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6)

15. 진짜로 내가 본 이야기

아, 그날 어땠냐고? 뭘 물어. 기절할 뻔했지.

나는 정말이지, 그 성에서 시종으로 일하면서 그런 피바다는 처음 봤어. 왕이 젊은 시절에는 아주 잔인하기로 소문났었잖아. 알고 있기는 했는데, 암만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침실에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건……. 우리 시종들은 볼 일이 거의 없었거든.

말해 뭣 해. 그 왕 놈, 젊은 시절에 가면을 쓰셨잖아. 그놈의 저주가 얼마나 살벌한지 주변에 시종보다 기사가 더 많았다고. 얼마나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구는지 매일매일 시종이 죽어 나갔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라니까?

아, 맞아. 그래. 왕의 침실이 어떠냐는 이야기였지. 일단 엄청 커. 진짜 크다고. 들어가자마자 황금 장식이 어마어마해. 그런데 그날은 정말 그 장식이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피가 튀어 있었지. 지금 왕비님이 그때는 왕비가 아니셨거든. 애를 낳아야 왕비로 만들어 준다 하셔서, 그냥……. 이히히히. 그렇지. 야, 암만해도 왕이 좋긴 좋아. 그지? 남의 나라 공주 데려와서……. 어, 인마. 이 뜻을 몰라? 이렇게 손가락을 구멍 안에 넣는 모양이 뭔지 진짜 몰라? 됐다, 인마.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아, 그래. 아무튼. 그때 왕비님의 친정 시녀가 우리 대신 들어가 본다고 했는데 한 번은 말릴 걸 그랬어. 그 여자 죽어 있었거든. 얼마나 끔찍하게 죽었는지 들어가니까 피바다인데, 왕비님이 시녀 시체를 덮어 놓은 이불이 새빨갰어. 왕비님 치마도 다 젖어 있었다니까.

왕비님이 바들바들 떨면서 피범벅으로 우는데 우와, 이거 진짜 뭐 됐다 싶더라고. 손도 발도 다 피투성이가 돼서는, 으. 내가 카펫을 밟았는데 그 카펫에서도 피가 올라오지 뭐야. 그때 신은 가죽신은 내다 버렸어.

그 와중에 왕 놈은 뭐 하고 있었는지 알아? 맞춰 봐. 아냐. 그 왕 놈 그렇게 섬세한 새끼가 아니라니까. 야. 내 참. 내 말 듣고 황당해하지 마라. 거울 보면서 면도를 하고 있더라. 면도를! 시녀가 얼굴을 할퀴었다나? 그 와중에 면도는 어찌나 엉망으로 해 놨는지 금색 수염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피바다 위에 서서 거울 보면서 수염 깎는데 저 새끼 진짜 제정신 아니다 싶은 거야. 와, 내가 오늘 나가면 진짜 시종 그만둔다고 꼭 말한다 싶었지. 그 전에 살아 나갈 순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야.

왕이 그러더라고. 자루 가져와서 시체 담으라고. 개 먹이로 준다대. 진짜 왕비님은 성녀라고 불러야 돼. 이불 위에 엎어져서 울다가, 친정 시녀 시체는 자기가 태우게 해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더라고. 세상 어느 공주가 시종들 앞에서 그렇게 비굴하게 비냐고. 그런데 그 새끼는 왕비를 발로 걷어차려고 그러더라. 아, 그때는 왕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러더니 한술 더 뜨더라. 웃으면서 그러는 거야. ‘그래, 너 그것이랑 붙어먹었지. 그렇군. 네 손으로 직접 그 팔다리를 썰어 개 먹이로 주는 꼴을 봐야겠다.’ 아니, 미친 새끼 아니야? 아, 그래. 그때 왕비가 자기 시녀랑 붙어먹는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 근데 해괴한 걸로 따지면 지가 더 해괴하더구만. 나는 여자를 그렇게 죽도록 패는 새끼 처음 봤어. 왕비 얼굴에 멍도 들었고 다리도 절룩거리더라고.

근데 시키는데 어떻게 해. 내가 죽게 생겼는데. 결국 톱을 갖고 가긴 했지. 뭐? 그 말을 들었냐고? 야 너 피바다 못 봤구나? 그나마 잘 드는 걸로 가져가서 왕비님한테 몰래 잘 드는 거 가져왔다고 말씀은 드렸다. 왕비님이 울면서 고개도 끄덕거리시더라. 얼마나 안타까운지…….

밤새도록 그 방에서 왕비님 우는 소리가 들려서 심란해 죽는 줄 알았어. 안에서 그 비리비리한 여자가 자기 친정 시녀 시체 썰고 있는 거 아냐. 나중에는 목이 쉬어서 울지도 못하고 중얼중얼하는 소리만 조금씩 들리는데 아, 동네 미친 여자가 저런 일 때문에 생기는구나 싶더라니까.

해 뜨는데 시체 운반해 봤냐? 진짜 이게 사는 건가 싶다. 여자가 눈이 퉁퉁 부어서 시체 자루를 세 갠가 네 갠가 쌓아 놓고 앉아 있는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잖아.

왕 새끼는 뭐 하고 있었을 거 같냐? 그 새끼 침대에서 코 골고 자더라. 코 고는 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자루 떠메니까 겨우겨우 일어나서 하품하면서 나오는 거야. 아니, 왕이면 자빠져 자면 되잖아. 왜 따라오냐고.

사실 그날 되기 며칠 전에 왕 첩이 하나 더 죽었거든. 그때도 왕이 첩 시체는 개 먹이로 주라고 그랬었어. 아, 그 첩은 자살했어. 기둥서방 몰래 숨겨 놨다가, 그 기둥서방이 왕 비위 거슬러서 죽었거든. 아무튼 그때 왕비님이 몰래 우리한테 금화 찔러 주면서 왕 첩이라도 개한테 시체를 먹히는 건 불쌍하니까 시체는 따로 묻어 주고 개들한테는 소고기 주라고 했었는데. 정작 자기 시녀가 개한테 먹힐 줄은 몰랐지. 왕이 따라오지만 않았어도 내가 어찌어찌 빼돌려 보려고 했는데.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진짜거든? 나도 인정머리는 있는 남자거든?

암튼 왕이 지는 개가 시체 먹는 걸 꼭 봐야겠대. 혹시 첩 시체 빼돌린 거 눈치 깠나 싶어서 속이 다 서늘한 게 무서워서 죽겠더라. 자루 떠메고 가는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야. 복도에 피 고이는 꼴 보고 시녀들이 기함하고, 우리는 옷 다 버리고. 왕비는 피 칠갑을 해서는 소리도 못 내고 따라오고.

그런 경험은 진짜 다시는 못할걸. 암만해도 성 아침이 되게 분주하거든. 그때가 또 여름이었어요. 해 쨍쨍 비치는데 엄청 바쁜 사람들 사이로 우리가 시체 떠메고 간다고 생각해 봐. 피 냄새 풍기면서. 다들 앞서가는 왕 보고 황급히 숙여 엎드렸다가, 자루에 든 핏물이 옷에 배고 있는 나랑 다른 시종들 보고는 진짜 불쌍하다는 눈으로 본다? 그리고 왕비 보고는 기함해서 입을 벌리는 거야.

근데, 왕비 그때 좀 미친 사람 같긴 했나 봐. 나중에 세탁부 하녀가 말해 준 건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가 왕비님 쪽을 몰래 올려다봤는데 입꼬리가 올라가 있더래. 히죽히죽 웃고 있더라는 거지. 왕 모르게. 와, 사람이 그렇게 실성하는구나 싶은 거야. 근데 또 생각해 보면 그 왕비님이 그렇게 얻어맞고 시녀도 죽었는데 미치지 않는 게 신기하지.

와, 개 새끼들은 진짜. 소고기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피 냄새 나니까 거품 물고 덤비더라. 자루 내려놓고 이걸 풀어 말어 고민하는데 왕이 왕비 등을 미는 거야. 네 손으로 직접 주라나? 이거 진짜 단단히 미친 새끼다 싶어서 뒤로 물러났지. 왕비가 얼굴 딱 싸늘해져서 왕 쳐다보는데 저러다 왕 찌르는 거 아닌가 싶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하는데, 왕이 우리 쫓아내더라고.

핏물 묻은 옷 보니까 한숨이 다 나와서 개 우리 넣어 놓는 헛간 밖으로 나와서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데, 뒤에서 아드득아드득 소리 들리더라. 사람 뼈 씹는 소리가 그렇게 끔찍한지 처음 알았어. 그날 그 시체 다 먹일 때까지 왕도 그렇고 왕비도 그 개 우리에서 안 나왔대. 독한 새끼들. 내가 개 새끼였어도 혀를 내둘렀겠다.

근데 이상하지. 그때부터 왕이 좀 변하긴 변한 거야. 그러고 한 사흘 있다가 기사들이 돌아왔거든. 성문 들어설 때부터 풀이 죽은 꼴이, 딱 그 결투 대회에서 깽판 친 새끼 못 찾은 거지. 저 사람들도 뒤졌네 싶고. 나는 그때 홀에 있었는데 기사들 스무 명이 무릎 꿇고 “죽여 주십시오!” 하는데 설마 저 사람들 다 죽일까 싶었어. 그런데 다른 시종 말 들어 보니까 실제로 죽인 적 많다대.

기사단장이 투구 벗어서 옆구리에 끼어 든 다음에 자기 칼을 내놓더라고. 죽여 달라고. 근데 그날따라 왕이 진짜 이상하긴 했어. 왕좌에 제대로 앉아 있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똑바로 앉아 있는 거야. 그러더니 기사단장을 한참 쳐다봐. 원래라면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을 건데. 기사들도 좀 술렁술렁 하더라고. 또 그렇다고 쳐다보면 정말 죽을 거 같으니까 다들 무릎만 꿇고 있지.

그러고 한참 있다가, 왕이 그러는 거야.

노고가 컸다고. 돌아가 쉬래.

기사단장이 놀래서 눈이 아주, 화등잔만 해지더라니까. 원래 왕을 쳐다보면 안 되는데, 얼마나 놀랬는지 고개를 들어서 왕을 똑바로 쳐다보는 거야. 아주 똑바로. 그때 왕 그렇게 쳐다보면 파면에 사형이었거든? 근데 기사단장도 뭐에 홀렸는지 엄청 한참을 쳐다보더라. 기사들도 점점 앞을 흘긋거렸어.

좀 분위기가 이상하긴 이상해서 우리도 조금씩 왕을 쳐다보게 되더라고. 뭐지? 왕이 자비를 베푼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다음 드는 생각이 뭔지 아냐. 왕이? 자비를 베풀어? 완전 안 어울리는데? 우리 왕하고 자비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하냐. 아, 지금이야 사람 됐지만 왕이 가면 썼을 시절에는 진짜 개차반이었다고. 너는 멀리 가 있어서 몰랐지.

암튼 기사단장이 얼른 감읍하고 절하고 내빼야 되는데 안 그러고 왕을 뚫어져라 쳐다보니까 분위기가 너무 이상한 거야. 아, 저러다 저 양반도 죽는 거 아니야? 하는데 기사단장이 겨우 그러더라고. 폐하의 자비에 큰 감사를 드린다고. 그러고 바닥에 이마를 대는데, 얼마나 한심한지 왕이 한숨을 쉬더라. 기사들도 눈치는 빨라 가지고 질질 끌면 죽을까 봐 곧장 자비에 감사드린다고 막 절했어.

나 그러고 이틀 후에 잘렸다. 시발.

나만 잘린 거 아냐. 그때 왕성에서 일하던 시종 시녀 하인 하녀 다 잘렸어. 그 기사랑 누가 내통했는지 모른다나? 웃기는 게, 근데 기사들은 놔뒀어. 기사들은 내통 안 하나? 나 참.

응? 아, 그렇지. 돈 받긴 했지. 은화 열 닢 받았다. 야, 우리 엄마한텐 다섯 닢이라 그랬으니까 조심해라. 다섯 닢만 주고 반은 그때 장사했잖아. 암튼 좀 놀랐어. 그 왕이 우리한테 돈을 준다고? 사실 잘린 시종들끼리는 밀고하면 돈 더 주는 거 아니냐고 막 그랬어. 왕 침실에 제일 많이 들어가 본 새끼가 하나 있었는데, 그 왕은 그래도 안 이상하다고.

하지만 밀고할 게 있어야 하지. 쥐뿔도 모르는데.

아, 근데 그런 얘기는 있었다. 그 친정 시녀가 남자였단 얘기가 있었어. 개들이 다 먹고 남은 찌꺼기 치우다가 누가 남자 손가락 같은 걸 발견했대. 솔직히 헛소문이지. 그 시녀 나는 봤잖아. 디온 사람치고는 좀 키가 크긴 했는데, 우리 나라 사람만큼은 안 커. 구부정하게 걸어서 그렇긴 한데…….

뭐 그 공주가 애인 시녀로 몰래 불러다 붙어먹었단 얘기도 있긴 했지. 근데 같이 쫓겨난 시녀애가 말한 거라 확실한 건 아냐. 걔 이름이 뭐였더라……. 암튼 걔는 그 공주랑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을 냈었거든. 근데 잘 안 됐지.

뭐? 그다음엔 어떻게 됐냐고? 몰라, 어떻게 알아. 잘렸는데. 난 돈 받았으니 술이나 먹었지. 성에서 하인들 구한다는데 기존에 일했던 하인들은 안 된다고 해서 그때 국경으로 가서 장사 시작했어. 쫄딱 망했지 뭐. 하하!

암튼 그러고 돌아와 보니 왕이 애를 낳았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 설마 그때 그 공주가 왕빈가 했는데 진짜 그 공주가 왕비님 됐더라. 야, 왕비님이 솔직히 왕 놈 사람 만들었다. 봐라. 그렇게 사람 처패고 목숨 소중한 줄 모르던 새끼가 어느 날 갑자기 왕비한테 쩔쩔매게 됐다며. 첫째 공주님 태어나고 나서는 더 그랬다대. 초상화? 나 아직 초상화 안 봤어. 왕 초상화가 있어? 어디? 나 참. 너네 주점에 왜 왕 초상화를 걸어 놔. 난 어디서 싸구려 그림 가져온 줄 알았네.

허. 진짜 잘생겼네. 성격 파탄된 이유를 알겠다. 나라도 이 얼굴로 몇십 년 가면 쓰고 살면 속 터지겠다. 이 얼굴이면 내가, 아랫동네 줄리아가 다 뭐냐. 열 여자를 후리고 다니겠네. 엄청 잘생겼구만. 이야.

공주님 태어나고 나서 벗은 거야? 가면? 낳자마자 벗었대? 사람 안 죽었고? 참 나. 아무튼 마녀란 것들은 모조리 다 잡아 죽여야 돼. 화형시켜야 된다니까. 왜 멀쩡한 사람한테 저주를 내려서 그렇게 돌게 만들어? 대체 그 왕 새끼 때문에 몇 사람이나 죽은 거야?

뭐? 마녀사냥 금지됐다고? 언제? 허, 참 나. 왜? 진짜? 아니,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왕이면 제일 먼저 나라에 있는 마녀들부터 다 잡아 죽일 텐데. 진짜 인간이 변했네, 변했어. 결혼하고 자식새끼 낳으면 사람이 변하는 건 왕도 별수 없나 봐? 그래, 새끼야. 너도 빨리 결혼이나 해. 나는 아직 한창이고. 아, 너 또 차였냐? 이히히히, 모자란 놈. 야, 우리 다음에 저기 술집이나 가자. 거기 여급이 그렇게 예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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