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슬쩍 보기만 해도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거야?”
가장 변두리에 설치된 차일 아래에 있던 관리가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소리쳤다. 그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한 손으로는 바람에 마구 휘날리는 옷자락을 눌렀다.
“바람이 참으로 억울하겠구려.”
다른 관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 낭자는 고개를 들어 바람이 오나 안 오나를 관찰한 게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저 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저 여인이 뛰기 전부터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저 낭자에게 집중하느라 몰랐을 뿐이지.
정교랑의 손끝에서 실타래가 빠르게 풀려 갔다.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자, 키 큰 사내가 종이 연을 손으로 높이 들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바람이 불 거라고 했잖아.
아방, 또 날 놀리는 거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멀리 흩어졌다.
아산(阿汕), 이제 손 놓아도 돼.
순식간에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소리가 진동했다. 거세게 불어오는 광풍 때문에 사람들은 눈을 뜨기도 힘들었고, 차일은 거의 날아갈 기세로 흔들렸다. 주복의 손을 떠난 종이 연도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주복은 여전히 앞을 향해 뛰고 있는 정교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정교랑이 주복을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내가 살면서 저런 웃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니지, 본 적은 있어. 매년 나들이를 나갈 때마다, 집안의 누이들이 종이 연을 날리면서 똑같은 웃음을 보였지. 하지만 저리 활짝 웃는 모습을 저 여인의 얼굴에서 볼 수 있을 줄이야.
주복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려던 찰나, 하늘에서 또 한 번 천둥소리가 울리면서 콩알 크기만 한 빗방울이 우두두 쏟아져 내렸다.
사격장에는 거센 바람 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흥분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정말로 비가 내립니다! 정말로 비가 내려요!”
차일 아래에 서 있던 사환 한 명이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빗방울이 차일에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와 사람들의 흥분한 목소리 때문에 사환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공자님, 여기 좀 보세요, 여기요!”
진호는 사환이 가리키기 전부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비가 내리겠지. 낭자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사환이 고개를 돌려 진호를 쳐다보았다.
“어? 공자님, 그럼 다 알고 계셨으면서 왜 여기까지 와서 보자고 하신 거예요?”
진호는 사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보고 싶어서.
저 여인이 얼마나 힘들게 번개를 불러오는지 보고 싶어서.
진호의 시선 안에 있는 것은 드넓은 사격장 위를 홀로 달리고 있는 정교랑뿐이었다.
철사로 만들어진 실타래를 손에 쥔 채 달려가는 정교랑의 온몸은 금세 빗물로 흠뻑 젖었다. 진호의 눈에 비치는 정교랑은, 광풍이 부는 폭우 속 힘없는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였다.
뛰다가, 빠르게 걷다가, 힘껏 줄을 당기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정교랑의 모든 동작이 진호의 눈에 담겼다. 세차게 내리는 빗물 때문인지, 진호의 시야가 점차 흐릿해졌다.
그때 병주에서도 저렇게 했던 걸까?
가족들이 버리다시피 하고 떠나서 기댈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남겨진 도관, 어둠 속에 숨어 음험한 미소를 짓고 있던 몹쓸 놈들, 그리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날 밤.
정 낭자가 혼자서 하늘에 목숨을 걸고, 하늘의 도움을 빌렸던 그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려는 건 그런 게 아니겠지.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건, 정 낭자가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뿐이야. 정 낭자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어쩔 수 없이 저런 일을 벌였다는 건 보이지 않겠지.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심지어는 어가 앞에서 낭자에게 그런 말까지 했으니. 모두가 정 낭자를 두려워하는 만큼, 나 또한 낭자를 두려워했어.
진호가 고개를 들던 찰나, 큰 천둥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번쩍이는 빛이 칠흑같이 어둡던 하늘을 반으로 가르자, 사람들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비명을 질렀다.
진호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안 돼, 이대로 둬선 안 돼. 너무 위험해, 너무 위험하다고!
종이 연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정교랑은 계속해서 뛰어가고 있었다. 진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사람들과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구경만 하고 있던 관졸들을 손으로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멈춰요! 멈추라고요! 그만 뛰어요!”
진호가 목청을 높이고 소리쳤다.
진호의 목소리를 들은 듯, 정교랑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 더욱 빠르게 달려갔다. 정교랑은 사격장 중앙에 세워진 허수아비를 향해 달려가다가, 갑자기 허수아비를 향해 힘껏 실타래를 던졌다.
허수아비 주위에 서 있던 세 반근은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채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엎드려!”
정교랑의 외침과 함께, 세 반근이 재빨리 바닥에 엎어졌다.
하얀빛이 번쩍하면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더니, 고막이 터질듯한 굉음이 울려 차일 아래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자빠졌다.
사격장 중앙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중앙에 세워져 있던 허수아비가 화염에 휩싸여 빗속에서 홀로 시커먼 연기를 내뿜었다.
왁자지껄하던 소리가 잠잠해지고, 천둥소리가 멀어지자, 사격장에는 바람 소리와 빗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허수아비에게로 향했다.
“원, 세상에도.”
놀라서 바닥에 쓰러졌던 두 관리가 민망해하면서 바닥에서 손을 짚고 일어났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감탄사만 읊조렸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상했던 두 사람이지만, 사람이 번개를 불러오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게 된 놀라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당시 사격장 안에 사람이 총 넷이었는데, 딱 허수아비에만 번개가 내리쳤습니다. 꼭 그날처럼요. 주위에 내시들도 몇 있었는데, 그들은 무사하고 평왕 전하에게만 번개가 내리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회랑 아래에 선 사환이 침까지 튀겨가면서 당시 금수원에서 본 상황을 열정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진소가 허공에서 시선을 거두고 빗물에 촉촉하게 적셔진 파초로 시선을 돌렸다.
“전기수가 말해 주었는데요. 아, 그 전기수는 정 낭자가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데려온 사람이었습니다. 전기수 말로는,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있긴 했지만,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 세 시녀가 모두 바닥에 바짝 엎드렸기 때문에 허수아비가 가장 높이 있었다네요. 번개는 항상 가장 높이 있는 물체에 내리치는 특성이 있어서, 허수아비에만 내리꽂힌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전기수가 또 말해 주었는데, 뇌우가 내리치는 날에는 되도록 넓은 평지에 남아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경우에는 꼭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제자리에 주저앉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하고, 절대로 손을 높이 올리거나 높은 나무 아래에 숨지 말아야 한답니다.”
사환이 열을 올리면서 말하던 찰나, 진소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알겠다. 그만 물러가거라.”
아직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환은 의아한 얼굴로 진소를 바라보았다.
“나중이 돼서는 사람들이 번개를 불러오는 과정을 보기도 했고, 듣기도 했으니, 다들 번개는 사람이 불러올 수 있으며, 평왕 전하께서는 정말 사고로 변을 당하신 게 맞다고들 했습니다.”
사환이 서둘러 결론을 덧붙였다.
노야께서 궁금해하시는 건 이거겠지?
진소가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말했다.
“물러가거라.”
사환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물러갔다.
번개를 불러오는 걸 보여 준 이유가, 평왕 때문이 아니었나? 평왕이 십 대 죄악을 저질러 천벌을 받아 죽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아는데.
어째 노야께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시지?
금수원 안.
허수아비에 붙었던 불은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사격장 중앙에는 새까만 재만 남았다. 하지만 차일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간신히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나온 두 관리 중 한 명이 손으로 황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궁에 있는 사람들 말고 누가 관심이 있다고…….”
관리가 고개를 돌려서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재가 된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여기를 찾아온 관리들은 다 그대와 나처럼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오. 조정의 중신들은 한 명도 오지 않았지. 평왕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그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그들이 알아야 하고 신경 써야 하는 건 평왕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뿐이오.
이미 결론이 난 일이니, 사실 오늘 정 낭자가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소. 번개를 불러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 주고, 정 낭자가 손가락 하나 까딱한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는 것만 보여 준 셈이지.”
관리의 말을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관리가 발걸음을 멈추고 동의하지 못한다며 입을 열었다.
“평왕이 십 대 죄악을 저질러 천벌 받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잖소?”
앞서 말하던 관리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럼 왜 하필 평왕이 그 사고를 당했는지 증명할 수 있소? 왜 거기 있던 다른 사람이 아니라, 평왕이 사고를 당했는지 말이오.”
다른 관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당시에 평왕의 손이 제일 높이 있었으니까?”
“그럼 왜 그때 평왕의 손이 제일 높이 있었는지, 자네는 증명할 수 있나?”
앞서 말하던 관리가 곧바로 물었다.
“다, 당시에 평왕이 죄를 뉘우치고 있었으니까?”
다른 관리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평왕이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사람이 평왕인 게지. 사고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하필 사고를 당한 사람이 평왕이었다는 거요.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평왕이었기 때문에, 결국 사고를 당한 사람도 평왕이라는 말이지.”
관리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끝을 늘렸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평왕이었기 때문에? 무슨 불경 읊는 것도 아니고, 이 무슨 말장난이람?
다른 관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번개는 정말로 사람이 불러올 수 있는 거구나.”
“평왕 전하도 참 딱하시네. 하필이면 그런 사고를 당하셨으니.”
“에이, 아니지. 사고이긴 해도,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평왕 전하만 사고를 당한 거니까, 분명히 평왕 전하는 그런 사고를 당할 운명이었던 거야.”
“그러게. 그날 나도 평지에 혼자 있었고, 몸을 일으켜 뛰고 있었는데도 벼락에 맞지 않았어. 그럼 진짜로 평왕은 벼락에 맞아 죽을 운명이었다는 건가?”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슬슬 자리를 떠나자, 고 관인이 삿대질하면서 입을 열었다.
“저놈들을 확…….”
고 관인이 펄쩍 뛰면서 소리치려고 하자, 주변에 있던 사환들이 재빨리 그의 팔을 붙들고 허리를 껴안으며 말렸다.
“관인, 참으셔야 합니다.”
“관인, 노야께서 더는 말썽을 피우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관인, 지금 이럴 때 난리를 치면 더 큰 일 납니다.”
사환들이 온 힘을 다해서 고 관인을 막아서고 다독였다. 예전에는 난폭한 고 관인을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사환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고 관인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더 두려웠다.
고능준은 경성에 돌아온 즉시, 지난번에 고 관인을 따라 덕승루에 갔던 하인들을 싹 처분해 버렸다. 그렇게 본보기가 된 하인들을 본 사환들은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든 고 관인을 막아야만 했다.
“이런, 빌어먹을! 이번 일로 저 여인은 깨끗하게 혐의를 벗고, 새로운 명망을 얻게 된 셈이다. 평왕에게 좋은 점은 하나도 없는 일이야! 그런데도 저 여인더러 번개를 불러오라고 한 건,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고!”
고 관인은 자기 성을 이기지 못하고 차일 아래 있던 탁자를 발로 차 뒤엎어 버렸다.
사환 하나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관인, 평왕 전하께서 벼락에 맞은 게 사고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니, 월식이 있는 날, 태백성이 하늘을 지나가면 태자가 위태로워진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전하께서 위태로워지셨으니, 평왕 전하께서 진정한 태자라는 뜻이잖아요.”
고 관인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잠시 사환을 쳐다보다가 어깨를 한 번 풀고는 사환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누가 그런 걸 증명하고 싶다더냐? 태자의 명을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살아 있기만 했으면 우리가 평왕을 태자의 명으로 만들 수 있고, 제위에 오르게 할 수 있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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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연으로 번개를 불러오는 이야기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연을 날리다가 피뢰침을 발명하게 된 일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