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3)

***

황궁이 발칵 뒤집혔다.

황제의 용종을 잉태한 후궁 영비가 폐궁의 얼어붙은 연못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영비의 태중에 있는 용종은 무사했다.

‘두 달이면 유산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기이지만 천신의 가호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영비 마마의 태중의 아기씨께서는 무사하십니다.’

다들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넘어지기만 해도 유산하기 쉬운 임신 두 달째에 우물에 빠지고, 얼어붙은 연못에 빠지고도 아이가 무사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다만 영비를 연못에 빠뜨린 짓을 저지른 궁녀였다.

영비를 연못에 빠뜨린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연우였다.

아니, 연우였다고 다들 말했다.

멀찍이 서 있던 영비를 모시던 궁녀들도, 그때 연우의 곁에 서 있었던 서희도, 무엇보다 영비 자신이 그렇게 증언했다.

자신을 밀쳐 연못에 빠뜨린 것은 연우라고, 그렇게 말했다.

“궁녀는 얼마든지 바꾸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다 죽어 가는 표정으로 영비가 황제를 졸랐다.

“저를 죽이려고 한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살려 두시려는 것입니까? 그 죄인 때문에 폐하의 자식을 잃을 뻔했는데도요?”

지금 영비의 목적은 단 하나다.

연우를 죽이는 것.

물론 연우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원래는 연우를 이용해서 연못에 빠져 아이를 유산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연우의 몸에 깃든 악비의 원혼이 자신과 태중의 아이를 미워해서 연못으로 떠밀어 자신도 죽이고 아기도 죽이려고 했다.

이렇게 꾸며낼 작정이었지만 아이는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악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이미 틀렸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으로 생각해 놓은 독사탕밖에 없다.

독사탕을 사용하는 방법은 정말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독을 구하지 못했다.

악비를 이용해서 아이를 죽이는 일이 실패했으니 연우를 죽여서라도 이 귀혼을 늦추는 수밖에는 없다.

적어도 독사탕을 구할 때까지는 귀혼을 마치고 악비가 성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왜냐하면 독사탕을 먹는다고 해도 아이가 죽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별별 방법을 다 썼어도 아이는 무서울 정도로 독하게 태중에 붙어 있다.

만약 독사탕을 먹고도 죽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 목숨을 걸고 북벽에서 떨어져야 한다.

북벽에서 떨어지면 아이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북벽에서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길은 없다.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렇게까지 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악비의 원혼이라는 핑계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악비의 원혼은 성불해서는 안 된다.

연우가 죽으면 새로운 궁녀를 물색해야 할 것이니 시간을 조금 더 끌 수 있다.

‘한 번 영매에 깃든 원혼은 새로운 영매에 쉽게 깃들지 못합니다.’

은밀하게 무당을 통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 악비의 영매인 연우가 죽고 다른 궁녀로 그녀를 대신하면 악비가 쉽게 깃들지 못할 거라고 무당은 말했다.

연우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자신을 섬기는 궁녀들과 연우, 그리고 연우의 동무인 세답방 궁녀 서희뿐이다.

자신의 궁녀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거다.

그녀들이 보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리고 서희라는 궁녀에게는 이미 대가를 약속했다.

거짓 증언을 하면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하자 서희라는 그 궁녀는 고민도 하지 않고 그리하겠다고 했다.

이제 누가 봐도 범인은 연우다.

감히 황제의 용종을 잉태한 후궁을 죽이려고 한 죄를 저질렀으니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몇 명을 죽여서라도 영비는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지켜야 한다.

황제의 총애, 그리고 이 화려한 후궁의 생활을 지켜야만 한다.

빼앗길 수 없다.

악비처럼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 궁녀가 아니라 악비의 원혼이 그리했을 수도 있잖느냐.”

“밤이 아닌데도 악비의 원혼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저는 연못에 빠지기 직전 그 궁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폐하.”

“무슨 대화를 했다는 것이냐?”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은 다 주겠다고 했는데 그 궁녀가….”

“뭐라고 대답했느냐?”

“제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황제도 별수 없을 것이다.

“저를 죽이려고 작정한 눈빛이었습니다. 욕심이 가득해서,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제가 미워 죽겠다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똑같은 궁녀였는데 처지가 이렇게 바뀌었으니까요.”

“고약한 것이로구나.”

결국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혼은 다른 궁녀로 대신하면 되겠지.”

누명을 쓴 연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아픈 척하며 영비가 제 이마에 얹는 황제의 손을 꼭 잡아 거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

‘아파….’

연우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의식은 여전히 흐릿하고 머리가 어질거렸다.

숨을 쉬는 것이 괴롭다.

입안이 바짝 말라 목이 마르지만 누구 하나 물을 가져다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연우도 안다.

누가 이 감옥까지 물을 가져다주겠는가.

고개를 들자 창살 사이로 눈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연못에 빠진 직후에 갈아입지 못한 옷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옷만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전신이 얼어붙었지만 몸이 뜨겁다.

느낌이 이상했다.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운데 손발이 시리고 추워서 죽을 것만 같다.

목이 마르고 머리가 아프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살려 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고 가쁜 숨만 겨우 뱉을 뿐이다.

‘나 이러다 죽는 걸까….’

출궁해서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역시 꿈에 불과했던 일일까.

‘내가 나쁜 마음을 먹어서 그런 걸까….’

재물을 받으면 가족들에게 반만 나누어 주고 더는 가족들과 엮여 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때문에 벌을 받은 걸까.

하지만 나쁜 마음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냥 혼자 살고 싶었다.

자신이 궁녀였던 것을 모르는 곳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돌아가면 그들은 분명 제게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어떻게 출궁했느냐, 어떻게 그 재물을 받았느냐 계속해서 물어올 것이고 결국에는 자신이 귀혼을 했다는 것을 알려야만 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싫었다.

그것이 싫었을 뿐인데 그것조차 하늘이 보기에는 나쁜 마음이었던 것일까.

‘내가 한 짓이 아닌데….’

영비를 연못에 떠민 것은 자신이 아니다.

자신은 영비를 구하기 위해 연못에 뛰어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다들 자신이 영비를 떠밀었다고 한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가장 큰 충격은 서희의 증언이었다.

‘서희야! 아니야!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너는 알잖아!’

하지만 서희는 제 시선을 피했다.

제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희는 거짓말을 했다.

‘서희가 왜….’

대체 왜 그랬을까.

영비도, 서희도 대체 왜 그런 걸까.

왜 다들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자신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이렇게 죽는 걸까….’

잘은 모르지만 ‘참형’이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황제의 용종을 품은 후궁을 죽이려고 한 죄를 뒤집어썼으니 참형이 당연하다.

‘아직 엄마를 보지도 못했는데….’

열두 살에 생각시가 되었다.

그리고 십 년.

십 년이나 엄마를 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본 엄마는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모습이었다.

백 일이 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앓아누워 있는 엄마의 약값을 위해서 연우는 생각시가 되었다.

연우가 집을 떠나올 때까지도 엄마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었다.

그래서 간다는 인사도 못 드리고 떠나와야만 했다.

병이 다 낫기는 한 걸까.

병이 낫고 난 다음에 자신이 생각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또 울지는 않았을까.

아버지와 두 동생도 궁금했지만 가장 생각이 많이 난 것은 역시 엄마였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로 자신을 생각시로 들여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다고 해도 엄마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는 그랬었다.

‘엄마….’

십 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죽어 가면서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다.

만약 엄마가 지금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우가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제는 겨우 눈꺼풀을 들 정도의 힘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 겨우 들고 있던 눈꺼풀도 서서히 내려오는 중이었다.

점점 의식이 흐릿하게 변해 간다.

이렇게 정신을 잃으면, 참형을 당하기 전에 죽을 것이다.

이렇게.

***

사흘째 밤.

위륜이 눈이 덮인 뜰로 들어서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겨우 사흘째인데 이 길이, 이렇게 들어서는 길이 벌써 익숙해진 느낌이라고 말이다.

‘오늘은 이름이나 물어볼까.’

앞서 두 번의 밤이 끝나면 여인은 항상 지쳐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위륜은 여인이 깨기 전에 먼저 저 침전을 나섰다.

그 여인이나 자신이나 서로의 이름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이래도 되는 걸까.

물론 이 귀혼이 끝나면 서로의 갈 길이 달라지고, 다시는 얼굴을 보는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럴지라도 이름조차 모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악비의 원혼이 중간에 개입을 했다 하더라도 몸을 섞는 것은 그 여인과 자신이다.

그러니 이름은 알려 줘야 하지 않겠는가.

생판 모르는 남도 이름을 아는 법인데 몇 번이나 같이 밤을 보내 놓고 나중에 그 이름을 물었을 때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무책임한 사람인 걸까.

‘오늘은 서둘러 나오지 말고 깨기를 기다렸다가 이름이나 물어보고 나와야겠군.’

이름을 알면 들지 말아야 할 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사람의 도리는 아니다.

정이 드는 것이 무서워서 사람의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다.

드르륵.

문을 열자 침전 안의 풍경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다.

아니, 모든 것이 어제와 다를 것이 없지만 딱 하나만 어제와 달랐다.

바로 여인이었다.

‘그 궁녀가 아니군.’

이틀 밤을 함께 보냈던 그 궁녀가 아닌 다른 여인이 침상 위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요?”

문을 열고 침전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선 위륜이 여인을 향해 물었다.

왜 갑자기 상대가 바뀐 걸까.

“오늘부터는 제가 귀혼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뭐요?”

말투를 들어보니 아직 악비의 원혼이 씌지 않은 상태다.

“연우는 영비 마마와 태중의 용종을 시해하려고 한 죄로 옥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제가 악비 마마의 그릇이 되라는 황명을 받았습니다.”

한 점 떨리는 목소리도 없이 또박또박 말하는 궁녀의 입술이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 미소보다는 연우라는 궁녀가 옥에 갇혔다는 말이 위륜을 더 신경 쓰이게 했다.

그것도 용종과 영비를 시해하려고 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 궁녀가?

물론 위륜은 그녀를 잘 모른다.

이제 겨우 이틀을 만났을 뿐이다.

첫째 날의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로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둘째 날의 그녀는 이미 악비의 원혼이 씐 채였다.

그래서 위륜은 그녀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

어떤 성품인지, 어떤 여인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해야만 정상이다.

그런데도 지금 그녀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첫날밤 두려움에 와들와들 떨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군을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제 이름은 서희입니다, 장군님.”

서희가 살며시 제 야장의의 옷고름을 풀었다.

아직 원혼이 깃들기도 전인데 제 손으로 옷고름을 풀고 나신을 내보이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위륜이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가 침전 문을 닫았다.

“장군님?!”

당황한 것은 서희였다.

위륜이 갑자기 문을 닫고 나가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다.

“장군님-!”

침상에서 달려 내려간 서희가 문을 열었지만 이미 뜰 어디에서도 위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걸어왔다가 걸어 돌아간 발자국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어쩌지? 이를 어쩌지?”

서희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서희도 몰랐다.

연우 대신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차피 위륜은 연우의 이름도 모른다.

그래서 상대가 바뀌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어차피 위륜은 황명으로 귀혼을 해야 하는 처지다.

상대가 누구든, 반드시 귀혼은 치러야 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연우가 아닌 자신이라도 될 것이라 믿었다.

연우가 부러웠다.

같은 세답방 궁녀였는데 연우만 팔자가 피는 것이 그냥 부러웠다.

연우나 자신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얼굴이 곱기로 치면 연우보다 자신이 더 곱다.

연우는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귀혼의 대상으로 연우가 뽑혔다.

항상 존재감이 없이 구석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연우를 어찌 알고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우의 수발을 들라고 자신이 함께 이 폐궁에 오며 첫날부터 시샘이 생겨났다.

자기보다 못한 연우의 수발을 제가 드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지만 연우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부러웠다.

아름다운 옷, 화려한 장신구들, 그리고 귀혼이 끝나면 출궁한다는 것과 더불어 엄청난 재물을 받아 가지고 나간다는 것까지 부러웠다.

그냥 부러웠다.

그중 가장 부러운 것은 위륜 장군이었다.

다른 때라면 언감생심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위륜 장군의 품에 안기는 연우가 정말 부러웠다.

만약 자신이라면, 연우가 아니라 자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을 내내 했다.

연우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상상도 해 봤다.

만약 자신이 연우였다면 위륜 장군을 어떻게든 유혹해서 그의 첩이라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네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단다. 위륜 장군의 첩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생각해 보아라. 금은보화를 가지고 출궁해서 평생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해 주마.’

은밀한 제안을 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영비였다.

그녀의 부탁은 간단했다.

‘나를 떠밀고, 나중에 연우라는 아이가 떠밀었다고 증언하면 되는 거란다. 어떠냐? 간단하지?’

영비의 말대로 쉽고 간단한 일이었다.

“돌아오실 거야. 암, 다시 돌아오시고말고. 황명인데 자기라고 어쩌겠어. 다시 돌아와야지.”

어둠에 덮인 뜰을 바라보며 서희가 중얼거렸다.

위륜이 지금은 그냥 돌아갔어도 그는 황명을 따르는 장군이다.

어차피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연우 따위….”

연우는 참형을 당한다고 했다.

하지만 연우 따위 알게 뭐란 말이나.

남의 사정을 다 봐주다가는 이 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들 남을 죽이고, 남을 밟고 올라간다.

그러니까 자신도 그럴 작정이다.

이건 일생일대에 단 한 번 찾아오는 기회니까.

그때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으악!”

갑자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 오는 바람에 서희가 비명을 질렀다.

“누, 누, 누구야?!”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없다.

그리고 목소리는 틀림없이 머릿속에서 들려 왔다.

[정말 위륜 장군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니?]

“꺄아악!”

자꾸만 머릿속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에 서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왜 놀라고 그러니? 내 그릇이 되겠다고 한 건 너였잖아? 그런데 이렇게 놀라면 어쩌니?]

“아, 아, 악비 마마?”

지금 이 목소리가 악비의 것?

서희가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자신의 몸에 악비의 원혼이 씐 것일까?

“아, 악비 마마. 저, 저는 그러니까….”

[나는 야망이 있는 아이가 좋단다. 연우는 너무 소심했지. 뭐만 하면 울고 겁먹고 안 돼요, 이런 소리나 하고.]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너는 야망이 있구나? 너 같은 아이가 딱 좋지.]

“그러면 마마. 위륜 장군이 돌아오실 수 있게….”

[돌아올 거란다. 제까짓 것이 어쩌겠어.]

“그렇겠지요?”

[암, 그렇다마다.]

머릿속에서 악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서희는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악비가 저를 도와주면 잘 풀릴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마.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있으면 되는 거란다. 알겠지?]

“네, 마마.”

서희가 그제야 웃었다.

부귀영화가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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