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60)

-은혜-

아침 해가 막 떠오를 무렵, 거리를 오가던 행인들은 장씨 저택의 장례가 하루아침에 끝나 버린 모습을 목격했다. 종종걸음으로 저택을 드나들거나 걸음을 멈추고 조문하는 이도 없었다.

“삼일장이야, 오일장이야?”

“벌써 매장했나? 이렇게 빨리? 이제 겨우 사흘 됐는데?”

행인들은 의론이 분분했다.

바깥이 떠들썩한 데 반해 장씨 집안 내부는 몹시 조용했다. 노부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들은 한쪽 옆에 서 있는데, 약간 멍한 표정으로 보였다.

문득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여종 둘이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허둥대는 표정이었다.

“마님, 아씨와 사돈댁 분들이 전부 오셨습니다.”

장씨 집안 큰아들 대노야의 얼굴이 곧 창백해졌다.

“어머니!”

장씨 집안 대노야가 소리쳤다.

노부인은 무거운 표정이었다. 며느리가 정말 죽었다면 한씨 집안에서 가만있지 않을 테고, 며느리가 죽지 않았더라도 자초지종을 알면 한씨 집안에서 가만있지 않을 터였다.

이것 참! 노부인이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다. 가문의 불행이로고!

총총 발걸음소리가 들리더니 한씨 일가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종들은 한 몸종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는 아씨의 모습이 보이자 어리둥절했다. 관 속에 누워 있던 사람이 살아나다니!

노부인은 미동도 않은 채로 있고, 장씨 집안 대노야는 한씨 일가 사람들, 특히 큰처남 대소야를 보고 저도 모르게 겁을 내며 어머니 뒤로 숨었다.

“어머님.”

한운랑이 들어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더니 흐느끼며 말했다.

“이 며느리가 잘못했어요.”

그 말에 장씨 모자는 흠칫 놀랐다.

“며느리가 어머님께 대든 것도 모자라 홧김에 죽으려 했으니,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한운랑이 울며 말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다!

장씨 모자는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한운랑이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나서야 장씨 모자는 마음을 놓았다.

한씨 집안에선 이미 상의를 끝낸 모양인지 표정이 안 좋긴 했지만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한씨 집안 대소야는 여전히 떨떠름해하며 누이를 몇 마디 꾸짖었다.

한씨 집안에서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자 노부인은 자연스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눈시울이 촉촉해져 며느리를 붙잡고 부부 사이의 일에 끼어든 게 잘못이었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렇게 두 고부는 서로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어쨌든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이 아닌가. 양쪽 모두에게 퇴로가 열린 셈이니 모두가 안도했다.

* * *

다시 침상에 앉은 한운랑은 인삼탕을 몇 모금 마시고는 손수건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

“고모, 정말 병이 났던 거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안에 있던 조카 몇 명 중 하나가 물었다. 한운랑은 입을 닦은 후 고개를 숙이고는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한운랑이 깨어나면서 노부인의 거짓말은 자연스레 들통이 났지만 따지고 보면 장씨 집안에 죄가 없긴 했다. 어쨌든 한 가족이니 집안의 추문이 소문나 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몇을 제외하고는 병이라고 둘러댄 터였다.

“그 신의가 아니었다면, 정말 죽을 뻔했지 뭐야.”

한운랑이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뛰어난 의원은 처음 본다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씨.”

문 밖에서 여종 하나가 들어왔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정 낭자의 집엔 이미 아무도 없어요.”

치료비는 노부인이 줬다지만, 전후 사정을 들은 한운랑은 사의를 표하고자 사람을 보내면서 집으로 초대해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하고자 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고? 한운랑은 몹시 놀랐다.

“떠났습니다.”

여종이 대답했다.

“잘 있다가 갑자기 떠나다니?”

한운랑이 물었지만, 여종 역시 이유를 몰랐다.

“정 낭자요?”

조카 하나가 갑자기 끼어들어 물었다.

“이웃에 사는 그분 말이죠?”

모두가 그 조카를 바라봤다.

“그래, 바로 그분이다.”

한운랑이 그 젊은이를 보며 대답했다.

“원조, 그분을 아니?”

한원조가 웃었다.

“그럼 제가 어제 고모의 은혜를 갚은 거네요.”

한원조가 어제의 일을 말하자, 한운랑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렇다면 정 낭자는 화를 피해 떠난 거구나.”

한운랑이 손에 든 손수건을 움켜쥐며 말했다. 눈 속에 분노가 서렸다.

“가서 아랑을 모셔 오너라.”

* * *

정 낭자가 떠났다는 소식은 금세 퍼졌다.

“밤새 떠났단 말이냐?”

청포를 입은 조씨 집안 남자가 분노로 소리쳤다. 하룻밤 방심한 사이에 떠나 버리다니!

밖에서 누군가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나리, 못 찾았습니다. 어젯밤에 성을 나간 마차는 총 5대인데, 방향이 전부 달랐습니다.”

뛰어 들어온 자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청포를 입은 남자는 더욱 격노하여 탁자에 있던 찻잔을 들어 내던지며 매서운 목소리로 호통쳤다.

“아주 당당하게도 말하는구나!”

입장을 바꿔 누구라도, 신의의 명성을 이제 막 쌓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정 낭자는 훌쩍 떠나 버리지 않았는가.

“쥐새끼 같은 놈들, 겁만 많아 가지고. 그 훌륭한 방술이 아깝구나!”

청포를 입은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한편 하인들을 다그쳤다.

“가서 찾아라. 겨우 다섯 대가 아니냐, 쫓아가서 찾아!”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누가 또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이번엔 아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관부에서 사람을 보내 우리 약포를 폐쇄했어요!”

청포를 입은 남자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어째서?”

“모르겠습니다. 아무 말 없이 다짜고짜 폐쇄했어요!”

아들이 소리쳤다.

망할 관리 놈들이 갑자기 점포를 폐쇄했다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노여움을 산 것이다.

청포를 입은 남자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현령을 움직여 자신의 약포를 폐쇄할 정도면, 죽음으로 내몰겠다는 뜻이다. 누구에게 밉보였을까? 왜 이렇게 갑작스레?

이틀 후, 장씨 집안의 아씨가 초상으로 액막이를 해 병을 고쳤다는 소문과 함께 정 낭자가 낸 방도였다는 소식이 퍼졌다. 청포를 입은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누구의 노여움을 살게 됐는지 알았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 * *

대주 건원 5년 5월, 동강현에서는 거리가 떠들썩해질 만한 사건이 두 건 일어났다. 하나는 장씨 집안의 부인이 죽었다가 소생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성 최대의 약포인 조가당이 저질 약재를 속여 판 일로 폐쇄된 일이었는데, 이 두 사건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아는 이는 얼마 없었다.

두 사건이 저자에서 가장 열띤 화젯거리로 떠오르면서, 불치병을 몇 번이나 고친 정 낭자에 대한 관심은 덮이고 말았다. 더구나 정 낭자가 떠난 후로는 정 낭자라는 사람 자체가 거의 잊혀졌다. 지나가는 신선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잊지 않았다.

“아씨.”

여종이 집문서 한 장을 공손히 들고 왔다.

“그 집을 사들였습니다.”

한운랑이 손을 뻗어 받았다.

“어차피 정 낭자의 집도 아니었는데 사례를 할 거면 다른 방법으로 하지, 아무 상관도 없는 집을 사들여 뭐 하려고 그러시오?”

장씨 집안 대노야가 옆에서 물었다.

“내 생명의 은인인데, 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요. 그 사람이 살았던 집이니 내가 사 놨다가, 나중에 돌아오면 주려고요.”

한운랑이 말했다. 장씨 집안 대노야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여인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니,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오.”

말을 마친 장씨 집안 대노야는 몸을 일으켜 옆으로 책을 보러 갔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생김새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밤에 왔다가 밤에 갔다. 이제 거리에서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면, 동강현에 그런 사람이 정말 오긴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운랑은 손에 든 집문서를 바라봤다. 집문서에는 한운랑의 이름이 쓰여 있지 않고 비어 있었다. 거기에 정 낭자의 이름을 채울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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