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60)

-의원을 모셔오다-

“사돈댁, 이러지 마시오!”

노부인은 지팡이를 짚고 문 밖에 선 채 아수라장이 된 빈소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부인의 뒤로는 간신히 침착한 척 마음을 다잡고 있는 부인들이 서 있었다.

이쯤 되자 남녀 간의 내외고 뭐고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노부인의 체면마저 구겨질 터였다.

“안사돈 어른, 여기가 어디라고 나오십니까?”

사돈댁 대소야가 소리쳤다.

“잘 나오셨습니다. 함께 관아로 가시죠!”

“사돈, 오해하셨소.”

노부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요?”

처남댁까지 나섰다. 방금 전까지 울고불고한 탓에 갈라진 목소리로 냉소하며 말했다.

“안사돈 어른, 사람이 죽었어요. 오해인지 아닌지는 안사돈이 결정할 일이 아니죠. 아드님의 첩실을 들이려 했을지, 새 부인을 들이려 했을지 누가 알아요?”

노부인의 안색이 변했다. 숨길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며느리가 관에 누워 있게 된 건 방에서 발을 헛디뎠기 때문이고, 발을 헛디딘 건 두 사람의 말다툼 때문이었다. 분을 못 이긴 며느리가 씩씩거리며 홱 나가려다가 일어난 불상사였는데, 며느리가 그토록 분노했던 건 노부인이 아들의 첩을 들이는 문제를 거론해서였다.

이게 왜 잘못이지? 아들은 집안의 장남인데, 혼인하고 지금껏 아들 하나 못 낳은 채 딸만 줄줄이 낳지 않았는가. 집안에 있는 여자 잘못이 아니야? 부인 된 도리로서 첩이라도 들여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집안의 대를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한 도리다. 잘못한 게 없다고! 단 하나 잘못이 있다면, 며느리가 노부인의 방에서 죽었다는 사실이다.

노부인은 손에 든 지팡이를 꽉 쥐었다.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운랑은 안 죽었소!”

노부인이 일갈했다.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멈칫했다. 우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어리둥절했고, 이어 하나둘 어리둥절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침 해는 아직 떠오르기 전이고, 마당에 있던 등롱은 빛을 잃어 푸른 새벽빛이 자욱한 때였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조차 누군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 노부인은 구름이나 안개 속에 있는 듯 보였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돈댁 대소야가 소리쳤다.

“운랑은 안 죽었다고 했소!”

입을 뗀 노부인의 말투엔 거침이 없었다.

거침없지 않으면 어쩔 텐가. 이제는 눈 딱 감고 밀어붙이는 수밖에.

이번엔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사돈댁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물론이고 이쪽 집안 식구들까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노부인께서 충격을 받아 실성하셨나?

처남들한테 맞아 흉측해진 몰골이 된 아들은 어머니부터 걱정했다. 기다시피 일어나 사돈댁 대소야의 멱살을 쥐며 소리쳤다.

“어머니께서 잘못되시면 다들 가만 안 둘 줄 알아!”

이제는 전세가 뒤바뀌었다. 일순간 마음속에 기쁨이 번졌다. 이젠 겁 안 내도 돼!

잠깐 서로를 응시하던 양측이 다시 싸우려는데, 노부인이 지팡이를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다들 그만! 내 말 못 들었소? 운랑은 안 죽었다니까! 병이 난 거라고! 지금 병을 치료하는 중이오!”

양측 모두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하녀들은 윗전의 부적절한 언사를 목격이라도 할세라 차를 올린 후 서둘러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람이 많으면 공연한 말도 많이 나오는 법. 다들 지체 있는 신분이다 보니 문을 닫고 해결하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이렇게 큰 판을 벌여 놓은 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요?”

사돈댁 대소야가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쭉 훑으며 물었다.

“그렇소. 나와 그 의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노부인이 단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밖에서 여종이 총총 발소리를 내며 들어오더니, 사돈 처남댁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나지막이 고했다.

사돈 처남댁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로 내던지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안사돈 어른. 우릴 바보로 아세요? 다 확인했어요. 숨도 안 쉬고 몸도 뻣뻣하게 굳었는데 무슨 병을 치료해요! 실성하셨어요?”

“정 낭자가 병이라고 했으면 병인 거요!”

노부인도 물러서지 않고 기세를 높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부인의 태도를 보아하니 실성한 게 아니라 사실인 듯싶었다. 사돈댁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정 낭자가 누구죠?”

누군가가 물었다.

정 부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순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대답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두 달 전쯤이었다. 오래도록 비어 있던 물가 근처 집에 세가 나갔다. 오밤중에 이사를 들어온 건지 이웃 중에는 누군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어린 몸종 하나가 물건을 사러 나왔다. 상냥하고 사근사근한 말투로 남방의 장강, 회화 지역 말씨를 쓰는 아이였다.

“의원입니까?”

사돈댁 대소야가 물었다. 문가에 서서 대기하고 있던 여종이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잘 몰랐는데 얼마 전에 동쪽 거리 벙어리네 집 어린 아들이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늘어놓았거든요. 여도사 유 씨도 보더니 가망이 없다고만 했어요. 벙어리네 집에선 대성통곡을 하며 죽느니 사느니 했죠. 그때 그 정 낭자의 몸종이 마침 길을 지나다가 그 꼴을 보고는 자기네 아씨한테 가면 치료할 수 있다는 거예요. 벙어리네 식구는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냅다 아이를 안고 달려갔죠. 오전에 애를 보냈는데 오후가 되니까 의식을 되찾았어요. 밥을 거하게 한 끼 먹더니, 이튿날엔 멀쩡하게 침상에서 내려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지 뭐예요.”

문가에 서 있던 이들은 허드렛일 하는 여종이었다. 이들은 이러쿵저러쿵 말 옮기기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이웃에서 일어난 신기한 일은 가장 좋아하는 화젯거리였다. 신이 나서 저도 모르게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떠들어댔다.

여종들은 노부인이 무거운 헛기침을 한 뒤에야 퍼뜩 정신을 차려 어느 안전인지 깨닫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정식으로 의원을 하는 여인이 어디 있누. 대충 민간요법을 쓴 게 운 좋게 들어맞았던 게지.

사돈댁 대소야는 논할 가치도 없다는 눈치였다.

“글쎄, 아니라니까요.”

정통한 소식통임을 자부하는 여종은 체면이라도 깎인 양 대범하게도 손까지 내저으며 끼어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 후엔 동쪽 시장 백정의 노모가 식탐을 부려 복숭아를 많이 먹었다가 설사병이 나서 거의 사경을 헤맸거든요. 근데 정 낭자네 몸종이 고기를 사러 왔다가 그 말을 듣고는 또 자기네 아씨한테 데려갔어요. 오후에 실려 갔는데 저녁때 멀쩡하게 나오더니 이튿날엔 지팡이를 짚고 손주까지 보더라니까요.”

사돈댁 대소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문가에 있는 여종들은 서로 앞다투어 말을 빼앗으며 자랑을 늘어놓다가, 사돈댁 대소야가 인상을 쓰자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후로 정 낭자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진료를 받으러 몰려왔죠. 그런데 그 댁 몸종이 한다는 말이, 자기네는 문을 안 닫으니까 누구든 진료를 받을 거면 그냥 들어오면 된대요.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데, 불치병이 아니면 안 고친대요.”

그 말이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종이 잠시 숨을 돌렸다.

“불치병이 아니면 안 고친다는 게 무슨 말이지?”

사돈댁 쪽에 있던 한 부인이 못 참고 물었다.

이제 화두는 정 낭자였다. 여종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 안에 있는 사람이나 문 밖에 있는 사람이나 똑같아 보였다.

“그 말인즉, 머리 아프고 열나고 기침하는 것처럼 생명에 지장이 없는 병은 안 고치니까 다른 의원을 찾아가란 거죠. 다른 의원한테서 못 고치는 병이니까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판명을 받은 사람만 고친대요.”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별 오만방자한 말이 다 있네.”

부인들이 쑥덕거렸다.

“그건 오만이 아니에요.”

또다시 여종이 나섰다.

“정 낭자 말로는 자신은 아녀자라 의술을 행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데, 생로병사의 고통에 시달리는 중생을 보기 딱해 어쩔 수 없이 나서는 거래요.”

그 말에 몇몇 부인은 자비롭다며 염불을 외기도 했다. 하지만 자비롭다고 느끼는 건 여인들뿐이었고, 사돈댁 대소야나 이 집 아들은 입을 삐죽거렸다.

의술을 행하는 게 적절치 않긴. 체면을 차리려고 하는 말이지.

“그간 정 낭자를 찾아간 사람들은 전부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었는데, 다 나았어요.”

여종이 말을 마무리 지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을 주고받았다.

세상엔 기이한 사람도, 이상한 일도 많은 법. 황당하고 터무니없긴 하지만 전부 부정할 수는 없지.

“그럼 내 누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말이 사실이면 빨리 치료하지 않고, 이게 무슨 짓이죠?”

사돈댁 대소야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액막이를 하고 있소.”

노부인은 눈 하나 까딱 안 하고 말하다가, 사돈댁 대소야의 눈썹이 꿈틀대는 걸 보고는 얼른 한마디 덧붙였다.

“정 낭자가 한 말이오. 이건 더없이 진지한 일이라오. 그래야 효과가 있댔소.”

“대체 무당이랍니까, 의원이랍니까? 무슨 액막이를 해요!”

사돈댁 대소야의 얼굴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액막이라니, 하마터면 부모님 초상까지 치를 뻔했는데! 이런 액막이가 어디 있어?

“난 의원이 아니오, 난 모른다고.”

노부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내 며느리의 목숨을 구하고 싶을 뿐이오. 장례뿐 아니라 나도 따라서 관 속에 들어가 누워 있으라 해도 기꺼이 그럴 거요.”

노부인의 단정하고 엄숙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사돈댁 여인들은 송구한 마음까지 들었다. 며느리를 위해 그런 일까지 할 수 있는 시어머니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나.

사돈댁 대소야가 마른기침을 했다.

“말씀만 번드르르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냉소를 지으며 말하긴 했지만, 막 도착했을 때처럼 화를 억누르지 못해 집이라도 부술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노부인에게로 눈길이 모아졌다.

하긴, 말만 번지르르한들 무슨 소용이야. 중요한 건…….

“정 낭자를 왜 아직도 안 모셔온 것이냐?”

노부인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호통을 쳤다.

“날이 밝지 않았느냐!”

문 밖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이의 유모가 뛰어 들어왔다.

“정 낭자가 온 것이냐?”

노부인이 못 참고 일어나서 물었다.

정 낭자는 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문 밖에는 옅은 안개가 걷히고 새벽빛이 밝아지고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그 댁 몸종 말로는 아씨께서 몸이 안 좋아 출타하기 힘드니 병자를 그리로 데려오랍니다.”

유모가 떠듬떠듬 말했다. 그때까지 문가에 서 있던 여종은 그 말에 윗전의 명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떠들어댔다.

“맞습니다, 맞아요. 정 낭자는 바깥출입을 절대 안 해요. 늘 병자를 데려오라고 하죠. 게다가 가족 한 사람만 빼곤 못 들어오게 하고요.”

“어서 데려가게.”

노부인이 급히 말했다. 노부인이 바라던 바였다. 차라리 그리로 데려가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사돈 식구한테 책잡힐 일이 줄어들지 않겠는가.

하인들이 대답하며 자리를 떴다.

“잠깐!”

사돈댁 대소야가 일어서더니, 유모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그 정 낭자라는 자가 몸이 안 좋다고?”

유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 몸종에게 들은 말이었다.

“자기 병도 못 고치는 자가 무슨 불치병을 고쳐!”

사돈댁 대소야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씨께서 편찮으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죠? 그리고 의원이 제 병 못 고친다는 말도 몰라요?”

문 안에 선 몸종이 문가에 있는 서슬 퍼런 사내를 보며 따져 물었다. 위축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병 고쳐 달라고 부탁하는 건 댁들이지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뭐 빚진 거라도 있어요? 고치기 싫음 말든가!”

몸종은 콧방귀를 뀌며 문밖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문에서 비켜서요. 남의 집 문 막지 말고!”

지금껏 부친 말고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꾸중을 들어 본 일이 없는 사돈댁 대소야는 기가 차서 눈을 부라렸다.

“사돈댁, 그만 고집부리시오. 운랑의 치료가 지체되면, 그게 누구 잘못이겠소?”

노부인이 옆에서 말했다. 사돈댁 대소야는 더욱 말문이 막혔다.

누구 잘못이냐고? 그럼 누이가 이렇게 된 게 사돈댁 대소야 잘못이란 말인가?

“나도 같이 들어가야겠습니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건 안 되지. 진랑을 들여보내는 게 나을 것 같소.”

노부인이 말했다.

뒤에 있던 아들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검은 천으로 덮은 관을 들고 있는 네 사내를 재촉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안 됩니다. 두 분은 누이와 한 핏줄이 아니잖습니까. 내 누이이니 내가 같이 들어가는 게 맞죠.”

사돈댁 대소야가 냉소하며 말했다. 저쪽에 있던 정 낭자의 몸종이 몸을 돌려 먼저 들어가며 말했다.

“딱 한 사람만 같이 들어갈 수 있어요. 환자를 본채로 옮긴 후 모두 물러나세요.”

* * *

분명 여름인데도 마당에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엄습했다. 나막신을 신은 사돈댁 대소야는 자갈 깔린 길 위의 이끼에 미끄러지기라도 할세라 조심조심 걸었다.

관이 안채로 들어가자 몸종이 얼른 사람들을 내쫓고는 안으로 들어서려는 사돈댁 대소야 앞을 막아섰다.

“밖에서 기다리세요. 저희 아씨께서 치료하실 땐 아무도 보면 안 돼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돈댁 대소야가 눈을 부라렸다.

대소야는 눈만 부라렸는데 몸종은 손을 양 허리에 대고 고개까지 쳐들며 눈을 부라리더니, 안으로 들어가서는 쾅 문을 닫아 버렸다.

명색이 군자란 사람이 무턱대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여인의 거처가 아닌가.

방 안에서는 부스럭부스럭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상이 아니야, 무당인지 의원인지.

사돈댁 대소야는 뒷짐을 진 채 마당 안을 서성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노부인 일행도 문 밖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하신 게 참입니까?”

아들이 나지막이 물었다.

노부인은 코로 한숨을 내쉬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마님.”

유모가 안절부절못하며 바짝 다가오더니 부채를 펼치고 소리 죽여 물었다.

“이게 잘 될까요? 실패하는 날엔…….”

“실패라니?”

노부인은 작은 나무문을 쳐다봤다. 문 안에는 시선을 가리는 가림벽이 세워져 있어서 내부의 정경이 보이지 않았다. 노부인은 지팡이를 움켜쥐고 잇새로 말을 내뱉었다.

“실패하면 저 돌팔이를 살인죄로 발고해야지!”

외지 출신에 주인과 몸종 딱 둘이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저들이 뭘 어찌하겠는가. 누굴 탓할 필요도 없다. 튀는 행동을 했으니 화를 입는 게지.

사돈댁 대소야가 마당 안을 두 바퀴쯤 돌았을 때, 문이 열렸다.

“사람을 불러 모셔 가세요.”

몸종이 나오며 말했다.

“어떠하냐?”

사돈댁 대소야가 다급하게 물으며 방 안을 살폈다. 관은 그대로 안채 한가운데 놓여 있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 안에 정말 정 낭자가 있긴 한 건가? 처음부터 저 몸종 혼자 꾸민 짓 아냐?

그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방 안에서 나막신을 끄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병풍 뒤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여인의 모습이었다. 품이 큰 옷을 입은 관계로 체형이나 나이가 바로 분간되지는 않았다. 여인은 잠시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몸종이 그의 시선을 가렸다.

“이봐요, 사람을 부르라고요.”

몸종이 툴툴거렸다. 자기 윗전을 엿본 일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사돈댁 대소야가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치료는 끝났느냐?”

“기본적인 치료는 끝났는데, 보조 약재가 필요해요.”

몸종이 대답했다.

우악스러운 여인 넷이 아씨를 침상 위로 옮겨 놓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부인과 사돈댁 사내들이 침상에 있는 여인을 에워싸고 바라봤다. 수의를 입은 여인은 새끼줄에 손과 발을 묶인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어서 관 속에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옷을…… 갈아입힐까요?”

누군가 못 참고 물었다.

갈아입히긴. 그러다 안 살아나면 염을 또 해야 하는데!

노부인은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려 사돈댁 대소야를 보며 물었다.

“보조 약재라고 했소?”

“운랑이 자주 쓰던 화장 거울이랍니다.”

사돈댁 대소야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노부인으로서는 보조 약재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죽은 사람을 치료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었는데, 더 놀랄 일이 뭐 있겠는가.

한 여종이 즉시 운랑이 애용하던 거울을 가져왔다. 둥근 달 모양에 연꽃 문양을 조각하고 테두리에 점취 공예(点翠工艺, 물총새의 깃털로 만드는 공예)를 한 구리거울이었다.

“가슴 위에 대고 누르랍니다.”

사돈댁 대소야가 말했다. 초조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말투였다. 두 여종이 서둘러 구리거울을 여인의 가슴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거울 면을 아래로 가게 해라.”

사돈댁 대소야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한마디를 보탰다. 두 여종이 얼른 방향을 바꿔 거울 면이 아래를 향하게 하여 부인의 가슴 위에 눌러 놓고는 얼른 물러났다. 죽은 사람을 지키고 있노라니 온몸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그다음은요?”

누군가 못 참고 물었다.

“기다려라.”

사돈댁 대소야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집 안이 또다시 고요해졌다. 거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의 시선이 침상 위에 있는 여인의 몸으로 집중됐다.

일각쯤 지났을까.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더는 못 참겠는지 단체로 숨을 토해냈다. 침상 위의 여인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누워 있었다.

“숨이 붙어 있는지 살펴봐라.”

사돈댁 대소야가 말했다. 여종 하나가 잠시 망설이다가 두려움에 떨며 침상 옆으로 쭈뼛쭈뼛 다가가서는 떨리는 손을 조심스레 뻗어 부인의 코 밑에 가져다 댔다.

“없는데요…….”

여종이 손을 거두고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의 안색이 바뀌었다.

“안사돈 어른! 이제 됐습니까?”

사돈댁 대소야가 소리쳤다. 쌓아왔던 분노가 폭발한 듯 찻잔을 들어 바닥으로 내팽개치려 할 때였다.

여인이 숨을 내쉬는 목소리가 들렸다. 숨소리는 무겁고도 길었으며, 오랫동안 막혀 있던 숨을 토해내는 듯했다.

“아이고, 답답해 죽을 뻔했네! 이게 뭐야, 얼른 치워! 눌려서 숨도 못 쉬겠다!”

여인이 숨을 토해낸 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침상 근처에 서 있던 여종은 숨을 내쉬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러다가 급기야 말소리까지 들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왔다.

“시신이 움직여요!”

* * *

정 낭자의 몸종이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실로 짠 신발로 나무판을 밟은 탓에 소리가 크게 울리지는 않았다.

“아씨, 정말 깨어났대요.”

몸종이 놀람과 기쁨을 숨길 수 없는 말투로 소리쳤다.

동시에 몸종은 병풍 쪽을 쳐다봤다. 작은 탁자에 몸을 기댄 채 병풍을 넋 놓고 바라보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인의 표정을 본 순간, 몸종의 얼굴에 있던 기쁨이 순식간에 걷혔다.

여인은 사실상 소녀였다. 열네다섯 쯤 된 나이에 어두운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먹색의 커다란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옷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 볼수록 왜소해 보였다. 흰 피부는 옥처럼 깨끗하고, 머리카락은 먹처럼 새까매서 얼핏 봐도 눈부신 미모였다.

다만 검은 눈동자가 지나치게 작고 흰자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게다가 멍하니 병풍을 보고 있는 탓에 영혼이 없는 헝겊 인형처럼 보였다.

“아씨!”

몸종은 얼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덮고 있는 여인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흐느껴 울었다.

“아씨, 정신 차리세요. 아씨, 절 놀라게 하지 마세요!”

그 울음소리와 함께 소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흐리멍덩한 눈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난…… 누구지?”

소녀가 조용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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