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우연이었다.
그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데,
우연히 그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뿐인데,
한순간 김선우는, 지연희에게 멀고도 가까운 남자가 되어 버렸다.
"이제 알겠어? 상대가 원치도 않는 도움을 주고 나서
어쭙잖은 충고를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는 차가웠고,
"지금 나랑 같이 여기서 나갈래?
혼자서는 도저히 못 빠져나갈 것 같은데,
누가 손잡아 주면 가능할 것도 같거든."
상처투성이였고,
"난 네가 내 옆에 있어주는 지금이… 너무 감사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연희도 그를 사랑한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김선우에게서 영영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하기 전까진.
다시는 보지 말자는 아픈 말로 마지막 만남에 방점을 찍기 전까진.
여전히, 선우는 연희를 알았지만 연희는 선우를 몰랐다.
***
"그러니까 찾아서 데려와요."
수정이 눈을 빛내며 속삭였다. 연희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요?"
"누구겠어요? 내 약혼자, 김선우지."
"네?"
휴일에 뜬금없이 불러내 얼토당토않은 과업 지시를 남기는 직장 상사라니.
게다가 문제의 남자 김선우는, 연희가 다시 만날 일 없는,
정확히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제가 J호텔 부사장님을 왜… 아니, 어떻게 찾겠습니까?"
"그 사람 집을 샅샅이 뒤지다가 고물 휴대폰을 하나 찾아냈거든.
비번이야 본인 생일이라 어렵게 풀고 말 것도 없었고.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가 딱 두 개 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당신 거였어."
수정이 손가락으로 연희를 콕 찍었다.
"…잘못 저장하신 모양이죠.
나머지 번호로 연락해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저보다야…."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러지."
"왜…."
"죽은 지 벌써 20년은 된 사람이거든."
연희는 확신했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도, 이 모든 건 김선우가 계획한 일일 게 분명하다.
김선우가 끼면 늘 이랬다. 한 번도 일이 얌전하게 굴러간 적이 없었다.
또 이용당했다. 질질 끌려 다니던 그때처럼.