하여 벌인 일입니다. 저를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여서―당신들이 사랑을 주지 않아 저밖에는 아무도 없는 그 아이는, 제가 혹시라도 다칠까 봐 걱정이 너―무 되어서, 에드워드를 본보기로 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태후의 보라색 눈이 크게 뜨이는 것이 왕에게 가학적인 쾌감을 주었다. 그의 머릿속에 이 여자가 그에게 퍼부었던 학대가 하나하나 떠올랐다. 어느 것 하나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 경험들 때문에 아프거나 괴롭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당신들이 버리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얼마나 든든한 쇼어 가문의 수호자가 되어주었을까요. 그러나 어차피 버리신 거, 제가 잘 줍도록 하지요.”
태후가 털썩 주저앉는 걸 보면서 왕이 싱그럽게 웃었다. 가문 우월주의인 태후에게 이번 일이 얼마나 큰 타격이 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는 즐거워하면서 길에서 벗어났다. 그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의 적을 말살하고 그의 적들에게 공포를 선사한 무섭도록 사랑스러운 그의 왕비가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왕이면 전라로 요염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왕은 부디 소망했다.
전라로 요염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었지만, 그래. 그 소망은 좀 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렇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라고 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라파엘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침실에서 왕이 대번에 눈살을 찌푸리자 시종들이 당황한 얼굴로 “여기, 계셨었는데요……”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왕은 침실 너머의 유리문으로 라파엘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마법의 다리를 라파엘이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이 젖어서는 축 늘어져 있었다. 아마 씻고 오는 모양이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흰 옷은 라파엘이 여장을 하지 않을 때―즉 밖으로 나가지 않을 때―가장 자주 입는 옷이었다. 아직 시원한 바람이 불어 라파엘의 머리칼이며 옷자락이 한쪽으로 날렸다. 라파엘이 눈을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처음처럼, 한결같이 열에 들뜬 눈.
왕은 라파엘의 눈을 볼 때마다 우월감에 빠졌다. 라파엘은 마치 세상에서 그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남자인 것처럼 바라봐주고, 그것은 왕을 기쁘게 했다. 왕은 라파엘의 시선을 감상하며 그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라파엘이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시종장이 손을 한 번 휘저었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유리문이 탕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라파엘이 달려왔다. 마치 안겨들 것 같던 라파엘은 왕의 앞에 멈춰 서서 왕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토우셔는 좋더냐?”
왕의 말에 라파엘이 잠시간의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전하.”
“왜 몰라? 날 두고 몰래 쫓아나가서까지 보고 왔으면 그 바다가 얼마나 파란지, 여자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공기는 또 얼마나 맑고, 하늘은 또 얼마나 높은지 다 보고 왔어야지.”
왕이 심드렁히 말하면서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라파엘의 젖은 머리칼을 만지자 그 축축함이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주로 퇴폐적인 쪽으로. 첫날밤은 제대로 안지도 못했다. 이 몸을 제대로 탐하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빌어먹을. 엉망진창이야. 그놈의 쇼어 가문,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아니지, 아니지.
쇼어가는 다른 건 몰라도 라파엘을 낳았다. 라파엘을 그에게 선사했다. 그것만으로도 그 가문은 그에게서 용서받을 가치가 있었다. 쇼어가와 피가 통하지 않은 여자들,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태후, 라파엘의 가장 강력한 배후가 될 제럴드 정도는 살려놓아도 되리라.
“바다는 얼마나 파랗더냐?”
그렇게 물으며 왕이 라파엘에게 키스했다. 입술이 떨어지자 라파엘이 “모릅니다, 전하”라고 대답했다.
“네 눈에 아름다운 여자는 있더냐?”
있다고 하면 펄펄 뛸 거면서 왕은 잘도 물었다. 입술이 좀 더 오래, 좀 더 깊게 겹쳤다. 힘겹게 입술이 떨어지자 “못 봤습니다, 전하”라고 라파엘이 대답했다.
“공기는 얼마나 맑더냐?”
왕이 또 물으면서 라파엘의 옷을 벗겼다. 라파엘은 왕이 이끄는 대로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면서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전하.”
시종장이 시종들을 물리고 마지막으로 침실 문을 닫았다. 왕은 라파엘을 남에게 노출하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낭만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본인의 성적인 사생활이 여러 번 공개적으로 모욕당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싫어하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라파엘은 그다음에 왕이 던질 질문을 떠올렸다. 하늘은 얼마나 높더냐. 그러면 보지 못했다고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왕이 라파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라파엘이 무표정하게 눈만 깜빡였다. 라파엘이 당황했다는 걸 왕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무릎을 꿇는 게 굴욕적이거나 부끄럽거나 힘들지 않았다. 험난한 어린 시절의 영향이리라.
“내가, 보고 싶더냐?”
라파엘의 눈이 발작적으로 움직였다. 어느 순간, 라파엘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물었다.
“제가 전하보다 전하를 덜 사랑하기 때문에 전하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겁니까?”
뜬금없는 소리지만 여우같은 왕은 대번에 라파엘의 말을 알아들었다.
“내가 너보다 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네 표정을 알아볼 수 있는 거냐고?”
왕이 라파엘의 허리를 붙잡았다. 라파엘이 눈만 깜빡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이 순진한 살수를 향해서, 왕은 싱긋 웃었다. 신세계를 보여주지. 그는 다짐했다.
“아니, 내가 너보다 머리가 좋아서야.”
아, 그렇구나. 라파엘은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왕은 그런 그를 보고 웃었다. 가볍게 얼굴을 라파엘의 배에 비벼보았다. 라파엘이 간지러운 듯 몸을 굳혔지만 그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몸이 좋은 편이지만, 아주 말랐다. 여장을 하기 위해서라지만 지독하게 먹지 않는 편이다. 포동포동하게 찌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왕은 혀를 내밀어 라파엘의 배를 핥았다. 라파엘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에드워드 라 쇼어를 죽이고 말을 달려서 궁에 도착해 왕의 침실에 도착하자마자 라파엘은 문득 피 냄새를 맡았다. 그는 왕에게 이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문 플레이스로 가서 씻고 돌아왔다. 돌아오자 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의 바다처럼 푸른 눈, 태양처럼 환한 금발.
“너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 내가 보고 싶었더냐?”
“보고 싶었습니다.”
라파엘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왕에게 피 냄새는 어울리지 않았다. 왕은 자신이 깨끗하지 않다고 말했다. 라파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파엘은 그에게 피 냄새를 가져다주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피 냄새를 가져다주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왕이 달콤하게 웃었다.
“나도, 네가 정말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왕이 라파엘의 바지를 내렸다. 그는 그때까지도 자신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왕을 그저 내려다볼 뿐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라파엘은 성기를 가지고 있었다. 왕은 새삼스럽게 라파엘의 성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라파엘은 제대로 사정한 적이 없었다. 왕은 휙, 바람을 불었고 그 순간 라파엘의 무릎이 꺾였다. 라파엘이 왕의 어깨를 짚으며 허리를 숙였다.
“무, 무슨.”
라파엘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으려 했다. 거기에 바람을 불었는데 왜 자신이 이런 기분을 느낀 거냐고 물으려던 순간, 왕이 라파엘의 것을 입에 물었다.
“뭐, 뭐야. 싫어!”
라파엘이 비명을 질렀다. 왕은 라파엘의 비명도, 라파엘의 반말도 처음 들어보았다. 라파엘의 팔이 왕의 등을 자꾸 미끄러졌다. 라파엘의 손톱이 왕의 등을 할퀴었다. 아마 라파엘이 아주 약간의 여유만 있어도 왕을 밀치고 멀리 도망갔을 것 같은데, 라파엘은 그럴 여유도 없는 것 같았다.
실제로 라파엘은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눈앞이 번쩍거렸다. 완전히, 완전히 숨이 막혔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라파엘은 왕을 밀어내고 싶은데 밀 수 없는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생각을 할 수 없는 자신도,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자신도, 무릎이 떨리는 자신도, 무력한 자신도, 전부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가 뭔가 달라지는 자신도, 허리가 움찔거리는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뭐, 뭐, 뭐야, 이게. 그 행위는 고문과 비슷할 것이었다. 분명히. 그 커다란 것으로 몸을 가른다. 고문이라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쾌감이라는, 미지의 감각이 그를 괴롭히는 통에 두 번 다시 참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설마. 심지어.
그 미지의 감각‘만’ 존재하는 행위도 있어?!
안 돼, 하지 마. 제발, 놔줘. 말해야 해. 말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짐승의 소리뿐.
라파엘의 반응은 대단했다. 예상 이상이군. 왕은 가볍게 라파엘의 성기를 애무하면서 품 안에서 크림을 꺼냈다. 귀부인들이 좋아한다는 크림인데 과연 그의 안네마리도 좋아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거기나 저기나 결국 점막. 첫날밤을 망친 남자는―심지어 상대가 반쯤 느끼다 만 남자는―복수전을 다지게 되는 법이다. 하물며 상대가 왕처럼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나이라면 더욱(반어법이다) 그러했다. 왕은 라파엘의 성기를 가볍게 애무했다. 밤시중을 들던 상대들이 자신에게 해주던 것들을 떠올리며 그는 적당히 하려 노력했다. 라파엘이 너무 미치길 원하진 않았다. 갈 길이 멀었던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이 벌써 너무 울부짖고 있어서 사실 왕은 별 노력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라파엘은 축축한 입에서 멋대로 날뛰는 하체를 느끼며 울었다. 비명을 질렀다. 이게 뭐야. 그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운 적이 없었다. 고통과 정신을 분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통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통을 느끼면서도 정신적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눈앞이 번쩍거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심장이 아팠다. 몸의 신경이 하나씩 끊기는 기분에 라파엘은 머리를 흔들었다. 쾌감? 이런 건 쾌감이 아니었다. 왕이 해주던 키스, 그 애무. 그런 게 아니었다. 이렇게 강렬한 걸 어떻게 그런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가.
“안네마리.”
왕이 드디어 그를 부르면서 하체에서 입을 떼었다. 라파엘이 흠뻑 젖은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놀라고 공포에 질린 얼굴에 왕은 쓰게 웃었다. 이건 새신부의 얼굴이 아니지 않은가. 새신랑의 얼굴은 더더욱 아니고.
“곧 끝나.”
왕이 숨통을 틀어막을 듯이 감미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라파엘이 우는 얼굴로도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알겠습니다. 전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계세요.”
이런, 제기랄.
왕은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이 순간 들통 날 게 뭐람.
“그래, 곧은 안 끝나지만, 언젠가 끝나.”
“이건 뭡니까?”
라파엘의 검은 눈에서 또 눈물이 넘쳐흘렀다. 이 쾌감에서 도망치고 싶은데 왕의 손가락이 라파엘의 성기에 얽혀 있었다. 그 손이 가볍게 그의 성기를 감싸 쥐고 흔들었다. 라파엘이 고개를 저었다. 싫다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에 라파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왕이 비어 있는 손으로 라파엘을 엎드리게 했다. 엎드리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라파엘을 왕이 눕힐 수 있었던 것은 왕의 손에 라파엘의 성기가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엎드린 라파엘의 뒤에서 그의 성기를 잡은 채 가볍게 흔든 왕이 다른 손으로 라파엘의 다리를 벌리게 했다.
다리를 제법 크게 벌리고 엎드린 라파엘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왕이 드디어 그의 성기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머릿속이 번쩍거리는 것 같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괜찮았다. 이제, 곧 아플 거니까. 그럼 이 쾌락도 좀 잦아들 테니까.
왕은 진정하기 위해서 숨을 가다듬는 라파엘의 벗은 등을 보고 웃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제 얼굴이 아니라 등을 보고도 알 것 같았다. 저런, 안됐네. 그는 웃음을 참았다. 그는 크림을 떠서 라파엘의 엉덩이를 벌리고 입구에 바르기 시작했다. 라파엘의 등이 흔들렸지만 처음 만져지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그리고 빨리 고통으로 이 쾌락을 어떻게든 상쇄하고 싶은 것인지―라파엘은 가만히 기다리는 듯했다. 왕은 착하다, 라고 속삭이면서 라파엘의 안쪽까지 그 크림을 바르고 라파엘을 바로 눕혔다. 라파엘의 다리를 벌리고 그 안쪽에 자리 잡은 채 라파엘의 손을 가져와 자신의 것을 만지게 했다. 라파엘이 울어서 엉망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울지 마. 내 마음이 아프잖아.”
이럴 때 우는 건 아프기는커녕 뿌듯하기만 한 주제에 왕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거짓말을 했다. 라파엘이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는 듯 울음덩어리를 꿀꺽 삼키는 게 보여서 왕은 그가 귀여워 입술에 키스를 했다.
이 주변머리와 눈치로 살수를 한 게 진짜 기적이다, 기적이야.
라파엘이 에드워드 라 쇼어를 죽이는 모습을 본 특수군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젖은 얼굴,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눈,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도 여전한 무표정의 기묘한 대립이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려 왕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라파엘이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그 검은 눈을 보고, 왕은 라파엘의 멍하니 벌어진 입에 가볍게 키스했다.
“만져줘.”
라파엘이 왕을 올려다보았다. 이 감각을, 혹은 속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원래 남자는 밤에 조금 거짓말쟁이 짐승이 돼. 네가 이해해야 돼, 안네마리. 아니면 너도 남자인데 같이 거짓말쟁이 짐승이 되든가.
왕이 질척하게 라파엘의 눈물 자국을 핥았다.
“내가 만진 것처럼 해줘. 안네마리, 어서.”
라파엘의 손이 어색하게 움직였다. 능동적이진 않았다. 해주고 싶어서라기보단 왕이 해달라고 하니까 해주는 것에 가까운 듯했다. 해달라는 목소리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라파엘의 손이 몇 번 왕의 것을 만졌다. 그 어설픈 움직임에 왕이 웃으면서 신음을 뱉었다. 라파엘이 몸을 흠칫 굳히면서 왕을 바라보았다. 왕은 라파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신음을 뱉고 있었다. 그는 라파엘을 보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감각인지 이제 라파엘은 알 것 같았다. 아니―알았다. 안다.
그 순간 라파엘은 왕의 밑에서 벗어나려 했다. 도망치지 마. 언젠가 왕이 했던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지금 깨달았다. 라파엘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왕의 몸에 깔려 있기도 했지만, 그의 내부가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전…… 하…….”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에게 애원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함.
라파엘은 고문과 섹스 사이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전하, 이상……, 이게 무슨…….”
목소리가 제멋대로 쉬었다.
라파엘의 태도에 왕이 라파엘의 얼굴에 작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 키스들은 가면 갈수록 질척해졌다. 별거 아니야. 왕이 라파엘을 달랬다. 다들 이런 걸 해. 왕의 말에 라파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도 섹스의 장면들을 지켜보았다. 암살 때 몇 번이고 지켜보았지만 그들은 시트 아래에서, 몸을 움직였었다. 아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렇게―이런 사람은 없었다. 몸을 비비면서 침대 위에 있는 게 아니었어? 이런 걸 한다고? 이렇게 몸이 뜨겁고, 숨이 막히고―죽을 것같이, 죽는 것처럼?
“전하, 전하―.”
라파엘이 왕을 불렀다. 그가 필사적으로 왕을 안는다. 고문에 굴복한 적이 없는 몸은 사랑과 쾌락에는 쉽게도 무너져 내렸다.
“이름을 불러야지.”
“아이브리, 전하. 아이브리, 아읏. 잠, 이게 뭐―!”
라파엘이 머리를 흔든다. 라파엘의 몸이 덜덜 떨린다. 왕이 귓가를 핥자 라파엘이 도망을 간다. 몇 센티 머리를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움직이려 든다. 도망을 치려는 건지, 왕에게 매달리려는 건지 그 자신도 모를 것 같다.
왕은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품속에서 그의 안네마리가 덜덜 떠는 것이 느껴진다. 증폭된 쾌락으로 덜덜 떠는 그 모습이 지독하게 사랑스럽다. 왕은 천천히 라파엘의 턱을 입술로 간질였다. 그것만으로도 라파엘이 고개를 흔들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자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는 라파엘을 보면서 왕은 라파엘의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입을 벌리게 했다.
“흣, 안―아, 아아!”
아직 넣지도 않았는데, 대단한 반응이다. 다음부턴 쓰지 않겠다고 왕은 결심했다. 그는 이런 약 따윈 필요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그의 존재로 인해 열광하는 라파엘을 보는 것이다. 그가 지금 라파엘에게 그러하듯이.
그는 몸을 일으켰다. 라파엘의 왼 다리를 무릎 사이에 가둬 혹시라도 무릎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왕은 옷을 벗었다. 옷을 시원하게 벗어 던진 그는 라파엘의 다리를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라파엘의 눈을 마주하자 그때와 똑같은 검은 눈이 처음으로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눈이 좋았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는 사람이 응당 가져야 할 눈.
왕은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여기 있어.”
왕이 중얼거렸다.
“내가, 너와 같이 가고 있어.”
라파엘의 검은 눈이 조금 움직였다. 마치, 왕이 총을 쏠 때처럼. 그리고 왕이 라파엘의 안을 꿰뚫었다.
라파엘이 팔을 들어 왕의 뺨을 감쌌다. 그가 왕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라파엘이 왕의 입술에 키스했다. 누가 누구에게 삽입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거센 행위였다. 최음 크림인지 라파엘의 액인지 모를 것이 왕의 성기에 달라붙었다. 라파엘의 내부도 그의 성기에 달라붙어 조였다. 다시는 그를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왕이 신음했다. 아아. 그랬다. 그는 드디어 연인을 얻은 것이다. 동화의 해피엔딩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라파엘의 키스는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흥분하고 있었다. 사나운 욕정이 둘을 지배했다.
언제나 뭔가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뭔가는 완벽하게 채워져 있었다. 왕이 짐승같이 신음했다. 라파엘이 울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마음껏 폭주했다. 여기는 그들이 가보지 못한 세계. 아무도 올 수 없는 세계.
둘만의 세계.
가면을 뒤집어쓴 보통의 세상이 아닌 진실된 둘만이 존재하는, 그런 세상.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액이 라파엘의 내부에서, 그리고 라파엘의 배 위에서 터졌다. 라파엘이 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왕이 중얼거렸다.
“내가 신세계를 보여준다고 했었잖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라파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또 토끼같이 귀여워서 왕은 사랑스러운 비의 목에 가볍게 키스하며 “혼잣말”이라고 중얼거렸다.
§ § §
그리고 또 일상이 돌아온다.
최근 가장 큰 스캔들은 왕이 사냥 대회에 동석시켰던 ‘라파엘 라 쇼어’가 알고 보니 ‘라파엘 에반스’였고, 그가 근위대장직에 기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문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다. 누구에게 묻는단 말인가. 라파엘 라 쇼어와 라파엘 에반스가 동일 인물이냐 하는 말에 누가 대답해줄 수 있단 말인가. 어느 쪽이 대답해도 추문밖에 되지 않는 것을. 모두에게 추문이 되는 일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법, 이렇게 은근슬쩍 라파엘 라 쇼어는 근위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로도 결코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법이 없었고, 모든 공식적인 업무는 그와 같이 기용된 근위 부대장 제이슨 리아스가 대신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평민 출신인 리아스를 근위대장에 세울 수가 없어서 일부러 라파엘 라 쇼어라는 유령 인물을 들이민 것이라는 그럴싸한 가능성도 입에 올리곤 했다.
최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가장 잘 오르는 것은 안네마리 제1왕비였다. 왕이 총애하다 못해 어느 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산 채로 잡아먹어버렸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작고 여윈 이 여자는 왕비가 되었을 때는 모두의 웃음거리였으나 반년 만에 막강한 배경을 가진 여자가 되었다. 그녀의 궁 문 플레이스는 늘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새벽마다 귀족들의 마차가 길게 줄을 섰고, 늘 싸움이 났다. 내가 먼저 왔네, 자리를 맡아놨었네―하는 물밑 싸움은 이그나치오 23세의 재위 내내 끊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안네마리 제1왕비의 약한 몸에 있었다. 그녀는 몸이 지나치게 약했다. 얼마나 약했냐 하면…….
“죄송합니다만.”
난 저 계집이 저런 무표정으로 저 말을 할 때가 제일 싫더라!
어떤 귀부인이 분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다들 동조하는 듯 낯빛을 굳혔다. 마리 트리지아의 유모였던 현 왕비의 시녀장이 정중한 얼굴로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안네마리는 툭하면 몸이 안 좋아 티파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라면 미리 스케줄을 정해 진행하는 티파티도 당일 선착순으로 바뀌었다. 이건 순전히 왕의 심술이었는데, 안네마리의 티파티가 다시 열리기 시작하자 하루 만에 한 달치 스케줄이 차면서 왕과의 달콤한 아침이 한 달이나 날아가버린 탓이었다. 왕은 안네마리가 아파 도저히 티파티를 열 수 없다고 일갈하고는 정 안네마리를 만나고 싶으면 매일 와서 문 앞에서 기다리라 말했다. 그때는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왕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현재, 안네마리 왕비의 몸이 좋은 날이라 하더라도 일곱 명까지밖에 못 들어가는 티파티라는 걸 알면서도 문 플레이스 앞에는 늘 마차가 열 대 남짓 서 있곤 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안네마리의 특이한 배경이 한몫했다. 안네마리는 헤수스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완벽한 배경을 가진 여자였다. 왕의 유일무이한 총애를 받으면서도 쇼어 가문의 유일한 여자다. 오빠 둘은 외무대신과 근위대장이지 않은가. 왕에게 잘 보인다면 쇼어 가문을 적으로 돌릴지도 모르지만 안네마리에게 잘 보인다면? 양쪽 다 얻는 것이 된다.
“오늘 왕비 전하께오서는 몸이 안 좋으십니다. 다음번에 뵙겠습니다.”
“많이…… 안 좋으신 겁니까?”
프랜시스 라 쇼어, 오늘 운 좋게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가 그냥 돌아가게 생긴 안네마리의 올케가 염려를 한다기보다 시늉을 하는 얼굴로 물었다. 시녀장은 잠시 자신이 본 광경을 떠올렸다.
왕은 왕비를 안은 채 시녀장을 향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왕은 어젯밤에도 왕비를 놓아주지 않았다. 왕비는 어젯밤 근위대장으로서 한바탕 궁을 휘젓고 다녔다.
사실 세간의 의심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왕은 왕비에게 근위대장직을 부여하긴 부여했다. 하지만 왕비에게 근위대장 업무까지 부여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왕명에 의해 라파엘은 왕궁을 들쑤셨다. 어젯밤처럼.
라파엘은 왕을 들쑤셨고 당연히 근위대는 라파엘의 꼬리도 잡지 못했다. 그리고 직위는 부대장이지만 봉급은 근위대장 대우를 받고 있는 리아스는 욕도 근위대장 격으로 먹고 배를 빵빵하게 불렸다.
왕은 지친 왕비를 안은 채 손을 내저었다. 나가라. 그 광경에 시녀장이 몇 발짝 물러섰다. 휘장을 다시 닫고 왕이 집어 던진 옷가지를 정리하며 시녀장은 한숨을 쉬었다. 최근 왕은 왕비에게 속옷을 허락하지 않았다. 속옷은 늘 그렇듯 없었다.
“네, 워낙 약하신 분이라.”
시녀장의 말에 프랜시스 라 쇼어가 그렇군요, 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왕이 저 멀리서 걸어 나오는 게 보여 시녀장과 시녀들이 재빨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귀부인들의 사용인들도 무릎을 꿇고 귀부인들만이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왕이 라파엘을 안고 있었다. 라파엘은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라파엘의 신체적 약점을 깡그리 감추는 옷이었다. 왕의 재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 옷은 엄청난 가격의 옷이기도 했다.
“이런, 이런. 아직 안 갔군.”
마치 몰랐다는 말투였다. 왕의 그 말투에 안겨 있는 라파엘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래봐야 남들에게는 무표정이지만, 왕은 라파엘이 수치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라파엘은 천천히 수치를 배우고 있었다. 좋은 일이었다. 왕은 라파엘을 내려주었고, 라파엘이 내려서면서 왕을 올려다보았다. 흐릿하게 매달리는 그 시선을 보며 왕은 피식 웃었다.
안 돼.
그는 고개를 저었다. 라파엘은 어제도 도망을 갔다. 라파엘은 어젯밤 근위대 훈련 중이었다. 그는 검은 잠행복을 입고 온 궁을 들쑤시던 중 왕을 만났다. 왕은 그를 잡아 키스했다. 라파엘이 적극적으로 응했다. 라파엘이 자신도 모르게 중심부를 붙여오는 것을 보며 왕은 짐승처럼 웃었다. 좋았다. 빌어먹을. 경비 따위 맘대로 해. 그는 라파엘을 안을 생각이었다. 라파엘의 몸에서 나는 희미한 향기가 그를 미치게 했다. 어젯밤에도, 그 전날에도 라파엘을 안았다. 그래서 그는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몸이 어떻게 자신을 휘어잡는지, 자신이 그를 얼마나 열망하고 그가 자신을 얼마나 완벽하게 채워주는지.
그래서 안으려던 순간 어떤 눈치 없는 근위대 놈이 “여기다!”라고 소리쳤고, 라파엘은 도망을 가버렸다. 아무리 그런 훈련 도중이라지만 그 상황에서 도망을 가?
라파엘이 귀부인들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라파엘이 인사하자 귀부인들이 그에게 우아한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십니까, 왕비님.”
그리고 그 순간 라파엘의 뱃속에 고여 있던 흰 액체가 주륵 새어나왔다. 라파엘이 배를 감싸고 허리를 숙였다. 그는 어떻게든 뒤를 조이려고 했다. 왕은 그에게 속옷을 허락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여기서……. “흣―.” 라파엘이 몸을 떨자 왕이 재빨리 라파엘을 다시 안아 올렸다.
“보시다시피 내 비는 아파서 말이야. 여러분, 조심히 돌아가도록.”
왕이 라파엘을 안고 사라지자 왕이 데리고 다니는 시종들의 긴 행렬도 왕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행렬이 채 다 가기도 전 시녀장은 흘낏 시선을 내렸다. 거기에는 흰 점액질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라파엘은 왕에게 안긴 채 말이 없었다. 왕이 키득거렸다.
“화를 내는 거냐?”
왕의 말에 라파엘이 고개를 저었다.
“내지 않습니다, 전하.”
라파엘이 왕의 목에 이마를 대었다. 언제였지. 바라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왕을 바라선 안 된다고, 그런데 바라버렸다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라파엘은 난생처음 눈물을 흘렸다. 그 점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왕을 안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남들이 어떻게 보든 그건 상관없었다. 단지.
“속옷은…… 언제쯤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전하?”
“네가 잘하면.”
“아직, 못 하고 있는 겁니까. 저.”
“안기는 걸 고문인 줄 알았다는 무정한 연인은 속옷 좀 못 입어도 된다.”
솔직하게 모든 걸 이야기하는 게 사랑이라고 시녀장이 말해서 라파엘은 왕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왕은 입에서 불을 뿜듯이 화를 내고 라파엘의 속옷을 압수해버렸다. 라파엘은 왕의 정액을 어딘가에 떨어뜨릴까 봐 오전 내내 조심조심 걷고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화를 내는 거냐니. 화가 난 쪽은 왕이었다.
문득 라파엘이 기억난 듯 물었다.
“전하, 왜 저는 정액을 긁어주지 않는 겁니까?”
“응?”
“바이런 라 프시스는 정액을 빼내지 않았습니까? 분명 전하의 정액이 중요한 거라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래서 빼내야 한다고, 방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라파엘의 말에 왕이 싱긋 웃으며 라파엘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어쩌면 네 이 작은 머리는 기억을 하다 마느냐. 걘 남자고, 너는 공식적으로 여자니까 그렇지. 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니까 정액을 자기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 응?”
가지고 있다고 하고서 빼내면 그만일 텐데.
라파엘의 주변머리가 거기까지 닿았더라면 애초에 많은 상황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라파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라파엘의 뺨에 키스를 퍼부었다.
오늘도 좋은 날씨가 될 것 같았다. 왕은 즐거이 라파엘을 안은 채 선 플레이스로 움직였다. 라파엘의 몸에서 비누 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자신의 냄새가 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라파엘의 치마를 걷으면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리를 벌리고 안으로 들어갈까. 왕은 짐승처럼 입술을 핥았다가 겨우 참아냈다. 그래, 시간은 많았다. 그는 정욕을 내리누르고 사랑을 담아 라파엘의 머리칼에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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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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