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 - 78화 (78/160)

교랑의경 14권

-소란-

황제가 말편자라는 이름을 내린 소식이 아직 조정에 알려지기 전, 서북 쪽 사람들에게는 벌써 말편자가 꽤 익숙했다.

용곡성의 병화(兵火)로 훼손된 성벽은 얼추 복구를 마쳤고, 새해를 맞이하여 붙인 장식을 떼기 전이라 황량한 겨울날인데도 따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람을 태운 말 한 마리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성안의 비좁은 길 사이를 내달렸다. 말편자에서 나는 경쾌한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던 사람들은 말에 사람의 머리 몇 개가 걸린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말은 군영으로 들어서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 바람에 커다란 나무 우리 안에 있던 말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넷째 형님, 넷째 형님!”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구간에서 수의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내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사내는 저쪽에서 말을 몰고 달려오는 사람을 보고 씩 웃다가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소리 죽여. 말들 놀라게 하지 말고.”

“이깟 소리에 놀랄 정도의 군마라면 형님이 정성 들여 보살필 필요도 없소. 등짐 싣는 일이나 시켜야지.”

서봉추가 껄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형님, 넷째 형님, 어서 이리 와 보시오.”

서사근은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또 무슨 일로 달려온 거야?”

서봉추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로 주위를 몇 바퀴 돌며, 말에 걸려 있는 사람 머리를 보게 했다. 머리가 걸려 있는 그 흉악한 모습이 서사근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었다. 서사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었다.

“녀석, 이번엔 또 몇 개냐?”

서봉추가 껄껄 웃으며 양손을 쫙 펼쳤다.

“열 개요!”

“대단하네. 이번에도 공을 꽤 인정받겠어.”

서사근이 웃으며 말했다. 군에서 생활하려면 무엇보다도 전공을 세우는 게 중요했다. 전공을 세우면 평범한 병사도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군관은 진급을 할 수 있고, 병사는 녹봉이 올라갔다.

“다들 감용으로 복권됐소.”

서봉추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한 무리가 다가왔다.

“서사근!”

우두머리로 보이는 군관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험상궂은 목소리에 서봉추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사근이 얼른 다가갔다.

“송 전직(殿直: 관직명).”

서사근이 예를 표했다.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 전직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매섭게 내던졌다.

키 크고 건장하여 근육까지 탄탄한 무장이다 보니 겨울철인데도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 힘껏 내던진 물건이 서사근의 팔을 으스러뜨리자, 갑작스러운 공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서사근이 팔을 붙잡고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내던져진 물건이 옆으로 떨어졌다. 다름 아닌 편자였다.

“이 자식이!”

놀란 서봉추가 분노하며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달려들었다. 우두머리 군관 옆에 있던 자들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뭐냐, 하극상이라도 벌이려고?”

군에서 병사가 상급 군관에게 대드는 건 대죄였다. 서사근은 몸을 버둥거리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인 서봉추의 다리를 붙잡고 말렸다.

“왜 사람을 쳐? 왜 사람을 치냐고!”

서봉추는 시뻘게진 눈으로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군관은 서봉추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서사근을 향해 냉소를 지었다.

“군사력이 강해진 게 네놈 공로라고? 아주 당당하게도 말했더구나.”

서사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직, 전 그런 말을 한 적 없습니다.”

군관이 콧방귀를 뀌었다.

“말발굽에 편자를 박은 일로, 우리가 목숨 걸고 싸워 세운 전공이 네놈 몫이 됐잖아!”

군관은 서사근에게 삿대질을 하며 계속 소리쳤다.

“전에 이딴 거 없을 때 우리 한족이 흉노를 격파하고, 기련산을 우리 발아래 둔 건 뭔데? 헛소리냐? 네놈들이 없으면 용맹이고 뭐고 없어?”

군관의 호통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더욱 멀리 물러났다.

“당치도 않습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공을 가로채겠습니까.”

서사근이 다급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군관은 그런 서사근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똑똑히 듣거라. 사람은 언제나 짐승이나 물건 따위보다 귀중한 법이야!”

군관이 짙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세게 쳤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있던 병사들을 가리키면서 목청을 높여 외쳤다.

“바로 우리가! 서쪽 오랑캐를 격퇴한 것이다! 이건 우리의 목숨으로 맞바꾼 공이야! 그깟 말굽 편자가 없었어도 이겼을 것이고,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란 말이다. 그딴 게 있든 없든, 서쪽 오랑캐를 때려잡은 사람은 우리야.”

서사근은 고개를 숙이고 연신 맞는 말이라고 동의했다. 군관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서사근을 향해 다시 한번 침을 뱉은 후 병사들을 이끌고 자리를 떠났다.

부아가 치밀어 올라 미칠 지경이던 서봉추가 군관을 향해 돌진했지만, 서사근이 고통으로 비명을 내지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급히 돌아왔다.

“형님, 괜찮소?”

서봉추가 서사근을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서사근이 맞은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말했지만, 서봉추는 억지로 그의 손을 떼어내고 소매를 올려보았다. 서사근의 팔에 시퍼런 피멍이 든 것을 본 서봉추는 펄쩍 뛰면서 군관의 뒤를 쫓아가려 했지만, 이번에도 서사근이 안간힘을 다해 그를 붙잡았다.

“형님! 여기 남아서 좋을 게 뭐 있소! 죽는 게 두려워서 후방에 있다는 오명이나 뒤집어쓰고, 말굽 편자를 만들어 냈는데도 알아주는 이 한 명 없이 미움까지 받다니요! 형님만 아직도 병졸 신분이오. 우리는 다 감용이 됐는데!”

울화가 치민 서봉추가 소리쳤다. 잠시 자리를 비켜 숨어 있던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것 참, 서 형만 억울해졌네. 어떤 군관이 말굽 편자 이야기를 상소문에 조금 부풀려 쓴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윗분들의 심기가 불편해졌지. 그래서 기마병 군관들을 부추겨 서 형을 때리게 한 거라고.”

누군가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럼 이게 형님의 공이 아니란 소리요? 말이 덜 상하니까 저놈들이 말을 두 필씩이나 거느릴 수 있는 거 아니오! 이게 다 말굽 편자 덕이 아니라면 뭐 때문이란 말이오! 칼로 적의 목을 베는 것만 공이고, 우리 형님의 공은 공도 아니란 말이오?”

서봉추가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은 대충 얼버무리면서 대답을 회피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서봉추는 화가 나다 못해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듯한 기세였다.

“난 또 형님이 아주 잘 지내는 줄 알았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 남은 거요!”

서사근은 별일 아니라는 듯 쓴웃음을 보였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남은 거지. 공을 세우고 안 세우고는 상관없어. 내 노력을 누가 증명해 줄 필요도 없고.”

마구간을 훑어보던 서사근이 보람찬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픈 팔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과연 효과가 있었어. 헛수고한 게 아니란 걸 알았으니, 그걸로 충분해.”

서봉추는 말을 타고 군영으로 돌아왔다. 마당에 서서 이야기 중이던 범강림과 서무수가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나갈 때만 해도 위풍당당했는데,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여기서 도대체 누가 서봉추의 기를 죽일 수 있단 말이야?

용맹하게 적장을 베어 죽이니 윗분들이 좋아하고, 공을 세우는 욕심은 있지만 진급할 욕심은 없으니 동료들도 좋아하고, 씀씀이까지 커서 늘 잡역들의 환대를 받는 서봉추였다. 이제는 중매를 서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까지 했고.

“자네한테 중매 서 주겠다는 사람도 많잖아. 왜 괜히 남을 놀려.”

범강림이 웃으며 서무수에게 말했다. 서무수가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짓고는 서봉추를 불러 세웠다. 서봉추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범강림이 물었다.

“어디 갔었어?”

서봉추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넷째 형님 보러 성에요.”

무원산 형제들은 그들의 소원대로 군영에서 감용 용사가 되어 전장에 나가게 됐지만, 서사근은 주사(朱四)의 추천으로 곽 도감의 허락하에 후방에 남아 말굽 편자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말굽에 편자를 박던 기술은 한층 나아져 이젠 아예 말굽에 편자를 지져서 붙이는 기술로 발전했다. 불편한 말굽 때문에 말들이 상처를 입는 데서, 용곡성의 모든 기마병의 말들이 말굽 편자에 적응하기까지의 일은 전부 서사근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피나는 노력은 적장의 목을 베어 오는 일처럼 눈에 띄는 것이 아니기에 서사근은 여전히 병졸 신분에 머물러 있을 뿐더러 아무런 공로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범강림이 뭐라고 더 묻기 전에 서무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넷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냐?”

서봉추는 볼을 부풀리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아니오.”

범강림이 서봉추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면서 꾸짖었다.

“네가 감히 어디서 거짓말을 배워온 것이냐!”

서봉추가 맞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벌게진 눈으로 외쳤다.

“넷째 형님이 괴롭힘을 당하고, 두들겨 맞아 다치기까지 했소!”

서봉추의 말을 듣은 범강림과 서무수의 안색이 변했다.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구나!”

범강림이 외치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자, 서무수가 그를 막아섰다.

“일단 제대로 물어봅시다.”

서무수가 서봉추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봉추, 어떻게 된 일이야?”

“잘나신 윗분들이 말입니다. 넷째 형님의 공로를 인정해주지는 못할망정, 형님이 자기들의 공로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서 기마병 군관들을 부추겨 형님을 때렸지 뭡니까! 형님은 그놈들이 던진 말굽에 맞아서 팔에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고!”

서봉추가 소리쳤다.

윗분들, 부추김.

범강림이 서무수를 보며 물었다.

“제대로 물어봤으니, 이젠 어쩔 거야?”

서무수가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

“어쩌기는,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서무수가 범강림보다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면서 외쳤다.

“무기 챙겨!”

범강림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윗분이고 나발이고 내 형제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제일 먼저 나서야지! 앞뒤를 재고 따진다면, 그건 형제가 아니지!

“무기 챙기고, 형제들 불러모아!”

범강림이 소리쳤다.

무원산 여섯 형제가 엄청난 기세로 말을 타고 나오자, 한쪽에서 따끈한 전병을 입에 물고 있던 유규가 눈을 크게 떴다.

“어이, 어이! 어디 가!”

유규가 입에 물고 있던 전병을 뱉고 외쳤다. 서무수 형제들은 유규를 본 체도 않고 말을 달려 병영을 벗어났다.

“감히 어딜 도망가려고! 이 몸이 항시 네놈들을 지켜보고 있어!”

유규는 서둘러 주위에 보이는 아무 말이나 집어 타고 서무수 형제들을 뒤쫓았다.

용곡성의 한 천막 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왜? 무슨 일이래?”

천막 바깥의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몰려와 물었다.

“싸움 났대!”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더욱 득달같이 천막 안으로 몰려들었다. 새해도 지나고, 성안에 별다른 일도 없다 보니, 남의 싸움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놓칠 수 없었다.

쿵 소리와 함께 거구의 사내가 천막 밖으로 내던져졌다. 그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범강림이 사내의 몸 위로 달려들어 다리로 몸을 짓누른 다음 가차 없이 주먹을 내리쳤다.

주위의 구경꾼들이 범강림의 맹렬한 기세에 환호했다. 뒤늦게 달려온 몇 사람들이 다급하게 나서서 얼굴이 피범벅이 된 사내와 범강림을 간신히 떼어놓았다.

“무슨 짓들이냐! 감히 누구한테 대드는 것이야!”

“범강림, 또 네놈들이로구나. 지난번에 상관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아군을 죽일 셈이더냐!”

싸움을 말린 사람들이 범강림에게 고함을 질렀다.

“우리 형제를 괴롭힌 만큼 갚아준 것일 뿐이오. 지난번이나 지금이나, 당연히 예외는 없소!”

범강림과 형제들이 외쳤다. 눈 깜짝할 새에 천막 밖은 또다시 싸움판이 되었다. 유규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쳤다.

“역시 못난 놈들이로구나! 오랑캐들을 때려잡지는 못할망정, 아군을 때리다니!”

유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바탕 혼란 속에서 누군가가 그를 팔꿈치로 세게 쳤다. 화들짝 놀란 유규가 펄쩍 뛰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나를 때려? 내가 만만해?”

유규도 주먹을 휘두르며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소식을 들은 주육낭이 관청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싸움에 관여한 모든 사람이 관청으로 연행된 후였다. 소식을 듣고 놀란 용곡성 지휘사는 노발대발하며 서무수 형제들을 곤장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고함을 쳤다.

“대인, 저희에게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의 죄도 물어야 마땅합니다!”

서무수가 말했다. 지휘사는 냉소를 보이며 서무수의 말을 무시했다. 보잘것없는 병졸들에게 말대꾸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신분이 깎이는 기분이 들었다.

“네놈들이 사람을 때린 게, 다른 이의 잘못이라는 게냐?”

옆에 서 있던 서리가 호통을 쳤다.

“대인, 왜 저희가 사람을 때린 연유를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서무수가 다시 한번 사정했다. 서리가 혀를 차며 비웃었다.

“네깟 놈이 뭐라고 대인께서 물어보시겠냐.”

“소인에게는 당연히 대인께서 물어보실 만한 가치가 없지만, 그자들은 군목감의 서사근을 때렸습니다. 도감 대인께서 행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묻지 않으시겠단 겁니까?”

서무수가 소리쳤다.

감히 도감 대인을 내세워서 나를 압박해?

용곡성 지휘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무수, 지금 내 공당에서 소란을 피우려는 것이냐.”

지휘사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호통쳤다.

일개 감용 용사가 위주로(渭州路) 용곡성 지휘사에게 따지려 들다니.

시끌벅적했던 주위의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뭐든 못 할 게 없는 저 배짱은 그 여인에게서 배운 거겠지.

주육낭이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대인,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서무수가 허리를 펴고 말했다.

“소인은 단지 사실을 규명하고 싶을 뿐입니다. 소인의 형제 서사근은 저들에게 맞은 것도 모자라 공로를 가로챘다는 오명을 썼습니다. 소인은 그것이 너무도 분합니다. 도감 대인께서 인정한 공로가, 어떻게 가로챈 공로가 되는 겁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소인의 형제는 매일 남에게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겠지요. 또 소인들이 상관에게 대든 것은 벌을 받아 마땅하나, 지휘사 대인께서도 저들의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소인의 형제를 때린 게 옳은 일이고, 소인의 형제가 공을 가로챈 게 사실이며, 도감 대인께서 공을 치하하신 일은 잘못된 일이 되는 겁니다.”

지휘사는 무덤덤한 표정을 보였지만, 그의 심장은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저 빌어먹을 탈영병 놈들이!

저놈들이 뭐하다 온 놈들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지. 사고를 치고 사람을 죽인 뒤에 탈영병으로 숨어 지내다가, 경성에서 우연히 높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서북으로 돌아온 놈들.

감용은 자랑스러운 병사들이라지만, 저런 파렴치한 감용은 필요 없어. 나한테 대드는 저 꼬락서니를 보라지. 뭘 믿고 저러는 거야? 아무리 위쪽에 믿을 사람이 있다 해도, 저래서야 되겠어?

믿을 구석이 있다고 해도 고작 병졸 몇 명이 뭘 할 수 있다고. 아무 빌미나 덮어씌워서 군에서 쓰는 곤장으로 몇십 대 때리면, 죽이진 못해도 반병신은 만들 수 있어. 그런다고 해서 날 문책할 사람도 없고.

그런데 저 빌어먹을 놈들이 도감 대인을 내세우니 그럴 수도 없게 됐잖아. 내가 여기서 상관에게 무례를 범했다는 죄로 저놈들을 다스린다 한들, 이 일이 도감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나도 똑같은 죄목으로 벌을 받겠지.

“서무수.”

지휘사가 천천히 말했다.

“예, 대인”

서무수가 대답했다. 지휘사가 이를 갈면서 한 글자씩 어렵게 내뱉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조사하도록 하지.”

관청을 유유히 벗어나는 서무수 형제를 본 주위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휘사가 화를 참으면서 소매를 홱 내쳤다.

두고 보라고!

관청을 나온 서무수 형제들은 기분이 상쾌해졌다.

분풀이도 하고, 주먹질을 허투루 한 것도 아니게 되니, 참으로 통쾌하도다!

“남의 미움을 사는 게 뭐 좋다고.”

주육낭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서무수가 고개를 돌려 예를 표했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지요. 더군다나 미움을 산 사람이 본래 나를 미워하던 사람이라면, 이 일로 그의 미움을 샀다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서무수의 말에 주육낭이 실소를 터트리다가 혀를 찼다.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걸 보니 아주 잘 배웠네, 그 여인한테.

주육낭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대인.”

서무수가 그를 부르자, 주육낭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무수가 웃으면서 주육낭을 향해 공수하며 읍을 했다.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진 주육낭은 마른기침을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서사근은 서무수와 다른 형제들을 보고 나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서사근은 놀란 동시에 형제들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이럴 필요까지 뭐 있소! 우리 형제들이 서북에서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어떻게 얻어낸 건데! 또 도망자 신세를 지고 싶어 그러시오!”

형제들이 너무나도 걱정스러웠던 서사근은 버럭 화를 냈다.

“형님, 우리가 무서워할 게 뭐 있소? 좀 전에 셋째 형님이 말을 어찌나 잘하시던지, 아주 옳은 말만 골라서 하더라니까요! 우리 넷째 형님을 괴롭히는 건, 곧 도감 대인을 욕보이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서봉추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터트리자 얼굴에 난 상처가 쓰라려 아야야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여전히 헤죽거리는 서봉추의 모습은 몹시도 우스꽝스러웠다.

유규가 옆에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뭐하냐. 도감 대인을 앞세워 지휘사를 압박한 게 뭐 잘한 짓이라고. 장수를 하늘처럼 여기는 군영에서는 너희 몇 명을 해치우는 데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어. 이번에는 도감 대인의 덕을 봤다고 쳐도, 지휘사가 이대로 쭉 겁을 먹고 너희를 가만히 둘 줄 알아? 웃기시네! 지휘사는 어떻게 하면 너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벼르고 있을 거야. 죽일 수는 없어도, 곤장으로 반죽음이 될 정도로 때릴 수는 있으니까. 그런다 한들, 누가 지휘사를 문책하겠나? 문책하고 싶다고 해도, 이미 일은 벌어진 뒤겠지.”

몇 세대를 걸쳐 전장의 장수로 지내는 유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유규는 최대한 성질을 죽이고 병영 생활을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도 분한 일을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치는 바람에 서북에서 경성으로 쫓겨나 쓸모없는 폐인 취급이나 당하면서 늙어갈 뻔했다.

믿을 만한 가문 출신도 아니고, 힘 있는 친척도 없는 놈들이 어디서 저런 배짱이 나오는 거야? 배짱이 아니라 바보인가?

유규의 말을 들은 서사근은 더욱 걱정스러워졌다. 서봉추가 유규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흥, 댁이나 잘하슈.”

“이게 다 네놈들 때문이다. 나까지 휘말리고.”

유규는 지지 않고 서봉추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외쳤다. 서봉추가 유규를 보면서 얄미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허풍을 치더니, 그 꼴이 되도록 맞은 거요?”

“이게 다 쓸모없는 네놈들 때문이라니까!”

유규가 욱해서 소리쳤다. 유규와 서봉추가 말씨름을 하는 동안에도 서사근은 여전히 근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를 어쩌면 좋소. 지휘사의 눈 밖에 났다면 무슨 죄를 덮어씌워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이를 어쩌면 좋아.”

“넷째야, 너무 염려치 말거라. 우리는 별일 없을 거다.”

서무수가 서사근을 위로했다.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서사근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네가 있으니까.”

서무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요?”

서사근이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서무수가 몸을 일으켜서 마구간을 가리켰다.

“언젠가는 우리 넷째가 한 일을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 이게 얼마나 큰 공인지, 꼭 알아볼 것이야.”

“이게 정말 그렇게 큰 공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제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돼요. 말굽 편자가 없던 때에도, 용맹한 병사들은 얼마든지 적장의 목을 베어서 공을 세울 수 있었어요. 서북에서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였던 기마 장수들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죠. 그런데 이 편자가 생기니, 용감한 병사들과 장수들의 공이 말살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억울하고 화가 날 만해요.”

“그자들의 공과 네 공은 별개의 것이야. 그자들이 오해했을 뿐이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자들도 너를 잘못 탓했다는 것을 깨달을 게야.”

서무수가 말하다가 웃음 지었다.

“넷째야, 너 자신을 믿지 않아도 좋고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런데 누이도 믿지 않을 셈이냐?”

서무수의 말에 서사근이 미소를 지었다. 서사근이 뭐라 더 입을 열려던 찰나에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 한 무리가 천막 안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서사근, 서사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서사근을 부르면서 그를 찾았다.

“벌써부터 골칫거리를 만들려고 오는 게야?”

유규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유규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천막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양쪽으로 비켜섰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분해서 이를 갈던 지휘사가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사람들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쥐여 있었다.

“서사근, 이리 와 보거라, 어서! 네게 상이 내려왔다!”

지휘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휘사의 말에 목감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말을 돌보던 사람이 관직을 얻었대! 어서 가보자!”

군에는 목감이 있으니, 당연히 관직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말을 돌보는 사람에게 관직이 있다는 건 생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목감 관리는 절대로 직접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서리나 병졸, 또는 잡부들이나 하는 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서생들은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을 얻을 수 있지만, 글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관직을 얻으려면 오직 공을 세우는 방법밖에 없다. 감용 병사라면 적군을 죽이는 것으로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지만, 말을 돌보는 사람이 말을 잘 돌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몰려오는 인파로 인해 조그마한 목감은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삼반, 관리하는, 말을…….”

임명장을 손에 쥔 서봉추는 큰 소리로 글을 읽으려 했지만, 아는 글자가 몇 개 없어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감 안에 있던 사람들도 서봉추가 뭐라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무수의 형제 중 하나가 그에게서 임명장을 빼앗아 서무수에게 건넸다.

“저리 가, 저리 가. 괜히 나서긴 뭘 나서. 형님더러 읽으시라고 해.”

서무수가 웃으면서 임명장을 건네받았다.

“삼반차직(三班借職) 관구(管勾)로서, 군의 말을 관리하는 직에 임명한다.”

“관구! 그럼 그 주씨 녀석이랑 같은 거 아니오?”

서봉추가 소리치자 서무수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같을 수가 있나. 넷째는 종구품(從九品) 관직일 뿐이야.”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서봉추가 눈을 크게 떴다.

“종구품? 그럼 관리라는 뜻이잖소!”

서봉추가 한쪽에 서 있던 지휘사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그럼 지휘사 전시(殿侍)직보다 더 높은 거네!”

지휘사는 사람들 앞에서 지목되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조금 전 관청에서처럼 노발대발하며 그들 형제를 때려죽이고 싶었던 심정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는 서사근이 관직을 얻었다는 사실을 썩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지휘사는 관직을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한평생을 전장에서 구른 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간신히 이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스무 살 남짓으로 보이는 눈앞의 저 병졸은 단번에 구품 관직을 얻었으니, 이것이 벼락출세가 아니면 무엇이랴.

저놈들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보통내기가 아닌가 보군. 덤빌 수도 없을 만큼 강한 자를 시샘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나까지 피해를 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바보나 하는 짓이지.

“서 관구, 관복은 빠른 시일 안에 도착할 거요. 공무를 볼 관청을 다른 곳으로 옮기겠소? 아니면 이곳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이 좋겠소?”

지휘사가 웃으면서 물었다. 서사근은 멍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이 떠들썩한 소란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 없다는 듯이.

“우리 넷째가 너무 기쁜 나머지 넋을 놓았나 봅니다.”

서무수는 지휘사가 무안해지지 않도록 대신 대답했다. 지휘사에게서는 좀 전에 서무수를 대할 때와 같은 오만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서무수가 자신이 무안해지지 않게 나서준 것을 기뻐하기까지 했다.

서사근이 관직을 얻은 걸 보면 나머지 형제들이 관직에 오르는 것 역시 시간문제야. 그런 이들을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되겠지.

탈영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숨어 살고 있었지만, 경성을 한 번 다녀오더니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어. 서북으로 돌아와 감용 병사로서 적군을 베어 죽이고 있지만, 다른 병사들과 달리 포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다른 이들은 포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저자들은 돈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군단 말이지.

듣기로는 정초에 경성에서 저자들에게 보낸 돈이 도감 대인의 전 재산보다도 많다던데. 돈을 가져온 사람도 말끝마다 주인어른, 주인어른 하면서 무척 공경한 태도로 저들을 대했다지.

그리 어마어마한 재산과 신분이 있는데도, 왜 저렇게들 목숨 걸고 전장에 나가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게다가 전장에 나서지 않은 저 병졸마저 별 볼 일 없는 말굽 편자 하나로 관직까지 얻어 내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군.

살면서 읽은 책이 몇 없던 지휘사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디선가 보았던 구절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에 든 송곳, 재능이 있는 사람은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라는 뜻).

저 사내들은 언젠간 큰일을 할 사람들이야.

“인지상정이지. 내가 처음으로 관직을 하사받았을 때는, 기쁘다 못해 울음을 터트렸소.”

지휘사가 자조하면서 말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지휘사의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멍한 표정으로 넋을 놓은 채 서 있던 서사근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서사근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서사근의 모습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저 봐. 내 말이 맞지 않나.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난다니까.”

지휘사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서무수가 마구간에서 서사근을 찾아냈을 무렵, 서사근은 울음을 그치고 마구간 구석에 앉아 손에 쥔 말굽 편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형님.”

발걸음 소리를 들은 서사근은 고개를 들어 서무수를 쳐다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 좀 보십시오. 더 무겁고 두껍게 만든 건데, 한겨울 눈밭에도 끄떡없을 것 같소.”

서무수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사근이 건넨 말굽 편자를 받으며 옆에 나란히 앉았다.

마구간 안은 악취가 풍겼고, 두 형제의 눈앞에서는 말들의 다리와 꼬리가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두 형제는 연회에 참석한 것처럼 한없이 기뻐 보였다.

“형님, 이거 꿈이죠?”

서사근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서무수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사근을 가볍게 한 대 쳤다.

“꿈이라 한들 어떠냐. 좋은 꿈이면 된 거지.”

서사근이 서무수를 따라 방긋 웃었다.

“관직을 얻으니까 기쁘지?”

서무수가 어깨로 서사근을 툭툭 치면서 물었다.

“예, 기쁩니다.”

서사근이 심호흡을 하고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는 일할 때, 조금 더 수월해지겠죠.”

서사근의 말을 들은 서무수가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서봉추가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넷째 형님이 우리보다 못 지낸다고 불쌍해했는데, 이제는 형님에게 예의를 갖추고 관구 대인이라고 부르게 생겼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옆에 서 있던 유규도 믿기지 않는 듯이 자신의 손가락을 입으로 세게 깨물었다. 손가락을 깨물자마자 그는 악 소리를 질렀다.

아프잖아!

“저 쇠붙이 몇 개가 관직을 가져다주었다고? 저깟 게 내가 전장에 나가서 적군을 죽이는 것보다 더 귀해? 세상이 아주 미쳐 돌아가는구나.”

유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육낭이 몸을 돌려 가까이 온 수하를 쳐다보았다.

“제대로 확인해보았습니다만, 이번에는 저자가 정말로 운이 좋았습니다. 어쩌다 폐하께서 이 일을 알게 되어 자세한 경위를 하문하셨답니다. 그러자 다들 공을 세우려고 난리였고요.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을 가진 공을 빼앗길 순 없었겠죠. 결국 서사근은 절도판관과 위주로 경략사, 병마 감찰사 세 사람의 추천을 받았고, 중서문하성에서 아무런 논쟁도 없이 만장일치로 관직을 하사하는 것에 동의했다 합니다. 그 어떤 문제나 논쟁도 없이, 단번에 관직에 오른 건 실로 전대미문이지요.”

수하가 조용히 말했다.

진짜 운이 좋긴 좋네.

주육낭이 실소를 터트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그 여인이 예상했던 것일까?

주육낭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여인,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주육낭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팔찌 하나를 꺼냈다. 곱게 다듬어진 것이 아닌, 늑대 이빨을 이어서 만든 투박한 팔찌였다.

정월도 다 지나가는 지금 이 시기에 새해 선물을 보내는 것은 적절치 않겠지. 그 여인이 이런 걸 마음에 들어 할지도 모를 일이고.

주육낭은 잠시 팔찌를 손에 쥐고 있다가 자신의 손목에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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