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160)

-보라고-

운명은 하늘에 달린 것인데 어떻게 고친단 말인가.

유 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폭도가 아닌 걸 확인했으니 더 있을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참혹한 광경을 보니 지난 일이 떠올라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정교랑은 이대작을 보고 천천히 손을 뻗다가, 잘린 손 앞에서 손을 멈췄다.

“손이 잘렸네.”

정교랑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잘린 게 무슨 대수라고…….

갑자기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청량한 목소리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잘린 게 무슨 대수라고.”

정교랑은 저도 모르게 따라 말했다.

잘린 게 대수가 아니라고? 유 대장이 우뚝 멈춰 섰다. 태평성대를 사는 경성 사람들에게는, 관부의 형장에서나 사람의 목이 잘리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이들에게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손 하나가 없을 뿐, 목숨은 멀쩡히 붙어 있지 않은가. 그게 무슨 대수라고.

하지만 부상병들로 가득한 병영에 가 본다면 절망이 뭔지 알 것이다. 죽느니만 못한 삶이 무엇인지도. 손 한쪽 없을 뿐인데, 다리 한쪽 잃었을 뿐인데, 눈 한쪽 멀었을 뿐인데…….

목숨이 붙어 있다 한들, 앞으로의 삶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낮이지만 이제부터는 캄캄한 밤일 것이다. 환한 새벽은 영원히 오지 않는 캄캄한 밤.

글공부를 안 해 아는 글자가 몇 없는 유 대장에게도, 오랫동안 한 획 한 획 써 가며 가슴에 새긴 글자가 있다.

폐(廢).

이 글자를 가르쳐 준 사람은 이 글자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뜻한다고 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그 가치를 잃으니 더 이상 집이라 할 수 없다. 사람도 폐인이 되면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유 대장은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사내는 여인과 시시콜콜 따지지 않는다. 벌레 한 마리만 봐도 눈물을 보이는 여인들과 뭘 따지겠는가.

“그럼 붙이기라도 할 수 있단 말이오?”

잘린 걸 붙일 수 있나?

정교랑의 귓가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당에 있는 사내가 울부짖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름답고 달콤한 여인의 목소리,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였다.

“그래, 붙여야지. 봐. 내가 토끼의 다리를 다시 붙였어.”

“세상에!”

“뭘 겁내. 잘 보고 만져 봐. 귀도 마찬가지야. 귀도 잘린 걸 다시 붙일 수 있어. 내가 시범을 보일게. 배우고 싶어? 재미있는데 배우는 게 좀 힘들어.”

“흥, 내가 못 배우는 게 어딨어?”

“그래. 잘 배워 두면, 나중에 내가 거열형에 처한대도 겁낼 게 없겠다.”

정교랑은 손을 뻗어 가슴을 부여잡았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왜 우는 거지? 왜 우는 거야?

“누이.”

서무수가 정교랑 옆에 꿇어앉았다.

“괴로워하지 마.”

“안 괴로워요. 안 괴로운데, 마음이……, 내 마음이 아파서요.”

눈물을 흘리는 정교랑의 입가에 설핏 웃음이 번졌다.

“마음이 아파. 나도, 마음이 있어…….”

저 여인도 놀라 정신을 놨군. 유 대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발을 내디뎠다.

정교랑은 가슴을 어루만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려움도, 귓가에 들리던 목소리도 사라졌다. 머릿속은 다시 새하얘졌지만 뼈에 사무치는 통증만은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정교랑은 심호흡을 했다.

아직 있다. 아직 있으니 됐어. 언젠가는 생각이 나겠지.

“일단 사람부터 옮기고, 약이랑 바늘, 실을 사 와요. 손을 붙여야겠어요.”

또 시작이네! 저런 헛소리를 누가 귀담아들어! 벌써 대문 앞까지 걸어간 유 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누이 말대로 할게. 다들 사람부터 옮기고 약 사 와!”

진짜로? 유 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손을 붙인다고?”

다른 방에서 송씨댁을 보살피던 시녀와 반근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다니까. 아씨께서 말씀하셔서 도련님들은 벌써 약 사러 가셨어. 솔잎 같은 이상한 것도 사 오라고 하셨고.”

금가아가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집에 사람이 너무 많네. 난 일 보러 갈게.”

시녀와 반근의 눈이 마주쳤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이었다.

아씨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분이니, 잘린 손을 붙이는 게 딱히 대수로운 일도 아니시겠지. 근데, 분명 잘린 손인데…….

“아직 있어요, 아직 있어.”

침상에서 송씨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씨댁은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허공에 대고 이리저리 손을 내저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시녀가 얼른 다가가 송씨댁의 손 사이로 베개를 밀어 넣었다. 송씨댁은 몇 마디 더 중얼거리더니 의식을 잃고 움직이지 않았다. 시녀와 반근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송씨댁 발 좀 봐.”

반근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고개를 돌리던 시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못 봤지만, 방에 눕혀 놓으니 치마 사이로 발이 드러났다. 신은 사라진 지 오래고 버선을 신은 한쪽 발은 진흙투성이였다. 그나마 버선도 없는 다른 쪽 발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계속 걸어서 따라왔나 보네.”

반근이 중얼거리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태평거에서 경성까지는 마차로도 반 시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그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것도 이 캄캄한 밤에…….

있어요, 아직 있어요…….

모두의 귓가에 또다시 송씨댁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남편의 잘린 손을 꼭 끌어안고 넋을 놓은 채 밤길을 걷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대작은 폐인이 되고 송씨댁은 미쳐 버렸으니, 이 집안은 망한 셈이다.

“나무아미타불.”

반근은 저도 모르게 합장하며 중얼거렸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비옵니다.

“아니지, 아니지.”

시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뭐가 아니야? 반근이 시녀를 쳐다봤다.

“도조 이 진인께 비옵니다.”

시녀가 합장하며 중얼거렸다.

풍문에 따르면 아씨는 도관에 버려졌을 때 도조 이 진인을 만나 바보의 병을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리는 비술까지 얻게 되셨다고 한다. 따지자면 아씨는 도가(道家)의 사람이다. 그러니 부처가 아니라 도조께 빌어야지.

반근은 퍼뜩 깨닫고 웃으려 했다. 하지만 도무지 웃을 때가 아니었기에 슬픈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잘 보고 있어. 난 밖의 일을 도울게.”

반근의 말에 시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밖을 쳐다봤다.

“아직도 사람이 저리 많네?”

반근이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깊은 밤이었지만 마당은 등불로 훤히 밝혀져 있었다.

“이쪽으로 와서 좀 쉬세요.”

금가아가 이대작의 마을 사람들을 후원으로 데려갔다. 이들이 자리를 옮겼는데도 마당에 있는 사람은 적지 않아 보였다. 갑옷을 입은 병사 열댓 명이 등불 아래에 굳은 얼굴로 서서 마당을 가득 채웠다.

유 대장은 마당에 서서 이미 굳게 닫힌 대청의 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잘린 손을 붙인다고? 잘린 손을?

헛소리다. 헛소리야.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되고말고!

이미 잘려 버린 손을 무슨 수로 살려?

“듣자니 신의 편작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백골에 살이 붙게 했다던데, 그럼 저 어린 낭자가 그런 비술을 지녔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신선을 만난 신의가 죽은 사람도 살린다지 않았나?”

뒤에서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들은 유 대장의 머리에 무언가가 번뜩 스쳤다.

“이 집 주인의 성이 무엇이냐?”

유 대장의 물음에 옆을 지나던 반근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정씨예요.”

“그럼 아니네. 그 신의는 주씨 가문 사람이었어. 귀덕낭장 주씨 가문.”

병사들이 다시 수군댔다.

유 대장은 반근이 자리를 뜨는 모습을 지켜본 다음 고개를 돌려 병사들을 쳐다봤다. 병사들은 얼핏 웃는 듯했다. 웃기는 뭘 웃어!

대문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 서무수가 마을 사람 네다섯 명과 함께 커다란 보따리를 안고 들어왔다.

“약을 사 왔어요, 약을.”

사람들이 소리치는 말에 유 대장은 대체 무슨 약을 사 왔는지 보고 싶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장 대청으로 향했고 다시 문이 닫혔다. 그 안으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몹시 분주한 듯했다.

얼마 안 가 다시 문이 열렸다. 마을 사람 두 명이 핏물이 담긴 구리 대야를 들고 나왔다.

“뜨거운 물을 더 다오. 아씨께서 대작을 깨끗하게 씻겨야 한대.”

반근은 이들을 부엌으로 안내했다. 유 대장은 안쪽을 쳐다봤다. 마을 사람 두 명은 분주한 모습이었고, 그 여인은 팔걸이 책상에 기대 눈을 감고 정신을 모으는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하라고요?”

손이 온통 피범벅인 마을 사람 하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정교랑을 쳐다보며 물었다. 각종 약이 들어 있는 보따리는 한쪽 옆으로 내던져져 있었고, 여인은 계속 눈을 감은 채 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모습 그대로 시종일관 말 한마디 없이 있었다.

“돌아왔군요. 어서 사람을 깨끗하게 씻겨요.”

정교랑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 오랜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했단 말이야?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숙여 들것 위에서 죽은 듯 기절해 있는 이대작을 쳐다봤다. 이대작의 몸에는 피와 토사물과 오물 흔적이 가득했다. 더럽고 거친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자신들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인데,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 낭자는 말할 것도 없겠지.

“편한 대로 해요. 깨끗하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다음 오른팔을 밖으로 내놓으면 돼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네 하는 대답만 하고 말을 아꼈다.

의원이 맞기는 한가? 유 대장은 영문을 모르겠는 표정이었다.

동녘이 밝아올 무렵, 창가에 서 있던 시녀는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눈을 뜬 송씨댁의 모습이 보였다. 송씨댁은 막막한 표정이었다.

“꿈이었구나…….”

송씨댁이 중얼거렸다.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이 순간 시녀는 송씨댁이 곧 자신을 볼 거라는 사실이 한스러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슬프고 절망적인 일이 닥쳤을 때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은 꿈에서 깼을 때 꿈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깨닫는 것이다.

예상대로 송씨댁은 방 안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자 얼굴에 있던 웃음을 싹 거뒀다.

“아, 아…….”

송씨댁은 쉰 목소리로 탄식하더니 흰자위를 까뒤집고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시녀가 얼른 달려갔다.

“송씨댁, 걱정 말아요. 아씨께서 치료해 주신대요!”

시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송씨댁은 허공을 대고 손을 휘저었다.

“손은요? 손은?”

송씨댁은 시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버둥거렸다.

“내가 찾았어요. 내가 찾았는데, 손은요? 손은?”

송씨댁은 몸이 너무 떨려 제대로 서지 못하자 아예 바닥을 기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나왔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였다.

“송씨댁, 아씨께서 이 숙수의 손을 붙여 주신대요.”

시녀가 가까스로 송씨댁을 붙잡아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

“어서 정신 차려요!”

손을 붙인다고? 송씨댁이 동작을 멈추고 아득한 눈빛으로 시녀를 쳐다봤다.

“손도 붙일 수 있어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말을 했다.

“그럼요.”

시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송씨댁은 시녀를 보며 놀란 표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건 그녀가 가장 원하는 대답이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답이기도 했다.

“네, 붙일 수 있어요.”

시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요, 붙이고도 남죠. 아씨는 거짓을 말하는 법이 없으시거든요.

시녀는 송씨댁을 잡아끌며 문밖을 가리켰다.

“봐요. 아씨께서 벌써 치료를 시작하셨어요!”

송씨댁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찌르는 듯한 다리 통증으로 다시 꿇어앉을 수밖에 없었다. 송씨댁은 기어서 밖으로 나갔다.

내가 봐야겠어, 내가 봐야지.

날이 밝을 무렵인데도 주씨 저택의 연무장은 여느 때와 달리 썰렁했다. 창과 검을 주고받으며 기합을 넣고 서로 칭찬하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주 노야가 아직 상경 중이었기에 집안 자식들이 분주해졌기 때문이다.

삼복더위에도, 엄동설한에도, 비바람이 불어도 무예 단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무인 집안의 가훈은 하늘에 맞설 때만 강력했을 뿐, 인재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졌다.

원래도 크지 않던 연무장이지만 지금은 더욱 넓고 텅 비어 보였다. 소년 하나가 창을 이리저리 날렵하게 휘두르며 몸을 날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던 소년의 몸놀림은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깨져 버렸다.

웃통을 벗은 주육낭이 장창을 거뒀다.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누가 날 찾는다고?”

주육낭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연무장 근처에 서 있던 사환이 얼른 달려왔다.

“정 아씨요.”

그 애가? 주육낭은 흠칫 놀랐다.

“어디 있는데?”

사환이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집안사람들이 다들 바쁘지 않습니까. 부인도 바쁘시고요. 그래서…… 내쫓았어요.”

가뜩이나 뒤숭숭한 이때 정교랑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주 부인의 울화통이 치밀 만도 했다.

“집안을 말아먹을 계집! 절대 안으로 들이지 마라! 냉큼 내쫓아!”

다행히 주육낭의 사환이 이 소동을 목격했고, 정교랑을 향한 윗전의 마음을 잘 알기에 충심으로 몰래 아뢴 것이었다.

“공자님, 제가 말씀 올린 건 비밀로 해 주세요.”

사환이 불쌍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주 부인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팔려 갈 게 뻔했다.

“직접 왔어? 아니면 심부름꾼을 보냈더냐?”

주육낭이 장창을 받침대에 던지듯 꽂으며 물었다.

“사환이 왔습니다. 문을 지키는 그 아이요.”

주육낭이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공자님,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사환이 급히 따라가며 말했다.

“안 서두른다. 내가 뭘 서둘러!”

주육낭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치자 사환은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공자님, 옷도 안 가져가셨는데…….”

사환이 조심스레 말하자 주육낭이 손을 들어 후려쳤다.

“눈만 달렸고 손은 안 달렸어? 쓸모없는 놈 같으니! 냉큼 가져와!”

사환은 머리를 부여잡고 잽싸게 달려갔다.

주육낭이 말을 달려 옥대교 저택으로 왔다. 멀리서부터 저택 앞에 있는 말 여러 마리가 보이자 주육낭은 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온 주육낭은 마당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대장, 저희 먼저 가 보겠습니다.”

“대장, 오 대인께 말씀이라도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대장, 정말 여기서 기다리실 겁니까?”

병사들이 사내 하나를 에워싸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가서 무슨 말을 해? 나 여기 오고 나서 쉰 적도 없는데, 한 이틀 쉬면 안 돼?”

유 대장은 심드렁하게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 먼저 가라.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

“유규(劉奎).”

누군가가 불렀다. 내가 아무리 좌천된 처지라지만 명색이 좌우가사인데, 수하에 있는 병사들이 아무리 날 깔봐도 대놓고 이름을 부를 정도는 아니지 않나?

유 대장이 분노로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대문 앞에 선 소년 하나가 보였다.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걸어오면서 유 대장과 병사들을 차례로 훑었다.

“우리 집에서 뭐하는 겁니까?”

우리 집? 유 대장이 멈칫했다.

“주 공자.”

병사 하나가 주육낭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엄청난 권세가는 아니었지만 노섬 주씨 가문도 꽤 이름이 난 집안이었다. 특히 주육낭은 경성의 크고 작은 싸움이며 소동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유 대장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물었다.

“주씨라고? 어느 주씨?”

“귀덕낭장 주씨 가문입니다.”

주육낭이 직접 대답했다. 유 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려 대청 쪽을 쳐다봤다. 사경에서 오경쯤 사람들을 전부 내쫓은 후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선 아무 소리나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 그럼 저 낭자가 그 댁 사람이라고요?”

유규가 대청 쪽을 가리키며 주육낭에게 물었다. 주육낭 역시 대청 쪽을 쳐다봤다.

회랑 아래에서 일어나는 서무수와 시녀, 반근, 그리고 바닥에 꿇어앉은 채 기둥에 기대 있는 여인이 보였다. 회랑 주위에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세 사람도 보였다. 서무수의 형제들이었다. 저들까지 오다니…….

“무슨 일 있소?”

주육낭은 유 대장을 내버려 둔 채 이들에게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누이가 병을 치료 중이에요.”

서무수가 대답했다.

치료? 주육낭의 시선이 다시 유 대장에게 향했다. 거리를 순찰하는 병사들인데?

“우리 숙수 이대작이 어젯밤에 기습을 당해 좀 다쳤습니다.”

서무수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주육낭은 흠칫 놀랐다가 곧 분노했다.

“범인은 잡았소?”

주육낭의 질문에 서무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들이 하도 짖어대니까 근방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나왔나 봅니다. 놈들은 진작 도망쳤고요.”

서무수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참으로 다사다난하군. 주육낭은 잠자코 있었다. 부친에게 갑작스럽게 일이 터지고, 이번엔 태평거까지 갑작스럽게 당했다. 이 두 가지 일 사이에 연관이 있나?

“아씨는 누구 짓인지 아실 거예요.”

시녀의 말에 서무수와 주육낭 등이 시녀를 쳐다봤다.

“아씨께서 어제 성가신 일이 생길 거라고 하셨거든요.”

시녀가 대답했다.

저 여인은 참…….

“말하자면 이대작을 노린 게 아니란 뜻이군. 그러니까…….”

거기까지 말한 주육낭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태평거를 노렸다?”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이대작이 깨거든 물어보면 알겠죠.”

시녀가 말했다.

“그럼 기다려 보자.”

주육낭은 회랑 아래에 앉으며 마당의 유 대장을 쳐다봤다.

“유 대장, 내가 보증할 수 있어요. 이 사람들, 폭도 아닙니다.”

역시 주씨 가문의 신의 낭자가 맞았구나. 이제 보니 신의 낭자는 주씨가 아니라 정씨였어.

유 대장이 손을 내저었다. 명을 받은 병사들이 우르르 빠져간 덕에 대문 앞의 소란도 잠잠해졌다.

“알겠습니다.”

유 대장은 그제야 대답하고는 걸어와 회랑 아래에 앉았다.

“소생도 기다리겠습니다.”

네가 뭘 기다려?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대청 안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상처가 심각하오?”

“다른 상처는 괜찮은데, 팔을 붙이는 게 좀 힘든가 봅니다. 누이 말로는 정오는 지나야 한다고…….”

서무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육낭이 한쪽 무릎을 세우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손이라고?”

“네. 폭도들이 대작의 손을 잘라 버렸어요.”

서무수가 대답했다.

폭도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손이나 발을 잘리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폭도지.

근데, 그런 상처를 치료하려면 상처를 지혈하고 싸매야 하는 거 아닌가? 손을 붙인다니?

“뭐라고 했소? 손을 붙인다고?”

주육낭의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시녀 등이 바짝 긴장하며 쉿 하는 동작을 했다.

그래서 유 대장이 여기 남겠다고 했군. 잘린 손을 도로 붙인다……. 부러진 뼈가 다시 붙는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잘린 손을 다시 붙인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저 여인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단 말이지.

다시 다리를 거두고 천천히 앉은 주육낭은 굳게 닫힌 대청의 문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날 오라고 했군. 소동이 벌어질까 봐…….

주육낭은 대청의 문을 등진 채 굳은 얼굴로 자세를 바로 하여 앉았다. 해가 점점 높이 떠올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연유 때문인지 주육낭의 목과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당에 대여섯 사람이 앉아 있고 후원에도 마을 사람 몇 명이 있었지만, 저택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금가아와 반근만이 물을 긷고 밥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밥을 먹으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시간이 꽤 됐는데 왜 아무런 움직임도 없지?”

주육낭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정오의 햇빛이 눈부셨다. 주육낭은 다시 고개를 돌려 대청 문을 쳐다봤다. 서무수와 시녀가 좌우 양쪽에서 문을 지키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누구든 문 안으로 쳐들어가려는 이가 있다면 즉시 달려들어 막을 태세였다.

주육낭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들어가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너희 따위가 막을 수 있을까 봐? 문은 열리게 돼 있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주육낭이 멈칫했다.

문이 열렸다!

“아씨!”

소리는 서무수와 시녀가 가장 먼저 질렀고, 가장 먼저 일어선 건 유 대장이었다. 하지만 외마디 소리 후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다들 이 고요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눈치였다. 입을 열어 정적이 깨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듯이.

문을 나선 정교랑은 바로 문을 닫았다.

“저 사람 당분간은 집으로 못 돌아가요.”

정교랑의 말에 사람들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어……. 유 대장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방법이 없으니 데려가십시오.”

“내 다리를 자르면 안 됩니다. 내 다리를 자르지 마요.”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차라리 죽여요.”

울음소리, 비명 소리, 울부짖는 소리 등 시끄러운 소음이 귓가에 울렸다. 유 대장의 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 왔다. 누군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도와주세요. 제발 밥 좀 주세요.”

유 대장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눈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환각처럼 나타났다. 팔이 없는 사내도 있고 다리가 잘린 사내도 있었다. 젊은 사람도 나이 든 사람도, 남루한 행색에 멍한 표정으로 손에 그릇을 들고 있었다.

병이 심해 죽으면 죽는 것으로 그만이지만, 살아남은 부상병들은 대부분 거지로 전락해 서서히 죽어갔다. 그건 운명이다. 한림 의관(翰林 醫官)도 그리 말했다.

누군가가 유 대장을 손으로 밀쳤다.

“비켜요.”

주육낭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유 대장 앞으로 그 여인이 걸어왔다.

“반근, 저 사람을 잘 돌봐. 탁자 위에 놓은 약을 달여서 먹이면 돼.”

정교랑은 곧장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난 쉬어야 해.”

아씨는 매번 치료가 끝나면 극도로 피곤해했다. 대청은 이대작이 차지했으니 서재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녀가 얼른 길을 안내했다.

송씨댁이 흐느껴 울며 대청으로 들어가려 했다.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해요.”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서무수는 대청 문에 손을 가져다 대는 송씨댁을 서둘러 붙잡고 도로 끌어냈다. 유 대장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외상 좀 치료한 것 갖고 못 들어가게 유세는!”

주육낭이 유 대장을 노려봤다.

“유규, 이제 그만 가도 되잖습니까.”

유 대장은 콧방귀를 뀐 후 돌아섰다.

“지금 들어가지 말라는 건, 손을 이제 막 붙였기 때문이에요. 사흘 동안은 바람을 쐬면 안 돼요. 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들면, 안 좋아요.”

정교랑은 그 말만 남긴 후 고개를 돌려 곧장 걸어갔다. 시녀는 벌써 서재 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닫혔다.

회랑 아래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넋이 나간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손을 붙였다고……. 모두의 귓가에 그 말이 메아리쳤다.

“유규는?”

군관 하나가 병영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병사 둘이 달려와 고개를 숙인 채 서로 눈치를 살폈다.

“유 대장은 집에 일이 있어서, 못 오셨습니다…….”

두 병사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관이 화를 버럭 냈다.

“집은 개뿔! 일은 개뿔! 대답해라. 또 어느 기루에 자빠져 있는지!”

두 병사가 겁을 먹고 얼른 대답했다.

“기루가 아닙니다. 그게, 그러니까, 병을 치료하는 낭자를 보고 계십니다.”

군관은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당장 가서 전해라. 거리 순찰 못 하겠으면, 성문 지키는 곳으로 보낸다고 해!”

군관이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군관이 나가자 나머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게, 벌써 사흘째잖아. 대장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

“그 신의가 정말 손을 도로 붙였나?”

“그러지 말고 가서 확인해 보자고.”

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더 많은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잘린 손을 붙인다는 얘기가 나오자 병사들은 더욱 웅성거렸다.

“사기꾼이네, 그게 말이 되나!”

확실히 말이 안 되긴 하지…….

“근데 죽은 사람도 살리는 신의잖아. 목숨도 구하는데 손 하나가 대수겠나?”

“맞아, 맞아. 나도 전에 그런 얘기를 들어 봤어. 하주에 사는 어느 여인의 턱이 못쓰게 되자, 의원이 다른 이의 턱을 잘라다 붙여서, 그 후로 아주 잘 살았대.1)”

“정말 그런 일이? 거 신기하구먼!”

“여기서 입씨름할 것 없이 가서 보면 알 거 아니야. 어차피 성 안에 있는데.”

그 말에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나갔고, 그날 밤 일을 목격한 병사들의 안내에 따라 옥대교로 향했다.

같은 시각 옥대교의 저택 앞.

말에서 내린 주육낭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은 문간방에 있는 유 대장이 보였고, 이어 회랑 아래에 있는 송씨댁이 보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변함없는 자세로 꼼짝도 않은 채 굳게 닫힌 대청 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시녀가 쟁반을 받쳐 들고 회랑 아래를 총총 지나갔다.

“아씨, 도련님, 식사하세요.”

시녀의 목소리는 발걸음처럼 경쾌했다. 서재 문을 활짝 열자 그 안에 마주 앉아 있는 남녀가 보였다.

“수소문해 봤지만 아무 단서도 없어. 태평거에도 아무 일 없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던데.”

서무수가 말했다.

“단서는 있든 없든 상관없어요.”

정교랑은 시녀가 시중을 드는 대로 손을 닦고 젓가락을 들었다.

“오라버니, 먹어요.”

서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시녀가 고개를 들어 마당에 서 있는 주육낭을 쳐다봤다.

“주 공자가 왔네요.”

시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정교랑과 서무수가 쳐다봤다.

“매일 올 필요는 없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난 너처럼 속 좁은 사람이 아니거든. 네가 고개를 숙이고 도움을 청한 이상, 당연히 와야지. 주육낭은 굳은 얼굴로 정교랑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회랑 아래로 가 앉았다.

대청 문이 안에서 열리자 유 대장과 송씨댁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반근을 쳐다봤다.

“아씨.”

반근은 기쁜 목소리였다.

“깼어요, 깼다고요.”

송씨댁은 흐느끼며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더니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할 뿐 그 안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깼으면, 돌아가도 돼.”

정교랑은 젓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대꾸했다. 반근은 네 하고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려 초췌한 송씨댁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아씨, 송씨댁이, 들어가 봐도 돼요?”

“돼.”

그 말에 송씨댁은 흐느끼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다리의 상처는 이미 반근과 시녀가 싸매 준 후였지만, 심리적 원인 때문인지 먹고 마신 게 거의 없어서인지 제대로 걷지 못해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반근이 손을 뻗어 부축했다. 송씨댁은 벌써 구르고 기면서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대청 안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건이 일어난 후, 송씨댁이 드디어 울음을 토해낸 것이다.

“너도 가 봐.”

정교랑이 옆에 있는 시녀를 보며 말했다. 시녀는 헤헤 웃고는 얼른 치마를 들고 뛰어갔다.

송씨댁은 병풍 뒤에서 이대작의 오른손을 들고 엉엉 울었다.

“있네요, 아직 있어요.”

송씨댁이 웅얼거렸다. 이대작 얼굴의 상처는 많이 나은 상태였고, 눈도 뜰 수 있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있소, 있어.”

이대작도 흐느끼며 말했다.

“네, 있어요. 송씨댁이 들고 온 덕분이에요. 다시 찾으러 갔거나 이미 묻은 후였으면 큰일 날 뻔했죠.”

반근 역시 눈물이 글썽한 채 말했다. 송씨댁은 더욱 목놓아 엉엉 울었다. 바닥에 엎드려 흰 천으로 꽁꽁 싸매 놓은 이대작의 오른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숨이 넘어갈 듯 오열했다.

“움직일 수 있겠소?”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손을 봉합하는 거라면 누군들 못할까. 핵심은 전처럼 움직일 수 있느냐였다.

“아직은 안 돼요. 열흘이나 보름은 기다려야 한대요.”

“전과 똑같이 될 수 있다고?”

유 대장의 호흡이 가빠졌다. 반근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몰라요.”

거기까지 말한 반근은 바닥에 꿇어앉아 손을 뻗어 이대작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보세요. 보기에는 전과 똑같아 보여요. 좀 붓긴 했지만 혈색도 돌고 온기도 있어요.”

반근은 손을 뻗어 이대작의 오른손을 가볍게 주무르며 말했다. 유 대장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반근과 시녀가 살살 만지라고 소리쳤다.

뜨겁고! 부드럽다!

차디차지 않아. 푸르딩딩하지 않아. 못쓰게 되지 않았다고!

살아 있는 것이다! 피가 돌고 영양이 공급되고 있어! 진짜 붙였구나!

“나가요, 나가!”

시녀와 반근이 씩씩거리며 유 대장을 밀며 몰아냈다.

평소라면 이런 계집 둘은 고사하고 장정 둘이 달려들어도 결코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 대장은 넋이 나간 상태여서 시녀와 반근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유 대장이 와하하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 대장을 노려봤다. 주육낭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유 대장이 이번에는 목놓아 울며 뒤돌아 달려나갔다.

“있다, 있어.”

유 대장의 외침이 멀리서 전해졌다.

“놀라서 정신이 나갔나? 무식하긴!”

금가아가 입을 삐죽거렸다.

확실히 놀랄 만한 일이긴 하지.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저 군인이 정신줄을 놓을 만도 하다고 여겼다.

서무수 역시 대청으로 가 이대작을 살폈다. 본인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는 신기한 경험을 한 당사자였지만, 이런 일을 직접 목격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가아가 서둘러 마차를 빌려왔다. 팔에 부목을 댄 이대작은 부축을 받아 일어선 후 홀로 걸어가 마차에 올랐다. 오히려 송씨댁은 다리에 힘이 풀려 시녀와 반근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사흘 후에 보러 갈게요.”

정교랑이 말했다. 이대작 부부는 마차에서 몸을 굽혀 인사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우린 이만 갈게.”

서무수도 마차에 올랐다.

“두 사람 데려다주고, 난 다섯째, 여섯째와 같이 올게.”

이번엔 이대작이 당했지만 다음은 누굴지 알 수 없으니, 어쨌든 매사 조심하는 게 옳았다.

“여긴 당분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정교랑은 그렇게 대답하며 주육낭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회랑 아래에 뒷짐을 진 채 서 있던 주육낭의 몸이 굳어졌다. 등줄기로 불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이 있으니, 괜찮을 거란 뜻일 터…….

주육낭은 콧방귀를 뀌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뒷짐 진 손을 저도 모르게 만지작거렸다.

“이 사람 손 똑똑히 봤죠?”

정교랑의 물음에 주육낭이 시선을 돌렸다.

“뭐 볼 게 있다고.”

주육낭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와서, 봐요.”

정교랑은 주육낭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햇빛을 받은 소녀의 미소는 순간 눈부시게 빛났다. 그 경직돼 있던 얼굴과 눈도 부드러워지며 생기가 돌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미소를 짓고 있으니 훨씬 고와 보였다. 주육낭은 순간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시키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마차에 있던 이대작은 정교랑의 말에 얼른 바깥쪽을 향해 앉으며 손을 꺼내 놓았다. 주육낭이 몇 걸음 밖에서 힐끔 쳐다봤다.

“어때 보여요?”

정교랑이 물었다. 스승의 칭찬을 갈망하는 학생 같았다. 주육낭은 또다시 콧방귀를 뀌며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아주 잘했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너 대단한 거 안다고. 잘났다고!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교랑을 쳐다봤다.

“나는, 잘린 손도, 붙였어요.”

정교랑은 주육낭을 보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잘린 손을요.”

잘린 손도 붙였으니, 불구인 다리도 당연히 고칠 수 있죠.

주육낭의 머리에 꽝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불이 정수리를 뚫고 나가는 듯했다.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악독하구나! 참으로 악랄해!

“정교랑! 해도 너무하잖아!”

주육낭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신에 있는 뼈에서 으드득 소리가 나는 듯했다.

주육낭은 눈앞에 있는 여인을 쳐다봤다. 아니, 여인이 아니다. 악마지.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달려와서 사흘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곳을 지켰다. 이곳에 오기 위해 모친을 속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전부터 혹여 일이 생기면 부르지 않을까 하면서도 모친이 못마땅해하며 막을까 봐 사환들에게 각별히 주의하라고 수시로 당부했다.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치면 이 외롭고 기댈 곳 없는 혈육을 지켜 줘야 하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가슴에 품고 따뜻하게 해 주려던 이는 다름 아닌 독사였다. 차갑고 무정하고 냉혹한 독사!

감격하여 기쁘게 달려온 요 며칠의 일 역시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우습고 가엾고 딱한 웃음거리! 해도 너무하는군! 해도 너무해!

세상에 이리 악독한 여인이 또 있을까!

주육낭은 얼굴이 시뻘게져 주먹을 부르쥐었다. 이 여인을 한입에 집어삼키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서무수가 가장 먼저 마차에서 뛰어내려 정교랑 앞을 막았다. 서무수는 딱히 무슨 말을 건네거나 위로하지 않고 경계 태세를 취하며 주육낭을 쳐다봤다. 시녀와 이대작 등은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멍할 뿐이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네.

“이 기쁜 소식을 잊지 말고, 그 친구와 나눠요.”

서무수 뒤에 선 정교랑이 말했다. 주육낭은 휙 돌아서더니 옆에 있던 해당화 나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나무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자 시녀와 반근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서무수가 이성을 잃은 이 젊은이를 붙잡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주육낭이 휙 몸을 돌려 달려갔다. 자신이 말을 타고 왔다는 사실조차 잊었는지 그대로 내달렸다.

때마침 이곳으로 오던 사람은 하마터면 주육낭과 부딪칠 뻔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사람이 민첩하게 엄호했다.

“저 자식이…….”

호위들이 욕을 내뱉을 무렵 주육낭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 인파 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주육낭이 이성을 잃고 달려가는 바람에 사람이며 말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다들 욕을 해댔다. 시끌벅적한 소란은 곧 멀어졌다.

주육낭은 자신이 누구를 밀쳤는지조차 몰랐고, 소리치고 욕하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달음에 아주 멀리까지 달려왔을 때 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육, 뭐 하는 거야?”

그 목소리에 주육낭이 우뚝 멈춰 고개를 들었다. 마차에 탄 진 공자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잘 만났네, 찾고 있었는데.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 말이야. 방금 거리에서 자네 모친을 만났는데, 자네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시더군. 내가 바로 둘러대긴 했는데 보아하니 안 믿으시는 눈치였어.”

주육낭은 입꼬리를 올리는 진 공자의 웃음을 보는 게 욕을 듣는 것보다 더 거북했다.

“자네도 참, 내 명의를 대고 사흘이나 거짓말을 할 거면 나한테도 귀띔을 해 줘야 할 거 아닌가. 들키면 자업자득인 줄 알아.”

계속 웃으며 떠들던 진 공자는 그제야 주육낭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자네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웃고 있던 진 공자가 웃음을 멈추고, 표정이 일그러진 소년을 쳐다봤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진 공자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잘린 손도, 붙였어요…….

이 기쁜 소식을 잊지 말고, 그 친구와 나눠요…….

그래, 좋은 소식이지. 진 공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한 번 더 증명했으니까. 유일한 희망이자 간절한 희망인데, 말하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괴롭고, 말하면 더 괴로우라고.

주육낭은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육낭, 날 친구로 여기기는 하는 거야?”

진 공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친구라…….

“십삼, 내가 부탁하면, 들어줄 수 있겠어?”

주육낭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진 공자가 웃었다.

“그야 무슨 일인지 봐야지. 난 아무 약조나 하진 않아.”

주육낭이 입을 삐쭉거렸다.

“나랑 친구 안 할 수 있겠나?”

깜짝 놀랐던 진 공자는 곧 무슨 일인지 깨닫고 주육낭을 보고 웃으며 지팡이를 후려쳤다.

“이 아둔한 녀석이 또 긁어 부스럼을 만들러 갔었네! 또 정 낭자한테 우롱당했지? 내려놓지도 못했으면서 정 낭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말라니까!”

내려놓으라니, 어떻게 내려놔. 주육낭이 쓴웃음을 지었다.

“십삼, 그 애가 방금 손이 잘린 사람을 치료했어.”

진 공자는 멈칫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주육낭의 말을 제대로 못 들은 듯했다.

“잘린 손을…….”

주육낭은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 애가 다시 붙였다고.”

잘린 손을, 붙였다……. 그렇다면 못쓰는 다리도…….

주육낭은 놀란 진 공자를 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주육낭이 뛰쳐나간 후, 마당은 다시 조용해졌다. 시녀와 반근 외에는 무슨 일인지 아무도 몰랐다.

어떻게 말 한마디에 소년이 저렇게 이성을 잃고 광분하지?

그렇다고 무슨 일인지 묻지는 않았다. 서무수는 이대작을 데려다준 후 돌아오겠다고 다시 말한 후,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마차가 출발하자 금가아는 대문을 닫았고, 마당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정교랑이 뒤돌아 반근과 시녀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내가 너무 야박한 것 같니?”

정교랑의 물음에 시녀와 반근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씨가 어딜 봐서 야박한 분이에요!”

시녀와 반근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정교랑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지 않고 발을 들어 걸음을 옮겼다.

“대청을 치울게요.”

반근이 말했다.

“필요 없어. 서재에서 지낼 거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아씨는 먹고 자는 일에 요구가 엄격한 분이다. 이대작이 사흘이나 머물었던 곳이니 거기서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반근은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럼 물건을 서재로 옮길게요.”

“내가 도와줄게.”

시녀도 거들었다. 시녀와 반근이 웃으며 화랑 아래로 왔을 때쯤, 저쪽 담벼락에서 쾅쾅 소리가 들렸다.

“저 자식이 또…….”

시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지만 담벼락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 안 가 소년이 몸을 내밀었다. 이쪽을 보는 정교랑의 모습이 보이자 소년은 손을 흔들며 웃었다.

“밥은 먹었어요?”

지금이 몇 신데 밥을 먹었냐고 물어. 다들 너처럼 게으른 줄 알아? 시녀는 콧방귀를 뀌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반근도 입을 오므리며 웃고 뒤따라 들어갔다. 곧이어 여인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힘겹게 나왔어요. 낭자가 떠나 버린 줄도 모르고 있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뭐래, 알아보면 되지. 어차피 진짜 떠났어도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거면서. 시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당분간은 안 떠나요.”

정교랑의 말에 진안 군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날 거면 가기 전에 잊지 말고 나한테 인사해요.”

“네.”

“떠나면 좀 아쉬울 것 같네요.”

진안 군왕이 또 웃었다. 대청 안에 있던 시녀는 붓꽂이를 흔들며 흥흥 콧방귀를 두 번 뀌었다.

“아직은 안 떠나요.”

아직은 안 떠나니까 아쉬워하고 말 것도 없어요. 나중에 떠나더라도 아쉬워할지 안 할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러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진안 군왕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벼락 위에 팔을 걸쳤다.

“아, 방금 낭자의 오라비가 울며 뛰어가는 거 봤어요.”

진안 군왕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는지 흥미로운 듯 입을 열었다.

오라비? 주육낭? 그래. 아씨의 신분과 내력에 대해 다 알아낸 자니, 주육낭이 누구인지도 당연히 알겠지.

근데 주육낭이 울었다고? 안에 있던 시녀와 반근이 눈을 마주쳤다.

울기까지…… 하다니……. 아씨의 입은 참으로…….

“때린 거예요? 아니면 욕이라도 했나? 너무 가엾더라.”

진안 군왕이 웃었다.

“치욕을, 준 셈이죠.”

정교랑은 돌아서며 손을 올렸다.

“야박한 말과, 야박한 행동으로요. 누가 듣더라도, 날 야박한 사람이라 여길 거예요.”

진안 군왕이 하하 웃었다.

“그렇진 않아요. 낭자한테 야박한 말을 듣는다면, 좋은 일이겠죠.”

좋은 일이라고? 시녀와 반근은 정리 중이던 손을 멈추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길로 서로를 쳐다봤다.

야박한 것도, 좋은 일일 수 있을까? 말만 번지르르해서는 점수 따려고 한 말이겠지? 시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무슨 뜻이죠?”

정교랑이 고개를 들고 진안 군왕을 보며 물었다. 진안 군왕은 빙긋 미소 지으며 손으로 턱을 괴고, 자신을 보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때, 저 사람은 병이 깊어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지경이었어요. 곁에는 형제들뿐이고, 역참에서도 받아 주지 않아 쫓겨났죠.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어요. 7척 장신의 사내가 천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내가, 그때, 왜 도와줬을 것 같아요?”

왠지 귀에 익은 말인데……. 시녀가 멈칫했다.

무슨 뜻이지? 반근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른 고개를 숙이고 침구와 자리 정리에 몰두했다.

“낭자는 말하는 게 야박해요.”

진안 군왕은 손을 바꿔 다른 손으로 아래턱을 괴었다.

“나한테는 더 야박했죠.”

시녀는 퍼뜩 깨달았다.

저 소년은 산골짜기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어깨를 쫙 벌리고 씩 웃었다.

“낭자, 나도 낭자가 구한 건데 그 일은 상쾌하지 않았습니까?”

“공자를 구한 건, 별로 상쾌하지 않았어요. 두 번은 구해야, 통쾌하다고 할 수 있죠.”

아침 햇살 속에서 그 소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두모를 벗었다.

“어쨌든 낭자의 야박함은 나한테 좋은 일이었어요. 낭자가 내 목숨을 구했으니까요.”

진안 군왕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렸다.

그래? 반근은 손을 멈추고 뭔지 알겠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씨께서 저 소년의 목숨을 구하셨구나. 이번엔 시녀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반근이 의아해하며 불렀다.

“일곱째 도련님이 있었다면 느끼는 게 좀 있었을 텐데.”

시녀는 나지막이 소곤대며 웃었다.

그 봉추라는 사람? 반근은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돈이 없는 게, 무슨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데, 이렇게 당당할 건, 없잖아요.”

“아니, 돈이 있다고 사람을 업신여기면 되겠습니까.”

소녀는 무뚝뚝한 표정이었고, 냉랭하기까지 한 말투였다. 소녀의 말은 눈앞에 있는 사내를 구차하게 하고 속수무책으로 만들 뿐이었다.

“저들한테 돈이 없다니, 자네가, 저들에게 주게.”

하지만 소녀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소녀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시녀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담벼락 위의 소년은 또 뭐라 말하고 찬란한 웃음을 드러냈다.

“그 사람들이랑 무슨 관계예요?”

진안 군왕은 또 궁금한 듯 물었다.

저 자식은 왜 저렇게 질문을 해대? 알아내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알 수 있잖아? 순진한 척하기는. 시녀는 투덜거리며 진안 군왕에게서 관심을 끄고, 서책을 옮기며 반근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시녀와 반근이 회랑 아래를 지날 무렵, 정교랑이 고개를 들어 담벼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 가족이에요.”

진안 군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정말 많네요.”

다소 부러운 눈치였다.

“북적북적하겠어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아직 밥 안 먹었죠?”

정교랑이 처음으로 먼저 던진 질문이었기에 진안 군왕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네, 나올 기회 잡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 밥 챙겨 먹을 겨를이 없었어요.”

“그럼 여기 와서 먹어요.”

진안 군왕은 이까지 드러내며 웃었다.

“그건, 낭자가 불편할 것 같은데.”

아이고, 고마워라. 저 자식이 아씨께서 불편하신 걸 알긴 아는구나! 서책을 정리 중이던 시녀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귀를 쫑긋 세워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없고, 별일도 없는데, 불편하긴요.”

무심한 표정에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를 가진 작고 여린 여자였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더없이 작고 약해 보였다. 그런데 귓가로 들어오는 그 말에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그날 자신 쪽으로 몸을 기대며 두모를 벗던 그 모습과 같았다.

“공자를 구한 건, 별로 상쾌하지 않았어요. 두 번은 구해야, 통쾌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자신감에 그런 담담함이라니. 진안 군왕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근데, 내가 불편해서요.”

진안 군왕은 미안한 듯 말하고는 곧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하죠. 음식을 이쪽으로 올려 줘요.”

그 말에 시녀는 서책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반근을 쳐다봤다.

“반근, 여긴 내가 정리할게. 넌 나가서 저 상전을 모셔.”

반근이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알았어. 그럼 반근 언니, 수고해.”

시녀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주점 별실 안.

진 공자가 손을 휘휘 내젓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갔다. 진 공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주육낭을 쳐다봤다. 예전의 주육낭이었다면 화가 나서든 기분이 좋아서든 벌써 술을 반 동이쯤은 퍼마셨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풀 죽은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책에 이르기를 정이 있는 유정(有情)은 정이 없는 무정(無情)과 비슷하다 하였다. 같은 이치라면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고 고통이 극에 달할 경우, 대성통곡을 하고 우는 게 아니라 아무 티도 안 내고 조용히 있을 것이다.

진 공자가 한숨을 쉬었다.

“고의로 자네를 놀리는 건데, 그걸 믿어?”

“그런 게 아니었어! 살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독한 애잖아.”

주육낭은 시무룩한 말투였다.

“내가 보기엔 안 그래.”

진 공자가 고개를 가로젓자 주육낭이 고개를 들어 진 공자를 쳐다봤다.

“그 낭자에겐 연민의 마음이 있어.”

진 공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애한테 연민의 마음이라니?”

주육낭은 이를 갈았지만 진 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보면 더 잘 보이지.”

진 공자가 자신의 잔에 술을 한 잔 따랐다.

“그 무원산 형제들을 어찌 대하는지 봐.”

상경하던 길에 무원산 7형제를 만나 구해 준 일에 대해서는 조 집사에게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교활한 여인이야. 애초에 무슨 의도를 품고 구한 건지 누가 알겠어.”

주육낭이 말했다.

“의도가 어쨌든 구했잖아. 그들의 목숨을 구하고 운이 트이게 해 줬어. 지금은 금가아 때문에 도리어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고.”

말을 마친 진 공자가 술을 마셨다.

금가아 때문에, 그들에게 고마워한다?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자네한텐 안 보이겠지. 말하자면 좀 억지스럽지만 낭자는 그런 사람이야. 물 한 방울의 은혜에도 넘치는 샘물로 갚아. 그런 연민이 있는 사람이니 감상적인 거고.”

진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주육낭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감상적이라고? 지금 우리가 동일 인물에 대해 말하는 거 맞나?

“물론 남들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 그 여인도 신경 안 쓸 테지. 무원산 7형제 외에 반근도 있잖아.”

진 공자는 주육낭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물론 자네는 그 여인이 은혜를 베푼 모든 게 진작부터 계획에 있었고,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어쨌다 여기겠지.”

주육낭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 세상사가 무상하단 거야.”

진 공자가 웃으며 탄식했다.

“자네가 본 세상사는 그렇겠지만, 세상사가 정말 그렇던가? 다른 사람의 눈엔 또 다른 모습일 거야. 세상사는 무상한 법이지. 며칠 전 명해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주의 한 선사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냐’ 하였더니,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오. 오직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뿐이오.’2) 했다지.”

“됐어, 입 다물어.”

주육낭은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했던 말 또 하지 말라고, 머리 아프니까.”

주육낭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진 공자는 웃으며 잠자코 있다가 뒤따라 술잔을 비웠다.

주점을 나오자 점원이 주육낭의 말을 끌고 왔다. 방금 주육낭이 미친 듯이 달려올 때, 말은 혼자 따라왔었다. 주육낭이 손을 들어 말을 두어 번 토닥여 주며 한숨을 토했다.

“결국 자네가 내 마음을 풀어 주는군.”

주육낭은 고개를 돌려 진 공자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괴로운 건 자네일 텐데.”

“난 괴롭지 않아. 희망을 봤는데 괴로울 리가. 기뻐하기도 부족하지.”

“1년으로 안 되면 2년, 2년으로 안 되면 3년, 4년, 5년이 걸려서라도 빌게.”

주육낭이 말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진 공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야 주복이지. 자네 누이가 성가신 일에 걸려들게 됐어. 참, 내 생각엔 그 숙수의 일과 자네 아버지 일이 연결된 것 같아.”

숙수의 일과 무관의 일이 연결됐다고?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리고 진 공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태평거!”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인과만이 있을 뿐.

“맞아. 태평거 때문이야.”

서무수가 말했다.

어둠이 내리자 서무수는 서봉추와 범삼축 두 형제를 데리고 성 밖에서 달려왔다. 범강림은 나머지 형제들을 데리고 태평거를 지켰다. 폭도들이 또다시 악행을 저지를 것을 대비해 이대작 부부와 이대작의 노모, 아이는 전부 태평거로 거처를 옮겼다. 손재는 한시도 두부방을 비우지 않았다.

“이대작한테 물어봤어. 대체 누구 심기를 건드린 건지 말이야. 처음엔 생각을 못 하더라고. 송씨댁도 자기들 부부는 평생 착실하게 살았고, 누구와 얼굴을 붉히거나 모진 말 한 번 안 했다고 했어. 그래서 꼭 누구와 얼굴을 붉히거나 모진 말을 한 게 아니어도 때론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움을 살 수 있다고 했지. 요즘 누가 청이나 부탁 같은 건 안 했는지 물었어.”

시녀가 차를 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셋째 도련님, 그날 태평거에서 송씨댁을 봤잖아요.”

시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불쑥 끼어들었다. 서무수가 시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야. 취봉루, 그러니까 신선거의 주인인 두칠이 두부 공양 이후로 이대작을 데려가려고 사람을 보냈어. 이대작이 여러 차례 거절하자 우리 태평거에 무뢰배를 보내 소동을 벌였지.”

“뒤에 있는 인물이 주오가 아니었군!”

서봉추가 소리쳤다.

“당연히 아니죠. 배후에 있는 주모자가 자결하겠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하면 안 돼?”

서봉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막다른 길에 몰렸으니 깔끔하게 끝낼 수도 있잖아.

“복수할 사람을 남겨 둬야죠. 그렇게 빨리, 깔끔하게 죽어 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뭔 소리야? 서봉추는 머릿속이 꼬이는지 눈을 껌뻑거렸다.

“누이, 또 날 놀리는 거지!”

서봉추는 콧방귀를 뀌고 시녀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무거웠던 실내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그럼 뒤에서 벌어진 모든 게 두칠과 관련된 거로군.”

서무수가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이 자식이 뭐 하자는 거야! 가게 팔 때도 우리한테 값을 절반이나 올려 받았으면서.”

서봉추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아씨께선 그 집 숙수한테 발하공을 더 제대로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신걸요.”

시녀도 말을 거들었다.

“엄연히 은인인데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거지? 진짜 이해가 안 가네!”

얘기를 들은 서봉추는 더욱 씩씩거렸다. 생각할수록 다들 분하고 열이 받는 눈치였다.

“은인이라고 할 순 없죠.”

정교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종 업계 종사자는 원수라고 하잖아요. 난 그 사람의 은인이 될 생각 없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낙득자재를 만들지도 않았겠지.

“세상살이가 어렵다더니 장사도 쉽지 않네요. 그 사람 밀어내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자는 하필 우리가 눈에 거슬리나 봐요.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대작을 그 꼴로 만들다니, 정말 괘씸해요.”

시녀가 말했다.

“탐욕스러운 자가 악한 생각을 하는 건 인지상정이지. 탓할 것도 없어.”

“누이는 아직도 그런 말이 나와?”

정교랑의 말에 서봉추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말이 무슨 대수라고요. 그 무엇보다 편하고 단순한 게 말인걸요.”

정교랑이 웃으며 말하자 서봉추는 콧방귀를 뀌며 투덜거렸다.

“저번엔 분명 놀랐는데, 이번엔 왜 갑자기 이렇게 미쳐 날뛰는 거지?”

“태평거가 누구 건지 알았겠죠.”

서무수의 물음에 정교랑이 대답했다.

사람은 미지의 것에 대해서만 두려움을 느낀다. 운무가 걷히고 똑바로 보이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그럼 누이가 위험하잖아.”

서무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세 사람으론 안 되겠군. 하나 더 불러와야지. 아니면 아예 다 같이 태평거로 옮겨 가든가.

“난 괜찮아요. 나 대신 방패막이가 된 사람이 있거든요.”

정교랑의 말에 시녀가 퍼뜩 깨달았다.

“아, 주 노야께 일이 생긴 게 이것 때문이었군요!”

시녀가 허리를 곧게 펴고 놀라 말했다. 그날 주육낭은 씩씩거리며 달려와 밑도 끝도 없이 부친의 일을 네가 그런 것이냐고 묻고는 가 버렸다. 당시엔 영문을 몰랐는데 이제 보니 이해가 갔다.

주 노야의 이력이면 갑작스럽게 좌천당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본인이 경성을 비운 시점에서. 알고 보니 태평거의 진짜 주인으로 오해를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복수한 것이고, 그래서 아씨는 성가신 일이 생기리라 바로 예상했던 것이다.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건 절대로 두칠 혼자 한 일이 아니에요!”

시녀의 말에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두칠이 자기 양조부로 협박만 한 게 아니었네.”

유 교리! 그자는 무뢰배 몇 명처럼 단순한 상대가 아니야! 시녀는 다시 몸을 곧추세웠다.

“우리 노태야를 찾아가요. 노태야는 집을 비우셨다지만, 노야께서 계시잖아요.”

“아직 그럴 필요 없어.”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시녀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아씨, 유 교리는 경성에서 평판이 좋아요. 조정에 벗도 많고, 명망이 있죠. 관료 후보의 인사권까지 쥐고 있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에요. 늘 신중한 사람이고요.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단 뜻이죠. 주 노야께서 돌아오신다 해도 속수무책일 거예요.”

정교랑은 시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평판, 실권, 신중.”

시녀는 정교랑이 장 노태야를 찾아가는 일에 대해 동의하려는 줄 알았지만, 정교랑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건? 그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봐.”

“아씨, 저와 노태야는 경성에서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아 이름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나 아는 정도예요. 유 교리는 늘 겸손하고 검소해서 남들과 식사도 잘 안 해요. 그래서 눈에 띄지도 않죠. 지난번 두칠의 일 때문에 제가 따로 알아보지 않았으면 아마 이것도 몰랐을 거예요.”

시녀가 쉬지 않고 말했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겸손, 검소.”

정교랑이 다시 한번 반복했다.

“보아하니, 대단한 사람이네.”

“네, 대단하죠. 그러니 제가 노야께 가서…….”

시녀는 다급해 보였지만 정교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도 말했다시피, 신중한 사람이야. 움직이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을 거야. 주씨 가문에 내가 있는 것도 알 테지. 진씨 가문과 동씨 가문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치료받길 기다리는 병자들에 대해서도 알 거야. 내가 누굴 찾아가든 겁나지 않겠지. 그 사람이 벌인 일엔, 정당한 이유가 있어.”

시녀도 생각이 미쳤는지 초조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장 노야를 찾아가서, 뭐라고 하게? 사정이라도 하려고?”

정교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면 협박? 그건 도리어 저쪽에서 기다리는 일이야.”

그럼 어쩐다? 실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서봉추는 이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문제가 생겼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형님, 그 교리라는 게, 그리 대단하오?”

서봉추가 옆에 있던 범삼축에게 물었다.

“경성의 높은 벼슬아치인데 당연히 대단하지.”

범삼축이 나지막이 말했다. 서봉추는 콧방귀를 뀌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세 사람을 쳐다봤다.

“하여간 똑똑한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 많다니까. 뻔한 일 아니오. 그자가 우릴 괴롭힌 거고, 그 사람 잘못이야. 그자의 권세가 제아무리 대단해도, 혼자 있는 시간이 있지 않겠소. 그때 잡아다가 곧장 가죽을 벗겨 우물에 처박으면 그만이지. 시체도 못 찾을 텐데 통쾌하지 않소!”

원체 목청이 좋은 사람이라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도 별반 다를 게 없는 데다 격분까지 한 터라, 딴에는 조용히 말한다고 했지만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다 들렸다.

“입 다물어, 뭘 안다고 헛소릴 지껄여!”

서무수가 호통을 치자 서봉추는 억울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지난번에 죽일 때 얼마나 통쾌했냐고…….”

서봉추가 못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이게 지난번이랑 같아?”

서무수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호통을 쳤다.

상대할 사람이 다르고 상대할 일도 다르다. 지난번엔 우리가 숨어 있었지만, 이번엔 저들이 숨어 있다. 지난번엔 우리에게 충분한 근거가 있었지만, 이번엔 저들에게 빈틈이 없다.

서봉추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정교랑이 입을 열었다. 서봉추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누이가 이번에도 내 말에 동의하려나? 지난번처럼.

“세상에는, 피를 보지 않는, 살인도 있죠.”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 * *

작가의 말

1) 턱을 잘라 붙였다는 이야기는 홍매(洪邁)가 엮은 설화집 <이견지 (夷堅志)>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민간에 퍼진 기이한 사건과 괴담을 모 았다 보니 황당하긴 합니다.

2) 不是風動 不是幡動 仁者心動.

마음이 움직인다(仁者心動)는 진 공자의 말은 육조 혜능대사가 법성 사에 들어갈 때의 고사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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