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일-
“좋습니다. 신묘한 일이에요!”
이노야가 며칠째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데려온 의원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사람이 병으로 다 죽게 생겼는데 뭐가 좋고 뭐가 신묘하단 말인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의원 맞아? 대노야가 이노야를 쳐다보자 이노야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료 의원, 우리 사낭의 병세는 어떠합니까?”
이노야가 얼른 물었다. 절강성(浙江省)에서 유명한 이 신의는 이노야가 적잖이 공을 들여 모셔 온 사람이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딱히 할 일이 없게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어떻냐고요?”
료 의원이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좋다? 이게 좋다고?
“아니, 좋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대노야가 급히 묻자 료 의원은 대노야를 힐끔 보며 말했다.
“그럼 안 좋았으면 좋겠습니까?”
이게 무슨 말이야! 의원이라는 자가 말을 왜 이렇게 빈정거려! 대노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의원님, 사낭이 어제까지만 해도 인사불성이었습니다. 분명 중병이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까?”
이노야가 물었다.
“중병이 맞았든 아니든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료 의원이 말했다. 대노야와 이노야의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나은 거지요?”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하자 료 의원은 둘을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다.
“깜짝 놀랐네요. 정말 신묘하기 그지없는 일이죠!”
방 안. 아들이 의식을 회복한 일로 병이 반쯤 나은 대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내가 걱정된 대노야는 얼른 아내에게 청심환부터 먹였다.
“진정이 되시오?”
그러자 대부인이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요?”
“료 의원 말로는 근심이 깊어 마음의 병을 얻은 탓에 기혈이 뭉친 거라고 하더군. 세간에서 말하는 상사병 말이오.”
대노야의 말에 대부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전에 다녀간 의원들의 말이 맞았군. 멀쩡하던 애가 다른 병도 아니고 하필 상사병을 얻다니, 이게 웬 망신이야.
“그런데 마음의 병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잖아요. 사낭은 상사병에 걸리게 한 그 사람도 못 봤는데 나았어요. 그런데도 상사병이라고요?”
대부인이 반박했다.
“료 의원 말로는 상사병이라는 게 꼭 사람을 그리워해야 생기는 병은 아니라고 하오. 물건이나 새, 꽃, 벌레는 물론이고 수려한 경치를 보고도 상사병에 걸릴 수 있다더군.”
대노야는 말을 옮기면서 그제야 료 의원이 그나마 의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분을 풀었다. 아들이 그런 상사병에 걸린 게 아닌 거면 됐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사람 때문에 상사병을 얻었다고 하오.”
대노야의 말에 대부인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우선 막힌 기를 뚫는 탕약을 먹인 다음 갑자기 놀라게 해서 정신을 쏙 빼놓으니 가슴에 맺힌 한이 덩달아 사라지면서 기혈의 순환이 원활해져 몸이 나았다더군.”
한편 객청에 있던 료 의원이 웃는 얼굴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신묘합니다, 신묘해요.”
옆에 앉은 이노야는 뭔가 아리송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자신은 의원이 아니니 의원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않은가.
“증상에 맞춰 탕약을 쓴 게로군. 어느 의원의 처방인지 어서 상을 내리도록 해라.”
이노야가 하인에게 말하자 하인이 네 하고는 알아보러 갔다.
“탕약도 아주 훌륭했지만 상을 받을 사람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귀신 가면으로 공자를 놀라게 한 그 계집이죠.”
료 의원이 말했다.
“그 탕약만 마시게 했다면 별다른 효과가 없었을 텐데 그 추가 처방을 한 덕에 병이 나은 겁니다.”
거기까지 말한 료 의원은 다시 한번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신묘하군요, 신묘해요. 왜 그 방법을 진작 생각 못 했나 모르겠습니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정신이 한 곳으로 모아지니 놀라게 해서 정신을 흩트려야죠. 역발상이로군요. 신묘합니다, 신묘해요.”
이노야는 이제 료 의원이 신의(神醫)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신이 들린 건지 제정신이 아니야.
정사낭이 인삼을 넣은 닭죽을 천천히 먹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야 대부인은 마음을 놓았다.
“어머니께 근심을 끼쳤습니다.”
정사낭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허약한 상태였지만 한결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대부인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다음 여종들이 정사낭을 부축해 눕히고 쉬게 해 주는 모습을 본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사낭을 상사병에 걸리게 한 그 여인은 대체 누구인지 너무나도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걸 물을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일단 다른 일부터 해결하도록 하자.
대방 안채의 대청. 춘란은 벌써 반나절을 꿇어앉아 있었다.
“말해라.”
대부인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소인은 넷째 공자께서 귀신에 들린 줄로 알고 연못에 가 기도를 올렸지만 공자께선 전혀 차도가 없으셨어요. 그러던 중 시골 아주머니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죠. 귀신은 악한 사람을 무서워하니 귀신을 놀라게 하면 된다고……·.”
춘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흐느껴 울며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옆에 있던 어린 몸종과 나이 많은 여종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정말 길운이 제대로 터졌네. 그 의원이 말했잖아. 넷째 공자가 쾌차한 건 전부 이 계집이 넷째 공자를 놀라게 한 덕분이라고. 따지고 보면 넷째 공자의 목숨을 구한 일등 공신이니 이제 몸종 따위나 할 몸이 아니겠어.
“네겐 죄가 없다.”
대부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공을 세웠지.”
납작 엎드린 춘란은 흐느껴 울었지만 울음소리 속에 묻어나는 기쁨까지 감춰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공은 너 혼자 세운 것이 아닐 게야.”
대부인은 춘란을 보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닥에 엎드린 춘란은 몸이 살짝 굳어지면서 심장이 마구 쿵쾅대기 시작했다.
“부인.”
춘란은 차분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소인이 공을 바랄 순 없어요. 소인은 죄를 지었죠.”
“그럼 공을 세웠으니 죄는 묻지 않기로 하마. 어서 말해라, 그 방법을 알려 준 게 누구지?”
대부인의 말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멈칫했다. 춘란의 안색은 더욱 하얗게 질렸다.
“부인?”
춘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춘란, 사실 사낭이 좋아질지 안 좋아질지는 너도 확신이 없었던 거지?”
대부인은 춘란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 생각엔 그렇구나. 혹여 사낭이 정말 잘못됐다면 넌 실수로 그 가면을 떨어뜨려 사낭이 놀란 거라고 할 생각이었어, 그렇지?”
춘란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흐느꼈다.
“부인, 부인, 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요.”
“우선 눈물을 거둬라.”
대부인이 돌연 소리쳤다.
“추규!”
대청 밖에 시립해 있던 몸종 추규가 얼른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네가 당시 넷째 공자를 놀라게 했다면 넌 어찌했겠느냐?”
대부인이 물었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소인 때문에 공자께서 놀라셨네요.”
추규는 당황하면서도 자신이 정말 그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떨리는 목소리로 얼른 잘못을 빌었다.
“춘란,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너는 어떻게 했지?”
대부인의 물음에 여종들과 몸종들의 시선이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춘란에게로 모아졌다.
“노야께 들으니 그때 넌 그저 무릎을 꿇은 채 울기만 할 뿐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 같은 건 안 했다더구나. 그런 가면을 왜 사낭 앞으로 가져온 건지 해명조차 없었다고 했어.”
대부인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다가 뭐라 말할지 결정하자는 심산이었겠지.”
춘란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 채 감히 대부인을 쳐다보지 못했다.
“말해. 누가 그리하라고 알려 준 것이냐!”
대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호통 소리에 모두가 움찔했다. 춘란은 흐느껴 울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정교랑이 지내는 거처의 문이 열리더니 반근이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아씨, 아씨의 말씀이 또 맞았어요! 노야와 부인은 역시 안 속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