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3)

七장. 출궁

“하아….”

연우의 입술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머리 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가슴에 품은 짐은 보따리 하나가 전부다.

보따리 안에는 잡다한 것들이 들어있다.

버려도 누구 하나 주워 가지 않을, 그런 것들이다.

황제가 내리는 재물은 받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왜 재물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냐?’

황제는 그런 연우의 결정을 의아하게 여겼지만 연우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사내와 잠자리를 한 대가로 재물을 받는 것은 몸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재물은 받지 않기로 했다.

출궁하는 것으로 연우는 이미 만족했다.

“어디로 가려고?”

황궁 성문 앞까지 연우를 배웅 나온 동무 궁녀가 살며시 물어왔다.

“집으로 가려고.”

“그러고 나서는?”

그 물음에 연우가 대답 없이 그저 웃었다.

“아깝다, 재물….”

“재물보다 귀한 것을 얻었는걸.”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동무 궁녀는 연우가 웃는 까닭을 도무지 알지 못했다.

준다는 재물도 마다하는 연우가 그저 바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 갈게.”

성문 앞에서 연우가 동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눈을 들어 황궁을 바라봤다.

10년을 살아온 곳이지만 이제 이곳을 떠난다.

떠나고 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보따리를 품에 안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에 연우가 씩씩하게 성문을 통과했다.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가 연우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 줬다.

“고뿔에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오.”

사내는 위륜이었다.

아침부터 이곳에서 연우를 기다렸던 위륜의 어깨 위에는 이미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장군님께서 고뿔이 드시겠어요.”

“사내는 고뿔 따위 들지 않소.”

“정말이요?”

연우가 짐짓 놀란 척했다.

“짐은 이것뿐이요?”

“네.”

“갑시다.”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차였다.

그리고 마차 주위에는 위륜의 부하들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실실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찢어져라 웃는 부하들에게 눈을 흘기며 위륜이 연우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지금까지 말을 탔으면 탔지 마차에 타 본 적이 없는 위륜이지만 오늘은 연우를 위해서 마차에 탔다.

“그러면 출발합니다! 이럇!”

마부를 자처한 부하들이 마차를 모는 말을 끌기 시작하자 마차가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연우의 집이다.

그곳에서 정식으로 연우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혼례 날짜를 알린 다음 닷새 후에 위륜의 사가에서 혼례를 올린다. 그리고 신혼을 다시 닷새 정도 즐긴 다음 곧장 국경으로 떠날 계획이다.

이미 위륜은 제 양친에게 연우와 혼례를 올리는 것을 허락받았다.

이대로 아들이 평생 장가도 들지 않고 죽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양친은 연우의 신분에 상관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었다.

“악비 마마는 정말 성불하신 걸까요?”

위륜의 품 안에 안겨 연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날 이후로 악비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성불하셨을 거요.”

“악비 마마는 정말….”

연우는 악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녀는 소문처럼 무자비한 악녀일 수도 있고 요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에게는 좋은 이였다.

자신과 위륜에게는 말이다.

“나중에 악비 마마를 위해 향을 피워드리고 싶어요.”

“나도 그러고 싶소.”

품에 안긴 연우를 향해 몸을 숙인 위륜이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마차 안이에요, 장군님.”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소.”

“하지만….”

“닷새나 참았소.”

정식으로 허락을 받고 오늘 출궁하기까지 꼬박 닷새가 걸렸다.

연우도 닷새 만에 위륜을 만나는 것이다.

“피가 말라 죽는 줄 알았소.”

“장군님….”

“낭자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소?”

“보고 싶었지만….”

“낭자는 아무래도 내가 낭자를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이구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만 애가 닳으니 말이요.”

“저도… 좋아해요….”

그 말을 하니 왜 이렇게 부끄러운 것일까.

“그러면 하게 해 주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어떻게 거절을 할까.

결국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위륜이 그녀의 치맛단을 들추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 장군님… 하읏….”

불룩거리는 제 치마 안에서 음란한 짓을 하는 위륜으로 인해 연우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틀어막는다고 소리가 새지 않을까.

“응, 으응…흐응….”

속곳을 들추고 그 사이로 혀를 밀어 넣고 빠는 사내 덕분에 연우의 숨이 가빠졌다.

“으응, 아, 읏…하읏….”

숨을 헐떡이며 연우가 결국에는 마차에 비스듬히 눕고 말았다.

세운 무릎 위로 치마가 걷히며 그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번 맛을 안 사내는 굶주린 짐승이 되었고, 이미 맛을 알아 버린 연우는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허리를 흔들었다.

마차 안을 더운 숨이 가득 채워 가고 있었다.

***

[내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텐데. 고얀 것들.]

무당의 머릿속에서 악비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성불은 언제 하실 겁니까 마마?”

[성불? 그딴 걸 왜 해? 안 해. 이렇게 재미있는걸? 난 이승이 좋아.]

“마마….”

[걱정 마. 너한테 안 달라붙어. 당분간은 저 아이들을 따라가서 구경이나 할 거야.]

악비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정도면 은혜는 갚은 거지? 위륜 장군에게도 은혜를 갚았고 연우에게도 은혜를 갚았고. 나는 못된 년이지만 은혜는 갚을 줄 아는 년이니까.]

“네, 네. 그렇겠지요.”

무당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무당은 한 달 전부터 악비의 원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할 것이니 이렇게 장단을 맞춰라, 이 사람을 골라라 저 사람을 골라라 등. 그 모든 것은 전부 악비가 지정했다.

결국 황제도, 위륜도, 저 궁녀도 모두 악비의 손바닥에서 놀아났지만 두 사람이 행복해졌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이래서 악비에게 원한을 사면 안 된다고 무당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은 해 달라는 대로 해 줬으니 이제 악비에게 시달리지는 않겠지.

[그럼 잘 있어. 나는 이제 저 두 사람이 하는 짓을 구경하러 갈 거야. 마차 안에서 얼마나 음란하게 놀까?]

깔깔거리며 악비의 원혼이 무당에게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마차 위에 올라앉아 마차 안을 들여다봤다.

[옳지. 잘하는구나. 우리 연우, 우리 아가. 그렇지. 아주 이제 요부가 다 되었어. 가르친 보람이 있어.]

깔깔거리며 악비가 구경을 하는 것도 모르고 마차 안에서는 이제 막 불붙은 두 사람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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